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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 최재석 학술상 시상

10월 25일 제4회 최재석 학술상 시상식이 고려대학교에서 개최되었다. 정수복 교수가 본상을, 김란 박사가 우수논문상을 받았다. 상이 받을 만한 사람들에게 격려와 도움이 되는 것 같아 마음이 기쁘다. 최재석 교수의 학자적 생애를 되돌아보면서 사람이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는 옛말을 새삼 실감하는데 이름을 남기려면 ‘돈도 남겨야 한다’는 이숭원 교수의 농담 반 진담 반 언급 역시 그럴듯하게 와 닿는다. 이사장으로서 이 날의 시상식에서 “고마운 연구 더 고마운 연구자”라는 인사말을 했다.

정수복 교수의 [한국사회학의 지성사] 전 4권은 한국 학계에서 보기 어려운 대작이자 수작입니다. 선진학문의 수용에 급급했던 주변부 학계의 역사 속에 담겨있던 고투와 열정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발굴하고 정리해낸 참으로 고마운 연구입니다. 학문의 보편성을 강조하되 주체성과 실천성을 동시에 고민했던 사회학계의 지적 긴장을 아카데미즘, 비판성, 역사성의 세 영역으로 정리함으로써 한국지성사를 어떻게 파악해야 할지 한 전형을 보여주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최재석, 신용하, 박영신의 학문적 업적과 활동을 역사사회학이란 흐름으로 묶어 자리매김해 준 것은 그 분들께 학은을 크게 입은 한국사회사학회로서 더 없이 고맙고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수박사학위논문상을 받는 김란 박사의 “현대한국과 중국 보육체제 변동에 관한 비교연구”는 가족주의와 보육공공성의 관점에서 두 나라의 현실을 분석한 주목할만한 성과입니다. 가족과 교육, 돌봄과 공공성이 시대적 쟁점이 되고 있는 오늘, 동아시아 문명을 공유했던 두 나라의 공통과제를 깊이 숙고하게 하는 수작입니다. 한국의 평등주의 교육개혁의 기원을 탐색하려는 이지원 님의 학위논문계획과 추지현 교수 외 5인의 공동연구과제인 ‘안전의 공간정치’도 현실적 쟁점들의 역사적 뿌리와 맥락을 탐색하려는 지적 노력으로 그 결과가 주목되는 작업이라 하겠습니다.

학술상은 탁월한 연구성과에 우선 주목합니다만 오늘 저는 연구자들에 대한 고마움을 더욱 피력하고 싶습니다. 정수복 교수는 그가 애정을 쏟았던 학계로부터 합당한 대접을 받았다 하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경계선 위’에 선 자만이 지닐 수 있는 균형잡힌 시선으로 학술장을 풍성하게 만들었고 그 누구보다도 열성적으로 학계의 주인공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깊은 애정으로 힘든 발품과 오랜 독서, 글쓰기의 수고를 아끼지 않은 정교수께 더욱 고마움을 느끼는 이유입니다. 같은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김란박사, 추지현 교수외 5인, 이지원 학생에게도 같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고마운 저작, 더 고마운 연구자들을 선정하고 치하할 수 있도록 학술상 기금을 쾌척해주신 이춘계 여사님과 이숭원 교수님을 비롯한 유족분들, 여러 추천 책자와 논문들을 검토하며 수상작을 선정하느라 애쓰신 김필동 위원장 외 심사위원들, 번거로운 일처리를 감당하신 정일준 교수님 외 학술상운영위원회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런 고마운 뜻을 지속적인 연구로 이어가려는 한국사회사학회의 김백영 회장을 비롯한 회원 여러분들의 수고와 노력에도 감사함을 전하며 모든 분들의 건강과 학문적 성취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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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와 세계평화

제주의 사회사와 여성사를 진지하게 연구해온 권귀숙 교수가 영문으로 묵직한 책을 출간했다. The Island of World Peace : The Jeju Massacre and State Building in South Korea 라는 제목의 책인데 Lowman and Littlefield Press 에서 2023년 올해 간행되었다. 켐브리지 대학 권헌익 교수를 비롯하여 전세계의 뛰어난 학자들이 공동 연구해온 Beyond Korean War 국제 냉전사 프로젝트의 한 중요한 성과물이다.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진 가운데 전세계가 다시 신냉전의 시대로 회귀하는 듯 갈등하고 있는 오늘, 한국전쟁과 전지구적 냉전, 그 복합적 영향을 다양한 시각에서 재조명하려는 국제적 연구기획이 뜻깊은 학술적 성취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권귀숙 박사의 이 책은 부제가 말하듯 제주 4.3 학살사건과 한국의 국가건설을 두 축으로 해방 이후 반세기 변동을 장기사회사의 맥락에서 추적한 것이다. 기존 연구들은 주로 1940년대와 1950년대에 남북한에서 진행된 냉전적 이념화, 한편의 반동분자 색출과 다른 한편의 공산주의자 척결이 분단국가 형성에 어떤 역할을 미쳤는지를 주목해왔고 적지 않은 성과들이 축적된 바 있다. 하지만 이 책은 21세기 최근까지 반세기 이상의 긴 시간 속에서 4.3의 비극이 어떻게 기억되고 억압되며 재구성되고 재평가되었는지의 장기사적 프로세스에 더 주목한다. 이 과정은 국내적으로는 민주화, 국제적으로는 탈냉전, 지성사적으로는 젠더와 문화의 부상과 직결된 세계사적 역동성을 포함한다. 이 책은 4.3 을 둘러싼 오랜 논란, 곡해, 억압과 그것을 바로잡으려는 끈질긴 싸움, 증언, 기억의 충돌, 그 속에서 진행되는 통합과 화해와 해석의 긴장과 성과를 드러내고자 한다.

