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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과 북한인권

북한인권문제를 논의하는 샤이오포럼이 13주년을 맞이해 12월 8일 발제와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유엔인권선언이 채택된 프랑스의 샤이오궁 이름을 따서 2011년에 시작된 이 포럼은 북한인권을 주제로 국제적인 연구자들의 소통과 쟁점분석, 그리고 자료구축을 목표로 한 것으로 통일연구원이 주관해 왔다. 김천식 통일연구원장과 제임스 히난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 서울사무소장이 축사를 했고 김영호 통일부장관의 축사가 대독되었다. 이 전문가 포럼에서 나는 첫 세션의 좌장역할을 맡았고 라운드 토론의 두번째 세션은 이신화 북한인권대사가 주관했다.

인권은 보편적이고 지구적이며 인류적 사안인데 북한인권은 늘 특수한 지역적 쟁점으로 간주되어 정치적 논란의 대상이 된다. 일반적인 인권단체는 북한인권을 그다지 주목하지 않고 북한인권단체는 보편적 인권의제에 무관심하다. 정치적으로도 인권 일반에 관심이 높은 진보진영이 북한인권에는 가급적 소리를 내지 않으려 하는데 비해 보수진영은 유난히 북한인권 의제에 관심을 쏟는다. 그래서 정권의 부침에 따라, 남북관계의 기복에 따라 북한인권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각도 널띠듯 오르 내린 것이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상대적으로 소홀했다고 평가받는 이 쟁점을 윤석열 정부에서 중요하게 부각시키는 것도 그런 흐름의 한 측면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국내의 그런 상황과는 별도로 북한인권은 국제사회에서 이미 주요하게 논의되어온 쟁점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유엔 인권 메커니즘을 통해 제기된 이 사안은 2003년 이후엔 유엔인권위원회 (현 유엔인권이사회)와 총회 차원에서 매년 결의안이 채택되고 있다.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이 임명되고 2013년에는 유엔인권조사위원회가 구성되었으며 COI 보고서가 채택되어 북한 정권의 책임을 추궁하는 내용까지 포함되었다. 또한 매4년 마다 UPR (보편적 정례보고) 방식을 통해 개별 국가의 인권관련 사항 진전 정도를 보고하고 평가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면 북한인권을 우리 스스로 특수화시키거나 로칼 의제로 축소시키는 것은 타당하지도 않고 지속가능하지도 않을 것은 분명하다.

첫 발제자인 북한인권네트워크의 권은경 대표는 최근 북한 내부의 변화상을 전하는 여러 정보와 자료들을 동원하여 북한에서도 제한적이지만 유의미한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음을 지적했다. ‘인권’ 문제가 야기되지 않도록 하려는 노력과 일부 법적 조치, 그리고 정책적인 변화도 확인되며 유엔이 강조하는 SDGs 에 대한 적극적 대응을 통해서도 유사한 움직임을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특히 COI 보고서를 전후한 변화가 확인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제에 대한 위협이나 남한의 정보유입에 대한 강한 거부나 통제가 강화되고 있는 현상도 주목됨을 지적했다. 두번째 발제를 한 이금순 박사는 3차례 이루어진 UPR 보고와 리뷰의 분석을 통해 북한의 보고, 국제사회가 북한에게 요구한 사항, 이에 대한 북한의 반응을 항목별로 세밀하게 검토했다. 세부 항목별로는 북한이 수용한 내용들도 적지 않다는 점이 확인되고, 심지어 북한이 한국의 UPR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리뷰를 한 사실도 나로선 새로 확인한 부분이다. 두 발표 모두 북한이 일괴암적으로 반응하기보다 세부적으로 상이한 반응을 보이는, 꽤 섬세한 대응전략을 구사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토론과정에서는 역시 북한의 진정성과 신뢰문제가 부각되었다. 국제사회의 요구를 수용하거나 법조항을 제정하는 부분적 개선노력과 반동사상배격법 같이 외부 정보나 문화에 대한 처벌의 강화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 어느 편이 북한체제의 실제 모습인지가 논란이었다. 또 최근 탈북자 숫자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 내부의 변화와 그 실질적인 향방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확인할 것인가도 과제로 부상했다. 2부 토론에서도 언급되었지만 북한인권관련 사안을 주도해온 탈북자 단체의 리더십이 고령화하고 분절화한 현실에서 정확한 실상 파악과 데이터 구축의 부족함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탈북자들의 관심이 그들의 정착과정과 국내에서의 인권문제로 확대되어가는 상황도 진지하게 고려할 일이다. 인권이란 의제가 포괄하는 영역이 다양한만큼 불균등하게 이루어지는 변화에 대해 주목하면서 섬세하고도 지속적인 대응이 필요하리라 여겨진다.

