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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강

23년도 2학기가 개강했다. 무더위와 폭우로 정신없었던 기간이었지만 그래도 방학은 쉼과 여유의 시간이었다. 이제 다시 수업을 위해 광주를 오가고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 과목의 내용을 채우고 스스로 만족할만한 강의를 해야 한다는 부담이 없지 않지만 기대가 되고 새로운 열정이 솟구치기도 한다. 감사한 일이다.

동양고전의 하나인 [대학]의 한 귀절을 화선지에 써서 연구실에 걸어두었다. “格物致知 誠意精心 修身濟家治國平天下” – 곰곰 생각하면 학자가 평생 좌우명으로 할만한 내용이다. 사물의 궁극적 이치를 물어 깨닫고 지극한 뜻과 맑은 마음을 지키는 것 (格物致知 誠意精心) 은 학문의 본령을 이르는 말이다. 스스로의 몸을 닦고 집안을 보살피며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의 평화를 구한다 (修身濟家治國平天下) – 학자의 할 바를 쓴 내용이다. 학문함과 학자됨의 두 차원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가르침이다.

서울대를 정년한 후 다시 주어진 GIST 에서의 강의기회를 나는 이전생활의 연속이 아닌 새로운 질적 전환으로 받아들이려 애쓰는 중이다. 익숙하고 몸에 밴 내용과 방식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내용을 새로운 형식으로 가르치고 싶다. 강의 이전에 학습과 공부를 우선하고 학생들에 앞서 내 자신이 나날이 새로워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를 설득할 수 있고 내 아들에게 조언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면 어떻게 학생들에게 힘있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인가 – 생각은 절실한데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이 문제다. 다만 지난 학기에 비해 조금은 더 나아지기를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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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ST 새출발

광주과학기술원이 새출발 준비로 바쁘다. 제9대 총장으로 임기철 박사가 선임된 후 새로운 보직자들로 대학 거버넌스 진용이 갖추어졌고 8월 16일엔 총장취임식이 예정되어 있다. 리더십 혼란으로 내부 갈등이 지속되면서 학내에 안타까움과 자괴감이 커지던 상황을 지켜본 나로서는 무엇보다 반갑고 기쁜 일이다. 임 신임총장은 과학기술정책 전반에 오랜 경험과 경륜을 갖춘 분인만큼 대학을 일신하고 업그레이드하는 역할을 잘 감당하리라는 기대감이 크다.

2019년 보스턴에서 보낸 안식년 기간은 21세기 과학기술의 발전이 대학과 지역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를 절감한 소중한 기회였다. 30년 전과 큰 차이가 없는 하바드 스퀘어 주변과 상전벽해라 할 정도로 달라진 MIT 주변지역의 놀라운 대비가 내겐 특히 인상적이었다. 실제로 MIT가 있는 켄달스퀘어는 구글, IBM, 마이크로소프트, 파이자, 모더나, 노바티스와 같은 세계적 기업들이 밀집한 첨단산업지대로 변모했다. 맥거번 뇌연구소, 코흐 암 연구센터 등 연구기관들이 함께 있는 복합, 첨단 테크노 파크로서의 역동성은 계속 확장될 것이 분명해 보였다. 2022년 자료에 의하면 투자액 270억달러, 특허 1만여개, 일자리 10,400개가 생겨났고 세계최고의 20대 바이오제약회사 중에서 19개 회사가 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무엇이 이런 변화를 추동했을까 궁금하여 여러 자료들을 찾아보면서 내가 얻은 답은 대학(지식)과 도시(인프라)와 정신(문화)의 결합된 힘이었다. 첨단과학 연구의 중심인 MIT, 혁신생태계를 만들려는 캠브리지市의 기획, 그리고 역동적 도전정신을 지닌 젊은 문화가 세 주역이었다. 대학은 창의적 교육과 도전적 연구를 격려하고 학생과 교수의 혁신을 장려했다. 이 일대를 혁신 인큐베이터로 만들기 위해 고가의 공동실험기자재가 구비된 공유랩을 설립하고 많은 신생 회사들이 큰 리스크를 피하고 창업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하바드 의대와 병원, 보건대학원은 생명공학의 좋은 환경과 기회를 제공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백신으로 유명해진 모더나를 비롯하여 이곳에서 창업하고 성장한 성공적 기업들이 적지 않다.

