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오늘의 화두

김구림과 백투더 퓨처

광화문 주변에서 예정된 회의 시간이 남아 국립현대미술관을 들렀다. 큰 기대 없이 갔는데 마침 김구림 전과 백투더퓨쳐 전시가 있어 좋은 시간을 가졌다. 백투더퓨쳐 전은 1990년대의 몇 작가와 작품을 통해 이 시기의 역동성과 이질성을 탐구한다는 의도로 기획된 전시다. 동명의 영화 제목에서 따온 전시명에서 짐작할 수 있듯, 현재와 미래의 혼재, 긴장, 불일치를 드러내려는 전시여서 최근 ‘문명사’에 관심을 갖고 있는 나로선 더욱 관심을 갖고 둘러보았다.

작품들의 형식과 이미지가 다양했는데 우리에게 익숙한 회화 형태와는 크게 달랐다. 사회적으로도 그러했지만 미술계에서도 디지털 이미지와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시도와 긴장이 커진 것이 1990년대였다고 한다. 현대미술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작품 하나 하나에 대해 어떤 감동을 얻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불일치의 활성화, 이질성과 비평적 시공간, 미래간섭 혹은 미래개입 등의 설명을 읽으면서 이 격동의 시대를 되돌아볼 수는 있었다. 이질화와 혼성화의 충격, 불일치의 활성화, 미래개입 같은 개념은 마치 문명사를 서술한 책의 챕터와 유사해서 사회학적 문제의식과도 잘 연결되는 느낌이었다. 이번 학기 수업에서 간간히 언급했던 엘빈 토플러의 [미래충격]을 떠올리면서 이 전시를 둘러보았다.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모은 기획전과 달리 김구림전은 한 작가의 작품만으로 구성된 개인전이었다. 김구림은 일본과 미국 등지에서 활동해온 전위예술가의 한 명이다. 나도 그 이름은 들어본 바 있으나 실제 그의 작품을 이처럼 본격적으로 관람한 적은 없다. 그의 작품은 다양한 오브제를 활용하여 통상적인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고 일종의 설치미술적 성격도 있어 낯선 느낌도 적지 않다. 빗자루, 걸레, 의자 등 일상에서 발견되는 소품들을 독특한 방식으로 배치하고 조명과 컬러를 더한 작품으로 문명적인 메시지를 전하려는 전위적인 분위기도 강하다. 그 독특한 분위기는 분명 강렬하게 다가오는데 내게 익숙한 예술적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솔직한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음-양’ 시리즈라는 제목이 내겐 어떤 힌트처럼 다가왔다. 음-양은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여성과 남성, 어두움과 밝음 등 만물과 역사의 총체적 인식에 불가결한 사유의 틀이다. 오브제와 이미지를 혼합한 작품들을 제작하는 김구림 작가에겐 적절한 연작 컨셉이었을 법하다. 관람자로서도 다양한 메시지 해석이 가능한 제목이어서 작가의 의도와는 달리 내 마음대로 상상해 볼 여지를 주어 좋았다. 그 중에서도 인상적인 부분은 주로 바이올린 악기 몸통을 활용하여 여성의 몸과 임신, 출산과 생명의 연속성을 드러내고자 한 일련의 작품들이었다. 여성의 몸을 통해 남녀가 사랑하고 인간의 생명이 잉태되고 세대가 이어지면서 인류가 존속해올 수 있었던 것, 이를 통해 음과 양, 육체와 정신, 지배와 헌신 등 복합적인 변증법이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것 같았다. 다소 선정적일 수도 있어 보이는 방식으로 바이올린의 몸통을 변형하고 다양한 소재들과 결합시킨 많은 작품들을 보면서 이번 학기 다루었던 ‘포스트휴먼’의 쟁점, 기계와 생명, 인간과 자연, 탄생과 소멸 같은 우주론적 의미를 연결해 보기도 했다. 21세기 미래에서는 텍스트와 이미지, 예술과 학문,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경계가 계속 크로서오버되고 융복합되면서 재구성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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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욱진과 사사친

