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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를 추모하며

뛰어난 인류학자이자 한국을 사랑한 연구자로 안타깝게 수년전 타계한 낸시 교수의 추모 모임이 1월 6일 오전에 있었다. 일리노이 대학 어바나 샴페인을 중심으로 그녀가 키워낸 국내외 연구자들은 숫자도 상당하거니와 학문적 능력과 품성에서도 주목할만 분들이 적지 않다. 낸시의 한국 필드 과정에서부터 오랜 인연을 맺었던 박소진 교수와 이규호 교수 등이 주선하고 정병호 교수가 대부도 집을 제공하여 이 귀한 자리가 성사되었다.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십여명 학자가 모였는데 나는 온라인으로 추모의 시간에 참여했다. 낸시의 오랜 동학 조한혜정 교수도 줌으로 함께 했다.

낸시 사진을 앞에두고 국화꽃을 헌화하며 각자 추모의 말을 건넸다. 짧은 시간이지만 모두들 고마움과 안타까움, 그리움을 교감한 자리였다. 내게도 말할 기회가 주어졌는데 갑자기 울컥 눈시울이 붉어지고 낸시와 만난 40년 세월이 주마등 같이 지나가면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낸시가 여전히 건강하게 활동하고 있다면 미국의 한국학 연구 수준이나 학문후속세대의 성장에 얼마나 큰 힘이 되었을까 생각하면 안타깝기 짝이 없다. 낸시를 기억하며, 그녀를 추모하는 자리를 잊지 않고 마련해준 후학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크다. 낸시도 하늘에서 저들의 건강과 활약을 지켜보고 성원할 것이라 생각된다.

1984년으로 기억되는 어느날 전북대 연구실에서 만난 파란 눈의 외국인, 다소 어색한 한국어지만 분명하게 자신의 관심사를 말하고 필요한 도움을 구하는 당차고 키 큰 여성 – 내가 낸시를 만난 첫 기억이니 어언 40년 전이다. 하바드 대학을 졸업한 후 버클리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한국의 농민을 대상으로 박사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인류학자라 했다. 그녀는 한국의 현 농민운동 배경에 조선시대와 식민지기의 토지문제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해방 이후 농지개혁이 어떤 영향을 남겼는지 총체적인 역사적 맥락을 알고싶어 했다. 내가 구한말 토지문제를 분석한 논문을 건네주고 당시의 관행과 쟁점들을 설명하면 너무나 반가와하며 열심히 기록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낸시가 전북의 한 농촌마을에서 생활하며 필드를 할 때 나는 현지의 학생들을 소개해 주거나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간간히 방문하는 약간의 도움을 주었는데 낸시는 오랫동안 그것을 고마와했다. 어느날 낸시는 자신이 공부했던 하바드의 연구환경을 접해 볼 것을 권유하면서 내게 하바드 엔칭 프로그램을 적극 추천했다. 당시 대학과 지역사회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한 소위 ‘서명교수’ 로 낙인이 찍혔던 나로서는 총장의 추천을 받는 것 자체가 어려웠는데 낸시는 엔칭연구소로 내 사정을 알리는 편지를 보냈고 나는 총장의 추천 없이도 방한한 베이커 부소장의 면담자 리스트에 포함될 수 있었다.

낸시는 자기 박사논문 초고의 한 챕터가 작성될 때마다 내게 검토를 부탁했다. 지금 되돌아보면 내가 지적하거나 코멘트한 것들은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이나 어휘들, 지역별 사례들에 대한 것이었고 인류학자로서 그녀가 품고 있던 이론적 지향이나 개념들에 대해선 별 도움을 주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낸시는 언제나 내 코멘트를 존중해 주었다. 내가 서울대학교로 옮기게 되자 함께 기뻐했고 관악 캠퍼스로 세 자녀를 데리고 와 학교 이곳 저곳을 둘러보기도 했다. 내 둘째 딸 윤영이가 하바드 대학 박사과정에 합격했을 때도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격려해 주었다. 낸시가 하바드 대학에서 초청을 받아 케임브리지로 옮길 것을 심각하게 고민할 때는 내게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남편과 자녀를 위해 하바드 교수 기회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고 알려주었을 때 그 얼굴 한편에서 엿본 아쉬운 표정도 잊기 어렵다.

3년전 보스톤을 방문했을 때 낸시가 잠들어 있는 마운트 어번 세미트리를 찾았다. 그 날은 비가 부슬 부슬 내려 그렇지 않아도 무거웠던 내 마음을 더욱 힘들게 했다. 화려한 석조물들이 서 있는 묘역이 아닌 납골당 형태의 방을 한참 돌아 그 아버지 이름 옆 낸시의 이름을 발견했다. 그토록 존경하고 좋아하던 아버지 곁에서 안식하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작은 꽃 한송이를 그 앞에 놓았다. 내가 1989년 엔칭 펠로우로 케임브리지에 도착했을 때 낸시 부모님 댁에서 우리 가족을 초대해 주셔서 함께 식사를 했었던 일이 선연히 떠오른다. 이곳 세미트리를 공원삼아 즐거운 생활을 하라고 성원해준 분들인데 이렇게 먼저 떠나다니… 누구보다도 한국을 사랑했고 한국인을 이해했던 사람…누구에게나 성심을 다해 조언과 배려를 아까지 않았던 참으로 좋은 친구였는데, 하늘은 종종 너무 좋은 사람을 일찍 데려가시나 보다.

