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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e Mountain과 IMF

3년전 하바드엔칭 연구소 학자들의 연례모임이 있었던 화이트마운틴 옴미마운트 워싱턴 리조트를 다시 찾았다. 아름다운 이곳을 방문했던 2020년 1월, 자고 일어나니 폭설로 온 천지가 하얗게 덮였다. 호텔 주변으로 아무도 걸어가지 않은 눈덮인 숲길을 걸으면서 넓은 평원, 하얗게 변한 침엽수들의 사이를 한참 걸었던 기억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1944년 7월 1일 2차대전 이후의 국제질서를 재편하기 위한 연합국통화금융회의가 이곳에서 개최되어 브레턴우즈협정이라 통칭되는 국제통화기금협정(Agreement of the International Monetary Fund)이 조인되었다. 44개국이 조인한 브레턴우즈협정의 핵심은 국제적인 자유무역의 활성화와 그에 기초한 외환시장의 안정이었다. 이를 위해 미국 달러의 금환본위제(금·달러본위제)와 조정 가능한 고정환율제를 채택했다. 미국의 달러화를 IMF 가맹국들이 일정한 환율로 매매함으로써 자국통화와 달러, 그리고 금이 간접적으로 연결되게 한 것이다. 기축통화의 지위를 확보한 미국은 막대한 양의 금을 보유하는 것과 함께 자국 경제를 인플레이션 없이 안정적으로 관리할 책임을 맡았다.

1층 한 구석에 IMF 협정이 체결된 방이 기념공간으로 보존되어 있다. 당시 연합국 대표들의 사진과 테이블이 남겨져 있다. 하지만 이 장소성을 홍보하려는 의지가 별로 없는 듯 눈여겨보지 않으면 스쳐 지나가기 십상이다. 오히려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는 넓은 홀의 소파와 아름다운 주변 풍경에 더 눈이 간다. 전후질서구축이란 세계사적 결정이 내려진 곳이지만 2023년 이곳의 모습은 그냥 호젓하고 아름다운 한 리조트에 불과하다. 찾아오는 사람들 역시 그 누구도 이곳에서 브레튼우즈 체제나 IMF 를 떠올리지 않는다. 흰 눈과 빨간 지붕, 고풍스런 건물의 위용 속에서 사람들은 제각기 휴식과 평안을 찾기 바쁘다.

미국이 금본위제를 폐지하면서 브레튼우즈 협정의 축은 크게 흔들렸고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패권적 지위도 이전만 못하다. 하지만 대안이 없는 현실에서 달러가 지니는 힘은 여전하다. 세계 각국은 달러보유고를 신경써야 하고 유동성 위기를 겪는 국가들은 IMF라는 구원투수에 의해 강제적인 구조조정을 당하기도 한다. 중국의 부상, 미국의 방대한 재정적자, 양적 완화에 의한 달러인플레 등이 앞으로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전후질서의 구축이란 역사적 결정이 내려진 장소가 휴가와 여행을 즐기는 일상인의 리조트가 되어 있는 모습을 보면서 세계의 흐름과 개개인의 삶의 관계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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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ndall Square 의 Technology Park

다시 찾은 켄달 스퀘어는 깔끔한 첨단지구로 거의 탈바꿈해 있었다. 3년전 이곳에 와 살펴볼 때도 이미 상당한 변화가 진행 중이었지만 곳곳에 채 마무리되지 못한 공사들이 널려있었다. 이제 대부분 완료가 된 듯 주요 기업들이 입주하거나 들어올 예정이라 한다. MIT 가 이 지역의 첨단 기술생태계의 거점으로 홍보하던 건물도 완공이 되었고 지하철역과 연결된 고층건물에는 구글 로고가 뚜렷하게 빛나고 있다.

30여년전 처음 이곳 캠브리지에 와서 1년 반을 생활했을 때 이곳은 별로 오고싶지 않은 곳이었다. 하바드 스퀘어가 각종 문화적 활동과 방문객으로 북적일때도 이곳은 MIT의 한두 건물을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오래되고 낡은 벽돌 건물들로 낙후한 지역의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그것이 역설적으로 대변신의 조건이 되었다고 할까. 켄달스퀘어의 도심재개발이 추진되면서 MIT 대학과 첨단과학기술에 기반한 벤쳐기업을 연계하는 대학-도시-기업 복합공간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하바드 스퀘어와 켄달스퀘어의 지난 30년을 비교해 보면 전통의 무게감과 혁신의 대전환이 뚜렷하게 대비된다.

