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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노동

수년전 서울대 권현지 교수등과 함께 “디지털 변화 속에서 일/노동 변화” 를 주제로 하는 연구프로젝트를 수행한 적이 있다. 노동관련 연구를 활발히 하던 뛰어난 전문가들이 참여한 공동작업이었는데 나는 개념사의 관점에서 한 파트를 담당했다. 2017년 말에 이 보고서가 노동연구원 종합보고서 책자로 간행되기도 했는데 지금 살펴보아도 그 내용이 탄탄하고 흥미롭다.

문명으로 보는 21세기 수업에서 ‘일/노동의 미래’ 를 학생들과 이야기하면서 이 보고서를 다시 살펴보았다. 나는 1) 임금을 전제한 노동과 그보다 좀더 포괄적인 일이 분화할 수 있을지, 2) 정규직 중심의 정상적 노동형태가 다양한 유연화와 일의 조합으로 진행될지 3) 이 맥락에서 첨단기술의 영향력이 어떻게 작용할지를 주목했었는데 과연 21세기 미래에 저 학생들이 어떤 상황을 마주치게 될지 중요한 쟁점인데 나 스스로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

사실 그 연구를 수행할 때는 디지털 효과가 미칠 긍정적 영향력을 좀 적극적으로 평가했었다. 아마도 미래는 사람들이 임금노동에서 좀더 자유로와지고 단일 직업에 매이기보다 다양한 일의 포트폴리오를 활용할 수 있는 상황이 오기를 바라는 내 개인적 희망이 작용했을지 모르겠다. 그로부터 6년여를 지나면서 그런 기대와 희망은 여전하지만 긍정적 평가에 대한 확신은 이전에 비해 약화된 것 같다. 한국사회의 현실이 일자리의 다양화와 유연화를 환영하기에는 너무 경직되어 있고 서열화되어 있는데다가 노동의 유연성이 자유의 확대보다 불안정성과 프레카리아트화에 더 기여할 것이라는 생각이 커진 탓이다.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면서 디지털 환경이 노동과 일에 미친 영향이 전반적인 자유증대보다는 전례없는 양극화로 귀결되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미국의 라이시는 디지털 환경이 재택근무가 가능한 ‘원격업무층’을 자유로움과 높은 소득을 함께 보장하는 최상층으로 만들었지만 수많은 중하층 노동자들은 그런 긍정적 효과보다는 지위의 불안정과 소득하락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마도 미국 이외의 사회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유사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이 변화의 미래를 결정론적으로 단정하고 싶지 않다. 냉정한 분석가의 입장과 내심 아들이 살아갈 미래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충돌하는 공간을 없에고 싶지 않다. 아니 내 마음의 공간만이 아니라 실제 우리 사회에 그런 혁신의 공간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하는 희망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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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나눔과의 인연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를 연구하던 동학들과 이만열 교수님과의 식사모임이 오랫만에 마련되었는데 수업때문에 참가할 수 없게 되어 이 기회에 그 분과의 인연과 그 영향을 생각해본다. 이 교수님으로부터 수업을 듣거나 직접 지도를 받은 적은 없으나 그 분으로 인해 맺어진 인연과 활동들이 나의 학술활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사회학을 전공한 내가 민족, 통일, 평화 같은 쟁점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냐고 누군가 물어보았을 때 나는 어릴적부터 듣고 자란 성경의 이스라엘 역사 이야기 때문이었다고 대답했었다. 그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고 내가 한국근대사회사를 전공하게 된 한 배경이었지만 현실의 남북관계에 대한 구체적 관심으로 이어져 내 연구주제의 중심자리를 차지하게 된 데는 1994년 경부터 참여한 연구모임이 중요했고 그 중심에 이만열 교수님이 계셨다.

숙대 앞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회의실에서 기독교 신앙의 바탕 위에서 남북관계와 통일문제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발제와 토론의 시간을 가지곤 했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작은 모임이었지만 진지함과 헌신성은 어떤 곳보다 강력했고 이교수님은 기도에서 참석자들을 ‘믿음의 동지’라고 종종 불렀다. 신앙의 열정에서 다른 연구자들에게 한참 못미치던 나는 늘 한 발만 걸치는 소극적 태도로 임했지만 그 문제의식과 분위기로부터 받은 영향은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다. 1997년 베트남 남북을 둘러보면서 통일의 현장을 답사했는데 버스 속에서 백종국 교수가 열정적으로 인도차이나 전쟁사를 이야기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 있다. 호치민에서 만났던 남부출신의 학자가 베트남 통일은 실제로는 일방적인 ‘북화'(northernization)였다고 말해 놀랐던 것도 새삼 떠오른다.