유엔에서의 결의안이나 인권 여론화가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 아닌가라는 문제제기나, 인권이 정치화되고 도구화되었다는 비난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북한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도 오랫동안 국제사회의 인권논의에 반발해왔다. 당분간 북핵 문제와 더불어 인권문제에 대해서도 중국, 러시아, 북한의 공동보조가 이어질 것이 예상된다. 그런데 인권의 보편성을 강조하고 이를 주도해온 미국과 유럽연합의 영향력과 진정성이 동요하고 있는 현실이 우려스럽다. 미국의 전 트럼프 정부 하에서 전형적으로 드러나듯 자국이익이 최우선시됨으로써 인권이나 환경 같은 지구적 문제가 도구화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여전히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유럽에서도 극우가 힘을 얻고 혐오문화가 확산된다는 뉴스를 무겁게 접한다. 한반도 안팎의 변화를 직시하고 인권의 다면성을 주의하면서 원칙과 현실, 강함과 부드러움, 속도조절의 지혜가 동반되어야 북한인권의 실질적인 진전에 도움이 되고 남북관계의 개선에도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 아닐까 싶다. 2024년에는 그런 변화를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activities · life · 오늘의 화두

관악사 문자동행전

서울대 화묵회가 주관하는 2023년 문자동행전이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서울대 문화관에서 열렸다. 매년 연례행사로 이루어지는 서예전인데 올해는 최치원의 시문을 중심으로 기획된 전시회다. 나는 지방에 있어 평일의 수업에 참석하지 못하고 있는데 예년에 비해 작품들이 더 풍성해지고 글씨도 단단해 진 느낌이다. 수업때문에 19일 하루 지킴이로 전시장을 지켰다.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는데 ‘冠嶽士 文字同行展’ 이라는 전시회 표제가 새삼 눈에 들어온다. 무엇보다 선비사 (士) 를 사용한 것이 새삼스러웠고 어떤 의미가 담겼을까 생각하게 된다. 글씨를 쓰는 사람이 모두 선비일리 없고, 또 현대사회에서 선비란 개념의 적합성을 둘러싼 여러 견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글씨를 쓰는 순간, 문장을 대하는 마음은 이전 선비의 그것과 같아야 한다는 뜻이 담겨있는 것 아닐까 싶다. 그래야 ‘문자동행’이라는 말도 살아난다. 문자와 더불어, 문자의 뜻과 함께 간다는 이 말도 곰곰 생각하니 예사로운 표현이 아니다.

나는 최치원의 ‘등윤주자화사상방’ 시와 굴원의 ‘어부사’ 두 점을 출품했다. 최치원의 시는 행서로 굴원의 글은 행초서로 써 보았다. 충분히 다듬어지지 못한 글씨이고 스스로 모자란 부분이 많이 느껴지지만 그래도 나름 애쓴 흔적이 담긴 작품이긴 하다. 세상사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시인으로서의 정신을 새롭게 하려는 최치원의 마음과 어부의 초탈한 인생관을 통해 삶의 여유를 강조한 굴원의 정신을 느껴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마치 가까이 가면 갈수록 꼭 그만큼 더 멀어지는 대상처럼 이들의 정신세계는 내가 미치지 어려운 곳에 가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일까 ‘문자동행’이라는 말이 ‘이들의 마음을 함께 느끼는가?’라고 묻는 물음인 듯하다.

수하 김길중 교수께서 오셔서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바드 엔칭연구소의 베이커 부소장을 통해 일전에 이야기를 들었고 서로 잘 알고 있다고 여겼는데 정작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는 처음이었다. 김교수님 글씨는 힘이 있고 필획이 유연하고 깔끔해서 아름다왔고 자작시를 출품하는 역량도 놀라왔다. 작년에 한글 작품을 전시했던 고희종 교수의 글씨도 필세가 좋고 ‘신독’이란 작품에서는 선비같은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장인성 교수의 ‘출몰자유진외경’이라는 작품에서는, 이전에도 그랬지만 자유롭고 도학적인 분위기의 멋스러움을 접한다. 회장인 양일모 교수의 글, 한참 선배인 권숙일 교수의 작품 역시 선비의 분위기와 학자로서의 개성을 느낄 수 있었고 김혜년, 권향숙, 김현미 님 등 오랜 연마로 다듬어진 작품을 보는 즐거움도 만만치 않았다. 운재 이승우 선생의 ‘천산 사야’는 글씨와 그림이 하나라는 것을 실감케 한다. 서법을 지키면서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작품인데 저런 경지에 이르려면 그만큼 많은 노력이 더해져야 할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터이다.

전시장엔 오랫만에 일부러 와주신 분들이 적지 않았다. 사회학과 원로교수인 한상진 교수가 이태리에서 잠시 방문한 연구자와 함께 들러주셨다. 최근 그림에 열심이신 심영희 교수께 전달하겠다 해서 녹음으로 작품 해설을 들려드리기도 했다. 김백영 교수는 화환을 들고 찾아와 축하해 주었고 아시아연구소의 민원정 교수는 커피 선물을 해 주었다. 곧 정년을 앞둔 김명환 교수도 방문해서 즐거운 이야기 나누었고 제자인 윤병훈은 세밀한 감상으로, 손명아는 맛있는 쿠키로 함께 해 주어 여러 관람자들과 나누는 기쁨을 가졌다. 김명환 교수는 도서관장 시절에 내 전시회 영상제작을 지원해주셨고 중앙도서관에 걸어 둔 ‘須讀五車書’ 작품을 내게 부탁하기도 하신 분이다. 여러모로 감사한 마음으로 선비로서 문자동행하는 생활을 계속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 좋은 전시였다.