덕수궁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장욱진 회고전, ‘가장 진지한 고백’ 전시를 관람했다. 사사친 번개로 모이는 기회에 함께 고궁을 산책하고 좋은 그림 감상기회도 가지게 된 것이다. 노치준, 김필동, 황경숙, 정근식, 김경일, 박명규 등 여섯이 모여 고궁을 둘러보고 미술관을 관람하고 식사와 커피타임을 가졌는데 학창시절 소풍날의 즐거움을 잠시 느꼈다. 각자 올해 공직을 마감하기도 하고 새로이 손자를 얻기도 했으며 이사를 했거나 자녀들에게 좋은 소식이 있는 등 분주하게 2023년을 보냈지만 이전에는 누리기 어려운 망중한의 여유를 무료관람권으로 누리게 되었으니 복많은 백수세대의 일원이 된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장욱진 화백은 1917년 생으로 이중섭, 김환기, 박수근 등과 함께 2세대 서양화가이자 1세대 모더니스트로 꼽힌다. 대부분 크지 않은 아담한 사이즈의 유화 730여점, 먹그림 300여점의 많은 작품을 남겼다. 전시는 총 4개 관으로 나뉘어져 초기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의 작품 상당수가 전시되어 그의 그림 인생을 조감하기에 족했다. 그의 그림에는 까치와 나무와 길, 사람과 집과 태양 같은 단순하면서도 친숙한 일상의 대상이 거의 예외없이 등장한다. 작은 캔버스에 동화적인 분위기로 비슷한 대상과 소재를 자유롭게 담아내는 방식이 거의 전 기간을 관통하고 있다. 수십년 활동해온 화가 중에는 시기별로 화풍이 크게 달라지거나 실험적인 작업에 심취하는 시기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 상대적으로 장욱진 화백은 일생 유사한 화풍을 견지하여 ‘일관성’이 특징으로 이야기 될 정도다. 일견 신선함과 다양성이 아쉬운 느낌도 없지 않지만 초기의 동화적인 분위기와 친근한 대상에 대한 애정을 평생동안 일관되게 유지한다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새 것 컴플렉스가 유난히 강할 창작예술계에서는 더욱 그러할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일까 그림 못지 않게 곳곳에 배치된 장욱진 화백의 말과 글에 눈이 갔다. “그림처럼 정확한 나의 분신은 없다. 난 나의 그림에 나를 고백하고 나를 녹여서 넣는다. “/ “사람은 언제나 어디서나 저항 속에 사는 것 같다. …나는 이 저항이야말로 자기의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다. “/ “한 작가의 개성적인 발상과 방법만이 그림의 기준이 된다. 개성적인 동시에 보편성을 가진 것이 아니어서는 안된다. 항상 자기의 언어를 가지는 동시에 동시대인의 공동한 언어임을 또한 망각해서는 아니된다.”/ “그림은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톡톡 튀어나온다. 마음으로부터….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이 맑은 거울이나 맑은 바다처럼 순수하게 비어 있어야 한다. 어린이의 마음처럼 조그만… 이런 텅 비워진 마음에는 모든 사물이 순수하게 비친다. 그런 마음이 되어야 붓을 든다.”

세번째 홀에는 상대적으로 실험적이고 불교적인 모티브가 강한 작품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참으로 놀라운 아름다움, 진眞진眞묘妙”라 이름붙여진 이 곳에는 그의 불교적 세계관과 정신세계가 드러나는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그와 더불어 유화의 형태가 아닌 동양화 풍의 먹그림도 이 시기에 등장한다. 먹을 사용하지만 전통적인 동양화와는 다른 유화식 붓터치가 내게는 다소 생경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진진묘는 장욱진 화백의 부인인 이순경 여사의 법명인데 실제로 장화백은 아내를 보살로 지칭할 정도로 존중하고 귀하게 여겼다 한다. 또한 인간과 동물, 자연과 산천이 함께 가족처럼 등장하는 그림을 통해 만물이 가족처럼 연계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덕수궁 돌담길을 끼고 정동교회, 정동극장 앞을 지나 이화여고로 이어지는 길은 유서깊은 문화지구로 젊은이들이 데이트 장소로 곧잘 오가던 곳이다. 하지만 미술관이나 주변 까페에는 젊은 세대보다 중년 및 노년의 사람들이 더 많이 눈에 띠었다. 평일의 업무 시간이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시간과 돈에 여유가 있는 세대의 나들이가 늘어나고 있는 현실의 반영이기도 할 테다. 고령화의 실상을 커피숍과 산책로에서 실감하게 되고 우리 또한 그런 상황을 뒷받침하는 일원이 되었다는 사실이 다소 어색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장욱진 화백의 그림을 관람하는 사람들도 대체로 중장년층이었던 것 같다. 오늘날 젊은 세대가 이런 형태의 그림에 어느 정도 정서적 공감을 할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어쩌면 까치와 나무 대신 로봇과 자동차가 주된 이미지가 되어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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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복룡 번역성경

신복룡 교수가 신구약 성경을 번역하고 그간 학연을 이어왔거나 관심을 보인 사람들에게 그 파일을 직접 보내주셨다. 구약과 신약, 천주교 판과 개신교 판의 네 개 파일로 이루어진 오랜 작업의 결과물을 보면서 감탄과 함께 깊은 감동을 느낀다. 성경을 통독하거나 필사하는 신자는 더러 있지만 번역을 한다는 것은 실천은 물론이고 생각을 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의 배후에는 라틴어 성경의 번역작업을 수행한 에라스무스와 루터가 있었고 이후 각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위클리프, 메튜 등의 역할이 컸다. 한국의 경우에도 로스와 이수정, 언더우드, 서경조 등이 성경 번역에 큰 역할을 담당했고 독자적인 성경번역을 수행한 개인이나 집단이 없지 않다. 성경이 정경 (canon) 으로서의 번역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 공적 권위를 지닌 위원회나 공회가 번역의 주체가 되는 것을 당연시해 왔지만 구체적인 번역작업을 수행한 분들의 헌신과 역량을 잊을 수는 없는 일이다.

비록 공식출판에까지 이르지 못했고 본인 스스로 번역이 아니라 ‘교감’이라고 표현했지만 성경의 개인번역이 시도된 것 자체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신교수는 신학적 논란에 개입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작업을 원칙으로 내세웠지만 이런 번역을 시도하게 된 내면의 문제의식, 기존 번역에 대한 미흡함이 없을 수 없고 군데 군데 고민의 흔적을 각주의 형태로 담고 있다. 가끔 과감한 독자적인 번역을 시도한 부분도 발견된다. 예컨대 요한복음의 첫 부분에 나오는 Logos를 삼위일체의 두 번째 자리인 “성자”(聖子)로 번역한 것을 들 수 있겠다. 영문판 Bible은 이를 “Word”라고 번역했고, 중국어 판본은 “도”(道)라고 번역했으며, 일본어 판본은 言(ことば)로 되어 있는 부분이다. ‘말씀’이라는 번역어는 매우 잘 된 선택일 수도 있고 종종 그렇게 해석되어져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단어의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성자라는 뜻으로 이해되는 것이 옳다는 자신의 견해를 분명히 하고 있다.