이 책의 목차구성이 저자의 문제의식을 잘 보여준다. 목차는 해방후 상황을 서술한 Beginning을 첫 장으로 State Violence, Reintegration 1, Reintegration 2, Reconstruction , Reconciliation 장을 거쳐 결론으로 이어진다. 마치 한편의 장편 드라마 구성같은 기승전결의 입체감이 느껴진다. 흥미로운 것은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 저자가 붙인 개념들이다. 저자는 4.3 사건을 state violence로, 한국전쟁을 reintegration 1 로, 귀신잡는 제주해병을 reintegration 2로, 제주 여성의 독특하고도 다양한 역할을 reconstruction으로, 제주평화공원 건립과정을 reconciliation으로 병기했다. 국가폭력으로 깨어지고 파괴된 새 시대의 꿈이 여러 형태의 재통합 과정을 거치고 재구성되며 재화합되는 역동적 경로를 해명하려는 문제의식이 반영된 것 아닌가 싶다. 결론의 장과 책의 제목을 세계평화의 섬이라 붙인 이유는 이런 변화의 지향점이 ‘세계평화’가 되어야 하리라는 저자의 신념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뭍혀있던 사실을 드러내어 알려주는 부분 못지 않게 이 개념들의 연쇄가 주는 지적 상상력이 새롭게 다가온다.

제주 4.3은 지역사회의 오랜 수고와 뜻있는 연구자들의 노력으로 그 역사적 평가가 일단락되고 국가폭력의 희생자들에 대한 위무와 보상도 이루어진 사건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 해석을 둘러싼 논란과 폄훼가 끊이질 않는 현안이기도 하다. 남북관계가 악화되고 신냉전 상황이 심화되면서 이념 대립이 더욱 격화되면 해석과 재해석에 이은 또다른 해석갈등이 등장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럴 수록 가해자와 피해자를 나누고 비난의 화살을 어디로 쏠 것인가에 집중되던 시선을 미래와 세계를 향한 평화의 기획으로 향하도록 하는 노력은 소중하다. 전체사회사의 맥락에서 냉전시기 한 지역이 겪게된 통합과 대립, 해석과 반해석의 역동성을 세계평화로의 긴 여정으로 밝히려 한 이 책이 이 시점에서 간행된 것이 예사롭지 않은 메시지인양 느껴진다. 나는 저자가 사용한 개념들을 보면서 재통합이란 무엇을 의미하며 재구성이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재화합이란 또 어떤 함의를 지니며 그것이 종국의 결론인 World Peace로 이어지는 경로는 또렷한가 등 흥미로운 물음들이 머릿속을 채우는 것을 느낀다.

제주의 길고 고통스럽던 역사적 드라마를 지역주민의 원한해소나 국내정치적 논란으로 연결하지 않고 세계평화로 나아가는 뜻있는 여정이기를 바라는 저자의 구상이 실로 원대하고 신선하다. 제주출신자가 아니면서 제주를 사랑하는 제주인이고, 미국 명문대에서 학문적 훈련과 학위까지 받았으면서도 이를 내세우지 않고 현지 주민들의 경험과 생각을 존중할 줄 아는 저자의 지적 성실함과 균형감각 덕택이 아닐까 싶다. 권박사는 감사의 말에서 자신이 도움을 받았던 국내외의 많은 학자, 활동가 들을 언급하고 있는데 서귀포에 앉아서 세계의 석학들과 교유하고 문제의식을 주고받는 21세기형 학자의 전형을 보는 느낌이다. 자신이 몸담고 살아온 지역의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 애환과 바람, 갈등과 아픔들을 외면하지 않고 담담히 진지하게 서술하고 정리한 저자의 수고가 제주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만드는 자산이 될 것이라 믿는다. 오랜 시간과 힘든 수고를 요하는 영문저술을 노학자 그룹에 속하는 시기에 마무리한 권교수의 열정과 헌신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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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개념사의 완성?

강인철 교수가 또 기념비적인 연구서를 출간했다. [민중의 개념사]를 “저항하는 주체-이론”, “시대와 역사속에서 -통사” 2권으로 다룬 책인데 도합 1,200 쪽을 넘는 대작이다. 각주만으로 300쪽에 달하는 상세한 자료검토, 수많은 논저와 매체의 정치한 분석이 놀랍다. 이런 작업이 얼마나 많은 땀과 수고를 필요로 하는 것인지를 실물로 보여주는 듯하다. 강교수는 진지하고 뛰어난 연구자로 정평이 나 한국사회사학회가 수여하는 최재석 학술상 1회 본상을 수상하는 등 이미 높은 평가를 받았는데 또 하나의 큰 성취가 더해졌다. 나이와 무관하게 지적 역량이 나날이 커지는 사람이 간혹 있는데 강교수가 그 중 한 명이 아닐까 싶다. 강교수 덕에 우리 학계의 자산 리스트가 그만큼 풍요해졌으니 감사한 일이다.