life · 시공간 여행

오대산 등반

고등학교 시절 ‘벗’으로 만나 50년 가까이 우정을 이어온 친구들이 1박 2일의 오대산 여행을 했다. 다들 바쁘게 이곳 저곳에서 사느라 자주 만나기 어려웠는데 이제는 현직에서 물러났거나 아들에게 일을 넘겨주어 다소 여유가 생기기도 해서 가을 단풍 여행을 하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횡성에서 새로운 사업을 일구고 성공적으로 경영을 하고 있는 친구가 적극적으로 모든 숙박과 여정을 기획해 준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청량리에서 탄 강릉행 KTX 는 불과 1시간 만에 강원도 입구인 서원주에 우리를 내려 주었다. 이곳이 소금강으로 알려진 곳이라는데 나는 처음 가보는 곳이다. 짧은 시간에 서울의 번잡한 분위기와는 너무 다른 자연의 풍광으로 들어선 것이 선뜻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고보면 우리 일상이 너무 좁은 공간, 익숙한 둘레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쳇바퀴 돌 듯 한 것 아닐까 싶다. 마음만 먹으면 이처럼 광활하고 멋진 산들과 만나고 또 싱그러운 가을 하늘을 맛볼 수 있는데….

원주의 소금강은 과연 ‘작은 금강’이라 이름할 만했다. 산세도 바위도 강도 서로 잘 어우러져 아름다왔다. 무엇보다도 규모가 한 눈에 들어와 아담하고 포근했다. 얼마전까지만해도 먼 발치로 바라만 보았을 곳에 다리와 부교, 바위 옆 둘레길을 만들어 사람들이 높은 곳에서 경치를 맛보게 만들었다. 바위에 구멍을 뚫고 허공에 철제통로를 만든 기술 덕택에 한적한 시골이 좋은 관광지로 변모한 셈이다. 또 새로운 공법을 활용하여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데 비해 바위와 산의 모습을 크게 훼손시키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결국은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을 심산유곡에까지 닿게 만드는 것이니 친환경이라 말하기는 어려울 듯 싶다. 개발과 환경보존의 딜렘마를 이곳에서도 벗어나긴 힘들 듯 하다.

둘째날은 오대산 월정사를 거쳐 유명한 선재길을 걸었다. 십수년 전에 왔을 때에 비해보면 길도 잘 다듬어져 있고 단풍도 더 아름다운 느낌이지만 사람과 차량이 비교할 수 없이 많아졌다. 한국의 명산 대찰의 면모를 충분히 맛볼 수 있는 좋은 곳임은 분명한데 그만큼 몰려오는 인파가 남길 결과가 우려스럽기까지 하다. 우리 사회 중년과 노년세대의 경제력과 체력이 예전보다 훨씬 좋아진 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자리 같았다. 예전에는 주로 젊은 청년이나 학생들이 올라갔을 길을 이제 대부분 50대를 넘겼을 법한 중년의 사람들, 심지어 70대 이상으로 보이는 노인들이 왁자지껄 산길을 오르고 있다. 시끄럽고 유쾌한 말들 속에서 활력과 건강을 느끼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가 점점 노화되고 있는 모습을 접하는 느낌도 피하기 어려웠다.

평창의 한 호텔에서 숙박을 했다. 평창 올림픽 때 선수촌으로 건립한 건물을 개조한 듯 객실이 무척 많았다. 그 많은 방이 모두 동이 나 예약이 어려웠다는 신사장의 말처럼 이곳도 관광객, 여행객으로 넘쳐난다. 일에만 매몰되지 않고 가을의 풍광에 여유를 느끼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보면 우리 사회는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일을 하려해도 할 수 없는 사람들, 점차 존재의미를 잃어가는 부류들이 많아지는 현상의 한 단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스친다. 좋은 경험을 할 수 있게 배려해준 신언무 사장, 오랫동안 우정을 이어올 수 있는 친구들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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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평통과 평화통일

민주평통에서 발간하는 [평화통일] 2024년 신년호 인터뷰를 했다. 편집을 대행하고 있는 동아일보에서 연락이 온 것은 약 2주 전, 마침 당일 서울에 다른 일정이 있기에 수락했다. 신년호인데다가 단독인터뷰라 해서 다소 부담이 되는 바 없지 않았지만 자유로운 대화를 하기로 하고 30일 오후 충정로 동아일보 사옥을 방문했다.

이 작업을 담당한 김건희 기자는 평소 남북관계나 통일문제를 다루는 기자들과는 다소 다르게 자유로운 대화를 통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정치적이거나 논쟁적인 사안들 보다도 요즘 젊은 세대의 관심과 태도에 대한 진솔한 의견을 구하는 형태에서 반갑고 편했다. 김기자는 자기 스스로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관심이 많지만 마음 한켠에서는 북한과 ‘손절’하고 싶은 심리가 없지 않다는 솔직한 견해를 피력했다. 나는 요즘 젊은 세대의 그런 반응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고, 그 지점으로부터 새로운 발상과 기획을 추구해야 한다고 내 의견을 피력했다.

