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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판의 댓가, 무능의 비용

외우 조태열 전 유엔대사가 27일 매일경제에 실린 컬럼에서 2018년 전격적으로 추진된 북미정상회담이 중국을 alert 시켜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재평가하게 만들었고 북중을 밀착시켜 결국 북한비핵화를 위한 국제협력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돌이켜보면 2017년 당시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유엔 차원의 국제공조는 꽤 잘 작동했고 여러 제재가 합의될 수 있었다. 하지만 주목을 끌었던 남북미 탑다운 프로젝트가 실패로 끝난 후 오히려 북한 비핵화를 위한 국제공조는 더욱 힘들어졌다. 그렇다고 남북간의 불신과 갈등이 해소되지도 않았고 오히려 북한의 대남비방과 핵위협은 더욱 노골화되고 있다. 이 역설적 상황을 직시하고 북한비핵화 전략구상 전반을 재검토하고 플랜B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조대사는 주문한다.

29일 아침엔 최근 혹서와 전력난의 전례없는 어려움을 겪는 유럽 현지의 위기가 결국 러시아 위험에 대한 전략적 판단미스에 기인한 것이란 컬럼을 읽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의 급격한 가스공급 축소는 유럽이 기후위기와 에너지 위기, 사회적 불안과 안보위기를 동시에 겪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 가스 의존도가 50% 이상인 독일은 특히 심각한 어려움에 부딪치고 있는데 장차 환경오염이 심한 갈탄 화력까지 사용할 각오지만 장기적 전망은 불투명하다. [더컬럼니스트]의 컬럼은 이런 상황을 초래한 이유가 독일의 “과도한 친러시아 정책의 안일함”에 있다고 지적한다. 탈냉전 이래 러시아와의 지정학적 리스크, 전략적 위험성을 경시해온 결과라는 것이다.

한국의 진보정부가 북한에 대해 가졌던 기대와 탈냉전 후 독일이 러시아에 보인 대응을 같은 차원에서 취급할 순 없다. 하지만 그 기대가 좌절당한 현실 앞에서 그간의 전략구상을 근본적으로 되돌아보아야 할 상황 자체는 확실히 유사하다. 또 한국의 진보정부가 북한 정권과의 협력가능성을 강조할 때 늘 독일의 ‘접촉을 통한 변화’는 좋은 참조이자 선례이기도 했다. 독일은 탈냉전과정에서의 성공적인 통일과 유럽통합의 경험 위에서 신뢰와 통합의 힘이 러시아와의 관계를 새롭게 변화시키리라 믿었을 듯 하다. 하지만 2022년 현재 한반도도 독일도 그간 견지해온 정책적 전망의 타당성이 흔들리고 그 바탕을 이룬 이론적 공감력도 크게 동요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

누구도 원치않던 오늘의 현실은 정책적 오판의 아픈 댓가라 해야 할까? 타당한 정책이었는데 상대방의 배신이 빚은 어쩔 수 없는 결과일까? 대국주의와 약육강식의 논리가 횡행하는 국제질서의 퇴행 탓일까? 탓할 대상 찾기가 능사는 아니지만 역설적 결과를 가져온 정책에 대한 냉정한 검토 없이는 오류를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우리의 현실판단과 정책형성 프로세스 전반을 전면적으로 성찰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작업이 시급하다. 하지만 새정부의 어슬픈 언행과 정치권의 구태를 보노라면 오판의 댓가 못지 않게 무능의 비용도 크게 치루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과학기술 영역에서 논의되는 “혁신”이 정작 절실히 필요한 곳은 오히려 정치권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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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3, 石 돌 獨

독도가 석도임을 논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 것이 개인적으로 이번 여행에서 얻은 중요한 성과다. 1900년에 제정된 대한제국칙령 제41호에 의해 울릉도가 울도군으로 지정되면서 그 관할지역으로 울릉전도와 죽도, 그리고 석도가 적시되었다. 죽도가 어디인지는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석도란 지명이 논란이다. 한국은 석도가 곧 독도이며 역사적으로 지녀온 영유권을 1900년 대한제국 칙령으로 재확인한 것으로 설명한다. 반면 일본은 이 석도가 현재의 관음도라고 주장하면서 독도의 한국영유권을 부인하는 근거로 삼으려 한다.