고맙게도 보내온 책 속에 강교수가 쓴 감사의 편지가 함께 들어있었다. 이 책을 구상하고 완성해 가는데 내가 썼던 [국민, 인민, 시민]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했고 실제로 곳곳에서 내 책을 인용하고 있다. 과분한 평가를 받은 듯 민망한 마음도 없지 않지만 내가 그 책을 쓰면서 가졌던 문제의식과 생각을 강교수가 가장 잘 이어주고 있다는 생각에 기쁘고 보람을 느꼈다. 개념사 연구를 하면서 점점 명료해진 생각이 개념사와 정치주체형성사, 사회사와 사회운동사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내 책을 출간할 때 출판사가 난색을 표했음에도 굳이 “개념사로 본 한국의 정치주체”란 부제를 제목에 병기할 것을 고집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능력과 시간이 모자라 내 생각을 충분히 또 깊이있게 탐구하지 못하고 소략한 검토로 그칠 수 밖에 없었는데, 강교수의 이 책이 그 문제의식을 이어받아 멋지게 구현해 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내 책에서 국민, 인민, 시민, 민족, 민중이 한국의 정치주체를 분석하는데 필수적인 다섯 개념이라고 언급했었다. 전통적으로 일반 사람, 백성을 지칭하던 ‘인’, ‘민’ 어휘가 역사속에서 변형되고 재구성되면서 여러 개념들을 낳았는데 근대변혁기에 위의 다섯 범주가 새로운 정치적 주체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강교수는 이 다섯 범주에 ‘계급’을 더해 ‘6대 정치주체 개념어’로 확장시켜야 할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일견 공감이 가는 제안인데 그런 맥락에서라면 젠더도 포함해야 할 것이다. 지난 수년간 박찬승 교수가 민족, 민족주의에 대한 개념과 운동의 종합 연구서들을 출간했고 김경일 교수는 노동 개념의 역사와 일제하 노동운동사를 통해 계급이 한국사회에 출현하는 과정을 탐구해왔고 여성사에 대해서도 주목할만한 성과를 출간했다. 이번에 강교수가 민중에 대한 본격적인 분석을 완료하고 대작을 출간함으로써 한국개념사의 큰 그림이 얼추 마무리된 느낌이다.

그러고보니 한국사회사학회에 속한 여러 동학들이 이 큰 지적 프로젝트를 수행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자축하며 감사할 일이다. 그런데 요즘 상황을 보노라면 현대 한국의 정치주체와 관련하여 ‘개인’의 출현에 대한 연구가 새로운 과제로 부각되는 느낌이다. 분할 불가능한 주체로서의 in-dividual은 헌법적 주체, 인권의 담지자로 간주되고 있지만 개인 역시 역사적인 범주이고 근대로의 이행과정에서 형성되어 나온 주체다. 따라서 개인을 원천적으로 주어진 인간과 동일시하는 것은 곤란하고 어떻게 한국사회에서 개인주체성이 형성되었는지를 밝히는 일이 중요하다. 특히 요즈음의 MZ 세대는 개성과 취향을 강조하면서 국민, 인민, 시민, 민족, 민중, 계급, 젠더 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개별적 정체성을 전례없이 또렷하게 드러낸다. 그것이 신 앞의 단독자 의식에 바탕을 둔 서구의 개인과도 상당히 다른 것임은 분명한데 그 차이와 특성을 명료하게 밝히는 개념사적 탐구 없이는 설명이 어렵다.

한국형 개인은 개성과 자유를 강조하지만 집단적 범주로부터 자유로운 단독 주체도 아니다. 대중이나 다중, 또 팬덤으로 불리는 새로운 형태의 집합체로 곧잘 편입되는 독특한 개인이다. 그 틈새에서 명분과 실제의 불일치, 공적부문과 사적영역 간의 이중성, 특유의 도덕주의, 내로남불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 한국적 개인주체의 바탕은 무엇이며 개념적 뿌리는 어디에 있을까? 어떻게 형성되고 강화되며 다른 정체성과의 연관성이 어떠할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이야말로 한국개념사를 최종적으로 완성하는 화룡점정일지 모른다. 사회사와 개념사가 정치사와 사상사를 넘어 문학사와 종교사와 만나는 새로운 지적 대장정이 필요한 이유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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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노동

수년전 서울대 권현지 교수등과 함께 “디지털 변화 속에서 일/노동 변화” 를 주제로 하는 연구프로젝트를 수행한 적이 있다. 노동관련 연구를 활발히 하던 뛰어난 전문가들이 참여한 공동작업이었는데 나는 개념사의 관점에서 한 파트를 담당했다. 2017년 말에 이 보고서가 노동연구원 종합보고서 책자로 간행되기도 했는데 지금 살펴보아도 그 내용이 탄탄하고 흥미롭다.

