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 보내준 매화 사진을 보자 나도 모르게 아! 소리가 났다. 시절의 하수상함에 휘둘려 봄이 온 것도 몰랐구나 싶었다. 지금부터라도 나무의 새잎 나는 소리, 잔디 색 변하는 모습, 풀꽃 피는 자리들을 유심히 살펴보리라 다짐한다. 매화 필 때 ‘以文會友’ 하자 약속한 ‘매암동인’ 제자들에게도 안부를 전해야겠다.
몇년 전부터 이맘때면 매화를 그렸다. 옛 문인화를 모사하기도 하고 직접 본 매화를 그리기도 했다. 작년에는 섬진강변의 화려한 매화 동네의 감흥을 표현해 보느라 적지 않은 화선지를 파지로 만들었다. 매화 그리기가 새 봄을 맞이하는 내 나름의 연례 의식이었던 셈인데 올해는 그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으니 세상사의 회오리가 내 정서의 영역까지 꽤나 영향을 미쳤던 모양이다.
문득 작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본 중국 작가 우웨스의 작품이 생각났다. 전통적인 문인화와는 다른 짙은 농묵의 묵매도가 인상적이었다. 그래, 올해는 이런 매화도를 그려보자는 욕심이 생겼다. 심기일전하여 먹을 갈고 굽은 등걸과 뻗은 가지를 짙은 먹으로 강하게 그렸다. 꽃이 무성해야 좋은 열매를 기대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많은 꽃잎도 그려 넣었다.
이백의 시 한 구절을 화제로 썼다. 寒雪梅中盡 春風柳上歸 (찬눈은 매화향기에 사라지고 봄바람이 버드나무 위로 돌아온다) 계절이 바뀌는 것을 노래한 시인데 세상사의 이치를 담은 글로 읽을 수도 있다. 한겨울 눈보라가 요란헤도 오는 봄을 막을 수 없듯이, 어지러운 나라 안팎의 상황도 결국은 사필귀정의 새 날로 이어지리라는 소망으로 읽어도 좋겠다. 매화향기 은은한 봄기운 속에서 힘든 시기를 견뎌낼 힘과 지혜를 얻을 일이다.
서울대에서 자연과학개론 강의로 명성을 떨치셨던 고 김희준 교수는 문학과 종교에 깊은 식견을 가진 과학자셨다. 나보다 몇 년 선배시지만 서울대에 같은 해에 부임했고 퇴임 후 광주과학기술원에 초빙받아 가르치게 된 인연도 겹친다. 잔잔한 목소리의 그의 강의는 천문학, 물리학, 화학, 생명공학의 지식은 물론이고 노자 도덕경과 성경의 세계관, 세익스피어의 영시 등으로 흥미롭고 풍성했다. 내가 뒤늦게 빅뱅 우주론으로부터 입자물리학과 주기율표에 관심을 갖게 된 데에는 그 분의 영향이 적지 않다.
폴 고갱의 그림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어디로 가는가’도 그의 강의에서 종종 언급되었다. 우주탄생으로부터 지구행성의 생명현상으로 이어지는 긴 진화과정을 탐구하는 과학자의 시선과, 남태평양의 원시자연 속에서 인간의 존재의미를 추구하려던 예술가의 문제의식이 맛닿아 있다고 했다. 보스턴 미술관에 소장된 이 작품은 고갱이 심리적 좌절상태로 생을 마감하기 전 마지막 열정을 불태운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어제 보스턴 미술관을 들러 이 작품 앞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호사를 누렸다. 크기나 구도, 색체와 함의 등에서 가히 고갱의 대표작이라 함 직하다.
오른편에 갓난 아이가 있고 왼편에는 늙은 노파가 그려져 있다. 한 가운데에는 건장한 인물이 우뚝 서서 과일 열매를 따고 있는데 선악과를 따는 아담을 연상케 한다. 왼쪽 뒷편에는 불상같은 신상이 그러져 있고 윗 구석에는 긴 제목을 불어로 써 놓았다. 생노병사의 인생사를 그렸다는 항간의 해석은 너무 평면적이어서 한참 미흡한데 작가는 어떤 마음을 이 작품에 담으려 했을까? 얼마전 고갱의 발자취를 따라 타이티 여행을 다녀오신 우한용 교수께서 이 작품을 언급하며 왜 웃음 띤 사람이 없는가란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과연 인물들은 하나같이 무표정하다. 생명의 탄생에 기뻐하는 얼굴도 늙었다고 괴로와하는 표정도 찾기 어렵다. 이집트 벽화의 인물같기도 하고 제주도 돌하루방 같기도 한 무심함이 푸른 색조와 맞물려 무거운 분위기를 더한다.
호모 사피엔스의 주요한 특징 하나가 안면근육의 미세한 발달과 섬세한 희로애락의 표정짓기라 한다. 그 비중은 현대문명에서 더욱 커져 인기를 위한 과장된 웃음과 울음이 도처에 넘쳐난다. 비주얼이 강조되는 미디어의 시대에 표정을 관리하고 조절하는 기술은 삶의 필수품이 되었다. 그럴수록 우리는 표정에 속고 겉모습의 노예가 된다. 그런데 왜 고갱은 표정을 저토록 무덤덤하게 그렸을까? 고갱이 타이티 수도 파페에테의 근대화된 모습에 실망했다는 사실과 서구 문명의 비인간성을 싫어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희로애락을 드러내는 것은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
그림의 가로 길이가 거의 4 미터에 달하는 이 작품의 양 옆에 고갱의 목제 조각 작품이 걸려있다. 왼쪽에는 ‘Be in Love and You will be Happy’라는 제목의 1889년 작품이, 오른쪽에는 1901년 작 ’Peace and War’라는 부조가 걸려 있다. 그러고 보니 세 작품의 제목들이 예사롭지 않다. ‘사랑과 행복’, ‘전쟁과 평화’,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 마치 2025년 혼돈의 시대를 사는 인류에게 던지는 문명적 화두같다. 하나같이 무표정한 인물모습과 투박하게 새겨진 작품의 제목은 그 질문을 가벼이 여기지 말라는 부탁인지 모르겠다. 별의 탄생에서 생명의 진화로 이어지는 과학의 역사를 노자의 ‘道可道 非常道’ 란 말과 연결시켜 설명하시던 김교수님 생각이 났다.
