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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평통과 평화통일

민주평통에서 발간하는 [평화통일] 2024년 신년호 인터뷰를 했다. 편집을 대행하고 있는 동아일보에서 연락이 온 것은 약 2주 전, 마침 당일 서울에 다른 일정이 있기에 수락했다. 신년호인데다가 단독인터뷰라 해서 다소 부담이 되는 바 없지 않았지만 자유로운 대화를 하기로 하고 30일 오후 충정로 동아일보 사옥을 방문했다.

이 작업을 담당한 김건희 기자는 평소 남북관계나 통일문제를 다루는 기자들과는 다소 다르게 자유로운 대화를 통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정치적이거나 논쟁적인 사안들 보다도 요즘 젊은 세대의 관심과 태도에 대한 진솔한 의견을 구하는 형태에서 반갑고 편했다. 김기자는 자기 스스로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관심이 많지만 마음 한켠에서는 북한과 ‘손절’하고 싶은 심리가 없지 않다는 솔직한 견해를 피력했다. 나는 요즘 젊은 세대의 그런 반응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고, 그 지점으로부터 새로운 발상과 기획을 추구해야 한다고 내 의견을 피력했다.

최근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북한은 한국과 다른 국가이자 다른 민족이라는 응답비율이 ‘단일민족 단일국가’를 지지하는 비율보다 높게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 세대의 북한에 대한 신뢰철회, 통일에 대한 관심저하는 이상한 것이 아니다. 나는 정서적인 거리감이 평화공존이나 새로운 미래관계를 형성해가는데 반드시 부정적이지 않음을 역설했다. 친척관계나 친구관계에서도 나타나듯 지나치게 정서적이거나 동질적인 친밀성을 강조하면 그 폭이 협소해지거나 지속불가능해지는 경우가 많다. 젊은 세대에게서 보이는 적절한 심리적 거리감, 때로는 냉정한 관계설정이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틀을 형성하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할 측면도 분명히 있다.

청년들의 이런 반응과 그 맥락은 다르지만 비슷한 역할과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주체가 해외한인이다.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그 절대수도 적지 않지만 모국인구 대비 비율로 보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들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지만, 각자가 거주하는 현지국가의 문화와 정치, 경제활동과 가치체계에 따라 제각기 다른 감각과 연관을 보인다. 이런 다양성과 다중성, 때론 갈등과 긴장을 수반할 수도 있는 상이한 시각들이 긴 맥락에서 보면 큰 자산임을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 헌법기관으로서 민주평통이 단순한 정책홍보 역할을 넘어서 이런 글로벌한 플랫폼을 제공하는 기능을 수행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전문가나 지식인으로서는 이런 변화들을 넘어 가능한 미래비전에 대한 깊은 숙고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2024년은 국제환경의 변화나 북한내부의 변화, 한국사회 내부의 변화 등 모든 점에서 이전에 비해 불확실성과 긴장이 높아질 개연성이 있다. 유럽과 중동에서 진행 중인 전쟁의 여파도 지속될 것이고 북핵위협과 양안긴장으로 한반도 주변의 긴장감도 높아질 것이다. 한국의 경제적 어려움이 커지고 정치적 갈등이 심화되면서 우리 사회내부의 여유와 관용폭도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미래를 새롭게 구축하고 바라볼 것인가, 어떤 공동체의 꿈을 창출할 수 있을까 큰 숙제이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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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한국문화원

브라질 한국문화원 김철홍 원장께서 그곳 활동과 관련 자문회의를 개최하고 내게 참석을 부탁하셨다. 현지 사정을 잘 알지 못하지만 코리안 디아스포라 네트워크와 글로벌한 한국문화의 확산에 관심을 갖고 있던 터라 기꺼이 참여했다. 오랫만에 대면한 반가움과 함께 그곳의 현지 상황을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짐작했던 바와 같이 K-Pop에 대한 관심이 한국에 대한 현지의 가장 큰 관심이라 했다. 흥미로운 것은 음악 못지 않게 한국어와 한식에 대한 관심이 크다는 사실이었다. 한국어는 세종학당 등을 통해 정부 차원의 노력이 지속된 것이어서 특별히 새로울 것은 아니겠으나 현지인, 특히 젊은 세대들의 자발적인 한국어 습득열기가 높다는 것은 분명 새로운 현상이다. K-Pop 컨텐츠는 물론이고 주요 인물들이 셀럽화하고 그 메시지가 지구적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작금의 상황은, 정부와 기업이 주도하던 문화확산과는 분명 구별되는 21세기적 소프트파워라 하겠다.

