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오늘의 화두

귀원정의 유산

의친왕 이강이 조부께 써 준 글씨 현판 몇 점을 집으로 가져왔다. 이 현판들은 고향에 조부께서 건립한 정자에 걸려있던 것인데 십수년전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정자가 무너져 현판들만 따로 떼어 고향 친지 집에 맡겨두었었다. 정자를 복원하거나 외부 공간이 있는 주택에 살게 되면 다시 걸어두리라 생각을 했지만 세월만 흘렀다. 그동안 현판이 두어점 사라졌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누군가가 현판의 행방을 수소문한다는 소문도 들리는데다 현판을 맡아두었던 먼 친척도 세상을 떠나 이대로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 정자를 건립한 조부 화사 박영화는 특히 충효의 가치를 이 공간에 담고자 했다. 증조부인 애산 박준구를 기려 당호를 ‘애산당’으로 하고 인근 각처의 문사들이 보낸 시와 글들을 각자한 현판을 걸었다. 그런가 하면 고종의 아들 의친왕의 글씨를 통해 국가와 왕조에 대한 애틋한 심정을 담았다. 의친왕이 쓴 ‘先韓日月 李朝雨露’라는 글귀는 선한와 이조가 일월과 우로가 되라는 뜻을 담았다. 의친왕이 쓴 글씨 옆에는 ‘대한국 의친왕 전하 어하사친필’이라고 조부께서 각자해 두었는데 ‘大韓國 義親王 殿下’라는 표현이 어색하면서도 흥미롭게 와 닿는다.

함양, 특히 안의는 정자의 고장으로 불릴 정도인데 특히 화림동 계곡에는 농월정, 심원정, 동호정, 거연정 등 멋진 정자들이 줄을 이어 서 있다. 이들 정자는 모두 사면이 트여 주변을 내다볼 수 있는 건축물이다. 그런데 귀원정은 사면이 트인 정자를 한켠으로 하고 다른 한켠에는 방이 달려 있었다. 이 두 기능을 함께 담고 싶었던 모양으로 사면이 트인 공간에는 ‘귀원정’이란 현판을 달고 방이 달린 공간은 ‘애산당’이란 현판을 달았다. 정면 윗편에는 큰 글씨의 현판과 작은 글자의 현판들이 여러 점 걸려 있었고 기둥에는 대련으로 쓰여진 작품이 세로로 걸려 있었다. 정자의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았는데 작은 실개천을 넘어 돌계단을 올라가 아름드리 벗꽃 나무를 마주하는 작은 마당에 격식을 갖춰 세워졌다. 옆으론 큰 바위가 있고 앞뒤에 작은 대숲이 우거져 우아했고 아름다왔다.

비닐 하우스에 보관되어 있는 현판들은 30여점이 넘었다. 오랜 시일 제대로 돌보지도 않은 채 방치되어 있었음에도 까만 옻칠에 흰 색으로 부각된 글씨들의 모습은 반듯하고 아름다왔다. 아마도 당대 제일의 서각 장인의 작품이 아니었을까 싶다. 자획이 분명함은 말할 것도 없고 깊이와 강약도 너무 명료하여 마치 최근의 작품을 보는 듯 했다. ‘이조 우로’라는 작품과 ‘경운독월은사정취’ 라는 의친황의 작품은 명필이고 아름다운데 모두 대련의 한쪽이 사라졌다. 누군가 몰래 가져가려다 한 쪽만 떼어내는데 성공한 탓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집안의 소중한 유산이자 지역의 문화재라 할수도 있을 것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미안함이 솟구친다. 누이가 두어점 현판을 가져가기로 하고 나도 몇 점을 챙겨 오기로 했다.

스마트폰과 인공지능이 보편화된 21세기에 이런 가문의 유산에 주목할 사람은 많지 않다. 가족들 조차 관심의 크기는 다르고 아이들 세대에서는 특별한 감정을 느낄 가능성이 별로 없을 것이다. 안의의 화림동 계곡은 선비의 문화를 체현하여 지역의 자긍심을 높이고 싶어하지만 오가는 사람들에게는 단지 물좋고 산좋은 경승지의 표지일 뿐이다. 아파트의 공간이 일상이 되고 효율적인 도시살이가 보편이 된 시절에 선비의 정체성을 운운하는 것도 낯설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와 글, 문인들의 교류를 중시한 조부의 자취를 접하노라니 마음 한켠에 뿌듯한 감정이 솟구친다. 시대에 맞지 않을지 모르나 이런 것을 집안에 내려오눈 향기라 해도 좋으리라. 제대로 관리도 하지 못한 처지에 자랑스레 내놓을 일은 아니겠으나 집안의 소중한 향취를 맛보고 귀히 여기는 마음은 그대로 중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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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묘문화와 가문의식

6월 25일 아버지 기일을 하루 앞두고 고향 선산을 찾았다. 마산, 진주 등지에 흩어져 사는 누이들도 함께 모여 산소를 둘러보았는데 입구 돌계단도 부분적으로 무너져 내렸고 봉분에는 잡초가 무성했다. 조부모 산소로 이어지는 길은 찾기가 어려울 정도여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동네는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오가는 사람 대부분이 고령자들이고 젊은 사람 찾기가 쉽지 않다. 누이와 자형들도 대부분 70을 넘기셨고 나 또한 70 줄에 들어서기 직전이니 고령화가 내 실존이 되어 있는 셈이다.

