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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 최재석 학술상 시상

10월 25일 제4회 최재석 학술상 시상식이 고려대학교에서 개최되었다. 정수복 교수가 본상을, 김란 박사가 우수논문상을 받았다. 상이 받을 만한 사람들에게 격려와 도움이 되는 것 같아 마음이 기쁘다. 최재석 교수의 학자적 생애를 되돌아보면서 사람이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는 옛말을 새삼 실감하는데 이름을 남기려면 ‘돈도 남겨야 한다’는 이숭원 교수의 농담 반 진담 반 언급 역시 그럴듯하게 와 닿는다. 이사장으로서 이 날의 시상식에서 “고마운 연구 더 고마운 연구자”라는 인사말을 했다.

정수복 교수의 [한국사회학의 지성사] 전 4권은 한국 학계에서 보기 어려운 대작이자 수작입니다. 선진학문의 수용에 급급했던 주변부 학계의 역사 속에 담겨있던 고투와 열정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발굴하고 정리해낸 참으로 고마운 연구입니다. 학문의 보편성을 강조하되 주체성과 실천성을 동시에 고민했던 사회학계의 지적 긴장을 아카데미즘, 비판성, 역사성의 세 영역으로 정리함으로써 한국지성사를 어떻게 파악해야 할지 한 전형을 보여주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최재석, 신용하, 박영신의 학문적 업적과 활동을 역사사회학이란 흐름으로 묶어 자리매김해 준 것은 그 분들께 학은을 크게 입은 한국사회사학회로서 더 없이 고맙고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수박사학위논문상을 받는 김란 박사의 “현대한국과 중국 보육체제 변동에 관한 비교연구”는 가족주의와 보육공공성의 관점에서 두 나라의 현실을 분석한 주목할만한 성과입니다. 가족과 교육, 돌봄과 공공성이 시대적 쟁점이 되고 있는 오늘, 동아시아 문명을 공유했던 두 나라의 공통과제를 깊이 숙고하게 하는 수작입니다. 한국의 평등주의 교육개혁의 기원을 탐색하려는 이지원 님의 학위논문계획과 추지현 교수 외 5인의 공동연구과제인 ‘안전의 공간정치’도 현실적 쟁점들의 역사적 뿌리와 맥락을 탐색하려는 지적 노력으로 그 결과가 주목되는 작업이라 하겠습니다.

학술상은 탁월한 연구성과에 우선 주목합니다만 오늘 저는 연구자들에 대한 고마움을 더욱 피력하고 싶습니다. 정수복 교수는 그가 애정을 쏟았던 학계로부터 합당한 대접을 받았다 하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경계선 위’에 선 자만이 지닐 수 있는 균형잡힌 시선으로 학술장을 풍성하게 만들었고 그 누구보다도 열성적으로 학계의 주인공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깊은 애정으로 힘든 발품과 오랜 독서, 글쓰기의 수고를 아끼지 않은 정교수께 더욱 고마움을 느끼는 이유입니다. 같은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김란박사, 추지현 교수외 5인, 이지원 학생에게도 같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고마운 저작, 더 고마운 연구자들을 선정하고 치하할 수 있도록 학술상 기금을 쾌척해주신 이춘계 여사님과 이숭원 교수님을 비롯한 유족분들, 여러 추천 책자와 논문들을 검토하며 수상작을 선정하느라 애쓰신 김필동 위원장 외 심사위원들, 번거로운 일처리를 감당하신 정일준 교수님 외 학술상운영위원회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런 고마운 뜻을 지속적인 연구로 이어가려는 한국사회사학회의 김백영 회장을 비롯한 회원 여러분들의 수고와 노력에도 감사함을 전하며 모든 분들의 건강과 학문적 성취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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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와 세계평화

제주의 사회사와 여성사를 진지하게 연구해온 권귀숙 교수가 영문으로 묵직한 책을 출간했다. The Island of World Peace : The Jeju Massacre and State Building in South Korea 라는 제목의 책인데 Lowman and Littlefield Press 에서 2023년 올해 간행되었다. 켐브리지 대학 권헌익 교수를 비롯하여 전세계의 뛰어난 학자들이 공동 연구해온 Beyond Korean War 국제 냉전사 프로젝트의 한 중요한 성과물이다.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진 가운데 전세계가 다시 신냉전의 시대로 회귀하는 듯 갈등하고 있는 오늘, 한국전쟁과 전지구적 냉전, 그 복합적 영향을 다양한 시각에서 재조명하려는 국제적 연구기획이 뜻깊은 학술적 성취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권귀숙 박사의 이 책은 부제가 말하듯 제주 4.3 학살사건과 한국의 국가건설을 두 축으로 해방 이후 반세기 변동을 장기사회사의 맥락에서 추적한 것이다. 기존 연구들은 주로 1940년대와 1950년대에 남북한에서 진행된 냉전적 이념화, 한편의 반동분자 색출과 다른 한편의 공산주의자 척결이 분단국가 형성에 어떤 역할을 미쳤는지를 주목해왔고 적지 않은 성과들이 축적된 바 있다. 하지만 이 책은 21세기 최근까지 반세기 이상의 긴 시간 속에서 4.3의 비극이 어떻게 기억되고 억압되며 재구성되고 재평가되었는지의 장기사적 프로세스에 더 주목한다. 이 과정은 국내적으로는 민주화, 국제적으로는 탈냉전, 지성사적으로는 젠더와 문화의 부상과 직결된 세계사적 역동성을 포함한다. 이 책은 4.3 을 둘러싼 오랜 논란, 곡해, 억압과 그것을 바로잡으려는 끈질긴 싸움, 증언, 기억의 충돌, 그 속에서 진행되는 통합과 화해와 해석의 긴장과 성과를 드러내고자 한다.

