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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과 북한인권

북한인권문제를 논의하는 샤이오포럼이 13주년을 맞이해 12월 8일 발제와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유엔인권선언이 채택된 프랑스의 샤이오궁 이름을 따서 2011년에 시작된 이 포럼은 북한인권을 주제로 국제적인 연구자들의 소통과 쟁점분석, 그리고 자료구축을 목표로 한 것으로 통일연구원이 주관해 왔다. 김천식 통일연구원장과 제임스 히난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 서울사무소장이 축사를 했고 김영호 통일부장관의 축사가 대독되었다. 이 전문가 포럼에서 나는 첫 세션의 좌장역할을 맡았고 라운드 토론의 두번째 세션은 이신화 북한인권대사가 주관했다.

인권은 보편적이고 지구적이며 인류적 사안인데 북한인권은 늘 특수한 지역적 쟁점으로 간주되어 정치적 논란의 대상이 된다. 일반적인 인권단체는 북한인권을 그다지 주목하지 않고 북한인권단체는 보편적 인권의제에 무관심하다. 정치적으로도 인권 일반에 관심이 높은 진보진영이 북한인권에는 가급적 소리를 내지 않으려 하는데 비해 보수진영은 유난히 북한인권 의제에 관심을 쏟는다. 그래서 정권의 부침에 따라, 남북관계의 기복에 따라 북한인권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각도 널띠듯 오르 내린 것이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상대적으로 소홀했다고 평가받는 이 쟁점을 윤석열 정부에서 중요하게 부각시키는 것도 그런 흐름의 한 측면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국내의 그런 상황과는 별도로 북한인권은 국제사회에서 이미 주요하게 논의되어온 쟁점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유엔 인권 메커니즘을 통해 제기된 이 사안은 2003년 이후엔 유엔인권위원회 (현 유엔인권이사회)와 총회 차원에서 매년 결의안이 채택되고 있다.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이 임명되고 2013년에는 유엔인권조사위원회가 구성되었으며 COI 보고서가 채택되어 북한 정권의 책임을 추궁하는 내용까지 포함되었다. 또한 매4년 마다 UPR (보편적 정례보고) 방식을 통해 개별 국가의 인권관련 사항 진전 정도를 보고하고 평가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면 북한인권을 우리 스스로 특수화시키거나 로칼 의제로 축소시키는 것은 타당하지도 않고 지속가능하지도 않을 것은 분명하다.

첫 발제자인 북한인권네트워크의 권은경 대표는 최근 북한 내부의 변화상을 전하는 여러 정보와 자료들을 동원하여 북한에서도 제한적이지만 유의미한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음을 지적했다. ‘인권’ 문제가 야기되지 않도록 하려는 노력과 일부 법적 조치, 그리고 정책적인 변화도 확인되며 유엔이 강조하는 SDGs 에 대한 적극적 대응을 통해서도 유사한 움직임을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특히 COI 보고서를 전후한 변화가 확인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제에 대한 위협이나 남한의 정보유입에 대한 강한 거부나 통제가 강화되고 있는 현상도 주목됨을 지적했다. 두번째 발제를 한 이금순 박사는 3차례 이루어진 UPR 보고와 리뷰의 분석을 통해 북한의 보고, 국제사회가 북한에게 요구한 사항, 이에 대한 북한의 반응을 항목별로 세밀하게 검토했다. 세부 항목별로는 북한이 수용한 내용들도 적지 않다는 점이 확인되고, 심지어 북한이 한국의 UPR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리뷰를 한 사실도 나로선 새로 확인한 부분이다. 두 발표 모두 북한이 일괴암적으로 반응하기보다 세부적으로 상이한 반응을 보이는, 꽤 섬세한 대응전략을 구사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토론과정에서는 역시 북한의 진정성과 신뢰문제가 부각되었다. 국제사회의 요구를 수용하거나 법조항을 제정하는 부분적 개선노력과 반동사상배격법 같이 외부 정보나 문화에 대한 처벌의 강화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 어느 편이 북한체제의 실제 모습인지가 논란이었다. 또 최근 탈북자 숫자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 내부의 변화와 그 실질적인 향방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확인할 것인가도 과제로 부상했다. 2부 토론에서도 언급되었지만 북한인권관련 사안을 주도해온 탈북자 단체의 리더십이 고령화하고 분절화한 현실에서 정확한 실상 파악과 데이터 구축의 부족함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탈북자들의 관심이 그들의 정착과정과 국내에서의 인권문제로 확대되어가는 상황도 진지하게 고려할 일이다. 인권이란 의제가 포괄하는 영역이 다양한만큼 불균등하게 이루어지는 변화에 대해 주목하면서 섬세하고도 지속적인 대응이 필요하리라 여겨진다.

유엔에서의 결의안이나 인권 여론화가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 아닌가라는 문제제기나, 인권이 정치화되고 도구화되었다는 비난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북한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도 오랫동안 국제사회의 인권논의에 반발해왔다. 당분간 북핵 문제와 더불어 인권문제에 대해서도 중국, 러시아, 북한의 공동보조가 이어질 것이 예상된다. 그런데 인권의 보편성을 강조하고 이를 주도해온 미국과 유럽연합의 영향력과 진정성이 동요하고 있는 현실이 우려스럽다. 미국의 전 트럼프 정부 하에서 전형적으로 드러나듯 자국이익이 최우선시됨으로써 인권이나 환경 같은 지구적 문제가 도구화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여전히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유럽에서도 극우가 힘을 얻고 혐오문화가 확산된다는 뉴스를 무겁게 접한다. 한반도 안팎의 변화를 직시하고 인권의 다면성을 주의하면서 원칙과 현실, 강함과 부드러움, 속도조절의 지혜가 동반되어야 북한인권의 실질적인 진전에 도움이 되고 남북관계의 개선에도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 아닐까 싶다. 2024년에는 그런 변화를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One Comment

  1. 선생님, 바쁜 일정과 오가는 번거로움에도 참여해 주셔서 자리를 빛내주심에 감사 드립니다. “원칙과 현실, 강함과 부드러움, 속도조절의 지혜”가 필요하다는 말씀 적극 공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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