최근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북한은 한국과 다른 국가이자 다른 민족이라는 응답비율이 ‘단일민족 단일국가’를 지지하는 비율보다 높게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 세대의 북한에 대한 신뢰철회, 통일에 대한 관심저하는 이상한 것이 아니다. 나는 정서적인 거리감이 평화공존이나 새로운 미래관계를 형성해가는데 반드시 부정적이지 않음을 역설했다. 친척관계나 친구관계에서도 나타나듯 지나치게 정서적이거나 동질적인 친밀성을 강조하면 그 폭이 협소해지거나 지속불가능해지는 경우가 많다. 젊은 세대에게서 보이는 적절한 심리적 거리감, 때로는 냉정한 관계설정이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틀을 형성하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할 측면도 분명히 있다.

청년들의 이런 반응과 그 맥락은 다르지만 비슷한 역할과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주체가 해외한인이다.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그 절대수도 적지 않지만 모국인구 대비 비율로 보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들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지만, 각자가 거주하는 현지국가의 문화와 정치, 경제활동과 가치체계에 따라 제각기 다른 감각과 연관을 보인다. 이런 다양성과 다중성, 때론 갈등과 긴장을 수반할 수도 있는 상이한 시각들이 긴 맥락에서 보면 큰 자산임을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 헌법기관으로서 민주평통이 단순한 정책홍보 역할을 넘어서 이런 글로벌한 플랫폼을 제공하는 기능을 수행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전문가나 지식인으로서는 이런 변화들을 넘어 가능한 미래비전에 대한 깊은 숙고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2024년은 국제환경의 변화나 북한내부의 변화, 한국사회 내부의 변화 등 모든 점에서 이전에 비해 불확실성과 긴장이 높아질 개연성이 있다. 유럽과 중동에서 진행 중인 전쟁의 여파도 지속될 것이고 북핵위협과 양안긴장으로 한반도 주변의 긴장감도 높아질 것이다. 한국의 경제적 어려움이 커지고 정치적 갈등이 심화되면서 우리 사회내부의 여유와 관용폭도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미래를 새롭게 구축하고 바라볼 것인가, 어떤 공동체의 꿈을 창출할 수 있을까 큰 숙제이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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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한국문화원

브라질 한국문화원 김철홍 원장께서 그곳 활동과 관련 자문회의를 개최하고 내게 참석을 부탁하셨다. 현지 사정을 잘 알지 못하지만 코리안 디아스포라 네트워크와 글로벌한 한국문화의 확산에 관심을 갖고 있던 터라 기꺼이 참여했다. 오랫만에 대면한 반가움과 함께 그곳의 현지 상황을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짐작했던 바와 같이 K-Pop에 대한 관심이 한국에 대한 현지의 가장 큰 관심이라 했다. 흥미로운 것은 음악 못지 않게 한국어와 한식에 대한 관심이 크다는 사실이었다. 한국어는 세종학당 등을 통해 정부 차원의 노력이 지속된 것이어서 특별히 새로울 것은 아니겠으나 현지인, 특히 젊은 세대들의 자발적인 한국어 습득열기가 높다는 것은 분명 새로운 현상이다. K-Pop 컨텐츠는 물론이고 주요 인물들이 셀럽화하고 그 메시지가 지구적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작금의 상황은, 정부와 기업이 주도하던 문화확산과는 분명 구별되는 21세기적 소프트파워라 하겠다.

한식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것은 다소 새로운 소식이었다. 십여년 전 한국음식의 글로벌화를 정부가 주도했던 적이 있었지만 그다지 좋은 평가나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던 것이 기억에 남아있었기 때문일테다. 이제 한식 역시 전반적인 한국문화의 일환으로 자생적인 뿌리를 내리는 징조인 듯해서 반가왔다. 문화원 차원에서는 한식에 대한 현지사회의 기대에 부응해줄 전문가를 찾기가 어려운 문제가 있는 모양이다. 영상이나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제공해줄 수 있는 한류 컨텐츠와 미각으로 직접 체험해야하는 음식의 차원은 같지 않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떤 점에서 음식은 일상적인 삶과 더욱 밀접한 것인만큼 교민 전체가 문화확산의 주역이 될 수 있는 개연성도 커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자문회의는 줌으로 진행하면서 배상범 주상파울루 무역관장(현지 참석), 김레다 중앙대교수(온라인 참석), 정길화 한국국제문화교류원장(온라인 참석)이 함께 했다. 세 분 모두 나와는 달리 브라질 현지에서의 경험이 풍부하신 분들이어서 여러 유익한 조언과 의견개진이 있었다. 브라질 현지 교민사회도 세대간 계층간 차이가 커지고 있는데다가 브라질 현지인의 관심에도 부응해야 하는 여러 과제와 어려움을 다소나마 느낀 유익한 자리였다. 해외 현장에서 수고하는 분들의 건승을 비는 마음이다.  