한식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것은 다소 새로운 소식이었다. 십여년 전 한국음식의 글로벌화를 정부가 주도했던 적이 있었지만 그다지 좋은 평가나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던 것이 기억에 남아있었기 때문일테다. 이제 한식 역시 전반적인 한국문화의 일환으로 자생적인 뿌리를 내리는 징조인 듯해서 반가왔다. 문화원 차원에서는 한식에 대한 현지사회의 기대에 부응해줄 전문가를 찾기가 어려운 문제가 있는 모양이다. 영상이나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제공해줄 수 있는 한류 컨텐츠와 미각으로 직접 체험해야하는 음식의 차원은 같지 않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떤 점에서 음식은 일상적인 삶과 더욱 밀접한 것인만큼 교민 전체가 문화확산의 주역이 될 수 있는 개연성도 커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자문회의는 줌으로 진행하면서 배상범 주상파울루 무역관장(현지 참석), 김레다 중앙대교수(온라인 참석), 정길화 한국국제문화교류원장(온라인 참석)이 함께 했다. 세 분 모두 나와는 달리 브라질 현지에서의 경험이 풍부하신 분들이어서 여러 유익한 조언과 의견개진이 있었다. 브라질 현지 교민사회도 세대간 계층간 차이가 커지고 있는데다가 브라질 현지인의 관심에도 부응해야 하는 여러 과제와 어려움을 다소나마 느낀 유익한 자리였다. 해외 현장에서 수고하는 분들의 건승을 비는 마음이다.  

activities · 오늘의 화두

세력과 사상

월봉저작상 운영위원회 실무를 총괄하고 있는 이선민 전 조선일보 문화부장의 서울대 박사학위수여를 축하하는 모임을 10월 25일 조선호텔 중식당에서 가졌다. 심사위원인 이기동 교수, 도진순 교수, 나를 위시하여 한경구 교수, 이철우 교수, 일조각 김시연 사장도 자리를 함께 했다. 학부에서 한국사를 전공한데다 문화부기자로서 역사관련 지식과 정보가 풍부하고 필력이 좋은 것이 연구의 큰 자산이 되었겠지만, 뒤늦게 자료를 찾아 학술논문을 작성하고 학계의 까다롭고 성가신 심사절차를 밟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어려운 과정을 통과하여 영예의 학위를 수여받은 것에 모두 경의와 축하를 보냈다.

돌아와 논문을 살펴보니 제목이 “대한제국 후기 정치세력과 민족운동 연구”라 되어 있다. 1904년 이후의 수년간을 ‘대한제국 후기’라 이름한 것이 우선 눈에 띤다. 이기동 교수도 잠시 언급했지만 대한제국 자체가 10여년 짧은 시기인데 전기, 후기를 나눌만큼 충분한 근거가 있을지 논란도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애국계몽운동기 또는 국권상실기 등으로 불리우던 시기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줌으로써 시대상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게 해 준 것이 신선한 느낌도 없지 않다. 이박사는 이 시기에 한국의 새로운 정치세력이 성장, 분화되었음을 드러내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논문에서 다룬 주제와 쟁점들 중에는 나도 더러 다루어본 내용들이 적지 않다. 종교로서의 동학과 1894년의 농민전쟁, 진보회와 일진회, 안창호와 미주국민회, 천도교의 성격과 지향 등은 이런 저런 계기로 논문도 쓰고 발표도 했던 주제다. 특히 전북대 시절엔 호남지역의 지방사와 농민사를 천착하는 한편으로 한국근대사상사에도 관심을 가졌던 바여서 이 논문이 다루는 쟁점들이 낯설지 않았다. 다만 그 시절의 나는 정치사나 국가사보다 운동사나 지방사에 좀더 주목했던 탓에 이박사의 논문이 주목한 큰 흐름에 대해선 다소 관심이 덜 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박사 논문은 대한제국 후기의 ‘신흥 정치세력’의 등장과 이들의 ‘민족운동론’을 검토하는 것이다. 신분제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향반,서얼,중인층이 부상할 수 있었고 지역적으로는 평안,함경지방의 중앙진출이 가능해져 새로운 정치세력이 대두될 조건이 마련되었다고 보았다. 이런 배경에서 안창호와 국민회의 재미한인, 손병희 천도교와 동학 세력, 그리고 대종교로 이어지는 개신유학자 집단의 세 정치세력이 유의미하게 형성, 분화되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들 세력들의 지향을 각기 국민국가론, 부강발전론, 국수보전론으로 개념화해서 대비한다. 격동기의 흐름을 비교적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는 분석틀이라 할 만하다.

흥미롭고 중요한 연구라 생각되지만 ‘정치세력’ 형성의 실상에 대한 정밀한 분석이 좀더 이루어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다. 상이한 ‘민족운동론’의 분화는 기존 연구들에서 언급된 내용과 크게 다른 바가 아닌 듯 해서 개인적으로 정치세력의 기반에 대한 설명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나도 일본의 도막파 세력과 한국의 개화파 세력을 대비하려 시도한 바 있었는데 ‘사회세력’의 분석이라 할만한 자료확보가 일본에 비해 턱없이 부족해 뜻을 이루지 못한 경험이 있다. ‘정치세력’이라 이름할 만한 사회세력의 형성을 논하려면 그 정치적 지향이나 사상적 동향보다도 핵심 인물들의 결집도, 광범위한 사회적 네트워크, 동원가능한 물질적 자원, 외부세력과의 연결, 내부의 정세판단 등이 소상히 확인되어야 한다. 세력화의 수준, 조직화의 정도, 물적 동원 역량 등을 평가할 수 있을 종합적인 변수분석이 이루어져야만 사회적 세력분석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논문도 국민회, 천도교, 대종교라는 조직기반과 사람들의 네트워크를 밝히고 있고 안창호, 손병희, 신채호 등 주도적 인물의 영향력을 언급하고 있기에 그런 문제의식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세력화의 수준이나 정도, 역량의 입체적 분석에 이르기에는 미시적 자료나 인물간 네트워크의 강도, 자원동원의 수준과 실제 상황에 대해 객관적인 분석이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렵다. 어쩌면 정치세력과 ‘민족운동론’을 연결시키려는 틀 자체가 정치세력화의 분석보다 민족운동론의 유형화로 이어지도록 만들었을지 모르겠다. 사상적 지향과 관련해서도 ‘민족운동’이라는 틀을 넘어서는 스펙트럼을 구상할 수 없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오랜 중화적 질서에서 벗어나 새로운 국제질서로 이행하는 격동기에는 국가와 민족의 뱔견 못지 않게 세계와 개인의 발견도 결정적인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안창호와 신채호의 차이를 국민국가론과 국수보전론으로 대비하는 틀을 넘어서 자유주의와 국가주의의 긴장이 이 즈음 시작되었으리라 여겨지는 사상적 분화의 계기에 대해서도 좀더 천착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향후 이박사의 활발한 연구활동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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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의식과 공격성