이 책의 목차구성이 저자의 문제의식을 잘 보여준다. 목차는 해방후 상황을 서술한 Beginning을 첫 장으로 State Violence, Reintegration 1, Reintegration 2, Reconstruction , Reconciliation 장을 거쳐 결론으로 이어진다. 마치 한편의 장편 드라마 구성같은 기승전결의 입체감이 느껴진다. 흥미로운 것은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 저자가 붙인 개념들이다. 저자는 4.3 사건을 state violence로, 한국전쟁을 reintegration 1 로, 귀신잡는 제주해병을 reintegration 2로, 제주 여성의 독특하고도 다양한 역할을 reconstruction으로, 제주평화공원 건립과정을 reconciliation으로 병기했다. 국가폭력으로 깨어지고 파괴된 새 시대의 꿈이 여러 형태의 재통합 과정을 거치고 재구성되며 재화합되는 역동적 경로를 해명하려는 문제의식이 반영된 것 아닌가 싶다. 결론의 장과 책의 제목을 세계평화의 섬이라 붙인 이유는 이런 변화의 지향점이 ‘세계평화’가 되어야 하리라는 저자의 신념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뭍혀있던 사실을 드러내어 알려주는 부분 못지 않게 이 개념들의 연쇄가 주는 지적 상상력이 새롭게 다가온다.

제주 4.3은 지역사회의 오랜 수고와 뜻있는 연구자들의 노력으로 그 역사적 평가가 일단락되고 국가폭력의 희생자들에 대한 위무와 보상도 이루어진 사건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 해석을 둘러싼 논란과 폄훼가 끊이질 않는 현안이기도 하다. 남북관계가 악화되고 신냉전 상황이 심화되면서 이념 대립이 더욱 격화되면 해석과 재해석에 이은 또다른 해석갈등이 등장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럴 수록 가해자와 피해자를 나누고 비난의 화살을 어디로 쏠 것인가에 집중되던 시선을 미래와 세계를 향한 평화의 기획으로 향하도록 하는 노력은 소중하다. 전체사회사의 맥락에서 냉전시기 한 지역이 겪게된 통합과 대립, 해석과 반해석의 역동성을 세계평화로의 긴 여정으로 밝히려 한 이 책이 이 시점에서 간행된 것이 예사롭지 않은 메시지인양 느껴진다. 나는 저자가 사용한 개념들을 보면서 재통합이란 무엇을 의미하며 재구성이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재화합이란 또 어떤 함의를 지니며 그것이 종국의 결론인 World Peace로 이어지는 경로는 또렷한가 등 흥미로운 물음들이 머릿속을 채우는 것을 느낀다.

제주의 길고 고통스럽던 역사적 드라마를 지역주민의 원한해소나 국내정치적 논란으로 연결하지 않고 세계평화로 나아가는 뜻있는 여정이기를 바라는 저자의 구상이 실로 원대하고 신선하다. 제주출신자가 아니면서 제주를 사랑하는 제주인이고, 미국 명문대에서 학문적 훈련과 학위까지 받았으면서도 이를 내세우지 않고 현지 주민들의 경험과 생각을 존중할 줄 아는 저자의 지적 성실함과 균형감각 덕택이 아닐까 싶다. 권박사는 감사의 말에서 자신이 도움을 받았던 국내외의 많은 학자, 활동가 들을 언급하고 있는데 서귀포에 앉아서 세계의 석학들과 교유하고 문제의식을 주고받는 21세기형 학자의 전형을 보는 느낌이다. 자신이 몸담고 살아온 지역의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 애환과 바람, 갈등과 아픔들을 외면하지 않고 담담히 진지하게 서술하고 정리한 저자의 수고가 제주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만드는 자산이 될 것이라 믿는다. 오랜 시간과 힘든 수고를 요하는 영문저술을 노학자 그룹에 속하는 시기에 마무리한 권교수의 열정과 헌신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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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개념사의 완성?

강인철 교수가 또 기념비적인 연구서를 출간했다. [민중의 개념사]를 “저항하는 주체-이론”, “시대와 역사속에서 -통사” 2권으로 다룬 책인데 도합 1,200 쪽을 넘는 대작이다. 각주만으로 300쪽에 달하는 상세한 자료검토, 수많은 논저와 매체의 정치한 분석이 놀랍다. 이런 작업이 얼마나 많은 땀과 수고를 필요로 하는 것인지를 실물로 보여주는 듯하다. 강교수는 진지하고 뛰어난 연구자로 정평이 나 한국사회사학회가 수여하는 최재석 학술상 1회 본상을 수상하는 등 이미 높은 평가를 받았는데 또 하나의 큰 성취가 더해졌다. 나이와 무관하게 지적 역량이 나날이 커지는 사람이 간혹 있는데 강교수가 그 중 한 명이 아닐까 싶다. 강교수 덕에 우리 학계의 자산 리스트가 그만큼 풍요해졌으니 감사한 일이다.