제한된 문서자료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현장의 공간감과 생태적 특징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영호 이사장의 주장에 모두 공감하면서 관음도, 죽도를 방문하고 이름과의 연관성을 비교했다. 죽도에는 산죽이 곳곳에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서 죽도 또는 댓섬이란 이름이 그 생태적 특성에서 온 것임이 분명했다. 반면 관음도는 나무가 울창하고 경관도 수려해서 석도라는 이름과는 그 생태적 특성이 너무 어울리지 않았다. 현지인들이 부른다는 섬목이라는 지명 역시 석도나 돌섬과는 거리가 멀다. 이에 반해 독도를 본 첫 이미지는 분명한 돌섬이었고 그것은 석도라는 이름값과 정확히 부합한다. 독도와 죽도, 관음도를 둘러본 후 나는 돌섬과 석도, 그리고 독도가 같은 지명이라는 설명이 타당하리라는 확신이 보다 강해졌다.

기록상 독도가 처음 나타나는 것은 1905년 일본 해군성 소속 군함 신고호의 항해일지인데 여기에는 ‘리앙쿠르토 암을 한인들은 독도라고 쓰고 본방인들은 줄여 량코도라고 부른다’라고 되어 있다. 1906년 울도 군수 심흥택이 오키도 관리들의 방문을 받고 그 결과를 보고한 기록이 ‘본군 소속 독도가…’라고 시작함으로써 한국 문헌 속에 독도가 처음 등장했다. 기술 내용으로 미루어 이전부터 독도라는 이름이 울릉도 주민들 사이에서 통용되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고 그것이 현지의 돌섬, 석도와 같다는 추정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한글학회의 지명조사나 신용하 교수 연구서에는 돌섬을 독섬 또는 석도로 표기하는 다른 사례들이 여럿 언급되어 있다. 울릉도에서 나고 자란 홍성근 박사의 상세한 지명 고찰 역시 그것을 뒷받침한다.

1900년대 초반은 일제의 조선병탄이 본격화되던 때이면서 동시에 갑오개혁 이후 표기법의 심대한 변화가 진행되던 시기다. 많은 고유어들이 한자어로 바뀌고 그 과정에서 동음이의어가 혼용된 사례들이 적지 않았다. 돌섬이 석도로, 다시 독도로 달리 불리고 쓰이게 된 것도 현지의 우리말, 그것의 한자표기, 음차와 훈독의 뒤섞임이 초래한 결과다. 전라도에서 이주해온 주민들이 돌을 독이라 부르는 방언을 사용하여 멀리 있는 돌섬을 독섬이라 불렀고 그것을 관리가 표기할 때 어떤 경우는 석도로 또 다른 곳에서는 한자를 음차하여 독도로 기록했던 것이다.

인터넷에는 독도를 ‘외로운 섬’으로 부른 홀로 아리랑 노래 가사를 수정해야 한다는 글이 올라와 있다. ‘獨島’의 獨은 음차에 불과한 것이어서 그냥 독이나 돌로 읽어야 한다는 것인데 실제로 독도와 석도와 돌섬을 연결하는 논지와 부합하는 타당한 주장이다. 그렇지만 망망한 바다 한 가운데서 독도를 보면 외롭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으니 실효적 지배가 확실한 오늘 외로운 섬이라 부르는 문학적 표현을 막을 수도 없어 보인다. 어쨋든 돌섬, 석도가 독도임을 확증해주는 분명한 문서자료가 부재한다는 점은 아쉬운 현실인데 일본의 부당한 주장을 완전히 잠재줄 수 있을 명료한 문서가 발굴될 날이 오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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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2, 역사와 생태

독도는 특별한 곳이다. 꽤 많은 시간 파도의 시달림을 감내하면서 가야 하지만 상륙 여부가 불확실하며 접안에 성공해도 30분 내외 머물 뿐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독도를 찾는다. 어떤 이는 답사라 하고 어떤 이는 관광이라 부르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독도방문 자체가 정치외교적 논란이 되었지만 지금은 하루에도 수차례 꽤 큰 선박이 독도를 오가고 있고 인터넷에는 독도관광을 선전하는 글귀가 널려 있다.

누구나 언제든지 갈 수 있지만 독도는 특별한 곳이다. 유별난 애국자가 아니더라도 독도라는 말에서 빼앗긴 주권과 되찻은 주권을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무명용사의 기념탑에서 민족을 가시적으로 경험한다고 주장했는데 독도는 그런 상징적 공간에 해당한다.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지키려다 목숨을 잃은 어민들의 위령비와 독도의용수비대의 활동사진은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역사전쟁의 용사탑인 셈이다. 그래서 독도앞에서 누구나 민족감정을 느끼고 국가를 체험한다. 독도로의 여정은 어쩔 수 없이 역사기행이자 애국여행이다.