온라인 추모를 끝낸 후 아쉬운 마음을 금하기 어려워 먹을 갈고 붓을 들어 중국의 유명한 시인 두보가 아끼는 벗을 먼 곳으로 보내며 쓴 ‘송원’ (送遠) 이란 시를 써 내 마음을 담아본다. —- “갑옷입은 병사 천지에 가득한데 / 어찌 그대 먼 길을 떠나려는가 / 벗들이 모두 통곡을 하는데 /말타고 홀로 이 성을 떠나는구나 / 나무와 풀은 세월따라 시들어가고 / 변방의 강에는 눈서리 내려 날씨는 차가우리 / 이별한 게 어제 같은데 / 옛 친구의 우정은 더욱 그립구나 (杜甫, 送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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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하례식

1월 4일 사회학과 신년하례식이 호암교수회관에서 열려 서울을 다녀왔다. 정년 이후, 그러니까 명예교수가 된 이후로 처음 참석하는 자리다. 작년에는 내가 미국에 가 있었던 관계로, 또 그 전에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모임 자체가 어려웠었다. 그래서인지 수십년간 참석해오던 모임인데 서울로 가는 느낌이 예전같지 않았다. 세종으로 이주해 기차를 타고 올라가는 물리적 공간감각도 일조를 했는지 모르겠다.

조금 늦게 도착하여 행사장에 들어섰을 때 한참 덕담이 진행 중이었는데 참석자의 세대적 불균형이 더욱 심해졌구나 하는 첫 인상이었다. 55학번인 김진현 전 장관, 57학번인 김경동 교수, 58학번인 신용하 교수, 63학번인 한상진 교수, 그리고 동문회장이 헤드 테이블에 앉아 계셨다. 현직 교수들의 참석도 많지 않아 이재열, 김백영, 추지현, 임동균 교수가 자리했고 작년에 정년을 한 정근식 교수가 같은 테이블에 있었다. 학생들 자리는 더욱 많이 비어 대학원생이 십여명, 학부생은 두세명에 불과한 듯 했다. 모임이 더욱 고령화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금하기 어려웠다.

신년 덕담을 나누는 시간을 1시간여 가졌다. 새해 복과 건강을 비는 관례적인 인사가 계속되었지만 걱정스런 시대론이 뒤를 이었다. 인류문명, 한국사회의 위기에 대한 염려로부터 사회학의 학문적 위축, 사회학과의 위상 하락에 대한 걱정도 표출되고 후학들에 대한 권면과 조언도 있었다. 강한 사회적 영향력을 누리며 사회학 융성기를 지냈던 선배 세대의 입장에서 충분히 나올법한 덕담들이었다. 좀더 연대하자, 사회학에 대한 애정을 강화하자, 시대적 소명감을 잃지 말자 등의 말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과제이다.

그런데 이런 포맷이 정작 젊은 세대, 학생들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궁금했다. 사실 신년 덕담이 꼭 선배 세대들이 후배세대, 특히 학생들을 대상으로 의견을 표하는 형식일 필요는 없고 특히 이 자리가 그런 시간으로만 채워지는 것은 아쉽다. 역으로 젊은 세대의 현실인식과 고민을 표출하는 자리로 만들 수도 있을테고 학생들이 느끼고 있는 그들 나름의 자부심을 듣는 기회일 수도 있다. 걱정과 염려를 공유한다 해도 관성화된 세대론보다 서로의 진솔한 대화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부모와 자녀간에도 관심의 영역이 변하고 소통의 방식이 달라지고 있는 시대인데 학과의 세대간 상호작용 방식도 좀 새로워질 필요는 있겠다.

이미 학계 전반에서 분과별, 세대별 모임과 활동에 비해 모학회의 결집력과 연대감은 현저히 약화되고 있다. 개인주의가 강화되면서 소속감 만으로도 결집하고 연대하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분과학의 경계를 횡단하면서 관심사를 확대하는 탈경계의 흐름 속에서 기존의 학술공동체를 고수하자는 주장이 언제까지 지지받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문제는 정보와 소통을 실시간으로 다양하게 할 수 있는 디지털 문명에 걸맞는 새로운 유대와 연대를 구축하는 일이다. 21세기 뒤르켐적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 셈이다. 젊은 세대에 대한 못마땅함과 기성세대에 대한 거부감을 모두 넘어서는 혁신적 변화, 공감의 재구성은 불가능할까? 신년하례식을 하고 오는 기차속에서 내내 생각한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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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감각

아들로부터 아이폰과 애플 워치를 선물받았다. 서울에 있는 아들, 미국과 대전에 있는 딸네가 모두 아이폰을 쓰는 관계로 이전부터 같이 연계되면 편리할 것이란 말을 들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갤럭시폰에 익숙해 있는데다가 굳이 교체해야 할 필요도 느끼지 못해 몇 년간 그냥 지내왔다. 내가 쓰고 있는 폰이 5년 가까이 되어 새 것을 구해야 할 즈음임을 알고, 아이들이 새해 선물을 이것으로 하자고 논의를 했다고 한다. 이번엔 기쁜 마음으로 그러자고 했고 아들과 애플 매장을 들러 원하는 모델을 골랐다.

처음에 손에 잘 잡히는 다소 작은 사양을 선택했다가 아무래도 화면이 작은 듯 해서 교환 가능 기간이 지나기 전에 좀더 큰 모델로 바꿨다. 그 덕분에 하얀색 포장박스를 뜯는 소위 언박싱을 두어 차례 해보는 경험도 했다. 이전에 쓰던 폰의 앱과 데이터를 옮기면서 매장에 와 있는 젊은 세대들과 같은 테크놀로지, 같은 문화를 교감한다는 근거없는 즐거운 감정도 잠시 느꼈다. 한동안 손목시계를 사용하지 않았는데 애플워치는 가볍고 각종 메시지 확인과 전화 수신도 가능해 의외로 편리하다. 수면상황을 체크하기도 하고 내 운동상태를 실시간 알려주기도 해서 인공지능이 보다 본격적으로 연결되면 글자 그대로 유능한 개인 비서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다.