점심을 함께 한 후 부친이 교장으로 재직하셨던 안의초등학교 앞의 한 까페에서 옛 추억을 이야기하고 정담을 나누었다. 누이들과 자형들도 대부분 교직에 계셨던 탓에 이곳이 낯설지 않다. 그러던 중 앞으로 산소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화제가 되었다. 지금처럼 아는 분에게 벌초를 부탁할 수 있는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데 모두가 공감했다. 자식들이 이곳까지 찾아와 성묘를 할 것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성묘라는 관행이자 도리가 언제까지 존속하게 될지도 자신하기 어려울만큼 시대상황도 달라지고 있다.

누이 한분은 부모 묘소를 가까운 곳으로 이장하면서 평토장을 하고 작은 비석만 세워두자고 했다.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채 잡초로 뒤덮인 산소를 그냥 두는 것은 민망하고 도리도 아니라는 이유다. 또 다른 누이는 굳이 평토장도 할 필요없이 우리 세대에까지만 성묘문화를 지키면 될 것이라 했다. 그 이후 누구도 찾지 않은 묘가 되어 잡초가 우거지는 것도 자연스런 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두 분의 주장은 다른 듯 하고 실제 격론도 이어졌지만 기실 공감하는 부분이 더 컸다. 이제 성묘와 관련한 의례를 우리 세대에 간소화하고 다음 세대에까지 넘겨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바탕에는 육체와 영혼을 구별하는 기독교 신앙이 깔려 있다.

장남으로서 내 의견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나도 언젠가는 이 문제에 대한 결단이 필요할 때가 오리라는 생각을 한다. 나 스스로도 이런 성묘문화에 철저하지 못한데 내 자녀들이 이 부분에 관심을 가지리라 기대하기는 더욱 어렵다. 사실 한국사회에서 성묘나 제사가 90년대 이후 새롭게 부각된 데는 계층의 분화에 따라 새로운 가문의식, 뿌리 의식이 커진 영향이 없지 않다. 더하여 영화나 미디어에서 그것을 한국의 전통풍습으로 재구성한 이유가 크다. 다종족화가 진행되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 더더욱 이 문화가 강조될 수도 있겠다.

솔직히 나는 조상이나 가문, 뿌리에 대한 의식이 그다지 강하지 않다.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한 이유가 컸을 듯 한데 실제로 나는 제사나 문중행사가 낯설다. 어릴 적부터 고향을 떠나 혼자 유학하며 생활한 나의 성장과정이 개인주의적 성향을 강화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내 아들 대에 이르면 훨씬 이런 문화는 약화될 것이 분명하고 나는 그것에 별로 안타까운 마음을 갖지 않는다. 다만, 부모님이 보여주셨던 독특한 삶의 자세와 정신적 지향, 조부로부터 이어진 문인적 지향과 선비로서의 자긍심은 잊지 않고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인데 그 분리가 가능할까? 그것은 어떤 가문의식과 의례를 필요로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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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온 100세 시대

장인어른께서 올해 100세가 되셨다. 물론 전통적으로 세는 우리 나이여서 만으로 치자면 조금 더 있어야 하지만, 오히려 100세 느낌은 지금 더 나는 것 같다. 신문 지상에서 또는 남의 이야기로 간간히 100세란 말을 듣곤 했지만 가까운 집안 어른이 100세를 맞이하니 그 실감이 남다르게 다가온다.

마침 5월 초에 부산에 일정이 생겼는데 어버이날도 앞둔 시기라 장인 어른을 모시고 식사를 함께 했다. 모시고 나온 손윗 처남이 70을 훌쩍 넘기셨으니 두 분을 부자지간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느낌이었다. 다행히 장인 어른께서는 기억력이 많이 퇴색되었을 뿐 여전히 꼿꼿하시고 스스로 걸으실 뿐 아니라 식사도 혼자 큰 어려움 없이 하셨다. 간간히 약간의 농담 섞인 대화에도 큰 어려움 없이 대꾸하실 정도로 객관적 연세에 비해 정정하셨다.

지극 정성으로 보살피는 7순 아들의 효성이 그 일차적인 힘이 되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여기에 더하여 노인학교를 오갈 수 있는 여건, 이런 노인들을 보살피고 도와주는 복지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는 덕분임도 분명하다. 실제로 우리 주위에 이런 노인복지에 고마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남의 나라 부러워한지 엊그제 같은데 이제 한국이 그런 부러움을 사는 나라가 되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다만 이런 현상을 보노라면 세계최고의 저출산율을 보이는 또다른 한 측면을 떠올리게 된다. 앞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감당해갈 수 있을까? 노인복지와 저출산율의 두 이미지가 빚어내는 어긋난 영상이 앞날에 대한 우리 생각을 어지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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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인 함께 읽기

이종민 교수의 수고 덕택에 [김사인 함께 읽기] 책자가 멋지게 출간되었다.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시인이자 좋아하는 벗인 김사인 교수의 정년을 축하하기 위해 몰래 기획한 작품인데 52명의 문인 작가 지인들이 흔쾌히 글을 보내 성사된 결과물이다. 표지에 흰고무신 차림으로 한옥 툇마루에 앉아있는 김사인의 모습이 정겹다.