2001년 2월에는 홍콩, 마카오, 대만을 답사하면서 ‘일국양제’의 현실을 함께 살펴보았다. 홍콩반환이 이루어지고 21세기로 접어든 직후여서 일국양제 구상이 갖는 미래적 전망에 관심이 적지 않았다. 이질적 체제를 융통성있게 수용하려는 중국의 유연성이 참신하게 여겨지기도 했지만 ‘하나의 중국’을 절대적 원칙으로 고수하는 베이징의 태도에 대한 홍콩의 우려와 대만의 거부감이 매우 큰 것을 보고 놀라기도 했다. ‘일국’과 ‘양제’의 의미와 양자 관계에 대한 해석은 현실정치에서의 역학관계를 떠나서 이론적으로만 접근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닫는 소중한 답사경험이었다. 그런 복잡함을 접하면서 당시 동행한 윤영관 교수께 국제관계가 왜 미묘하고 또 중요한지 실감이 난다고 말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2006년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설립을 책임지고 초대소장을 맡게 되면서 이 분야 연구와 활동에 더 집중하게 되었는데 앞선 경험들이 적지 않은 자산이 되었다. 양안관계를 다루는 연구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양안협력의 현장들을 답사, 양측의 견해들을 경청하려 한 것도 이 답사에서 얻은 문제의식이 계기가 되었다. 한반도의 참조사례로 독일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양안관계를 깊이 탐구할 필요가 있음과 함께 교류협력의 기능적 파급력을 과신할 수 없다는 점도 주목할 것을 강조했다. 중국과 대만 사이의 교류협력이 급격히 진전되었지만 대만의 대중국 경계심과 독자정체성 요구는 더욱 강해지는 역설적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그것이 한반도에 주는 함의가 무엇인지 고민할 거리는 많아 보였다. [양안에서 보는 통일과 평화] 를 편집 출간하는 과정에서 15년 전 답사를 떠올리기도 했고 실제로 당시 보고서를 참고하기도 했다.

대북인도적지원사업을 오랫동안 주도하신 홍정길 목사님과 함께 평양을 방문하고 북한의 유아원, 병원, 빵공장, 묘목장 등을 모니터링했던 것도 이 모임이 남북나눔운동 연구위원회로 활동한 덕분이었다. 휴전선을 넘어 북으로 향하는 직항비행기를 타고 평양일대와 묘향산 주변을 둘러보면서 같은 언어, 역사에 기반한 민족감정의 실체를 경험하기도 했고 그런 종족적 동질성, 전통적 역사공유가 통합과 호혜의 밑바탕을 이룰 충분조건이 될 수 있을까 자문하가도 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에서 국민의 통일인식, 대북인식, 민족정서 등을 매년 객관적으로 조사하고 확인하는 작업을 기획한 것도, 북한주민의 의식을 간접적으로나마 확인하려 애쓴 이유도 이 때의 경험과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었다.

2023년 한반도는 너무 달라졌다. 남북간 어떤 대화도 교류도 없고 불신과 경계의 언사들만 오가고 있다. 핵무력과 군사주의 노선에 더욱 집착하는 북한은 한국과의 관계에 기대가 없으며 오히려 적대적 대상이라고 공언한다. 김정은-푸틴 북러정상회담을 통해 위성기술과 무기체계의 협력을 약속하는 새로운 환경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한반도 남쪽에서는 한미동맹의 강화에 더해 한미일 3국의 군사협력이 강화되고 대북경계와 압박만이 강조되고 있다. 한중관계나 한러관계도 어려워질 것임은 분명해 그 후과가 어느정도일지 예측하기 어렵다. 국민들의 정서는 북한에 대해서도 중국에 대해서도 매우 부정적으로 변했고 젊은 세대들은 더이상 북한과의 통일에 기대를 걸지 않는 형편이다. 신냉전이 도래했다는 견해가 확산되고 교류협력을 통한 평화보다는 힘을 통한 평화를 추구하는 견해가 힘을 얻고 있다.

이런 변화가 바람직한 것도 아니고 우리가 원한 것은 더더욱 아니지만 당분간 이런 방향으로의 흐름은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 거대한 변화가 우리 내부만이 아니라 북쪽과 주변, 대륙과 해양 등 외부로부터 총체적으로 추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전환의 시대에 아무런 성찰과 변화 없이 이전 논리를 고수하는 것은 지혜롭지도 못하고 현실적이지도 않다. 그렇다고 원칙과 비전 없이 시류에 편승하여 과거의 경험과 노력을 전부 폐기하려는 태도도 문제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일관성과 신실함은 무엇이며 바꾸고 혁신해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 새로운 고민의 시작점에 서 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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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사와 취중용기

세상 사는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참 비슷한 모양이다. 중국 옛글 어부사를 보면 “세상이 모두 오염되었는데 나만 깨끗한 탓에 쫒겨났다”는 굴원과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물이 탁하면 발을 씻으면 될 뿐”인데 스스로 화를 자초했다고 핀잔하는 어부의 대화가 나온다. 자기 원칙을 지키려 세상과의 불화를 피하지 않는 태도와 세상 흐름에 맞춰 살아가는 처세의 선연한 대조다. 작금 우리 사회에서도 낯설지 않을 내용이어서 간간히 음미해보게 되는 글이다.

