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오늘의 화두

대기의 강과 방주

하늘에 구멍이 난듯 무섭게 퍼붓는 비가 그칠 줄 모른다. 며칠 동안 전국을 물바다로 만들고 있는 이 장마전선은 어떤 예방책도 무색할 정도로 한반도 전역을 휘젓고 있다. 이미 수십명이 목숨을 잃었고 곳곳의 제방이 무너졌으며 이재민도 상당수 발생했다. 장기간 같은 지역에 호우가 계속되는 이유는 한반도의 동서로 ‘대기의 강’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라 한다. 지상의 어떤 강보다도 훨씬 많은 수증기를 포함한 이 하늘의 강은 최근 지구온난화로 인해 그 강도와 지역이 변화하고 있다 한다. 하늘에 거대한 강줄기가 생겨난다는, 문학적 비유처럼 들리는 이 현상이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라니 놀랍다. 대륙과 해양의 두 거대 기단의 팽팽한 충돌이 빨리 깨지기를 기대하는 수 밖에 없는 속수무책의 상황이 안타깝다.

일주일 전인 7월 11일, 인류세 실무그룹(AWG)과 막스플랑크 과학사연구소가 베를린에서 중대한 발표를 했다. 인간이 지구 기후와 환경에 심대한 영향을 미쳐 새로운 지질시대로 이행했음을 과학적으로 확인했고 이를 증명할 국제표준층서구역(GSSP)으로 캐나다의 크로퍼드 호수를 선정했다는 것이 발표의 요지다. 마지막 빙하기 이후 12000년 간 안정적 기후 상태를 제공하여 인류문명의 출현을 가능케 했던 홀로세가 끝나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는 환경과학자 폴 크뤼첸의 주장이 학계에서 공인된 셈이다. 후속 논의를 거쳐 내년 8월 부산에서 열리는 국제지질학총회 (IGS)에서 인류세가 홀로세를 이은 새 지질시대로 공식화될 것으로 예상된다는데, 이 뉴스를 물난리 뉴스와 함께 접하는 마음이 무겁다.

인류세가 시작된다는 말은 단순히 지질학계 내부의 학문적 논의에 그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문명을 가능케 했던 우주적 환경조건의 대전환을 뜻하며 오랫동안 친숙했던 기온, 기후, 강우, 대기 등 지구생태의 안정성이 더 이상 지속되지 못하리라는 무서운 진단이다. 일시적인 이상현상도 일정 시간을 지나면 회복되는 자연의 치유력, 항상성 메카니즘도 기대하기 어려우리란 경고이기도 하다. 대기과학자들의 논의에 따르면 지구평균기온 상승 2도는 마지노선이고 1.5도 이내로 통제해야 힘들게나마 개선의 여지를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 그 임계점까지의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아서 다음 세대에게 부탁하거나 미룰 여유가 전혀 없는 절박한 상황이다. 탄소배출의 감소를 약속한 빠리협약의 결정은 이런 문명적 위기의식에 바탕한 것이었는데 트럼프를 비롯한 지구 정치인 상당수가 이것을 희화하하고 있고 우리 개인들도 일상에서 그 심각성을 제대로 수용하려 하지 않는다. 경고를 듣고도 바벨탑을 쌓던 고대인을 떠올리게 하는 형국이다.

지난 달 개최되었던 한국사회학회에서 서울대 김홍중 교수는 ‘파국주의’를 논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파국’이라는 화두 속에는 ‘위험’ 이라는 말조차 한가하게 들릴 정도의 긴박함과 절박함이 담겨있다. 그에 의하면 울리히 벡, 존 어리 등 유럽의 사회학자들이 21세기 미래를 파국이란 개념을 통해 포착할 필요성을 역설했는데 지구와 대기, 생명과 물질, 인간과 자연을 유기적으로 연결지어온 기존의 생태학적 조건들, 자연의 생명력과 회복력이 크게 훼손되어 전례없는 위험과 재난에 봉착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라 한다. 인류문명이 끝날 수도 있다는 종말론적 파국론을 냉정하게 수용할 때에만 그로부터 벗어날 희미한 가능성이 찾아질 수 있다는 역설적 메시지인데 솔직히 낯설고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대기과학자들의 경고를 들으면 이런 주장을 지나친 호들갑이라고 마냥 내치기는 어려워 보인다.

연일 계속되는 폭우 앞에 무력감을 느끼면서도 좌절하지 않을 심리적 대응기제가 있다는 것은 다행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믿음에 기대어 이 난국도 지나가고 일상도 회복되리라는 희망을 갖는 것 자체가 소중한 회복력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기대의 배후엔 장기간 작동해온 자연의 치유력이 있다. 인류세가 시작된다는 것은 이 지구생태적 회복력에 심대한 문제가 나타난다는 뜻이다. 이 위기의 시대에 새로운 대응력을 찾기 위해 인문사회적 지혜와 과학기술의 역량을 함께 모아야 할 때다. 개발과 효율, 편리함을 지고의 가치로 삼는 성장주의를 넘어, 지속가능성과 공생의 생활양식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큰 숙제다. 신의 자리를 넘보는 오만한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 공기, 대기, 우주, 물질, 기계 등과 더불어 피조물로서의 겸손함을 되찾는 인간개혁도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신은 인류의 타락을 징벌하면서도 ‘노아의 방주’를 통한 뭇생명의 지속을 허락한 바 있다. 과연 오늘 우리는 문명 위기를 경고하는 여러 징조 앞에서 노아처럼 방주짓기의 성스런 과업에 나설 수 있을 것인가 – 그칠 줄 모르는 폭우 앞에서 자문해 보는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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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기억

지인 한분이 카톡방에 이육사의 청포도 시를 올려놓았다. “내 고향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이라는 첫 문장은 매우 익숙하지만 실제 7월이라는 날짜와 연관지어 이 시를 떠올려 본 적은 없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 글을 접하는 순간 아 7월이구나 하는 생각이 확 다가왔다. 이육사라는 시인이나 청포도라는 이미지보다 특정한 날짜가 더 눈에 뜨인 것은 정년 이후 너무도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을 실감하기 때문일 듯 싶다. 새해를 맞이한지 어제 같은데 벌써 전반이 지났고 휴식시간을 갖지도 못한 채 후반전이 시작되었구나 하는 놀람이라고나 할까.