2박 3일간 로드 아일랜드 여행을 다녀왔다. 바닷가에서 잠시라도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처의 희망을 따라 로드 아일랜드 일대에서 전망이 좋은 숙소를 찾았다. 위릭, 뉴포트, 브리스톨 등을 둘러보다가 마침내 한 집을 빌렸다. 브리스톨 해변가에 위치한 작은 주택으로 사진으로 보고 선택한 곳인데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내부는 깔끔했고 거실의 전면이 통유리창으로 되어 탁트인데다 그 앞으로는 넓은 바다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여행을 매우 뜻깊게 해 준 것은 날씨였다. 보스턴을 출발할 당시만해도 눈발이 날리고 예보 상으로는 궂은 날씨가 예상되었다. 하지만 숙소에 도착한 직후 2시경부터 날씨는 활짝 개이고 파란 하늘과 햇살이 강렬했다. 거실에서 구름이 걷히고 그 사이로 파란 하늘과 붉은 태양이 나타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었다. 잠시 휴식한 후 반대편 해안으로 건너가 일몰을 보기로 했다. 역시 해변가에 위치한 비치 레스토랑은 음식보다도 분위기와 풍경이 일품이었다.
말을 타면 견마 잡히고 싶다고 했던 것처럼 일몰을 보는 호사를 누리고 나니 밤에 선명한 별자리를 보고 싶은 욕심이 솟아났다. 실제 이 정도면 총총한 밤하늘을 기대할 만 했다. 평소보다 훨씬 선명한 오리온, 북두칠성, 카시오페아 등을 만났지만 은하수를 보려던 꿈은 이루지 못했다. 도시의 불빛이 가까이 있는 지역에서 이것까지 바라다니, 지나친 기대였을 수도 있다. 그 아쉬움을 달래준 것은 아침의 일출 광경이었다. 이 일출을 여유있게 보겠다는 일념으로 새벽 5시에 집을 나서 던킨 도너츠와 커피를 사왔다. 도너츠의 맛을 잃게 만들 정도로 일출 모습은 장관이었다. 넓게 펼쳐진 수평선 너머로부터 붉은 기운이 펼쳐나가는 모습 앞에서 우리는 한동안 할 말을 잃고 바라만 보았다.
프로비던스를 둘러보고 한 한국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6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사장님 내외분과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부산에서 지내다가 미국으로 건너온지 23년이 넘었다니 아마도 IMF 직후 미국행을 결심했던 분들이 아닐까 싶었다. 서울에서 왔다는 말에 반가와하면서 최근 대통령의 계엄과 탄핵 사태로 걱정이 이만 저만 아니라고 했다. 트럼프 정부의 출범에 대해서는 미국의 백인들이 대체로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것 같다고 평가하면서 한국이 어려운 상황에 빠질 가능성을 우려했다. 이민을 왔지만 한국상황에 대한 관심은 결코 약해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마지막 날은 밤새 눈이 내려 또다른 바닷가 설경을 선사했다. 불과 2박 3일의 여행인데 일출, 일몰, 밤하늘, 설경을 모두 감상할 수 있었으니 큰 다행이었다. 보스턴으로 돌아오는 길에 샌드위치 시의 조그만 식당에서 점심을 했다. 지중해식 움식이 전문인 듯 했고 주문을 받는 젊은 여성도 그쪽 출신으로 보였다.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갑자기 표정과 어투가 달라졌다. ‘아 정말요? 너무나 가고 싶은 곳이에요. 내가 제일 좋아하고 보고싶은 곳입니다’ 라고 했다. 한국의 위상, 문화적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실감하는 기회였다. 이들에게는 계엄과 탄핵이라는 정치적 격랑은 관심 바깥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믿기 어려운 이중적 상황이 계속될 경우 한국을 보는 대중적 인식에도 영향이 없을 수 없을 것이다. 안타까움을 또 한번 느끼며 돌아왔다.
1월 30일 오후 하바드대에서 열린 “대통령 권력과 면책특권 – 한국과 미국의 비교”라는 제목의 콜로키움에 참석했다. 하바드대 한국학 연구소가 주최하고 케네디스쿨의 ‘민주적 거버넌스와 혁신센터’ 및 로스쿨의 ‘동아시아법 연구소’가 공동후원했다. 콜로키움은 한국학센터 소장인 하크니스 교수 사회 하에 노아 펠트만 (Harvard Law School), 토마스 리 (Fordham Law School), 홍은기 (NYU) 세 분의 발제와 이어진 토론으로 진행되었다. 꽤 많은 청중들이 모여 경청했고 김구 재단의 후원으로 행사 후 리셉션도 준비되었지만 주제가 주제인만큼 무거운 분위기였다.
