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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를 향한 에코백

작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에 기증했던 한글 병풍의 글을 활용해 제작한 에코백을 건네 받았다. 내 글씨가 이런 형태로도 도움될 수 있다니 기쁘다. 푸른 색 바탕에 흰 글씨 색채 대비가 청명한 하늘의 하얀 구름마냥 상큼하다. 네모꼴로 발췌된 글씨를 배치해 전통적 전각작품을 떠올리게 한 디자인도 산뜻한 느낌을 더한다. 화선지의 먹과 붓의 느낌이 사라진 대신 글의 내용은 더욱 또렷히 부각된다. “정부의 정치적 경제적 조정에만 기초를 둔 평화는 세계국민들의 일치되고 영속적이고 성실한 지지를 확보할 수 없다. 인류의 지적 도덕적 연대 위에 평화를 건설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패권경쟁이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세계는 자국주의와 혐오의 감정정치로 곳곳에서 균열한다. 자기 죽음을 염려하는 인공지능이 등장할 정도로 급진전하는 과학문명이 인류공동체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구축할 수 있을지 여전히 논란 중이다. 동북아는 상호소통과 문화교류보다 국가주의와 신냉전의 암운이 짙어지고 한반도 긴장은 완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국력과 역동적 민주주의를 자랑하지만 낡은 남탓정치와 내부의 권력다툼으로 바람잘 날 없어 도덕적 연대를 말하기조차 민망할 지경이다.

인류의 지적 도덕적 유대라는 유네스코의 화두는 실현가능한 꿈인가? 유네스코는 ‘국제연합 교육과학문화기구’라는 긴 이름에서 보듯 교육, 과학, 예술, 문화의 힘을 강조해 온 국제기구다. 출범 당시부터 정부관료나 기업가보다 교육자, 과학자, 예술가, 문화인의 보편적 정신을 중시하는 지향이 강했다. 실제로 지금도 인류적 문화다양성과 지식교류, 과학적 접근과 생태적 사유의 종합을 위해 다방면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하지만 자국주의와 이익추구의 힘이 여전한 오늘, 과연 과학자와 예술가, 교사와 문화인이 국가의 경계를 넘어 인류공동체의 연대를 주도할 주체가 될 것이란 확신을 갖기는 쉽지 않다. 과학과 교육, 예술과 문화의 힘이 인류적 차원의 지적 권위와 도덕적 유대를 구축하는 시대가 올 것을 기대해도 좋을까? 상큼한 디자인의 에코백을 보면서 해 보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