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하 교수께서 또 한 권의 대저를 출간하고 친필 서명과 함께 송부해 주셨다. 이미 간행된 [일제강점기 한국민족사] 상, 중에 이은 하권으로 제목을 달았지만 부제인 “1931년-1945년 한국의 민족과 사회”라는 제목의 독립 저서로 간주해도 무방한 책이다. 책갈피에는 그동안 출간한 신용하 저작집 66권의 제목이 빼곡히 적혀있어서 일생에 걸친 학문적 집념의 놀라운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 90을 향해가는 노학자의 책이 700쪽이 넘을 뿐 아니라 수많은 제자들의 부족한 논문들까지 일일이 찾아 인용하고 실사구시적 서술방식을 견지하신 연구자로의 일관된 자세가 새삼 놀랍고 경탄스럽다.
이 책은 서장, 종장을 포함하여 총 16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다루는 주제가 포괄적이다. ‘일제의 만주침략과 대륙침략 병참기지화 정책’ (2장), ‘임시정부 한인애국단의 활동’ (3장), ‘한국독립군과 조선혁명군의 무장독립운동'(4장), ‘동북인민 유격부대의 항일무장투쟁'(5장), ‘조선어문 수호 연구활동과 문자보급운동 및 브나르도 운동’ (6장), ‘1930년대의 문학예술’ (7장), ‘한국민족말살, 황국신민화정책’ (8장) ‘대륙침략 병참기지 확충과 군수산업'(9장), ‘일제 공출정책의 물자강탈과 조선인 생활상태’ (10장), ‘조선인 징용, 징병 정책과 강제연행’ (11장), ‘조선여자근로정신대와 일본군 위안부 강제연행’ (12장), ‘중국 관내에서의 독립운동과 조선의용대 및 한국광복군 창설’ (13장),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연합정부로의 개편’ (14장) – 제목만으로도 1930년대 이후 일제의 식민정책과 한국인의 독립운동 전반이 망라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책의 구성 내용을 살펴보면서 흥미로운 사실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일제의 식민지배정책은 기본적으로 조선 내부에서 전방위적으로 진행된 것이었음에 반해 독립운동은 대부분 한반도 바깥, 주로 중국 관내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일제의 가혹한 통치로 국내에서의 독립운동이 존재하기 어려웠음과 중국을 근거지로 하는 해외의 독립운동이 해방운동의 주요동력이었음을 반영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만큼 부나르도 운동, 조선어문수호활동, 문학예술운동 등은 국내에서 조선인 전반을 대상으로 진행된 운동으로 새롭게 주목된다. 비록 비정치적이고 비폭력적인 운동이었지만 국내의 이런 흐름이 해외 독립운동세력과 함께 해방과 독립의 동력이 되었음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다만 선명성과 정치성에서 해외 부분이 정당성과 상징성을 더 컸던만큼 해방 공간에서의 주도권을 해외독립운동가들이 지니게 된 것도 어떤 점에서 불가피한 일이었을 것이다. 독립국가건설과정에 외세의 영향이 강력했던 것도 이런 해외세력들의 과잉대표성, 국내세력의 미진한 발달에 그 일단의 원인을 찾을 수 있을 듯 싶다.
신용하 교수님의 대부분의 책이 그러하듯 이 책도 철저하게 사료와 전거에 입각하여 서술되어 있다. 흔히 좌파와 우파로 구분되는 독립운동의 여러 흐름과 정파들이 망라적으로 분석되고 있다. 한국의 근현대사가 한국과 일본, 중국 간에 일종이 역사전쟁의 대상이 되고 국내에서도 정파적인 해석에 따라 역사서술의 향방이 달라지는 현실을 고려하면, 사실에 입각하여 있는 그대로의 역사적 진실을 드러내겠다는 연구자의 자세는 그 자체가 귀하고 전범이 될 만하다. 대가라고 부를만한 학자들이 사라지고 작은 쟁점들을 붙잡고 씨름하는 연구자들만 많아지는 것이 숨길 수 없는 오늘의 현실에서 이런 노학자의 대작을 접하니 과연 연부역강 (年富力强) 이란 말의 전형이다. 신용하 교수님 회갑기념논총을 증정할 때, 나는 ‘필노시신’ (筆老詩新) 이란 글씨를 써서 헌정해 드렸는데 연륜이 더할수록 더 새로운 작품이 쓰여지기를 바란 그 기대가 여실히 이루어지고 있는 놀라운 모습이다. 감사하고, 그에 미치지 못함에 송구한 마음을 금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