핸드폰이 모든 사람들의 필수품이 되었고 나도 오랫동안 사용해온 터라 폰을 바꾸는 것이 그다지 새로울 일이 아닌데 의외로 기분이 좋다. 아이들로부터 받는 선물이라는 것이 그 첫 이유가 아닐까 싶다. 사랑을 주던 입장에서 장성한 자녀들의 정성을 받는 위치에 놓인 부모의 뿌듯한 감각이라 할 수도 있겠다. 데이터나 사진의 공유가 보다 손쉬워지고 가족간 함께 할 엡들도 있다고 하니 기계의 도움으로 가족의 친밀감이 더 높아질 것을 기대해본다.

요즘 반려동물이 가족들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애플 같은 기기가 그런 매개고리가 되는 것도 주목할만하다. 그만큼 인간사회를 구성하고 이어주는 매개역할로 동물과 기계의 비중이 커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실제로 핸드폰을 통해 연결되는 정보와 사람의 네트워크는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데 독특한 디자인과 문화적 감수성이 동반되는 아이폰 세계가 주는 감각의 힘을 가만히 지켜보며 음미해 볼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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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대전환?

새해 첫날 북한 발 뉴스가 충격적이다. 매번 신년사 형태로 자신들의 정책기조를 설명해 온 북한이지만 이번의 뉴스는 남북관계의 근간과 관련된 것이어서 그 무게감이 예사롭지 않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1일 조선중앙통신은 12월 26~30일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9차 전원회의 결과와 함께 김정은 총비서가 한 말을 전했다. “북남(남북) 관계는 더 이상 동족 관계, 동질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는 것이 그 골조다.

‘체제는 다르지만 통일을 지향하는 민족공동체’라는 것이 지난 30여년간 남북관계를 규정해온 큰 틀이다. 남북의 정치군사적 대립에도 불구하고 이 시각을 공유했기 때문에 여러 협력과 소통이 가능했다. 북한의 핵개발이 본격화하고 국제적 대북제제가 강화되면서 이 정책은 지속불가능하게 되었다. 개성공단 폐쇄는 정경분리 방식의 대북정책이 불가능함을 분명히 한 사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특수관계론과 민족공동체론을 견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보수 진보 정권을 막론하고 남북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님’을 강조하면서 화해나 대화에 대한 기대와 통일지향성에 대한 믿음을 견지해 온 것도 이 때문이다.

북한의 언설이 정제되지 않고 위협적인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남북관계를 ‘교전국 관계’로 규정하겠다는 언급은 단순한 레토릭으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핵무력 군사강국으로서 앞으로 다가올 지구적 지형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북한 나름의 전략적 방향설정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관계의 재조정과 함께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를 언급한 것도 그간의 외톨이 전략, 농성체제 차원을 벗어나 ‘군사국가’로서의 존재감을 분명히 하려는 뜻이 읽혀진다. 어쩌면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재선되고 지구적 지정학의 큰 변화가 일어날 경우를 내다본 계산도 포함되었을 수 있다. 한반도 차원에서는 우려스럽고 위험한 방향설정이 아닐 수 없다.

남북관계는 세가지 차원으로 규정되는 삼중구조다. 민족관계, 적대관계, 국가관계의 세 영역이 중층적으로 겹쳐 있어 때로는 ‘동포’이지만 때로는 ‘적 ‘이 되고 때로는 ‘외국’으로 대해야 하는 복잡하고도 미묘한 관계다. 통일부, 국방부, 외교부의 역할이 그 각각의 기능에 부응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세 측면을 어떻게 탄력적으로 조율하고 관리하는가가 미래의 핵심 과제다. 분단 70년을 지나면서 점차 민족관계 (통일부)의 비중이 축소되고 국가관계 (외교부)의 비중이 커질 것은 예상되는 바였고 오늘 국민들의 여론에서도 그런 경향은 뚜렷이 확인된다. 다만 장구한 역사성을 지닌 민족관계는 어떤 계기가 주어지면 강력한 에너지를 분출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남북한의 통합과 신뢰를 뒷받침할 자산으로 활용될 수 있음을 무시할 수 없다.