어제 아침 안팎의 소식이 우울해 어부사를 써보며 심란함을 달래려 했다. 하루 종일 애는 썼는데 붓끝은 자꾸 흔들리고 자획도 고르지 못해 오히려 지치기만 했다. 실력이 따르지 못하는데 과욕을 부리는구나 생각하고 벼루를 정리한 후 와인을 두어잔 마셨다. 그런데 약간의 취기가 동하니 갑자기 잘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시 먹을 갈고 붓을 잡았는데 과연 필획에 힘이 느껴지고 붓놀림도 자유로와 신이 났다. 취중에 멋진 서화를 남기셨던 삼불 김원룡 교수의 일화를 떠올리며 나도 그럴 수 있겠구나 생각도 했다. 포도주 한두잔에 간이 이처럼 커지다니….ㅎㅎ

아침에 일어나 다시 보니 모든 글자가 다 제 잘난 맛으로 도드라진 형국이어서 보기 민망했다. 약하고 세밀한 부분이 없이 모든 글자가 강한 필획으로 이어져 단조롭고 답답하다. 영화 취권을 보면 고수에게 술은 허술한 듯 여백을 키우는 도구일 뿐인데 오히려 술기운데 취해 강약의 조화를 깨트린 하수의 어리석음이 글자 곳곳에 녹아있는 듯했다. 붓을 쥔 손이 떨리지 않고 언제나 기계처럼 강한 획을 쓸 수 있는 것이 좋은 글씨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떨림과 빈구석은 약함의 표지가 아니고 오히려 개성적 미학의 기반인 셈이다.

낯뜨거운 주장과 상스런 공격을 주저없이 내뱉는 일이 다반사가 된 요즈음은 모두 취중용기를 강조하는 시대 같다. 국내정치든 국제정치든, 개인이든 집단이든 약육강식이 당연한 듯 뻔뻔함과 즉물성이 취중 호언장담처럼 퍼지고 있다. 상호이해와 협력을 강조하고 포용력과 유연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좌우 어디서도 힘을 얻지 못하는 느낌이다. 스스로 단호하고 힘이 있다고 느끼지만 결과적으로 공존과 조화의 역량을 약화시키는 흐름이 아닐 수 없다. 세상사가 마음같지 않은 요즈음 자칫 취중용기에 내 자신을 내맡기려는 경향은 없는가 되돌아본다. 와인 두어잔에 자고했던 해프닝을 돌아보면서 강함만이 능사가 아니며 약함과의 공존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중요한 자산임을 아는 사람들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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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의 시세계

2023년도 서울대 화목회 정기전시회가 10월에 열리는데 최치원의 글을 그 대상으로 정했다 한다. 나름 이 전시를 위해 방학 중 틈틈히 굴원의 어부사를 써보곤 했는데 뒤늦게 내용을 바꾸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덕분에 내가 쓸 글을 정하는 과정에서 최치원의 글들을 훑어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된다. 그가 남긴 글이 꽤 많은데 과연 한국 명문장가의 우두머리로 삼을 만하다.

처음 내가 쓰기로 마음 먹은 것은 최치원의 ‘난랑비서문’이었다. 전문은 전하지 않으나 그 일부분이 남아있는데 한국의 고유한 사상적 특성을 밝힌 뜻깊은 내용이다. “國有玄妙之道曰風流 設敎之源 備詳仙史 實乃包含三敎 接化群生 且如入即孝於家 出即忠於國 魯司寇之旨也 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周柱史之宗也 諸惡莫作 諸善奉行 竺乾太子之化也”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풍류라 한다. 그 가르침의 근원은 선사에 자세한 바, 세 종교를 포함하여 뭇 생명을 접하여 교화하는 것이다. 집에 들어와선 효도하고 나가서는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노나라 사구 (공자)의 뜻과 같고, 무위로 일을 처리하고 말없는 가르침을 행하는 것은 주나라 주하자(노자)의 종지와 같으며, 악한 일을 금하고 선한 일을 받들어 행하는 것은 축건태자 (석가모니)의 교화와 같은 것이다) – 3교통합의 사상적 특징을 이처럼 명료하게 밝힌 글이 신라시대에 쓰여졌다는 것이 새삼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을 먼저 택한 분이 있어 나는 ‘등윤주자화사상방’이란 시를 쓰기로 마음을 달리 정했다. 최치원이 당나라 관직에 있을 때 방문한 윤주 자화사에서 쓴 시로 대표적인 명시로 종종 언급되던 글이다. “登臨暫隔路岐塵 吟想興亡恨益新 / 畫角聲中朝暮浪 靑山影裏古今人 / 霜摧玉樹花無主 風暖金陵草自春/ 賴有謝家餘境在 長敎詩客爽精神 (『孤雲先生文集』 卷之一) 대략 뜻을 옮기면 “산에 올라 잠시 속세를 떠나서 흥망을 생각하니 한이 더욱 새롭다/ 뿔피리 소리에 아침저녁 일렁이던 물결과 푸른 산 그림자 속에 담긴 고금의 사람들 생각한다/ 서리내린 나무와 꽃 주인은 간데없고 따뜻한 바람 금릉의 풀만 봄을 알리는데/ 사조가 남은 집터 둘러보니 그 오랜 가르침 시인의 정신을 맑게 하네)