기술이 주도하는 21세기인만큼 캐임브리지의 공간동학도 하바드 스퀘어에서 켄달 스퀘어로 옮겨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돈과 기술과 창업과 역동성의 측면에서 이미 두 지역의 차이는 분명하다. 최근에는 뉴스를 주도하는 것도 MIT 라는 말도 들린다. 물론 하바드의 인문사회적 역량과 전통의 힘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첨단의 고층빌딩이 주는 현대적 감각보다 고색창연한 하바드 대학의 오래된 무게감이 더 멋스럽고 중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MIT 가 주도하는 과학기술문명의 충격이 전례없는 힘으로 다가올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켄달 스퀘어의 곳곳에 멋지게 세워진 건물의 다수가 고가의 아파트라고 한다. 첨단의 생태계가 지속가능하기 위해 일정한 주거공간이 필요한 것은 당연할 터이지만, 웬지 또하나의 현상을 보는 듯한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도심개발이 땅값의 상승으로 이어지고 결국은 자본력이 있는 대형 빅테크의 거점이 되고 값비싼 아파트 지구로 바뀌면서 대학 주변에서 지식과 창의성으로 무장한 신생 벤쳐들의 활력을 뒷받침한다는 애초의 명분과 목표가 흐릿해질 가능성이 커 보였다. 커먼즈를 확보하려는 노력인지 구글 건물의 외부에 오픈 가든이 조성 중이었는데, 그 규모로보아 얼마나 실질적인 커먼즈가 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해 보인다. 자본과 기술, 지식과 창의가 연결되는 방식 그 자체는 완전히 혁신적이기 어려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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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위한 대화

11월 30일 현 한반도 위기상황에서 평화를 모색하는 모임이 평창동 대화문화아카데미에서 개최되었다. 나는 이 좌담의 사회자로 초청을 받아 세 시간을 넘기는 대화시간을 주재했다. 평창동 높은 곳에 호젓하게 위치한 이 아담한 4층 공간은 경동교회 목사로 한국의 기독교와 사회운동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던 여해 강원룡의 정신을 기려 如海軒이라 이름붙인 곳이다. 이홍구 전 총리, 하태경 국민의 힘 의원, 이재정 민주당 의원, 이삼열 대화아카데미 이사장, 최상룡 전 주일대사, 이부영 전 의원, 이현숙 WPS 아카데미 이사장 등 다수의 원로와 전문가들이 자리를 같이 했고 줌으로 참여한 분도 여럿 되었다.

기조발제를 맡은 박명림 교수는 중요한 쟁점들과 제안들을 포괄적으로 제시했다. 미중대립은 신냉전이라기보다 과학기술과 문명의 표준을 둘러싸고 복합적으로 진행되는 다층적 경쟁임을 강조하고 구별된 대응을 통해 패권경쟁에 한국이 휩쓸리지 않아야 할 것을 주장했다. 북한의 국가성을 인정하는 위에 통일보다 평화에 주목하는 남북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것, 비핵화 원칙을 견지하면서 안보와 대화의 병행전략을 추구해야 할 것도 강조했다. 무엇보다도 선진국으로 부상하여 제국적 속성까지 지니게 된 한국이 민족주의적 특수주의를 벗어나 보편적이고 문명사적인 시야를 확보해야 할 것을 제안했다. 역사적 경험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미래지향적인 발상을 강조한 박교수의 진지한 발제 내용에 대체로 공감하면서 참석자들은 그 실행방안, 구체적 실마리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를 두고 여려 견해들을 주고 받았다.

잔잔하지만 경륜이 담긴 이홍구 전 총리의 언급도 나로선 인상적이었다. 몇년전 같은 모임에서 나는 신냉전이 오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섞인 발언을 그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YS,DJ,JP,노태우 같은 큰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 안타까움과 함께 북한변수 특히 김정은 위원장의 판단과 행동이 상황을 어렵게 만드는 주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 그래서 한반도 미래를 생각할 때 비관적인 느낌이 강해진다는 발언을 들으면서 마음이 무거워짐을 느꼈다. 사회자로서 다른 분들께는 좀더 긍정적 미래전망을 말해달라고 주문하기는 했지만 문명사의 흐름은 반드시 진보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바우만이 말한 레트로토피아적 경로가 한반도에서 나타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을 쉽게 떨쳐버리기 어려웠다.