문명으로 보는 21세기 수업에서 ‘일/노동의 미래’ 를 학생들과 이야기하면서 이 보고서를 다시 살펴보았다. 나는 1) 임금을 전제한 노동과 그보다 좀더 포괄적인 일이 분화할 수 있을지, 2) 정규직 중심의 정상적 노동형태가 다양한 유연화와 일의 조합으로 진행될지 3) 이 맥락에서 첨단기술의 영향력이 어떻게 작용할지를 주목했었는데 과연 21세기 미래에 저 학생들이 어떤 상황을 마주치게 될지 중요한 쟁점인데 나 스스로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

사실 그 연구를 수행할 때는 디지털 효과가 미칠 긍정적 영향력을 좀 적극적으로 평가했었다. 아마도 미래는 사람들이 임금노동에서 좀더 자유로와지고 단일 직업에 매이기보다 다양한 일의 포트폴리오를 활용할 수 있는 상황이 오기를 바라는 내 개인적 희망이 작용했을지 모르겠다. 그로부터 6년여를 지나면서 그런 기대와 희망은 여전하지만 긍정적 평가에 대한 확신은 이전에 비해 약화된 것 같다. 한국사회의 현실이 일자리의 다양화와 유연화를 환영하기에는 너무 경직되어 있고 서열화되어 있는데다가 노동의 유연성이 자유의 확대보다 불안정성과 프레카리아트화에 더 기여할 것이라는 생각이 커진 탓이다.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면서 디지털 환경이 노동과 일에 미친 영향이 전반적인 자유증대보다는 전례없는 양극화로 귀결되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미국의 라이시는 디지털 환경이 재택근무가 가능한 ‘원격업무층’을 자유로움과 높은 소득을 함께 보장하는 최상층으로 만들었지만 수많은 중하층 노동자들은 그런 긍정적 효과보다는 지위의 불안정과 소득하락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마도 미국 이외의 사회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유사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이 변화의 미래를 결정론적으로 단정하고 싶지 않다. 냉정한 분석가의 입장과 내심 아들이 살아갈 미래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충돌하는 공간을 없에고 싶지 않다. 아니 내 마음의 공간만이 아니라 실제 우리 사회에 그런 혁신의 공간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하는 희망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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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강

23년도 2학기가 개강했다. 무더위와 폭우로 정신없었던 기간이었지만 그래도 방학은 쉼과 여유의 시간이었다. 이제 다시 수업을 위해 광주를 오가고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 과목의 내용을 채우고 스스로 만족할만한 강의를 해야 한다는 부담이 없지 않지만 기대가 되고 새로운 열정이 솟구치기도 한다. 감사한 일이다.

동양고전의 하나인 [대학]의 한 귀절을 화선지에 써서 연구실에 걸어두었다. “格物致知 誠意精心 修身濟家治國平天下” – 곰곰 생각하면 학자가 평생 좌우명으로 할만한 내용이다. 사물의 궁극적 이치를 물어 깨닫고 지극한 뜻과 맑은 마음을 지키는 것 (格物致知 誠意精心) 은 학문의 본령을 이르는 말이다. 스스로의 몸을 닦고 집안을 보살피며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의 평화를 구한다 (修身濟家治國平天下) – 학자의 할 바를 쓴 내용이다. 학문함과 학자됨의 두 차원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가르침이다.

서울대를 정년한 후 다시 주어진 GIST 에서의 강의기회를 나는 이전생활의 연속이 아닌 새로운 질적 전환으로 받아들이려 애쓰는 중이다. 익숙하고 몸에 밴 내용과 방식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내용을 새로운 형식으로 가르치고 싶다. 강의 이전에 학습과 공부를 우선하고 학생들에 앞서 내 자신이 나날이 새로워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를 설득할 수 있고 내 아들에게 조언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면 어떻게 학생들에게 힘있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인가 – 생각은 절실한데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이 문제다. 다만 지난 학기에 비해 조금은 더 나아지기를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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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ST 새출발

광주과학기술원이 새출발 준비로 바쁘다. 제9대 총장으로 임기철 박사가 선임된 후 새로운 보직자들로 대학 거버넌스 진용이 갖추어졌고 8월 16일엔 총장취임식이 예정되어 있다. 리더십 혼란으로 내부 갈등이 지속되면서 학내에 안타까움과 자괴감이 커지던 상황을 지켜본 나로서는 무엇보다 반갑고 기쁜 일이다. 임 신임총장은 과학기술정책 전반에 오랜 경험과 경륜을 갖춘 분인만큼 대학을 일신하고 업그레이드하는 역할을 잘 감당하리라는 기대감이 크다.

2019년 보스턴에서 보낸 안식년 기간은 21세기 과학기술의 발전이 대학과 지역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를 절감한 소중한 기회였다. 30년 전과 큰 차이가 없는 하바드 스퀘어 주변과 상전벽해라 할 정도로 달라진 MIT 주변지역의 놀라운 대비가 내겐 특히 인상적이었다. 실제로 MIT가 있는 켄달스퀘어는 구글, IBM, 마이크로소프트, 파이자, 모더나, 노바티스와 같은 세계적 기업들이 밀집한 첨단산업지대로 변모했다. 맥거번 뇌연구소, 코흐 암 연구센터 등 연구기관들이 함께 있는 복합, 첨단 테크노 파크로서의 역동성은 계속 확장될 것이 분명해 보였다. 2022년 자료에 의하면 투자액 270억달러, 특허 1만여개, 일자리 10,400개가 생겨났고 세계최고의 20대 바이오제약회사 중에서 19개 회사가 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무엇이 이런 변화를 추동했을까 궁금하여 여러 자료들을 찾아보면서 내가 얻은 답은 대학(지식)과 도시(인프라)와 정신(문화)의 결합된 힘이었다. 첨단과학 연구의 중심인 MIT, 혁신생태계를 만들려는 캠브리지市의 기획, 그리고 역동적 도전정신을 지닌 젊은 문화가 세 주역이었다. 대학은 창의적 교육과 도전적 연구를 격려하고 학생과 교수의 혁신을 장려했다. 이 일대를 혁신 인큐베이터로 만들기 위해 고가의 공동실험기자재가 구비된 공유랩을 설립하고 많은 신생 회사들이 큰 리스크를 피하고 창업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하바드 의대와 병원, 보건대학원은 생명공학의 좋은 환경과 기회를 제공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백신으로 유명해진 모더나를 비롯하여 이곳에서 창업하고 성장한 성공적 기업들이 적지 않다.