역사학자 임지현 교수께서 조선일보에 쓴 컬럼을 보내주셨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 역사의 복수는 무섭다”는 제목을 단, 최근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상황을 다룬 글이다. 임교수는 내게 ‘잡문’이라 했지만 내용의 무게는 만만치 않다.

이스라엘이 건국 직후 홀로코스트보다 바르샤바 게토봉기를 더욱 부각시켰던 사실에 이 글은 주목한다. 나찌의 폭력 앞에 수백만이 희생당한 홀로코스트 비극은 유태인의 가장 분명한 상징이 되었지만 새 국가 건설을 주도한 사람들은 이것을 건국정신으로 내세우기엔 부적합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무기력한 비극적 희생서사보다 고대 마사다 영웅신화를 떠올리게 하는 1943년의 봉기를 더욱 부각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임교수는 이 두 역사적 경험을 기억하는 태도 속에 피해자 정체성과 가해자 심성이 공존함을 지적했다. 피해자의식이 가해자 심성에 정당성을 부여해 ‘역사’를 앞세운 복수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 작금의 상황이라는 분석인데 일견 공감이 간다.

홀로코스트를 겪었던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이웃에게 가해적 군사행동을 주저하지 않는 현실은 분명 역설적이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이스라엘 특유의 이상행동이라 볼 수는 없다. 세계 곳곳에서 희생자 감정을 앞세운 혐오와 배타의 움직임을 찾아보기는 어렵지 않다. 임교수는 이런 변형된 공격성이 한국에서도 나타날 수 있음을 우려한다. 오랫동안 한국의 민족주의는 공격성과는 거리가 멀다고 여겨져왔기에 그런 우려가 생경하게 느껴지는 사람도 적지 않을 터이다. 한국사 연구자들 사이에는 그런 관점이 강하다. 하지만 한국민족주의의 종족성, 공격성, 배타성을 지적하는 글들도 꾸준히 증가해왔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민족주의에 평화지향적인 면모가 있는 것도 분명하지만 피해자로서의 경험을 내세워 거친 공격성을 정당화하려는 경향도 종종 드러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핵무력을 강조하면서 공격적 군사주의 노선을 견지하는 북한의 존재는 한국의 민족주의를 모순적이고 양가적인 것으로 만드는 주요한 변수다.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이면서도 연합군의 반격에 초토화되었던 전쟁피해 경험을 북한은 지금도 체제방어의 주요한 논리로 활용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한국사회에는 전쟁으로 가족과 재산을 잃고 고향을 등지고 부모와 생이별을 해야 했던 사람들이 많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커질 때마다 당위적인 평화론이나 단일민족론으로 치유되기 어려운 피해자 감정을 확인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독립운동사, 한국현대사를 둘러싼 논란과 갈등의 바탕에는 수십년간 해소되지 않은 채 잠복해 있는 정서를 어떻게 기억하고 전승할 것인가에 대한 복잡하고도 결이 다른 지향이 혼재하고 있는 것이다.

남북한 화해와 통합의 과정에서 민족감정의 사회적 동원은 필수적인 요소가 될 것이다. 그러나 희생자 정체성을 앞세운 배타성과 공격성이 낯설지 않게 드러나는 오늘, 우리의 집합의식을 민주적으로 규율하고 고양시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다. 피해자 의식이 가해자 심성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려면 자유민주주의라는 헌법적 원리를 강조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다만 그것을 명분이나 슬로건으로 내세우는 것만으론 충분할 수 없다. 개성과 자율, 인권과 다양성이 몸에 밴 21세기 젊은 세대들의 생활감각을 남북한의 평화와 통합의 동력으로 잇는 실질적이고 다면적인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전쟁과 분단, 대립과 불신, 기대와 배반의 뒤틀린 경험을 혐오와 증오의 확대재생산이 아닌 상생과 통일의 동력으로 전환시킬 방안을 찾는 것 – 우리 앞에 놓여진 중요한 정치적 과제이자 사상적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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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의 자리

현실과 사상은 역사 속에서 늘 변증법적으로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다. 현실에 따라 사상이 구성되지만 사상이 현실을 바꾸는 변수가 되기도 한다. 잘 정리된 사고체계가 현존질서를 옹호하고 뒷받침하는 역할도 하고 때로는 혁명적 변화를 추동하기도 한다. 만하임이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를 구별한 것은 이런 양면성을 밝히려 한 작업이었다.