activities · 오늘의 화두

세력과 사상

월봉저작상 운영위원회 실무를 총괄하고 있는 이선민 전 조선일보 문화부장의 서울대 박사학위수여를 축하하는 모임을 10월 25일 조선호텔 중식당에서 가졌다. 심사위원인 이기동 교수, 도진순 교수, 나를 위시하여 한경구 교수, 이철우 교수, 일조각 김시연 사장도 자리를 함께 했다. 학부에서 한국사를 전공한데다 문화부기자로서 역사관련 지식과 정보가 풍부하고 필력이 좋은 것이 연구의 큰 자산이 되었겠지만, 뒤늦게 자료를 찾아 학술논문을 작성하고 학계의 까다롭고 성가신 심사절차를 밟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어려운 과정을 통과하여 영예의 학위를 수여받은 것에 모두 경의와 축하를 보냈다.

돌아와 논문을 살펴보니 제목이 “대한제국 후기 정치세력과 민족운동 연구”라 되어 있다. 1904년 이후의 수년간을 ‘대한제국 후기’라 이름한 것이 우선 눈에 띤다. 이기동 교수도 잠시 언급했지만 대한제국 자체가 10여년 짧은 시기인데 전기, 후기를 나눌만큼 충분한 근거가 있을지 논란도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애국계몽운동기 또는 국권상실기 등으로 불리우던 시기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줌으로써 시대상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게 해 준 것이 신선한 느낌도 없지 않다. 이박사는 이 시기에 한국의 새로운 정치세력이 성장, 분화되었음을 드러내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논문에서 다룬 주제와 쟁점들 중에는 나도 더러 다루어본 내용들이 적지 않다. 종교로서의 동학과 1894년의 농민전쟁, 진보회와 일진회, 안창호와 미주국민회, 천도교의 성격과 지향 등은 이런 저런 계기로 논문도 쓰고 발표도 했던 주제다. 특히 전북대 시절엔 호남지역의 지방사와 농민사를 천착하는 한편으로 한국근대사상사에도 관심을 가졌던 바여서 이 논문이 다루는 쟁점들이 낯설지 않았다. 다만 그 시절의 나는 정치사나 국가사보다 운동사나 지방사에 좀더 주목했던 탓에 이박사의 논문이 주목한 큰 흐름에 대해선 다소 관심이 덜 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박사 논문은 대한제국 후기의 ‘신흥 정치세력’의 등장과 이들의 ‘민족운동론’을 검토하는 것이다. 신분제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향반,서얼,중인층이 부상할 수 있었고 지역적으로는 평안,함경지방의 중앙진출이 가능해져 새로운 정치세력이 대두될 조건이 마련되었다고 보았다. 이런 배경에서 안창호와 국민회의 재미한인, 손병희 천도교와 동학 세력, 그리고 대종교로 이어지는 개신유학자 집단의 세 정치세력이 유의미하게 형성, 분화되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들 세력들의 지향을 각기 국민국가론, 부강발전론, 국수보전론으로 개념화해서 대비한다. 격동기의 흐름을 비교적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는 분석틀이라 할 만하다.

흥미롭고 중요한 연구라 생각되지만 ‘정치세력’ 형성의 실상에 대한 정밀한 분석이 좀더 이루어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다. 상이한 ‘민족운동론’의 분화는 기존 연구들에서 언급된 내용과 크게 다른 바가 아닌 듯 해서 개인적으로 정치세력의 기반에 대한 설명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나도 일본의 도막파 세력과 한국의 개화파 세력을 대비하려 시도한 바 있었는데 ‘사회세력’의 분석이라 할만한 자료확보가 일본에 비해 턱없이 부족해 뜻을 이루지 못한 경험이 있다. ‘정치세력’이라 이름할 만한 사회세력의 형성을 논하려면 그 정치적 지향이나 사상적 동향보다도 핵심 인물들의 결집도, 광범위한 사회적 네트워크, 동원가능한 물질적 자원, 외부세력과의 연결, 내부의 정세판단 등이 소상히 확인되어야 한다. 세력화의 수준, 조직화의 정도, 물적 동원 역량 등을 평가할 수 있을 종합적인 변수분석이 이루어져야만 사회적 세력분석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논문도 국민회, 천도교, 대종교라는 조직기반과 사람들의 네트워크를 밝히고 있고 안창호, 손병희, 신채호 등 주도적 인물의 영향력을 언급하고 있기에 그런 문제의식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세력화의 수준이나 정도, 역량의 입체적 분석에 이르기에는 미시적 자료나 인물간 네트워크의 강도, 자원동원의 수준과 실제 상황에 대해 객관적인 분석이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렵다. 어쩌면 정치세력과 ‘민족운동론’을 연결시키려는 틀 자체가 정치세력화의 분석보다 민족운동론의 유형화로 이어지도록 만들었을지 모르겠다. 사상적 지향과 관련해서도 ‘민족운동’이라는 틀을 넘어서는 스펙트럼을 구상할 수 없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오랜 중화적 질서에서 벗어나 새로운 국제질서로 이행하는 격동기에는 국가와 민족의 뱔견 못지 않게 세계와 개인의 발견도 결정적인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안창호와 신채호의 차이를 국민국가론과 국수보전론으로 대비하는 틀을 넘어서 자유주의와 국가주의의 긴장이 이 즈음 시작되었으리라 여겨지는 사상적 분화의 계기에 대해서도 좀더 천착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향후 이박사의 활발한 연구활동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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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의식과 공격성

역사학자 임지현 교수께서 조선일보에 쓴 컬럼을 보내주셨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 역사의 복수는 무섭다”는 제목을 단, 최근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상황을 다룬 글이다. 임교수는 내게 ‘잡문’이라 했지만 내용의 무게는 만만치 않다.