대부분 시인이나 작가, 문학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 틈에 내가 한 필자로 끼어 있는 것이 한편 어색하고 한편 기분이 좋다. 물론 내가 문인들과 견줄만한 필력이 있다거나 글솜씨가 좋아서인 것은 전혀 아니다. 김사인과 서로 좋아하는 친구사이이고 이 책을 편집한 이종민과도 막역한 사이인 것이 작용한 것이니 정실이 작용한 것이라 해도 할말은 없다. 다만 이 책의 기획 자체가 그런 우정과 정실을 높이 사자는 것이었으니 용납받을 만 하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나는 코로나 1년을 지내던 어느날 김사인의 시 한편을 써서 표구해 걸어옿았던 일을 내 글의 소재로 삼았다. 작은 낙엽하나, 철이르게 떨어져 굴러온 것을 두고 ‘실은 이런 작은 일이 고마운 것이다’라 노래한 그 소박한 정서에 깊이 공감했었다. 시인은 그 낙엽이 자기 옆에 와 ‘있는다’고 적었는데 나는 그것을 ‘앉는다’고 잘못 적었었다. 뒤에 다시 생각하니 그 두 말의 차이는 적지 않았다. 미안함과 함께 나는 그의 단어 선택에 담긴 깊은 뜻을 헤아려보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앉는다는 네 옆에 가 있겠다는 주체의 적극적 의지가 느껴진다. 반면 있는다는 그런 작위보다는 조심스러운 자기처신의 의미가 더 크다. 도와준다는 생각이나 무언가를 행한다는 자의식보다도 주변과 더불어 공감하고 동행하려는 바람 같은 모습을 떠올린다. 나는 김사인이 그런 인간이라 생각하기에 그가 앉는다보다 있는다가 어울리는 시인이라고 썼다. 하지만 요즘 시대에 과연 그런 삶의 자세가 환영받을 수 있겠나 생각하면 나부터 쉽지 않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 책의 출간기념을 겸해 한마당 북토크가 기획되었다. 작가와 화가 등 문인예술가 들 사이에 나도 한자리 초청을 받았다. 감사하기도 하고 쑥쓰럽기도 한데 나이 먹어 우정을 논하고 그 우정을 즐거워 하는 사람들과 교유하는 즐거움은 호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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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암동인과 節友

2024년도 1학기 개강을 했다. 서울대 정년 후 광주과학기술원에 부임한지 7번째 학기를 맞는 것이다. 봄같은 날씨 탓인지 학생들이 교내 곳곳에서 밝은 얼굴로 대화하고 오가는 모습이 유난히 정겹고 신선하다. 작년만해도 부분적으로 남아있던 코로나의 위축으로부터 확실히 벗어난 실감이 든다.

교정을 걷다가 매화가 핀 것을 발견하고 3년전의 일을 떠올렸다. ‘이문회우’ 서예전을 개최한 후 제자들과 온라인으로 기념 모임을 했는데 이를 ‘매암동인’이라 불렀다. 매화가 피는 계절인 점도 고려했지만 그보다는 퇴계가 매화나무 아래 바위에서 그 후학들과 학문을 논의하던 정경을 기린 것이었다. 조선시대와 한학에 조예가 깊은 백광렬 박사의 제안을 따른 것인데 지금 들어도 멋스럽다. 퇴계는 매화를 좋아해서 ‘매형’이라 부르기도 했고 매화를 소재로 한 시가 백여수에 이르며 [매화시첩]이란 시집도 간행했다. 두향이라는 여인과의 사랑 이야기가 매화를 매개로 전해지기도 하며, 임종때 ‘매화에 물을 주라’는 말을 남겼다고도 전한다. 그의 시에는 자연과 더불어 담담히 생활하는 선비의 자세가 여실하다.

獨倚山窓夜色寒 홀로 산속 집 창가에 기대서니 밤기운이 차가운데 / 梅梢月上正團團 매화 가지 끝에 둥그런 달이 두둥실 떠 있네 / 不須更喚微風至 새삼 살랑살랑 부는 미풍을 부를 새도 없이 / 自有淸香滿院間 온 집 안에 맑은 향기가 저절로 가득 넘쳐난다 /

步屧中庭月趁人 뜨락 거니노라니 달이 날 따라와서/ 梅邊行繞幾回巡 매화꽃 언저리 돌고 또 돌았다네/ 夜深坐久渾忘起 밤 깊도록 오래 앉아 일어설 줄 몰랐더니/香滿衣布影滿身 향기는 옷에 가득하고 꽃 그림자는 몸에 가득하네 (陶山月夜詠梅)

퇴계의 매화사랑은 단지 음풍농월의 관조에 그친 것은 아니다. 퇴계는 매화가 추운 겨울을 견뎌내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의지를 특별히 강조 했다. 도연명이 난, 국, 죽만 노래한 것을 아쉬워하며 매화를 포함시켜 ‘절개있는 친구들’이라 불렀다. 松菊陶園與竹三 (도원엔 솔과 국화 대나무 더불어 셋이러니)/ 梅兄胡奈不同參 (매화는 어찌하여 함께 참여치 못했을까) / 我今倂作風霜契 (나 이제 모두 함께 풍상계를 만드니) 苦節淸芬儘飽諳 / (굳은 절개와 맑은 향기를 족히 알기 때문) — 그는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의 사군자를 심은 화단을 조성하고 이를 節友社라 이름했는데 일종의 시적 의인화라 하겠지만 실제로 매화를 닮은 제자들에 대한 마음도 담겨 있었을 것이 아닐까 싶다. 다시 매화가 피니 [매암동인] 제자들이 생각난다. 다들 잘 지내며 새 봄을 맞아 그 향기가 옷과 정원에 그득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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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증

