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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국가연합’ 구상

새 책을 출간했다. 포스텍 평화연구소의 후원을 받아 내가 책임연구자로 주관을 했고 박영호 박사, 김상준 교수, 전재성 교수가 함께 참여한 공동연구의 결과물이다. 오랫동안 생각해오던 남북관계의 새로운 틀을 모색하려 한 작업인데 ‘평화공존의 중간단계 구상’을 부제로 [한반도평화 신로드맵]이란 제목을 달게 되었다.

2018년 판문점과 평양에서 보였던 남북정상간 합의와 신뢰는 불과 한두해를 지속하지 못하고 예전의 단절상태로 되돌아갔다. 단순히 되돌아간 것에 그치지 않고 낙담과 좌절, 비방과 신뢰상실의 후유증이 매우 큰 전환이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국제적 공조가 뚜렷했던 이전에 비해 미중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이제 유엔 차원에서의 효율적인 대응이 가능할지조차 의심스러워졌다. 국내에서도 이번 대선에서 경험한 바와 같이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관심은 크게 줄어들었다.

이 연구에 참여한 사람들의 견해는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애매한 남북한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생각에 공감한다. ‘국가간 관계가 아닌 잠정적 특수관계’라는 규정과 민족내부관계라는 틀이 활용되어 왔고 지금도 그 논리가 남북관계의 근간을 이루고 있지만 이것은 21세기 남북관계를 총체적으로 규율하는 틀이 되기 어렵다. 그렇다고 손쉽게 한반도 두 국가론을 받아들이면서 두 개의 주권국가임을 공언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다.

필자들은 표현은 다르지만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두 국가성을 전제한 위에 책무성과 협약존중의 틀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공감한다. 이와 관련하여 남북관계 진전의 중간단계로 설정되어 있는 남북연합 구상이 그런 국제법적 원칙과 상호존중의 정신을 반영하기 어려움을 지적한다. 나는 분단에서 통일로 가는 과정으로 미래를 보는 관점에 근거한 이 모델이 70년의 역사를 거치면서 형성되어 온 두 주권체 사이의 모순적인 관계를 조율하기 어렵다고 보아 분단국가로서의 정체성과 서로 다른 분단국가간 관계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좀더 생각을 다듬어야 할 부분이 적지 않지만 새로운 사고와 혁신적인 대응이 불가피한 시대에 들어선 것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