한국과 미국의 비교를 표방했지만 한국 상황에 초점이 맞추어진 행사였다. 한국학연구소 주관 행사이기도 하고 이제 막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미국의 상황과 현직 대통령이 구속되고 탄핵이 진행 중인 한국의 상황이 크게 다른 탓도 있을 터이다. NYU에 방문학자로 와 있는 홍은기 판사는 작년 12월 3일 계엄선포와 해제, 뒤이은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 과정을 정리하고 각 단계에서 중요한 법적 쟁점들을 발표했다. 토마스 리 교수는 대통령의 특별권한과 탄핵절차, 면책특권에 관하여 미국과 한국의 법체계를 비교했다. 노아 펠트만 교수는 두 발제를 아우르면서 민주주의 및 법사회학적 맥락에서 고려할 쟁점들을 포괄적으로 언급했다. 모두 시의적절하고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 주었다.
한국은 대통령의 계엄권한이 헌법에 명시적으로 규정되어 있는데 비해 미국에는 그렇지 않다는 차이점이 우선 부각되었다. 물론 미국에도 대통령이 유사한 행위를 할 수 있는 일부 조항이 있고 실제 그런 사례들이 발견되기도 하지만 부분적이고 일시적인 조치에 한정된다. 반면 한국에서는 계엄이 거의 모든 영역을 통제할 수 있는 포괄적인 비상조치이다. 실제로 한국의 헌정사에서 중요한 정치변동은 대부분 계엄행위를 동반하면서 사회전반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87년 민주주의의 제도화가 공고해지고 평화로운 권력교체가 일상화되어 더이상 계엄은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암묵적 평가가 공유되었다. 최근 한국의 계엄선포는 그런 점에서 이곳 학자들에게도 큰 충격이자 놀라움의 대상이 된 것처럼 보인다.
대통령의 비상계엄권에 대한 한미간의 차이가 어디서 유래했는가는 법사회학이나 사회사연구의 맥락에서 흥미있는 주제겠지만 이 자리에서 깊이 논의될 여유는 없었다. 다만 토마스 리 교수는 외침에 대한 염려가 거의 없는 미국에 비해 심한 이념갈등과 전쟁을 거쳐야 했던 한국의 국가형성과정의 특수함을 주목했는데 타당성 있는 견해다. 물론 그런 국가형성기를 지나온지 80년이 넘고 상당한 민주화, 산업화를 성취한 21세기에도 여전히 그 초기조건이 중요하게 작용하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토마스 리 교수는 이제 한국이 초기의 ‘전시상태’라는 위기의식으로부터 벗어날 때가 되었다고 말했는데 공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듯 하다. 하지만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험도를 미국과 같은 차원에서 보기는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이 점에서 ‘예외상태’ (state of exception) 는 법철학적 논의에 그치지 않고 현실정치의 주요 쟁점으로 부각된다. 예외상태란 정상적인 법치 시스템으로 대응할 수 없는 총체적 위기로 인해 특별한 정치군사적 권한행사가 필요한 순간을 의미한다. 펠트만 교수는 계엄이나 탄핵 등이 모두 예외상태라는 쟁점과 관련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칼 슈미트의 정치신학에서 중요하게 부각된 이 개념은 독일에서 나찌즘의 철학적 기초가 되었기에 오늘날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비판적으로 취급되는 사안이다. 민주주의가 일상화된 국가에서는 생각할 필요가 없는 화두일수도 있다. 하지만 헌법상 규정된 계엄의 권한은 언제나 이런 예외상태를 전제로 하고 실제로 그동안의 계엄사례도 그런 명분을 내걸었다. 계엄선포가 종종 독재권력의 권한강화 수단으로 오용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예외상태’라는 규정의 애매함과 무관치 않다.
합법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의 직을 박탈해야 하는 상황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탄핵도 일종의 예외상태에 해당한다. 계엄과 탄핵이 동시진행되는 현재의 한국은 예외상태와 관련한 두 사안이 동시에 나타난 사례라 할 것이다. 펠트만 교수는 민주주의 체제의 탄력성과 관련하여 사회적 불만을 법적 체계가 얼마나 유연하게 수용하고 해결하는가, 그 과정에서 군사력이 적절히 통제되는가가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최근 한국에서 헌법적 절차가 잘 지켜지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력과 건강함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런 평가가 다행스러운 것은 분명하지만 뜬금없이 벌어진 한국의 현 계엄과 탄핵 사태가 참담한 비극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법학적 차원에서의 검토가 주를 이룬 심포지엄이서 좀더 포괄적인 쟁점들은 남은 숙제로 미루어졌다. 일반 시민들 내부에서 점증하고 있는 대립과 균열을 민주주의 체제가 어떻게 수렴하고 개선해갈 수 있는지도 잠시 언급되었을 뿐이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점점 더 계층적, 이념적, 문화적, 정서적 분열이 심화되고 집단간의 혐오와 비난이 확대되는 상황을 보고 있다. 민주주의가 소극적인 자유주의나 다원주의를 넘어 모든 구성원을 보호하고 바람직한 정치공동체를 구축하는 핵심 원리가 되기 위해 어떤 조건들이 필요할지 좀더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유럽에서도 극우세력이 부상하고 혐오문화가 힘을 얻으며 포퓰리즘이 대두하는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민주주의의 지속가능성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
대통령의 면책특권에 관한 논의도 부분적으로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2020년 당시 의회난입사태로 구속되어 처벌받은 많은 사람들에 대한 사면이 이루어져 여러 논란이 제기되었다. 그런가하면 개인적인 여러 불법과 부적절한 처신에 대한 형사 민사상의 소추들이 대통령 당선과 취임 이후 흐지부지되는 모습이어서 법치와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사람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탄핵과 형사소추가 동시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대통령이라는 헌법적 지위를 특별하게 보장해야 하는 이유와 대통령을 초법적 지위에 위치시켜서는 안된다는 주장 사이의 간극도 생각보다 크다. 리더십의 법적 차원과 정치적 차원, 도덕적 차원이 서로 맞물리는 지점이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사안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정치적인 사안들이 터져나오는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한 논의가 좀더 있었더라면 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법적 측면을 넘어서 사회학적, 정치학적, 문화적 변수들과 자국중심주의 시대조류에 대해서도 궁금한 점들이 적지 않았다. 걱정스럽고 우려스러운 사안을 중심으로 한국과 미국이 함께 논의되는 것이 씁쓸하기도 했다. 하지만 법의 지배라는 약속에 대한 합의가 민주주의 퇴행을 막을 수 있는 일차적인 조건임을 확인한 중요한 기회였다. 인공지능의 충격과 기후위기로 전지구적으로 문명적 위기를 겪고 있는 중이다. 불안함과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권위주의의 부상과 비상대권에 관한 요구가 터져나올 가능성을 민주주의 체제는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 큰 숙제가 아닐 수 없다.