하동군 화개면의 신흥마을에서 의신마을까지 화개천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약 4.2km의 계곡길은 임진왜란 때 고승 서산대사가 지리산에 머물며 걸었던 길이자 신라시대 최치원이 지리산에 입산하여 거닌 길로 알려져 있다.  서산대사는 최치원의 글과 사상을 새롭게 부각시킨 인물인데 쌍계사 중창기에 이렇게 쓰고 있다. “옛날에 유불(儒佛)에 정통하고 내외를 통달한 자는 공명을 헌 신짝처럼 벗어 던지고 하나의 표주박으로 가난을 잊었다. 천지와 더불어 나란히 서고, 신명과 더불어 동행하면서 무위진인(無位眞人)과 함께 노닐고, 시종(始終)이 없는 자와 벗을 삼았다. 그는 자신이 걱정할 것을 걱정하고, 자신이 즐길 것을 즐겼으니, 어느 겨를에 유교의 입장에서 불교를 비난하고 불교의 입장에서 유교를 비난하면서 서로 원수처럼 배척하였겠는가. 우리나라의 최고운(崔孤雲)과 진감(眞鑑)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고운은 유자(儒者)이고, 진감은 불자(佛者)이다.” 저런 고수들은 벽을 허물고 화통하는데 역사는 늘 편당을 짓기 좋아하는 사람들로 시끄러워지곤 한다. 서산대사가 평한 저런 마음을 담아 작품을 써 보려 하는데 붓을 잡은 손이 자꾸 흔들린다. 무위로 쓰는 정성을 더 배워야 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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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강

23년도 2학기가 개강했다. 무더위와 폭우로 정신없었던 기간이었지만 그래도 방학은 쉼과 여유의 시간이었다. 이제 다시 수업을 위해 광주를 오가고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 과목의 내용을 채우고 스스로 만족할만한 강의를 해야 한다는 부담이 없지 않지만 기대가 되고 새로운 열정이 솟구치기도 한다. 감사한 일이다.

동양고전의 하나인 [대학]의 한 귀절을 화선지에 써서 연구실에 걸어두었다. “格物致知 誠意精心 修身濟家治國平天下” – 곰곰 생각하면 학자가 평생 좌우명으로 할만한 내용이다. 사물의 궁극적 이치를 물어 깨닫고 지극한 뜻과 맑은 마음을 지키는 것 (格物致知 誠意精心) 은 학문의 본령을 이르는 말이다. 스스로의 몸을 닦고 집안을 보살피며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의 평화를 구한다 (修身濟家治國平天下) – 학자의 할 바를 쓴 내용이다. 학문함과 학자됨의 두 차원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가르침이다.

서울대를 정년한 후 다시 주어진 GIST 에서의 강의기회를 나는 이전생활의 연속이 아닌 새로운 질적 전환으로 받아들이려 애쓰는 중이다. 익숙하고 몸에 밴 내용과 방식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내용을 새로운 형식으로 가르치고 싶다. 강의 이전에 학습과 공부를 우선하고 학생들에 앞서 내 자신이 나날이 새로워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를 설득할 수 있고 내 아들에게 조언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면 어떻게 학생들에게 힘있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인가 – 생각은 절실한데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이 문제다. 다만 지난 학기에 비해 조금은 더 나아지기를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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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ST 새출발

광주과학기술원이 새출발 준비로 바쁘다. 제9대 총장으로 임기철 박사가 선임된 후 새로운 보직자들로 대학 거버넌스 진용이 갖추어졌고 8월 16일엔 총장취임식이 예정되어 있다. 리더십 혼란으로 내부 갈등이 지속되면서 학내에 안타까움과 자괴감이 커지던 상황을 지켜본 나로서는 무엇보다 반갑고 기쁜 일이다. 임 신임총장은 과학기술정책 전반에 오랜 경험과 경륜을 갖춘 분인만큼 대학을 일신하고 업그레이드하는 역할을 잘 감당하리라는 기대감이 크다.

2019년 보스턴에서 보낸 안식년 기간은 21세기 과학기술의 발전이 대학과 지역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를 절감한 소중한 기회였다. 30년 전과 큰 차이가 없는 하바드 스퀘어 주변과 상전벽해라 할 정도로 달라진 MIT 주변지역의 놀라운 대비가 내겐 특히 인상적이었다. 실제로 MIT가 있는 켄달스퀘어는 구글, IBM, 마이크로소프트, 파이자, 모더나, 노바티스와 같은 세계적 기업들이 밀집한 첨단산업지대로 변모했다. 맥거번 뇌연구소, 코흐 암 연구센터 등 연구기관들이 함께 있는 복합, 첨단 테크노 파크로서의 역동성은 계속 확장될 것이 분명해 보였다. 2022년 자료에 의하면 투자액 270억달러, 특허 1만여개, 일자리 10,400개가 생겨났고 세계최고의 20대 바이오제약회사 중에서 19개 회사가 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무엇이 이런 변화를 추동했을까 궁금하여 여러 자료들을 찾아보면서 내가 얻은 답은 대학(지식)과 도시(인프라)와 정신(문화)의 결합된 힘이었다. 첨단과학 연구의 중심인 MIT, 혁신생태계를 만들려는 캠브리지市의 기획, 그리고 역동적 도전정신을 지닌 젊은 문화가 세 주역이었다. 대학은 창의적 교육과 도전적 연구를 격려하고 학생과 교수의 혁신을 장려했다. 이 일대를 혁신 인큐베이터로 만들기 위해 고가의 공동실험기자재가 구비된 공유랩을 설립하고 많은 신생 회사들이 큰 리스크를 피하고 창업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하바드 의대와 병원, 보건대학원은 생명공학의 좋은 환경과 기회를 제공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백신으로 유명해진 모더나를 비롯하여 이곳에서 창업하고 성장한 성공적 기업들이 적지 않다.