이번 김정은의 발언은 ‘민족공동체’라는 남북간 공통분모를 부정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민주’를 표방하든 ‘보수’의 탈을 썼든 조금도 다를 바 없다”는 말로 보수집단이나 진보세력을 막론하고 남한을 통째로 타자화하려는 의지가 읽힌다. “우리(북)를 ‘주적’으로 선포하고 외세와 야합해 ‘정권 붕괴’와 ‘흡수통일’의 기회만을 노리는 족속들을 화해와 통일의 상대로 여기는 것은 더 이상 우리가 범하지 말아야 할 착오”라는 말에는 그동안의 남북협력기조나 통일지향노력을 전략적 오류로 규정하려는 단호함도 드러난다. 하지만 이런 입장이 얼마나 공고하게 전략적 원칙으로 자리잡을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천여년을 지나온 공통의 역사적 경험과 문화적 특징에 기초한 한반도의 에쓰니적 요소, 민족감정은 지속적으로 약화될 것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사라지게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북한은 적대적 국가관계론과 함께 김일성주의에 기초한 주체민족론을 더욱 극단적으로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주체사상이나 백두혈통의 수령지위을 절대적으로 강화하려면 그 뿌리인 항일투쟁 민족정서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민족공동체를 부정할 경우 통일이란 목표는 물론이고 남한 사정에 대한 발언권을 주장할 근거도 찾기 어렵다. 예상컨대 한국의 식민지성, 미국예속의 반민족 체제라는 이념적 공세와 정서적 거부감을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 그 결과는 남북관계를 전례없이 불안정한 상태로 몰아갈 수 있고 원치 않는 군사충돌의 개연성도 커질 수 있어서 우려를 더하게 된다. 이데올로기와 결부된 북한의 강한 반외세 민족론이 한국전쟁의 참상을 야기했던 아픈 경험이 있는 우리로서는 북한의 이번 발표를 엄중한 변화로 인식하고 종합적인 대처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정치권과 전문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일반 국민들에게도…. 갑진년이 의외로 무겁고 어둡게 시작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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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갑진년 새해를 맞이했다. 31일 자정 가까운 시간, 시편 23편을 가족이 함께 읽으며 한 해의 감사를 나누었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 많은 사람이 건강 문제로 힘들어하고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통받는 시대에 무탈하게 2023년을 보내게 된 것 자체가 큰 은혜가 아닐 수 없다. 정년 이후의 불확실한 여정에도 이만큼 안정된 상태로 소프트랜딩한 것도 참으로 다행이다. 돌이켜보면 긴 인생길에서 만난 어려운 순간들이 없지 않았지만 그것이 내 발목을 잡을만큼 결정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예기치 않게 다가온 행운과 도움의 손길들이 적지 않았다. ‘내가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둔다’는 표현대로 긴 인생길에서 값없이 받은 것이 많으니 감사할 일이다.

그런데 자녀 세대에도 같은 축복이 임할까 염려가 없지 않다. 세상이 점점 더 혼돈스러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과 역병이 온 인류를 위협하고 곳곳에 비난과 혐오의 언설이 차고 넘친다. 유럽과 중동의 전쟁은 끝나지 않고 새로운 대립과 충돌의 우려를 키운다. 동북아의 지정학도 불확실성이 커지고 양안이나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도 높아간다.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근간을 이루던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국들의 정치적 퇴행은 너무 심각하여 21세기 인류문명이 아노미 상태에 봉착한 것 아닌가 싶을 정도다. 문명위기론, ‘말세론’이 득세할 좋은 환경이다.

오랫동안 안정과 성장을 구가했던 한국은 이제 확실한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었고 경제적인 어려움도 커질 조짐이다. 젊은 세대는 구직난, 양극화로 고통을 받는 가운데 세계 최고의 저출산으로 사회전반의 활력상실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일찍부터 무한경쟁에 내몰린 젊은이들은 협력과 우애보다 이익과 경쟁을, 사랑과 신뢰보다 싸움과 불신을 몸에 익히는 가치관의 혼란을 경험한다. 챗 GPT 로 촉발된 인공지능의 일상화가 새로운 갈등해소와 참신한 생활방식을 가져다 주기 기대하는 마음이 간절하지만 비인간화, 기계화, 감시와 통제의 그림자가 얼마나 짙어질지, 우리 사회가 또다른 야만상태로 향하는 레트로토피아가 되지 않을지 우려도 적지 않다.

내 자녀를 위시해서 젊은 세대가 살아갈 21세기 미래는 얼마나 약육강식의 논리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N포세대임을 강조하며 무한경쟁과 개인주의의 세례를 듬뿍받은 저들에게 시편 23편은 어떻게 들릴까? 권력과 돈의 위세가 날 것 그대로 작동하는 한국사회에서 선한 목자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순한 양의 모습을 권유할 수 있을까? 험난한 시대를 뚫고 나가야 하는 자녀들을 생각하면 미래를 염려할 필요 없다는 말이 좀처럼 나오지 않는게 솔직한 심경이다. 신앙이란 모름지기 시대상황에 구애받지 않는 견고한 믿음에 근거하는 것이겠지만 어슬프게나마 미래를 내다보는 사회과학자의 입장에서 그런 확신이 쉬운 일은 아닌 것이다.

2024년도 여전히 여호와는 내 목자시고 우리를 외부의 위해로부터 지켜주실 것이니 염려하지 말고 새해를 맞이하자고 가족들에게 권면의 말을 했다. 하지만 내 말에 강한 확신이 실리지 않음을 스스로 느낀다. 먹을 풀과 마실 물이 철따라 주어질 것이고 일상의 평안도 허락하실 것이라고 애써 강조하면서도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불안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나 자산을 본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라 했는데 ‘믿음이 없는 자야’ 라는 힐난이 들려오는 것 같다. 새해를 맞이하며 시편 23편을 다시 읽으며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라는 말씀을 새삼 다시 묵상한다. 올 한 해 깊이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리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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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생, 소확행, N포