MIT와 하바드가 지척에 있어 인문사회학적 사유와 과학기술 연구가 고급한 상호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것도 큰 도움이었다. 1950년대 이 지역에서 꽃을 피웠던 사이버네틱스 모델은 하바드의 사회학자 파슨즈, MIT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였던 위너 등이 참여한 다학제적 논의에 기반한 것이다. 디지털 시대를 전망하고 전세계에 영향을 미친 MIT 의 문화연구자 네그로폰테의 책 Being Digital은 첨단기술과 사회문화에 대한 복합적 시야 덕택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가 설립을 주도한 MIT의 미디어랩은 인공지능, 디자인, 문화, 건축, 미학과 언어 등을 융복합적으로 다루는 대표적 연구조직이 되었다. 싱귤래리티라는 개념을 확산시킨 레이 커즈화일이나 Life 3.0 이란 책으로 생명현상을 새롭게 해석하는 물리학자 테드 마크도 과학기술과 21세기 문명을 종합적으로 다루는 연구의 대표적 사례라 할 만하다. 미국문화를 비판하는 진보적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가 MIT의 교수라는 사실도 상징적이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대단한 교육열을 자랑한다. 선진문물을 빠르게 배우고 익히는 능력이 압축근대화를 성공하게 만든 주요한 동인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발전모델과 따라잡기 전략은 효력이 현저히 감소했다. 세계환경이 달라졌고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여전히 일방적인 지식전수와 수동적인 정답찾기에 치우쳐있는 교육은 오늘 한국사회가 넘어서야 할 큰 과제가 되었다. 인공지능과 초연결이 일상화되는 시대에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하고 또 기후위기로 표현되는 인류세의 난제들에 대응하려면 심화된 전문성 못지 않게 분과학적 경계를 뛰어넘는 상상력과 횡단적인 창의력을 지닌 젊은 세대를 키워내야 한다. 교육영역의 창의적 혁신역량을 재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오늘 우리의 최우선 과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터이다.

때마침 임기철 총장이 내건 대학운영의 네가지 목표가 이런 문제의식을 포함하고 있어서 기대가 된다. “글로벌 지식자산을 창출(G : Global Asset)”하는 연구대학으로서의 역량을 높이고 “통찰이 담긴 기술혁신(I : Insight for Innovation)” 을 위해 자연과학과 인문사회학의 학제적·융합적 사고를 접목한다는 것은 과학기술대학으로서의 적절한 목표설정이다. “네가지 난제 (S : Solutions for 4 Securities)”라 할 환경 안보(Ecology), 경제 안보(Economy), 보건의료 안보(Emergency), 에너지 안보(Energy) 를 해결할 역량을 확보하고 “배려와 신뢰(T : Tolerance for Trust)”로 창업을 뒷받침한다는 것은 대학이 혁신생태계의 중심 역할을 해야 한다는 비전에 다름아니다. 이런 목표를 향한 열정과 정신이 새롭게 확산되어 켄달스퀘어에서 느끼던 그 신선한 충격과 혁신의 몸짓들이 GIST 안팎에서 넘쳐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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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전용과 문자병기

가까운 분이 한글한자병용을 주장하는 글을 보내주셨다. 필자가 우리사회의 여론주도층에 속하는 분이고 또 [한글+한자문화]라는 타이틀을 단 발간물의 권두언이기도 해서 정독을 했다. 논지의 핵심은 한글만 전용하는 우리 상황이 한국의 문화나 지식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고 때론 장애를 조성한다는 것이다. 베트남이 한자를 전면 폐기함으로써 자신들의 오랜 전통문화로부터 심한 단절을 보이고 있음을 참조사례로 꼽으면서 ‘한자병용이 최선책’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 발간물을 간행하는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가 어떤 곳인지 검색해보았는데 1998년에 출범한 설립준비위원회 명단에는 원로 언어학자들 이름도 더러 보였다. 홈페이지 첫 화면에 “한자도 위대한 우리 조상이 만든 문자, 한글과 더불어 분명히 國字다”라고 쓰여 있다.