남북관계가 극도로 악화되는 가운데 이념의 대립이 다양하게 부상한다. 정치권이 자기 세력확장을 위해 정략적으로 활용하려하고 또 대통령이 이를 강조한 탓이 일차적으로 큰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그렇게 치부하는 것은 이 시대 논쟁에 담긴 사상적 함의와 문제의 깊이를 놓치는 결과를 낳는다. 정략적 논란의 뒷면에 자리하고 있는 작금의 집단적 심성, 사상적 전환의 필요성을 찾아내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긴요한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그 핵심에는 북한, 중국, 일본, 미국을 보는 우리의 시각이 크게 달라져왔다는 집합심성의 변화가 놓여있다. 먼저 남북관계의 전환은 지난 시기 역설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불가피하게 요청한다. 2018년을 전후하여 짧은 시기 남북지도자가 보여주었던 정치적 약속과 미래전망이 왜 그토록 금방 파탄나게 되었는지, 북한을 그 어떤 정치지도자보다 이해해주고 포용하려한 문재인 정부가 왜 평양으로부터 응당한 반응과 연결고리를 유지할 수 없었는지, 북한이 핵무력을 전략자산으로 공언하고 대남위협까지도 숨기지 않는 호전적 태도를 보이게 되었는지에 대한 뻐아픈 성찰이 요구되는 것이다. 단순히 북한비난이나 미국책임으로 설명하는 것은 진지하지도 않고 솔직하지도 않은 관습적이고 정파적인 태도에 다름아닐 것이다. 이와 짝을 이루면서 어떤 의미에서는 더 심대한 변화가 국제상황으로부터 오고 있다. 미국 중심의 자유주의 국제질서와 이에 대항하여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려는 중국과 러시아의 대립이 심화되면서 한국의 양다리 걸치기가 극히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 심대한 전환 앞에서 어떤 사상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을까? 최근 곳곳에서 겪고 있는 역사논쟁은 많은 경우 진보와 보수의 정치적 담론싸움으로 설명할 수 있다. 당위적으로는 패권경쟁에 한반도가 말려들어가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양자택일을 강요당하는 상황을 지혜롭게 대처하면서 미래를 열어갈 사상적 자원은 매우 빈약헤보인다. 아직은 불투명하지만 북한이 중국 및 러시아와 군사적, 기술적으로 밀착하는 상황이 전개되면 더더욱 한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심각한 수준이 될 우려도 없지 않다. 일본과의 관계개선 문제도 기본적으로는 이런 지정학적 변화와 직결되어 있다. 사상의 시대가 오는 것은 그다지 달갑지 않지만, 그런 시대가 오는데 사상적 바탕이 없는 것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걱정스럽기 짝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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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라언덕과 이상백

대구의 청라언덕 일대를 둘러보았다. 광주의 양림동 역사문화거리와 함께 한국근대의 교육, 의료, 선교, 민족운동의 상호관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역사적 현장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마침 계명대학을 방문할 일이 생겼는데 동대구역에서 멀지 않은데다가 박해남 교수가 차편으로 안내해 주어서 뜻깊은 답사여행을 할 수 있었다. 이은상 작사 박태준 작곡의 동무생각 노래 덕분에 ‘청라언덕’이 유명해지고 애틋한 우정과 사랑의 장소처럼 일반인에게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곳을 찾을 기회를 가졌거나 이 지역의 역사성을 접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의외로 적다. 대구의 31운동 기념로 및 근대탐방로가 정비되어 있고 구 동산병원과 제일교회 일대의 유적지와 손쉽게 오갈 수 있게 되어 천천히 둘러보며 역사를 회고하기에 좋은 곳이다.

청라언덕은 말 그대로 언덕의 이름일 뿐이어서 가시적 상징물은 없다. 하지만 약령시 쪽에서 제일교회를 끼고 계명대 동산병원으로 넘어오는 가파른 계단을 오르노라면 꽤 경사가 느껴지는 확실한 고개길이다. 20세기 초반, 이 언덕길을 넘어 다니던 젊은 청년들이 근대식 학교와 병원, 교회와 양옥의 이국적 풍광을 접하면서 문화충격을 겪었을 것이다. 간간히 애틋한 연애도 하면서…청라란 이름이 선교사 주택을 뒤덮은 푸른 넝쿨, 즉 담쟁이로부터 유래했다고 하는데 현재 그런 연관을 확인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언덕 바로 옆이 선교사들이 거주하던 주택이고 그 가까이에 아담한 선교사 묘역도 자리하고 있어 그 연결성을 짐작하기에는 어려움이 없다. 한동안 대구를 상징했던 사과가 이곳에서 시작되었고 그 효시도 선교사들의 활동과 연결되어 있다니, 동무생각 노랫말 만으로 이 공간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부분적인 것에 지나지 않은 셈이다.