MIT와 하바드가 지척에 있어 인문사회학적 사유와 과학기술 연구가 고급한 상호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것도 큰 도움이었다. 1950년대 이 지역에서 꽃을 피웠던 사이버네틱스 모델은 하바드의 사회학자 파슨즈, MIT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였던 위너 등이 참여한 다학제적 논의에 기반한 것이다. 디지털 시대를 전망하고 전세계에 영향을 미친 MIT 의 문화연구자 네그로폰테의 책 Being Digital은 첨단기술과 사회문화에 대한 복합적 시야 덕택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가 설립을 주도한 MIT의 미디어랩은 인공지능, 디자인, 문화, 건축, 미학과 언어 등을 융복합적으로 다루는 대표적 연구조직이 되었다. 싱귤래리티라는 개념을 확산시킨 레이 커즈화일이나 Life 3.0 이란 책으로 생명현상을 새롭게 해석하는 물리학자 테드 마크도 과학기술과 21세기 문명을 종합적으로 다루는 연구의 대표적 사례라 할 만하다. 미국문화를 비판하는 진보적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가 MIT의 교수라는 사실도 상징적이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대단한 교육열을 자랑한다. 선진문물을 빠르게 배우고 익히는 능력이 압축근대화를 성공하게 만든 주요한 동인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발전모델과 따라잡기 전략은 효력이 현저히 감소했다. 세계환경이 달라졌고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여전히 일방적인 지식전수와 수동적인 정답찾기에 치우쳐있는 교육은 오늘 한국사회가 넘어서야 할 큰 과제가 되었다. 인공지능과 초연결이 일상화되는 시대에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하고 또 기후위기로 표현되는 인류세의 난제들에 대응하려면 심화된 전문성 못지 않게 분과학적 경계를 뛰어넘는 상상력과 횡단적인 창의력을 지닌 젊은 세대를 키워내야 한다. 교육영역의 창의적 혁신역량을 재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오늘 우리의 최우선 과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터이다.

때마침 임기철 총장이 내건 대학운영의 네가지 목표가 이런 문제의식을 포함하고 있어서 기대가 된다. “글로벌 지식자산을 창출(G : Global Asset)”하는 연구대학으로서의 역량을 높이고 “통찰이 담긴 기술혁신(I : Insight for Innovation)” 을 위해 자연과학과 인문사회학의 학제적·융합적 사고를 접목한다는 것은 과학기술대학으로서의 적절한 목표설정이다. “네가지 난제 (S : Solutions for 4 Securities)”라 할 환경 안보(Ecology), 경제 안보(Economy), 보건의료 안보(Emergency), 에너지 안보(Energy) 를 해결할 역량을 확보하고 “배려와 신뢰(T : Tolerance for Trust)”로 창업을 뒷받침한다는 것은 대학이 혁신생태계의 중심 역할을 해야 한다는 비전에 다름아니다. 이런 목표를 향한 열정과 정신이 새롭게 확산되어 켄달스퀘어에서 느끼던 그 신선한 충격과 혁신의 몸짓들이 GIST 안팎에서 넘쳐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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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전용과 문자병기

가까운 분이 한글한자병용을 주장하는 글을 보내주셨다. 필자가 우리사회의 여론주도층에 속하는 분이고 또 [한글+한자문화]라는 타이틀을 단 발간물의 권두언이기도 해서 정독을 했다. 논지의 핵심은 한글만 전용하는 우리 상황이 한국의 문화나 지식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고 때론 장애를 조성한다는 것이다. 베트남이 한자를 전면 폐기함으로써 자신들의 오랜 전통문화로부터 심한 단절을 보이고 있음을 참조사례로 꼽으면서 ‘한자병용이 최선책’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 발간물을 간행하는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가 어떤 곳인지 검색해보았는데 1998년에 출범한 설립준비위원회 명단에는 원로 언어학자들 이름도 더러 보였다. 홈페이지 첫 화면에 “한자도 위대한 우리 조상이 만든 문자, 한글과 더불어 분명히 國字다”라고 쓰여 있다.

필자가 내세우는 논거는 세가지로 요약 가능하다. 우리말의 개념어는 상당부분 한자로부터 유래한 것인데 한자를 몰라 혼동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그 첫 이유다. 어려운 개념어의 적확한 뜻을 확인하는 것이 특히 필요한 전문분야, 예컨대 법학, 의학, 철학 등에서 이런 문제가 실제로 있을 수 있다. 둘째로는 한자로 표기된 전통지식과 한자문화와의 단절이 점점 심해진다는 것이다. 한자에 대한 거리감 때문에 조선시대사를 연구하려는 학생이 줄어드는 것이나 중국 및 일본 학계와의 소통력이 줄어드는 것이 그런 예에 해당할 것이다. 셋째로는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한자를 활용하는 어려움이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이제 한자를 손으로 쓰기 위해 어려운 자획을 알아야 할 필요성이 크지 않아 훨씬 손쉽게 한자를 사용할 기술적 환경이 마련되었다는 것을 들고 있다.