이스라엘이 건국 직후 홀로코스트보다 바르샤바 게토봉기를 더욱 부각시켰던 사실에 이 글은 주목한다. 나찌의 폭력 앞에 수백만이 희생당한 홀로코스트 비극은 유태인의 가장 분명한 상징이 되었지만 새 국가 건설을 주도한 사람들은 이것을 건국정신으로 내세우기엔 부적합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무기력한 비극적 희생서사보다 고대 마사다 영웅신화를 떠올리게 하는 1943년의 봉기를 더욱 부각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임교수는 이 두 역사적 경험을 기억하는 태도 속에 피해자 정체성과 가해자 심성이 공존함을 지적했다. 피해자의식이 가해자 심성에 정당성을 부여해 ‘역사’를 앞세운 복수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 작금의 상황이라는 분석인데 일견 공감이 간다.

홀로코스트를 겪었던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이웃에게 가해적 군사행동을 주저하지 않는 현실은 분명 역설적이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이스라엘 특유의 이상행동이라 볼 수는 없다. 세계 곳곳에서 희생자 감정을 앞세운 혐오와 배타의 움직임을 찾아보기는 어렵지 않다. 임교수는 이런 변형된 공격성이 한국에서도 나타날 수 있음을 우려한다. 오랫동안 한국의 민족주의는 공격성과는 거리가 멀다고 여겨져왔기에 그런 우려가 생경하게 느껴지는 사람도 적지 않을 터이다. 한국사 연구자들 사이에는 그런 관점이 강하다. 하지만 한국민족주의의 종족성, 공격성, 배타성을 지적하는 글들도 꾸준히 증가해왔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민족주의에 평화지향적인 면모가 있는 것도 분명하지만 피해자로서의 경험을 내세워 거친 공격성을 정당화하려는 경향도 종종 드러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핵무력을 강조하면서 공격적 군사주의 노선을 견지하는 북한의 존재는 한국의 민족주의를 모순적이고 양가적인 것으로 만드는 주요한 변수다.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이면서도 연합군의 반격에 초토화되었던 전쟁피해 경험을 북한은 지금도 체제방어의 주요한 논리로 활용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한국사회에는 전쟁으로 가족과 재산을 잃고 고향을 등지고 부모와 생이별을 해야 했던 사람들이 많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커질 때마다 당위적인 평화론이나 단일민족론으로 치유되기 어려운 피해자 감정을 확인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독립운동사, 한국현대사를 둘러싼 논란과 갈등의 바탕에는 수십년간 해소되지 않은 채 잠복해 있는 정서를 어떻게 기억하고 전승할 것인가에 대한 복잡하고도 결이 다른 지향이 혼재하고 있는 것이다.

남북한 화해와 통합의 과정에서 민족감정의 사회적 동원은 필수적인 요소가 될 것이다. 그러나 희생자 정체성을 앞세운 배타성과 공격성이 낯설지 않게 드러나는 오늘, 우리의 집합의식을 민주적으로 규율하고 고양시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다. 피해자 의식이 가해자 심성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려면 자유민주주의라는 헌법적 원리를 강조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다만 그것을 명분이나 슬로건으로 내세우는 것만으론 충분할 수 없다. 개성과 자율, 인권과 다양성이 몸에 밴 21세기 젊은 세대들의 생활감각을 남북한의 평화와 통합의 동력으로 잇는 실질적이고 다면적인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전쟁과 분단, 대립과 불신, 기대와 배반의 뒤틀린 경험을 혐오와 증오의 확대재생산이 아닌 상생과 통일의 동력으로 전환시킬 방안을 찾는 것 – 우리 앞에 놓여진 중요한 정치적 과제이자 사상적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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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의 자리

현실과 사상은 역사 속에서 늘 변증법적으로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다. 현실에 따라 사상이 구성되지만 사상이 현실을 바꾸는 변수가 되기도 한다. 잘 정리된 사고체계가 현존질서를 옹호하고 뒷받침하는 역할도 하고 때로는 혁명적 변화를 추동하기도 한다. 만하임이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를 구별한 것은 이런 양면성을 밝히려 한 작업이었다.