필자가 내세우는 논거는 세가지로 요약 가능하다. 우리말의 개념어는 상당부분 한자로부터 유래한 것인데 한자를 몰라 혼동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그 첫 이유다. 어려운 개념어의 적확한 뜻을 확인하는 것이 특히 필요한 전문분야, 예컨대 법학, 의학, 철학 등에서 이런 문제가 실제로 있을 수 있다. 둘째로는 한자로 표기된 전통지식과 한자문화와의 단절이 점점 심해진다는 것이다. 한자에 대한 거리감 때문에 조선시대사를 연구하려는 학생이 줄어드는 것이나 중국 및 일본 학계와의 소통력이 줄어드는 것이 그런 예에 해당할 것이다. 셋째로는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한자를 활용하는 어려움이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이제 한자를 손으로 쓰기 위해 어려운 자획을 알아야 할 필요성이 크지 않아 훨씬 손쉽게 한자를 사용할 기술적 환경이 마련되었다는 것을 들고 있다.

한글만으로는 적확한 뜻이 전달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동음이의어 문제는 나도 종종 접한다. 실제로 전문적 영역에서 글을 쓰는 사람들 중에는 최소한의 한자 병기를 하는 경우가 제법 있고 그런 표기를 독자적으로 시행하는 언론사나 출판사도 있다. 최근에는 한자만이 아니라 외국어 전문용어를 병기할 필요성이 더 늘어나고 그런 경우들을 종종 접한다. 각종 컴퓨터 용어나 첨단기술용어가 특히 그러한데 챗 GPT4 등장 이후 논란이 되는 환각현상 (hallucination) 은 그 좋은 예다. 언어와 어휘, 문자 사이의 관계는 고정적이지 않아서 시대와 문화에 따라, 또 맥락에 따라 늘 변한다. 그런 유연성 자체가 문자의 힘이 되기도 할테니 필요한 경우 한글과 함께 한자나 외국어를 병기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한글전용으로 새로운 우리말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의미를 더 적확하게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된다. 고고학 분야에서 한자어를 우리말로 고침으로써 소통력을 높인 사례는 박물관 전시실을 가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한자병기를 하던 세대의 저서보다 한글전용 세대가 쓴 책이나 논문이 훨씬 정확하고 소통력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인터넷이나 SNS 상에서 범람하는 각종 축약어나 놀라운 유행어들도 한글세대의 창안물이다. 그 맥락을 모르는 사람들에겐 외래어같지만 그들에게는 가장 정확한 의사소통의 도구일 터이다. 현재 우리 사회가 겪는 문자표현의 여러 문제들을 한자불용의 결과만으로 환원하기보다 다양한 문화와 문자가 뒤섞이고 혼융되는 시대상황과 결부하여 종합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한자를 특별한 문자이자 문화도구로 학습하는 기회가 좀더 강화될 필요는 있다. 한자문명권에서 유래한 오랜 지식, 개념, 사유, 소통의 자산을 소홀히 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재해석할 전문가의 양성은 앞으로 더욱 필요하기 때문이다. 전통자료의 해독능력은 다양한 영역에서 상상력과 창의성을 제공하는 소중한 자산이 된다. 한자에 비전문가인 나도 옛 고전의 문장을 접하면서 21세기에 적용가능한 새로운 실마리를 찾는 흥미로운 경험을 하곤 한다. 모든 사람이 컴퓨터 프로그램을 배울 필요 없는 환경이 가능하려면 누군가는 복잡한 전산시스템과 수학의 연산과정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 마찬가지로 한자에 정통한 전문가가 지속적으로 양성되어야 우리의 문자문화도 풍성해 질 수 있을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한글전용이 거의 모든 영역에서 자리잡은 지금이야말로 한자를 포함한 다양한 문자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필요한 때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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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헌절