고맙게도 보내온 책 속에 강교수가 쓴 감사의 편지가 함께 들어있었다. 이 책을 구상하고 완성해 가는데 내가 썼던 [국민, 인민, 시민]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했고 실제로 곳곳에서 내 책을 인용하고 있다. 과분한 평가를 받은 듯 민망한 마음도 없지 않지만 내가 그 책을 쓰면서 가졌던 문제의식과 생각을 강교수가 가장 잘 이어주고 있다는 생각에 기쁘고 보람을 느꼈다. 개념사 연구를 하면서 점점 명료해진 생각이 개념사와 정치주체형성사, 사회사와 사회운동사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내 책을 출간할 때 출판사가 난색을 표했음에도 굳이 “개념사로 본 한국의 정치주체”란 부제를 제목에 병기할 것을 고집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능력과 시간이 모자라 내 생각을 충분히 또 깊이있게 탐구하지 못하고 소략한 검토로 그칠 수 밖에 없었는데, 강교수의 이 책이 그 문제의식을 이어받아 멋지게 구현해 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내 책에서 국민, 인민, 시민, 민족, 민중이 한국의 정치주체를 분석하는데 필수적인 다섯 개념이라고 언급했었다. 전통적으로 일반 사람, 백성을 지칭하던 ‘인’, ‘민’ 어휘가 역사속에서 변형되고 재구성되면서 여러 개념들을 낳았는데 근대변혁기에 위의 다섯 범주가 새로운 정치적 주체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강교수는 이 다섯 범주에 ‘계급’을 더해 ‘6대 정치주체 개념어’로 확장시켜야 할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일견 공감이 가는 제안인데 그런 맥락에서라면 젠더도 포함해야 할 것이다. 지난 수년간 박찬승 교수가 민족, 민족주의에 대한 개념과 운동의 종합 연구서들을 출간했고 김경일 교수는 노동 개념의 역사와 일제하 노동운동사를 통해 계급이 한국사회에 출현하는 과정을 탐구해왔고 여성사에 대해서도 주목할만한 성과를 출간했다. 이번에 강교수가 민중에 대한 본격적인 분석을 완료하고 대작을 출간함으로써 한국개념사의 큰 그림이 얼추 마무리된 느낌이다.

그러고보니 한국사회사학회에 속한 여러 동학들이 이 큰 지적 프로젝트를 수행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자축하며 감사할 일이다. 그런데 요즘 상황을 보노라면 현대 한국의 정치주체와 관련하여 ‘개인’의 출현에 대한 연구가 새로운 과제로 부각되는 느낌이다. 분할 불가능한 주체로서의 in-dividual은 헌법적 주체, 인권의 담지자로 간주되고 있지만 개인 역시 역사적인 범주이고 근대로의 이행과정에서 형성되어 나온 주체다. 따라서 개인을 원천적으로 주어진 인간과 동일시하는 것은 곤란하고 어떻게 한국사회에서 개인주체성이 형성되었는지를 밝히는 일이 중요하다. 특히 요즈음의 MZ 세대는 개성과 취향을 강조하면서 국민, 인민, 시민, 민족, 민중, 계급, 젠더 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개별적 정체성을 전례없이 또렷하게 드러낸다. 그것이 신 앞의 단독자 의식에 바탕을 둔 서구의 개인과도 상당히 다른 것임은 분명한데 그 차이와 특성을 명료하게 밝히는 개념사적 탐구 없이는 설명이 어렵다.

한국형 개인은 개성과 자유를 강조하지만 집단적 범주로부터 자유로운 단독 주체도 아니다. 대중이나 다중, 또 팬덤으로 불리는 새로운 형태의 집합체로 곧잘 편입되는 독특한 개인이다. 그 틈새에서 명분과 실제의 불일치, 공적부문과 사적영역 간의 이중성, 특유의 도덕주의, 내로남불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 한국적 개인주체의 바탕은 무엇이며 개념적 뿌리는 어디에 있을까? 어떻게 형성되고 강화되며 다른 정체성과의 연관성이 어떠할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이야말로 한국개념사를 최종적으로 완성하는 화룡점정일지 모른다. 사회사와 개념사가 정치사와 사상사를 넘어 문학사와 종교사와 만나는 새로운 지적 대장정이 필요한 이유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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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노동

수년전 서울대 권현지 교수등과 함께 “디지털 변화 속에서 일/노동 변화” 를 주제로 하는 연구프로젝트를 수행한 적이 있다. 노동관련 연구를 활발히 하던 뛰어난 전문가들이 참여한 공동작업이었는데 나는 개념사의 관점에서 한 파트를 담당했다. 2017년 말에 이 보고서가 노동연구원 종합보고서 책자로 간행되기도 했는데 지금 살펴보아도 그 내용이 탄탄하고 흥미롭다.

문명으로 보는 21세기 수업에서 ‘일/노동의 미래’ 를 학생들과 이야기하면서 이 보고서를 다시 살펴보았다. 나는 1) 임금을 전제한 노동과 그보다 좀더 포괄적인 일이 분화할 수 있을지, 2) 정규직 중심의 정상적 노동형태가 다양한 유연화와 일의 조합으로 진행될지 3) 이 맥락에서 첨단기술의 영향력이 어떻게 작용할지를 주목했었는데 과연 21세기 미래에 저 학생들이 어떤 상황을 마주치게 될지 중요한 쟁점인데 나 스스로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