학생들 리포트를 읽다가 자신의 미래를 내다보는 어휘가 달라지고 있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몇 년 전 N포세대라는 말이 많이 쓰였는데 언젠가부터 소확행이나 욜로라는 말이 강조되었고 올해엔 유난히 갓생이란 말이 곳곳에 등장한다. 취업, 연애, 결혼, 주택 등을 포기해야 한다는 N포론은 미래에의 희망이 사라진 세대의 좌절감을 표상한다. 소확행이란 말은 대단한 목표의 추구 대신 소소한 즐거움, 일상의 작은 만족을 추구하려는 지향을 가리킨다. N포에서 소확행으로의 변화가 유의미한 새로운 움직임인지 아니면 현실도피적 자기위안에 그치는 것일지 불분명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2023년에 처음 접한 갓생이란 말은 확실히 다른 분위기를 지닌다. 신이라는 뜻의 ‘갓(God)’과 인생의 ‘생(生)’을 합친 갓생은 신과 같은 삶, 모범이 되는 부지런한 생활을 뜻하는 말이라 한다. ‘갓생 살기’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매일 30분씩 걷기, 하루에 영어 단어 10개 외우기 등과 같은 소소한 목표를 세우고 이를 열심히 이루어 가는 삶을 가리킨다. 거창한 목표를 향한 경쟁은 아니지만 자기성장과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적극적 계획, 예컨대 다이어트, 영어회화, 음악활동, 춤배우기 같은 것이 갓생의 내용을 채운다. “갓생 가자!”, “겨울방학 때 정말 갓생 살 거예요.” 같은 표현에서 이런 경쾌한 부지런함을 느낄 수 있다. 양극화 현상에 분노하고 상대적 박탈감에 힘들어하던 이전의 N포론이나 현실도피적 소확행론에 비해 건강한 적극성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 갓생이 젊은 세대의 정서가 새로운 형태로 변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지표일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갓생이란 말을 쓰고 ‘갓생 가자’고 외치는 그 태도 속에 이전의 모습, 익숙한 태도의 잔상이 강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세대론에 더이상 갇히고 싶지 않은 건강한 자신감이 갓생이란 말 속에 담겨있지만, N포세대의 불안과 좌절을 어쩔 수 없는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수동적 체념의 그림자도 없지 않다. 비트코인 광풍처럼 일확천금을 노리는 로또 심리가 스며있다는 평가도 있다. 한마디로 갓생은 적극적인 주체성을 반영하는 말이면서도 체념적 현실수용의 또다른 표현일 수 있다.

어쨋든 N포와 소확행과 다른 새로운 말이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N포라는 말에 부수되는 세대적 우울감을 부정하고, 소확행이라는 수입어에 담긴 수동적 자기위안도 벗어나 개성적인 주체성과 적극적 생활태도를 추구하려는 경향이 부분적이나마 확인되기 때문이다. 어느 대학 교수가 소확행 대신 대불행 (크고 불확실한 행복)을 추구하자고 주장한 적이 있지만 젊은층에게 불확실함을 직면하라는 권유가 얼마나 호소력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나름대로 고민하면서 개인별로 적절한 새 화두를 찾아가는 저 흐름 속에 담겨있는 절박함, 상상력, 수용과 혁신의 발상을 포괄적으로 파악하고 격려하는 것이 앞으로 중요한 과제가 아닐까 싶다. 갓생이 2024년에는 어떤 의미를 지니며 젊은세대의 공감을 불러올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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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칭과 탕탕평평

하바드 옌칭 한국학회 모임이 12월 13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있었다. 내가 회장을 끝낸 후인데다 정근식 회장과 한승미 교수가 열심히 준비해 주어서 편한 마음으로 참석했다. 이번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특별전시되는 영정조대의 시문과 회화전인 ‘탕탕평평’을 관람하고 ‘정조와 궁중회화’에 대한 강연을 듣기로 되어 있었다. 참석자는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최종고, 임지현, 김준환 교수 등 오랫만에 뵙는 분들이 여럿 계셔서 반가왔다.

발제자인 유재빈 교수는 영정조대 궁중화원제도의 변화 배후엔 시화를 통해 정치변화를 꾀하려 한 국왕의 의지가 있었다고 보았다. 도화서의 개혁, 특히 차비대령화원의 설치가 그런 의도의 산물인데 사적도, 궁중 계병, 화성원행도병 등의 제작과 유포를 통해 왕조 권력을 강화하려 했다는 것이다. 시문과 회화를 통해 국정운영의 변화를 꾀하고 왕권을 강화하려 했다는 설명이 흥미로왔다. 유교수로부터 저서인 [정조와 궁중회화]를 받았는데 부제로 달린 ‘문예군주 정조, 그림으로 나라를 다스리다’라는 말이 그런 시각을 잘 요약해주는 듯 했다. 문예군주라는 말, 그림으로 다스린다는 말에서 신선하면서도 과연?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느낌도 든다.

‘탕탕평평전’은 그런 시각을 반영한 기획인 듯 했다. 2024년이 영조 즉위 300년이 되는 해여서 영조와 정조가 글과 그림을 어떻게 국정운영에 활용하려 했는지를 부각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붕당정치의 폐해가 심했던 이 때 영조와 정조의 탕평책은 인재를 고루 기용한다는 기조로 이해되어왔다. 그런데 탕탕평평이란 말은 “무편무당 왕도탕탕 무당무편 왕도평평”이라는 [상서]의 황극조에서 나온 표현으로, 국왕의 위상을 북극성에 비유하여 임금의 중심성을 강조한 표현이다. 탕평이란 말은 인재를 고루 등용하거나 정파를 두루 포용한다는 뜻을 직접 담거나 신료들의 역할을 중시하는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임금의 역할, 국왕의 중심성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전시실 입구에서 영조가 쓴 글씨를 만났다. “周而不比 乃君子之公心 比而不周是小人之私意” 라는 글인데 1742년 사도세자가 성균관에 입학할 때 영조가 세운 비석의 탁본이다. “군자는 친밀하지만 편파적이지 않고 소인은 파당을 지으면서 친밀하지 않다” (君子 周而不比 小人 比而不周)라는 논어의 글을 토대로 군자의 공심과 소인의 사의를 대비시킨 것이다. 단정한 글씨체가 아름다왔고 영조의 각오나 사도세자에 대한 기대를 느낄 듯 했다. 그런데 그 아들을 죽이고 만 영조의 심경 변화와 궁중 내 정치 동학이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다. 1762년 영조가 죽은 세자에게 ‘사도’라는 이름을 붙이고 지었다는 ‘사도세자묘지’나 정조의 사도세자 추존과 어보를 둘러보면서 어지러움마저 느끼는 듯 했다.