한글만으로는 적확한 뜻이 전달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동음이의어 문제는 나도 종종 접한다. 실제로 전문적 영역에서 글을 쓰는 사람들 중에는 최소한의 한자 병기를 하는 경우가 제법 있고 그런 표기를 독자적으로 시행하는 언론사나 출판사도 있다. 최근에는 한자만이 아니라 외국어 전문용어를 병기할 필요성이 더 늘어나고 그런 경우들을 종종 접한다. 각종 컴퓨터 용어나 첨단기술용어가 특히 그러한데 챗 GPT4 등장 이후 논란이 되는 환각현상 (hallucination) 은 그 좋은 예다. 언어와 어휘, 문자 사이의 관계는 고정적이지 않아서 시대와 문화에 따라, 또 맥락에 따라 늘 변한다. 그런 유연성 자체가 문자의 힘이 되기도 할테니 필요한 경우 한글과 함께 한자나 외국어를 병기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한글전용으로 새로운 우리말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의미를 더 적확하게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된다. 고고학 분야에서 한자어를 우리말로 고침으로써 소통력을 높인 사례는 박물관 전시실을 가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한자병기를 하던 세대의 저서보다 한글전용 세대가 쓴 책이나 논문이 훨씬 정확하고 소통력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인터넷이나 SNS 상에서 범람하는 각종 축약어나 놀라운 유행어들도 한글세대의 창안물이다. 그 맥락을 모르는 사람들에겐 외래어같지만 그들에게는 가장 정확한 의사소통의 도구일 터이다. 현재 우리 사회가 겪는 문자표현의 여러 문제들을 한자불용의 결과만으로 환원하기보다 다양한 문화와 문자가 뒤섞이고 혼융되는 시대상황과 결부하여 종합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한자를 특별한 문자이자 문화도구로 학습하는 기회가 좀더 강화될 필요는 있다. 한자문명권에서 유래한 오랜 지식, 개념, 사유, 소통의 자산을 소홀히 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재해석할 전문가의 양성은 앞으로 더욱 필요하기 때문이다. 전통자료의 해독능력은 다양한 영역에서 상상력과 창의성을 제공하는 소중한 자산이 된다. 한자에 비전문가인 나도 옛 고전의 문장을 접하면서 21세기에 적용가능한 새로운 실마리를 찾는 흥미로운 경험을 하곤 한다. 모든 사람이 컴퓨터 프로그램을 배울 필요 없는 환경이 가능하려면 누군가는 복잡한 전산시스템과 수학의 연산과정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 마찬가지로 한자에 정통한 전문가가 지속적으로 양성되어야 우리의 문자문화도 풍성해 질 수 있을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한글전용이 거의 모든 영역에서 자리잡은 지금이야말로 한자를 포함한 다양한 문자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필요한 때일지 모르겠다.

life · 오늘의 화두

교권

갓 부임한 초등학교 교사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것도 학교 교실에서… 이 충격적인 뉴스 앞에 온 국민이 놀라고 당혹해 하고 있다. 아직 그 정확한 내용이 확인되지 않았지만 사회적 관심은 급속히 높아지고 있다. 죽은 교사에 대한 애도 분위기가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교사들의 공감과 분노가 곳곳에서 표출되고 있다. 교사를 좌절하게 만드는 학교 현장의 문제가 새삼 주목되고 그 해결책과 예방책이 봇물을 이룬다. 교육문제는 늘 휘발성이 강한 사안인데다 그동안 주목받지 않던 교사의 애환이 터져나온 것이라 그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같다.

교육자치단체장과 교원노조, 교사단체 들은 물론이고 정치권과 언론계도 제각각의 대책들을 쏟아낸다. 현재 학교에서 교사가 경험하는 좌절감이 매우 크다는 것, 그것을 예방하여 교사의 자부심과 교권을 회복하는 일이 매우 시급하다는 것에는 대체적으로 공감대가 이루어지는 듯 하다. 그동안 학생의 권리와 자율성이 강화되면서 책임과 의무는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루어졌고 교사의 적극적 지도 역할 역시 축소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극성스런 학부모의 반복된 간섭과 좀처럼 통제하기 어려운 문제아들의 부정적 영향도 우려할 수준이라 한다. 공교육을 우습게 여길 정도의 사교육 발달, 각종 미디어의 발달로 인한 학생 행태의 변화도 어려움을 더해 교사되기를 기피하는 경향이 커진다는 조사결과도 접한다.