70년대 아카데미의 대화 모임은 사회적 소통을 증진시키고 민주주의 정신을 확산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민주화가 실현되고 다양한 목소리들이 혼재하는 시대에 접어들면서 그 존재감이 크게 약화되었다. 언론과 국회가 사회적 소통의 기제로서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한다면 시민들의 일상적 대화는 굳이 무거운 쟁점들에 주목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숱한 미디어와 말들의 잔치 속에서 오히려 신뢰도 화해도 힘들어진 상황을 목도하고 있다. 거대양당의 정략적 판단이 일사분란하게 작동하는 국회는 고급한 대화의 장이라기보다 말의 오남용과 논리싸움의 현장이 되고 있다. 유투버, 1인 미디어, 인플루언서, 소문과 팬덤이 혼합된 디지털 시대에 대화의 존재양식도 크게 달라졌다. 신뢰와 합의를 위한 의사소통 방식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가 새로운 과제로 대두되는 상황인 것이다.

2022년 말, 유럽은 전쟁과 에너지난으로 뒤숭숭하고 미중의 대립은 전방위적으로 진행되는데 남북관계도 최악의 국면을 맞고 있다. 믿을 것은 무력 뿐이라는 신념으로 핵위협을 고도화하는 북한과 그에 따른 불안감을 호소하는 우리 내부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남남갈등은 다시 고개를 들고 정치권은 해묵은 보수 진보의 대립를 반복한다. 말이 정치가 되고 논리가 승패의 무기로 간주되는 시대에 위기해소의 지혜를 제공하는 대화란 어떤 것일까? 날선 편가름과 원초적 무력 숭배가 상황을 좌우할 때 대화가 제공하는 솔루션의 효용성은 어디까지일까? 일방적인 자기 주장, 타자와의 차별화를 목표로 한 진열장식 대화가 빈발하는 오늘, 대화가 진정 문제해결의 기반이 될 수 있는 근거와 조건은 무엇일까? 남북간에, 미중간에, 여야간의 갈등이 대화로 해소될 수 있으리란 믿음을 정말 우리는 공유하는가? 이런 근본적 질문들에 대한 겸허한 성찰과 새로운 소통양식을 탐구해야 할 문명적 전환기에 있다는 생각을 더욱 절감하게 된 자리이기도 했다.

activities · life · 시공간 여행

書藝無疆

서울대 문화관에서 10월 24일부터 28일까지 열린 한중합동의 [가없는 서예술: 書藝無疆] 서예전에 참가했다. 한국측은 소동파를 비롯한 중국의 시문을, 중국측은 이규보와 퇴계 등 한국의 문장을 쓰는 방식으로 기획된 일종의 문화교류 행사다. 서울대 교직원 서예모임인 화묵회가 홍콩 학자들의 서예단체 集古學社와 함께 개최한 이 전시에 나는 전적벽부 전문을 쓴 작품을 출품했다.

적벽부는 첫 문장을 비롯해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구절이 더러 있다. 하지만 올 여름 文徵明 서첩을 구해 그의 행서를 임서해보면서 비로소 내용 전체를 제대로 음미할 수 있었다. 배 위에서 동파와 객이 주고받는 대화는 지금 읽어도 우아한 품격이 느껴지는 고품질의 토크다. 한 때 일세영웅이었던 조조를 생각하다가 그도 세월이 흐르니 흔적조차 없어졌음을 깨달은 객은 “장강의 끝없음을 부러워하고 인생의 유한함을 슬퍼” 하는 마음을 담아 애절한 통소를 불었다.

그 소리에 화답하여 소동파는 “만물을 그 변하는 것에서 보면 어느 것 하나 순간이 아닌 것 없지만, 변하지 않는 면에서 보면 모든 것이 끝없이 존속하는 것” 임을 강조한다. 인생도 산하도 변화하는 것과 지속되는 것이 동전의 양면이니 어느 한 면에 매달려 자만하거나 애석해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럴 때에야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이 ‘조물자’가 우리에게 준 무진장의 선물임을 깨닫게 된다는 말도 덧붙인다. 造物者라는 표현에서 느껴지는 종교적 깨달음이라 할까, 인간과 자연을 함께 생각하는 달관이라 할까 독특한 여유와 정조가 마음에 와 닿는다.