보스턴 일대에 폭설이 내리고 한파가 몰아친 1월 20일 오전,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을 지켜보았다. 화면에 비친 국회의사당 광경이 마치 중세시대 대관식을 연상케 했다. 남의 나라 일인데 취임사 메시지를 긴장감을 갖고 귀기울이게 된 것은 트럼프의 귀환이 전세계는 물론이고 계엄과 탄핵으로 불확실성이 커진 한국의 미래에 더없이 큰 변수가 될 것이 분명한 까닭이겠다.
취임사는 전반적으로 미국 국내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자국민을 향한 메시지가 전체를 지배했고 미국의 국익을 최우선으로 할 것이며 미국은 다시 위대해질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이 가득했다. 국제문제는 그다지 많이 언급되지 않았지만 미국 국익 취우선의 기조가 확고한 만큼이나 향후 여러 측면에서 적지 않은 충격이 예상된다.
트럼프의 현실진단이 일차적으로 내 주의를 끌었다. 트럼프는 현재의 미국이 쇠퇴와 위기, 불신의 늪에 빠져 있고 재난, 범죄, 의료,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시민의 안전과 행복을 지켜주지 못하는 국가 실패의 상황에 놓여 있다고 주장했다. 수많은 불법이주자들과 그로 인한 범죄의 확대, 이들을 통제하지 못하고 오히려 비호하는 공권력의 권위하락이 그 증거라는 것이다. 취임 직후 멕시코 국경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불법이주자들을 추방하며 법이 이들을 보호하는데 이용되지 못하도록 할 것을 분명히 했다. 위대한 미국은 국가의 힘이 다시 회복되는 것에서 시작되리라는 생각이 전해져 오는 듯 했다.
트럼프의 독특한 시각은 이런 정부실패의 배후에 잘못된 이념이 자리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젠더와 인종, 환경 등과 관련된 진보주의, 다원주의, PC 주의가이 미국의 국익을 훼손하고 미국 사회를 비정상적으로 만들었다고 본다. ‘급진적이고 부패한 기득권층’이 법과 권력을 악용하고 시민의 자유와 선택을 가로막았다고 비판하면서 상식의 혁명을 강조했다. 앞으로 공식적으로 남성과 여성만 존재하게 될 것이라고 선언한데서 드러나듯 그동안의 성정체성과 관련한 페미니즘과 진보적 사회의식에 대해 강력한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2.0 시대의 경제정책과 관련해서는 미국이 석유기반 제조업 강국이 될 것을 강조했다. 동시에 글로벌 분업보다 미국 내에서 중요한 산업이 가동되도록 주요 산업정책이 추진될 것임을 강조했다. 전기자동차 의무제도를 철폐하고 석유시추를 확대하며 전통적인 자동차 산업을 회복시킬 것임을 약속했다. 탄소감축이나 기후협약, 신재생에너지 중심의 정책으로부터 탈피할 것이 확실하고 기업경영에서 다양성이나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DEI 나 ESG 원칙이 약화될 것도 분명해 보인다. 관세 문제는 대외수입청을 신설하겠다는 구상으로만 언급되었는데 외국으로부터 거두어들일 재원을 극대화하겠다는 정책기조가 만만치 않을 후폭풍을 예감케 한다.
전쟁과 갈등이 커지는 국제정세와 관련하여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강력한 군사적 위상과 함께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미국이 세계최강의 군사력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전투능력을 극대화하는데 장애를 초래한 군대 내의 잘못된 이념화와 정책들을 폐지할 것을 강조했다. 또한 파나마운하가 중국의 영향권 아래 들어갔다고 주장하면서 그것을 되찾을 것을 공언했다. 중국이나 러시아, 이란 등에 대한 직접적 비난은 없고 오히려 자신은 평화주의자이며 중동의 휴전을 환영한다는 메시지를 전했지만 취임식 직후 파리 기후협약, WHO 등으로부터의 탈퇴를 공식화함으로써 다자주의 책무에 비판적인 입장을 분명히 했다.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입장에서 지역별 외교정책이 나타날 것이 예상된다.
취임식을 보면서 세계가 강한 리더, 카리스마적 권위를 요구하는 시대로 옮겨가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불편했다. 자유민주주의의 본거지라 할 미국에서 저토록 강력한 대통령이 출현하다니 내겐 여전히 미스테리다. 이곳 보스턴에서 만난 리버럴한 한 지인이 지나치게 급진적인 워키즘 (wokeism)의 폐해를 지적하는 것을 들었다. 직장을 다니고 자녀를 키우면서 트럼프의 메시지에 점점 더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말에서 일말의 분위기를 느낄 수는 있었다. 경제적 양극화, 실업, 인종문제 등 구조적인 이유들이 있겠지만 기존의 리버럴리즘에 내재된 한계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 아닌가 싶다.