언론과 페북에도 7월과 관련된 이런 저런 글들이 올라온다. 대체로 이 달에 있었던 과거의 역사적 사건이나 그 때의 일들을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 7.4 공동성명, 7.7. 선언, 7.17 제헌절, 7.27 정전협정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인데 그 날짜에는 더욱 관심들이 높아질 것이다. 사실 과거 7월에 일어난 일들이라고 굳이 7월에 상기해야 할 이유는 없다. 다만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현재를 평가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한 방식이기 때문에 달력의 절기에 따라 특정일을 기념하는 것이 관행이 된 것이다. 이 기념행위에는 현재의 문제의식과 세계관이 고스란히 드러날 수 밖에 없어 7.4 나 7.7에 대한 평가는 박정희 시대와 노태우 시대를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진다. 또 시대적으로도 달라지는데 남북관계가 진전되던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평가는 크게 다르다. 2023년에 7.4 와 7.7 의 의미는 어떻게 읽혀질지, 정파적 차이는 어느 정도일지 궁금한데 북한이 핵무력을 강조하고 대남공세에 주력하며 신냉전이라 불릴 정도로 미중간 패권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을 고려하면 전과 같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반면에 7.17과 7.27에 대한 기억의 정치는 오히려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 7월 17일은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된 제헌절이다. 건국에 대한 충분한 준비없이 해방을 맞이했던 신생 국이 그 혼돈의 와중에서 잘 정비된 헌법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은 지금 생각해도 놀랍다. 세계사적으로도 그 수준이 떨어지지 않는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대원칙을 표방한 헌정체계 덕택에 분단과 전쟁, 각종 대립과 격동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이 민주화와 산업화를 이루고 오늘과 같은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국가로 도약할 수 있었다. 역사적 의미로만 따지면 ‘나씨옹’이라는 헌법적 범주 위에 근대국가를 탄생시켰던 프랑스 혁명에 비견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만 이 헌법적 가치가 한반도 이남에만 한정됨으로써 남북한 전체를 아우르는 힘을 갖지 못하는 것은 아쉽다. 북한은 전혀 이질적인 이념에 따라 수령체제를 뒷받침하는 독특한 헌법을 만들었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제헌절과는 조금의 공통분모도 갖지 못하는 상태다. 제헌절의 중요성과 남북관계의 개선의지를 함께 고려할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데 올해는 제헌절의 의미가 좀더 적극적으로 부각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7월 27일은 70주년이 되는 정전협정 체결일이다. 전쟁의 비극을 끝낸 날이지만 군사적인 정전, 잠정조치를 넘어선 항구적 평화체제를 보장하지 못한 탓에 그 역사적 의의에 대한 평가가 늘 제한적이었다. ‘정전상태’가 70년을 넘긴 것은 비정상이지만 남북은 물론이고 주변국들에 의해서도 장기간 이 체제가 수용되어온 이유도 경시할 수 없는 무게감을 갖는다. 정전체제는 한반도에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추구할 군사적 안정, 소극적 평화를 제공해 주었다. 북한은 이 날을 미국을 물리쳤다는 전승절로 기념함으로써 정전협정의 함의보다 반미항쟁의 정당성을 선전하는데 주력해 왔다. 올해도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준비중인데 기왕의 도발적인 수사와 핵무력노선을 더욱 강조할 개연성이 크다. 최근 중국의 한국전쟁 해석도 항미원조라는 이념적 해석을 공식화하고 있어 전쟁, 정전, 종전, 평화협정 등을 둘러싼 공통의 합의를 이끌어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지난 정부가 힘을 쏟았던 평화체제 구축노력이 과연 적절한 정책구상이었는지, 앞으로도 내세울 정책적 비전이 될 것인지를 둘러싼 논란이 이 날을 계기로 심화될 수도 있다.

7월을 맞이했으니 7,4, 7.7, 7.17, 7.27을 기념하는 각종 행사들이 이곳 저곳에서 개최될 것이다. 주관하는 주체들마다 제각각 이 날을 통해 강조하고 확산시키고자 하는 가치도 다를 것이다. 역사를 공유하는 것이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소중한 자원이지만 상이한 해석은 분열과 대립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한다. 해방 직후 좌우 정치세력 누구도 기미년 31 독립만세운동을 함께 기념해야 한다는 대의에 반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31절은 소중한 역사적 자산이었다. 하지만 단 한번도 공동 기념 행사를 치루지 못하고 오히려 좌우의 정치적 대립과 이념적 논쟁에 이용당하고 말았던 것도 뼈아픈 사실이다. 2023년 7월도 곳곳에 그와 유사한 역사전쟁의 암초들이 깔려있다. 서로 다른 미래전망을 인정하면서도 이념적 대립이나 정파적 논쟁을 넘어 공동체의 포괄적 미래 비전을 드러내는 기념행위는 불가능한 것일까. 헌법, 정전체제, 남북교류와 평화구축의 노력들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수용하면서도 긴장과 대립의 악순환을 넘어설 지혜를 찾아내려는 시도는 무용한 것일까.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오늘의 현실에 안타까운 마음 크지만, 그래도 역사는 더 나은 내일을 향해 가리라는 믿음을 포기하고 싶진 않다. 7월을 맞이하면서 나름의 기대와 희망을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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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사와 사회사

한국사회사학회 초기 멤버들이 신용하 교수님을 모시고 점심 식사를 함께 했다. 매년 스승의 날에 해오던 비공식 모임이 코로나를 거치면서 중단되었다가 금년에는 다행히 6월의 마지막 날 하게 된 것이다. 제주에서 조성윤, 광주에서 노치준, 충주에서 김경일, 세종에서 박명규가 올라왔고 서울에 거주하는 김필동, 이정옥, 정근식, 한영혜 교수가 함께 했다. 미리 예정되어 있던 일본 여행 탓에 황경숙 교수만 참석하지 못했다. 경향 각지에 흩어져 있던 동학들이 오랫만에 한자리에 모여 즐거운 담소로 시간가는 줄 모르는 하루를 보냈다.