청라언덕을 내려가 큰 길을 하나 건너면 오랜 성당을 만나고 그 오른편으로 이상화 고택으로 이어진 거리가 나온다. 꽤 규모가 있는 한옥으로 이어지는 골목길 입구엔 이상화의 얼굴과 시가 적혀 있고 집안에는 책상과 당시 형제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소품들이 배치되어 있다. 셋째인 이상화가 워낙 널리 알려진 탓에 이상화 고택으로 명명된 곳인데 사실 첫째 이상정과 둘째 이상백도 못지 않게 탁월한 인물이다. 특히 나로서는 한국사회학의 태두이자 역사사회학의 탁월한 업적을 남긴 이상백 선생이 훨씬 더 가깝고 또 중요하게 다가온다. 어쨋든 한국근대의 명실상부 최고 가문이라 할 집안을 둘러보는 감회가 새로왔다. 그 옆에는 대구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했던 서상돈의 고택이 이어져 있어서 개화기 대구지역의 변화와 역동성이 이 주변에서 힘을 받은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하게 만든다. 서상돈의 집은 아파트 건축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재건된 것이라 하는데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아담스, 이상화, 이상백, 서상돈, 이은상, 박태준 / 청라언덕, 선교사 묘역, 동산병원, 제일교회, 계명학교 – 이 독특한 사람의 인연과 공간의 연결을 생각하며 일대를 걷다보니 ‘근대’라는 시대를 단일한 이미지로 포착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오히려 온갖 빛깔을 지닌 무지개, 아니면 다양한 색들이 무질서하게 뒤섞인 중학생 팔레트 같은 모습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다. 한쪽에는 신문물과 계몽과 혁신의 역동성이 희망을 전하고 다른 한켠에는 울음과 고뇌와 싸움과 배반의 역사가 놓여있는 대조적 모습, 그런가하면 질병과 치유와 죽음과 영생이 뒤엉키는 삶과 역사의 복합적 측면을 담고 있는게 근대사이기 때문이다. 이 온갖 성격을 담고 있는 근대의 역사를 때로는 눈부신 흰색 때로는 어두운 잿빛의 단색으로 그려보려던 지난날의 지적 성급함을 세종으로 돌아오는 기차속에서 계면쩍은 마음으로 되돌아본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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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대에서의 멋진 하루

10월 14일 대구 계명대를 방문했다. 계명문화대 박승호 총장을 예방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 하숙을 함께 한 인연에다 육사 교수부에서 함께 가르치며 이야기도 많이 나눈 사이지만 오랫동안 만날 기회가 없었다. 몇 년 전 계명문화대 총장으로 부임했다는 소식을 듣고 방문하고 싶었는데 이제야 그 뜻을 이루게 된 것이다. 오랫만에 반갑게 포옹하고 즐거운 담소로 회포를 풀었다.

심리학을 전공한 좋은 학자이면서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겸비한 박총장은 성실함과 진지함이 트레이드 마크다. 유학을 다녀온 후 서울여대에서 줄곧 교수로 봉직하였는데 그 품성을 일찍부터 알아온 계명대 이사장의 천거로 계명문화대 총장에 부임했다 한다. 첫 임기를 마치고 두번째 총장직을 연임하고 있으니 대학경영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는 증거일 테다. 실제로 계명문화대는 대구는 물론이고 전국적으로도 졸업생의 만족도와 사회진출 수준이 높은 학교로 알려져 있다.

계명대 캠퍼스는 참 아름다왔는데 내가 본 대학 캠퍼스로선 최고가 아닐까 싶다. 나무 한그루, 건물 하나 하나에 정성과 의미가 깃들여 있고 잘 관리되고 있어 둘러보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높은 곳에 위치한 아담스홀은 초기 선교사의 비전과 헌신이 담긴 공간으로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격조높은 천정구성, 정면의 제단과 파이프오르간이 엄숙함과 정결함을 느끼게 한다. 고풍스런 황갈색 컨셉이 캠퍼스에 통일성을 주면서도 한 복판에 전통 한옥들로 이어진 공간을 배치했는데 전통과 현대, 서양과 동양을 캠퍼스 디자인 속에 함께 담으려는 뜻이 읽혀져 좋았다. 풀 오페라 공연이 가능한 첨단 아트센터가 세워져 학교와 지역사회에 소중한 문화인프라로 활용되고 있는 것도 특기할 일이다. 디자인과 건축에 의미와 문화가 담겨야 한다는 것, 지속적인 관심과 손질이 공간을 살아있게 한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멋진 캠퍼스다.

