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vities · life · 오늘의 화두

생애사와 사회사

한국사회사학회 초기 멤버들이 신용하 교수님을 모시고 점심 식사를 함께 했다. 매년 스승의 날에 해오던 비공식 모임이 코로나를 거치면서 중단되었다가 금년에는 다행히 6월의 마지막 날 하게 된 것이다. 제주에서 조성윤, 광주에서 노치준, 충주에서 김경일, 세종에서 박명규가 올라왔고 서울에 거주하는 김필동, 이정옥, 정근식, 한영혜 교수가 함께 했다. 미리 예정되어 있던 일본 여행 탓에 황경숙 교수만 참석하지 못했다. 경향 각지에 흩어져 있던 동학들이 오랫만에 한자리에 모여 즐거운 담소로 시간가는 줄 모르는 하루를 보냈다.

점심을 하면서 신교수님의 생애사라 할만한 지난 이야기를 들었다. 여러 세대를 거쳐 유교의 가치와 덕목을 가르쳐온 제주의 훈장가문이었고, 유배온 육지의 지식인들이 으례 인사를 하러 올 정도로 명망이 있던 집안이었으며, 집터에 훗날 사찰이 지어질 정도로 집의 규모도 크고 경제적으로도 유복했으나 근대화의 흐름과는 달리 위정척사적 사상과 전통적 가치를 고수하려 한 집안이었다는 이야기는 흥미롭고 새로웠다. 부친이 유교적 가치관과 정감록의 영향을 받아 피난지로 이사를 다닌 일, 그로 인해 학교를 제때 가지 못하고 집안일을 도우며 독학을 해야 했던 어린 시절, 그 가운데서도 배우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과 노력으로 대학입시를 준비한 것은 불굴의 의지로 성공한 위인의 스토리와 닮았다. 이미 중고등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한 상황에서 집안 친척과 지인들의 도움으로 상업고등학교 야간에 편입 후 졸업한 일, 제주를 위해 일하는 인재가 되도록 그곳 대학에 진학하라는 권유를 끝내 마다하고 서울대학교 응시를 준비한 것, 탁월한 기억력과 집념어린 공부 덕택에 넉넉한 성적으로 합격한 일 등 한 편의 드라마라 해도 족할 정도로 드라마틱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서울대학교를 목표로 불굴의 향학열을 유지한 그 힘이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모두들 궁금해 했다. 개인적인 능력과 의지가 일차적으로 중요한 요인이었을 테지만 그 뜻을 존중해 여러 도움을 아끼지 않고 ‘국가를 생각하면 정치학으로, 민족을 중시하면 사회학으로’ 갈 것을 조언할 정도의 식견을 지닌 친척들이 계셨던 가문 전체의 분위기가 중요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여겨졌다. 고학 하다시피 하던 학부 초기에 ‘민족주의’ 강의에 매료되고 열정적인 답안지를 작성한 것, 학자가 되려면 절대로 정치운동에 참여하지 말고 막스 베버가 말한 ‘직업으로의 학문’에 충실하라던 최문환 교수의 가르침에 부응한 것, 상대로 자리를 옮긴 지도교수를 따라 다시 경제학 대학원으로 재입학한 것, 자신을 이끈 선생님과의 약속을 평생 지키며 살아온 일관성과 신실함 등은 위인전에서 읽을만한 장면들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내용들이었다.

흥미롭게 듣던 그 가족사의 시간대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를 거치는 한국근대사와 정확히 겹친다. 그래서 익숙한 여러 사건과 인물들, 예컨대 간재 전우와 면암 최익현, 일제 말기의 공습과 소개령, 해방 후의 4.3 사건, 한국전쟁과 빨치산 활동 등이 시대적 배경으로 소환되었다. 개인의 생애사는 가족사와 이어지고 그것은 다시 사회사와 직결된다는 것을 역동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함직 했다.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커피를 마시면서 노치준 목사가 저런 개인사, 생애사를 세밀하게 기록하거나 영상으로 남겨두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김교신의 예에서 보듯 한 개인의 생애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지속되려면 기록 자료가 필수적이라는 지적은 타당하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 뜻있는 삶을 살았으면서도 제대로된 기록을 남기지 않아 후학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사례들이 적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전기, 평전이 더 많이 쓰여질 필요가 있음은 분명하다. 다만 모든 개인사에는 사적 영역과 내밀한 상처의 흔적이 있게 마련이고 사회적 사건들과 결부하여 겪은 경험들이 각기 달라 객관적 평가와 서술이 어려워 손쉬운 작업은 아니다. 오랜 기간 일기를 써왔다는 한영혜 교수의 일기장을 보존하고 해설하는 (?) 작업부터 시작하자는 농담섞인 제안과 각자 자기 삶의 중요한 부분들을 기록하자는 다짐을 공유하는 것으로 일단 마무리했다.

개인사와 가족사, 그리고 사회사와 국가사는 서로 다른 영역을 구성하면서 또 긴밀하게 연결된다. 특히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국가와 사회의 격동이 가족과 개인의 삶을 뿌리채 뒤흔든 사례들은 부지기수다. 식민지화, 건국과 이념대립, 분단과 전쟁, 민주화, 산업화, 세계화, 정보화의 격랑에서 자유로왔던 개인이나 가족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개인으로선 이해할 수도 없고 예상할 수도 없었던 외부의 충격과 시대의 파도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감당하고 견뎌낸 모든 개인사와 가족사는 그 자체로 소중하고 존엄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다만 긴 역사적 맥락에서 각기 다른 평가와 의미부여를 받게 되는 것인만큼 미시사와 거시사의 특이한 연관과 불일치를 다루는 것이 사회사의 또다른 연구 영역이 될 터이다. 일생 학자로서의 외길을 걸으면서도 연구의 밀도나 주제의 깊이, 성과의 양, 판단의 정확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거장의 삶을 옆에서 지켜보고, 그 제자가 되어 오늘까지 온 것 자체가 참으로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함께 모인 동학들도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 모두의 생애사는 우리 당대의 시대사와 어떤 모습으로 연결되며 어떤 자취로 남을까 곰곰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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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학사협의회

6월 19-20 목포에서 광주과학기술원 기초교육학부 학사협의회가 열렸다. 부임 이래 동료 교수들과 만나 이야기 나눌 기회가 별로 없었던 나로서는 특히 반가운 모임이었다. 공식 회의에는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석학교수 신분이어서 조용히 그간의 강의와 내 연구활동을 되돌아 보았다. 코로나 팬데믹과 온라인 수업이라는 초유의 상황에서 매 강의 자체가 새로운 경험이었던 지난 2년은 여러모로 미지의 내일을 향한 탐구여행이었다. 이제 그 지적 여정에서 어디쯤 와 있는지를 점검해볼 때가 되었고 이 조용한 바닷가는 그런 성찰에 적절한 장소란 생각을 했다. 때마침 이곳에 교수회의를 하러 온 국방대학교 김병조 부총장을 오랫만에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도 뜻밖의 기쁨이었다. 내가 가르쳤던 육사 42기 교수와도 인사를 나누면서 잠시 80년대 초반 시절을 되돌아보는 여유도 가졌다.