점심을 하면서 신교수님의 생애사라 할만한 지난 이야기를 들었다. 여러 세대를 거쳐 유교의 가치와 덕목을 가르쳐온 제주의 훈장가문이었고, 유배온 육지의 지식인들이 으례 인사를 하러 올 정도로 명망이 있던 집안이었으며, 집터에 훗날 사찰이 지어질 정도로 집의 규모도 크고 경제적으로도 유복했으나 근대화의 흐름과는 달리 위정척사적 사상과 전통적 가치를 고수하려 한 집안이었다는 이야기는 흥미롭고 새로웠다. 부친이 유교적 가치관과 정감록의 영향을 받아 피난지로 이사를 다닌 일, 그로 인해 학교를 제때 가지 못하고 집안일을 도우며 독학을 해야 했던 어린 시절, 그 가운데서도 배우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과 노력으로 대학입시를 준비한 것은 불굴의 의지로 성공한 위인의 스토리와 닮았다. 이미 중고등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한 상황에서 집안 친척과 지인들의 도움으로 상업고등학교 야간에 편입 후 졸업한 일, 제주를 위해 일하는 인재가 되도록 그곳 대학에 진학하라는 권유를 끝내 마다하고 서울대학교 응시를 준비한 것, 탁월한 기억력과 집념어린 공부 덕택에 넉넉한 성적으로 합격한 일 등 한 편의 드라마라 해도 족할 정도로 드라마틱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서울대학교를 목표로 불굴의 향학열을 유지한 그 힘이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모두들 궁금해 했다. 개인적인 능력과 의지가 일차적으로 중요한 요인이었을 테지만 그 뜻을 존중해 여러 도움을 아끼지 않고 ‘국가를 생각하면 정치학으로, 민족을 중시하면 사회학으로’ 갈 것을 조언할 정도의 식견을 지닌 친척들이 계셨던 가문 전체의 분위기가 중요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여겨졌다. 고학 하다시피 하던 학부 초기에 ‘민족주의’ 강의에 매료되고 열정적인 답안지를 작성한 것, 학자가 되려면 절대로 정치운동에 참여하지 말고 막스 베버가 말한 ‘직업으로의 학문’에 충실하라던 최문환 교수의 가르침에 부응한 것, 상대로 자리를 옮긴 지도교수를 따라 다시 경제학 대학원으로 재입학한 것, 자신을 이끈 선생님과의 약속을 평생 지키며 살아온 일관성과 신실함 등은 위인전에서 읽을만한 장면들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내용들이었다.

흥미롭게 듣던 그 가족사의 시간대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를 거치는 한국근대사와 정확히 겹친다. 그래서 익숙한 여러 사건과 인물들, 예컨대 간재 전우와 면암 최익현, 일제 말기의 공습과 소개령, 해방 후의 4.3 사건, 한국전쟁과 빨치산 활동 등이 시대적 배경으로 소환되었다. 개인의 생애사는 가족사와 이어지고 그것은 다시 사회사와 직결된다는 것을 역동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함직 했다.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커피를 마시면서 노치준 목사가 저런 개인사, 생애사를 세밀하게 기록하거나 영상으로 남겨두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김교신의 예에서 보듯 한 개인의 생애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지속되려면 기록 자료가 필수적이라는 지적은 타당하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 뜻있는 삶을 살았으면서도 제대로된 기록을 남기지 않아 후학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사례들이 적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전기, 평전이 더 많이 쓰여질 필요가 있음은 분명하다. 다만 모든 개인사에는 사적 영역과 내밀한 상처의 흔적이 있게 마련이고 사회적 사건들과 결부하여 겪은 경험들이 각기 달라 객관적 평가와 서술이 어려워 손쉬운 작업은 아니다. 오랜 기간 일기를 써왔다는 한영혜 교수의 일기장을 보존하고 해설하는 (?) 작업부터 시작하자는 농담섞인 제안과 각자 자기 삶의 중요한 부분들을 기록하자는 다짐을 공유하는 것으로 일단 마무리했다.

개인사와 가족사, 그리고 사회사와 국가사는 서로 다른 영역을 구성하면서 또 긴밀하게 연결된다. 특히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국가와 사회의 격동이 가족과 개인의 삶을 뿌리채 뒤흔든 사례들은 부지기수다. 식민지화, 건국과 이념대립, 분단과 전쟁, 민주화, 산업화, 세계화, 정보화의 격랑에서 자유로왔던 개인이나 가족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개인으로선 이해할 수도 없고 예상할 수도 없었던 외부의 충격과 시대의 파도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감당하고 견뎌낸 모든 개인사와 가족사는 그 자체로 소중하고 존엄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다만 긴 역사적 맥락에서 각기 다른 평가와 의미부여를 받게 되는 것인만큼 미시사와 거시사의 특이한 연관과 불일치를 다루는 것이 사회사의 또다른 연구 영역이 될 터이다. 일생 학자로서의 외길을 걸으면서도 연구의 밀도나 주제의 깊이, 성과의 양, 판단의 정확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거장의 삶을 옆에서 지켜보고, 그 제자가 되어 오늘까지 온 것 자체가 참으로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함께 모인 동학들도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 모두의 생애사는 우리 당대의 시대사와 어떤 모습으로 연결되며 어떤 자취로 남을까 곰곰 생각한다.

life · 시공간 여행

말/단어와 이적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 – 인생에서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우는 경구다. 성경은 ‘입에 재갈을 물리라’는 표현으로 말의 무게를 강조했고 유학자들은 ‘신언서판’이란 표현으로 말의 중요성을 가르쳤다. 미드를 비롯한 사회학자들은 자아정체성을 구성하고 타자와의 소통을 가능케 하는 근본요소가 언어라고 주장했다. 유럽의 학계에서는 문명과 지식 자체가 ‘언어’라는 상징에 근거한다고 보는 ‘언어학적 전회’가 한 시대를 풍미하기도 했다.