독도에서 국가를 떠올린다면 울릉도에선 새로운 자연을 만난다. 화산섬의 위용과 용암석의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대단한 경이이고 바다를 끼고 있는 한반도 생태의 살아있는 공부시간이다. 울릉도 관광이 독도상징을 활용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생태와 지질관광 역시 중시할 일이다. 독도와 울릉도의 이 절묘힌 조합은 역사와 자연, 정치와 생태, 답사와 관광이 공존하는 여행문화를 가능케 한다. 공들여 지은 전시관을 찾는 여행자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걱정을 들었는데 어쩌면 이런 균형이 좀더 필요함을 알려주는 사인일지 모른다.

개인적으로 전시관을 둘러보면서, 또 버스 속에서 역사공부와 쟁점정리의 유익한 시간을 가진 것 못지 않게 울릉도와 독도의 지질적 특성, 아름다운 자연을 만나고 감상한 시간 역시 더없이 소중했다. 독도와 울릉도, 울릉도와 독도가 함께 고려되어야 하는 것은 굳이 어민들의 생활권 차원이나 영유권 문제에 한정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의미있는 여행이 되기 위해서도 독도와 울릉도, 역사와 자연은 함께 있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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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1, 1947 & 2022

독도를 다녀왔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주관한 “일제침탈과 역사왜곡 인식제고를 위한 독도탐방” 에 참여한 것이다. 답사단은 명실상부 최고위 기관장, 전문가들로 구성되었다. 재단의 이영호 이사장을 비롯하여 국사편찬위원회 김인걸 위원장, 한국학중앙연구원 안병우 원장, 독립기념관 한시준 관장, 중앙도서관 서혜란 관장, 인문지리학자 양보경 총장,고고학자 강현숙 교수, 한국근현대사 전문가 박찬승 교수와 박명림 교수가 함께 했다. 울릉도 출신이면서 독도연구가인 홍성근 박사가 안내와 설명을 맡아 세세한 현지의 상황까지 배우고 확인하는 고품격 답사여행이었다.

독도와 울릉도에 첫 조사단이 파견된 것은 해방 직후인 1947년이었다. 과도정부 민정장관이었던 안재홍의 후원 하에 조선산악회 주도로 국사관 관장 신석호, 진단학회장이자 국립민속박물관장 송석하, 언어학자 방종현 등이 포함된 63명의 대규모 조사단이었다. 역사, 문화, 민속, 언어, 생활실태 뿐 아니라 동식물과 지질광물에 걸친 광범위한 학술조사를 목표했는데 모든 여건이 미비했을 당시를 생각하면 그 규모와 열정이 놀랍다. 이들의 사명감을 바탕으로 독도연구자 1세대가 성장했고 독도문제를 둘러싼 외교적 논란에 대응할 자산들이 준비될 수 있었으니 가히 독도연구의 출발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47년은 또한 미국의 전후처리과정에서 독도를 두고 한국, 미국, 일본의 줄다리기가 시작된 해다. 미 국무부는 대일평화조약의 체결을 준비하면서 1947년 초안을 마련했는데 거기엔 리앙쿠르암 (독도)의 한국귀속이 분명히 적시되었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독도가 한국령이라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의 반영이었다. 하지만 일본은 미국과의 평화조약 체결과정에서 독도를 한국으로 반환하지 않기 위한 집요한 노력을 기울였다. 일본의 억지주장이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샌프란시스코 조약 초안에 있던 독도의 한국귀속이 최종안에 명기되지 않음으로써 논란이 계속될 빌미를 남겨 놓았다.