오늘은 제헌절이다. 1948년 정부출범을 한달 앞둔 7월 17일 마침내 신생 대한민국의 헌법이 공포되었다. 해방 이후 이념 대립과 남북 분단 상황에서 우왕좌왕하면서도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한 새 국가의 헌법을 제정할 수 있었던 것은 기적이라 할 만하다. 잘 정비된 헌법과 법률체계 하에서조차 사사건건 대립하는 정치권의 모습을 고려하면 당대 제헌국회 구성원들의 식견과 역량은 놀랍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되돌아보면 제헌절에 대한 사회적 의미부여는 점차 약화된 것 같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제헌절이 매우 중요한 국경일로 강조되었는데 지금은 언론에서조차 별반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헌법 그 자체의 비중은 더 무거워졌다. 모든 정쟁과 갈등도 헌법의 정신 아래 시시비비를 구하고 그 권위 아래 복종하는 관행이 자리잡았다. 촛불혁명의 비정상상황에서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의 제1조를 슬로건으로 내 걸 정도가 된 것이다.

북한의 김여정 부부장이 공식 발언에서 대한민국이란 정식 국호를 여러 차례 사용했다. 이것을 두고 북한이 한반도 2국가체제를 공식화하는 것이란 해석이 따랐다. 실제로 북한은 이전에 즐겨 쓰던 ‘우리민족’ 대신 ‘우리국가’를 내세우고 민족의식보다 애국주의를 강조한다. 실제 김정은 정권 이후 핵무력을 강화해온 북한이 자기 체제의 존속과 안정을 제일의 가치로 간주하는 경향은 뚜렷하다. 그 바탕에는 조선노동당을 정점으로 하는 사회주의 헌법체제와 백두혈통을 특수지위로 보장하는 수령제가 있는 바, 이런 원리가 대한민국의 헌정이념과 병립할 수 없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적어도 헌법의 차원에서 보면 한반도는 이미 두 개의 국가가 존재해 온 것이다.

그래서 열흘 후에 맞이할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의 의미를 함께 생각하게 된다. 정전협정은 한국전쟁의 잠정적 중단을 약속한 것으로 국제법상으로는 휴전의 성격을 띤다. 그것은 북한이 무력으로 적화통일을 시도한 전쟁이었는데, 정전 70년을 거치면서 한반도에는 실질적인 두 국가상태가 자리잡았다. 기본합의서는 이것을 ‘특수관계’라고 불렀지만 남북간의 이질성과 원심력이 동질화와 구심력에 비해 지속적으로 강화되어 왔다. 2023년 시점에서 정전상태에 있는 남북한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여전한 숙제다. 그것은 다시 헌법의 위상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필요로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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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사와 사회사

한국사회사학회 초기 멤버들이 신용하 교수님을 모시고 점심 식사를 함께 했다. 매년 스승의 날에 해오던 비공식 모임이 코로나를 거치면서 중단되었다가 금년에는 다행히 6월의 마지막 날 하게 된 것이다. 제주에서 조성윤, 광주에서 노치준, 충주에서 김경일, 세종에서 박명규가 올라왔고 서울에 거주하는 김필동, 이정옥, 정근식, 한영혜 교수가 함께 했다. 미리 예정되어 있던 일본 여행 탓에 황경숙 교수만 참석하지 못했다. 경향 각지에 흩어져 있던 동학들이 오랫만에 한자리에 모여 즐거운 담소로 시간가는 줄 모르는 하루를 보냈다.