개념사는 이런 관점을 수용한 역사연구의 한 흐름이다. 담론 discourse 을 중심으로 하는 프랑스와 기본개념 basic concept 에 주목하는 독일의 접근법이 다소 다르지만, 개념과 언어가 지닌 복합적인 힘을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즉 언어, 개념, 담론 등으로 표상되는 인간 고유의 상징화 능력이 미시적인 생활세계를 지탱하게 할 뿐 아니라 정치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죽음 이후를 상상하는 능력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시각에 공감하여 십수년 국내외의 학자들과 개념사 연구에 힘을 보탰고 [국민, 인민, 시민]이란 저작은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사회정치적 담론을 구성하는 이런 어휘들을 코젤렉은 역사적 기본개념이라 불렀다. 이런 개념은 역사변동의 방향성, 이데올로기적 정당성을 구성하는 필수요소가 되어 강력한 문화적 힘을 행사한다. 지금도 자기정당화 논리나 상대방에 대한 공격무기로 이곳 저곳에서 끝없이 논의되는 어휘들이다. 소통의 도구였던 말이 내편과 네편을 가르는 근거가 되기도 하고 대중의 이목을 끄는 선전 카피로 변질되기도 한다. ‘입을 조심하라’는 잠언의 가르침이나 ‘도는 말로 할 수 없다’던 노자의 경구가 무색하게 각종 담화 생산자들, 유투버들, 달변가들이 인기를 끌고 그 틈새에서 선동가, 언어유희자, 가짜뉴스 발신자도 자라난다. 그만큼 새로운 소통과 대화, 말의 기능을 회복할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비언어적인 감성과 표정, 이미지와 몸의 제스쳐 등이 더욱 강조되고 문학의 시대가 영화와 음악의 시대로, 문자의 감각이 영상의 공감으로 이행하는 시대다. 당연히 언어와 영상, 문학과 예술이 새로운 소통의 방식을 찾아나서야 할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이적은 그런 점에서 매우 강력한 소통력을 소유한 이 시대 최고의 스타 중 한 명이다. 그는 대중의 광범한 사랑을 받는 아름다운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가수이면서 멋진 노랫말의 작사자로서 문자적 공감능력도 탁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에 대한 대중의 높은 사랑은 가창력과 노랫말, 대화능력의 멋진 조합이 주는 매력으로 상당부분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이적이 [이적의 단어들]이란 제목을 단 단행본 책을 출간했다. 일상의 단어 속에 담긴 경험들과 애환들을 되살리고 때로는 정형화된 의미를 비틀고 뒤집어 딱딱해진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우치려는 책이다. 영화관, 리셋, 라면, 가르마, 라이터, AI, 물수제비 등의 단어들을 저자와 함께 다시 생각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거나 조용히 미소짓게 되는 경험은 즐겁다. 이 책의 표지에는 [천부적 이야기꾼 이적의 첫 산문집]이라는 띠지가 붙어있는데, 나는 산문집이라기 보다 잠언이라 해도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최근 활발한 저술과 강연을 통해 세계적 대화를 주도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문명사가 유발 하리리는 현생인류가 지구의 우세종으로 진화한 힘의 원천을 ‘이야기 능력’ story telling 에서 찾았다. 그런 점에서 ‘이야기꾼’이란 문명의 기획자이고 그 이야기를 듣고 옮기는 사람들은 문명의 수행자인 셈이다. 모든 사람들이 무심코 사용하는 일상의 대화, 글쓰기, 말하기 속에는 인류의 오랜 진화과정이 담겨 있는 것이다. 어른이 되면서 말배움 속에 담긴 신비로운 도약과 상상의 능력을 점점 상실했지만 말 속엔 문명의 DNA가 고스란히 숨겨져 있다. 지금도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어린아이의 기상천외한 질문과 말 속에서 그 DNA를 발견하는 놀라운 경험을 한다.

저쟈의 상상력 역시 상당부분 어린 아이의 시선, 어릴적의 경험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그런 점에서 자연스럽고 흥미롭다. 할머니의 말에서 인생이 ‘닷새’라고 정리하는 참신한 발상이나 (인생 2), 어른의 말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깨어진 아이의 아픔과 당혹스러움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첫 아이의 중독송에서 이끌어낸 상상력 (렛잇고) 등 그 예는 적지 않다 . “한번 홀딱 젖고 나면/ 더 젖을 수는 없다/ 그때부터 자유” (자유)라는 깨달음 역사 빗속에서 숨바꼭질하던 아이의 감각과 일맥상통한다. 만물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무엇이나 배우는 아이의 감수성, 적당한 게으름과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아는 아이다운 처신이 소중해지는 시대에 더욱 와닿는 책이다. 이적이 사인과 함께 책의 첫 장에 자필로 써준 “존경하고 사랑하는 박명규 교수님께”라는 글귀를, 인사의 표현인줄 알면서도 짐짓 아이처럼 믿고 행복해 하는 것도 그래서 용인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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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학사협의회

6월 19-20 목포에서 광주과학기술원 기초교육학부 학사협의회가 열렸다. 부임 이래 동료 교수들과 만나 이야기 나눌 기회가 별로 없었던 나로서는 특히 반가운 모임이었다. 공식 회의에는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석학교수 신분이어서 조용히 그간의 강의와 내 연구활동을 되돌아 보았다. 코로나 팬데믹과 온라인 수업이라는 초유의 상황에서 매 강의 자체가 새로운 경험이었던 지난 2년은 여러모로 미지의 내일을 향한 탐구여행이었다. 이제 그 지적 여정에서 어디쯤 와 있는지를 점검해볼 때가 되었고 이 조용한 바닷가는 그런 성찰에 적절한 장소란 생각을 했다. 때마침 이곳에 교수회의를 하러 온 국방대학교 김병조 부총장을 오랫만에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도 뜻밖의 기쁨이었다. 내가 가르쳤던 육사 42기 교수와도 인사를 나누면서 잠시 80년대 초반 시절을 되돌아보는 여유도 가졌다.

숙소인 현대호텔에서 내려다 본 목포 앞바다 정경은 아름다왔다. 영산강 하구가 시원한 바다와 만나는 곳에는 작은 섬들이 다리와 제방으로 이어져 있어서 내륙에서 보기 어려운 독특한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다음날 해양 케이블카를 통해 유달산에 올라 내려다 본 풍경은 잿빛 하늘과 수평선이 겹쳐 마치 한폭의 수묵화를 보는 듯 했다. 배로 오가야 했을 작은 섬 고하도가 멋진 관광지구로 변신하고 있는 모습에서 간척과 개발이 이 지역에 미치는 영향을 전형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작년에 육지로 이어진 고군산열도와 광활한 새만금 일대를 둘러 보면서 개발이 가져오는 지역생태의 변화와 이에 대한 환경단체들의 문제제기를 접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곳 목포도 이순신 장군의 영웅적 행적이나 ‘목포의 눈물’의 이난영, 또는 김우진, 박화성 같은 예인의 고장임을 자랑하는 것 못지 않게 도시화, 산업화, 정보화와 맞물린 해양생태계의 변화를 어떻게 조율하고 21세기형 생활양식을 만들 것인지에 대한 미래지향적 스토리텔링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GIST 부임 이래 ‘문명으로 보는 21세기’ 과목을 개설하고 여러 쟁점을 학생들과 토론해오면서 나는 과학기술 연구와 인문사회학적 문제의식이 긴밀히 연계되어야 할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과 더불어 전지구적으로 확산된 생태위기와 디지털 문명에 대한 논란은 물론이고 최근 Chat GPT 4의 출현을 계기로 진행 중인 다학제적 토론과 대화도 그 좋은 예에 속한다. 스탠포드 대학에서 개최되었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와 인공지능 전문가 페이페이 리 사이의 토론에 대한 논평문을 학생들에게 쓰게 했을 때 대부분이 두 사람의 문제제기가 서로 다르지만 상호보완적이고 반드시 필요하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일반 종합대학에서는 전공별, 단과대학별 장벽이 높고 과학기술영역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제대로 이런 쟁점들에 대한 깊이 있는 토론이 쉽지 않은데 반해 과학기술대학이야말로 그런 논의의 최적지가 아닐까 싶다. GIST 내부의 긴장감이나 공유된 화두가 그다지 강하지 와 닿지 않는 것은 각 전공영역이나 개별 교수들의 노력을 내가 아직 잘 모른 탓이리라 생각한다.