사실 그 연구를 수행할 때는 디지털 효과가 미칠 긍정적 영향력을 좀 적극적으로 평가했었다. 아마도 미래는 사람들이 임금노동에서 좀더 자유로와지고 단일 직업에 매이기보다 다양한 일의 포트폴리오를 활용할 수 있는 상황이 오기를 바라는 내 개인적 희망이 작용했을지 모르겠다. 그로부터 6년여를 지나면서 그런 기대와 희망은 여전하지만 긍정적 평가에 대한 확신은 이전에 비해 약화된 것 같다. 한국사회의 현실이 일자리의 다양화와 유연화를 환영하기에는 너무 경직되어 있고 서열화되어 있는데다가 노동의 유연성이 자유의 확대보다 불안정성과 프레카리아트화에 더 기여할 것이라는 생각이 커진 탓이다.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면서 디지털 환경이 노동과 일에 미친 영향이 전반적인 자유증대보다는 전례없는 양극화로 귀결되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미국의 라이시는 디지털 환경이 재택근무가 가능한 ‘원격업무층’을 자유로움과 높은 소득을 함께 보장하는 최상층으로 만들었지만 수많은 중하층 노동자들은 그런 긍정적 효과보다는 지위의 불안정과 소득하락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마도 미국 이외의 사회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유사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이 변화의 미래를 결정론적으로 단정하고 싶지 않다. 냉정한 분석가의 입장과 내심 아들이 살아갈 미래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충돌하는 공간을 없에고 싶지 않다. 아니 내 마음의 공간만이 아니라 실제 우리 사회에 그런 혁신의 공간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하는 희망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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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나눔과의 인연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를 연구하던 동학들과 이만열 교수님과의 식사모임이 오랫만에 마련되었는데 수업때문에 참가할 수 없게 되어 이 기회에 그 분과의 인연과 그 영향을 생각해본다. 이 교수님으로부터 수업을 듣거나 직접 지도를 받은 적은 없으나 그 분으로 인해 맺어진 인연과 활동들이 나의 학술활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사회학을 전공한 내가 민족, 통일, 평화 같은 쟁점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냐고 누군가 물어보았을 때 나는 어릴적부터 듣고 자란 성경의 이스라엘 역사 이야기 때문이었다고 대답했었다. 그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고 내가 한국근대사회사를 전공하게 된 한 배경이었지만 현실의 남북관계에 대한 구체적 관심으로 이어져 내 연구주제의 중심자리를 차지하게 된 데는 1994년 경부터 참여한 연구모임이 중요했고 그 중심에 이만열 교수님이 계셨다.

숙대 앞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회의실에서 기독교 신앙의 바탕 위에서 남북관계와 통일문제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발제와 토론의 시간을 가지곤 했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작은 모임이었지만 진지함과 헌신성은 어떤 곳보다 강력했고 이교수님은 기도에서 참석자들을 ‘믿음의 동지’라고 종종 불렀다. 신앙의 열정에서 다른 연구자들에게 한참 못미치던 나는 늘 한 발만 걸치는 소극적 태도로 임했지만 그 문제의식과 분위기로부터 받은 영향은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다. 1997년 베트남 남북을 둘러보면서 통일의 현장을 답사했는데 버스 속에서 백종국 교수가 열정적으로 인도차이나 전쟁사를 이야기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 있다. 호치민에서 만났던 남부출신의 학자가 베트남 통일은 실제로는 일방적인 ‘북화'(northernization)였다고 말해 놀랐던 것도 새삼 떠오른다.

2001년 2월에는 홍콩, 마카오, 대만을 답사하면서 ‘일국양제’의 현실을 함께 살펴보았다. 홍콩반환이 이루어지고 21세기로 접어든 직후여서 일국양제 구상이 갖는 미래적 전망에 관심이 적지 않았다. 이질적 체제를 융통성있게 수용하려는 중국의 유연성이 참신하게 여겨지기도 했지만 ‘하나의 중국’을 절대적 원칙으로 고수하는 베이징의 태도에 대한 홍콩의 우려와 대만의 거부감이 매우 큰 것을 보고 놀라기도 했다. ‘일국’과 ‘양제’의 의미와 양자 관계에 대한 해석은 현실정치에서의 역학관계를 떠나서 이론적으로만 접근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닫는 소중한 답사경험이었다. 그런 복잡함을 접하면서 당시 동행한 윤영관 교수께 국제관계가 왜 미묘하고 또 중요한지 실감이 난다고 말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2006년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설립을 책임지고 초대소장을 맡게 되면서 이 분야 연구와 활동에 더 집중하게 되었는데 앞선 경험들이 적지 않은 자산이 되었다. 양안관계를 다루는 연구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양안협력의 현장들을 답사, 양측의 견해들을 경청하려 한 것도 이 답사에서 얻은 문제의식이 계기가 되었다. 한반도의 참조사례로 독일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양안관계를 깊이 탐구할 필요가 있음과 함께 교류협력의 기능적 파급력을 과신할 수 없다는 점도 주목할 것을 강조했다. 중국과 대만 사이의 교류협력이 급격히 진전되었지만 대만의 대중국 경계심과 독자정체성 요구는 더욱 강해지는 역설적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그것이 한반도에 주는 함의가 무엇인지 고민할 거리는 많아 보였다. [양안에서 보는 통일과 평화] 를 편집 출간하는 과정에서 15년 전 답사를 떠올리기도 했고 실제로 당시 보고서를 참고하기도 했다.