숙소인 현대호텔에서 내려다 본 목포 앞바다 정경은 아름다왔다. 영산강 하구가 시원한 바다와 만나는 곳에는 작은 섬들이 다리와 제방으로 이어져 있어서 내륙에서 보기 어려운 독특한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다음날 해양 케이블카를 통해 유달산에 올라 내려다 본 풍경은 잿빛 하늘과 수평선이 겹쳐 마치 한폭의 수묵화를 보는 듯 했다. 배로 오가야 했을 작은 섬 고하도가 멋진 관광지구로 변신하고 있는 모습에서 간척과 개발이 이 지역에 미치는 영향을 전형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작년에 육지로 이어진 고군산열도와 광활한 새만금 일대를 둘러 보면서 개발이 가져오는 지역생태의 변화와 이에 대한 환경단체들의 문제제기를 접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곳 목포도 이순신 장군의 영웅적 행적이나 ‘목포의 눈물’의 이난영, 또는 김우진, 박화성 같은 예인의 고장임을 자랑하는 것 못지 않게 도시화, 산업화, 정보화와 맞물린 해양생태계의 변화를 어떻게 조율하고 21세기형 생활양식을 만들 것인지에 대한 미래지향적 스토리텔링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GIST 부임 이래 ‘문명으로 보는 21세기’ 과목을 개설하고 여러 쟁점을 학생들과 토론해오면서 나는 과학기술 연구와 인문사회학적 문제의식이 긴밀히 연계되어야 할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과 더불어 전지구적으로 확산된 생태위기와 디지털 문명에 대한 논란은 물론이고 최근 Chat GPT 4의 출현을 계기로 진행 중인 다학제적 토론과 대화도 그 좋은 예에 속한다. 스탠포드 대학에서 개최되었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와 인공지능 전문가 페이페이 리 사이의 토론에 대한 논평문을 학생들에게 쓰게 했을 때 대부분이 두 사람의 문제제기가 서로 다르지만 상호보완적이고 반드시 필요하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일반 종합대학에서는 전공별, 단과대학별 장벽이 높고 과학기술영역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제대로 이런 쟁점들에 대한 깊이 있는 토론이 쉽지 않은데 반해 과학기술대학이야말로 그런 논의의 최적지가 아닐까 싶다. GIST 내부의 긴장감이나 공유된 화두가 그다지 강하지 와 닿지 않는 것은 각 전공영역이나 개별 교수들의 노력을 내가 아직 잘 모른 탓이리라 생각한다.

저녁 식사 후 가진 방담 시간은 이런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는 좋은 기회였다. 다양한 연구영역간 소통과 창의적 발상을 뒷받침하고 교수들의 개별적 역량과 자부심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좀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려면 전공교육과 기초교육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분과학간의 융복합적 연구를 지원하는 대학 차원의 혁신적 거버넌스가 구축될 필요가 있다. 이 문제는 총장의 혁신적 리더십이나 정부의 정책지원에 더하여 학내 교수들로부터의 비전과 혁신이 동반되어야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사안이긴 하다. 과학기술분야와 인문사회분야, 첨단기술개발과 기초소양교육 사이에는 일정한 거리와 견해차가 있게 마련인 바 그 긴장을 어떻게 건강하고 창의적인 동력으로 전환시킬 것인가가 중요할 것이다. 현재 수학과 인문사회학이 함께 기초교육학부를 구성하고 있는데 이 모델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인지 다른 모델을 지향할 것인지도 앞으로 고민해 볼 사안이겠다. 조만간 결정될 새 총장이 유능한 리더십으로 시대적 소명에 부응할 창의적 거버넌스를 정착시켜 GIST 대도약의 계기를 마련하기를 기대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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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편사회와 사회학

2023년도 한국사회학회 학술대회가 6월 16-17일 개최되었다. 행사가 열린 전북대학교는 꼭 40년 전인 1983년 신참 교수로 부임하여 10년 넘게 봉직했던 곳이다. 내 연구실이 있었던 사회과학대학 건물을 보면서 윤근섭, 김영기, 홍성영 교수 등 오래 전 도움을 주고 받던 선배 교수들을 떠올렸고 최근 정년을 하신 김영정, 남춘호 교수, 학회를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박천웅 학과장, 대학원에서 가르쳤던 김재우 교수 등도 반갑게 만났다. 학교 캠퍼스를 한바퀴 돌며 이곳에서의 생활을 회상하니 나름 열심히 살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모저모 아쉽고 부끄러웠던 기억도 따라온다.

학술대회의 주제가 ‘파편사회와 사회적 연대’다. 설동훈 회장이 주도하여 추진하는 전북대학교 BK 연구단의 핵심 연구 테마이기도 하다. 사회학은 그 초기부터 사회통합에 관심을 가져왔는데 기실 그 바탕에는 전통적 공동체의 해체와 이질화된 개인의 아노미가 있다. 사회학은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파편화의 문제를 해결할 지혜를 탐구한 학문이라 할 수 있고 서구 근대성이라 부르는 제도와 원리들이 모두 이와 직결되어 있다. 21세기에 파편사회라는 말이 회자되는 이유는 근대사회학의 처방과 설명으로는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운 새로운 문제들을 인류가 대면하고 있기 때문일 터이다. 사실 “파편사회 극복”이라는 현수막의 화두는 더 이상 학계만의 쟁점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모든 사람들의 실존적 문제가 되었다.