박총장과 점심을 함께 한 후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들과 커피타임을 가졌다. 지방의 청년문제에 주목하면서 참신한 연구쟁점과 문제의식을 확산시키는데 기여해 오고 있는 최종렬 교수, 사회이론 분야의 좋은 연구자이면서 학계의 신망이 높은 임운택 교수, 그리고 이번에 새로 임용된 박해남 교수와 오랫만에 즐거운 대화시간이었다. 최종렬 교수는 [복학왕의 사회학]을 비롯한 여러 책자와 신문의 컬럼으로 우리사회의 여러 현안, 특히 지방의 문제를 부각시키는데 크게 기여해온 학자다. 임운택 교수는 이번에 한국사회학회장 후보자로 천거되어 학계 전반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되는 중이다. 이번에 부임한 박해남 교수는 문화와 역사, 스포츠와 종교 등 21세기 변화를 다면적으로 해명하고 분석하는 능력이 뛰어난 신진 학자다. 규모는 작지만 역량은 뛰어난 계명대 사회학과의 지적 활동을 더욱 기대하게 되는 이유다. 어려운 조건 하에서 연구하고 가르치는 후배 교수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 성원하는 마음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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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 최재석 학술상 시상

10월 25일 제4회 최재석 학술상 시상식이 고려대학교에서 개최되었다. 정수복 교수가 본상을, 김란 박사가 우수논문상을 받았다. 상이 받을 만한 사람들에게 격려와 도움이 되는 것 같아 마음이 기쁘다. 최재석 교수의 학자적 생애를 되돌아보면서 사람이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는 옛말을 새삼 실감하는데 이름을 남기려면 ‘돈도 남겨야 한다’는 이숭원 교수의 농담 반 진담 반 언급 역시 그럴듯하게 와 닿는다. 이사장으로서 이 날의 시상식에서 “고마운 연구 더 고마운 연구자”라는 인사말을 했다.

정수복 교수의 [한국사회학의 지성사] 전 4권은 한국 학계에서 보기 어려운 대작이자 수작입니다. 선진학문의 수용에 급급했던 주변부 학계의 역사 속에 담겨있던 고투와 열정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발굴하고 정리해낸 참으로 고마운 연구입니다. 학문의 보편성을 강조하되 주체성과 실천성을 동시에 고민했던 사회학계의 지적 긴장을 아카데미즘, 비판성, 역사성의 세 영역으로 정리함으로써 한국지성사를 어떻게 파악해야 할지 한 전형을 보여주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최재석, 신용하, 박영신의 학문적 업적과 활동을 역사사회학이란 흐름으로 묶어 자리매김해 준 것은 그 분들께 학은을 크게 입은 한국사회사학회로서 더 없이 고맙고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수박사학위논문상을 받는 김란 박사의 “현대한국과 중국 보육체제 변동에 관한 비교연구”는 가족주의와 보육공공성의 관점에서 두 나라의 현실을 분석한 주목할만한 성과입니다. 가족과 교육, 돌봄과 공공성이 시대적 쟁점이 되고 있는 오늘, 동아시아 문명을 공유했던 두 나라의 공통과제를 깊이 숙고하게 하는 수작입니다. 한국의 평등주의 교육개혁의 기원을 탐색하려는 이지원 님의 학위논문계획과 추지현 교수 외 5인의 공동연구과제인 ‘안전의 공간정치’도 현실적 쟁점들의 역사적 뿌리와 맥락을 탐색하려는 지적 노력으로 그 결과가 주목되는 작업이라 하겠습니다.

학술상은 탁월한 연구성과에 우선 주목합니다만 오늘 저는 연구자들에 대한 고마움을 더욱 피력하고 싶습니다. 정수복 교수는 그가 애정을 쏟았던 학계로부터 합당한 대접을 받았다 하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경계선 위’에 선 자만이 지닐 수 있는 균형잡힌 시선으로 학술장을 풍성하게 만들었고 그 누구보다도 열성적으로 학계의 주인공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깊은 애정으로 힘든 발품과 오랜 독서, 글쓰기의 수고를 아끼지 않은 정교수께 더욱 고마움을 느끼는 이유입니다. 같은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김란박사, 추지현 교수외 5인, 이지원 학생에게도 같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고마운 저작, 더 고마운 연구자들을 선정하고 치하할 수 있도록 학술상 기금을 쾌척해주신 이춘계 여사님과 이숭원 교수님을 비롯한 유족분들, 여러 추천 책자와 논문들을 검토하며 수상작을 선정하느라 애쓰신 김필동 위원장 외 심사위원들, 번거로운 일처리를 감당하신 정일준 교수님 외 학술상운영위원회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런 고마운 뜻을 지속적인 연구로 이어가려는 한국사회사학회의 김백영 회장을 비롯한 회원 여러분들의 수고와 노력에도 감사함을 전하며 모든 분들의 건강과 학문적 성취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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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와 세계평화