저녁 식사 후 가진 방담 시간은 이런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는 좋은 기회였다. 다양한 연구영역간 소통과 창의적 발상을 뒷받침하고 교수들의 개별적 역량과 자부심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좀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려면 전공교육과 기초교육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분과학간의 융복합적 연구를 지원하는 대학 차원의 혁신적 거버넌스가 구축될 필요가 있다. 이 문제는 총장의 혁신적 리더십이나 정부의 정책지원에 더하여 학내 교수들로부터의 비전과 혁신이 동반되어야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사안이긴 하다. 과학기술분야와 인문사회분야, 첨단기술개발과 기초소양교육 사이에는 일정한 거리와 견해차가 있게 마련인 바 그 긴장을 어떻게 건강하고 창의적인 동력으로 전환시킬 것인가가 중요할 것이다. 현재 수학과 인문사회학이 함께 기초교육학부를 구성하고 있는데 이 모델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인지 다른 모델을 지향할 것인지도 앞으로 고민해 볼 사안이겠다. 조만간 결정될 새 총장이 유능한 리더십으로 시대적 소명에 부응할 창의적 거버넌스를 정착시켜 GIST 대도약의 계기를 마련하기를 기대하는 마음 간절하다.

activities

파편사회와 사회학

2023년도 한국사회학회 학술대회가 6월 16-17일 개최되었다. 행사가 열린 전북대학교는 꼭 40년 전인 1983년 신참 교수로 부임하여 10년 넘게 봉직했던 곳이다. 내 연구실이 있었던 사회과학대학 건물을 보면서 윤근섭, 김영기, 홍성영 교수 등 오래 전 도움을 주고 받던 선배 교수들을 떠올렸고 최근 정년을 하신 김영정, 남춘호 교수, 학회를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박천웅 학과장, 대학원에서 가르쳤던 김재우 교수 등도 반갑게 만났다. 학교 캠퍼스를 한바퀴 돌며 이곳에서의 생활을 회상하니 나름 열심히 살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모저모 아쉽고 부끄러웠던 기억도 따라온다.

학술대회의 주제가 ‘파편사회와 사회적 연대’다. 설동훈 회장이 주도하여 추진하는 전북대학교 BK 연구단의 핵심 연구 테마이기도 하다. 사회학은 그 초기부터 사회통합에 관심을 가져왔는데 기실 그 바탕에는 전통적 공동체의 해체와 이질화된 개인의 아노미가 있다. 사회학은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파편화의 문제를 해결할 지혜를 탐구한 학문이라 할 수 있고 서구 근대성이라 부르는 제도와 원리들이 모두 이와 직결되어 있다. 21세기에 파편사회라는 말이 회자되는 이유는 근대사회학의 처방과 설명으로는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운 새로운 문제들을 인류가 대면하고 있기 때문일 터이다. 사실 “파편사회 극복”이라는 현수막의 화두는 더 이상 학계만의 쟁점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모든 사람들의 실존적 문제가 되었다.

전체 프레네리 세션에서는 김홍중, 신진욱, 양승훈 세 분이 파편사회의 양상을 다룬 글을 발표했다. 김홍중 교수는 지구문명 전체가 처해 있는 위기를 근원적으로 재조명하기 위해 이제는 ‘파국주의’를 이야기할 때임을 주장하면서 라뚜르를 중심으로 여러 최근 학자들의 논의를 소개했다. 신진욱 교수는 ‘다중균열’과 ‘유동하는 적대’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사회적 파편화를 설명하고 특히 정치의 표류 현상에 주목했다. 양승훈 교수는 오늘날 지방청년들이 부딪치고 있는 딜렘마를 통해 지방이란 공간과 청년이란 세대에 나타나는 구조와 주체의 불일치 현상을 설명했다. 세 발제는 그 시선이 각기 지구, 국가, 지역이라는 다른 공간성을 향하고 있지만 문제의식에서는 상호보완적으로 느껴졌다. 파편화라는 현상이 정말 문명적이고 근본적인 흐름이라면 거시적 차원과 미시적 차원이 함께 다루어져야 할텐데 근대문명과 국가사회, 그리고 생활세계 사이 사회학이 자리할 새로운 위치설정을 어떻게 할지가 어렵고도 시급한 과제가 아닐까 여겨졌다.

광주과학기술원에서 ‘문명으로 보는 21세기’라는 강좌를 개설하고 학생들과 관련 쟁점들을 탐색해오고 있는 나로서는 문명적인 시각을 강조한 발제와 토론에 좀더 관심이 갔다. 구순을 바라보는 연세에도 왕성한 지적 탐색을 계속하시는 김경동 교수는 기조강연을 통해 동양적 지혜가 파국사회를 넘어설 문명적 자원이 될 수 있으리라는 주장을 했다. 흥미롭고 중요한 주제인데 현대 중국의 문명론적 점검을 포함한 여러 부문의 검토가 더해져야 할 듯 싶었다. 김홍중 교수가 내건 ‘파국주의’ 주장에서는 이전에 내걸었던 마음의 사회학, 사회학적 파상력, 스노비즘, 은둔주의 처럼 깊은 지적 사유와 참신한 문제의식이 느껴졌다. 하지만 서구근대성에 대한 비판을 넘어 지구생태계 전체가 겪고 있는 상황에 대한 새로운 전망을 이로부터 얻을 수 있을지는 아직 불분명해 보였다. 오늘날 기술문명의 위험 심화, 비인간적 행위자의 대두, 인간-기계-물질의 관련을 재조정하려는 포스트휴머니즘 등이 파국이란 화두를 주목하게 만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피티림 소로킨의 문명론적 접근이 그러했고 오늘날 지그문트 바우만이나 유발 하라리 등의 저작이 그러하듯, 본원적인 문명 비판이 사회학 이론 및 방법론에 의미있게 연결되기에는 빈 부분이 너무 많다. 분과학으로서의 사회학과 총체적 문명론이 첨단과학의 시대와 어떻게 결합할 수 있을지 중요한 지적 과제다.