중국측 출품작 가운데서는 홍콩 중문대학 심천학장 徐揚生이 퇴계 이황이 기대승에게 보낸 글을 쓴 작품이 글씨도 멋스럽고 내용과 구도도 마음에 들었다. “선비가 태어나 혹 출세하기도 하고 혹 은거하기도 하며 혹 뜻을 이루기도 하고 혹 불우하기도 하지만 오로지 자기 몸을 정결하게 하고 옳음을 행할 뿐 禍福을 논할 것은 아니다.” 조선 유자의 반듯함이 드러나는 글인데 소동파의 도학적인 분위기와 이퇴계의 유학적인 정신이 같은 듯 다른 듯, 화이부동의 싫지않은 긴장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 현실을 돌아보면 삽시간에 저련 정신의 여유가 사라지고 만다. 도무지 품격이란 찾아볼 수 없고 개인과 자파의 ‘화복’만 따지는 국내의 정치현실, 자국의 이익 앞에 인류의 공존이 위협받는 국제정세, 핵무장론이 등장할만큼 어려워진 남북관계 등 답답한 상황을 앞에 두고 소동파와 이퇴계는 무어라 조언할까? 또 통소를 불던 저 객은 어떤 노래를 부를까? 한중 민간의 문화교류가 정치갈등의 파고를 넘어 서로를 존중하며 순항할 것인가? 전시회를 지키면서 자문해본 물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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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공동체 통일방안 평가

10월 21일 통일부와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함께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수정 보완 필요성에 대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박영호, 전재성, 김병연 등 세 분의 발제와 8명의 패널 토론이 다양한 쟁점들을 심도있게 부각시킨 자리였다. 전체 발표와 토론을 이끄는 좌장역할을 부탁받았을 때 선약을 취소하면서까지 그 제안을 수락했을만큼 내 개인적으로도 관심이 큰 행사였다.

발제자들은 각기 다른 맥락에서 이 방안의 수정보완, 발전적 계승을 주장했다. 박영호 박사는 30년간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방안이 갖는 의의를 강조했고 전재성 교수는 탈근대적 시대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변화를 주문했다. 특히 십여년 전 내가 주도해서 서울대 통평원에서 내놓았던 [연성복합통일론]의 문제의식이 더욱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해서 반가왔다. 김병연 교수는 중간단계로서 경제통합을 좀더 구체화하고 그 실현을 향한 보완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패널의 토론은 다양했는데 나는 대략 다음 몇가지로 그 쟁점을 요약할 수 있다고 보았다. 1) 30년간 잘 유지되어온 통일방안을 굳이 다시 건드릴 필요성이 있는가 2) 민족이란 개념과 범주를 여전히 중시할 것인가 3) 중간단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 4) 통일방안은 남북이 함께 추구할 것인가 아니면 대한민국의 전략구상으로 추구할 것인가 5) 국내정치에서 이 사안이 정쟁과 이념분쟁의 소재로 오용되지 않고 큰 국가전략으로서의 통합적 지위를 갖도록 할 방안이 있는가 6) MZ 세대의 반응과 생각을 어떻게 통일이란 미래전략에 결합할 것인가.

뚜렷한 답은 얻기 어려웠고 사안별로 의견은 갈렸다. 무엇보다도 이 사안을 들고 나온 통일부나 통평원이 이것을 얼마나 무겁고 중요한 아젠다로 생각하고 있는지가 불확실해 보였다. 나로서는 반드시 다루어야 할 쟁점이고 지금이 그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진지함과 결의가 없이 많은 사안들 중 하나로 다루어보고 그 효과를 이용해 보려는 차원이라면 별반 의미가 없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두번의 선약을 바꾸면서까지 참여하고 싶었던 자리였고 실제 발제와 토론이 매우 격조높고 충실해서 대단히 유익한 행사였지만, 돌아오는 기차 속에서 이 사안에 대해 얼마나 깊은 무게감을 우리 사회가 부여하고 있는가에 대해선 의구심을 버리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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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과 한반도 평화

10월 20일 제6회 포스텍 포스리 평화포럼을 조직하여 포스코센터 세미나롬에서 개최하고 좌장 역할을 수행했다. 북한이 핵을 방어용이 아닌 공격용 무기로 사용할 수 있다는 핵교리를 법제화하고 전술핵운용부대를 창설하는 등 북핵의 위협이 고도화되는 가운데 7차 핵실험 임박설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그간 금기시되었던 한국의 독자핵무장론이 고개를 들고 있고 군사충돌의 위험에 대한 안보불안도 대두되는 시점인만큼 전문가들의 격의없는 토론장으로 유익한 자리였다.