전체 프레네리 세션에서는 김홍중, 신진욱, 양승훈 세 분이 파편사회의 양상을 다룬 글을 발표했다. 김홍중 교수는 지구문명 전체가 처해 있는 위기를 근원적으로 재조명하기 위해 이제는 ‘파국주의’를 이야기할 때임을 주장하면서 라뚜르를 중심으로 여러 최근 학자들의 논의를 소개했다. 신진욱 교수는 ‘다중균열’과 ‘유동하는 적대’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사회적 파편화를 설명하고 특히 정치의 표류 현상에 주목했다. 양승훈 교수는 오늘날 지방청년들이 부딪치고 있는 딜렘마를 통해 지방이란 공간과 청년이란 세대에 나타나는 구조와 주체의 불일치 현상을 설명했다. 세 발제는 그 시선이 각기 지구, 국가, 지역이라는 다른 공간성을 향하고 있지만 문제의식에서는 상호보완적으로 느껴졌다. 파편화라는 현상이 정말 문명적이고 근본적인 흐름이라면 거시적 차원과 미시적 차원이 함께 다루어져야 할텐데 근대문명과 국가사회, 그리고 생활세계 사이 사회학이 자리할 새로운 위치설정을 어떻게 할지가 어렵고도 시급한 과제가 아닐까 여겨졌다.

광주과학기술원에서 ‘문명으로 보는 21세기’라는 강좌를 개설하고 학생들과 관련 쟁점들을 탐색해오고 있는 나로서는 문명적인 시각을 강조한 발제와 토론에 좀더 관심이 갔다. 구순을 바라보는 연세에도 왕성한 지적 탐색을 계속하시는 김경동 교수는 기조강연을 통해 동양적 지혜가 파국사회를 넘어설 문명적 자원이 될 수 있으리라는 주장을 했다. 흥미롭고 중요한 주제인데 현대 중국의 문명론적 점검을 포함한 여러 부문의 검토가 더해져야 할 듯 싶었다. 김홍중 교수가 내건 ‘파국주의’ 주장에서는 이전에 내걸었던 마음의 사회학, 사회학적 파상력, 스노비즘, 은둔주의 처럼 깊은 지적 사유와 참신한 문제의식이 느껴졌다. 하지만 서구근대성에 대한 비판을 넘어 지구생태계 전체가 겪고 있는 상황에 대한 새로운 전망을 이로부터 얻을 수 있을지는 아직 불분명해 보였다. 오늘날 기술문명의 위험 심화, 비인간적 행위자의 대두, 인간-기계-물질의 관련을 재조정하려는 포스트휴머니즘 등이 파국이란 화두를 주목하게 만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피티림 소로킨의 문명론적 접근이 그러했고 오늘날 지그문트 바우만이나 유발 하라리 등의 저작이 그러하듯, 본원적인 문명 비판이 사회학 이론 및 방법론에 의미있게 연결되기에는 빈 부분이 너무 많다. 분과학으로서의 사회학과 총체적 문명론이 첨단과학의 시대와 어떻게 결합할 수 있을지 중요한 지적 과제다.

사회학계를 포함한 학문공동체 자체도 파편화의 큰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은 시대다. . 새로 건립된 멋진 건물 8층에 정성껏 차려진 저녁 만찬장의 자리 곳곳이 비어있고 학계의 중심을 구성해온 원로, 중견 연구자들의 참여도 전과 같지 않은 듯 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다만 새로운 주제들을 붙들고 씨름하는 여러 신진 학자들의 패기와 어려운 여건에서도 세번의 학술대회를 기획한 설동훈 회장, 2027년 광주에서 개최가 결정된 세계사회학대회를 준비하는 대회위원장 장원호 교수의 수고와 열정에서 새로운 힘을 확인할 수 있어서 기뻤다. 대학 안팎의 연구자들이 더 진지하고 더 창의적이며 더 혁신적인 지적 노력에 나서야 ‘파편사회 극복’을 위한 사회학적 전망이 얻어질 것이란 생각을 하며 후학들의 열정에 박수와 성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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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진회

6월 주말을 이용해 오랫만에 보진회 모임이 경주에서 열렸다. 외조부님의 손자녀들 중심으로 서로의 우의를 돈독히 하고자 만들어진 모임이다. 언젠가는 이런 것아 필요할 것이라며 종자돈과 함께 외조부 아호를 딴 보진회를 두 분 외숙께서 주도해 만드신 때가 거의 20 년 전이다. 어머니가 외가의 맏딸이고 나는 우리 집안의 장남인 관계로 자연스레 내가 이 모임의 회장이 되었는데 제대로 회장 역할을 할 기회도 없이 세월이 흘렀다. 모두들 안팎으로 바쁘고 또 서울과 지방, 해외 등으로 흩어져 살아온 탓에 소식도 공유하기 어려웠는데 이제 이런 모임을 할 마음과 여유가 생긴 셈이다. 현직에서 은퇴하거나 곧 은퇴를 앞둔 사람들도 적지 않고 머리가 백발이 된 사람도 여럿이지만 다들 건강한 얼굴로 반갑게 회동할 수 있으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기억 속에 남아있는 수동의 외가댁은 대문과 안채, 사랑채 등이 마당을 중심으로 둘려져 있는 꽤 규모가 있는 집이었다. 외조부 송정헌 옹은 말년에 중풍으로 걸음이 다소 불편하셨지만 언제나 깔끔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성품은 온화하셨지만 손자녀들에게 냉정한 훈계의 말씀도 곧잘 하셨다. 얼굴 빛이 매우 맑았고 눈매가 선명했는데 어머니는 그런 모습이 절제된 생활습관, 특히 식습관과 관련된다며 ‘식담심쾌'(食澹心快)라는 말을 종종 하셨다. ‘먹는 것이 담백하면 마음이 상쾌하다’는 이런 생각은 자연과의 조응을 강조하는 산림처사의 정신과도 연관이 있을 법하다. 실제로 외조부는 말년에 생식을 즐기셨고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셨다. 상할아버지도 생존해 계셔서 4대가 함께 하는 대가족이었는데 그런 가정의 대소사를 뒷바라지 하느라 외조모님은 굽은 허리에도 한시도 몸을 쉬지 않는 부지런함이 몸에 밴 분이셨다.