MIT와 하바드가 지척에 있어 인문사회학적 사유와 과학기술 연구가 고급한 상호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것도 큰 도움이었다. 1950년대 이 지역에서 꽃을 피웠던 사이버네틱스 모델은 하바드의 사회학자 파슨즈, MIT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였던 위너 등이 참여한 다학제적 논의에 기반한 것이다. 디지털 시대를 전망하고 전세계에 영향을 미친 MIT 의 문화연구자 네그로폰테의 책 Being Digital은 첨단기술과 사회문화에 대한 복합적 시야 덕택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가 설립을 주도한 MIT의 미디어랩은 인공지능, 디자인, 문화, 건축, 미학과 언어 등을 융복합적으로 다루는 대표적 연구조직이 되었다. 싱귤래리티라는 개념을 확산시킨 레이 커즈화일이나 Life 3.0 이란 책으로 생명현상을 새롭게 해석하는 물리학자 테드 마크도 과학기술과 21세기 문명을 종합적으로 다루는 연구의 대표적 사례라 할 만하다. 미국문화를 비판하는 진보적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가 MIT의 교수라는 사실도 상징적이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대단한 교육열을 자랑한다. 선진문물을 빠르게 배우고 익히는 능력이 압축근대화를 성공하게 만든 주요한 동인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발전모델과 따라잡기 전략은 효력이 현저히 감소했다. 세계환경이 달라졌고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여전히 일방적인 지식전수와 수동적인 정답찾기에 치우쳐있는 교육은 오늘 한국사회가 넘어서야 할 큰 과제가 되었다. 인공지능과 초연결이 일상화되는 시대에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하고 또 기후위기로 표현되는 인류세의 난제들에 대응하려면 심화된 전문성 못지 않게 분과학적 경계를 뛰어넘는 상상력과 횡단적인 창의력을 지닌 젊은 세대를 키워내야 한다. 교육영역의 창의적 혁신역량을 재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오늘 우리의 최우선 과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터이다.

때마침 임기철 총장이 내건 대학운영의 네가지 목표가 이런 문제의식을 포함하고 있어서 기대가 된다. “글로벌 지식자산을 창출(G : Global Asset)”하는 연구대학으로서의 역량을 높이고 “통찰이 담긴 기술혁신(I : Insight for Innovation)” 을 위해 자연과학과 인문사회학의 학제적·융합적 사고를 접목한다는 것은 과학기술대학으로서의 적절한 목표설정이다. “네가지 난제 (S : Solutions for 4 Securities)”라 할 환경 안보(Ecology), 경제 안보(Economy), 보건의료 안보(Emergency), 에너지 안보(Energy) 를 해결할 역량을 확보하고 “배려와 신뢰(T : Tolerance for Trust)”로 창업을 뒷받침한다는 것은 대학이 혁신생태계의 중심 역할을 해야 한다는 비전에 다름아니다. 이런 목표를 향한 열정과 정신이 새롭게 확산되어 켄달스퀘어에서 느끼던 그 신선한 충격과 혁신의 몸짓들이 GIST 안팎에서 넘쳐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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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전용과 문자병기

가까운 분이 한글한자병용을 주장하는 글을 보내주셨다. 필자가 우리사회의 여론주도층에 속하는 분이고 또 [한글+한자문화]라는 타이틀을 단 발간물의 권두언이기도 해서 정독을 했다. 논지의 핵심은 한글만 전용하는 우리 상황이 한국의 문화나 지식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고 때론 장애를 조성한다는 것이다. 베트남이 한자를 전면 폐기함으로써 자신들의 오랜 전통문화로부터 심한 단절을 보이고 있음을 참조사례로 꼽으면서 ‘한자병용이 최선책’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 발간물을 간행하는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가 어떤 곳인지 검색해보았는데 1998년에 출범한 설립준비위원회 명단에는 원로 언어학자들 이름도 더러 보였다. 홈페이지 첫 화면에 “한자도 위대한 우리 조상이 만든 문자, 한글과 더불어 분명히 國字다”라고 쓰여 있다.

필자가 내세우는 논거는 세가지로 요약 가능하다. 우리말의 개념어는 상당부분 한자로부터 유래한 것인데 한자를 몰라 혼동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그 첫 이유다. 어려운 개념어의 적확한 뜻을 확인하는 것이 특히 필요한 전문분야, 예컨대 법학, 의학, 철학 등에서 이런 문제가 실제로 있을 수 있다. 둘째로는 한자로 표기된 전통지식과 한자문화와의 단절이 점점 심해진다는 것이다. 한자에 대한 거리감 때문에 조선시대사를 연구하려는 학생이 줄어드는 것이나 중국 및 일본 학계와의 소통력이 줄어드는 것이 그런 예에 해당할 것이다. 셋째로는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한자를 활용하는 어려움이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이제 한자를 손으로 쓰기 위해 어려운 자획을 알아야 할 필요성이 크지 않아 훨씬 손쉽게 한자를 사용할 기술적 환경이 마련되었다는 것을 들고 있다.