제주의 사회사와 여성사를 진지하게 연구해온 권귀숙 교수가 영문으로 묵직한 책을 출간했다. The Island of World Peace : The Jeju Massacre and State Building in South Korea 라는 제목의 책인데 Lowman and Littlefield Press 에서 2023년 올해 간행되었다. 켐브리지 대학 권헌익 교수를 비롯하여 전세계의 뛰어난 학자들이 공동 연구해온 Beyond Korean War 국제 냉전사 프로젝트의 한 중요한 성과물이다.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진 가운데 전세계가 다시 신냉전의 시대로 회귀하는 듯 갈등하고 있는 오늘, 한국전쟁과 전지구적 냉전, 그 복합적 영향을 다양한 시각에서 재조명하려는 국제적 연구기획이 뜻깊은 학술적 성취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권귀숙 박사의 이 책은 부제가 말하듯 제주 4.3 학살사건과 한국의 국가건설을 두 축으로 해방 이후 반세기 변동을 장기사회사의 맥락에서 추적한 것이다. 기존 연구들은 주로 1940년대와 1950년대에 남북한에서 진행된 냉전적 이념화, 한편의 반동분자 색출과 다른 한편의 공산주의자 척결이 분단국가 형성에 어떤 역할을 미쳤는지를 주목해왔고 적지 않은 성과들이 축적된 바 있다. 하지만 이 책은 21세기 최근까지 반세기 이상의 긴 시간 속에서 4.3의 비극이 어떻게 기억되고 억압되며 재구성되고 재평가되었는지의 장기사적 프로세스에 더 주목한다. 이 과정은 국내적으로는 민주화, 국제적으로는 탈냉전, 지성사적으로는 젠더와 문화의 부상과 직결된 세계사적 역동성을 포함한다. 이 책은 4.3 을 둘러싼 오랜 논란, 곡해, 억압과 그것을 바로잡으려는 끈질긴 싸움, 증언, 기억의 충돌, 그 속에서 진행되는 통합과 화해와 해석의 긴장과 성과를 드러내고자 한다.

이 책의 목차구성이 저자의 문제의식을 잘 보여준다. 목차는 해방후 상황을 서술한 Beginning을 첫 장으로 State Violence, Reintegration 1, Reintegration 2, Reconstruction , Reconciliation 장을 거쳐 결론으로 이어진다. 마치 한편의 장편 드라마 구성같은 기승전결의 입체감이 느껴진다. 흥미로운 것은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 저자가 붙인 개념들이다. 저자는 4.3 사건을 state violence로, 한국전쟁을 reintegration 1 로, 귀신잡는 제주해병을 reintegration 2로, 제주 여성의 독특하고도 다양한 역할을 reconstruction으로, 제주평화공원 건립과정을 reconciliation으로 병기했다. 국가폭력으로 깨어지고 파괴된 새 시대의 꿈이 여러 형태의 재통합 과정을 거치고 재구성되며 재화합되는 역동적 경로를 해명하려는 문제의식이 반영된 것 아닌가 싶다. 결론의 장과 책의 제목을 세계평화의 섬이라 붙인 이유는 이런 변화의 지향점이 ‘세계평화’가 되어야 하리라는 저자의 신념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뭍혀있던 사실을 드러내어 알려주는 부분 못지 않게 이 개념들의 연쇄가 주는 지적 상상력이 새롭게 다가온다.

제주 4.3은 지역사회의 오랜 수고와 뜻있는 연구자들의 노력으로 그 역사적 평가가 일단락되고 국가폭력의 희생자들에 대한 위무와 보상도 이루어진 사건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 해석을 둘러싼 논란과 폄훼가 끊이질 않는 현안이기도 하다. 남북관계가 악화되고 신냉전 상황이 심화되면서 이념 대립이 더욱 격화되면 해석과 재해석에 이은 또다른 해석갈등이 등장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럴 수록 가해자와 피해자를 나누고 비난의 화살을 어디로 쏠 것인가에 집중되던 시선을 미래와 세계를 향한 평화의 기획으로 향하도록 하는 노력은 소중하다. 전체사회사의 맥락에서 냉전시기 한 지역이 겪게된 통합과 대립, 해석과 반해석의 역동성을 세계평화로의 긴 여정으로 밝히려 한 이 책이 이 시점에서 간행된 것이 예사롭지 않은 메시지인양 느껴진다. 나는 저자가 사용한 개념들을 보면서 재통합이란 무엇을 의미하며 재구성이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재화합이란 또 어떤 함의를 지니며 그것이 종국의 결론인 World Peace로 이어지는 경로는 또렷한가 등 흥미로운 물음들이 머릿속을 채우는 것을 느낀다.

제주의 길고 고통스럽던 역사적 드라마를 지역주민의 원한해소나 국내정치적 논란으로 연결하지 않고 세계평화로 나아가는 뜻있는 여정이기를 바라는 저자의 구상이 실로 원대하고 신선하다. 제주출신자가 아니면서 제주를 사랑하는 제주인이고, 미국 명문대에서 학문적 훈련과 학위까지 받았으면서도 이를 내세우지 않고 현지 주민들의 경험과 생각을 존중할 줄 아는 저자의 지적 성실함과 균형감각 덕택이 아닐까 싶다. 권박사는 감사의 말에서 자신이 도움을 받았던 국내외의 많은 학자, 활동가 들을 언급하고 있는데 서귀포에 앉아서 세계의 석학들과 교유하고 문제의식을 주고받는 21세기형 학자의 전형을 보는 느낌이다. 자신이 몸담고 살아온 지역의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 애환과 바람, 갈등과 아픔들을 외면하지 않고 담담히 진지하게 서술하고 정리한 저자의 수고가 제주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만드는 자산이 될 것이라 믿는다. 오랜 시간과 힘든 수고를 요하는 영문저술을 노학자 그룹에 속하는 시기에 마무리한 권교수의 열정과 헌신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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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개념사의 완성?