개인화와 도시화가 급진전된 한국사회에서 친족의 유대는 현저히 약화되었다. 세대가 달라지고 사는 곳이 같지 않아 친척들 간에도 서로의 얼굴과 저녀들 이름 기억하기 어려운게 현실이다. 나는 한국의 급속한 대가족제 해체를 강의할 때면 늘 박경리가 쓴 대하소설 [토지]를 예로 들곤 한다. 1부에서는 끈끈한 친족간 유대와 마을 단위의 공동체성이 뚜렷하지만 2부와 3부로 넘어가면 그런 정서적 연결성은 해체되고 새로운 인간관계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 소설에서 낮은 신분의 길상이와 결혼한 최참판댁 손녀 서희가 만주에서 돌아와 진주에 터를 잡는 2부와 3부의 내용은 농촌 중심의 시대에서 도시 중심의 시대로, 양반지주 중심의 사회에서 돈과 권력의 사회로 바뀌어가던 변화와 정확하게 대응한다. 외조부의 3남 5녀가 살아온 시대는 식민지배, 해방, 전쟁, 독재, 경제발전, 도시화 등 20세기 변화가 고스란히 담겨있으니 토지 3, 4부 이후 어디 쯤에 속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박경리 소설을 워낙 좋아했는데 그 덕분에 [토지] 완간기념 세미나에 발제자로 참여해 평사리의 인간관계를 분석한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최참판댁과 인근 주민들의 근끈한 신뢰가 너무 미화된 것은 아닌가라는 조심스런 의견을 피력했는데 한 신문에서 ‘토지의 시대인식에 오류’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해 당혹했던 기억이 난다. 후일 박경리씨가 내 논문에 좋은 평을 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경주에서 사촌들과의 즐거운 모임을 하면서 새삼 박경리가 떠오른 것은 수동 외가댁의 분위기가 토지 1부의 정서를 떠올리게 한 데다 어머니와의 인연이 생각난 탓이다. 박경리는 어머니와 일제시대 일신여고 동기셨는데 아쉽게도 어머니와 함께 만나 이야기 나눌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

경남의 작은 시골마을의 한 집안에서 나고 자란 자녀들이 성장하여 또 다른 사람들과 가정을 이루고 한 생애를 열심히 살았다. 그 세대가 낳은 손자녀들이 성장하여 사회 곳곳에서 활동하고 그 슬하에 여러 아이들이 태어나 자라고 있다. 예전에 비해 가문의 소중함이나 혈통의 무게감이 많이 약화된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가족을 통해 이어지는 생명의 연쇄는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념 대립과 전쟁의 상처가 깊었던 서부경남에서 외가댁도 그런 수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어 슬픈 사연들이 숨어 있지만,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후손의 세대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고 기적이다. 저녁을 먹은 후 안압지를 새롭게 복원 발굴한 ‘동궁과 월지’ 를 함께 둘러보면서 나는 야경을 감상하는 즐거움보다 그런 생각에 뿌듯함을 느끼는 기분이 더 컸다. 경주를 떠나기 전 잠시 올랐던 토함산에서 멀리 동해를 바라보며 각자의 삶 속에 건강과 행복이 늘 함께 하기를 마음으로 기도했다. 뜻깊은 1박 2일의 경주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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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스바써 -7

한독통일자문회의의 공식 회의가 시작되기 앞서 독일측에서 준비한 현장 답사가 있었다. 폴란드 국경가까이에 있는 작센 주의 바이스바써라는 작은 마을을 방문하여 그 지역이 겪고 있는 여러 변화와 도전들을 경청할 기회를 가졌다. 통일후 많은 동독지역 농촌이 경험한 것과 유사한 변화를 겪었고 특히 기후변화와 관련한 독일의 그린에너지 정책의 여파로 이 지역경제가 재조정을 강요받고 있는 곳이라 한다. 답사를 안내한 베를린 자유대학의 김박사는 이곳이 복합적 위기상황을 독특한 내적 발상으로 대응하고 있는 사례여서 답사의 대상지로 선정했다고 했다.

약 2시간이 넘는 시간을 버스로 달려 도착한 곳은 자그만 하지만 깔끔해 보이는 지방도시였다. 시청에 도착해보니 회의장에 식사가 케이터링 된 상태로 준비되어 있고 시장이 브리핑을 준비해 두고 있었다. 소탈해 보이는 페취 시장은 휴일이어서인지 혼자 모든 방문객 응접과 시청 건물의 열고닫음을 감당했다. 상세하게 준비된 브리핑에서는 그의 열정과 수고가 전해졌다. 시장의 설명에 따르면 이 도시는 38천명의 주민이 살던 곳이지만 지금은 15천명 수준으로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동독의 빈곤한 농촌 10 분위 중 9분위에 속할 정도로 어려운 지역으로 평가되고 탄광산업의 사양화와 맞물려 더욱 미래가 밝지 않은 지역이다.

하지만 시장은 주민참여형 문화재생을 통해 이 도시에 새로운 활력과 비전을 만들어가고 있음을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도시중심부의 활력 구축, 네트워크 강화, 공동협력과 참여, 그리고 디지털 인프라 구축의 네 가지 중점과제를 내걸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행정체계를 일원화하고 직업교육과 각종 훈련기회를 조성하며 주거지역을 새롭게 단장함으로써 300여 가구가 귀환하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했다. 과거 유리공장이었던 공장건물에 소규모 스타트업과 벤쳐기업을 유치하고 외부의 중소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다각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현장을 가 보기도 했다. 동독 시절의 거대한 집단건물들을 해체하고 그 자리에 조성한 녹지공간을 지나며 주택과 환경사업에도 관심을 기울인다고 했다.

이 도시의 노력은 전형적인 도시재생사업이라 할만하다. 미국 뉴욕에서도 슬럼지역을 새롭게 탈바꿈하려는 노력이 추진되었고 서울에서도 성수동을 비롯한 여러 곳에 유사한 변화가 시도되었다. 군산이나 전주 등지는 특색있는 공간의 역사성을 새로운 문화관광지로 변화시킴으로써 도시의 활력을 강화하고자 한다. 상당한 성과를 거둔 곳도 있지만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으로 비용만 증대시키고 토지소유주의 이익추구 사업으로 변질되었다는 비판도 따라 다닌다. 이 도시가 고령화, 인구이동, 탈화석연료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유지되고 발전될 수 있을지는 단지 동독지역만이 아닌 21세기 인류공동체 공통의 관심사라 해도 좋을 듯 싶다. 자전거를 싣고 여러 곳을 다니며 열심히 설명하는 시장의 모습은 오늘날 지방소멸을 우려하는 한국 지방 소도시에서 벤치마킹할 만 했다.