사실 성경의 번역은 늘 세계문명사의 중요한 계기적 사건이었다. 기원전 3세기 히브리어 구약이 희랍어로 번역되기 시작하여 70인역이 만들어졌고 이것이 기독교의 유럽전파의 주요한 기초가 되었다. 르네상스는 라틴어 정경이 각국의 언어로 번역됨으로써 말씀을 누구나 자기 언어로 접할 수 있게 된 종교혁명과 밀접하게 연동되어 일어난 대전환이었다. 성경이 독일어로, 불어로, 영어의 King James 판으로, 다시 미국의 NIV나 현대인을 위한 성경으로 번역되는 과정은 좁게는 번역의 역사이지만 크게는 세계종교의 보편사, 인류문명의 일대 전환을 수반한 사건이었다. 그런 흐름은 동아시아에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중기인 1790년대에 4복음서의 30% 정도가 번역된 [성경직해]가 간행되었으니 한국에서도 성경번역의 역사는 꽤 오래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성경번역 300년] 책에서는 중국 경교의 소개, 고려시대의 동방기독교 , 임진왜란에서의 천주교 수용 등을 ‘성경수용의 여명기’라고 서술하면서 성서번역의 역사를 최소한 300년 이전으로 소급할 것을 주장한다. 한글성경이 오늘과 같은 체제로 나타난 것은 19세기 말인데 번역자에 따라 용어선택이 달라 ‘하나님’과 ‘상제님’과 ‘천주’가 같이 쓰이고 ‘도’와 ‘말씀’이 같은 역어로 혼용되기도 했다. 성서해석학의 진전에 따라 용어의 통일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왔지만 지금도 신구교 사이에, 또 각 교단별로 사용되는 번역어가 다른 부분이 적지 않다. 보수적인 일부교단에서는 ‘성서무오설’을 번역본에도 적용하려 하지만 상이한 언어로의 번역에서 의미 변형과 왜곡의 문제를 피할 수 없어서 시대에 따라 늘 새로운 번역의 필요성이 대두될 수 밖에 없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신복룡 교수가 개인적으로 신구약 성경을 새롭게 교감하고 독자적인 번역작업을 수행한 것은 놀랍고 특기할 만한 사건이다. 신복룡 교수는 이미 [플루타르크 영웅전]과 [삼국지]를 다양한 원어와 판본들을 비교하면서 한국어 번역본을 출간한 바 있다. 그 이전에는 구한말 선교사들이 남긴 한국관련 기록들을 정확하게 번역소개하는 일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이런 작업들은 다양한 동서양 언어에 통달해야 함은 물론이고 상이한 시대의 문화, 언어관습, 문화의 전승과 교류에 대한 폭넓은 인문학적 이해가 수반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이번의 성경 번역에서도 신구교가 공동 번역한 [성서](서울 : 대한성서공회, 2001)와 한국 천주교의 [성경]. The New English Bible(NEB : Oxford/ Cambridge Version, 1970 )을 저본으로 삼고,The Holy Bible(New International Version : NIV, 2002), The Holy Bible(New Revised Standard Version : NRSV, 1991), [우리말 성경](두란노서원, 2004), 일본어 판본인 [聖書](東京 : 日本聖書協會, 2002), 중국어 판본인 [聖經](臺灣 : 聖經資源中心, 2017 : 和合本)을 참고하여 작업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오랜 시간과 신심이 담겨있을 이 작업이 더욱 새로운 의미와 영성의 진작에 기여할 것을 기대하며 신교수님의 수고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

activities

UN과 북한인권

북한인권문제를 논의하는 샤이오포럼이 13주년을 맞이해 12월 8일 발제와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유엔인권선언이 채택된 프랑스의 샤이오궁 이름을 따서 2011년에 시작된 이 포럼은 북한인권을 주제로 국제적인 연구자들의 소통과 쟁점분석, 그리고 자료구축을 목표로 한 것으로 통일연구원이 주관해 왔다. 김천식 통일연구원장과 제임스 히난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 서울사무소장이 축사를 했고 김영호 통일부장관의 축사가 대독되었다. 이 전문가 포럼에서 나는 첫 세션의 좌장역할을 맡았고 라운드 토론의 두번째 세션은 이신화 북한인권대사가 주관했다.

인권은 보편적이고 지구적이며 인류적 사안인데 북한인권은 늘 특수한 지역적 쟁점으로 간주되어 정치적 논란의 대상이 된다. 일반적인 인권단체는 북한인권을 그다지 주목하지 않고 북한인권단체는 보편적 인권의제에 무관심하다. 정치적으로도 인권 일반에 관심이 높은 진보진영이 북한인권에는 가급적 소리를 내지 않으려 하는데 비해 보수진영은 유난히 북한인권 의제에 관심을 쏟는다. 그래서 정권의 부침에 따라, 남북관계의 기복에 따라 북한인권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각도 널띠듯 오르 내린 것이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상대적으로 소홀했다고 평가받는 이 쟁점을 윤석열 정부에서 중요하게 부각시키는 것도 그런 흐름의 한 측면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국내의 그런 상황과는 별도로 북한인권은 국제사회에서 이미 주요하게 논의되어온 쟁점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유엔 인권 메커니즘을 통해 제기된 이 사안은 2003년 이후엔 유엔인권위원회 (현 유엔인권이사회)와 총회 차원에서 매년 결의안이 채택되고 있다.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이 임명되고 2013년에는 유엔인권조사위원회가 구성되었으며 COI 보고서가 채택되어 북한 정권의 책임을 추궁하는 내용까지 포함되었다. 또한 매4년 마다 UPR (보편적 정례보고) 방식을 통해 개별 국가의 인권관련 사항 진전 정도를 보고하고 평가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면 북한인권을 우리 스스로 특수화시키거나 로칼 의제로 축소시키는 것은 타당하지도 않고 지속가능하지도 않을 것은 분명하다.