영조와 정조는 화원들로 하여금 공신들의 초상을 제작하고 그 옆에 시를 지어 병기하곤 했다. 영조는 박문수의 초상을 제작하게 했고 대동법을 주도한 김육의 그림에 시를 지어 붙이기도 했다. 정조는 강세황의 초상을 그리게 했고 그가 죽은 후 역시 ‘인재를 얻기 어렵다’는 글을 보냈다. 정조가 심환지와 주고 받은 편지인 ‘어찰첩’도 전시되었는데 은밀한 편지 속에 마음속의 불안을 위무받고 싶은 국왕의 심정이 담겨 있다. 글씨는 활달하고 명필이라 할 만한데 내용은 쓸쓸하고 안타깝다. ‘화성원행도’를 비롯한 그림에서 국왕 주도의 국정운영을 시도하려는 노력을 찾아볼 수 있다는 설명을 들으면서 18세기 세계사는 얼마나 격동의 시기였는지를 잠시 생각했다. 시와 그림, 화원을 통한 국정개혁이나 탕평정치의 시도는 고상하고 멋있어 보이지만 그런 접근이 현실정치의 한계를 넘어서기 어려웠음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文治를 강조한 유교국가의 독특함이기도 하고 강제력에 의존하지 않는 세상을 지향하는 것이 문명사적 발전일 수는 있겠는데 그것이 ‘文弱’의 폐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무슨 조건이 더해져야 할까 생각하게 된다. 무기의 힘과 돈의 위세가 나날이 커져가는 21세기여서 더욱 그러하다.

activities

사회학회와 사회사학회

2023년도 한국사회학회 정기대회가 12월 14-15일 동국대학교에서 열렸다. 예년과 유사하게 많은 분과세션들이 열렸고 궂은 날씨에도 꽤 많은 회원들이 참석했다. 개회식 전체세션에서는 하와이대 구해근 교수께서 ‘나의 사회학 50년’이란 제목으로 계층과 계급연구에 천착하게 된 학문적 배경, 또 노동자 연구로부터 중산층 연구로 최근 관심이 옮겨가게된 계기 등을 이야기했다. 학자로서의 오랜 고민과 사회학에의 애정이 느껴지는 진지한 발제와 이를 경청하는 후학들의 모습을 오랫만에 보는 훈훈한 장면이었다.

60 학번은 말할 것도 없고 70 학번 초반 세대의 회원들도 거의 보이지 않아 한상진 교수를 제외하면 내가 거의 최고참이 아니었나 싶다. 학계에도 세대의 교체가 빠른 현실의 반영일텐데 연속성이 너무 단절되는게 아닌지 아쉬움도 느껴진다. 저녁의 총회에서는 1년간 수고한 설동훈 회장의 뒤를 이어 장덕진 교수가 내년도 회장으로 취임했고 차차기 회장으로는 계명대학의 임운택 교수가 선출되었다. 몇년만의 경선이었고 또 지방대학의 교수가 회장을 맡게 된 것도 오랫만이어서 축하할 일이라 생각된다. 2027년 광주에게 개최될 세계사회학대회의 조직위원회 규정이 채택되고 그 유치를 주도했던 장원호 전 회장이 향후 조직위원회를 이끌어갈 것이라 한다.

사회사학회의 정기총회와 분과 세션도 첫날 오후에 개최되었다. 1부에서는 “분단과 전쟁으로 한쪽 날개 꺾인 한국여성운동”(김귀옥), “5.16 군사쿠데타 이후 비전향장기수 전향정책분석” (정찬대), “5.18 제도화와 기억의 전시”(유경남) 등 세 편의 발표가 있었다. 세 편의 논문이 각기 우리 사회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젠더의식, 이념정치, 기억투쟁의 양상을 1950년대, 1960-70년대, 198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을 통해 다루어 한국현대사를 조망하는 느낌이었다. 토론이 흥미로왔는데 성의식이 50년대를 거치면서 퇴행되고 ‘지연되었다’고 평가하는 것이 타당한지를 지적한 황정미 교수의 문제제기, 기억의 정치에 수반되는 왜곡과 이해, 권력의 쟁점들을 거론한 김민환 교수의 토론은 적절하고 또 중요한데 앞으로의 큰 과제라 여겨졌다.

사회사 분과 2부에서는 최재석 학술상을 수상한 정수복 교수의 “한국근현대 학문의 지성사를 향하여”라는 기념강연이 있었다. 정교수는 서양학문의 수용사라는 관점에서 1세기를 조망하면서 보편적인 한국적 학문, 독자적인 지성풍토를 형성하지 못한 한계를 지적하였다. 후학들의 학위논문은 물론이고 인근 학문 분야의 주요 연구도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학술장의 형성과 전개, 분단과 미국의 영향, 학진체제의 문제 등을 언급하고 미래를 향한 제언을 제시한 성실함에 경의를 표했다. 나는 토론자로서 많은 부분을 공감하면서도 2000년대 이후 크게 변하고 있는 학술장의 동요, 특히 대학 위상의 변화에 대해 좀더 치밀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주체성’이라는 개념을 넘어서는 새로운 화두가 필요하리라는 것, 그리고 학사와 사상사와 지성사의 상이한 문제의식을 좀더 분명히 했해 달라는 것을 부탁했다.