그로부터 75년이 지났다. 가난한 은둔의 나라는 어엿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고 학계의 연구 수준도 크게 발전했다. 스포츠와 음악, 영화 등 K-Culture의 파급력도 세계적이다.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권도 확장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어려움 없이 독도여행에 나서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부당한 독도영유권 주장은 계속되고 식민지 시대를 둘러싼 한일간 역사전쟁은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 이 어긋남의 일차적 원인이 일본의 우경화 탓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지만 그것을 지적하는 것으로 해법이 생길지는 모를 일이다. 향후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연구일까 더 세련된 외교일까 더 강한 국력일까? 더 강한 민족주의가 요청되는가 아니면 세계주의와 지역연대의 정신을 강화해야 할까? 홍박사는 1947년 이래 가장 권위있는 답사단이 아닌가 자찬하기도 했지만 그 때 이후 우리 역량은 얼마나 더 강해졌을까 곰곰 자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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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를 향한 에코백

작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에 기증했던 한글 병풍의 글을 활용해 제작한 에코백을 건네 받았다. 내 글씨가 이런 형태로도 도움될 수 있다니 기쁘다. 푸른 색 바탕에 흰 글씨 색채 대비가 청명한 하늘의 하얀 구름마냥 상큼하다. 네모꼴로 발췌된 글씨를 배치해 전통적 전각작품을 떠올리게 한 디자인도 산뜻한 느낌을 더한다. 화선지의 먹과 붓의 느낌이 사라진 대신 글의 내용은 더욱 또렷히 부각된다. “정부의 정치적 경제적 조정에만 기초를 둔 평화는 세계국민들의 일치되고 영속적이고 성실한 지지를 확보할 수 없다. 인류의 지적 도덕적 연대 위에 평화를 건설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패권경쟁이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세계는 자국주의와 혐오의 감정정치로 곳곳에서 균열한다. 자기 죽음을 염려하는 인공지능이 등장할 정도로 급진전하는 과학문명이 인류공동체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구축할 수 있을지 여전히 논란 중이다. 동북아는 상호소통과 문화교류보다 국가주의와 신냉전의 암운이 짙어지고 한반도 긴장은 완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국력과 역동적 민주주의를 자랑하지만 낡은 남탓정치와 내부의 권력다툼으로 바람잘 날 없어 도덕적 연대를 말하기조차 민망할 지경이다.

인류의 지적 도덕적 유대라는 유네스코의 화두는 실현가능한 꿈인가? 유네스코는 ‘국제연합 교육과학문화기구’라는 긴 이름에서 보듯 교육, 과학, 예술, 문화의 힘을 강조해 온 국제기구다. 출범 당시부터 정부관료나 기업가보다 교육자, 과학자, 예술가, 문화인의 보편적 정신을 중시하는 지향이 강했다. 실제로 지금도 인류적 문화다양성과 지식교류, 과학적 접근과 생태적 사유의 종합을 위해 다방면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하지만 자국주의와 이익추구의 힘이 여전한 오늘, 과연 과학자와 예술가, 교사와 문화인이 국가의 경계를 넘어 인류공동체의 연대를 주도할 주체가 될 것이란 확신을 갖기는 쉽지 않다. 과학과 교육, 예술과 문화의 힘이 인류적 차원의 지적 권위와 도덕적 유대를 구축하는 시대가 올 것을 기대해도 좋을까? 상큼한 디자인의 에코백을 보면서 해 보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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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복 지성사 북토크

작가이자 사회학자인 정수복 박사의 역저 [한국사회학의 지성사] 4권 북토크가 군산의 인문학까페 정담에서 있었다. 김백영 교수가 사회를 보고 저자의 발제를 들은 후 나와 김민환 교수, 최민석 교수가 차례로 논평을 하고 이후 청중들과 대화하는 방식이었다. 참석자 모두 앞선 군산 일대의 답사로 피곤할수도 있었을텐데 모두들 진지하게 3시간 가까운 시간 대화를 주고 받았다. 오랜 건물의 분위기가 더해져 가히 지식의 향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즐겁고 뜻깊은 자리였다.

책 1-4권은 각각 ‘한국사회학과 세계사회학’, ‘아카데미 사회학의 계보학’, ‘비판사회학의 계보학’, ‘역사사회학의 계보학’이란 제목을 달았다. 학사 대신 지성사라고 한 데서 한국사회학을 분과학차원을 넘어 지식의 형성과 변동이려는 맥락에서 살펴보려는 문제의식이 느껴진다. 실제로 이 책은 사회학적 사유나 지식의 전개가 개인의 성장배경과 활동영역, 시대의 사회정치적 조건과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잘 보여준다. 계보학이란 어휘도 지식이 다양한 시대적 조건과 여러 사람들의 복합적 상호작용 속에서 구성된 것임을 강조하려는 뜻이 담겨 있지 않을까 싶다.