첫 발제자인 북한인권네트워크의 권은경 대표는 최근 북한 내부의 변화상을 전하는 여러 정보와 자료들을 동원하여 북한에서도 제한적이지만 유의미한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음을 지적했다. ‘인권’ 문제가 야기되지 않도록 하려는 노력과 일부 법적 조치, 그리고 정책적인 변화도 확인되며 유엔이 강조하는 SDGs 에 대한 적극적 대응을 통해서도 유사한 움직임을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특히 COI 보고서를 전후한 변화가 확인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제에 대한 위협이나 남한의 정보유입에 대한 강한 거부나 통제가 강화되고 있는 현상도 주목됨을 지적했다. 두번째 발제를 한 이금순 박사는 3차례 이루어진 UPR 보고와 리뷰의 분석을 통해 북한의 보고, 국제사회가 북한에게 요구한 사항, 이에 대한 북한의 반응을 항목별로 세밀하게 검토했다. 세부 항목별로는 북한이 수용한 내용들도 적지 않다는 점이 확인되고, 심지어 북한이 한국의 UPR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리뷰를 한 사실도 나로선 새로 확인한 부분이다. 두 발표 모두 북한이 일괴암적으로 반응하기보다 세부적으로 상이한 반응을 보이는, 꽤 섬세한 대응전략을 구사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토론과정에서는 역시 북한의 진정성과 신뢰문제가 부각되었다. 국제사회의 요구를 수용하거나 법조항을 제정하는 부분적 개선노력과 반동사상배격법 같이 외부 정보나 문화에 대한 처벌의 강화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 어느 편이 북한체제의 실제 모습인지가 논란이었다. 또 최근 탈북자 숫자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 내부의 변화와 그 실질적인 향방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확인할 것인가도 과제로 부상했다. 2부 토론에서도 언급되었지만 북한인권관련 사안을 주도해온 탈북자 단체의 리더십이 고령화하고 분절화한 현실에서 정확한 실상 파악과 데이터 구축의 부족함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탈북자들의 관심이 그들의 정착과정과 국내에서의 인권문제로 확대되어가는 상황도 진지하게 고려할 일이다. 인권이란 의제가 포괄하는 영역이 다양한만큼 불균등하게 이루어지는 변화에 대해 주목하면서 섬세하고도 지속적인 대응이 필요하리라 여겨진다.

유엔에서의 결의안이나 인권 여론화가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 아닌가라는 문제제기나, 인권이 정치화되고 도구화되었다는 비난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북한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도 오랫동안 국제사회의 인권논의에 반발해왔다. 당분간 북핵 문제와 더불어 인권문제에 대해서도 중국, 러시아, 북한의 공동보조가 이어질 것이 예상된다. 그런데 인권의 보편성을 강조하고 이를 주도해온 미국과 유럽연합의 영향력과 진정성이 동요하고 있는 현실이 우려스럽다. 미국의 전 트럼프 정부 하에서 전형적으로 드러나듯 자국이익이 최우선시됨으로써 인권이나 환경 같은 지구적 문제가 도구화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여전히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유럽에서도 극우가 힘을 얻고 혐오문화가 확산된다는 뉴스를 무겁게 접한다. 한반도 안팎의 변화를 직시하고 인권의 다면성을 주의하면서 원칙과 현실, 강함과 부드러움, 속도조절의 지혜가 동반되어야 북한인권의 실질적인 진전에 도움이 되고 남북관계의 개선에도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 아닐까 싶다. 2024년에는 그런 변화를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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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사 문자동행전

서울대 화묵회가 주관하는 2023년 문자동행전이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서울대 문화관에서 열렸다. 매년 연례행사로 이루어지는 서예전인데 올해는 최치원의 시문을 중심으로 기획된 전시회다. 나는 지방에 있어 평일의 수업에 참석하지 못하고 있는데 예년에 비해 작품들이 더 풍성해지고 글씨도 단단해 진 느낌이다. 수업때문에 19일 하루 지킴이로 전시장을 지켰다.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는데 ‘冠嶽士 文字同行展’ 이라는 전시회 표제가 새삼 눈에 들어온다. 무엇보다 선비사 (士) 를 사용한 것이 새삼스러웠고 어떤 의미가 담겼을까 생각하게 된다. 글씨를 쓰는 사람이 모두 선비일리 없고, 또 현대사회에서 선비란 개념의 적합성을 둘러싼 여러 견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글씨를 쓰는 순간, 문장을 대하는 마음은 이전 선비의 그것과 같아야 한다는 뜻이 담겨있는 것 아닐까 싶다. 그래야 ‘문자동행’이라는 말도 살아난다. 문자와 더불어, 문자의 뜻과 함께 간다는 이 말도 곰곰 생각하니 예사로운 표현이 아니다.