한 세기 전 대중의 불안은 공산주의와 파시즘의 온상이 되었다. 오늘도 보호받지 못하는 다수의 불만은 혐오감정과 포퓰리즘을 확대시키는 바탕이 된다. 첨단의 인공지능과 해묵은 생존경쟁이 공존하는 유동적인 21세기에 공동체의 절실한 문제해결과 인간성 회복을 함께 해낼 사상적 지향은 무엇일까? 미국을 보면서 떠올린 생각들이 다시 우리의 문제로 되돌아온다. 지금 한국사회가 몸살을 앓고 있는 격동의 갈등은 이런 시대적 조류와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트럼프 2.0 시대의 개막은 정치경제적인 새 시대가 되는데 그치지 않고 지성사와 사상사 차원에서도 새로운 과제에 직면하게 되는 대전환의 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전시관에서 ‘수묵별미’ 근대 한중서화전을 관람했다. 한중수교 30주년을 기념하여 준비한 기획전인데 코로나 상황으로 연기되다가 마침내 성사된 것이라 한다. 두 나라를 대표하는 국립미술관이 공동으로 마련한 최초의 전시라는 설명에 무색하지 않게 작품의 질과 양 모두 좋았다. 두 나라의 수묵을 ‘別美’로 표현한 것이 흥미롭다. 이 분야에 식견이 높은 이주현 교수 제안으로 김현택 교수와 함께 관람했는데 이런 고퀄리티 문화를 65세가 넘었다는 이유만으로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는게 감사하다 못해 이래도 되는가 미안한 마음조차 들었다.
중국측 작품은 작가별로 또 시기별로 다양했다. 전통적인 수묵화의 흐름을 잇는 작품도 있지만 새로운 형식으로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도 있다. 전체적으로 먹과 붓, 화선지의 질감은 크게 다르지 않았고 강렬한 붓터치와 섬세한 선으로 수묵의 멋을 제대로 느끼게 해 준 수작들이었다. 우창숴는 전통과 현대를 잇는 중국 근대 미술사를 대표하는 화가라 하는데 그의 1920년 작품은 등나무를 어지러울 정도로 자유롭게 그렸음에도 전체 구도와 나뭇잎의 배치가 탁월하고 이를 ‘구슬 빛’으로 표현한 제목도 신선하다. 이 그림이 전시포스터를 장식하고 있는 걸 보면 이 작가가 중국 화단의 대표적 위상을 인정받고 있다는 뜻이겠다. 장다첸 역시 대표적인 중국의 작가로 유명한데 그의 1944년 작 ‘시구를 찾는 그림’에서 전통적인 동양화에서 자주 접하는 소나무와 바위를 배치한 구도가 익숙하면서도 아름답다.
수묵화의 양식 속에 시대상을 담은 작품들도 더러 있었다. 문화혁명를 겪던 시기의 작품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대신 개혁개방 이후의 변화를 반영하면서 여전히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고수한 작품들은 몇 눈에 띠었다. 잘사는 중국, 건강한 인민생활을 표방한 선전화 형태 작품으로 북한의 화풍과도 유사하고 한때 한국 민중화가들이 그린 그림과도 닮았다. 하지만 전형적인 선전화로부터 탈피하여 새로운 형식을 찾는 모습이 훨씬 뚜렷하다. 중국의 현대화를 상징하는 홍콩 옆 선전의 고층빌딩군을 ‘대지의 새로운 현’으로 묘사한 황안런의 작품과 논덮인 하얼빈의 풍경을 그린 자오룽의 작품은 서로 다른 느낌이지만 고층빌딩과 도시풍경을 통해 시대상을 반영한다는 공통점이 확인된다.
그림에 담긴 메시지나 내용 모두 독특하여 눈길을 끈 것은 랴오빙슝의 작품 ‘자조’다. 1979년 작품이니 문화혁명이 끝나고 개혁개방이 막 시작되던 시점의 그림인데 억압된 지식인의 자조적인 자화상이 리얼하다. 항아리는 깨어져 자유롭게 된 상황이지만 스스로의 몸과 의식은 여전히 옥죄이고 부자유한 상황을 만화적인 분위기 속에 담았다. 4흉이 실각한 후 자신 및 자신과 유사한 부류들을 조롱한다는 제사가 그림만큼이나 직설적이다. 장젠의 ‘이브닝드레스’는 수묵형식을 빌어 유럽 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는 르네상스 시대의 인물화를 보여주는데 다소 독특한 작품으로 2002년의 시대적 분위기가 담긴 것이 아닌가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어슬프게나마 매화도를 여러번 그려보았던 탓인지 우웨스의 ‘성긴 그림자와 그윽한 향기’ 작품이 좋았다. 2023년 최근 작품인데 전통적인 매화도 형식을 취하면서도 그 제목만큼이나 새로운 멋이 느껴졌다. 올 봄에는 이 작품을 저본 삼아 내 나름의 매화도를 그려보고 싶은 충동을 느낄 정도였다. 장리천의 ‘포도’ (1986)와 우웨이산의 ‘선운묘묘사기봉’ (2024), 류강의 인자요산 (2017), 류윈취안의 ‘넓은 마음으로 바로본 세계’ (2018) 등도 내 눈길을 사로잡은 작품들이다. 쉬베이홍의 ‘천마’ (1942), 황츄위안의 ‘정강산도’ (1977) 등도 전통적인 중국서화의 맥을 잇는 작품들로 다시 보게 만든 작품들이다.