아직 생존해 있는 분들을 포함하는 이런 유형의 저설은 늘 이런저런 학문외적 논란이 따르기 마련이어서 선뜻 추진하기가 쉽지 않다. 저자 역시 연구대상 인물을 설정하는데 고민이 컸을 법하다. 저자는 섬세하게 균형을 추구하면서도 서울과 서울대학 중심이라는 한국사회의 지적 사회적 편중성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정공법을 택했다. 저자 자신의 경험과 무관치 않을 부분에 대해서도 생경한 회한이나 감정적 평가가 아닌 극도의 절제와 자기겸양을 견지하는 글쓰기 격조를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경험과 정서조차도 역사적 맥락과 사회적 조건 속에서 상대화시킬 줄 아는 고도의 지적 자제력이 돋보이는 책이라 할만하다.

이 책을 일별하고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학계에도 적용된다는 생각을 했다. 학문공동체 내 이곳 저곳에 흩어져 있는 많은 개별적 구슬들을 발굴하고 연결시키며 체계적으로 꿰어내는 작업이 중요하다. 단순한 과거회고가 그 몫을 할 수는 없는 일. 그런 흩어진 구슬들, 개인들의 작은 작업들을 한데 꿰어 큰 지식으로 만드는 학자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한국사회학은 정수복이란 학자를 만나고 그가 쓴 이 책을 통해서 곳곳에 흩어져 있던 구슬들로 멋진 작품을 만들게 된 셈이다. 이 작업을 통해 아카데미 사회학, 비판사회학, 역사사회학을 한국사회학의 세 영역으로 구획한 것도 향후 의미있는 지적 지형도가 되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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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의 시간 여행

한국사회사학회 주관으로 6월 29-30 이틀간 군산 일대의 답사여행을 다녀왔다. 한국 근대의 역사가 건물과 공간 속에 가장 뚜렷하게 남아있는 도시의 하나인 이곳을 오랫만에 다시 방문하니 여러모로 새로웠다. 2022년의 군산은 고층 아파트가 곳곳에 있고 새만금 1차 간척지로 확보된 넓은 공단지대와 고군산군도까지 방제도로와 연육교로 이어져 20여년 전의 모습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십여 년전 새만금 제방의 최종연결을 앞두고 이 간척지의 용도를 둘러싸고 논란이 있었을 때 고 김석철 교수가 국제적 바다 도시를 만들자는 주장을 했던 것이 생각났다. 유럽의 베니스처럼 한중일을 통합하고 연결하는 미래형 도시, 초국경 공간을 창조하자는 신선한 발상에는 감탄을 하면서도 과연 실현가능성이 있을까 못내 의아했었다. 초국경 국제 바다도시라는 구상이 헛된 망상처럼 여겨질만큼 바다에도 하늘에도 국가간 불신의 담이 높아지고 있는 오늘, 새만금 넓은 간척지를 바라보는 마음은 시원하기보다 다소 착잡했다.

주 답사지역인 군산 구도심의 변화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 지역 출신으로 영국에서 공부한 이현경 박사의 설명에 의하면 도시문화재생사업에 선정되어 지방정부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추진된지 여러 해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도로를 걷는 것 만으로도 수십년 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되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영화 세트장을 떠올릴 정도로 각양 모습의 주택과 건물이 새로운 문화공간과 까페들로 새롭게 탄생한 것이 골목마다 눈에 들어왔다. 숙소 옆에 ‘신민회 1907’ 이란 간판을 달고 태극기까지 걸려있는 건물이 기념관인줄 알고 들어가보려다가 까페임을 알고 혼자 웃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활동하던 도산 안창호를 군산에서 떠올리게 되다니….시차와 거리를 뛰어넘은 카페공간의 이미지가 흥미롭고 신선했다. 역사적 유산과 흔적을 문화적으로 재구성하여 한국의 압축근대화의 모습을 재현하고 이것을 관광과 소비, 지역경제와 결합하는 것은 분명 뜻있고 의미있는 일이다.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이런 저런 논란도 있고 실제 도시재생 사업의 명암이 있지만 과거와 현재, 전통과 미래를 삶의 현장과 연결시키는 작업은 필요하고 중요하다.