나는 최치원의 ‘등윤주자화사상방’ 시와 굴원의 ‘어부사’ 두 점을 출품했다. 최치원의 시는 행서로 굴원의 글은 행초서로 써 보았다. 충분히 다듬어지지 못한 글씨이고 스스로 모자란 부분이 많이 느껴지지만 그래도 나름 애쓴 흔적이 담긴 작품이긴 하다. 세상사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시인으로서의 정신을 새롭게 하려는 최치원의 마음과 어부의 초탈한 인생관을 통해 삶의 여유를 강조한 굴원의 정신을 느껴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마치 가까이 가면 갈수록 꼭 그만큼 더 멀어지는 대상처럼 이들의 정신세계는 내가 미치지 어려운 곳에 가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일까 ‘문자동행’이라는 말이 ‘이들의 마음을 함께 느끼는가?’라고 묻는 물음인 듯하다.

수하 김길중 교수께서 오셔서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바드 엔칭연구소의 베이커 부소장을 통해 일전에 이야기를 들었고 서로 잘 알고 있다고 여겼는데 정작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는 처음이었다. 김교수님 글씨는 힘이 있고 필획이 유연하고 깔끔해서 아름다왔고 자작시를 출품하는 역량도 놀라왔다. 작년에 한글 작품을 전시했던 고희종 교수의 글씨도 필세가 좋고 ‘신독’이란 작품에서는 선비같은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장인성 교수의 ‘출몰자유진외경’이라는 작품에서는, 이전에도 그랬지만 자유롭고 도학적인 분위기의 멋스러움을 접한다. 회장인 양일모 교수의 글, 한참 선배인 권숙일 교수의 작품 역시 선비의 분위기와 학자로서의 개성을 느낄 수 있었고 김혜년, 권향숙, 김현미 님 등 오랜 연마로 다듬어진 작품을 보는 즐거움도 만만치 않았다. 운재 이승우 선생의 ‘천산 사야’는 글씨와 그림이 하나라는 것을 실감케 한다. 서법을 지키면서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작품인데 저런 경지에 이르려면 그만큼 많은 노력이 더해져야 할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터이다.

전시장엔 오랫만에 일부러 와주신 분들이 적지 않았다. 사회학과 원로교수인 한상진 교수가 이태리에서 잠시 방문한 연구자와 함께 들러주셨다. 최근 그림에 열심이신 심영희 교수께 전달하겠다 해서 녹음으로 작품 해설을 들려드리기도 했다. 김백영 교수는 화환을 들고 찾아와 축하해 주었고 아시아연구소의 민원정 교수는 커피 선물을 해 주었다. 곧 정년을 앞둔 김명환 교수도 방문해서 즐거운 이야기 나누었고 제자인 윤병훈은 세밀한 감상으로, 손명아는 맛있는 쿠키로 함께 해 주어 여러 관람자들과 나누는 기쁨을 가졌다. 김명환 교수는 도서관장 시절에 내 전시회 영상제작을 지원해주셨고 중앙도서관에 걸어 둔 ‘須讀五車書’ 작품을 내게 부탁하기도 하신 분이다. 여러모로 감사한 마음으로 선비로서 문자동행하는 생활을 계속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 좋은 전시였다.

life · 시공간 여행

오대산 등반

고등학교 시절 ‘벗’으로 만나 50년 가까이 우정을 이어온 친구들이 1박 2일의 오대산 여행을 했다. 다들 바쁘게 이곳 저곳에서 사느라 자주 만나기 어려웠는데 이제는 현직에서 물러났거나 아들에게 일을 넘겨주어 다소 여유가 생기기도 해서 가을 단풍 여행을 하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횡성에서 새로운 사업을 일구고 성공적으로 경영을 하고 있는 친구가 적극적으로 모든 숙박과 여정을 기획해 준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청량리에서 탄 강릉행 KTX 는 불과 1시간 만에 강원도 입구인 서원주에 우리를 내려 주었다. 이곳이 소금강으로 알려진 곳이라는데 나는 처음 가보는 곳이다. 짧은 시간에 서울의 번잡한 분위기와는 너무 다른 자연의 풍광으로 들어선 것이 선뜻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고보면 우리 일상이 너무 좁은 공간, 익숙한 둘레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쳇바퀴 돌 듯 한 것 아닐까 싶다. 마음만 먹으면 이처럼 광활하고 멋진 산들과 만나고 또 싱그러운 가을 하늘을 맛볼 수 있는데….

원주의 소금강은 과연 ‘작은 금강’이라 이름할 만했다. 산세도 바위도 강도 서로 잘 어우러져 아름다왔다. 무엇보다도 규모가 한 눈에 들어와 아담하고 포근했다. 얼마전까지만해도 먼 발치로 바라만 보았을 곳에 다리와 부교, 바위 옆 둘레길을 만들어 사람들이 높은 곳에서 경치를 맛보게 만들었다. 바위에 구멍을 뚫고 허공에 철제통로를 만든 기술 덕택에 한적한 시골이 좋은 관광지로 변모한 셈이다. 또 새로운 공법을 활용하여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데 비해 바위와 산의 모습을 크게 훼손시키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결국은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을 심산유곡에까지 닿게 만드는 것이니 친환경이라 말하기는 어려울 듯 싶다. 개발과 환경보존의 딜렘마를 이곳에서도 벗어나긴 힘들 듯 하다.