점심을 하면서 신교수님의 생애사라 할만한 지난 이야기를 들었다. 여러 세대를 거쳐 유교의 가치와 덕목을 가르쳐온 제주의 훈장가문이었고, 유배온 육지의 지식인들이 으례 인사를 하러 올 정도로 명망이 있던 집안이었으며, 집터에 훗날 사찰이 지어질 정도로 집의 규모도 크고 경제적으로도 유복했으나 근대화의 흐름과는 달리 위정척사적 사상과 전통적 가치를 고수하려 한 집안이었다는 이야기는 흥미롭고 새로웠다. 부친이 유교적 가치관과 정감록의 영향을 받아 피난지로 이사를 다닌 일, 그로 인해 학교를 제때 가지 못하고 집안일을 도우며 독학을 해야 했던 어린 시절, 그 가운데서도 배우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과 노력으로 대학입시를 준비한 것은 불굴의 의지로 성공한 위인의 스토리와 닮았다. 이미 중고등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한 상황에서 집안 친척과 지인들의 도움으로 상업고등학교 야간에 편입 후 졸업한 일, 제주를 위해 일하는 인재가 되도록 그곳 대학에 진학하라는 권유를 끝내 마다하고 서울대학교 응시를 준비한 것, 탁월한 기억력과 집념어린 공부 덕택에 넉넉한 성적으로 합격한 일 등 한 편의 드라마라 해도 족할 정도로 드라마틱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서울대학교를 목표로 불굴의 향학열을 유지한 그 힘이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모두들 궁금해 했다. 개인적인 능력과 의지가 일차적으로 중요한 요인이었을 테지만 그 뜻을 존중해 여러 도움을 아끼지 않고 ‘국가를 생각하면 정치학으로, 민족을 중시하면 사회학으로’ 갈 것을 조언할 정도의 식견을 지닌 친척들이 계셨던 가문 전체의 분위기가 중요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여겨졌다. 고학 하다시피 하던 학부 초기에 ‘민족주의’ 강의에 매료되고 열정적인 답안지를 작성한 것, 학자가 되려면 절대로 정치운동에 참여하지 말고 막스 베버가 말한 ‘직업으로의 학문’에 충실하라던 최문환 교수의 가르침에 부응한 것, 상대로 자리를 옮긴 지도교수를 따라 다시 경제학 대학원으로 재입학한 것, 자신을 이끈 선생님과의 약속을 평생 지키며 살아온 일관성과 신실함 등은 위인전에서 읽을만한 장면들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내용들이었다.

흥미롭게 듣던 그 가족사의 시간대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를 거치는 한국근대사와 정확히 겹친다. 그래서 익숙한 여러 사건과 인물들, 예컨대 간재 전우와 면암 최익현, 일제 말기의 공습과 소개령, 해방 후의 4.3 사건, 한국전쟁과 빨치산 활동 등이 시대적 배경으로 소환되었다. 개인의 생애사는 가족사와 이어지고 그것은 다시 사회사와 직결된다는 것을 역동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함직 했다.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커피를 마시면서 노치준 목사가 저런 개인사, 생애사를 세밀하게 기록하거나 영상으로 남겨두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김교신의 예에서 보듯 한 개인의 생애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지속되려면 기록 자료가 필수적이라는 지적은 타당하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 뜻있는 삶을 살았으면서도 제대로된 기록을 남기지 않아 후학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사례들이 적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전기, 평전이 더 많이 쓰여질 필요가 있음은 분명하다. 다만 모든 개인사에는 사적 영역과 내밀한 상처의 흔적이 있게 마련이고 사회적 사건들과 결부하여 겪은 경험들이 각기 달라 객관적 평가와 서술이 어려워 손쉬운 작업은 아니다. 오랜 기간 일기를 써왔다는 한영혜 교수의 일기장을 보존하고 해설하는 (?) 작업부터 시작하자는 농담섞인 제안과 각자 자기 삶의 중요한 부분들을 기록하자는 다짐을 공유하는 것으로 일단 마무리했다.

개인사와 가족사, 그리고 사회사와 국가사는 서로 다른 영역을 구성하면서 또 긴밀하게 연결된다. 특히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국가와 사회의 격동이 가족과 개인의 삶을 뿌리채 뒤흔든 사례들은 부지기수다. 식민지화, 건국과 이념대립, 분단과 전쟁, 민주화, 산업화, 세계화, 정보화의 격랑에서 자유로왔던 개인이나 가족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개인으로선 이해할 수도 없고 예상할 수도 없었던 외부의 충격과 시대의 파도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감당하고 견뎌낸 모든 개인사와 가족사는 그 자체로 소중하고 존엄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다만 긴 역사적 맥락에서 각기 다른 평가와 의미부여를 받게 되는 것인만큼 미시사와 거시사의 특이한 연관과 불일치를 다루는 것이 사회사의 또다른 연구 영역이 될 터이다. 일생 학자로서의 외길을 걸으면서도 연구의 밀도나 주제의 깊이, 성과의 양, 판단의 정확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거장의 삶을 옆에서 지켜보고, 그 제자가 되어 오늘까지 온 것 자체가 참으로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함께 모인 동학들도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 모두의 생애사는 우리 당대의 시대사와 어떤 모습으로 연결되며 어떤 자취로 남을까 곰곰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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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학사협의회