다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도 과거를 문화적으로 재현하고 그곳에 현재적 의미를 제공해줄 스토리를 어떻게 구성하고 발전시킬 것인가가 큰 숙제일 듯 싶다. 열정적으로 해설을 해준 현지의 퇴직 언론인의 스토리 구조는 일제의 수탈이란 프레임에만 의존하고 있는 듯 해서 답답했다. 군산의 도시유산이 지닌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성격을 단순화시키지 않고 저 공간성에 담긴 근대성과 식민성과 현재성을 종합적으로 해석해줄 창의적 스토리가 절실해 보였다. 식민지 시대를 견디면서 때론 타협하고 때론 저항하며 독특한 삶의 지혜들을 찾아내고 전유했을 이 지역의 간단치 않은 역사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재현된 문화적 상상이 오늘 이곳에서 여전히 살아가는 주민들의 자부심과 정체성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교과서적 해설이나 민족주의 서사, 국가주의 담론으로 그 답이 얻어질 리는 없다. 지역사나 도시사, 미시사 차원에서 새로운 담론과 서사, 이론의 창안이 이루어져야 할 일이다. 물론 과거를 읽는 학계의 역량이 더 성숙해져야 함도 두말할 필요가 없다.

조정우 교수의 안내로 식민지시대 농업이민회사로 유명했던 불이흥업의 현장을 답사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말로만 들었던 옥구 저수지의 거대한 규모, 풀로 뒤덮여있는 옥구역의 녹슨 철길, 여전히 활용되고 있는 관개시설 등에서 100년 전 이 일대에서 이루어진 변화를 상상해 보았다. 근대 기술을 동원한 간척, 수리조합과 농업이민, 농장제 영농의 변화 속에서 진행되었을 혁신과 수탈, 환영과 거부, 탄성과 소외, 지배와 복종의 복잡한 조합들을 생각해 보지만 넓은 논밭과 농촌의 주거에서 그 흔적을 찾아내기란 어려웠다. 땅은 여전히 그대로인데 인간만 굳이 과거의 역사와 유산을 이렇게 저렇게 해석하려 애쓰는 것일까? 21세기 우리에게 20세기 전반 식민지시대의 의미는 무엇인가? 꽤 오래 공부한 주제인데 이 과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쾌하고 즐거우면서 남겨진 숙제를 떠올리게 만든 유익한 답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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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포럼 2.0 단상

코로나 상황으로 오랫동안 지체되던 가진포럼 모임이 6월 16일 새롭게 재출범했다. 남북관계와 한반도 주변상황에 대한 관심을 갖고 이런 저런 자리에서 종종 만나게 된 학계, 관계, 외교, 정치 영역의 전문가들이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가지면서 시작된 비공식 모임이다. 현직에서 한발 물러나 새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분이 대부분이다. 이전에 비해 여유가 생긴만큼 자유로운 모임 그 자체가 주는 의미가 더욱 커질 것으로 생각된다.

주로 모여 식사하던 식당의 이름을 따서 가진포럼이란 이름을 붙였었는데 촛불시위와 뒤이은 코로나 상황을 거치면서 점점 가기가 어려운 곳이 되었다. 다시 모임을 하게 되면서는 교통도 좀더 편리하고 근처에 있는 한 연구소 세미나실을 이용할 수 있다는 이유로 안국동에서 모이게 되었다. 앞뒤의 시간을 이용해서 화랑들을 둘러볼 수 있는 것도 좋은 덤이다. 앞으로 이름도 안국포럼으로 불러야 할까 모르겠다.

모두들 한국사회에서 최고수준의 전문가들이고 다양한 경험과 조직운영을 해본 분들인데 그 역량과 에너지를 공적으로 활용할 기회가 더이상 주어지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다. 취업의 어려움을 겪는 젋은 세대와 급속하게 변화하는 기술문화 생태계를 생각하면 일정한 연령에 도달하면 퇴직해야 하는 제도가 반드시 부정적이진 않다. 실제로 조직상층이 고령화될수록 권위주의와 관행주의가 힘을 얻고 혁신과 변화에 부정적일 가능성이 높다. 사회전체로 볼 때 은퇴자가 늘어나는 것 자체를 안타까워 하기보다는 새로운 세대가 성장하는 모습에 주목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물학적 연령을 근거로 현역과 퇴역을 기계적으로 분할하는 지금의 방식이 마냥 긍정적인 것만도 아니다. 우선 이런 제도는 공공의 조직분야에서만 적용될 뿐 변호사, 의사, 기업가의 영역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공공조직분야에서 능력을 키운 고급엘리트층이 예비군처럼 늘어나면서 정치적 연줄로 임명되는 자리를 둘러싼 갈등이 커진다. 5년마다 열리는 대선이 점점 더 엽관제의 모습을 띠게 되고 캠프에 많은 엘리트 예비군들이 참여하는 것도 그런 이유일텐데 그것이 미치는 영향의 명암을 손쉽게 말하기는 어렵다. 인구학적 고령화와 더불어 늘어가는 퇴직 고급인력의 활용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향후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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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조정과 사회통합