둘째날은 오대산 월정사를 거쳐 유명한 선재길을 걸었다. 십수년 전에 왔을 때에 비해보면 길도 잘 다듬어져 있고 단풍도 더 아름다운 느낌이지만 사람과 차량이 비교할 수 없이 많아졌다. 한국의 명산 대찰의 면모를 충분히 맛볼 수 있는 좋은 곳임은 분명한데 그만큼 몰려오는 인파가 남길 결과가 우려스럽기까지 하다. 우리 사회 중년과 노년세대의 경제력과 체력이 예전보다 훨씬 좋아진 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자리 같았다. 예전에는 주로 젊은 청년이나 학생들이 올라갔을 길을 이제 대부분 50대를 넘겼을 법한 중년의 사람들, 심지어 70대 이상으로 보이는 노인들이 왁자지껄 산길을 오르고 있다. 시끄럽고 유쾌한 말들 속에서 활력과 건강을 느끼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가 점점 노화되고 있는 모습을 접하는 느낌도 피하기 어려웠다.

평창의 한 호텔에서 숙박을 했다. 평창 올림픽 때 선수촌으로 건립한 건물을 개조한 듯 객실이 무척 많았다. 그 많은 방이 모두 동이 나 예약이 어려웠다는 신사장의 말처럼 이곳도 관광객, 여행객으로 넘쳐난다. 일에만 매몰되지 않고 가을의 풍광에 여유를 느끼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보면 우리 사회는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일을 하려해도 할 수 없는 사람들, 점차 존재의미를 잃어가는 부류들이 많아지는 현상의 한 단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스친다. 좋은 경험을 할 수 있게 배려해준 신언무 사장, 오랫동안 우정을 이어올 수 있는 친구들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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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평통과 평화통일

민주평통에서 발간하는 [평화통일] 2024년 신년호 인터뷰를 했다. 편집을 대행하고 있는 동아일보에서 연락이 온 것은 약 2주 전, 마침 당일 서울에 다른 일정이 있기에 수락했다. 신년호인데다가 단독인터뷰라 해서 다소 부담이 되는 바 없지 않았지만 자유로운 대화를 하기로 하고 30일 오후 충정로 동아일보 사옥을 방문했다.

이 작업을 담당한 김건희 기자는 평소 남북관계나 통일문제를 다루는 기자들과는 다소 다르게 자유로운 대화를 통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정치적이거나 논쟁적인 사안들 보다도 요즘 젊은 세대의 관심과 태도에 대한 진솔한 의견을 구하는 형태에서 반갑고 편했다. 김기자는 자기 스스로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관심이 많지만 마음 한켠에서는 북한과 ‘손절’하고 싶은 심리가 없지 않다는 솔직한 견해를 피력했다. 나는 요즘 젊은 세대의 그런 반응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고, 그 지점으로부터 새로운 발상과 기획을 추구해야 한다고 내 의견을 피력했다.

최근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북한은 한국과 다른 국가이자 다른 민족이라는 응답비율이 ‘단일민족 단일국가’를 지지하는 비율보다 높게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 세대의 북한에 대한 신뢰철회, 통일에 대한 관심저하는 이상한 것이 아니다. 나는 정서적인 거리감이 평화공존이나 새로운 미래관계를 형성해가는데 반드시 부정적이지 않음을 역설했다. 친척관계나 친구관계에서도 나타나듯 지나치게 정서적이거나 동질적인 친밀성을 강조하면 그 폭이 협소해지거나 지속불가능해지는 경우가 많다. 젊은 세대에게서 보이는 적절한 심리적 거리감, 때로는 냉정한 관계설정이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틀을 형성하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할 측면도 분명히 있다.

청년들의 이런 반응과 그 맥락은 다르지만 비슷한 역할과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주체가 해외한인이다.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그 절대수도 적지 않지만 모국인구 대비 비율로 보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들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지만, 각자가 거주하는 현지국가의 문화와 정치, 경제활동과 가치체계에 따라 제각기 다른 감각과 연관을 보인다. 이런 다양성과 다중성, 때론 갈등과 긴장을 수반할 수도 있는 상이한 시각들이 긴 맥락에서 보면 큰 자산임을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 헌법기관으로서 민주평통이 단순한 정책홍보 역할을 넘어서 이런 글로벌한 플랫폼을 제공하는 기능을 수행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전문가나 지식인으로서는 이런 변화들을 넘어 가능한 미래비전에 대한 깊은 숙고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2024년은 국제환경의 변화나 북한내부의 변화, 한국사회 내부의 변화 등 모든 점에서 이전에 비해 불확실성과 긴장이 높아질 개연성이 있다. 유럽과 중동에서 진행 중인 전쟁의 여파도 지속될 것이고 북핵위협과 양안긴장으로 한반도 주변의 긴장감도 높아질 것이다. 한국의 경제적 어려움이 커지고 정치적 갈등이 심화되면서 우리 사회내부의 여유와 관용폭도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미래를 새롭게 구축하고 바라볼 것인가, 어떤 공동체의 꿈을 창출할 수 있을까 큰 숙제이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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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한국문화원

브라질 한국문화원 김철홍 원장께서 그곳 활동과 관련 자문회의를 개최하고 내게 참석을 부탁하셨다. 현지 사정을 잘 알지 못하지만 코리안 디아스포라 네트워크와 글로벌한 한국문화의 확산에 관심을 갖고 있던 터라 기꺼이 참여했다. 오랫만에 대면한 반가움과 함께 그곳의 현지 상황을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짐작했던 바와 같이 K-Pop에 대한 관심이 한국에 대한 현지의 가장 큰 관심이라 했다. 흥미로운 것은 음악 못지 않게 한국어와 한식에 대한 관심이 크다는 사실이었다. 한국어는 세종학당 등을 통해 정부 차원의 노력이 지속된 것이어서 특별히 새로울 것은 아니겠으나 현지인, 특히 젊은 세대들의 자발적인 한국어 습득열기가 높다는 것은 분명 새로운 현상이다. K-Pop 컨텐츠는 물론이고 주요 인물들이 셀럽화하고 그 메시지가 지구적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작금의 상황은, 정부와 기업이 주도하던 문화확산과는 분명 구별되는 21세기적 소프트파워라 하겠다.