최근 관심을 끌고 있는 극우의 부상과 관련한 에피소드도 들었다. 도시의 한 빈 건물을 이들이 무단 점거한 적이 있는데 시는 그 건물을 매입해서 해체시켰다고 한다. 과감한 대응이 다행히 좋은 결과를 거두었고 극우의 영향력을 차단하는 적극적 사례로 내세울만 했다. 다만 모든 도시가 같은 대응과 결과를 얻는다는 보장이 없어서 누군가는 이 지역이 예외적인 곳일 수도 있겠다고 했다. 현재 독일에서 극우정치를 대표하는 Alternative for Germany (AfD) 정당은 2013년에 설립된 이래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극우적, 국가주의적 가치와 이념을 중심으로 이민정책과 유럽 통합에 대한 비판을 주된 공격논리로 내세운다. 자유 시장 경제를 강조하고 이민자들에 대한 혐오와 적대성을 숨기지 않음으로써 사회적 불만과 불안정을 정치자산화 하려 한다. 이런 변화가 통일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이 도시의 사례가 보여주듯 현상적으로는 중층적으로 겹쳐 나타나고 있는 것은 사실인 듯 하다. 결국 사람이 사는 현장, 지방과 도시, 시민사회 곳곳에서 건강한 삶을 구축하기 위한 열정, 협력, 비전, 리더십이 삶의 현장을 풍요롭게 하고 극우도 잠재우는 처방이 될 것이다. 중앙집중성이 너무 강한 한국사회에 여러모로 던지는 메시지가 적지 않은 답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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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류와 통합- 6

분단된 국가에서 교류는 통합과 신뢰를 증진시키는 핵심적 통로다. 서독이 60년대 말 동방정책을 통해 동독과 다양한 접촉과 교류를 추진한 것이 90년대 동서독 통일의 마중물이 된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 동방정책을 입안했던 에곤 바가 강조했던 ‘접촉을 통한 변화’는 접촉과 교류가 가져올 긍정적 해빙효과를 잘 표현한다. 한국의 김대중 정부에서 유사한 접근을 ‘햇볕정책’이라고 이름붙였던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 가능하다. 유행가도 만나면 정이들고 좋아진다고 노래하지 않는가.

교류가 신뢰와 통합을 증진시키리라는 이 구상은 일종의 기능론적 전략을 상정한다. 쉽고 덜 민감한 영역에서의 접촉과 교류가 일단 진행되면 점차 어려운 영역에까지 신뢰가 구축될 수 있으리라는 단계론, 점진론의 근거이기도 하다. 실제로 한국의 대북정책이 오랫동안 ‘선이후난’을 강조했고 통일방안 역시 3단계의 점진적 단계론을 표방하는데 가장 중요한 기초가 교류협력이다. 역대 정부가 이런 입장에서 대북정책을 추구해왔고 민간의 대북접촉 및 교류사업이 이루어져 왔다. 손선홍 교수는 역대 정부 정책이 어떤 구상 하에서 이루어져 왔는지를 정리했는데 독일의 경험과 비교하면서 이런 단계론적 접근을 잘 보여주었다. 이광빈 기자는 민간 영역에서 이루어진 여러 교류사례들을 발제했는데 잘 알려지지 않은 에피소드적인 사례들도 소개되었다. 한편 북한을 탈출하여 한국으로 들어온 탈북자들은 독특한 형태의 접촉이자 교류에 해당되는데 이봉기 전 독일문화원장은 이들이 정착하고 활동하는 다양한 모습을 통계적으로 보여주었다. 2023년 현재는 대부분의 교류협력이 중단된 상태이고 탈북자의 숫자도 현저히 줄어든 상황이어서 교류협력을 강조하면서도 현실화되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피하긴 어려웠다.

토론과정에서 몇 독일 참석자들은 한국의 분단이 얼마나 철저한 것인가를 새삼 느낀 듯 했다. 탈북자의 숫자가 너무 적다는 사실, 남북한간에 언론이나 문화의 교류도 완전히 단절되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도 읽혔다. 아마도 60년대 동독시절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독일측 참석자 중 한두명이 분단 시기에 서독의 텔레비전을 보면서 외부의 정보를 접할 수 있었던 것이 새로운 욕망과 행동을 가능케 했다는 개인적 경험을 이야기했다. 실제로 동독인들이 서독에 대하여 가졌던 기대감은 막연한 민족감정이 아니라 매체를 통해 인지하게 된 서독의 발전상에 기인한 것이었다. 이 세션을 종합하면서 사회자는 접촉교류를 사람이나 물자 중심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정보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겠다는 코멘트를 했다. 실제 한국의 경우 교류와 접촉이 주로 인적, 물적 차원으로 이해되고 북한이 극구 반대하는 문화나 정보의 소통은 금기시되는게 현실이다. 특히 대북 전단살포를 두고 많은 대립이 있고 지난 정부에서 이를 불법화한 것을 두고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현실에서 정보의 접촉이란 쟁점은 논쟁을 불러오기 쉬운 주제다. 하지만 모든 것이 정보화하고 디지털화하며 소통과 신뢰 역시 그런 정보에 기반행 하는 21세기 상황에서 남북간의 교류협력에 정보를 적극적으로 포함해야 한다는 지적은 당연하고도 필수적인 것이 아닐까 싶다.

적대적인 상대방과의 교류와 접촉은 통상 제도화된 차원만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비공식적이고 비공개적이며 때로는 비밀스러운 접촉도 필요하다. 정부정책이나 공식접촉만이 아니라 다양한 민간영역의 자발적이고 다차원적인 접촉과 교류가 함께 해야 한다. 이런 비공식적 교류와 접촉은 합법적이고 제도적인 방식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으며 종종 비법적, 탈법적 수단들이 동원되기도 한다. 한편의 선의가 다른 편의 불법이 되는 것이 남북한 관계의 실상이다. 이점에서 교류협력에 대한 거버넌스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큰 숙제다. 모든 교류협력을 합법과 공식의 영역에 한정하면 상호신뢰와 통합의 증진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모든 형태의 교류를 장려할 수도 없고 법적으로 관할하는 것도 효율적이지 않다. 디지털 인프라와 각종 정보가 중시되는 21세기 현실에서 교류접촉의 방식과 내용도 새롭게 혁신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북한의 거부감이 심하지만 남북한 간에도 다양한 차원의 접촉, 특히 정보의 유입과 소통을 보장할 미디어 환경의 구축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다양한 차원의 남북접촉을 가능케 하면서도 자율적이고 혁신적인 활동을 유연하게 관리할 새로운 거버넌스 체제의 구축이 앞으로의 큰 숙제라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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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학의 부상 – 5

[지리의 힘]이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시대다. 탈냉전과 세계화의 조류에서 뒷켠으로 밀려난 듯 했던 지정학이 다시 각광을 받고 그에 따른 국제정치의 시각전환도 빠르게 진행 중이다. 독일과 한국이 이런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음은 굳이 설명이 필요치 않다. 20세기 분단의 역사가 국제정치와 지정학의 영향을 크게 받았던 결과이고 21세기 현재 겪고 있는 각종 도전들도 지정학적 변수와 깊이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독통일자문회의에서 지정학적 관심이 주요한 테마가 되는 것은 자연스럽고 불가피해 보인다.