그간의 핵정책 전반에 대한 전문가로 한용섭 전 국방대 부총장과 세종연구소 정성장 박사 두 분의 발제를 듣고 십여명 전문가들이 패널로 토론에 참여했다. 한교수는 확장억제정책의 강화를, 정박사는 독자핵무장을 대응책으로 주장했고 다양한 배경을 지닌 패널들의 토론이 이어졌다. 국제정치, 남북관계, 군사안보, 평화구축, 한국경제 등 여러 관점에서 이 사안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논의되었다.

참가자들은 지난 30년 북한 비핵화를 목표로 한 한미의 대응정책은 총체적으로 실패했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이미 독자적 핵국가임을 주장하는 북한이고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국제사회가 받아들이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핵을 가진 북한과 어떻게 한반도 평화를 지속가능한 형태로 보장할 수 있는가인데 이와 관련해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난무했다. 핵이란 특수무기가 갖는 비대칭성을 고려하면 보다 발본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데는 큰 이견이 없었지만 대응방식에 대해서는 시원한 합의를 얻기 어려웠다.

결국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방법론인데 이것이 매우 중요한 전략적 방향설정과 무관치 않다는게 사안의 무거움이다. 지금까지 성공하지 못한 비핵화의 원칙과 비핵화 정책을 여전히 견지하면서 북한의 변화를 견인할 것인가, 북한이 반응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의 강력한 한미동맹의 가시적 확장억제정책 방안이 있을 수 있는가, 독자 핵무장을 추구할 때 얻을 수 있는 이익과 부담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등이 그 핵심적인 쟁점이라 하겠다.

전문가들의 대체적 견해는 고도화된 북핵에 대응하는 새로운 접근이 필수적이지만 한국의 독자 핵개발은 득보다 실이 만다는 의견이었다. 결국 미국핵에 의존하면서 기존의 3축체제를 비롯한 국방능력의 획기적 강화를 추구하는 것이 그 대안으로 언급되었고 주한미군의 존재 자체가 강력한 확장억제의 근간이라는 견해도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미국이 자국의 위험을 무릅쓰고 한국에 대한 확장억제정책을 언제까지나 견지할 것인가, 언젠가 도래할 수도 있는 미군철수나 한미동맹 약화의 때 한국의 안보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핵을 가진 북한이 북미수교라는 목표를 달성하게 될 경우 남북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등.. 쟁점이 무엇인지는 꽤 확인되었지만 여전히 시원한 답을 얻기 어려운, 그러나 유익한 포럼이었다. 다만 점점 어려운 시대로 접어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던 자리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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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최재석 학술상

한국사회사학회가 주관하는 최재석 학술상 3회 시상식이 열렸다. 고려대학교 수암패컬티 하우스에서 학회 임원진, 유족대표를 포함한 운영위원들, 심사위원들이 모여 수상자들에게 시상하고 성과를 치하했다. 나는 이사장으로서 인사말을 하고 상패를 수여하며 여러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하느라 몸도 마음도 바빴다.

내실이 있고 학문적 내공도 만만찮지만 규모는 크지 않은 학회에서 이만한 학술상을 운영할 수 있는 것은 대단한 자원이다. 고 최재석 교수의 유지가 뚜렷했고 또 그 뜻을 깊이 새겨 실행한 부인 이춘계 여사의 거액 쾌척이 이것을 가능케 했지만, 한국사회사학회를 이만큼 신뢰할만한 학술단체로 키운 여러 선학, 동학 들의 수고와 열정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내심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김상준 교수가 본상을 받았다. 동서양 문명을 큰 틀에서 조감하면서 과거와 미래를 새롭게 해석하려는 야심찬 저작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결과다. 사실 동서양의 비교는 해묵은 주제이지만 정작 그것을 붙들고 씨름하는 지적 탐구 수준은 그다지 깊다 하기 어려운 탓에 김교수의 노력이 더욱 기대되는 것이다. 우수박사학위논문으로 선정된 박해남 박사의 논문은 내가 지도했던 것이어서 더욱 고맙고 기뻤다. 1980년대 올림픽이라는 대형 스포츠 이벤트를 전후하여 진행된 다양한 생활세계 재조정 노력을 사회정책으로 개념화한 신선한 시각이 앞으로도 더욱 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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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친, 사비넷