한국 측도 대표적인 작가들을 잘 선별해서 양국의 균형이 잘 나타났다. 붓과 먹, 화선지와 농담을 중시하는 동양화, 수묵화의 맥을 두 나라가 공유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었다. 고희동, 김기창, 김은호, 노수현, 박노수, 박대성, 박래현, 박생광, 변관식, 서세옥, 송수남, 안중식, 오태학, 이상범, 이응노, 이종상, 이철량, 장우성, 천경자, 허건, 허백련, 허진 등 가히 대표급 작가들이 망라되어 있다. 제목 그대로 한중 두 나라가 수묵이라는 공통의 양식을 공유하면서도 각자의 개성과 미학이 구별되는 ‘수묵별미’의 모습이 느껴지는 듯 했다.
나의 비전문가적 시선에서 볼 때 1970년대까지는 한국의 수묵화가 중국보다 더 전통적인 면모를 잘 보존했을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다. 중국의 20세기 격동이 미술양식에 미친 영향이 매우 컸던 탓일지 모른다. 그에 비해 최근으로 올수록 한국 작가들은 수묵형식이지만 보다 추상적인 구도와 내용을 추구하려는 특징이 있어 보인다. 반면 중국은 다시 자신의 전통을 찾으려는 노력을 더 강화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21세기 두 나라 수묵의 ‘별미’가 어떻게 진행될지, 여기에 일본의 수묵까지 더해본다면 그 삼자간의 같음과 다름이 어떠할지 궁금해진다.
보스턴 – 1989년 하바드 엔칭연구소의 방문학자로 와서 1년 8개월을 살면서 박사논문의 초고를 만든 곳이며 내 평생의 학문적 자산이 된 소중한 경험을 얻은 곳이다. 그런가하면 아들이 이곳에서 태어난 덕분에 엔칭 관계자 및 여러 나라의 학자들로부터 큰 축하를 받은 곳이기도 하다. 아들일지 딸일지를 놓고 20여명 학자들이 1달러씩 모아 베이비 샤워를 해준 멋진 추억이 앨범과 뇌리에 남아있다. 갓난 아기를 낳고 키우느라 Womens and Brigham Hospital 과 Childrens Hospital 을 오갔고 딸을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데려다 주느라 분주했던 기억도 새롭다.
이곳의 학자들을 만나 내 좁은 시야를 넓히고 새로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두고두고 내 생애의 자산이 되었다. 카터 에커트, 에드워드 베이커, 낸시 에이블먼, 존 리, 김선주 교수와의 이런 저런 인연도 이곳을 통해 맺어졌다. 낸시는 내가 이곳에 올 수 있도록 추천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을 뿐 아니라 당시 하바드 의대 교수로 재직하시던 그 부모님 댁으로 우리 가족을 초청해 주었다. 오랜동안 이 분들과 교류했지만 내가 도움을 준 것보다 그들로부터 받은 것이 훨씬 많다. 특히 고마운 에커트와 낸시 두 분이 모두 타계하셔서 감사함을 좀더 자주 표현하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이곳과의 인연은 둘째가 유학을 오면서 새롭게 이어졌다. 약학을 전공한 둘째는 식약청에 잠시 재직하다가 하바드 보건대학원으로 유학을 와 약물역학 epidemiology 과 의료통계 medical statistics 를 함께 전공했다. 재학 중에 몇 번 오가면서 격려도 했지만 그 모든 학업과정은 결국 혼자의 몫이었는데 잘 감당하고 견뎌주었다. 2017년 딸이 박사학위를 받는 자리에 부모로서 하바드대 졸업식에 참석하는 영광을 누렸다. 가문의 영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딸은 이곳에서 멋진 신랑감을 찾아서 결혼을 했다. 둘이 잠시 한국으로 나와 작은 결혼식만 마치고 다시 돌아와 공부를 마무리하고 학위 취득 후 취업을 했다. 사위도 이곳에 직장을 갖고 있어서 둘 다 보스턴에 정착하게 되었다. 첫 손녀가 태어나던 2018년에 다시 하바드 엔청연구소 방문학자로 와서 8개월을 지냈고 둘째 손녀가 태어날 때도 짧은 시간 와서 머물렀다. 이제 두 손녀가 자라 학교와 유치원을 다니게 되었으니 이곳과의 인연이 앞으로도 상당기간 지속될 것 같다. 낯익은 찰스 강변을 지나면서 내 인생사 속에 깊이 자리한 하바드와 보스턴이 새삼 와닿아 마음이 뭉클하다.
딸 내외가 마련한 벨몬트의 집을 들어서면서 더욱 감사한 마음이 벅차오른다. 재택근무로 오전 회의를 막 마친 딸과 반가운 포옹을 했다. 한국에서의 대학공부는 물론이고 미국 유학시절까지 부모의 경제적 뒷바라지가 필요없을 정도로 장학금으로 전과정을 마친 자랑스런 딸이다. 먼 외국에서 결혼할 상대자를 만나고 좋은 직장에 취업하며 두 딸을 키우고 마침내 좋은 지역에 좋은 거처를 마련하는 과정도 전적으로 스스로 해결해온 대견한 아이다. 그 독립성이 고마우면서도 힘들고 외로운 때가 어찌 없었을까 싶어 짠한 마음이 솟구친다.