한식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것은 다소 새로운 소식이었다. 십여년 전 한국음식의 글로벌화를 정부가 주도했던 적이 있었지만 그다지 좋은 평가나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던 것이 기억에 남아있었기 때문일테다. 이제 한식 역시 전반적인 한국문화의 일환으로 자생적인 뿌리를 내리는 징조인 듯해서 반가왔다. 문화원 차원에서는 한식에 대한 현지사회의 기대에 부응해줄 전문가를 찾기가 어려운 문제가 있는 모양이다. 영상이나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제공해줄 수 있는 한류 컨텐츠와 미각으로 직접 체험해야하는 음식의 차원은 같지 않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떤 점에서 음식은 일상적인 삶과 더욱 밀접한 것인만큼 교민 전체가 문화확산의 주역이 될 수 있는 개연성도 커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자문회의는 줌으로 진행하면서 배상범 주상파울루 무역관장(현지 참석), 김레다 중앙대교수(온라인 참석), 정길화 한국국제문화교류원장(온라인 참석)이 함께 했다. 세 분 모두 나와는 달리 브라질 현지에서의 경험이 풍부하신 분들이어서 여러 유익한 조언과 의견개진이 있었다. 브라질 현지 교민사회도 세대간 계층간 차이가 커지고 있는데다가 브라질 현지인의 관심에도 부응해야 하는 여러 과제와 어려움을 다소나마 느낀 유익한 자리였다. 해외 현장에서 수고하는 분들의 건승을 비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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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력과 사상

월봉저작상 운영위원회 실무를 총괄하고 있는 이선민 전 조선일보 문화부장의 서울대 박사학위수여를 축하하는 모임을 10월 25일 조선호텔 중식당에서 가졌다. 심사위원인 이기동 교수, 도진순 교수, 나를 위시하여 한경구 교수, 이철우 교수, 일조각 김시연 사장도 자리를 함께 했다. 학부에서 한국사를 전공한데다 문화부기자로서 역사관련 지식과 정보가 풍부하고 필력이 좋은 것이 연구의 큰 자산이 되었겠지만, 뒤늦게 자료를 찾아 학술논문을 작성하고 학계의 까다롭고 성가신 심사절차를 밟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어려운 과정을 통과하여 영예의 학위를 수여받은 것에 모두 경의와 축하를 보냈다.

돌아와 논문을 살펴보니 제목이 “대한제국 후기 정치세력과 민족운동 연구”라 되어 있다. 1904년 이후의 수년간을 ‘대한제국 후기’라 이름한 것이 우선 눈에 띤다. 이기동 교수도 잠시 언급했지만 대한제국 자체가 10여년 짧은 시기인데 전기, 후기를 나눌만큼 충분한 근거가 있을지 논란도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애국계몽운동기 또는 국권상실기 등으로 불리우던 시기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줌으로써 시대상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게 해 준 것이 신선한 느낌도 없지 않다. 이박사는 이 시기에 한국의 새로운 정치세력이 성장, 분화되었음을 드러내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논문에서 다룬 주제와 쟁점들 중에는 나도 더러 다루어본 내용들이 적지 않다. 종교로서의 동학과 1894년의 농민전쟁, 진보회와 일진회, 안창호와 미주국민회, 천도교의 성격과 지향 등은 이런 저런 계기로 논문도 쓰고 발표도 했던 주제다. 특히 전북대 시절엔 호남지역의 지방사와 농민사를 천착하는 한편으로 한국근대사상사에도 관심을 가졌던 바여서 이 논문이 다루는 쟁점들이 낯설지 않았다. 다만 그 시절의 나는 정치사나 국가사보다 운동사나 지방사에 좀더 주목했던 탓에 이박사의 논문이 주목한 큰 흐름에 대해선 다소 관심이 덜 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박사 논문은 대한제국 후기의 ‘신흥 정치세력’의 등장과 이들의 ‘민족운동론’을 검토하는 것이다. 신분제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향반,서얼,중인층이 부상할 수 있었고 지역적으로는 평안,함경지방의 중앙진출이 가능해져 새로운 정치세력이 대두될 조건이 마련되었다고 보았다. 이런 배경에서 안창호와 국민회의 재미한인, 손병희 천도교와 동학 세력, 그리고 대종교로 이어지는 개신유학자 집단의 세 정치세력이 유의미하게 형성, 분화되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들 세력들의 지향을 각기 국민국가론, 부강발전론, 국수보전론으로 개념화해서 대비한다. 격동기의 흐름을 비교적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는 분석틀이라 할 만하다.