대북인도적지원사업을 오랫동안 주도하신 홍정길 목사님과 함께 평양을 방문하고 북한의 유아원, 병원, 빵공장, 묘목장 등을 모니터링했던 것도 이 모임이 남북나눔운동 연구위원회로 활동한 덕분이었다. 휴전선을 넘어 북으로 향하는 직항비행기를 타고 평양일대와 묘향산 주변을 둘러보면서 같은 언어, 역사에 기반한 민족감정의 실체를 경험하기도 했고 그런 종족적 동질성, 전통적 역사공유가 통합과 호혜의 밑바탕을 이룰 충분조건이 될 수 있을까 자문하가도 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에서 국민의 통일인식, 대북인식, 민족정서 등을 매년 객관적으로 조사하고 확인하는 작업을 기획한 것도, 북한주민의 의식을 간접적으로나마 확인하려 애쓴 이유도 이 때의 경험과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었다.

2023년 한반도는 너무 달라졌다. 남북간 어떤 대화도 교류도 없고 불신과 경계의 언사들만 오가고 있다. 핵무력과 군사주의 노선에 더욱 집착하는 북한은 한국과의 관계에 기대가 없으며 오히려 적대적 대상이라고 공언한다. 김정은-푸틴 북러정상회담을 통해 위성기술과 무기체계의 협력을 약속하는 새로운 환경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한반도 남쪽에서는 한미동맹의 강화에 더해 한미일 3국의 군사협력이 강화되고 대북경계와 압박만이 강조되고 있다. 한중관계나 한러관계도 어려워질 것임은 분명해 그 후과가 어느정도일지 예측하기 어렵다. 국민들의 정서는 북한에 대해서도 중국에 대해서도 매우 부정적으로 변했고 젊은 세대들은 더이상 북한과의 통일에 기대를 걸지 않는 형편이다. 신냉전이 도래했다는 견해가 확산되고 교류협력을 통한 평화보다는 힘을 통한 평화를 추구하는 견해가 힘을 얻고 있다.

이런 변화가 바람직한 것도 아니고 우리가 원한 것은 더더욱 아니지만 당분간 이런 방향으로의 흐름은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 거대한 변화가 우리 내부만이 아니라 북쪽과 주변, 대륙과 해양 등 외부로부터 총체적으로 추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전환의 시대에 아무런 성찰과 변화 없이 이전 논리를 고수하는 것은 지혜롭지도 못하고 현실적이지도 않다. 그렇다고 원칙과 비전 없이 시류에 편승하여 과거의 경험과 노력을 전부 폐기하려는 태도도 문제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일관성과 신실함은 무엇이며 바꾸고 혁신해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 새로운 고민의 시작점에 서 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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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사와 취중용기

세상 사는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참 비슷한 모양이다. 중국 옛글 어부사를 보면 “세상이 모두 오염되었는데 나만 깨끗한 탓에 쫒겨났다”는 굴원과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물이 탁하면 발을 씻으면 될 뿐”인데 스스로 화를 자초했다고 핀잔하는 어부의 대화가 나온다. 자기 원칙을 지키려 세상과의 불화를 피하지 않는 태도와 세상 흐름에 맞춰 살아가는 처세의 선연한 대조다. 작금 우리 사회에서도 낯설지 않을 내용이어서 간간히 음미해보게 되는 글이다.

어제 아침 안팎의 소식이 우울해 어부사를 써보며 심란함을 달래려 했다. 하루 종일 애는 썼는데 붓끝은 자꾸 흔들리고 자획도 고르지 못해 오히려 지치기만 했다. 실력이 따르지 못하는데 과욕을 부리는구나 생각하고 벼루를 정리한 후 와인을 두어잔 마셨다. 그런데 약간의 취기가 동하니 갑자기 잘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시 먹을 갈고 붓을 잡았는데 과연 필획에 힘이 느껴지고 붓놀림도 자유로와 신이 났다. 취중에 멋진 서화를 남기셨던 삼불 김원룡 교수의 일화를 떠올리며 나도 그럴 수 있겠구나 생각도 했다. 포도주 한두잔에 간이 이처럼 커지다니….ㅎㅎ

아침에 일어나 다시 보니 모든 글자가 다 제 잘난 맛으로 도드라진 형국이어서 보기 민망했다. 약하고 세밀한 부분이 없이 모든 글자가 강한 필획으로 이어져 단조롭고 답답하다. 영화 취권을 보면 고수에게 술은 허술한 듯 여백을 키우는 도구일 뿐인데 오히려 술기운데 취해 강약의 조화를 깨트린 하수의 어리석음이 글자 곳곳에 녹아있는 듯했다. 붓을 쥔 손이 떨리지 않고 언제나 기계처럼 강한 획을 쓸 수 있는 것이 좋은 글씨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떨림과 빈구석은 약함의 표지가 아니고 오히려 개성적 미학의 기반인 셈이다.

낯뜨거운 주장과 상스런 공격을 주저없이 내뱉는 일이 다반사가 된 요즈음은 모두 취중용기를 강조하는 시대 같다. 국내정치든 국제정치든, 개인이든 집단이든 약육강식이 당연한 듯 뻔뻔함과 즉물성이 취중 호언장담처럼 퍼지고 있다. 상호이해와 협력을 강조하고 포용력과 유연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좌우 어디서도 힘을 얻지 못하는 느낌이다. 스스로 단호하고 힘이 있다고 느끼지만 결과적으로 공존과 조화의 역량을 약화시키는 흐름이 아닐 수 없다. 세상사가 마음같지 않은 요즈음 자칫 취중용기에 내 자신을 내맡기려는 경향은 없는가 되돌아본다. 와인 두어잔에 자고했던 해프닝을 돌아보면서 강함만이 능사가 아니며 약함과의 공존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중요한 자산임을 아는 사람들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기를 바래본다.

life · 오늘의 화두

최치원의 시세계

2023년도 서울대 화목회 정기전시회가 10월에 열리는데 최치원의 글을 그 대상으로 정했다 한다. 나름 이 전시를 위해 방학 중 틈틈히 굴원의 어부사를 써보곤 했는데 뒤늦게 내용을 바꾸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덕분에 내가 쓸 글을 정하는 과정에서 최치원의 글들을 훑어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된다. 그가 남긴 글이 꽤 많은데 과연 한국 명문장가의 우두머리로 삼을 만하다.