6월 14일 강원도 사회갈등조정위원회가 주관하고 한국사회학회 및 한국갈등학회 등이 공동주관하는 심포지엄에 참여했다. “갈등조정과 사회통합”을 대주제로 하고 해소되기 어려운 사회갈등을 극복하고 통합을 증진시키기 위한 정책적, 학술적 기법과 그 운용사례를 점검하는 야심찬 행사였다. 나를 초청해준 강원대 김원동 교수가 국가 및 지방 단위의 통합적 거버넌스 모색을 위해 관련 학회들과 함께 심포지엄 전반을 기획한 듯 했다. 기조강연을 한 고려대 김문조 명예교수는 오늘날 변화하는 사회기술환경 속에서 갈등을 조정하고 통합을 증진시키기 위해 어떤 대응이 필요한지를 종합적으로 발제했다. 도 차원의 직제에 사회갈등조정위원회가 설치되어 있는 것도 신선했고 학계 전문가와 지방행정 담당자, 시민운동가가 머리를 맞대어 지혜를 모색하려는 기획 자체가 그런 통합지향 거버넌스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여겨졌다.

내가 좌장을 맡은 첫날 두번째 세션은 한국사회에서 오랫동안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고리원전 5,6호기 건설문제와 사용후 핵연료 처리관련 추진된 공론화위원회의 성과와 한계를 논하는 자리였다. 첫번째 발제를 맡은 김주환 교수는 고리원전 건설을 둘러싼 갈등이 공론화 방식을 거쳐 조건부 공사재개로 이어진 과정과 제주녹지병원 건립을 둘러싼 갈등이 다른 결과로 이어진 사례을 비교검토한 연구였다. 두번째 정정화 교수 발제는 사용후 핵원료 처리와 관련한 갈등과 그 해소를 위한 정부위원회에 참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그 과정과 결과를 비판적으로 점검한 것이었다. 원자력과 관련한 쟁점 자체도 쉬운 것이 아니지만 공론화라는 방식 자체에도 따져볼 조건과 변수가 적지 않았다. 공론화의 전 과정에 유관주체들이 모두 참여하는지, 정부가 내정한 정책적 결론이 존재하는지, 위원회의 중립성과 전문성이 보장되는지 등 여러 변수에 따라 그 방식과 효과도 달리 나타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두 발제와 토론을 통해 한가지 명확해진 사실은 공론화 방식이 갈등해소의 유용한 절차이긴 하지만 그것이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거나 이미 정해진 정책을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남용될 경우 갈등해소의 기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사실 갈등이 큰 사안은 그만큼 정책결정의 기회비용이 클 가능성이 높고 정책효과에 대한 중장기적이고 전문적인 평가가 필수적이다. 이런 노력을 경주하지 않은 채 중요한 결정을 공론화란 이름으로 시민적 판단에 위임하는 것은 그만큼 위험부담이 클 수 있다. 첫 세션에서 공론화라는 방식 이외에도 다양한 갈등해소방법 (ADR) 이 있다는 점이 발제되었는데 사안과 맥락에 따라 적합한 방법을 선택하는 것 자체가 거버넌스와 지혜의 요체일지 모르겠다. 최종적으로는 정치적 판단과 책임윤리의 문제로 이어지고 그것은 다시 한 사회의 총체적 문화수준과 이어질 터이다. 저런 노력들이 의미있는 공공의 지혜로 축적되어 통합의 역량이 커지기를 기대해 본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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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대상으로의 교회공동체