한글만으로는 적확한 뜻이 전달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동음이의어 문제는 나도 종종 접한다. 실제로 전문적 영역에서 글을 쓰는 사람들 중에는 최소한의 한자 병기를 하는 경우가 제법 있고 그런 표기를 독자적으로 시행하는 언론사나 출판사도 있다. 최근에는 한자만이 아니라 외국어 전문용어를 병기할 필요성이 더 늘어나고 그런 경우들을 종종 접한다. 각종 컴퓨터 용어나 첨단기술용어가 특히 그러한데 챗 GPT4 등장 이후 논란이 되는 환각현상 (hallucination) 은 그 좋은 예다. 언어와 어휘, 문자 사이의 관계는 고정적이지 않아서 시대와 문화에 따라, 또 맥락에 따라 늘 변한다. 그런 유연성 자체가 문자의 힘이 되기도 할테니 필요한 경우 한글과 함께 한자나 외국어를 병기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한글전용으로 새로운 우리말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의미를 더 적확하게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된다. 고고학 분야에서 한자어를 우리말로 고침으로써 소통력을 높인 사례는 박물관 전시실을 가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한자병기를 하던 세대의 저서보다 한글전용 세대가 쓴 책이나 논문이 훨씬 정확하고 소통력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인터넷이나 SNS 상에서 범람하는 각종 축약어나 놀라운 유행어들도 한글세대의 창안물이다. 그 맥락을 모르는 사람들에겐 외래어같지만 그들에게는 가장 정확한 의사소통의 도구일 터이다. 현재 우리 사회가 겪는 문자표현의 여러 문제들을 한자불용의 결과만으로 환원하기보다 다양한 문화와 문자가 뒤섞이고 혼융되는 시대상황과 결부하여 종합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한자를 특별한 문자이자 문화도구로 학습하는 기회가 좀더 강화될 필요는 있다. 한자문명권에서 유래한 오랜 지식, 개념, 사유, 소통의 자산을 소홀히 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재해석할 전문가의 양성은 앞으로 더욱 필요하기 때문이다. 전통자료의 해독능력은 다양한 영역에서 상상력과 창의성을 제공하는 소중한 자산이 된다. 한자에 비전문가인 나도 옛 고전의 문장을 접하면서 21세기에 적용가능한 새로운 실마리를 찾는 흥미로운 경험을 하곤 한다. 모든 사람이 컴퓨터 프로그램을 배울 필요 없는 환경이 가능하려면 누군가는 복잡한 전산시스템과 수학의 연산과정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 마찬가지로 한자에 정통한 전문가가 지속적으로 양성되어야 우리의 문자문화도 풍성해 질 수 있을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한글전용이 거의 모든 영역에서 자리잡은 지금이야말로 한자를 포함한 다양한 문자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필요한 때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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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헌절

오늘은 제헌절이다. 1948년 정부출범을 한달 앞둔 7월 17일 마침내 신생 대한민국의 헌법이 공포되었다. 해방 이후 이념 대립과 남북 분단 상황에서 우왕좌왕하면서도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한 새 국가의 헌법을 제정할 수 있었던 것은 기적이라 할 만하다. 잘 정비된 헌법과 법률체계 하에서조차 사사건건 대립하는 정치권의 모습을 고려하면 당대 제헌국회 구성원들의 식견과 역량은 놀랍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되돌아보면 제헌절에 대한 사회적 의미부여는 점차 약화된 것 같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제헌절이 매우 중요한 국경일로 강조되었는데 지금은 언론에서조차 별반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헌법 그 자체의 비중은 더 무거워졌다. 모든 정쟁과 갈등도 헌법의 정신 아래 시시비비를 구하고 그 권위 아래 복종하는 관행이 자리잡았다. 촛불혁명의 비정상상황에서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의 제1조를 슬로건으로 내 걸 정도가 된 것이다.

북한의 김여정 부부장이 공식 발언에서 대한민국이란 정식 국호를 여러 차례 사용했다. 이것을 두고 북한이 한반도 2국가체제를 공식화하는 것이란 해석이 따랐다. 실제로 북한은 이전에 즐겨 쓰던 ‘우리민족’ 대신 ‘우리국가’를 내세우고 민족의식보다 애국주의를 강조한다. 실제 김정은 정권 이후 핵무력을 강화해온 북한이 자기 체제의 존속과 안정을 제일의 가치로 간주하는 경향은 뚜렷하다. 그 바탕에는 조선노동당을 정점으로 하는 사회주의 헌법체제와 백두혈통을 특수지위로 보장하는 수령제가 있는 바, 이런 원리가 대한민국의 헌정이념과 병립할 수 없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적어도 헌법의 차원에서 보면 한반도는 이미 두 개의 국가가 존재해 온 것이다.