오랜 대학생활을 하면서 주로 학술조직이나 연구관련 학회들에 참여해왔다. 사회학자로서 한국사회학회와 사회사 연구자로서 한국사회사학회는 내 오랜 학교생활과 거의 겹칠 정도로 많은 시간을 보낸 학술조직이다. 그래서일까 지금 나는 두 학회의 법인 이사장 직을 맡고 있다. 학회의 이사장이란 직책이 별 권한이나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생 관여해온 학술조직을 그런 모양으로라도 도울 수 있다는 것이 명예로운 일임은 분명하다.

정년을 하고 나니 새로운 모임에 참여할 기회가 생긴다. 포럼이란 이름을 지닌 모임이 그 대표적인 사례인데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정기적으로 만나 강연을 듣거나 정보를 공유하는 자리다. 형태에 따라 꽤 제도화가 된 규모있는 포럼도 있고 그동안 활동해온 개별적 인연을 바탕으로 가벼운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포럼도 있다. 개인적으로 어떤 포럼에는 수동적으로 참여하고 더이상 참여하지 않는 포럼도 있지만 적극적인 참여를 하는 포럼도 있다.

거창한 이름을 내걸지 않으면서 참여하게 되는 모임들도 있다. 최근 참여하게 된 사비넷과 사사친이 그런 사례다. 사비넷은 사회학과 비즈니스 네트워크란 말에서 짐작하듯 사회학과 동문들 가운데 비지니스 활동을 하는 분들 중심으로 이어져온 모임이다. 사회학과 동문회가 출범하고 주로 학계 바깥에서 중요한 활동을 하던 분들 중심으로 이 모임이 시작되었고 개인적으로는 그 출범과정을 지켜보면서 일부 뒷바라지를 했던 기억이 있다. 학교를 정년하자 김병용 회장께서 나도 초청해주어 참여하기 시작했다.

사사친은 사회사학회 친구들이란 말의 줄임말 격인데 한국사회사학회 활동에 깊이 참여해온 연구자들 가운데 이제 정년을 한 노학자들 중심의 친목모임이다. 사사친은 대체로 비슷한 연배의 학자들로 구성된 소규모 모임인 탓에 아직은 학술적인 주제나 학회 관련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주를 이룬다. 반면 사비넷은 세대를 달리하는 다양한 연령층의 모임으로 골프를 통해 친목을 도모하면서 서로의 유대를 확인하는 모임이다.

지난 주말 사비넷의 모임이 있었고 나로선 처음으로 참여했다. 오랫동안 기업을 경영해온 선배도 있고 퇴직을 한 분도 있지만 대부분 다양한 영역에서 현역으로 활동하는 동문 후배와 제자들이었다. 골프라는 운동이 한편으로 높은 문턱이 될 수 도 있어 보이지만 역으로 그 운동이 지닌 특성이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묶어주고 또 정서적인 유대감을 강화하는 듯 했다. 학계 중심의 모임과는 그 색깔과 분위기가 다른, 독특한 정감과 적절한 자율성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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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의 독도 그림

8월 15일 77주년 광복절이다. 일제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된 날로서 기미년 3.1 독립선언서에 쓰인대로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이 확인된 날이다. 3년 뒤 대한민국 헌법에 기초한 제1공화국이 출범한 정부수립일이기도 하다. 이 날에 담긴 의미는 다중적이고 기념하는 내용도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어서 단일하진 않다.

