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vities

제헌절

오늘은 제헌절이다. 1948년 정부출범을 한달 앞둔 7월 17일 마침내 신생 대한민국의 헌법이 공포되었다. 해방 이후 이념 대립과 남북 분단 상황에서 우왕좌왕하면서도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한 새 국가의 헌법을 제정할 수 있었던 것은 기적이라 할 만하다. 잘 정비된 헌법과 법률체계 하에서조차 사사건건 대립하는 정치권의 모습을 고려하면 당대 제헌국회 구성원들의 식견과 역량은 놀랍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되돌아보면 제헌절에 대한 사회적 의미부여는 점차 약화된 것 같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제헌절이 매우 중요한 국경일로 강조되었는데 지금은 언론에서조차 별반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헌법 그 자체의 비중은 더 무거워졌다. 모든 정쟁과 갈등도 헌법의 정신 아래 시시비비를 구하고 그 권위 아래 복종하는 관행이 자리잡았다. 촛불혁명의 비정상상황에서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의 제1조를 슬로건으로 내 걸 정도가 된 것이다.

북한의 김여정 부부장이 공식 발언에서 대한민국이란 정식 국호를 여러 차례 사용했다. 이것을 두고 북한이 한반도 2국가체제를 공식화하는 것이란 해석이 따랐다. 실제로 북한은 이전에 즐겨 쓰던 ‘우리민족’ 대신 ‘우리국가’를 내세우고 민족의식보다 애국주의를 강조한다. 실제 김정은 정권 이후 핵무력을 강화해온 북한이 자기 체제의 존속과 안정을 제일의 가치로 간주하는 경향은 뚜렷하다. 그 바탕에는 조선노동당을 정점으로 하는 사회주의 헌법체제와 백두혈통을 특수지위로 보장하는 수령제가 있는 바, 이런 원리가 대한민국의 헌정이념과 병립할 수 없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적어도 헌법의 차원에서 보면 한반도는 이미 두 개의 국가가 존재해 온 것이다.

그래서 열흘 후에 맞이할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의 의미를 함께 생각하게 된다. 정전협정은 한국전쟁의 잠정적 중단을 약속한 것으로 국제법상으로는 휴전의 성격을 띤다. 그것은 북한이 무력으로 적화통일을 시도한 전쟁이었는데, 정전 70년을 거치면서 한반도에는 실질적인 두 국가상태가 자리잡았다. 기본합의서는 이것을 ‘특수관계’라고 불렀지만 남북간의 이질성과 원심력이 동질화와 구심력에 비해 지속적으로 강화되어 왔다. 2023년 시점에서 정전상태에 있는 남북한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여전한 숙제다. 그것은 다시 헌법의 위상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필요로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