6월 19-20 목포에서 광주과학기술원 기초교육학부 학사협의회가 열렸다. 부임 이래 동료 교수들과 만나 이야기 나눌 기회가 별로 없었던 나로서는 특히 반가운 모임이었다. 공식 회의에는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석학교수 신분이어서 조용히 그간의 강의와 내 연구활동을 되돌아 보았다. 코로나 팬데믹과 온라인 수업이라는 초유의 상황에서 매 강의 자체가 새로운 경험이었던 지난 2년은 여러모로 미지의 내일을 향한 탐구여행이었다. 이제 그 지적 여정에서 어디쯤 와 있는지를 점검해볼 때가 되었고 이 조용한 바닷가는 그런 성찰에 적절한 장소란 생각을 했다. 때마침 이곳에 교수회의를 하러 온 국방대학교 김병조 부총장을 오랫만에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도 뜻밖의 기쁨이었다. 내가 가르쳤던 육사 42기 교수와도 인사를 나누면서 잠시 80년대 초반 시절을 되돌아보는 여유도 가졌다.

숙소인 현대호텔에서 내려다 본 목포 앞바다 정경은 아름다왔다. 영산강 하구가 시원한 바다와 만나는 곳에는 작은 섬들이 다리와 제방으로 이어져 있어서 내륙에서 보기 어려운 독특한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다음날 해양 케이블카를 통해 유달산에 올라 내려다 본 풍경은 잿빛 하늘과 수평선이 겹쳐 마치 한폭의 수묵화를 보는 듯 했다. 배로 오가야 했을 작은 섬 고하도가 멋진 관광지구로 변신하고 있는 모습에서 간척과 개발이 이 지역에 미치는 영향을 전형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작년에 육지로 이어진 고군산열도와 광활한 새만금 일대를 둘러 보면서 개발이 가져오는 지역생태의 변화와 이에 대한 환경단체들의 문제제기를 접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곳 목포도 이순신 장군의 영웅적 행적이나 ‘목포의 눈물’의 이난영, 또는 김우진, 박화성 같은 예인의 고장임을 자랑하는 것 못지 않게 도시화, 산업화, 정보화와 맞물린 해양생태계의 변화를 어떻게 조율하고 21세기형 생활양식을 만들 것인지에 대한 미래지향적 스토리텔링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GIST 부임 이래 ‘문명으로 보는 21세기’ 과목을 개설하고 여러 쟁점을 학생들과 토론해오면서 나는 과학기술 연구와 인문사회학적 문제의식이 긴밀히 연계되어야 할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과 더불어 전지구적으로 확산된 생태위기와 디지털 문명에 대한 논란은 물론이고 최근 Chat GPT 4의 출현을 계기로 진행 중인 다학제적 토론과 대화도 그 좋은 예에 속한다. 스탠포드 대학에서 개최되었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와 인공지능 전문가 페이페이 리 사이의 토론에 대한 논평문을 학생들에게 쓰게 했을 때 대부분이 두 사람의 문제제기가 서로 다르지만 상호보완적이고 반드시 필요하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일반 종합대학에서는 전공별, 단과대학별 장벽이 높고 과학기술영역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제대로 이런 쟁점들에 대한 깊이 있는 토론이 쉽지 않은데 반해 과학기술대학이야말로 그런 논의의 최적지가 아닐까 싶다. GIST 내부의 긴장감이나 공유된 화두가 그다지 강하지 와 닿지 않는 것은 각 전공영역이나 개별 교수들의 노력을 내가 아직 잘 모른 탓이리라 생각한다.