미국도 아이들 교육여건과 안전정도에 따라 주택지 선호도가 크게 달라진다. 벨몬트는 내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부터 이곳 주민들도 선호하는 좋은 지역이었다. 집은 조용한 주택가에 위치한 3층 건물로 4 룸 4 화장실 구조다. 1층에 거실과 주방과 응접실이 있고 2층에 침실 2개와 놀이방, 그리고 재택근무용 작업실이 있다. 3층에는 방문자들이 머물 수 있도록 침대와 소파와 여유공간이 있다. 뒤로는 호수가 보이고 각종 물건들을 넣어둘 꽤 넓은 지하공간이 별도로 있다. 뒷마당은 바비큐 파티가 가능한 데크와 작은 창고가 있고 토끼들이 오가는 아담한 잔디밭이 있으며 주위로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둘러서 있다. 창이 많은데다 내부 공간이 모두 흰색 톤으로 되어 있어 종일 햇살이 쏟아들어와 밝고 아늑한 느낌이다.
저녁에 손녀들과 반갑게 만났다. 하루가 멀다하고 화상으로 통화하고 사진을 보던 아이들이었지만 직접 만나니 더욱 새롭다. 둘째 손녀가 먼저 집으로 와서 반갑게 만났다. 말도 배우기 전에 잠시 함께 있었을 뿐이었는데 잠시 어색한 듯 머뭇거리다가 곧 2층으로 뛰어 올라가 공주옷을 갈아입고 내려와 애교를 부렸다. 조금 후 큰 손녀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이젠 많이 커서 제법 학생티가 났다. 첫째도 곧장 2층으로 올라가더니 팅크벨 요정의 옷으로 갈아입고 내려와 거실을 뛰어다니며 인사를 했다. 두 명의 예쁜 천사를 보는 듯 황홀한 기쁨이었다.
언젠가 딸은 아이들이 너무 여성스러움을 강요받지 않게 키우고 싶다고 했었다. 그런데 두 손녀는 하나같이 공주옷을 좋아하고 화장품 장난감을 좋아한다. 가르쳐주지 않아도 저런 모습은 타고나는 모양이라고 이야기하며 웃었다. 다들 자기 재능과 개성을 갖고 태어나는게 아닌가 싶다. 저 아이들이 평생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또 키우느라 애쓰는 딸과 사위가 힘들지 않고 기쁨 가운데 미국생활을 잘 해가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2025년 1월 13일 아침을 두 번 맞았다. 인천공항에서 아침 해를 보면서 떠나 13시간을 날아 왔는데 보스턴 공항에서 또다시 13일 아침 해를 마주한 것이다. 탑승한 후 한 숨 잤을 뿐인데 태평양 건너 지구 반대편에 나를 데려다주는 비행기라는 문명 모빌리티에 또한번 놀란다. 동시에 날짜와 시각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새삼 깨닫는다.
1989년 내가 해외생활을 처음 시작한 곳이 이곳 보스턴이다. 하바드 엔칭연구소에 있는 동안 탈냉전 선언과 독일통일 소식을 접했고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 학자들의 우려를 가까이서 보았다. 내 학문적 자산의 한부분이 형성되고 좋은 연구자들과의 인연이 맺어진 곳이기도 하다. 한달 전 타계한 카터 에커트 교수는 잠시 자신의 아파트에 내가 기거할 수 있게 해 줄 정도로 여러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곳 마운트 어번 묘지에 잠들어 있는 낸시 교수는 한국의 세대와 계층, 사회운동 연구에 큰 성과를 낸 탁월한 학자이면서도 늘 나를 지적 멘토처럼 여기며 한국학계를 존중한 분이셨다.
이번은 이전까지와는 달라 더이상 학술적 방문이 아니다. 대학이나 연구소를 찾을 계획도 없고 특별히 지적 대화를 나눌 상대나 계기를 애써 마련하지도 않았다. 내 여행 가방은 손녀들에게 줄 한글동화책과 과자봉지로 가득 채워졌고 대부분의 시간을 딸과 손녀를 위해 쓸 마음의 각오도 충분하다. 손녀가 다닐 초등학교와 동네 도서관을 함께 가거나 좋아하는 옷이나 장난감을 사주면서 인기를 얻는데 최대의 노력을 할 생각이다. 딸과 사위가 근무하는 회사 상황과 출석하는 교회공동체의 이모저모를 이야기하면서 과거에 나누지 못한 정을 되살리는데 더 많은 시간을 쏟으려 한다.
