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일대에 폭설이 내리고 한파가 몰아친 1월 20일 오전,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을 지켜보았다. 화면에 비친 국회의사당 광경이 마치 중세시대 대관식을 연상케 했다. 남의 나라 일인데 취임사 메시지를 긴장감을 갖고 귀기울이게 된 것은 트럼프의 귀환이 전세계는 물론이고 계엄과 탄핵으로 불확실성이 커진 한국의 미래에 더없이 큰 변수가 될 것이 분명한 까닭이겠다.
취임사는 전반적으로 미국 국내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자국민을 향한 메시지가 전체를 지배했고 미국의 국익을 최우선으로 할 것이며 미국은 다시 위대해질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이 가득했다. 국제문제는 그다지 많이 언급되지 않았지만 미국 국익 취우선의 기조가 확고한 만큼이나 향후 여러 측면에서 적지 않은 충격이 예상된다.
트럼프의 현실진단이 일차적으로 내 주의를 끌었다. 트럼프는 현재의 미국이 쇠퇴와 위기, 불신의 늪에 빠져 있고 재난, 범죄, 의료,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시민의 안전과 행복을 지켜주지 못하는 국가 실패의 상황에 놓여 있다고 주장했다. 수많은 불법이주자들과 그로 인한 범죄의 확대, 이들을 통제하지 못하고 오히려 비호하는 공권력의 권위하락이 그 증거라는 것이다. 취임 직후 멕시코 국경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불법이주자들을 추방하며 법이 이들을 보호하는데 이용되지 못하도록 할 것을 분명히 했다. 위대한 미국은 국가의 힘이 다시 회복되는 것에서 시작되리라는 생각이 전해져 오는 듯 했다.
트럼프의 독특한 시각은 이런 정부실패의 배후에 잘못된 이념이 자리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젠더와 인종, 환경 등과 관련된 진보주의, 다원주의, PC 주의가이 미국의 국익을 훼손하고 미국 사회를 비정상적으로 만들었다고 본다. ‘급진적이고 부패한 기득권층’이 법과 권력을 악용하고 시민의 자유와 선택을 가로막았다고 비판하면서 상식의 혁명을 강조했다. 앞으로 공식적으로 남성과 여성만 존재하게 될 것이라고 선언한데서 드러나듯 그동안의 성정체성과 관련한 페미니즘과 진보적 사회의식에 대해 강력한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2.0 시대의 경제정책과 관련해서는 미국이 석유기반 제조업 강국이 될 것을 강조했다. 동시에 글로벌 분업보다 미국 내에서 중요한 산업이 가동되도록 주요 산업정책이 추진될 것임을 강조했다. 전기자동차 의무제도를 철폐하고 석유시추를 확대하며 전통적인 자동차 산업을 회복시킬 것임을 약속했다. 탄소감축이나 기후협약, 신재생에너지 중심의 정책으로부터 탈피할 것이 확실하고 기업경영에서 다양성이나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DEI 나 ESG 원칙이 약화될 것도 분명해 보인다. 관세 문제는 대외수입청을 신설하겠다는 구상으로만 언급되었는데 외국으로부터 거두어들일 재원을 극대화하겠다는 정책기조가 만만치 않을 후폭풍을 예감케 한다.
전쟁과 갈등이 커지는 국제정세와 관련하여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강력한 군사적 위상과 함께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미국이 세계최강의 군사력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전투능력을 극대화하는데 장애를 초래한 군대 내의 잘못된 이념화와 정책들을 폐지할 것을 강조했다. 또한 파나마운하가 중국의 영향권 아래 들어갔다고 주장하면서 그것을 되찾을 것을 공언했다. 중국이나 러시아, 이란 등에 대한 직접적 비난은 없고 오히려 자신은 평화주의자이며 중동의 휴전을 환영한다는 메시지를 전했지만 취임식 직후 파리 기후협약, WHO 등으로부터의 탈퇴를 공식화함으로써 다자주의 책무에 비판적인 입장을 분명히 했다.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입장에서 지역별 외교정책이 나타날 것이 예상된다.
취임식을 보면서 세계가 강한 리더, 카리스마적 권위를 요구하는 시대로 옮겨가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불편했다. 자유민주주의의 본거지라 할 미국에서 저토록 강력한 대통령이 출현하다니 내겐 여전히 미스테리다. 이곳 보스턴에서 만난 리버럴한 한 지인이 지나치게 급진적인 워키즘 (wokeism)의 폐해를 지적하는 것을 들었다. 직장을 다니고 자녀를 키우면서 트럼프의 메시지에 점점 더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말에서 일말의 분위기를 느낄 수는 있었다. 경제적 양극화, 실업, 인종문제 등 구조적인 이유들이 있겠지만 기존의 리버럴리즘에 내재된 한계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 아닌가 싶다.
한 세기 전 대중의 불안은 공산주의와 파시즘의 온상이 되었다. 오늘도 보호받지 못하는 다수의 불만은 혐오감정과 포퓰리즘을 확대시키는 바탕이 된다. 첨단의 인공지능과 해묵은 생존경쟁이 공존하는 유동적인 21세기에 공동체의 절실한 문제해결과 인간성 회복을 함께 해낼 사상적 지향은 무엇일까? 미국을 보면서 떠올린 생각들이 다시 우리의 문제로 되돌아온다. 지금 한국사회가 몸살을 앓고 있는 격동의 갈등은 이런 시대적 조류와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트럼프 2.0 시대의 개막은 정치경제적인 새 시대가 되는데 그치지 않고 지성사와 사상사 차원에서도 새로운 과제에 직면하게 되는 대전환의 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