이후 한국사회사학회 총회가 이어져 지난 2년간 회장으로 수고한 김백영 교수의 뒤를 이어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서호철 교수가 차기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대학원 시절부터 폭넓은 식견과 역량을 보여준 서교수가 다음 학회일을 맡게 되어 기쁘다. 전국에 흩어져 있지만 함께 부담을 나누고 진지하게 토론과 연구에 힘을 합하는 여러 후배 교수들이 있어 고맙고 뿌듯했다. 점점 더 개별화되고 해외의존성이 커지는 오늘날의 학술풍토에서 한국사회사학회 연구자들의 이런 응집력과 문제의식은 그 자체로서 소중한 지적 자산이자 지켜갈 유산이다. 이런 귀한 학회의 초석이 되신 신용하 교수님의 헌신성과 리더십에 새삼 감사함을 느끼면서 2세대로서 중간역할을 수행했던 사사친의 여러 동학들에 대한 고마움도 뒤를 잇는다. 3세대의 수고를 통해 더 많은 인적, 지적 결실이 거두어지기를 기대한다.

activities · life · 시공간 여행

모든 이를 위하여

약 1년 만에 서소문 성지 역사박물관을 다시 들렀다. 비가 오는 겨울 오전이어서인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공원 입구 기념탑에 새겨진 성인과 순교자들의 명단과 ‘복되어라 의로움에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이라는 중앙 석판이 눈에 띠어 잠시 묵념을 했다.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길에서 벤치에 누워있는 청동 나그네 상을 보았다. 웅크린 채 비를 맞고 있는 모습이 ‘살아 있으나 죽은 것 같은’한 이웃, 또는 ‘죽었으나 살아있는’ 어떤 이를 떠올리는 듯 하여 마음이 뭉클하다.

이곳을 다시 찾은 이유는 도진순 교수로부터 ‘모든 이를 위하여’ (Love and Peace for All) 라는 제목의 특별전시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과 교황청의 수교 60주년을 기념한 기획전은 규모가 크진 않으나 짜임새 있고 새로운 내용을 볼 수 있어 좋았다. 19세기 초 조선신자들이 교황 비오 7세에게 보낸 편지의 실물을 보니 묘한 감정이 느껴진다. 1831년 교황청이 조선신자의 열망에 따라 조선을 중국 북경교구에서 완전히 독립된 대목구로 설정한 사실, 그 이후 숱한 순교와 박해의 시기를 넘어야 한 아픔, 기해 병오 박해에서 수난당한 79명이 1925년 복자로 추대된 역사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와 사진이 전시되고 있었다. 조선말기와 일제시대 카톨릭의 사회정치적 역할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분석과 평가가 가능하겠지만 로마로부터 성직자의 파견을 간절히 원하고 목숨을 아까와하지 않으면서 믿음을 지키려던 이 땅의 신자들의 진정성에 의문을 표할 이유는 없다. 이들의 열망과 행동은 과연 무엇이었으며 오늘 우리는 이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곰곰 생각하게 된다.

‘모든 이를 위하여’는 이번 특별 기획전을 넘어 성지 역사박물관의 기본 컨셉이라 해도 좋을 듯 싶다. 다시 둘러본 지하층 상설전시에는 천주교의 전래와 실학 및 동학의 움직임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역사 속에서 이유없이 고통받고 이름없이 죽어간 많은 사람들을 함께 기억하고 위무하는 정신이 자료의 선정과 조각 및 건물 곳곳에서 읽혀진다. 이곳이 역사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처형된 장소라는 사실에 제대로 부합하는 방식이라 하겠다. 콘솔레이션 홀은 그런 의미에서 신자들만이 아닌 모든 박해받고 소외당한 사람들을 위무하고 포용하는 공간인 셈이다. 값싼 천국의 약속을 독점하거나 강요하지 않는 카톨릭의 잔잔한 재현방식이 내겐 신선하게 다가왔다.

해방직후 정부수립 과정에 카톨릭이 관여한 부분은 이번 특별전에서 새롭게 확인한 내용이다. 1947년 미국 메리놀외방선교회 소속 페트릭 빈 신부가 사도좌 순지자로 한국에 파견되었던 것, 1948년 정부수립 후 대한민국 승인을 둘러싼 유엔에서의 각축전에서 교황청의 역할을 보여주는 자료들이 전시되었다. 1948년 8월 15일 11시에 서울 중앙청 광장에서 열린 정부수립축하식 순서지를 나는 처음 보았다. 오세창 개회사, 이승만 연설에 이어 미군정의 맥아더와 하지, 유엔한국위원단의 루나, 류유완에 이어 교황청의 빈 신부가 축사자 명단에 들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교황청의 역할이 실질적이건 상징적이건 중요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국제적 승인을 위해 유엔에 파견된 장면의 제1호 대한민국 외교관 여권과 유엔총회에서의 바티칸의 관심을 보여주는 문서도 흥미로왔다. 카톨릭 신자였던 장면을 외교장관 장택상의 반대를 무릅쓰고 특사로 파견한 이승만의 외교적 감각도 다시 되돌아보게 된다.