저녁 식사 후 가진 방담 시간은 이런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는 좋은 기회였다. 다양한 연구영역간 소통과 창의적 발상을 뒷받침하고 교수들의 개별적 역량과 자부심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좀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려면 전공교육과 기초교육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분과학간의 융복합적 연구를 지원하는 대학 차원의 혁신적 거버넌스가 구축될 필요가 있다. 이 문제는 총장의 혁신적 리더십이나 정부의 정책지원에 더하여 학내 교수들로부터의 비전과 혁신이 동반되어야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사안이긴 하다. 과학기술분야와 인문사회분야, 첨단기술개발과 기초소양교육 사이에는 일정한 거리와 견해차가 있게 마련인 바 그 긴장을 어떻게 건강하고 창의적인 동력으로 전환시킬 것인가가 중요할 것이다. 현재 수학과 인문사회학이 함께 기초교육학부를 구성하고 있는데 이 모델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인지 다른 모델을 지향할 것인지도 앞으로 고민해 볼 사안이겠다. 조만간 결정될 새 총장이 유능한 리더십으로 시대적 소명에 부응할 창의적 거버넌스를 정착시켜 GIST 대도약의 계기를 마련하기를 기대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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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편사회와 사회학

2023년도 한국사회학회 학술대회가 6월 16-17일 개최되었다. 행사가 열린 전북대학교는 꼭 40년 전인 1983년 신참 교수로 부임하여 10년 넘게 봉직했던 곳이다. 내 연구실이 있었던 사회과학대학 건물을 보면서 윤근섭, 김영기, 홍성영 교수 등 오래 전 도움을 주고 받던 선배 교수들을 떠올렸고 최근 정년을 하신 김영정, 남춘호 교수, 학회를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박천웅 학과장, 대학원에서 가르쳤던 김재우 교수 등도 반갑게 만났다. 학교 캠퍼스를 한바퀴 돌며 이곳에서의 생활을 회상하니 나름 열심히 살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모저모 아쉽고 부끄러웠던 기억도 따라온다.

학술대회의 주제가 ‘파편사회와 사회적 연대’다. 설동훈 회장이 주도하여 추진하는 전북대학교 BK 연구단의 핵심 연구 테마이기도 하다. 사회학은 그 초기부터 사회통합에 관심을 가져왔는데 기실 그 바탕에는 전통적 공동체의 해체와 이질화된 개인의 아노미가 있다. 사회학은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파편화의 문제를 해결할 지혜를 탐구한 학문이라 할 수 있고 서구 근대성이라 부르는 제도와 원리들이 모두 이와 직결되어 있다. 21세기에 파편사회라는 말이 회자되는 이유는 근대사회학의 처방과 설명으로는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운 새로운 문제들을 인류가 대면하고 있기 때문일 터이다. 사실 “파편사회 극복”이라는 현수막의 화두는 더 이상 학계만의 쟁점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모든 사람들의 실존적 문제가 되었다.

전체 프레네리 세션에서는 김홍중, 신진욱, 양승훈 세 분이 파편사회의 양상을 다룬 글을 발표했다. 김홍중 교수는 지구문명 전체가 처해 있는 위기를 근원적으로 재조명하기 위해 이제는 ‘파국주의’를 이야기할 때임을 주장하면서 라뚜르를 중심으로 여러 최근 학자들의 논의를 소개했다. 신진욱 교수는 ‘다중균열’과 ‘유동하는 적대’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사회적 파편화를 설명하고 특히 정치의 표류 현상에 주목했다. 양승훈 교수는 오늘날 지방청년들이 부딪치고 있는 딜렘마를 통해 지방이란 공간과 청년이란 세대에 나타나는 구조와 주체의 불일치 현상을 설명했다. 세 발제는 그 시선이 각기 지구, 국가, 지역이라는 다른 공간성을 향하고 있지만 문제의식에서는 상호보완적으로 느껴졌다. 파편화라는 현상이 정말 문명적이고 근본적인 흐름이라면 거시적 차원과 미시적 차원이 함께 다루어져야 할텐데 근대문명과 국가사회, 그리고 생활세계 사이 사회학이 자리할 새로운 위치설정을 어떻게 할지가 어렵고도 시급한 과제가 아닐까 여겨졌다.