유럽국가인 독일은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과 에너지난 등과 관련하여 러시아 변수에 좀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까도 생각했는데 역시 지정학적 관심의 핵심은 중국의 부상과 미중대립이었다. 에릭 발바흐 박사에 따르면 독일은 부상하는 중국과 그에 연동된 인도 태평양 국가들과의 관계를 가장 중요한 지정학적 전략지로 파악한다. 현재의 국제질서는 과도기적 징후를 보이는데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여전히 강고하지만 더 이상 충분히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상태로 제도, 규범 등에서 빈틈과 허점들이 나타나고 이 틈새를 중국이 기회로 삼고자 하는 국면이라 설명했다. 시진핑 체제의 중국이 국제규범을 따르기보다 국제질서를 중국중심으로 변경시키려 한다고 우려하면서도 독일은 중국과의 관계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중국의 행동에 대한 깊은 이해와 대안이 없이 정치적 담론에 휩싸이지 말아야 하며 ‘독자적이고 강력한 유럽식 서술구조’를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은 미국 주도의 시각과는 차별화되는 대중국 전략의 필요성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인도 태평양 지역의 안보질서는 미국이 주도하는 허브와 스포크 시스템이라고 본 발제자는 이 시스템을 중국이 흔들고 있고 미국의 동맹체제가 충분히 감당하지 못하는 틈새를 파고 들고 있는 상황으로 판단한다.

한국측에서는 이정철 교수와 김재신 대사가 한국이 처한 지정학적 현황을 발제했다. 독일에 비해 북한 변수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한국적 특수성이라 할 것이다. 이교수는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지구적 변동국면과 관련지어 한국이 처한 딜렘마를 정리했다. 기디온 로즈가 분류한 시기별 변화와 연동하여 미국외교의 중심이 변화하는 네번째 국면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부상과 북한의 도발은 심해지고 가치동맹의 방어력은 상대적으로 불충분한데 한국정부가 내건 경제안보 역시 미중 기술패권 경쟁 과정에서 한국의 리스크가 적지 않다고 보았다. 북한의 도발이 대담해짐으로써 오히려 불안정성이 강화되는 모순적 상황도 커진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어떤 방향을 취할지 아직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의 글로벌 중추국가로서의 역할론도 북한을 비롯한 지정학적 위기에 대한 평화관리의 과제해결에 어려움을 내포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김재신 대사 역시 미중 대립을 가장 핵심적인 상황변수로 간주하면서 양자택일식 논리를 지양하고 전략적 가치를 높이는 방안을 추구해야 할 것을 주문했다. 즉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하되, 가능한 중국으로부터 반발을 최소화하는 방향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지정학의 대두는 곧 국제질서의 틀이 변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그 핵심에 중국이 있고 미중대립이 있으며 한반도는 그 최전선에 해당한다. 한국으로서는 다중적인 변수를 함께 고려하는 복합적 대응이 불가피한데 외교정책은 늘 친미, 반미, 친중, 반중, 친북, 반북 등으로 단순화하는 경향이 있다. 최근 한미일 공조가 강화되고 가치동맹이 강조되면서 다시 이념적인 대립이 격화되는 추세인데 격변의 지정학 자체에 더해 오리 내부의 사고분열이 더욱 문제를 키우지 않을까 걱정이다. 신냉전이란 평가를 받을 정도의 지정학적 변화 앞에서 더 높은 수준의 지혜를 창안하고 공유할 수 있는 사고의 혁신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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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의 발명? – 4

동독이란 범주, 동독인이란 정체성은 통일 이후에 발명된 것이다 – 이번 한독통일자문회의 토론 과정에서 나온 말인데 최근 이런 시각이 독일에서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분단 시대에는 의식하지 못했던 ‘동독인’이란 범주가 오히려 통일 30년이 지나면서 ‘서독인’에 대비되는 실체로 뚜렷해지고 있다는 말이다. 동독(인)이라는 범주의 재창조는 사회경제적 차별과 ‘뒤처점’의 감정을 근거로 하여 구성된다. 독일측의 발제에서 확인되는 동독지역의 경제적 낙후, 엘리트의 부재, 기회구조의 약화, 분노의 정서 등은 암묵적으로나마 서독(인)과의 대비를 전제한다. 독일연방공화국과 독일민주공화국의 대립상태는 종식되었는데 통일독일 내부에서 동독이란 범주가 재창조되고 있다는 말은 역설적이다. 그런데 내 개인적 인상으로도 이전에 비해 이번 회의에서 동독(인)이란 표현이 더 뚜렷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결국은 동독지역이 겪는 여러 현실적 어려움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와 관련된다. 동독지역은 서독지역에 비해 총소득수준이 15% 정도 낮고 엘리트층 배출비율도 현저히 낮으며 심리적 자존감도 낮다는 것인데 이런 현실을 통일의 귀결로 평가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견해가 크게 나누어졌다. 텔칙은 당시 동독이 적극적으로 서독의 시스템 수용을 원했다는 것을 강조했다. 슈뢰더는 더욱 분명하게 소규모 동독인들의 불만이나 움직임을 동독인 전체를 대표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안된다고 했다. 당시 적극적으로 서독의 방식을 수용하려 한 동독혁명의 시대정신을 충분히 고려해서 통일을 이해해야 하며 그런 점에서 식민지화라는 표현은 신중하게 사용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글라이케 전 차관은 최근 ‘동독인’이라는 표현을 들으면 열심히 살아온 한 인간으로서 화가 난다고 했다. 도대체 2023년에 누가 동독인이란 말인가라는 그녀의 질문은 왜 이 시점에서 동서독인이라는 범주가 계속 사용되고 소비되는가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담고 있는 것으로 읽혔다.