당혹스러웠다. 한밤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서려는데 갑자기 현기증이 일더니 천정이 팽그르 돌았다. 한참을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다가 겨우 안정을 찾았다. 하지만 다시 자리에 누우니 온 방이 도는 회전성 어지러움이 확 들이닥쳤다. 모로 누우면 바로 진정이 되지만 고개를 바로 눕히면 또 같은 증세가 밀려왔다. 뇌출혈인가? 하는 의심이 들면서 불안도 엄습해온다. 가슴도 답답하고 혈압도 높아지는 느낌이었다.

불을 켜고 일어나 인터넷을 검색했다. 바로 누우면 어지럽다가도 일어나 앉거나 모로 누우면 진정되는 것은 전형적인 이석증이라고 했다. 속귀의 전정기관에 있는 이석이 떨어져 나와 평형고리관 속으로 들어갈 때 겪는 어지러움을 표현하는 이석증은 꽤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증상이고 대체로 자연회복된다고 했다. 여러 글들을 찾아 읽으면서 무엇보다도 뇌출혈을 의심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한밤 중에 식구들을 깨우는 소란을 겪지 않을 수 있어서 인터넷으로 얻은 정보가 이처럼 고맙고 위안이 될 수가 없었다.

공교롭게도 일본 여행을 떠나기 전날이어서 출국을 할 수 있을 것인가는 또다른 문제였다. 한달여 전에 계획했던 니가타 여행을 지진으로 포기하고 새로 계획한 여행인데 내 컨디션 탓으로 또 무산시키고 싶진 않았다. 다행히 이석증이라면 그다지 위험한 것은 아닐터이고 일어서 다니는 데에는 지장이 없어 마음을 굳게 먹었다. 인천공항을 향해 새벽 버스를 타러 나서면서도 함께 떠난 처와 아들에게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공항의 모든 수속을 마치고 탐승하기 전에 나의 안색과 행동거지가 이상한 것을 눈치챈 처가 무슨 일인가고 다그쳤다. 그제서야 전날 밤에 겪은 상황을 말하고, 여행을 포기하고 병원으로 가자는 처와 아들에게 도리어 이석증이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설득했다.

불안한 마음을 담은채 출발했지만 다행히 2박 3일간 여행은 별 문제 없이 잘 끝났다. 여전히 잠자는 자세는 모로 누워야 했고 첫날 식사 때 다소 불편함을 느낀 적이 있었지만 남에게 폐를 끼치지는 않았다. 조심하느라 온천욕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사케 한잔 편히 마실 수 없었던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큰 일 없이 여행을 마친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세종 집에 도착한 날 밤, 나는 큰 시험을 치룬 아이마냥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염려가 가셔서일까 그날 밤은 바로 누워서도 편히 잠을 잘 수 있었다. 다음날 병원에서 내 상태를 들은 의사는 전형적인 이석증 증세인데 가볍게 왔다가 간 모양이라고 걱정할 필요 없다 했다.

이 해프닝은 내게 두가지를 새삼 깨닫게 했다. 우선 몸이 얼마니 기계적이고 물질적인 것인지가 놀라우리만치 피부에 와닿았다. 귀 속의 작은 돌멩이, 그것이 중력과 상호작용하는 것이 내 몸의 균형을 바로잡게 한다는 사실, 미세한 돌멩이의 이탈이 내 온 몸을 흔들리게 한다는 과학적 진실이 새삼스러웠다. 동시에 내 건강과 생명이 결코 영원하지 않다는 당연한 진실도 새롭게 깨달아졌다. 이곳 저곳 다니고 여러 활동을 참여하면서 나는 아직 건강하구나 자만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쓴 웃음을 지었다. 성경의 말씀대로 오늘 밤에라도 내 생명을 거두어가실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였구나 하는 반성도 했다. 이 일 이후 내 움직임이 조심스러워진 것은 단지 어지러움에 대한 조심 때문만이 아니다. 내게 주어진 건강과 시간에 더 겸손하고 더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자는 다짐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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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과 삼봉

큰 딸 내외, 아들, 손주 들과 단양 여행을 했다. 아시아나 마일리지 소멸분을 이용해서 편하게 가 볼 곳으로 이곳을 선택한 것이 한 달여 전이다. 단양은 이름만 들었지 실제로 가볼 기회가 없었다는 아이들은 좋아했다. 세종에서 단양은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는데 어차피 손주들 중심의 여행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오가는 길의 풍광이나 문화적 요소는 큰 변수가 되지 않는다. 편안한 잠자리, 즐겁게 놀만한 시설과 공간, 맛있는 음식과 여행의 즐거움이 가장 중요한 것, 두루 괜찮은 가족여행이었다.