사회학계를 포함한 학문공동체 자체도 파편화의 큰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은 시대다. . 새로 건립된 멋진 건물 8층에 정성껏 차려진 저녁 만찬장의 자리 곳곳이 비어있고 학계의 중심을 구성해온 원로, 중견 연구자들의 참여도 전과 같지 않은 듯 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다만 새로운 주제들을 붙들고 씨름하는 여러 신진 학자들의 패기와 어려운 여건에서도 세번의 학술대회를 기획한 설동훈 회장, 2027년 광주에서 개최가 결정된 세계사회학대회를 준비하는 대회위원장 장원호 교수의 수고와 열정에서 새로운 힘을 확인할 수 있어서 기뻤다. 대학 안팎의 연구자들이 더 진지하고 더 창의적이며 더 혁신적인 지적 노력에 나서야 ‘파편사회 극복’을 위한 사회학적 전망이 얻어질 것이란 생각을 하며 후학들의 열정에 박수와 성원을 보낸다.

life · 시공간 여행

경주의 코리아 판타지

경주 엑스포 공원에 있는 솔거미술관을 방문했다. 소산 박대성이 기증한 그림을 중심으로 세워진 이 미술관은 공원의 윗자락에 자리해 있어서 거대한 공원 입구에서 잘 보이지 않았다. 야트막하지만 정겨운 언덕길을 올라가면 아래를 굽어보는 시원한 언덕을 만나는데 빈지의 철학을 강조한 승효상의 작품 답게 소박한 건물을 만난다. 가까이 가서도 여느 미술관처럼 요란한 디자인이나 거창한 위용이 없이 단순한 사각 건물들만으로 건립되었다. 인위적인 아름다움이나 과시적인 건축미보다 자연과의 친화성과 겸손함을 강조한 공간구성이란 인상을 받았다.

소산 박대성은 수묵화로 일가를 이룬 분이다. 그의 작품과 생애을 접한 이후 솔거미술관을 알게 되었고 언젠가 꼭 와보고 싶었다. 다행히 지금 전시중인 코리아판타지 전에서 그의 그림과 글씨 십수점을 볼 수 있어 큰 기쁨이었다. 불국사 전경을 그린 그의 대작은 내가 그의 수묵화에 처음 이끌렸던 작품인데, 수묵의 농담을 강력하게 대비시키면서 천년고찰의 위엄과 늠름한 소나무 자태를 배치시켰다. 소나무의 짙은 부분은 좀처럼 보기 어려울 정도의 강한 농묵을 사용해서 먹의 검은 색이 주는 강렬함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수묵과 글씨에서 붓에 못지 않게 먹을 강조하는 이유를 조금 알 듯 했다.

화면에는 그의 수목화론이 방영되고 있었다. 그는 수묵화의 핵심은 진정성이라 했는데 예술이나 기예이기 이전에 인격과 품위를 강조하던 동양적 예술론을 느끼게 한다. 또한 그는 기본적으로 글씨와 그림이 같이 가는 것임을 강조했다. 이번 전시에도 그는 여러점의 글씨를 선보였는데 이들 작품은 한결같이 글씨의 조형성, 즉 글씨 자체가 그림임을 드러내는데 부족함이 없다. 이런 관점은 결국 붓과 먹, 그리고 운필의 중요성으로 이어지는데 겸재 정선이 강조해 마지 않던 정신과도 상통한다. 그러고보니 소산의 그림들 속에서 겸재의 느낌이 나는 듯 하다.

코리아판타지는 소산 전시회의 제목이자 대표적인 작품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 작폼은 크기나 구성이 매우 야심찬대 작가가 담고싶은 모든 이야기와 이미지를 이 한폭에 담으려 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코리아 판타지’라는 말에서 드러나듯 고조선을 상징하는 인물이나 벽화로부터 신라와 고려와 조선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땅에서 꽃피우고 변해왔던 다양한 자연과 문명의 흔적들을 담았다. 금강산과 백두산을 연상케 하는 산, 태양과 소나무, 한옥, 훈민정음, 문방사우 등 다양한 상징적 대상들이 빼곡히 거대한 캔버스에 담겨 있다. 지나치게 많은 소재와 대상들을 포함하려 한 탓에 작가의 의욕이 너무 과잉된 느낌마저 든다. 이것을 예술품으로 보지 않고 오늘 한국을 있게 한 긴 문명사의 지도로 바라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로 전체 구도는 천전리 고분벽화를 떠올리게 한다. 오랜 시간, 문명의 흐름 속에서 이어져온 어떤 감수성과 정신을 찾아 드러내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다른 전시실에서는 파독 간호사로서 화가의 길을 걸었던 노은님 작가의 첫 유고전이 열리고 있었다. 1946년 해방 직후에 태어나 파독 간호사로 독일에서 생활하면서 물고기, 새, 꽃 등 자연물을 소재로 강렬한 원색의 그림을 그려 ‘생명의 화가’라는 이름을 얻었던 작가인데 2022년 타계했다. 몇 달 전 튀빙겐 대학 이유재 교수가 주도하고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파독한국인 생애사 연구서를 이교수로부터 받아 여러 파독 동포들의 삶을 잠시나마 훑어보았던 기억이 오버랩되었다. 어러운 생활, 고국을 떠난 그리움, 그러면서 무언가 생명의 본질을 찾으려는 예술혼이 이렇게 그림으로 분출했구나 싶어 그림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수묵만을 고집한 소산과는 달리 강렬한 색감을 많이 사용한 노은님 작가 작품전은 ‘나, 종이, 붓’을 주제로 달았다. 두 작가의 그림과 감각은 매우 다르지만 붓과 종이를 주목한다는 점에서는 공감의 정서가 있지 않나 싶다. 또 강렬한 농묵의 검은 색과 원색 물감의 선명함이 다르면서도 유사한 어떤 에너지를 발산하는 듯도 했다. 전시를 둘러보면서 신리, 솔거, 경주의 이미지와 파독간호사, 한반도 역사, 격동의 근대화가 오버랩된 어떤 복합적 이미지를 느꼈다. 21세기에 우리 주위에서 해체되고 변용되며 재구성되는 새로운 코리아 판타지는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그려지고 상상될까 곰곰 생각해본 시간이었다.