교권추락을 가속화시킨 요인으로 학생인권조례가 지적되고 있다. 교육부 장관이 그런 시각을 표명했고 대통령까지 힘을 실었다. 학생이 원하지 않으면 어떤 조치도 자칫 ‘아동학대’나 ‘학생인권침해’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 교사가 할 수 있는 교육적 행위는 별로 없으면서도 온갖 부담과 요구는 떠안아야 한다는 평교사의 인터뷰가 가슴을 무겁게 한다. 한 초임 교사의 비극에 그토록 많은 교사들이 공감하는 이유는 이런 좌절감과 무력감을 너나없이 겪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명감이 강한 교사일수록, 무언가를 가르치고 변화시키려는 열정이 있는 교사일수록 교실현장에서 더 깊은 딜렘마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에서 지나친 편향이 있었고 그 시행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부작용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니 당연히 이런 부분은 개선되고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문제해결의 충분조건일 수는 없다. 인권조례를 폐지해도 적지 않은 문제는 남고 어떤 부분은 더욱 심해질 수도 있다. 학교체벌을 강화하는 것이 정당한 교육효과로 이어질 가능성도 불확실하다. 부모의 권위, 상사의 권위, 노인의 권위도 교사의 권위못지 않게 약화되었다. 같은 아파트에서도 남의 자녀에게 조언이나 훈계를 하는 것은 금기시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부모가 자기 자녀에게도 이전 같은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조언을 간섭으로 받아들일 정도로 세대간 감각이 크게 달라진 상황에서 과거의 권위주의적 방식이 바람직한 결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 두세살 부터 인터넷을 접하고 온갖 정보가 범람하는 초연결의 시대, 세대, 젠더, 국적, 종교 그 어떤 속성으로도 차별받지 않는다는 헌법적 권리의식이 자리잡은 시대에 정당한 권위를 확립하는 일은 모두가 힘을 합쳐 추구할 새로운 미래 기획이 되어야 한다.

단번에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주장은 경계할 일이다. 그런 대응은 불가피하게 교육문제를 정치문제나 감정문제로 변질시킬 우려가 크다. 우리 공교육 문제는 어느 누구도 책임이 없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집단적이고 장기적으로 누적되어온 것임을 자인해야 한다. 인성교육이 사라진 입시교육, 공교육을 헛돌게 만드는 사교육, 교육현장의 관료주의, 통제가 어려운 문제학생 등 해결을 기다리는 문제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지능계발을 위한 수월성 교육과 인간성 함양의 인성교육이 아노미적으로 괴리되어 있는 상황에서 교사와 학교에 대한 우리 사회 전반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관건이다. 학생과 교사, 학부모와 학교는 칼로 물베듯 나누어 지는 것이 아니다. 교사와 학부모, 학교와 가정이 상시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고 학부모의 관심이 이기적인 욕망이 아닌, 공공의 신뢰 자산이 될 수 있도록 할 혁신방안이 절실하다.

안타까운 젊은 교사의 죽음으로 촉발된 사회적 논란이, 진정으로 정당한 권위를 수립하는 뜻깊은 변화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필요한 조치는 과감하게 추진하고 잘못된 관행은 빨리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동시에 감정적 해소나 정치적 효과를 노린 대증조치로 흐르지 않도록 높은 전문성과 균형감을 견지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한국 교육을 이 상태로 만든 것은 성공과 출세, 돈과 지위를 위해 올인해온 우리 사회구성원 모두의 공동책임이라는 자성과 성찰이 그 바탕에 자리잡아야 한다. 학생인권을 존중하고 민주적인 학교를 만들려한 그간의 성과도 인정하면서, 교사의 정당한 꾸중과 훈육이 불가능해진 부작용을 막는 조처가 지혜롭게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진지하면서도 지속적인 대응, 격의없는 소통과 상호이해가 긴요할 터인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기대해 보지만 그만큼이나 우려도 커지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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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 인플루엔서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개인이 다수를 향해 메시지를 발신할 기회가 많아졌다. 개인의 블로그도 그렇지만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람, 트위터 같은 SNS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기능을 제공한다. 개인들의 메시지가 불특정 다수의 공감을 얻어 급속히 확산됨으로써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집단동학을 가져온 경우도 적지 않다. 기획되지 않았으나 거대한 힘으로 분출했던 미투운동이 그랬고 단시간에 권력을 무너뜨릴 정도로 결집된 촛불시위가 그랬다. 영상매체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최근에는 유투브의 힘이 하늘을 찌를 정도다. 코로나 19 팬데믹 이래 이 디지털 기술환경이 제공해준 소통과 연결의 힘은 놀랍고도 강력하다.

이제 개인은 단순한 정보수용자가 아니라 메시지의 발신자로서의 영향력을 지니게 되었다. 지상파 방송국과 활자 신문들의 사회적 영향력은 현저히 감소했고 백화점의 브랜드 파워도 상품정보를 제공하는 유명 블로거의 파워 앞에 흔들린다. 학생들의 장래희망에 크리에이터, 인플루엔서가 상위로 거론되고 그런 제목을 단 책자들이 베스트셀러가 되곤 한다. 많은 수익을 얻고 인기를 구가하는 유명 인플루엔서는 21세기 신데렐라의 꿈을 실현한 사례로 여겨진다. 컨텐츠의 내용은 천차만별이어서 먹방일 수도 있고 노래일 수도 있고 여행일 수도 있으며 심지어 남의 약점을 들추는 저급한 호기심일 수도 있다. 어쨋든 거대한 조직과 자본, 권력 앞에서 홀홀 단신 개인으로 맞서 자신의 생각을 내놓을 수 있고 그것으로 영향력도 키울 수 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변화다.