강인철 교수가 또 기념비적인 연구서를 출간했다. [민중의 개념사]를 “저항하는 주체-이론”, “시대와 역사속에서 -통사” 2권으로 다룬 책인데 도합 1,200 쪽을 넘는 대작이다. 각주만으로 300쪽에 달하는 상세한 자료검토, 수많은 논저와 매체의 정치한 분석이 놀랍다. 이런 작업이 얼마나 많은 땀과 수고를 필요로 하는 것인지를 실물로 보여주는 듯하다. 강교수는 진지하고 뛰어난 연구자로 정평이 나 한국사회사학회가 수여하는 최재석 학술상 1회 본상을 수상하는 등 이미 높은 평가를 받았는데 또 하나의 큰 성취가 더해졌다. 나이와 무관하게 지적 역량이 나날이 커지는 사람이 간혹 있는데 강교수가 그 중 한 명이 아닐까 싶다. 강교수 덕에 우리 학계의 자산 리스트가 그만큼 풍요해졌으니 감사한 일이다.

고맙게도 보내온 책 속에 강교수가 쓴 감사의 편지가 함께 들어있었다. 이 책을 구상하고 완성해 가는데 내가 썼던 [국민, 인민, 시민]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했고 실제로 곳곳에서 내 책을 인용하고 있다. 과분한 평가를 받은 듯 민망한 마음도 없지 않지만 내가 그 책을 쓰면서 가졌던 문제의식과 생각을 강교수가 가장 잘 이어주고 있다는 생각에 기쁘고 보람을 느꼈다. 개념사 연구를 하면서 점점 명료해진 생각이 개념사와 정치주체형성사, 사회사와 사회운동사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내 책을 출간할 때 출판사가 난색을 표했음에도 굳이 “개념사로 본 한국의 정치주체”란 부제를 제목에 병기할 것을 고집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능력과 시간이 모자라 내 생각을 충분히 또 깊이있게 탐구하지 못하고 소략한 검토로 그칠 수 밖에 없었는데, 강교수의 이 책이 그 문제의식을 이어받아 멋지게 구현해 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내 책에서 국민, 인민, 시민, 민족, 민중이 한국의 정치주체를 분석하는데 필수적인 다섯 개념이라고 언급했었다. 전통적으로 일반 사람, 백성을 지칭하던 ‘인’, ‘민’ 어휘가 역사속에서 변형되고 재구성되면서 여러 개념들을 낳았는데 근대변혁기에 위의 다섯 범주가 새로운 정치적 주체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강교수는 이 다섯 범주에 ‘계급’을 더해 ‘6대 정치주체 개념어’로 확장시켜야 할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일견 공감이 가는 제안인데 그런 맥락에서라면 젠더도 포함해야 할 것이다. 지난 수년간 박찬승 교수가 민족, 민족주의에 대한 개념과 운동의 종합 연구서들을 출간했고 김경일 교수는 노동 개념의 역사와 일제하 노동운동사를 통해 계급이 한국사회에 출현하는 과정을 탐구해왔고 여성사에 대해서도 주목할만한 성과를 출간했다. 이번에 강교수가 민중에 대한 본격적인 분석을 완료하고 대작을 출간함으로써 한국개념사의 큰 그림이 얼추 마무리된 느낌이다.

그러고보니 한국사회사학회에 속한 여러 동학들이 이 큰 지적 프로젝트를 수행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자축하며 감사할 일이다. 그런데 요즘 상황을 보노라면 현대 한국의 정치주체와 관련하여 ‘개인’의 출현에 대한 연구가 새로운 과제로 부각되는 느낌이다. 분할 불가능한 주체로서의 in-dividual은 헌법적 주체, 인권의 담지자로 간주되고 있지만 개인 역시 역사적인 범주이고 근대로의 이행과정에서 형성되어 나온 주체다. 따라서 개인을 원천적으로 주어진 인간과 동일시하는 것은 곤란하고 어떻게 한국사회에서 개인주체성이 형성되었는지를 밝히는 일이 중요하다. 특히 요즈음의 MZ 세대는 개성과 취향을 강조하면서 국민, 인민, 시민, 민족, 민중, 계급, 젠더 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개별적 정체성을 전례없이 또렷하게 드러낸다. 그것이 신 앞의 단독자 의식에 바탕을 둔 서구의 개인과도 상당히 다른 것임은 분명한데 그 차이와 특성을 명료하게 밝히는 개념사적 탐구 없이는 설명이 어렵다.

한국형 개인은 개성과 자유를 강조하지만 집단적 범주로부터 자유로운 단독 주체도 아니다. 대중이나 다중, 또 팬덤으로 불리는 새로운 형태의 집합체로 곧잘 편입되는 독특한 개인이다. 그 틈새에서 명분과 실제의 불일치, 공적부문과 사적영역 간의 이중성, 특유의 도덕주의, 내로남불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 한국적 개인주체의 바탕은 무엇이며 개념적 뿌리는 어디에 있을까? 어떻게 형성되고 강화되며 다른 정체성과의 연관성이 어떠할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이야말로 한국개념사를 최종적으로 완성하는 화룡점정일지 모른다. 사회사와 개념사가 정치사와 사상사를 넘어 문학사와 종교사와 만나는 새로운 지적 대장정이 필요한 이유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