처음 내가 쓰기로 마음 먹은 것은 최치원의 ‘난랑비서문’이었다. 전문은 전하지 않으나 그 일부분이 남아있는데 한국의 고유한 사상적 특성을 밝힌 뜻깊은 내용이다. “國有玄妙之道曰風流 設敎之源 備詳仙史 實乃包含三敎 接化群生 且如入即孝於家 出即忠於國 魯司寇之旨也 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周柱史之宗也 諸惡莫作 諸善奉行 竺乾太子之化也”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풍류라 한다. 그 가르침의 근원은 선사에 자세한 바, 세 종교를 포함하여 뭇 생명을 접하여 교화하는 것이다. 집에 들어와선 효도하고 나가서는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노나라 사구 (공자)의 뜻과 같고, 무위로 일을 처리하고 말없는 가르침을 행하는 것은 주나라 주하자(노자)의 종지와 같으며, 악한 일을 금하고 선한 일을 받들어 행하는 것은 축건태자 (석가모니)의 교화와 같은 것이다) – 3교통합의 사상적 특징을 이처럼 명료하게 밝힌 글이 신라시대에 쓰여졌다는 것이 새삼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을 먼저 택한 분이 있어 나는 ‘등윤주자화사상방’이란 시를 쓰기로 마음을 달리 정했다. 최치원이 당나라 관직에 있을 때 방문한 윤주 자화사에서 쓴 시로 대표적인 명시로 종종 언급되던 글이다. “登臨暫隔路岐塵 吟想興亡恨益新 / 畫角聲中朝暮浪 靑山影裏古今人 / 霜摧玉樹花無主 風暖金陵草自春/ 賴有謝家餘境在 長敎詩客爽精神 (『孤雲先生文集』 卷之一) 대략 뜻을 옮기면 “산에 올라 잠시 속세를 떠나서 흥망을 생각하니 한이 더욱 새롭다/ 뿔피리 소리에 아침저녁 일렁이던 물결과 푸른 산 그림자 속에 담긴 고금의 사람들 생각한다/ 서리내린 나무와 꽃 주인은 간데없고 따뜻한 바람 금릉의 풀만 봄을 알리는데/ 사조가 남은 집터 둘러보니 그 오랜 가르침 시인의 정신을 맑게 하네)

하동군 화개면의 신흥마을에서 의신마을까지 화개천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약 4.2km의 계곡길은 임진왜란 때 고승 서산대사가 지리산에 머물며 걸었던 길이자 신라시대 최치원이 지리산에 입산하여 거닌 길로 알려져 있다.  서산대사는 최치원의 글과 사상을 새롭게 부각시킨 인물인데 쌍계사 중창기에 이렇게 쓰고 있다. “옛날에 유불(儒佛)에 정통하고 내외를 통달한 자는 공명을 헌 신짝처럼 벗어 던지고 하나의 표주박으로 가난을 잊었다. 천지와 더불어 나란히 서고, 신명과 더불어 동행하면서 무위진인(無位眞人)과 함께 노닐고, 시종(始終)이 없는 자와 벗을 삼았다. 그는 자신이 걱정할 것을 걱정하고, 자신이 즐길 것을 즐겼으니, 어느 겨를에 유교의 입장에서 불교를 비난하고 불교의 입장에서 유교를 비난하면서 서로 원수처럼 배척하였겠는가. 우리나라의 최고운(崔孤雲)과 진감(眞鑑)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고운은 유자(儒者)이고, 진감은 불자(佛者)이다.” 저런 고수들은 벽을 허물고 화통하는데 역사는 늘 편당을 짓기 좋아하는 사람들로 시끄러워지곤 한다. 서산대사가 평한 저런 마음을 담아 작품을 써 보려 하는데 붓을 잡은 손이 자꾸 흔들린다. 무위로 쓰는 정성을 더 배워야 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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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강

23년도 2학기가 개강했다. 무더위와 폭우로 정신없었던 기간이었지만 그래도 방학은 쉼과 여유의 시간이었다. 이제 다시 수업을 위해 광주를 오가고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 과목의 내용을 채우고 스스로 만족할만한 강의를 해야 한다는 부담이 없지 않지만 기대가 되고 새로운 열정이 솟구치기도 한다. 감사한 일이다.

동양고전의 하나인 [대학]의 한 귀절을 화선지에 써서 연구실에 걸어두었다. “格物致知 誠意精心 修身濟家治國平天下” – 곰곰 생각하면 학자가 평생 좌우명으로 할만한 내용이다. 사물의 궁극적 이치를 물어 깨닫고 지극한 뜻과 맑은 마음을 지키는 것 (格物致知 誠意精心) 은 학문의 본령을 이르는 말이다. 스스로의 몸을 닦고 집안을 보살피며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의 평화를 구한다 (修身濟家治國平天下) – 학자의 할 바를 쓴 내용이다. 학문함과 학자됨의 두 차원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가르침이다.