activities · life · 오늘의 화두

보진회

6월 주말을 이용해 오랫만에 보진회 모임이 경주에서 열렸다. 외조부님의 손자녀들 중심으로 서로의 우의를 돈독히 하고자 만들어진 모임이다. 언젠가는 이런 것아 필요할 것이라며 종자돈과 함께 외조부 아호를 딴 보진회를 두 분 외숙께서 주도해 만드신 때가 거의 20 년 전이다. 어머니가 외가의 맏딸이고 나는 우리 집안의 장남인 관계로 자연스레 내가 이 모임의 회장이 되었는데 제대로 회장 역할을 할 기회도 없이 세월이 흘렀다. 모두들 안팎으로 바쁘고 또 서울과 지방, 해외 등으로 흩어져 살아온 탓에 소식도 공유하기 어려웠는데 이제 이런 모임을 할 마음과 여유가 생긴 셈이다. 현직에서 은퇴하거나 곧 은퇴를 앞둔 사람들도 적지 않고 머리가 백발이 된 사람도 여럿이지만 다들 건강한 얼굴로 반갑게 회동할 수 있으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기억 속에 남아있는 수동의 외가댁은 대문과 안채, 사랑채 등이 마당을 중심으로 둘려져 있는 꽤 규모가 있는 집이었다. 외조부 송정헌 옹은 말년에 중풍으로 걸음이 다소 불편하셨지만 언제나 깔끔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성품은 온화하셨지만 손자녀들에게 냉정한 훈계의 말씀도 곧잘 하셨다. 얼굴 빛이 매우 맑았고 눈매가 선명했는데 어머니는 그런 모습이 절제된 생활습관, 특히 식습관과 관련된다며 ‘식담심쾌'(食澹心快)라는 말을 종종 하셨다. ‘먹는 것이 담백하면 마음이 상쾌하다’는 이런 생각은 자연과의 조응을 강조하는 산림처사의 정신과도 연관이 있을 법하다. 실제로 외조부는 말년에 생식을 즐기셨고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셨다. 상할아버지도 생존해 계셔서 4대가 함께 하는 대가족이었는데 그런 가정의 대소사를 뒷바라지 하느라 외조모님은 굽은 허리에도 한시도 몸을 쉬지 않는 부지런함이 몸에 밴 분이셨다.

개인화와 도시화가 급진전된 한국사회에서 친족의 유대는 현저히 약화되었다. 세대가 달라지고 사는 곳이 같지 않아 친척들 간에도 서로의 얼굴과 저녀들 이름 기억하기 어려운게 현실이다. 나는 한국의 급속한 대가족제 해체를 강의할 때면 늘 박경리가 쓴 대하소설 [토지]를 예로 들곤 한다. 1부에서는 끈끈한 친족간 유대와 마을 단위의 공동체성이 뚜렷하지만 2부와 3부로 넘어가면 그런 정서적 연결성은 해체되고 새로운 인간관계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 소설에서 낮은 신분의 길상이와 결혼한 최참판댁 손녀 서희가 만주에서 돌아와 진주에 터를 잡는 2부와 3부의 내용은 농촌 중심의 시대에서 도시 중심의 시대로, 양반지주 중심의 사회에서 돈과 권력의 사회로 바뀌어가던 변화와 정확하게 대응한다. 외조부의 3남 5녀가 살아온 시대는 식민지배, 해방, 전쟁, 독재, 경제발전, 도시화 등 20세기 변화가 고스란히 담겨있으니 토지 3, 4부 이후 어디 쯤에 속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박경리 소설을 워낙 좋아했는데 그 덕분에 [토지] 완간기념 세미나에 발제자로 참여해 평사리의 인간관계를 분석한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최참판댁과 인근 주민들의 근끈한 신뢰가 너무 미화된 것은 아닌가라는 조심스런 의견을 피력했는데 한 신문에서 ‘토지의 시대인식에 오류’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해 당혹했던 기억이 난다. 후일 박경리씨가 내 논문에 좋은 평을 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경주에서 사촌들과의 즐거운 모임을 하면서 새삼 박경리가 떠오른 것은 수동 외가댁의 분위기가 토지 1부의 정서를 떠올리게 한 데다 어머니와의 인연이 생각난 탓이다. 박경리는 어머니와 일제시대 일신여고 동기셨는데 아쉽게도 어머니와 함께 만나 이야기 나눌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

경남의 작은 시골마을의 한 집안에서 나고 자란 자녀들이 성장하여 또 다른 사람들과 가정을 이루고 한 생애를 열심히 살았다. 그 세대가 낳은 손자녀들이 성장하여 사회 곳곳에서 활동하고 그 슬하에 여러 아이들이 태어나 자라고 있다. 예전에 비해 가문의 소중함이나 혈통의 무게감이 많이 약화된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가족을 통해 이어지는 생명의 연쇄는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념 대립과 전쟁의 상처가 깊었던 서부경남에서 외가댁도 그런 수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어 슬픈 사연들이 숨어 있지만,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후손의 세대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고 기적이다. 저녁을 먹은 후 안압지를 새롭게 복원 발굴한 ‘동궁과 월지’ 를 함께 둘러보면서 나는 야경을 감상하는 즐거움보다 그런 생각에 뿌듯함을 느끼는 기분이 더 컸다. 경주를 떠나기 전 잠시 올랐던 토함산에서 멀리 동해를 바라보며 각자의 삶 속에 건강과 행복이 늘 함께 하기를 마음으로 기도했다. 뜻깊은 1박 2일의 경주여행이었다.

life · 오늘의 화두

종강 소감

23년도 1학기 종강을 했다. 코로나로부터 벗어나 본격적인 대면강의가 시작된 첫 학기여서 모처럼 캠퍼스의 활기를 느낀 학기다. 개인적으로는 광주를 오가느라 이전 학기에 비해 몸이 좀 더 고되기는 했다. 그래도 젊은 후배 교수들과의 만남, 학생들의 활기찬 모습들을 접하는 것 자체가 생활의 큰 활력이다. 생각보다 고속도로에서의 2시간 운전이 크게 부담이 되지 않은 것도 다행한 일이다.

지난 2년간 코로나 경험 속에서 비대면 수업을 온라인을 통해 하면서 나는 학생들에게, 또 나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지속적으로 던졌다. face to face relation 을 보장하는 것은 물리적 모임인가 아니면 정보와 감각의 소통인가. 디지털 기기로 화면을 통해 얼굴을 맞대고 자유로이 이야기하는 것이, 마스크를 쓴 채 거리를 유지하고 대화를 최소화하는 것보다 훨씬 더 ‘대면성’ 을 보장해주고 ‘face to face’ 감각을 주는 것 아닐까 라고. 분명히 그런 점이 있고, 앞으로 강의와 교육에서 온라인이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역시 학생들을 눈앞에서 보고 강의할 때의 생동감이 온라인에서의 느낌과는 다른 것임을 이번 학기에 느끼고 있다.