3.1운동 이래 널리 공유된 함성은 ‘대한독립만세’였고 여운형은 ‘건국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임시정부의 대일투쟁조직은 ‘광복군’이었다. 그래서 독립, 광복, 건국, 자주 등의 개념이 늘 함께 한다. 우리는 이 날을 광복절로 기념하지만 범국민적 열성으로 건립된 기념관의 이름은 독립기념관이다. 독립이란 말에는 과거에 국가가 없었던 신생국의 이미지가 있고 광복이란 말은 이전 시대와의 질적 차별성을 드러내는데 한계가 있다. 신생이나 회복의 의미를 넘어서는 역사적 이중성, 즉 복구하면서도 극복하는 질적 전환을 드러낼 개념화가 절실하다. 동시에 분단으로 인한 미완의 한계, 남은 과제까지도 포함될 수 있는 개념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광복절 하루를 나름 어떻게 보낼까 생각하다가 2주전 다녀온 독도를 그려보기로 했다. 풍랑으로 인해 상륙은 못했지만 망망 대해의 한가운데 의연한 자태로 서 있는 작은 섬의 모습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겨 언젠가는 그 이미지를 표현해보리라 생각했었다. 지금도 한일간 분쟁의 한복판에 서 있는 곳이지만 비바람, 풍랑, 고독, 정치 등 어떤 조건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의연하게 지켜내는 당당함을 절실하게 느꼈다. 화선지 위에 검은 먹의 농담으로 찌푸린 하늘, 넘실대는 바다, 그 가운데 당당히 선 독도의 모습을 그려보며, 21세기 독립자주와 인생살이에서의 의연함을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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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과 사회의 탄생

포스텍 융합문명연구원장 박상준 교수의 신작 [현대 한국인과 사회의 탄생]을 중심으로 한 세미나에 줌으로 참여했다. 흥미로운 주제인데다 박교수로부터 그 책을 증정받은 고마움도 있어 즐겁게 동참했다. 융합문명연구원을 설립한 초대원장 송호근 교수, 토론자로 온 권보드레 교수, 작가이자 사회학자인 정수복 박사도 볼 수 있어서 더욱 반가왔다.

한국에서의 사회 형성은 나도 관심을 가져온 주제다. 개념사와 사회사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전환기 역사를 해석하는데 미력이지만 애를 썼다. 유교적이고 자족적이었던 전통체제로부터 벗어나 낯선 시대에 직면한 한국인들에게 ‘사회’란 ‘문학’이나 ‘개인’ 못지 않게 새로운 현상이었고 그것은 현실보다 개념의 형태로 ‘다가올 미래’를 표상했다. 애국계몽운동기, 글쓰기를 담당한 식자층들이 이런 미래를 상상하고 새로이 등장한 매체가 그것을 확산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인직이 사회 개념을 ‘만세보’에 소개하고 이광수가 문학을 강조하며 청년들이 사회운동에 관심을 보인 것도 유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겠다.

문제는 식민지라는 조건, 국가를 잃게 된 상황에서의 ‘새로운 미래’ 상상이 겪어야 하는 제약이었다. 사회, 문화, 개인은 국가라는 정치공동체를 전제함으로써 그 구체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 근대의 특징이다. 1910년 국가의 소멸은 식민지 하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개인과 사회, 문화를 어떻게 사고해야할지 새로운 곤경을 야기했다. 이 시기 등장한 민족범주는 혈연적이고 문화역사적인 공동체로서 국가를 대체하는 효율적인 주체로 부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개인과 사회의 공간을 열어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현대한국인의 탄생을 국가나 민족이 아닌 사회의 탄생과 연결시키고 그것을 문학의 장에서 확인하려는 발제자의 시각은 참신하다. 권보드레 교수도 민주주의의 문제를 소환한 것을 중요하게 평가했다. 20세기 한국의 지성사를 꿰는 화두로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주목할 때 사회의 영역과 개인의 존재가 좀더 잘 부각될 수 있는 것도 분명하다. 어쩌면 민족주의, 사회주의, 국가주의의 과도한 영향을 벗어날 때 문학이 미친 심대한 영향을 더욱 또렷이 확인할 수 있을지 모른다.

종교의 문제가 결락된 것 아닌가는 질문이 청중에게서 제기되었다. 내 개인의 체험으로도 개인과 사회라는 말에 이끌린 바탕에는 기독교적 사유가 작용했음을 또렷하게 느낀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던 동학과 천도교의 영향도 20세기 초반에는 매우 강력했다. 실제로 개인의 존재, 그들의 자발적인 연대로 형성되는 사회를 강력히 옹호한 것은 정부도 민족도 아니었고 종교단체를 비롯한 민중의 결사체들이었다. 개인의 각성이 정치적 권리나 경제적 부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세속과 맞서는 종교적 윤리체계에서 비롯되었다는 막스 베버의 명제를 떠올렸다. 그런 점에서 문학과 종교는 같은 기능을 수행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좋은 세미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