단양팔경이란 말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지질학적으로 독특한 기암괴석이 산과 강과 어우러져 소금강이라 할만한 명승지가 여러 곳이라는 학창 시절의 교육 탓이다. 어릴적에 들었던 이런 내용은 대체로 현지에서는 실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솔직히 이번에도 실제 모습이 명성에 미치지 못한 느낌이 강했다. 지구 곳곳의 기이한 풍경과 관광지를 가보거나 영상으로 접하는 경우가 많은 현대인이 이동이 제한된 과거의 평가에 공감하기는 쉽지 않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오래전 역사지식과 여행객의 들뜬 정서를 잘 섞으면 명승지에 온 기분을 느낄 수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런 상상력이 쉽지 않은 아이들이나 일반인에게는 과거의 명성보다 맛집을 찾는 일이 더 중요할 수밖에 없다.

도담삼봉의 모습은 아름다왔다. 차들이 달리는 큰 길과 바로 옆의 주차장, 그리고 멀리 보이는 아파트를 제외하고 보면 가히 명승지라 이름할만하다. 강 가운데 솟은 세 봉우리가 지는 해를 등지고 만들어내는 그림자와 뒤섞여 한폭의 동양화를 선사한다. 조선왕조 창건에 결정적 역할을 한 정도전이 자신의 호를 삼봉으로 한 것이 이곳과 관계가 있다는 말도 전한다. 고려말 권신들을 비판하다가 유배와 유랑의 시기를 보내기도 했는데 이때 제천 지방에도 잠시 머물렀다는 것이 근거인 모양이다. 하지만 삼봉이란 지명이 곳곳에 있는 데다가 정도전이 삼봉재라는 집을 지은 곳이 삼각산이었음을 고려하면 이곳보다 삼각산과 더 깊은 연관이 있을 개연성이 훨씬 높다. 불교에 기반한 고려체제를 혁신하고 신유학에 기초한 새 왕조 창건을 꿈꾸고 추진했던 혁명가 정도전을 생각하기에 도담 삼봉의 규모는 너무 작고 기세도 완만해 보였다.

삼봉 정도전은 한국사에서 접하는 몇 안되는 혁명적 사상가였다. 아니 사상적 혁명가였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는 평범한 권신배와는 전혀 달라 자신의 생각과 사상을 실현하기 위해 목숨을 아끼려 하지 않은 담대함이 있었고 당대를 뛰어넘는 새로운 미래를 상상한 혁신적 인물이다. 조선왕조의 기틀을 쌓은 여러 조치들, 전제개혁, 사병철폐, 조선경국전, 한양천도, 숭유억불 등은 모두 정도전의 작품인데 어느 하나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정도전은 장량이란 별호를 갖고 있었는데 이성계와 자신의 관계를 한고조 유방과 그의 참모 장량에 빗대었기 때문이라 한다. 정도전은 유방이 장량의 도움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장량이 유방을 이용하여 새 왕조를 개창했다고 할만큼 자부심이 컸으며 실제로 국왕보다도 재상의 역할을 중시하는 정치체제를 구축하려 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상상력과 미래비전의 폭과 깊이가 대단하다고 여겨지는데 이런 인물에 대한 우리의 이해수준은 너무 빈약하다.

온달산성 앞에 만들어진 고려시대 궁궐과 왕성의 세트장에서 지난 역사를 떠올리게 된 것은 전혀 예상치 않았던 경험이었다. 여러 사극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로 이용되었다는 이곳은 온달산성을 배후로 하고 앞으로 강이 흐르는 곳인데 생각보다 규모가 크고 실감 나게 만들어 특히 아이들에게 역사적인 시공간감각을 갖게 하는데 좋아 보였다. 유적지로서의 제약도 거의 없어 관람객이 왕궁의 용상에 올라 앉아 사진을 찍어도 괜찮았다. 쌀쌀한 겨울날, 찾는 사람이 별로 없는 산성 앞에서 왕실의 생활공간과 백성들의 마을 모습을 보노라니 나도 타임머신을 타고 어디론가 떠나온 느낌이 든다. 몇 년전 와본 최완규 총장의 멋진 별장에서 들렀던 보발재가 멀지 않아 그리로 가볼까 하다가 아이들 생각에 그만두었다. 이곳은 삼국시대 신라와 고구려, 백제가 서로 다투던 ‘중원’ 지역이라는데 지금은 너무도 한적하고 온달산성조차 평온한 관광지가 되었으니 ‘산천은 의구하다’는 옛말도 언제나 맞는 말은 아닌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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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노시신 (筆老詩新)

신용하 교수께서 또 한 권의 대저를 출간하고 친필 서명과 함께 송부해 주셨다. 이미 간행된 [일제강점기 한국민족사] 상, 중에 이은 하권으로 제목을 달았지만 부제인 “1931년-1945년 한국의 민족과 사회”라는 제목의 독립 저서로 간주해도 무방한 책이다. 책갈피에는 그동안 출간한 신용하 저작집 66권의 제목이 빼곡히 적혀있어서 일생에 걸친 학문적 집념의 놀라운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 90을 향해가는 노학자의 책이 700쪽이 넘을 뿐 아니라 수많은 제자들의 부족한 논문들까지 일일이 찾아 인용하고 실사구시적 서술방식을 견지하신 연구자로의 일관된 자세가 새삼 놀랍고 경탄스럽다.