거대한 조직이나 타인의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사람들에게 발신하는 1인 활동이라는 점에서 인플루엔서 활동은 지식인이나 작가의 글쓰기와 닮았다. 하지만 컨텐츠의 질이나 전문가의 평가보다 대중의 반응과 즉각적 피드백을 중시한다는 점에서는 많이 다르다. 구독자 숫자에 따라 소득이 주어지는 비즈니스 방식 탓에 재미나 흥미 위주로 치우칠 개연성이 높고 실제로 가짜뉴스나 저급한 내용을 퍼트리는 1인 매체의 폐해가 만만치 않다. 하지만 고급한 내용, 정확한 팩트,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인플루엔서들도 최근 등장하고 있다. 유발 하라리나 제프리 힌튼 같은 지식인들의 메시지를 디지털 매체를 통해 전파하는, 기획된 인플루엔서 같은 현상도 주목할 일이다.

새로운 책을 출간할 때마다 그 사실이 언론매체의 뉴스가 되는 것을 보면 강준만 교수는 일종의 셀럽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그는 인터넷 환경에 기대지 않고 전통적인 활자문화에 기반한 1인 비즈니스를 고집스럽게 이끌어오고 있다. 그의 많은 저서들은 자신만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흘린 땀의 결과이며 인물과사상사는 그것을 뒷받침 하는 개인적 출판사다. 대중들의 흥미, 취향, 비방에 기대지 않고, 또 학계나 정가의 평판이나 도움에 의존하지 않은 채 정치한 분석, 냉정한 비판, 새로운 담론으로 자신만의 고유한 메시지를 생산하고 전달하는 그의 활동은 지식인과 작가와 인플루엔서의 모습을 두루 겸했다. 김대중, 호남차별, 조선일보사태, 노무현 현상, 학력차별, 서울대 중심주의, 이준석 현상, 좀비정치, MBC 에 이르기까지 그의 글쓰기는 광범위하고 성역을 불허하며 무엇보다도 개성적이다.

강준만 정도의 개인적 능력없이 이런 활동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식인의 정체성을 지키고 작가적 글쓰기를 소명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는 한, 이런 형태의 인플루엔서가 확산될 가능성은 있다. 인터넷 인프라에 힘입지 않고, 대중들에 영합하는 가십거리에 연연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견해를 명쾌하게 전파할 수 있다는 것, 활자매체를 통해서도 강력한 소통력과 공감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강준만의 사례가 보여주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알지 못하지만 지금도 잠재적 영향력을 지닌 개성있는 작가, 지식인들이 새로운 인플루언서가 될 준비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실과 진리가 그 어떤 선동이나 가십보다 강력한 전파력을 갖고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때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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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헌절

오늘은 제헌절이다. 1948년 정부출범을 한달 앞둔 7월 17일 마침내 신생 대한민국의 헌법이 공포되었다. 해방 이후 이념 대립과 남북 분단 상황에서 우왕좌왕하면서도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한 새 국가의 헌법을 제정할 수 있었던 것은 기적이라 할 만하다. 잘 정비된 헌법과 법률체계 하에서조차 사사건건 대립하는 정치권의 모습을 고려하면 당대 제헌국회 구성원들의 식견과 역량은 놀랍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되돌아보면 제헌절에 대한 사회적 의미부여는 점차 약화된 것 같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제헌절이 매우 중요한 국경일로 강조되었는데 지금은 언론에서조차 별반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헌법 그 자체의 비중은 더 무거워졌다. 모든 정쟁과 갈등도 헌법의 정신 아래 시시비비를 구하고 그 권위 아래 복종하는 관행이 자리잡았다. 촛불혁명의 비정상상황에서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의 제1조를 슬로건으로 내 걸 정도가 된 것이다.

북한의 김여정 부부장이 공식 발언에서 대한민국이란 정식 국호를 여러 차례 사용했다. 이것을 두고 북한이 한반도 2국가체제를 공식화하는 것이란 해석이 따랐다. 실제로 북한은 이전에 즐겨 쓰던 ‘우리민족’ 대신 ‘우리국가’를 내세우고 민족의식보다 애국주의를 강조한다. 실제 김정은 정권 이후 핵무력을 강화해온 북한이 자기 체제의 존속과 안정을 제일의 가치로 간주하는 경향은 뚜렷하다. 그 바탕에는 조선노동당을 정점으로 하는 사회주의 헌법체제와 백두혈통을 특수지위로 보장하는 수령제가 있는 바, 이런 원리가 대한민국의 헌정이념과 병립할 수 없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적어도 헌법의 차원에서 보면 한반도는 이미 두 개의 국가가 존재해 온 것이다.

그래서 열흘 후에 맞이할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의 의미를 함께 생각하게 된다. 정전협정은 한국전쟁의 잠정적 중단을 약속한 것으로 국제법상으로는 휴전의 성격을 띤다. 그것은 북한이 무력으로 적화통일을 시도한 전쟁이었는데, 정전 70년을 거치면서 한반도에는 실질적인 두 국가상태가 자리잡았다. 기본합의서는 이것을 ‘특수관계’라고 불렀지만 남북간의 이질성과 원심력이 동질화와 구심력에 비해 지속적으로 강화되어 왔다. 2023년 시점에서 정전상태에 있는 남북한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여전한 숙제다. 그것은 다시 헌법의 위상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필요로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