한국을 떠난지 겨우 이틀이 지났을 뿐인데 한국뉴스로부터 멀어진다는 느낌이 확연하다. 한편의 궁금함과 또한편의 회피심리가 뒤섞여 마음은 염려와 무심의 이상한 조합상태다. 주요 현안들이 어떻게 전개될지 초조한 바 없을 리 없지만 그렇다고 애써 뉴스를 뒤지고 조바심을 내지는 않을 작정이다. 이런 저런 주장들이 내 정서와 의식을 마냥 흔들지 못하도록 현실을 긴 호흡으로 직시하고 냉정한 거리감을 키우는 기회로 삼아볼까 한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을 코앞에 둔 시점이라 이곳에서도 뉴스에서 마냥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현 한국상황을 트럼프 신정부가 어떻게 평가할지 어떤 요구를 내놓을지, 미국의 새 정책기조에 한국은 얼마나 지혜롭고 효율적인 대응책을 마련할지 따라올 걱정도 한두가지가 아니다. 정파적 이익투쟁과 내부의 정치동학을 넘어 불확실성이 커지는 국제환경에 대응할 집단적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때다. 위기 속에서 미래의 복합 충격을 감당할 역량이 성장하는, 대전환의 역설적 계기가 마련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첫째로 종교는 점차 영향력이 약화되리라는 세속화 명제는 그대로 수용되기 어렵다. 현재 한국은 세계 3대 종교인 불교, 기독교, 천주교가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비중으로 자리하고 있을 뿐 아니라 각종 종교와 신흥종교를 포함하면 인구의 상당수가 종교를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엘리트층이 다양한 종교적 자원을 공유하고 종교적 네트워크로 이어지고 있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
둘째로 종교는 공적 영역에서는 퇴장하고 사적 영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시각에도 수정이 필요하다. 대통령 부부를 비롯하여 총리, 국회의원, 권력에 줄서려는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사람이 주술적 예지력을 가졌다는 자칭 도사나 인사들의 영향력 하에 있었다는 사실은 부끄럽고도 놀랍다. 군의 최고지도자였던 예비역 장성은 스스로 점집을 열었을 정도다. 드러나지 않은 경제와 문화 영역에도 종교가 권력과 금력을 동원하여 개입하는 정도가 상당하리라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셋째로 종교와 주술을 구분하지 않고 ‘믿는 행위’ 일반을 종교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해석도 수정되어야 한다. 제도종교를 중시하는 태도를 서구중심적이라고 비판하고 민간신앙과 주술신앙을 종교의 반열에 함께 올려놓는 것이 올바른 시각이라는 다원주의적 견해가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양자의 질적 차이를 무시하는 것은 큰 오류를 범할 수 있음을 오늘 한국사회가 보여준다. 주술적 예언을 믿고 그것이 공공영역을 왜곡시키는 현실에서 주술과 사술의 해악을 가려내는 지적 엄밀성이 필수적이다. 세속적 가치와 맞설 종교적 세계관의 존재여부로 양자를 구분하려 했던 베버의 관점을 되살려야 할 때다.
카터 에커트 교수님 부음을 뒤늦게 접했다. 그의 온화한 웃음과 다정한 모습이 떠오른다. 4년 전 하바드대 패컬티 하우스에서 함께 점심을 하며 반가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건강이 그동안 많이 나빠지셨다는 후문이다. 이제 뵐 수 없게 되었다니 안타깝고 황망하다.
에커트 교수님과의 인연은 1989년 내가 엔칭펠로우로 간 후부터 맺어졌다. 그때 에커트 교수님은 UW에서 학위를 받고 막 하바드에 합류한 젊은 교수였다. 아직 테뉴어를 받지 않았지만 한국 근현대사를 책임진 자리인데다 제자와 후배를 잘 챙기고 폭넓은 식견의 소유자여서 많은 사람들이 따랐다. 당시 하바드의 한국학 연구는 족보연구의 대가인 와그너 교수가 대표하고 있었기에 근현대사보다는 조선시대사가 더 중심을 이루었던 것 같다. 엔칭연구소 부소장인 베이커 씨도 한국관련 연구자들에겐 큰 힘이 되어 주셨다.
나는 체류기간이 좀더 연장되어 가족들이 먼지 귀국하고 혼자 6개월을 더 머무르게 되었다. 새로운 집을 찾지 못해 애를 먹었는데 에커트 교수께서 여름기간 해외에 가 계실 예정이라며 자신의 집을 쓰도록 해 주셨다. 덕분에 무더운 여름 두 달을 켐브리지의 멋진 아파트에서 기거하는 행운을 누렸다. 집을 깔끔하게 관리하시던 분이셨기에 여간 큰 호의가 아닐 수 없었다.
90년대에는 한국학과 관련한 국내외의 시각차가 현저해지던 때다. 사람으로 말하자면 청소년기를 지나는 때와 비슷하다할까. 주관적인 고집도 형성되지만 아직 어른으로 취급받지 못하는 과도기… 당시 나는 청소년 같은 기개로 해외의 한국학자들을 다소 낮추어 보았다. 그건 80년대의 시대정신을 공유했던 많은 사람들과 다를바 없었다. 하지만 에커트 교수는 그런 태도들을 별로 개의치 않으셨을 뿐 아니라 종종 경청하기도 했다.
이후 에커트 교수는 자신의 박사논문을 수정해서 Offsprings of the Empire 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은 후일 [제국의 후예]라는 제목으로 번역본이 나왔는데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다. 민중주의 시관이 널리 확대되면서 민족주의적인 자의식도 강한 때였던 까닭에 삼양사라는 기업사를 통해 한국 근대의 식민지적 기원을 밝힌 저작에 호감을 갖기가 어려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서평이나 학술적 토론보다 막연한 거부감과 선입견이 작용한 경우가 훨씬 많았다.
신기욱과 로빈슨이 편집한 Colonial Modernity in Korea 책자에 에커트 교수가 쓴 “Hegel’s Ghost” 라는 챕터는 에커트 교수에 대한 한국학자들의 비판을 더욱 가중시켰다. 나 역시 이 글에 대해선 비판적인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돌이켜 생각하면 한국연구자들이 스스로의 세계관과 학문적 패러다임을 성찰적으로 사고하기 어려웠던 지적 지체의 소산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몇 년 후 나 스스로 한국사회사연구가 민족주의적 지향을 넘어서야 한다는 주장을 하게 되고 나아가 근대성과 식민성의 착종을 주요한 연구쟁점으로 제기하게 되었음을 에커트 교수가 아셨을까…
이 년 전 낸시가 저 세상으로 갔는데 이제 에커트 교수가 별세하셔서 내가 하바드에서 교류하고 인연을 맺었던 두 분의 소중한 분들을 더이상 볼 수가 없다. 안타깝지만 누구라도 피할 수 없는 길… 명복을 빌며 지난 후의에 깊은 감사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