나는 이 토론을 들으면서 북한 사람들을 만났을 때 ‘북한’이란 말을 사용하지 못했던 경험을 떠올렸다. 북한이라는 용어 자체가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남한의 시각이라고 화를 냈고 그래서 늘 북측, 또는 귀측이란 애매한 표현을 사용하곤 했다. 기실 명맥하게 이질적인 국가성을 고집하면서도 두 국가상태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나타난 임시변통인 셈이다. 어쩌면 통일이 되고 나면 저런 억지 방패도 어려워지고 북한(인)과 남한(인)이라는 범주가 더욱 분명한 실체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반도에서 북한과 남한이라는 말이 남북한간에 상호소통을 돕는 어휘로 자리잡지 못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철저한 분단과 단절의 결과일 터이다. 영남사람, 호남사람, 서울사람이라는 범주가 커다란 차별의식 없이 통용될 수 있는 것이 국가적 통합을 반영하는 것이라면, 동서독 범주가 새로이 부상하는 것은 통일독일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날 현상의 하나라 볼 수도 있다.

몇년 만에 다시 가본 포츠담 플라츠 장벽들의 그림은 빛이 바랬고 베르나우의 장벽박물관 역시 퇴락한 느낌이 물씬 들었다. 독일 통일은 이미 과거사가 되어 버린 것이다. 다만 통일을 전후하여 개개인이 겪은 변화, 이동과 좌절과 성공의 이야기들은 시민들의 일상과 인생 경험 속에 고스란히 살아 있다. 동독(인)의 담론이 최근 부상하고 있다는 것은 이런 현실의 반영이고 국가통일이라는 거시적 변화가 삶의 미시적 문제로 전환되었음을 말해준다. 동서독 정치통합의 숙제가 사회적 통합과 정체성의 문제로 이어지고 있는 것도 그런 연유일테다. 이 새로운 숙제가 유럽통합과 이주자 난민의 포용까지 포함하는 다차원적 통합과제를 안고 있다는 점이 문제를 어렵게 만든다. 동독에서 부상하는 극우 포퓰리즘의 정서는 ‘보편적 통합’에 앞서서 ‘우리부터’ 통합하라는 목소리이고 그것은 결국 종족주의적인 지향, 인종차별주의의 정서를 띠기 쉽다.

개인적으로 재개장된 독일역사박물관이 이런 쟁점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기억하려 하는지 보고 싶었다. 십여년 전 이 박물관을 둘러보면서 제국 독일의 역사서술에 비해 통일과정이 너무 소략하게 설명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었다. 다시 문을 닫고 재개장을 준비 중인데 2025년에야 문을 연다고 한다. 베를린에서 통일을 상징하는 거대한 기념물이나 떠들석한 전시관을 찾기 어려운 이유를 막연하게나마 이해할 것 같았다. 통일과정을 해석하는 다양한 경험들을 역사적 기억으로 상징화하는 것은 종종 해석의 단순화, 국가화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 특히 통일 이후의 삶을 분노와 좌절로 경험한 사람들에게 통일의 기념물보다는 그 상처를 아물게 하고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하는 비전이 더욱 긴요할 것이다. 3만여명 탈북자의 수용과정에서 적지 않은 어려움을 드러내고 외국인 정주자들과의 사회통합이 아직 초보적인 단계에 놓여있는 한국으로서 통일지향성이 여전히 민족적 정체성을 중심으로 사고되는 현실을 반성적으로 되돌아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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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과 계몽 – 3

”독일통일의 오늘“을 발표한 토마스 크뢰거 연방정치교육원 원장의 내용은 무겁고 진지했다. 어떤 의례적 서두도 없이 그는 독일통일로 인해 ‘뒤쳐진’ 사람들의 분노와 굴욕감을 이야기하는데서 발제를 시작했다. 그는 1989/1990년을 전후하여 깊은 단절과 무력감을 겪은 세대의 감정이 결코 약화되지 않고 ‘일종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처럼 깊고 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했다. 동독의 많은 낙오자들의 분노가 오늘날 극우정치를 부상시키는 원천이 되었고 독일 통일이 유럽통합의 징검다리가 되리라던 믿음과 달리 종족주의의 배타성을 확대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 분노감정의 바탕에는 속았다는 느낌, 식민지화 되었다는 굴욕감이 자리한다. 그래서 ‘우리는 민족이다’라고 외쳤던 통일 당시의 외침이 이제 ”우리부터 통합하라“는 포퓰리즘을 불러일으킨다.