이 책은 서장, 종장을 포함하여 총 16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다루는 주제가 포괄적이다. ‘일제의 만주침략과 대륙침략 병참기지화 정책’ (2장), ‘임시정부 한인애국단의 활동’ (3장), ‘한국독립군과 조선혁명군의 무장독립운동'(4장), ‘동북인민 유격부대의 항일무장투쟁'(5장), ‘조선어문 수호 연구활동과 문자보급운동 및 브나르도 운동’ (6장), ‘1930년대의 문학예술’ (7장), ‘한국민족말살, 황국신민화정책’ (8장) ‘대륙침략 병참기지 확충과 군수산업'(9장), ‘일제 공출정책의 물자강탈과 조선인 생활상태’ (10장), ‘조선인 징용, 징병 정책과 강제연행’ (11장), ‘조선여자근로정신대와 일본군 위안부 강제연행’ (12장), ‘중국 관내에서의 독립운동과 조선의용대 및 한국광복군 창설’ (13장),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연합정부로의 개편’ (14장) – 제목만으로도 1930년대 이후 일제의 식민정책과 한국인의 독립운동 전반이 망라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책의 구성 내용을 살펴보면서 흥미로운 사실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일제의 식민지배정책은 기본적으로 조선 내부에서 전방위적으로 진행된 것이었음에 반해 독립운동은 대부분 한반도 바깥, 주로 중국 관내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일제의 가혹한 통치로 국내에서의 독립운동이 존재하기 어려웠음과 중국을 근거지로 하는 해외의 독립운동이 해방운동의 주요동력이었음을 반영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만큼 부나르도 운동, 조선어문수호활동, 문학예술운동 등은 국내에서 조선인 전반을 대상으로 진행된 운동으로 새롭게 주목된다. 비록 비정치적이고 비폭력적인 운동이었지만 국내의 이런 흐름이 해외 독립운동세력과 함께 해방과 독립의 동력이 되었음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다만 선명성과 정치성에서 해외 부분이 정당성과 상징성을 더 컸던만큼 해방 공간에서의 주도권을 해외독립운동가들이 지니게 된 것도 어떤 점에서 불가피한 일이었을 것이다. 독립국가건설과정에 외세의 영향이 강력했던 것도 이런 해외세력들의 과잉대표성, 국내세력의 미진한 발달에 그 일단의 원인을 찾을 수 있을 듯 싶다.

신용하 교수님의 대부분의 책이 그러하듯 이 책도 철저하게 사료와 전거에 입각하여 서술되어 있다. 흔히 좌파와 우파로 구분되는 독립운동의 여러 흐름과 정파들이 망라적으로 분석되고 있다. 한국의 근현대사가 한국과 일본, 중국 간에 일종이 역사전쟁의 대상이 되고 국내에서도 정파적인 해석에 따라 역사서술의 향방이 달라지는 현실을 고려하면, 사실에 입각하여 있는 그대로의 역사적 진실을 드러내겠다는 연구자의 자세는 그 자체가 귀하고 전범이 될 만하다. 대가라고 부를만한 학자들이 사라지고 작은 쟁점들을 붙잡고 씨름하는 연구자들만 많아지는 것이 숨길 수 없는 오늘의 현실에서 이런 노학자의 대작을 접하니 과연 연부역강 (年富力强) 이란 말의 전형이다. 신용하 교수님 회갑기념논총을 증정할 때, 나는 ‘필노시신’ (筆老詩新) 이란 글씨를 써서 헌정해 드렸는데 연륜이 더할수록 더 새로운 작품이 쓰여지기를 바란 그 기대가 여실히 이루어지고 있는 놀라운 모습이다. 감사하고, 그에 미치지 못함에 송구한 마음을 금하기 어렵다.

activities · life · 오늘의 화두

sing again, life again

싱어게인 3 프로그램의 마지막 공연이 끝났다. 실력있는 무명가수들의 노래를 듣는 즐거움이 크지만 누군가는 탈락해야 하는 모습을 보는게 힘들어 중간에 채널을 돌리곤 했던 프로다. 최종회는 선정된 일곱명이 더이상 탈락의 두려움 없이 자기 이름을 걸고 노래하는 자리여서 나도 부담없이 마지막까지 지켜보았다. 누구는 10여년을 자취방에서 위축되어가는 자존감과 싸우며 음악을 했고 누구는 지방에서 작은 까페를 하며 대중의 사랑을 받을 날을 기다렸으며 어떤이는 캠핑장의 야외무대에서 십수년 무명가수 생활을 했다. 하지만 한결같이 오랜 기다림과 좌절의 터널을 벗어나 새로운 미래와 희망을 노래하려는 열정이 충만했다. 외로움 속에서 자신을 지켜내온 자만이 드러낼 수 있는 울림이 이들의 말과 음율 속에 담겨져 있었다.

여느 음악 프로그램보다 힘든 환경에서도 뮤지션으로서의 자긍심을 지키려 한 이들의 열정이 강렬해서 노래실력 못지 않게 선곡한 노래의 가사에도 주목하게 된다. 스스로를 산골가수라 불렀던 신해솔이 ‘곡예사의 첫사랑’을 선곡한 이유가 힘들지만 웃어야 하는 곡예사의 삶이 가수를 지향하는 자신의 삶과 같아보였기 때문이라는 말에 공감이 갔다. 이젤은 DAY6의 ‘한페이지가 될 수 있게’라는 노래를 통해 오늘 하루의 삶이 인생 사진첩의 멋진 한 부분을 장식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소수빈은 ‘한번만 더’라는 노래말로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자신을 응원하고 격려하려는 간절한 마음을 표현했다. 나로선 한두곡을 제외하곤 잘 알지 못하는 곡들이지만 부르는 이의 진속한 마음을 느끼기에 어려움이 없었다.