남북관계가 극도로 악화되는 가운데 이념의 대립이 다양하게 부상한다. 정치권이 자기 세력확장을 위해 정략적으로 활용하려하고 또 대통령이 이를 강조한 탓이 일차적으로 큰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그렇게 치부하는 것은 이 시대 논쟁에 담긴 사상적 함의와 문제의 깊이를 놓치는 결과를 낳는다. 정략적 논란의 뒷면에 자리하고 있는 작금의 집단적 심성, 사상적 전환의 필요성을 찾아내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긴요한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그 핵심에는 북한, 중국, 일본, 미국을 보는 우리의 시각이 크게 달라져왔다는 집합심성의 변화가 놓여있다. 먼저 남북관계의 전환은 지난 시기 역설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불가피하게 요청한다. 2018년을 전후하여 짧은 시기 남북지도자가 보여주었던 정치적 약속과 미래전망이 왜 그토록 금방 파탄나게 되었는지, 북한을 그 어떤 정치지도자보다 이해해주고 포용하려한 문재인 정부가 왜 평양으로부터 응당한 반응과 연결고리를 유지할 수 없었는지, 북한이 핵무력을 전략자산으로 공언하고 대남위협까지도 숨기지 않는 호전적 태도를 보이게 되었는지에 대한 뻐아픈 성찰이 요구되는 것이다. 단순히 북한비난이나 미국책임으로 설명하는 것은 진지하지도 않고 솔직하지도 않은 관습적이고 정파적인 태도에 다름아닐 것이다. 이와 짝을 이루면서 어떤 의미에서는 더 심대한 변화가 국제상황으로부터 오고 있다. 미국 중심의 자유주의 국제질서와 이에 대항하여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려는 중국과 러시아의 대립이 심화되면서 한국의 양다리 걸치기가 극히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 심대한 전환 앞에서 어떤 사상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을까? 최근 곳곳에서 겪고 있는 역사논쟁은 많은 경우 진보와 보수의 정치적 담론싸움으로 설명할 수 있다. 당위적으로는 패권경쟁에 한반도가 말려들어가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양자택일을 강요당하는 상황을 지혜롭게 대처하면서 미래를 열어갈 사상적 자원은 매우 빈약헤보인다. 아직은 불투명하지만 북한이 중국 및 러시아와 군사적, 기술적으로 밀착하는 상황이 전개되면 더더욱 한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심각한 수준이 될 우려도 없지 않다. 일본과의 관계개선 문제도 기본적으로는 이런 지정학적 변화와 직결되어 있다. 사상의 시대가 오는 것은 그다지 달갑지 않지만, 그런 시대가 오는데 사상적 바탕이 없는 것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걱정스럽기 짝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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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라언덕과 이상백

대구의 청라언덕 일대를 둘러보았다. 광주의 양림동 역사문화거리와 함께 한국근대의 교육, 의료, 선교, 민족운동의 상호관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역사적 현장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마침 계명대학을 방문할 일이 생겼는데 동대구역에서 멀지 않은데다가 박해남 교수가 차편으로 안내해 주어서 뜻깊은 답사여행을 할 수 있었다. 이은상 작사 박태준 작곡의 동무생각 노래 덕분에 ‘청라언덕’이 유명해지고 애틋한 우정과 사랑의 장소처럼 일반인에게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곳을 찾을 기회를 가졌거나 이 지역의 역사성을 접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의외로 적다. 대구의 31운동 기념로 및 근대탐방로가 정비되어 있고 구 동산병원과 제일교회 일대의 유적지와 손쉽게 오갈 수 있게 되어 천천히 둘러보며 역사를 회고하기에 좋은 곳이다.

청라언덕은 말 그대로 언덕의 이름일 뿐이어서 가시적 상징물은 없다. 하지만 약령시 쪽에서 제일교회를 끼고 계명대 동산병원으로 넘어오는 가파른 계단을 오르노라면 꽤 경사가 느껴지는 확실한 고개길이다. 20세기 초반, 이 언덕길을 넘어 다니던 젊은 청년들이 근대식 학교와 병원, 교회와 양옥의 이국적 풍광을 접하면서 문화충격을 겪었을 것이다. 간간히 애틋한 연애도 하면서…청라란 이름이 선교사 주택을 뒤덮은 푸른 넝쿨, 즉 담쟁이로부터 유래했다고 하는데 현재 그런 연관을 확인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언덕 바로 옆이 선교사들이 거주하던 주택이고 그 가까이에 아담한 선교사 묘역도 자리하고 있어 그 연결성을 짐작하기에는 어려움이 없다. 한동안 대구를 상징했던 사과가 이곳에서 시작되었고 그 효시도 선교사들의 활동과 연결되어 있다니, 동무생각 노랫말 만으로 이 공간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부분적인 것에 지나지 않은 셈이다.