공동체에 대한 공부모임에서 윤진수 서울대 법대 명예교수의 ‘교회분열의 법적 고찰’ 발표를 들었다. 이전에도 교회의 공동체적 속성과 그 변화에 대한 서구 사례를 법학의 관점에서 다룬 발표를 들은 바 있다. 같은 신앙을 공유한 신자들의 자율적 모임이라 할 교회가 법률가의 연구대상이 되는 것 자체가 일견 의아해 보이지만 유럽의 경우 정교분리의 제도화가 근대화의 핵심이었던 점, 교회 내분으로 인한 갈등을 법정에서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한국의 현실, 가족간의 일에도 법의 도움을 구해야 할 경우가 적지 않은 오늘의 상황을 고려하면 법률적 관심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교회공동체의 법인격이 분할 가능한지, 분열의 절차적 타당성은 어떻게 충족되는지, 교회재산은 신자들의 공유인지 총유인지 등이 중요한 쟁점이 된다고 한다. 판례의 변화와 최근의 다수의견이 어떠한지 등을 배우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한국의 개신교는 이미 다양한 학문영역에서 연구대상이 되어 왔다. 비서구사회에서 1세기만에 강력한 종교로 성장한 것, 세계최대의 대형교회들이 한국에 집결되어 있는 것, 유난히 많은 교단과 교파로 나뉘어진 것, 통일교를 비롯한 신흥종교들이 출현한 것, 불교 및 천주교와 더불어 종교다원주의가 자리잡은 것 등이 국내외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어온 주제다. 70, 80년대 민주화와 인권운동과 친화력을 보이던 개신교가 정치문화적 보수주의와 결합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최근 새로운 연구주제가 된다. 곳곳에서 빈발하는 교회분열이라는 현상도 공동체론이나 조직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셈이다.

발표를 들으면서 종교사회학을 전공한 교수였다가 현장 목회자가 되어 사역한 노치준 목사의 최근 저서가 생각났다. 그는 [평신도 시대, 평신도 교회] (동연, 2021)에서 ‘평신도 아마추어리즘’과 ‘교역자 프로페셔널리즘’을 한 축으로 하고, 교회공동체의 양극화를 다른 한 축으로 하여 한국교회의 변화상을 설명하려 했다. 그에 의하면 평신도가 교회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이 1980년대 이래 한국교회의 특성인데 평신도의 역량과 열정이 커지고 평신도 신학이 자리를 잡는 한편으로 교권과 전통에 의존한 교역자 권위는 점점 약화되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열정적 참여를 가능케 하지만 책임을 지지 않는 아마추어리즘의 한계와 보수적이고 성직주의에 근거한 교역자 프로페셔널리즘의 위기가 만나게 되었다고 본다. 역동성과 위험성의 동시 성장이 다양한 문제들의 출현배경에 있다고 그는 분석한다.

한편 조직규모의 관점에서 보면 양극화 현상이 뚜렷하다. 현재 한국의 교회는 100명 이하의 소형교회가 66.5%에 달하고 자립이 불가능한 50명 이하의 교회도 거의 50%에 육박한다. 이에 반해 1만명 이상이 모이는 23개 초대형교회의 신도가 전체 신자의 20%를 넘는다. 당연히 대형교회와 중형 교회, 소형교회가 갖는 문제의 양상이 매우 다르다. 재벌과 소규모 자영업자를 상법만으로 규율하기 어렵듯이 교회공동체라는 본질론적 개념만으로 불균등한 현실 개교회를 포괄하는 것은 매우 불충분하다. 교회공동체에 대한 신학적인 답과 법률적인 답이 있겠으나 조직사회학적으로 주목할 쟁점들도 민감하게 대응하는 노력이 절실해지고 있는 것이다.

노치준 목사는 자립이 어려운 소형교회 경우 앞으로 교회폐지, 합병을 비롯한 조직형태의 재편성이 불가피하리라고 본다. 이 과정에서 마을목회, 분교회 모델, 자비량 목회, 작은 교회운동 등이 고려될 수 있겠지만 충분한 대안일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반면 대형교회의 경우는 제도개혁과 함께 분립이 필요하다고 본다. 최근 일부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긴 하지만 그것이 대형교회의 또다른 확산모델로 변질될 우려도 없지 않다. 중간규모의 교회는 자립성과 공동체성을 공유할 수 있지만 다양한 변화에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거버넌스의 안정성이 확보되지 못해 내부의 갈등과 분열의 가능성이 상존할 수 있다. 신앙공동체의 바람직한 규모와 그것을 보장할 제도가 어떠해야 할지, 그 규범력을 사회법에 의존할지 자체적으로 정립할 수 있을지, 신자와 교역자의 역할을 어떻게 재편할지, 분립과 통합의 새로운 조직형성을 어떻게 제도화할지 등이 앞으로 불가피할 과제가 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