특히 강성희가 드라마 미생의 OST 였다는 이승엽의 노래 ‘날아’를 부를 때 그 가사가 뭉클하게 다가와 눈자위마저 뜨거워졌다. “모든 것이 무너져있고 발 디딜 곳 하나 보이질 않아 … 눈을 뜰 수 조차 없게 한대도/ 거기서 멈춰있지마 그곳은 네 자리가 아냐/ 그대로 일어나 멀리 날아가기를/ 얼마나 오래 지날지 시간은 알 수 없지만 견딜 수 있어 날개를 펴고 날아/ …. 차갑게 내뱉는 한숨이 널 덮어 숨을 쉴 수 조차 없게 한대도/ 거기서 멈춰있지마 그곳은 네 자리가 아냐 그대로 일어나 멀리 날아가기를 ” 우리 시대 모든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 ‘그곳은 네 자리가 아냐, 그대로 일어나 멀리 날아가기를.’

최종우승은 홍이삭에게 돌아갔다. 아프리카에서 선교와 교육활동을 하신다는 부모와의 대화가 소개되었다. 아들의 음악활동을 충분히 뒷바라지 하지 못한 미안함을 표현하는 아버지와, 번듯한 아들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늘 죄송했다는 아들의 말이 아름답고 진솔하게 느껴졌다. 홍이삭은 이 프로그램에서 뮤지션으로서 자신의 ‘유통기한’을 확인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가 유통기한이란 말을 했을 때 나는 유발 하라리가 말한 ‘무용계급'(useless class) 을 떠올렸다. 사회에서 쓸모가 없는 사람들로 평가받는 사람들이 늘어간다는 암울한 전망이 이 신조어에 담겨있는데 유통기한이란 말이 인생의 쓸모를 확인받아야 하는 절박함을 담고 있는 듯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 경연을 거쳐오면서 유통기한이란 인생에서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있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참 다행스러운 결론인데 과연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저런 마음을 가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홍이삭이 선곡한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는 나도 간간히 불렀던 곡이다. 조용필의 노래 ‘꿈’은 화려한 도시생활 속에서 방황하는 현대인의 상실감을 너무도 잘 표현해서 수업에서 소개하기도 했다. 바람의 노래 역시 음미할 내용으로 가득하다. ” 살면서 듣게 될까 언젠가는 바람의 노래를/ 세월 가면 그때는 알게 될까 꽃이 지는 이유를/ 나를 떠난 사람들과 만나게 될 또 다른 사람들/ 스쳐가는 인연과 그리움은 어느 곳으로 가는가/ 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 수가 없네 내가 아는 건 살아가는 방법뿐이야 /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아야 해/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 꽤 긴 삶을 지나온 나는 이 바람의 노래를 들은 적 있었을까?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을 비켜갈 해답이 사랑임을 깨달았던가? 나는 살아가는 방법과 지혜를 알고 있는가? 그 노래는 곧 나의 물음처럼 다가왔다.

스페셜 무대로 임재범이 나와 부른 노래는 모든 참가자들의 마음을 대변하기에 족했다. “누구나 한번쯤은 자기만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는 순간이 있지/ 너무 많은 생각과 너무 많은 걱정에 온통 내자신을 가둬두었지/ 이젠 이런 내모습 나조차 불안해 보여 어디부터 시작할지 몰라서/ 나도 세상에 나가고 싶어 당당히 내 꿈들을 보여줘야 해 /그토록 오랫동안 움츠렸던 날개 하늘로 더 넓게 펼쳐 보이며 날고싶어/ 그렇게 많은 걸 잃었지만 후회는 없어 그래서 더 멀리 갈 수 있다면/ 상처받는 것보단 혼자를 택한거지 고독이 꼭 나쁜 것은 아니야 /외로움은 나에게 누구도 말하지 않은 소중한 것 깨닫게 했으니까 / 이젠 세상에 나갈 수 있어 당당히 내 꿈들을 보여줄거야 그토록 오랫동안 움츠렸던 날개 하늘로 더 넓게 펼쳐 보이며/ 다시 새롭게 시작할거야 더이상 아무것도 피하지 않아 이세상 견뎌낼 그 힘이 되줄거야 힘겨웠던 방황은”

‘나도 세상에 나가고 싶어 당당히 내 꿈들을 보여줄거야’ / ‘그곳은 네 자리가 아냐, 그대로 일어나 멀리 날아가기를.’ — 노래만 아니라 인생에서도 새로운 시작, 어게인의 기회가 있을 것이다. 꼭 현실적인 성공이 보장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자존감의 회복, 살아갈 이유의 확인 만으로도 어게인의 충분한 이유가 된다. 영적인 깨달음은 차원을 달리하는 거듭남의 길일 것이다. 오랜 시간 ‘무명’의 아픔을 견뎌야 했던 이들이 ‘sing again’할 기회를 만난 것처럼 인생이 뜻같지 않아 힘들어하는 사람들, 특히 미래의 불확실성에 힘들어하는 젊은이들이 ‘life again’의 꿈과 희망을 회복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life · 오늘의 화두

청년의 꿈, 노인의 꿈

최근 예배시간에 설교로 듣고 찬송으로도 부른 성구가 있다. 요엘서에 나오는 내용으로 사도행전에도 언급된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청년들은 환상을 보고 노인들은 꿈을 꾸리라”는 메시지다. 예언, 환상, 꿈이란 말의 신학적 차이나 의미론적 차이가 있겠지만 모두가 현실을 넘어서는 미래에의 지향을 논한 것이란 공통점이 있다. 인생의 어느 순간에도 미래를 향한 기대가 필수적인 바, 특히 세상이 어지럽고 혼란스러울수록 더욱 그러하다는 깨우침으로 묵상할 좋은 화두다.