그래서 열흘 후에 맞이할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의 의미를 함께 생각하게 된다. 정전협정은 한국전쟁의 잠정적 중단을 약속한 것으로 국제법상으로는 휴전의 성격을 띤다. 그것은 북한이 무력으로 적화통일을 시도한 전쟁이었는데, 정전 70년을 거치면서 한반도에는 실질적인 두 국가상태가 자리잡았다. 기본합의서는 이것을 ‘특수관계’라고 불렀지만 남북간의 이질성과 원심력이 동질화와 구심력에 비해 지속적으로 강화되어 왔다. 2023년 시점에서 정전상태에 있는 남북한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여전한 숙제다. 그것은 다시 헌법의 위상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필요로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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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사와 사회사

한국사회사학회 초기 멤버들이 신용하 교수님을 모시고 점심 식사를 함께 했다. 매년 스승의 날에 해오던 비공식 모임이 코로나를 거치면서 중단되었다가 금년에는 다행히 6월의 마지막 날 하게 된 것이다. 제주에서 조성윤, 광주에서 노치준, 충주에서 김경일, 세종에서 박명규가 올라왔고 서울에 거주하는 김필동, 이정옥, 정근식, 한영혜 교수가 함께 했다. 미리 예정되어 있던 일본 여행 탓에 황경숙 교수만 참석하지 못했다. 경향 각지에 흩어져 있던 동학들이 오랫만에 한자리에 모여 즐거운 담소로 시간가는 줄 모르는 하루를 보냈다.

점심을 하면서 신교수님의 생애사라 할만한 지난 이야기를 들었다. 여러 세대를 거쳐 유교의 가치와 덕목을 가르쳐온 제주의 훈장가문이었고, 유배온 육지의 지식인들이 으례 인사를 하러 올 정도로 명망이 있던 집안이었으며, 집터에 훗날 사찰이 지어질 정도로 집의 규모도 크고 경제적으로도 유복했으나 근대화의 흐름과는 달리 위정척사적 사상과 전통적 가치를 고수하려 한 집안이었다는 이야기는 흥미롭고 새로웠다. 부친이 유교적 가치관과 정감록의 영향을 받아 피난지로 이사를 다닌 일, 그로 인해 학교를 제때 가지 못하고 집안일을 도우며 독학을 해야 했던 어린 시절, 그 가운데서도 배우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과 노력으로 대학입시를 준비한 것은 불굴의 의지로 성공한 위인의 스토리와 닮았다. 이미 중고등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한 상황에서 집안 친척과 지인들의 도움으로 상업고등학교 야간에 편입 후 졸업한 일, 제주를 위해 일하는 인재가 되도록 그곳 대학에 진학하라는 권유를 끝내 마다하고 서울대학교 응시를 준비한 것, 탁월한 기억력과 집념어린 공부 덕택에 넉넉한 성적으로 합격한 일 등 한 편의 드라마라 해도 족할 정도로 드라마틱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서울대학교를 목표로 불굴의 향학열을 유지한 그 힘이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모두들 궁금해 했다. 개인적인 능력과 의지가 일차적으로 중요한 요인이었을 테지만 그 뜻을 존중해 여러 도움을 아끼지 않고 ‘국가를 생각하면 정치학으로, 민족을 중시하면 사회학으로’ 갈 것을 조언할 정도의 식견을 지닌 친척들이 계셨던 가문 전체의 분위기가 중요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여겨졌다. 고학 하다시피 하던 학부 초기에 ‘민족주의’ 강의에 매료되고 열정적인 답안지를 작성한 것, 학자가 되려면 절대로 정치운동에 참여하지 말고 막스 베버가 말한 ‘직업으로의 학문’에 충실하라던 최문환 교수의 가르침에 부응한 것, 상대로 자리를 옮긴 지도교수를 따라 다시 경제학 대학원으로 재입학한 것, 자신을 이끈 선생님과의 약속을 평생 지키며 살아온 일관성과 신실함 등은 위인전에서 읽을만한 장면들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내용들이었다.

흥미롭게 듣던 그 가족사의 시간대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를 거치는 한국근대사와 정확히 겹친다. 그래서 익숙한 여러 사건과 인물들, 예컨대 간재 전우와 면암 최익현, 일제 말기의 공습과 소개령, 해방 후의 4.3 사건, 한국전쟁과 빨치산 활동 등이 시대적 배경으로 소환되었다. 개인의 생애사는 가족사와 이어지고 그것은 다시 사회사와 직결된다는 것을 역동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함직 했다.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커피를 마시면서 노치준 목사가 저런 개인사, 생애사를 세밀하게 기록하거나 영상으로 남겨두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김교신의 예에서 보듯 한 개인의 생애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지속되려면 기록 자료가 필수적이라는 지적은 타당하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 뜻있는 삶을 살았으면서도 제대로된 기록을 남기지 않아 후학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사례들이 적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전기, 평전이 더 많이 쓰여질 필요가 있음은 분명하다. 다만 모든 개인사에는 사적 영역과 내밀한 상처의 흔적이 있게 마련이고 사회적 사건들과 결부하여 겪은 경험들이 각기 달라 객관적 평가와 서술이 어려워 손쉬운 작업은 아니다. 오랜 기간 일기를 써왔다는 한영혜 교수의 일기장을 보존하고 해설하는 (?) 작업부터 시작하자는 농담섞인 제안과 각자 자기 삶의 중요한 부분들을 기록하자는 다짐을 공유하는 것으로 일단 마무리했다.