이전에 무심히 지나쳤던 지하 전시실의 나전칠화도 이번에는 뜻깊게 다가와 오랜 시간 그 앞에서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방문과 한국순교자 124위의 시복을 기념하기 위해 김경자 작가가 제작한 ‘일어나 비추어라’라는 제목의 거대한 작품이다. 과거, 현재, 미래의 세 부분으로 좁게는 카톨릭 이백년사를 넓게는 한국 근현대사를 그리고 있는데 동양의 예술적 상징과 기독교적 성서관이 아름답게 혼융되어 있다. 십장생도의 미학과 불화의 분위기, 무릉도원에의 꿈도 있고 몽둥이와 칼을 든 사람들, 포승줄에 묶여 끌려가는 사람들, 예수를 품에 안은 피에타상도 있고 각국의 국기들도 있다. 일견 복잡해 보이는 이 모든 상징물들이 희생과 수난을 거쳐 모든이의 평화를 이루는 미래에의 도정을 드러내는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카톨릭의 섬세한 스토리텔링과 고급한 전시역량에 또 한번 고마움을 느낀 하루다.

life · 오늘의 화두

셀럽의 추락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김구림 작품을 둘러보다가 문득 같은 공간에서 몇 달전 임옥상의 ‘지금 흔들리는 땅’ 전을 관람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80년대 민중미술의 대표적인 작가였지만 그 틀에 갇히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소재와 주제로 혁신적인 작품활동을 열정적으로 해 온 분이다. 특히 흙과 쇠를 주요 소재로 활용한 대형 작품들은 캔버스와 전시관을 넘어서 넓은 도시와 현장, 광장과 건물 들에 설치되어 왔고 그 혁신적인 방식과 선명한 주제를 좋아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지난 전시에서도 흙으로 만든 캔버스에 그린 홍매, 백매 등의 매화 연작과 대한민국헌법 전문을 쇠판 위에 큰 산 형상으로 써내린 대작은 관람객의 눈길을 끌기 족했다. 지난 정부에서는 촛불시위 현장을 형상화한 그의 작품이 청와대에 걸리기도 해서 언론의 관심대상이 되기도 했었다.

자신의 주장과 논지를 분명히 하면서도 사람들과의 소통을 중시하고 다양한 계층의 전문가들과 교유관계를 넓히려 노력한 탓에 유명 셀럽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기에 이르렀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개방적인 태도와 SNS를 통한 적극적인 소통노력이 더해져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누렸다. 그의 전시가 있는 화랑에서는 언제나 작가와 사진을 함께 찍으려는 수많은 관람객들, 사인을 받으려 줄을 선 젊은이들을 볼 수 있었다. 특히 국내외의 많은 관객들로부터 환호를 받은 지난 전시회를 옆에서 보면서 ‘셀럽’이란 존재가 저런 것이구나를 실감하기도 했다. 학자나 작가들 가운데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꺼려하고 자기 작업공간에 홀로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임 화백은 누구보다도 소통과 만남을 강조하고 또 즐기는 분이었다.

그런데 불과 몇 달만에 너무도 상황이 달라졌다. 과거 그가 데리고 있던 연구원에게 잘못된 행동을 했고 결국 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 충격파가 문자 그대로 일파만파다. 작가 개인의 이미지와 평판이 추락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미 설치되어 있던 곳곳의 작품들이 철거되었고 여러 활동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줄을 잇는다. 성추행이라는 사안 자체가 개인적으로 감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어서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되기도 쉽지 않다. 작가로서 너무 많은 대중적 사랑과 인기를 누려온데다 어느새 정치적 도덕적 영향력까지 지니게 된 그간의 셀렵화가 이런 위험을 배태한 주요한 요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고보니 작년 수많은 관람객들의 환호와 존경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모습을 보면서 저 과도한 인기가 가져올 위험은 없을까 일말의 불안감이 잠시 스쳤던 것 같기도 하다.

셀럽의 추락은 낯설거나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고 21세기에 더욱 보편화되는 일이기도 하다. 셀럽이 실체가 불확실한 평판에 의존하는 까닭에 인기가 높아질수록 잠재적 위험도 따라 커지게 마련이다. 오늘날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확대 공유되는 정보때문에 인기가 요동치는 속도와 폭도 상당하기 어려울 정도다. [뉴파워]라는 책을 쓴 하이먼즈는 오늘날 새로운 권력이 대두하는 증거로 오랜 기간 권위를 행사해온 인물들이 인터넷의 해시테그 비판과 대중의 인기 철회로 하루 아침에 몰락하는 사례들을 들고 있다. 그 중에서도 성추행과 관련한 사안의 휘발성이 특히 커서 권위의 추락에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한국에서도 하루 아침에 평생 쌓아온 권위와 영향력을 일순간 잃고 개인과 가족 모두의 힘든 시기를 보내게 된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셀럽의 몰락은 다시 일어서기가 쉽지 않은 충격임이 분명하다. 개인적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비극이자 인생 전체가 부정당하는 사건일 터이다. 하지만 셀럽으로서의 인기에서 비롯된 거품을 제거하고 단독자로서 다시 치열한 자신을 대면하는 실존적 전환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알 수 없는 불행과 불운으로 좌절하면서도 그 질곡으로부터 벗어나는 갱생과 회생의 역량을 보여준 사례도 적지 않다. 창조적인 작업에 종사하는 예술인의 경우는 고통과 단절, 비난과 자학, 성찰과 재생을 통해 예술혼이 새롭게 강화되는 전환도 가능할터이다. 셀럽의 부상과 몰락을 바라보며 내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는 인기에의 충동을 다시 한번 되돌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