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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ST 새출발

광주과학기술원이 새출발 준비로 바쁘다. 제9대 총장으로 임기철 박사가 선임된 후 새로운 보직자들로 대학 거버넌스 진용이 갖추어졌고 8월 16일엔 총장취임식이 예정되어 있다. 리더십 혼란으로 내부 갈등이 지속되면서 학내에 안타까움과 자괴감이 커지던 상황을 지켜본 나로서는 무엇보다 반갑고 기쁜 일이다. 임 신임총장은 과학기술정책 전반에 오랜 경험과 경륜을 갖춘 분인만큼 대학을 일신하고 업그레이드하는 역할을 잘 감당하리라는 기대감이 크다.

2019년 보스턴에서 보낸 안식년 기간은 21세기 과학기술의 발전이 대학과 지역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를 절감한 소중한 기회였다. 30년 전과 큰 차이가 없는 하바드 스퀘어 주변과 상전벽해라 할 정도로 달라진 MIT 주변지역의 놀라운 대비가 내겐 특히 인상적이었다. 실제로 MIT가 있는 켄달스퀘어는 구글, IBM, 마이크로소프트, 파이자, 모더나, 노바티스와 같은 세계적 기업들이 밀집한 첨단산업지대로 변모했다. 맥거번 뇌연구소, 코흐 암 연구센터 등 연구기관들이 함께 있는 복합, 첨단 테크노 파크로서의 역동성은 계속 확장될 것이 분명해 보였다. 2022년 자료에 의하면 투자액 270억달러, 특허 1만여개, 일자리 10,400개가 생겨났고 세계최고의 20대 바이오제약회사 중에서 19개 회사가 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무엇이 이런 변화를 추동했을까 궁금하여 여러 자료들을 찾아보면서 내가 얻은 답은 대학(지식)과 도시(인프라)와 정신(문화)의 결합된 힘이었다. 첨단과학 연구의 중심인 MIT, 혁신생태계를 만들려는 캠브리지市의 기획, 그리고 역동적 도전정신을 지닌 젊은 문화가 세 주역이었다. 대학은 창의적 교육과 도전적 연구를 격려하고 학생과 교수의 혁신을 장려했다. 이 일대를 혁신 인큐베이터로 만들기 위해 고가의 공동실험기자재가 구비된 공유랩을 설립하고 많은 신생 회사들이 큰 리스크를 피하고 창업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하바드 의대와 병원, 보건대학원은 생명공학의 좋은 환경과 기회를 제공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백신으로 유명해진 모더나를 비롯하여 이곳에서 창업하고 성장한 성공적 기업들이 적지 않다.

MIT와 하바드가 지척에 있어 인문사회학적 사유와 과학기술 연구가 고급한 상호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것도 큰 도움이었다. 1950년대 이 지역에서 꽃을 피웠던 사이버네틱스 모델은 하바드의 사회학자 파슨즈, MIT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였던 위너 등이 참여한 다학제적 논의에 기반한 것이다. 디지털 시대를 전망하고 전세계에 영향을 미친 MIT 의 문화연구자 네그로폰테의 책 Being Digital은 첨단기술과 사회문화에 대한 복합적 시야 덕택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가 설립을 주도한 MIT의 미디어랩은 인공지능, 디자인, 문화, 건축, 미학과 언어 등을 융복합적으로 다루는 대표적 연구조직이 되었다. 싱귤래리티라는 개념을 확산시킨 레이 커즈화일이나 Life 3.0 이란 책으로 생명현상을 새롭게 해석하는 물리학자 테드 마크도 과학기술과 21세기 문명을 종합적으로 다루는 연구의 대표적 사례라 할 만하다. 미국문화를 비판하는 진보적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가 MIT의 교수라는 사실도 상징적이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대단한 교육열을 자랑한다. 선진문물을 빠르게 배우고 익히는 능력이 압축근대화를 성공하게 만든 주요한 동인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발전모델과 따라잡기 전략은 효력이 현저히 감소했다. 세계환경이 달라졌고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여전히 일방적인 지식전수와 수동적인 정답찾기에 치우쳐있는 교육은 오늘 한국사회가 넘어서야 할 큰 과제가 되었다. 인공지능과 초연결이 일상화되는 시대에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하고 또 기후위기로 표현되는 인류세의 난제들에 대응하려면 심화된 전문성 못지 않게 분과학적 경계를 뛰어넘는 상상력과 횡단적인 창의력을 지닌 젊은 세대를 키워내야 한다. 교육영역의 창의적 혁신역량을 재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오늘 우리의 최우선 과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터이다.

때마침 임기철 총장이 내건 대학운영의 네가지 목표가 이런 문제의식을 포함하고 있어서 기대가 된다. “글로벌 지식자산을 창출(G : Global Asset)”하는 연구대학으로서의 역량을 높이고 “통찰이 담긴 기술혁신(I : Insight for Innovation)” 을 위해 자연과학과 인문사회학의 학제적·융합적 사고를 접목한다는 것은 과학기술대학으로서의 적절한 목표설정이다. “네가지 난제 (S : Solutions for 4 Securities)”라 할 환경 안보(Ecology), 경제 안보(Economy), 보건의료 안보(Emergency), 에너지 안보(Energy) 를 해결할 역량을 확보하고 “배려와 신뢰(T : Tolerance for Trust)”로 창업을 뒷받침한다는 것은 대학이 혁신생태계의 중심 역할을 해야 한다는 비전에 다름아니다. 이런 목표를 향한 열정과 정신이 새롭게 확산되어 켄달스퀘어에서 느끼던 그 신선한 충격과 혁신의 몸짓들이 GIST 안팎에서 넘쳐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