그렇다면 통합을 위해 진력해온 정치교육이 이 문제를 다루는데 실패한 것인가? 발제자는 아직 갈 길이 멀고 특히 접근법에 새로운 성찰이 필요하다는 입장인 듯 했다. 정치교육은 세뇌와 선동이 아닌 성찰과 각성을 통해 자신의 잘못과 미성숙으로부터 벗어나게 돕는 것이고 그런 점에서 통합은 자발성에 기초할 수밖에 없다. 이 맥락에서 트라우마를 가져온 과거를 어떻게 대면하고 기억하는가가 중요하다고 크뢰거는 진단한다. 문화연구자 아스만은 사회적 상호작용과 문화적 의미를 형성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기억을 기능적 기억(functional memory)이라 했는데 동독의 경험과 통일의 충격을 어떻게 수용하느냐가 관건일 테다. 정치교육은 민주적 역량과 소통을 통해 건강한 기능적 기억, 집합적 해석 형성을 돕는 것이어야 한다. 그럴 때 연대감을 형성하고, 문화적 지속성과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며 과거의 경험과 상호작용하여 현재와 미래를 조직하고 지시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발제자는 통일 이후의 두 과제가 청산과 정치교육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두 작업의 성격은 매우 다르다. 청산은 과거의 잘못을 밝혀내고 책임자를 처벌하며 피해자를 회복시키는 것이다. 반면 정치교육은 다중관점적인 시각에서 모든이의 참여를 장려하고 회색지대를 허용하며 과거보다 현재에 더 많은 관심을 둘 것을 요구한다. 상이한 관점과 모호함을 용인하고 ‘많은’ 과거들이 있었음을 용납함으로써 기억의 단순화, 기억의 독점화를 방지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그러려면 순응과 반항 사이의 회색지대, 심지어 ‘독재에의 유혹’까지도 조망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나찌와 사통당 독재는 공포와 억압만으로 설명되지 않으며 사람들로 하여금 그 독재를 찬양하도록 만든 유혹의 기제도 꼭같이 밝혀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동독지역에서 발견되는 오스탈기 역시 이런 유혹심리의 연장인 셈인데 이 미묘한 독재의 구속력을 드러냄으로써 내면의 회복을 이루어내는 것이야말로 계몽과 정치교육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토론에서 나는 기억의 정치가 과거와의 화해가 아닌 새로운 갈등의 원천이 되는 경우가 없지 않음을 지적하고 어떤 조건이 더해져야 할 것인지 물었다. 발제자는 쉬운 처방은 없는 어려운 문제이지만 결국 민주주의의 역량강화가 중요하다고 했다. 동시에 기억이 분노나 좌절로 이어지지 않고 건강한 성찰로 이어지려면 유럽차원의 이주경험을 기억의 영역으로 불러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지적했다. 유럽통합의 과정에서 각 개인들이 겪은 다양한 경험들은 과거를 독일민족이나 백인중심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편향을 벗어나게 도와준다. 이런 다중적 경험, 혼성적 기억을 통해 ‘독일중심 역사서술’과 싸우는 것이 가능해 진다. 사회는 점점 더 혼종적으로 되어가고 그 과정에서 독일은 새롭게 재구성되고 있는 바, 이런 다양한 기억을 수용함으로써 기억의 정치가 승자중심으로 단순화하거나 집단화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럴 때에야 기억의 정치가 ‘미래를 마주’할 민주적 역량을 강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이 발제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분석적이면서도 문제의식이 분명하고 비판적이면서도 균형잡혀있다. 통일을 주요한 성취로 수용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좌절하고 실패한 사람들의 스토리에도 사회적 기억의 정당한 자리를 부여하려 한다. 혐오와 분노의 감정이 어떤 뿌리에서 연유했는지를 냉정히 분석하면서, 그러나 역시 계몽과 성찰이라는 오랜 교육철학의 신념을 부정하지 않는 입장을 견지한다. 회색지대와 애매함을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이 민주주의와 성숙함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속적인 애씀이 필요함을 역설한 것인데 이런 작업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오늘 독일의 깊은 갈등들이 여실히 보여준다. 과연 계몽이라는 칸트적 교육론이 감정과 정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라는 나의 질문에 속시원한 대답을 듣진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찰과 계몽을 향한 진지한 고민을 산출할 수 있는 독일은 타산지석이 아닐 수 없다. 남북한의 대립과 논란, 통일을 향한 민족감성의 이중성, 국내 정치의 이데올로기로 활용되는 단순화 논리, 여전히 민족주의 정서를 벗어나지 못하는 통일론의 한계 등..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사실 이 부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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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않은 길 – 2

‘독일역사박물관’ 에서 전시 중인 “가지 않은 길” (Roads not Taken) 기획전을 관람했다. 유명한 프루스트의 시 제목과 동일한 주제를 통해 “실현되지 않은 역사적 가능성”을 생각하자는 의도라 했다. 통상 역사박물관의 전시는 연대기 순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인데 이 전시는 현재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독특한 방식이었다. 1989년 독일통일에서 시작하여 1848년의 혁명기 까지 주요 사건들을 계기적으로 전시하고 있는데 각각의 사건들은 이후 역사전개의 분기점으로 해석된다. 그 사건들 속에는 동방정책, 베를린 장벽 설치, 냉전과 나찌즘, 1차 세계대전이 있고 전시 속에서 한국전쟁도 바이마르 공화국도 만나게 된다. 유럽과 세계의 역사를 어느 정도 알지 못하면 맥락을 찾아내기조차 쉽지 않은 전시형태여서 일견 당혹스러우면서도 신선하고 흥미로왔다.

전시를 알리는 소개문에는 라파엘 그로스 관장의 다음과 같은 말이 적혀있다. “모든 역사학자는 왜 역사가 다른 방향으로 가지 않고 이미 이루어진 방향으로 오게 되었는지를 묻고 통상 그 지점에서 멈춘다. 일반인도 그 지점 이상을 나가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전시는 감히 다른 방향으로의 역사도 가능했음을 보여주려 한다.” “순간적인 열림” (momentary opening)이 드러난 역사적 국면과 계기들을 되돌아보면서 실현되지 않았지만 가능성의 영역으로 남아 있던 길이 무엇이었는지를 상상해 보자는 것이다. 예컨대 1989년의 시점에서 공산당 정부의 개혁을 요구했던 동독인민의 열정이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고 마침내 동서독을 통합시키는 평화통일로 이어졌는데 과연 이 흐름은 필연적으로 정해진 경로였을까? 다른 길로 이어질 계기나 무력충돌의 가능성은 없었을까를 묻는 것이다.

다른 가능성을 상상한다는 것이 우리 마음대로 역사경로를 선택할 수 있었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이 전시 브로셔에는 역사학자 Dan Diner의 다음과 같은 말이 실려있다. “이 전시는 다른 경로나 허구적 역사에 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목적은 여러 가능성을 살펴봄으로써 실제로 진행된 역사과정에 대한 더욱 명증한 시각을 얻으려는 것이다.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들을 살펴봄으로써 실현된 역사를 보다 잘 이해힐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미래에도 여러 가능성이 존재하지만 모든 것이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우리의 선택과 그에 따른 기회비용, 공동의 부담을 치루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막연한 기대나 무책임한 허구의 역사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현실로 이어지게 된 진정한 요인과 기회비용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긴요하다는 메시지가 마음에 와 닿는다.

미래의 경로도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방향이 선택 가능한 것도 아니다. 원하는 방향으로 역사가 진행될 수 있도록 여건을 준비하는 노력 속에서 싹트는 것이 가능성이다. 단순한 기대나 무책임한 허구와 구별되는 가능성의 포착, 막연한 목표를 실현가능한 영역으로 이끌어낼 역량이 국가의 가장 고급한 능력일테다. ‘역사적 가능성’ 그 자체가 다양한 변수의 결합으로 구성되는 것이고 준비하고 기획하며 책임지는 행동의 결과값임을 깨우칠 필요가 있겠다. 역사를 본다는 것은 곧 미래를 보는 일이고 그것은 다시 현재의 책임이기도 하다. “가지 않은 길”은 “선택하지 않은 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니 그만큼 기회비용에 대한 선택의 무거움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