흥미롭고 중요한 연구라 생각되지만 ‘정치세력’ 형성의 실상에 대한 정밀한 분석이 좀더 이루어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다. 상이한 ‘민족운동론’의 분화는 기존 연구들에서 언급된 내용과 크게 다른 바가 아닌 듯 해서 개인적으로 정치세력의 기반에 대한 설명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나도 일본의 도막파 세력과 한국의 개화파 세력을 대비하려 시도한 바 있었는데 ‘사회세력’의 분석이라 할만한 자료확보가 일본에 비해 턱없이 부족해 뜻을 이루지 못한 경험이 있다. ‘정치세력’이라 이름할 만한 사회세력의 형성을 논하려면 그 정치적 지향이나 사상적 동향보다도 핵심 인물들의 결집도, 광범위한 사회적 네트워크, 동원가능한 물질적 자원, 외부세력과의 연결, 내부의 정세판단 등이 소상히 확인되어야 한다. 세력화의 수준, 조직화의 정도, 물적 동원 역량 등을 평가할 수 있을 종합적인 변수분석이 이루어져야만 사회적 세력분석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논문도 국민회, 천도교, 대종교라는 조직기반과 사람들의 네트워크를 밝히고 있고 안창호, 손병희, 신채호 등 주도적 인물의 영향력을 언급하고 있기에 그런 문제의식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세력화의 수준이나 정도, 역량의 입체적 분석에 이르기에는 미시적 자료나 인물간 네트워크의 강도, 자원동원의 수준과 실제 상황에 대해 객관적인 분석이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렵다. 어쩌면 정치세력과 ‘민족운동론’을 연결시키려는 틀 자체가 정치세력화의 분석보다 민족운동론의 유형화로 이어지도록 만들었을지 모르겠다. 사상적 지향과 관련해서도 ‘민족운동’이라는 틀을 넘어서는 스펙트럼을 구상할 수 없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오랜 중화적 질서에서 벗어나 새로운 국제질서로 이행하는 격동기에는 국가와 민족의 뱔견 못지 않게 세계와 개인의 발견도 결정적인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안창호와 신채호의 차이를 국민국가론과 국수보전론으로 대비하는 틀을 넘어서 자유주의와 국가주의의 긴장이 이 즈음 시작되었으리라 여겨지는 사상적 분화의 계기에 대해서도 좀더 천착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향후 이박사의 활발한 연구활동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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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의식과 공격성

역사학자 임지현 교수께서 조선일보에 쓴 컬럼을 보내주셨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 역사의 복수는 무섭다”는 제목을 단, 최근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상황을 다룬 글이다. 임교수는 내게 ‘잡문’이라 했지만 내용의 무게는 만만치 않다.

이스라엘이 건국 직후 홀로코스트보다 바르샤바 게토봉기를 더욱 부각시켰던 사실에 이 글은 주목한다. 나찌의 폭력 앞에 수백만이 희생당한 홀로코스트 비극은 유태인의 가장 분명한 상징이 되었지만 새 국가 건설을 주도한 사람들은 이것을 건국정신으로 내세우기엔 부적합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무기력한 비극적 희생서사보다 고대 마사다 영웅신화를 떠올리게 하는 1943년의 봉기를 더욱 부각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임교수는 이 두 역사적 경험을 기억하는 태도 속에 피해자 정체성과 가해자 심성이 공존함을 지적했다. 피해자의식이 가해자 심성에 정당성을 부여해 ‘역사’를 앞세운 복수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 작금의 상황이라는 분석인데 일견 공감이 간다.

홀로코스트를 겪었던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이웃에게 가해적 군사행동을 주저하지 않는 현실은 분명 역설적이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이스라엘 특유의 이상행동이라 볼 수는 없다. 세계 곳곳에서 희생자 감정을 앞세운 혐오와 배타의 움직임을 찾아보기는 어렵지 않다. 임교수는 이런 변형된 공격성이 한국에서도 나타날 수 있음을 우려한다. 오랫동안 한국의 민족주의는 공격성과는 거리가 멀다고 여겨져왔기에 그런 우려가 생경하게 느껴지는 사람도 적지 않을 터이다. 한국사 연구자들 사이에는 그런 관점이 강하다. 하지만 한국민족주의의 종족성, 공격성, 배타성을 지적하는 글들도 꾸준히 증가해왔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민족주의에 평화지향적인 면모가 있는 것도 분명하지만 피해자로서의 경험을 내세워 거친 공격성을 정당화하려는 경향도 종종 드러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핵무력을 강조하면서 공격적 군사주의 노선을 견지하는 북한의 존재는 한국의 민족주의를 모순적이고 양가적인 것으로 만드는 주요한 변수다.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이면서도 연합군의 반격에 초토화되었던 전쟁피해 경험을 북한은 지금도 체제방어의 주요한 논리로 활용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한국사회에는 전쟁으로 가족과 재산을 잃고 고향을 등지고 부모와 생이별을 해야 했던 사람들이 많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커질 때마다 당위적인 평화론이나 단일민족론으로 치유되기 어려운 피해자 감정을 확인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독립운동사, 한국현대사를 둘러싼 논란과 갈등의 바탕에는 수십년간 해소되지 않은 채 잠복해 있는 정서를 어떻게 기억하고 전승할 것인가에 대한 복잡하고도 결이 다른 지향이 혼재하고 있는 것이다.

남북한 화해와 통합의 과정에서 민족감정의 사회적 동원은 필수적인 요소가 될 것이다. 그러나 희생자 정체성을 앞세운 배타성과 공격성이 낯설지 않게 드러나는 오늘, 우리의 집합의식을 민주적으로 규율하고 고양시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다. 피해자 의식이 가해자 심성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려면 자유민주주의라는 헌법적 원리를 강조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다만 그것을 명분이나 슬로건으로 내세우는 것만으론 충분할 수 없다. 개성과 자율, 인권과 다양성이 몸에 밴 21세기 젊은 세대들의 생활감각을 남북한의 평화와 통합의 동력으로 잇는 실질적이고 다면적인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전쟁과 분단, 대립과 불신, 기대와 배반의 뒤틀린 경험을 혐오와 증오의 확대재생산이 아닌 상생과 통일의 동력으로 전환시킬 방안을 찾는 것 – 우리 앞에 놓여진 중요한 정치적 과제이자 사상적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