나는 수년 전 한국사회학회장 취임논문으로 ‘희망의 사회학’을 발표했었다. 사회학이 비판과 부정의 날카로움을 넘어 비전과 약속을 제공하는 따뜻함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 논지였다. 근대 이래의 사회학, 특히 한국의 사회학 담론이 비판적 분석에는 능한데 건설적 통합력과 희망적 역동성을 주는데는 취약하다는 내 평소의 생각이 반영된 글이었다. 후배인 김홍중 교수가 내건 ‘마음의 사회학’ 문제의식이 나와 공감되는 부분이 적지 않아 김 교수와 함께 “꿈자본과 청년층”을 주제로 한 공동연구를 추진했고 [꿈의 사회학]이란 제목의 책을 공동으로 편저하기도 했다. 젊은 세대가 미래를 향한 꿈을 키워가기 어려워지는 현실에 대한 분석, 그럼에도 꿈을 잃지 않고 형성하는 내면의 능력은 여전히 소중하다는 것을 강조하려 한 학문적 노력이었다고 자부하고 있다.

그 연장선으로 광주과학기술원에 와서 ‘꿈의 사회학’이란 과목을 개설하고 강의해온지 벌써 3년이 지났다. 근대 개방사회에서 사회이동이 확대되고 능력주의가 발휘되던 상황을 검토한 후, 21세기에 들어 이전과 달리 상승이동의 기회가 줄어들고 성공사다리가 닫혀가는 현실에서 꿈의 가능성을 따져보는 것으로 시작하는 수업이다. 개인이나 집단, 기업이 더 나은 미래를 기획하고 추구하며 창의적인 목표를 달성해온 역동적 사례들을 살펴보면서 각자 개인이 품고 있는 인생설계, 미래목표의 내용과 전망을 점검하는 기회를 가져보곤 한다. 민족과 국가 차원에서 거대한 꿈을 공유함으로써 공동체의 통합과 대규모 동원을 이루어온 사례들도 검토해 보면서 꿈의 다면성과 역설적 모습도 이해하도록 했다. 다행히 학생들의 관심은 나쁘지 않아 정원을 급방 초과할 정도로 인기과목이 되었다. 강의를 거듭할수록 꿈자본을 강조하는 것이 희망고문이 되지 않을 조건이 무엇인지, 기회구조가 축소되는 구조적 차원은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등 더 많은 숙고와 탐구과제에 부딪치지만 내 스스로에게도 좋은 지적 자극을 주는 수업이 되고 있다.

나는 꿈의 주체로 청년층을 상정하고 강의해왔다. 수강생이 대학생이라는 이유가 크지만 꿈은 특히 미래세대의 몫이라는 내 나름의 문제의식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모든 세대를 포괄하면서 특별히 노인을 꿈의 주체로 서술하고 있다. 왜 그랬을까? 성경의 메시지가 자녀, 청년, 노년의 세대적 구별에 관심을 둔 것은 물론 아닐 터이다. 또 예언, 환상, 꿈이 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기보다는 현실의 조건을 뛰어넘는 초월적인 경험이 모든 세대에게 공통으로 필요함을 강조한 것으로 여겨진다. 어쨋든 꿈의 주체를 청년으로 한정하거나 특정하는 것은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어려운 시대, 흉흉한 세상에는 모든 세대, 모든 사람들에게 절실한 것이 미래에 대한 기대, 희망, 꿈일 수 있겠다. 어떤 점에서 죽음을 앞두고 인생을 정리해야 할 노인들에게 꿈이 더 필요할지 모르며, 상황이 암울할수록 희망은 더욱 절실할 수 있으리란 생각을 하게 된다.

노인의 꿈은 무엇으로 구성될까? 나 자신이 70을 바라보는 상황이 되고보니 이 질문은 더욱 절실한 바 있다. 사회적 역할과 가장으로서의 책무가 어느 정도 끝난 시기인만큼 새로운 할 일을 찾아 발버둥칠 이유는 없다. 인생의 노년기에도 여전히 세속적인 성공이나 욕망충족의 꿈을 견지한다면 자칫 노추나 노욕의 부끄러움을 뒤집어 쓸 수도 있으니 조심할 일이다. 그렇다고 아무런 목표나 지향도 없이 하루 하루 소일하는 것이 좋은 태도라 하기도 어렵다. 노욕이나 노추가 아닌, 신선하면서도 아름다운 노인의 꿈은 어떻게 구성될 수 있을까? 강의실이 아닌 내 삶에서 풀어야 할 질문이자 숙제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