학생들은 그러한 생각에 부분적으로 공감하는 것 같다. 교수와의 소통이나 강의를 통한 배움의 차원에서는 온라인이 크게 문제되지 않고 오히려 긍정적인 장점도 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수업은 교수의 강의가 전부가 아니다. 수업은 친구들과의 만남의 장이고 수업을 오가며 나누는 일상의 대화 기회이다. 뿐만 아니라 캠퍼스 자체가 새로운 문화경험, 세대로서의 감수성을 공유하고 체검하는 실험장인데 그런 기능은 온라인이 대체하기 어렵다. 이렇게 보면 온라인 강의의 효과성을 높이 평가하는 내 자신이 너무 교수 중심적 사고, 강의 중심적 캠퍼스라는 선입견에 갇혀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코로나 팬데믹은 종료되었으나, 대학과 강의의 방식이 전적으로 이전으로 돌아가서는 안될 것이다. 팬데믹 자체가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올 수도 있고, 무엇보다도 주입식 교육과 관행화된 학교 시스템의 문제점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문제의식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여전히 혁신적 대응이나 과감한 실험보다 안전한 과거, 익숙한 제도에로 급격히 되돌아가는 듯 하다. 대안이 불분명하면 보수적이 되는 경향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지 여전한 쟁점이자 고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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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스바써 -7

한독통일자문회의의 공식 회의가 시작되기 앞서 독일측에서 준비한 현장 답사가 있었다. 폴란드 국경가까이에 있는 작센 주의 바이스바써라는 작은 마을을 방문하여 그 지역이 겪고 있는 여러 변화와 도전들을 경청할 기회를 가졌다. 통일후 많은 동독지역 농촌이 경험한 것과 유사한 변화를 겪었고 특히 기후변화와 관련한 독일의 그린에너지 정책의 여파로 이 지역경제가 재조정을 강요받고 있는 곳이라 한다. 답사를 안내한 베를린 자유대학의 김박사는 이곳이 복합적 위기상황을 독특한 내적 발상으로 대응하고 있는 사례여서 답사의 대상지로 선정했다고 했다.

약 2시간이 넘는 시간을 버스로 달려 도착한 곳은 자그만 하지만 깔끔해 보이는 지방도시였다. 시청에 도착해보니 회의장에 식사가 케이터링 된 상태로 준비되어 있고 시장이 브리핑을 준비해 두고 있었다. 소탈해 보이는 페취 시장은 휴일이어서인지 혼자 모든 방문객 응접과 시청 건물의 열고닫음을 감당했다. 상세하게 준비된 브리핑에서는 그의 열정과 수고가 전해졌다. 시장의 설명에 따르면 이 도시는 38천명의 주민이 살던 곳이지만 지금은 15천명 수준으로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동독의 빈곤한 농촌 10 분위 중 9분위에 속할 정도로 어려운 지역으로 평가되고 탄광산업의 사양화와 맞물려 더욱 미래가 밝지 않은 지역이다.

하지만 시장은 주민참여형 문화재생을 통해 이 도시에 새로운 활력과 비전을 만들어가고 있음을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도시중심부의 활력 구축, 네트워크 강화, 공동협력과 참여, 그리고 디지털 인프라 구축의 네 가지 중점과제를 내걸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행정체계를 일원화하고 직업교육과 각종 훈련기회를 조성하며 주거지역을 새롭게 단장함으로써 300여 가구가 귀환하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했다. 과거 유리공장이었던 공장건물에 소규모 스타트업과 벤쳐기업을 유치하고 외부의 중소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다각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현장을 가 보기도 했다. 동독 시절의 거대한 집단건물들을 해체하고 그 자리에 조성한 녹지공간을 지나며 주택과 환경사업에도 관심을 기울인다고 했다.

이 도시의 노력은 전형적인 도시재생사업이라 할만하다. 미국 뉴욕에서도 슬럼지역을 새롭게 탈바꿈하려는 노력이 추진되었고 서울에서도 성수동을 비롯한 여러 곳에 유사한 변화가 시도되었다. 군산이나 전주 등지는 특색있는 공간의 역사성을 새로운 문화관광지로 변화시킴으로써 도시의 활력을 강화하고자 한다. 상당한 성과를 거둔 곳도 있지만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으로 비용만 증대시키고 토지소유주의 이익추구 사업으로 변질되었다는 비판도 따라 다닌다. 이 도시가 고령화, 인구이동, 탈화석연료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유지되고 발전될 수 있을지는 단지 동독지역만이 아닌 21세기 인류공동체 공통의 관심사라 해도 좋을 듯 싶다. 자전거를 싣고 여러 곳을 다니며 열심히 설명하는 시장의 모습은 오늘날 지방소멸을 우려하는 한국 지방 소도시에서 벤치마킹할 만 했다.

최근 관심을 끌고 있는 극우의 부상과 관련한 에피소드도 들었다. 도시의 한 빈 건물을 이들이 무단 점거한 적이 있는데 시는 그 건물을 매입해서 해체시켰다고 한다. 과감한 대응이 다행히 좋은 결과를 거두었고 극우의 영향력을 차단하는 적극적 사례로 내세울만 했다. 다만 모든 도시가 같은 대응과 결과를 얻는다는 보장이 없어서 누군가는 이 지역이 예외적인 곳일 수도 있겠다고 했다. 현재 독일에서 극우정치를 대표하는 Alternative for Germany (AfD) 정당은 2013년에 설립된 이래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극우적, 국가주의적 가치와 이념을 중심으로 이민정책과 유럽 통합에 대한 비판을 주된 공격논리로 내세운다. 자유 시장 경제를 강조하고 이민자들에 대한 혐오와 적대성을 숨기지 않음으로써 사회적 불만과 불안정을 정치자산화 하려 한다. 이런 변화가 통일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이 도시의 사례가 보여주듯 현상적으로는 중층적으로 겹쳐 나타나고 있는 것은 사실인 듯 하다. 결국 사람이 사는 현장, 지방과 도시, 시민사회 곳곳에서 건강한 삶을 구축하기 위한 열정, 협력, 비전, 리더십이 삶의 현장을 풍요롭게 하고 극우도 잠재우는 처방이 될 것이다. 중앙집중성이 너무 강한 한국사회에 여러모로 던지는 메시지가 적지 않은 답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