서울대를 정년한 후 다시 주어진 GIST 에서의 강의기회를 나는 이전생활의 연속이 아닌 새로운 질적 전환으로 받아들이려 애쓰는 중이다. 익숙하고 몸에 밴 내용과 방식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내용을 새로운 형식으로 가르치고 싶다. 강의 이전에 학습과 공부를 우선하고 학생들에 앞서 내 자신이 나날이 새로워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를 설득할 수 있고 내 아들에게 조언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면 어떻게 학생들에게 힘있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인가 – 생각은 절실한데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이 문제다. 다만 지난 학기에 비해 조금은 더 나아지기를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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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ST 새출발

광주과학기술원이 새출발 준비로 바쁘다. 제9대 총장으로 임기철 박사가 선임된 후 새로운 보직자들로 대학 거버넌스 진용이 갖추어졌고 8월 16일엔 총장취임식이 예정되어 있다. 리더십 혼란으로 내부 갈등이 지속되면서 학내에 안타까움과 자괴감이 커지던 상황을 지켜본 나로서는 무엇보다 반갑고 기쁜 일이다. 임 신임총장은 과학기술정책 전반에 오랜 경험과 경륜을 갖춘 분인만큼 대학을 일신하고 업그레이드하는 역할을 잘 감당하리라는 기대감이 크다.

2019년 보스턴에서 보낸 안식년 기간은 21세기 과학기술의 발전이 대학과 지역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를 절감한 소중한 기회였다. 30년 전과 큰 차이가 없는 하바드 스퀘어 주변과 상전벽해라 할 정도로 달라진 MIT 주변지역의 놀라운 대비가 내겐 특히 인상적이었다. 실제로 MIT가 있는 켄달스퀘어는 구글, IBM, 마이크로소프트, 파이자, 모더나, 노바티스와 같은 세계적 기업들이 밀집한 첨단산업지대로 변모했다. 맥거번 뇌연구소, 코흐 암 연구센터 등 연구기관들이 함께 있는 복합, 첨단 테크노 파크로서의 역동성은 계속 확장될 것이 분명해 보였다. 2022년 자료에 의하면 투자액 270억달러, 특허 1만여개, 일자리 10,400개가 생겨났고 세계최고의 20대 바이오제약회사 중에서 19개 회사가 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무엇이 이런 변화를 추동했을까 궁금하여 여러 자료들을 찾아보면서 내가 얻은 답은 대학(지식)과 도시(인프라)와 정신(문화)의 결합된 힘이었다. 첨단과학 연구의 중심인 MIT, 혁신생태계를 만들려는 캠브리지市의 기획, 그리고 역동적 도전정신을 지닌 젊은 문화가 세 주역이었다. 대학은 창의적 교육과 도전적 연구를 격려하고 학생과 교수의 혁신을 장려했다. 이 일대를 혁신 인큐베이터로 만들기 위해 고가의 공동실험기자재가 구비된 공유랩을 설립하고 많은 신생 회사들이 큰 리스크를 피하고 창업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하바드 의대와 병원, 보건대학원은 생명공학의 좋은 환경과 기회를 제공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백신으로 유명해진 모더나를 비롯하여 이곳에서 창업하고 성장한 성공적 기업들이 적지 않다.

MIT와 하바드가 지척에 있어 인문사회학적 사유와 과학기술 연구가 고급한 상호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것도 큰 도움이었다. 1950년대 이 지역에서 꽃을 피웠던 사이버네틱스 모델은 하바드의 사회학자 파슨즈, MIT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였던 위너 등이 참여한 다학제적 논의에 기반한 것이다. 디지털 시대를 전망하고 전세계에 영향을 미친 MIT 의 문화연구자 네그로폰테의 책 Being Digital은 첨단기술과 사회문화에 대한 복합적 시야 덕택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가 설립을 주도한 MIT의 미디어랩은 인공지능, 디자인, 문화, 건축, 미학과 언어 등을 융복합적으로 다루는 대표적 연구조직이 되었다. 싱귤래리티라는 개념을 확산시킨 레이 커즈화일이나 Life 3.0 이란 책으로 생명현상을 새롭게 해석하는 물리학자 테드 마크도 과학기술과 21세기 문명을 종합적으로 다루는 연구의 대표적 사례라 할 만하다. 미국문화를 비판하는 진보적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가 MIT의 교수라는 사실도 상징적이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대단한 교육열을 자랑한다. 선진문물을 빠르게 배우고 익히는 능력이 압축근대화를 성공하게 만든 주요한 동인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발전모델과 따라잡기 전략은 효력이 현저히 감소했다. 세계환경이 달라졌고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여전히 일방적인 지식전수와 수동적인 정답찾기에 치우쳐있는 교육은 오늘 한국사회가 넘어서야 할 큰 과제가 되었다. 인공지능과 초연결이 일상화되는 시대에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하고 또 기후위기로 표현되는 인류세의 난제들에 대응하려면 심화된 전문성 못지 않게 분과학적 경계를 뛰어넘는 상상력과 횡단적인 창의력을 지닌 젊은 세대를 키워내야 한다. 교육영역의 창의적 혁신역량을 재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오늘 우리의 최우선 과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터이다.