개인사와 가족사, 그리고 사회사와 국가사는 서로 다른 영역을 구성하면서 또 긴밀하게 연결된다. 특히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국가와 사회의 격동이 가족과 개인의 삶을 뿌리채 뒤흔든 사례들은 부지기수다. 식민지화, 건국과 이념대립, 분단과 전쟁, 민주화, 산업화, 세계화, 정보화의 격랑에서 자유로왔던 개인이나 가족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개인으로선 이해할 수도 없고 예상할 수도 없었던 외부의 충격과 시대의 파도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감당하고 견뎌낸 모든 개인사와 가족사는 그 자체로 소중하고 존엄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다만 긴 역사적 맥락에서 각기 다른 평가와 의미부여를 받게 되는 것인만큼 미시사와 거시사의 특이한 연관과 불일치를 다루는 것이 사회사의 또다른 연구 영역이 될 터이다. 일생 학자로서의 외길을 걸으면서도 연구의 밀도나 주제의 깊이, 성과의 양, 판단의 정확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거장의 삶을 옆에서 지켜보고, 그 제자가 되어 오늘까지 온 것 자체가 참으로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함께 모인 동학들도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 모두의 생애사는 우리 당대의 시대사와 어떤 모습으로 연결되며 어떤 자취로 남을까 곰곰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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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학사협의회

6월 19-20 목포에서 광주과학기술원 기초교육학부 학사협의회가 열렸다. 부임 이래 동료 교수들과 만나 이야기 나눌 기회가 별로 없었던 나로서는 특히 반가운 모임이었다. 공식 회의에는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석학교수 신분이어서 조용히 그간의 강의와 내 연구활동을 되돌아 보았다. 코로나 팬데믹과 온라인 수업이라는 초유의 상황에서 매 강의 자체가 새로운 경험이었던 지난 2년은 여러모로 미지의 내일을 향한 탐구여행이었다. 이제 그 지적 여정에서 어디쯤 와 있는지를 점검해볼 때가 되었고 이 조용한 바닷가는 그런 성찰에 적절한 장소란 생각을 했다. 때마침 이곳에 교수회의를 하러 온 국방대학교 김병조 부총장을 오랫만에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도 뜻밖의 기쁨이었다. 내가 가르쳤던 육사 42기 교수와도 인사를 나누면서 잠시 80년대 초반 시절을 되돌아보는 여유도 가졌다.

숙소인 현대호텔에서 내려다 본 목포 앞바다 정경은 아름다왔다. 영산강 하구가 시원한 바다와 만나는 곳에는 작은 섬들이 다리와 제방으로 이어져 있어서 내륙에서 보기 어려운 독특한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다음날 해양 케이블카를 통해 유달산에 올라 내려다 본 풍경은 잿빛 하늘과 수평선이 겹쳐 마치 한폭의 수묵화를 보는 듯 했다. 배로 오가야 했을 작은 섬 고하도가 멋진 관광지구로 변신하고 있는 모습에서 간척과 개발이 이 지역에 미치는 영향을 전형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작년에 육지로 이어진 고군산열도와 광활한 새만금 일대를 둘러 보면서 개발이 가져오는 지역생태의 변화와 이에 대한 환경단체들의 문제제기를 접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곳 목포도 이순신 장군의 영웅적 행적이나 ‘목포의 눈물’의 이난영, 또는 김우진, 박화성 같은 예인의 고장임을 자랑하는 것 못지 않게 도시화, 산업화, 정보화와 맞물린 해양생태계의 변화를 어떻게 조율하고 21세기형 생활양식을 만들 것인지에 대한 미래지향적 스토리텔링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GIST 부임 이래 ‘문명으로 보는 21세기’ 과목을 개설하고 여러 쟁점을 학생들과 토론해오면서 나는 과학기술 연구와 인문사회학적 문제의식이 긴밀히 연계되어야 할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과 더불어 전지구적으로 확산된 생태위기와 디지털 문명에 대한 논란은 물론이고 최근 Chat GPT 4의 출현을 계기로 진행 중인 다학제적 토론과 대화도 그 좋은 예에 속한다. 스탠포드 대학에서 개최되었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와 인공지능 전문가 페이페이 리 사이의 토론에 대한 논평문을 학생들에게 쓰게 했을 때 대부분이 두 사람의 문제제기가 서로 다르지만 상호보완적이고 반드시 필요하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일반 종합대학에서는 전공별, 단과대학별 장벽이 높고 과학기술영역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제대로 이런 쟁점들에 대한 깊이 있는 토론이 쉽지 않은데 반해 과학기술대학이야말로 그런 논의의 최적지가 아닐까 싶다. GIST 내부의 긴장감이나 공유된 화두가 그다지 강하지 와 닿지 않는 것은 각 전공영역이나 개별 교수들의 노력을 내가 아직 잘 모른 탓이리라 생각한다.

저녁 식사 후 가진 방담 시간은 이런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는 좋은 기회였다. 다양한 연구영역간 소통과 창의적 발상을 뒷받침하고 교수들의 개별적 역량과 자부심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좀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려면 전공교육과 기초교육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분과학간의 융복합적 연구를 지원하는 대학 차원의 혁신적 거버넌스가 구축될 필요가 있다. 이 문제는 총장의 혁신적 리더십이나 정부의 정책지원에 더하여 학내 교수들로부터의 비전과 혁신이 동반되어야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사안이긴 하다. 과학기술분야와 인문사회분야, 첨단기술개발과 기초소양교육 사이에는 일정한 거리와 견해차가 있게 마련인 바 그 긴장을 어떻게 건강하고 창의적인 동력으로 전환시킬 것인가가 중요할 것이다. 현재 수학과 인문사회학이 함께 기초교육학부를 구성하고 있는데 이 모델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인지 다른 모델을 지향할 것인지도 앞으로 고민해 볼 사안이겠다. 조만간 결정될 새 총장이 유능한 리더십으로 시대적 소명에 부응할 창의적 거버넌스를 정착시켜 GIST 대도약의 계기를 마련하기를 기대하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