청라언덕을 내려가 큰 길을 하나 건너면 오랜 성당을 만나고 그 오른편으로 이상화 고택으로 이어진 거리가 나온다. 꽤 규모가 있는 한옥으로 이어지는 골목길 입구엔 이상화의 얼굴과 시가 적혀 있고 집안에는 책상과 당시 형제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소품들이 배치되어 있다. 셋째인 이상화가 워낙 널리 알려진 탓에 이상화 고택으로 명명된 곳인데 사실 첫째 이상정과 둘째 이상백도 못지 않게 탁월한 인물이다. 특히 나로서는 한국사회학의 태두이자 역사사회학의 탁월한 업적을 남긴 이상백 선생이 훨씬 더 가깝고 또 중요하게 다가온다. 어쨋든 한국근대의 명실상부 최고 가문이라 할 집안을 둘러보는 감회가 새로왔다. 그 옆에는 대구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했던 서상돈의 고택이 이어져 있어서 개화기 대구지역의 변화와 역동성이 이 주변에서 힘을 받은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하게 만든다. 서상돈의 집은 아파트 건축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재건된 것이라 하는데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아담스, 이상화, 이상백, 서상돈, 이은상, 박태준 / 청라언덕, 선교사 묘역, 동산병원, 제일교회, 계명학교 – 이 독특한 사람의 인연과 공간의 연결을 생각하며 일대를 걷다보니 ‘근대’라는 시대를 단일한 이미지로 포착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오히려 온갖 빛깔을 지닌 무지개, 아니면 다양한 색들이 무질서하게 뒤섞인 중학생 팔레트 같은 모습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다. 한쪽에는 신문물과 계몽과 혁신의 역동성이 희망을 전하고 다른 한켠에는 울음과 고뇌와 싸움과 배반의 역사가 놓여있는 대조적 모습, 그런가하면 질병과 치유와 죽음과 영생이 뒤엉키는 삶과 역사의 복합적 측면을 담고 있는게 근대사이기 때문이다. 이 온갖 성격을 담고 있는 근대의 역사를 때로는 눈부신 흰색 때로는 어두운 잿빛의 단색으로 그려보려던 지난날의 지적 성급함을 세종으로 돌아오는 기차속에서 계면쩍은 마음으로 되돌아본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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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대에서의 멋진 하루

10월 14일 대구 계명대를 방문했다. 계명문화대 박승호 총장을 예방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 하숙을 함께 한 인연에다 육사 교수부에서 함께 가르치며 이야기도 많이 나눈 사이지만 오랫동안 만날 기회가 없었다. 몇 년 전 계명문화대 총장으로 부임했다는 소식을 듣고 방문하고 싶었는데 이제야 그 뜻을 이루게 된 것이다. 오랫만에 반갑게 포옹하고 즐거운 담소로 회포를 풀었다.

심리학을 전공한 좋은 학자이면서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겸비한 박총장은 성실함과 진지함이 트레이드 마크다. 유학을 다녀온 후 서울여대에서 줄곧 교수로 봉직하였는데 그 품성을 일찍부터 알아온 계명대 이사장의 천거로 계명문화대 총장에 부임했다 한다. 첫 임기를 마치고 두번째 총장직을 연임하고 있으니 대학경영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는 증거일 테다. 실제로 계명문화대는 대구는 물론이고 전국적으로도 졸업생의 만족도와 사회진출 수준이 높은 학교로 알려져 있다.

계명대 캠퍼스는 참 아름다왔는데 내가 본 대학 캠퍼스로선 최고가 아닐까 싶다. 나무 한그루, 건물 하나 하나에 정성과 의미가 깃들여 있고 잘 관리되고 있어 둘러보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높은 곳에 위치한 아담스홀은 초기 선교사의 비전과 헌신이 담긴 공간으로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격조높은 천정구성, 정면의 제단과 파이프오르간이 엄숙함과 정결함을 느끼게 한다. 고풍스런 황갈색 컨셉이 캠퍼스에 통일성을 주면서도 한 복판에 전통 한옥들로 이어진 공간을 배치했는데 전통과 현대, 서양과 동양을 캠퍼스 디자인 속에 함께 담으려는 뜻이 읽혀져 좋았다. 풀 오페라 공연이 가능한 첨단 아트센터가 세워져 학교와 지역사회에 소중한 문화인프라로 활용되고 있는 것도 특기할 일이다. 디자인과 건축에 의미와 문화가 담겨야 한다는 것, 지속적인 관심과 손질이 공간을 살아있게 한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멋진 캠퍼스다.

박총장과 점심을 함께 한 후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들과 커피타임을 가졌다. 지방의 청년문제에 주목하면서 참신한 연구쟁점과 문제의식을 확산시키는데 기여해 오고 있는 최종렬 교수, 사회이론 분야의 좋은 연구자이면서 학계의 신망이 높은 임운택 교수, 그리고 이번에 새로 임용된 박해남 교수와 오랫만에 즐거운 대화시간이었다. 최종렬 교수는 [복학왕의 사회학]을 비롯한 여러 책자와 신문의 컬럼으로 우리사회의 여러 현안, 특히 지방의 문제를 부각시키는데 크게 기여해온 학자다. 임운택 교수는 이번에 한국사회학회장 후보자로 천거되어 학계 전반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되는 중이다. 이번에 부임한 박해남 교수는 문화와 역사, 스포츠와 종교 등 21세기 변화를 다면적으로 해명하고 분석하는 능력이 뛰어난 신진 학자다. 규모는 작지만 역량은 뛰어난 계명대 사회학과의 지적 활동을 더욱 기대하게 되는 이유다. 어려운 조건 하에서 연구하고 가르치는 후배 교수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 성원하는 마음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