때마침 임기철 총장이 내건 대학운영의 네가지 목표가 이런 문제의식을 포함하고 있어서 기대가 된다. “글로벌 지식자산을 창출(G : Global Asset)”하는 연구대학으로서의 역량을 높이고 “통찰이 담긴 기술혁신(I : Insight for Innovation)” 을 위해 자연과학과 인문사회학의 학제적·융합적 사고를 접목한다는 것은 과학기술대학으로서의 적절한 목표설정이다. “네가지 난제 (S : Solutions for 4 Securities)”라 할 환경 안보(Ecology), 경제 안보(Economy), 보건의료 안보(Emergency), 에너지 안보(Energy) 를 해결할 역량을 확보하고 “배려와 신뢰(T : Tolerance for Trust)”로 창업을 뒷받침한다는 것은 대학이 혁신생태계의 중심 역할을 해야 한다는 비전에 다름아니다. 이런 목표를 향한 열정과 정신이 새롭게 확산되어 켄달스퀘어에서 느끼던 그 신선한 충격과 혁신의 몸짓들이 GIST 안팎에서 넘쳐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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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전용과 문자병기

가까운 분이 한글한자병용을 주장하는 글을 보내주셨다. 필자가 우리사회의 여론주도층에 속하는 분이고 또 [한글+한자문화]라는 타이틀을 단 발간물의 권두언이기도 해서 정독을 했다. 논지의 핵심은 한글만 전용하는 우리 상황이 한국의 문화나 지식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고 때론 장애를 조성한다는 것이다. 베트남이 한자를 전면 폐기함으로써 자신들의 오랜 전통문화로부터 심한 단절을 보이고 있음을 참조사례로 꼽으면서 ‘한자병용이 최선책’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 발간물을 간행하는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가 어떤 곳인지 검색해보았는데 1998년에 출범한 설립준비위원회 명단에는 원로 언어학자들 이름도 더러 보였다. 홈페이지 첫 화면에 “한자도 위대한 우리 조상이 만든 문자, 한글과 더불어 분명히 國字다”라고 쓰여 있다.

필자가 내세우는 논거는 세가지로 요약 가능하다. 우리말의 개념어는 상당부분 한자로부터 유래한 것인데 한자를 몰라 혼동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그 첫 이유다. 어려운 개념어의 적확한 뜻을 확인하는 것이 특히 필요한 전문분야, 예컨대 법학, 의학, 철학 등에서 이런 문제가 실제로 있을 수 있다. 둘째로는 한자로 표기된 전통지식과 한자문화와의 단절이 점점 심해진다는 것이다. 한자에 대한 거리감 때문에 조선시대사를 연구하려는 학생이 줄어드는 것이나 중국 및 일본 학계와의 소통력이 줄어드는 것이 그런 예에 해당할 것이다. 셋째로는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한자를 활용하는 어려움이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이제 한자를 손으로 쓰기 위해 어려운 자획을 알아야 할 필요성이 크지 않아 훨씬 손쉽게 한자를 사용할 기술적 환경이 마련되었다는 것을 들고 있다.

한글만으로는 적확한 뜻이 전달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동음이의어 문제는 나도 종종 접한다. 실제로 전문적 영역에서 글을 쓰는 사람들 중에는 최소한의 한자 병기를 하는 경우가 제법 있고 그런 표기를 독자적으로 시행하는 언론사나 출판사도 있다. 최근에는 한자만이 아니라 외국어 전문용어를 병기할 필요성이 더 늘어나고 그런 경우들을 종종 접한다. 각종 컴퓨터 용어나 첨단기술용어가 특히 그러한데 챗 GPT4 등장 이후 논란이 되는 환각현상 (hallucination) 은 그 좋은 예다. 언어와 어휘, 문자 사이의 관계는 고정적이지 않아서 시대와 문화에 따라, 또 맥락에 따라 늘 변한다. 그런 유연성 자체가 문자의 힘이 되기도 할테니 필요한 경우 한글과 함께 한자나 외국어를 병기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한글전용으로 새로운 우리말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의미를 더 적확하게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된다. 고고학 분야에서 한자어를 우리말로 고침으로써 소통력을 높인 사례는 박물관 전시실을 가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한자병기를 하던 세대의 저서보다 한글전용 세대가 쓴 책이나 논문이 훨씬 정확하고 소통력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인터넷이나 SNS 상에서 범람하는 각종 축약어나 놀라운 유행어들도 한글세대의 창안물이다. 그 맥락을 모르는 사람들에겐 외래어같지만 그들에게는 가장 정확한 의사소통의 도구일 터이다. 현재 우리 사회가 겪는 문자표현의 여러 문제들을 한자불용의 결과만으로 환원하기보다 다양한 문화와 문자가 뒤섞이고 혼융되는 시대상황과 결부하여 종합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한자를 특별한 문자이자 문화도구로 학습하는 기회가 좀더 강화될 필요는 있다. 한자문명권에서 유래한 오랜 지식, 개념, 사유, 소통의 자산을 소홀히 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재해석할 전문가의 양성은 앞으로 더욱 필요하기 때문이다. 전통자료의 해독능력은 다양한 영역에서 상상력과 창의성을 제공하는 소중한 자산이 된다. 한자에 비전문가인 나도 옛 고전의 문장을 접하면서 21세기에 적용가능한 새로운 실마리를 찾는 흥미로운 경험을 하곤 한다. 모든 사람이 컴퓨터 프로그램을 배울 필요 없는 환경이 가능하려면 누군가는 복잡한 전산시스템과 수학의 연산과정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 마찬가지로 한자에 정통한 전문가가 지속적으로 양성되어야 우리의 문자문화도 풍성해 질 수 있을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한글전용이 거의 모든 영역에서 자리잡은 지금이야말로 한자를 포함한 다양한 문자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필요한 때일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