광주과학기술원에서 ‘문명으로 보는 21세기’라는 강좌를 개설하고 학생들과 관련 쟁점들을 탐색해오고 있는 나로서는 문명적인 시각을 강조한 발제와 토론에 좀더 관심이 갔다. 구순을 바라보는 연세에도 왕성한 지적 탐색을 계속하시는 김경동 교수는 기조강연을 통해 동양적 지혜가 파국사회를 넘어설 문명적 자원이 될 수 있으리라는 주장을 했다. 흥미롭고 중요한 주제인데 현대 중국의 문명론적 점검을 포함한 여러 부문의 검토가 더해져야 할 듯 싶었다. 김홍중 교수가 내건 ‘파국주의’ 주장에서는 이전에 내걸었던 마음의 사회학, 사회학적 파상력, 스노비즘, 은둔주의 처럼 깊은 지적 사유와 참신한 문제의식이 느껴졌다. 하지만 서구근대성에 대한 비판을 넘어 지구생태계 전체가 겪고 있는 상황에 대한 새로운 전망을 이로부터 얻을 수 있을지는 아직 불분명해 보였다. 오늘날 기술문명의 위험 심화, 비인간적 행위자의 대두, 인간-기계-물질의 관련을 재조정하려는 포스트휴머니즘 등이 파국이란 화두를 주목하게 만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피티림 소로킨의 문명론적 접근이 그러했고 오늘날 지그문트 바우만이나 유발 하라리 등의 저작이 그러하듯, 본원적인 문명 비판이 사회학 이론 및 방법론에 의미있게 연결되기에는 빈 부분이 너무 많다. 분과학으로서의 사회학과 총체적 문명론이 첨단과학의 시대와 어떻게 결합할 수 있을지 중요한 지적 과제다.

사회학계를 포함한 학문공동체 자체도 파편화의 큰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은 시대다. . 새로 건립된 멋진 건물 8층에 정성껏 차려진 저녁 만찬장의 자리 곳곳이 비어있고 학계의 중심을 구성해온 원로, 중견 연구자들의 참여도 전과 같지 않은 듯 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다만 새로운 주제들을 붙들고 씨름하는 여러 신진 학자들의 패기와 어려운 여건에서도 세번의 학술대회를 기획한 설동훈 회장, 2027년 광주에서 개최가 결정된 세계사회학대회를 준비하는 대회위원장 장원호 교수의 수고와 열정에서 새로운 힘을 확인할 수 있어서 기뻤다. 대학 안팎의 연구자들이 더 진지하고 더 창의적이며 더 혁신적인 지적 노력에 나서야 ‘파편사회 극복’을 위한 사회학적 전망이 얻어질 것이란 생각을 하며 후학들의 열정에 박수와 성원을 보낸다.

activities · life · 오늘의 화두

보진회

6월 주말을 이용해 오랫만에 보진회 모임이 경주에서 열렸다. 외조부님의 손자녀들 중심으로 서로의 우의를 돈독히 하고자 만들어진 모임이다. 언젠가는 이런 것아 필요할 것이라며 종자돈과 함께 외조부 아호를 딴 보진회를 두 분 외숙께서 주도해 만드신 때가 거의 20 년 전이다. 어머니가 외가의 맏딸이고 나는 우리 집안의 장남인 관계로 자연스레 내가 이 모임의 회장이 되었는데 제대로 회장 역할을 할 기회도 없이 세월이 흘렀다. 모두들 안팎으로 바쁘고 또 서울과 지방, 해외 등으로 흩어져 살아온 탓에 소식도 공유하기 어려웠는데 이제 이런 모임을 할 마음과 여유가 생긴 셈이다. 현직에서 은퇴하거나 곧 은퇴를 앞둔 사람들도 적지 않고 머리가 백발이 된 사람도 여럿이지만 다들 건강한 얼굴로 반갑게 회동할 수 있으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기억 속에 남아있는 수동의 외가댁은 대문과 안채, 사랑채 등이 마당을 중심으로 둘려져 있는 꽤 규모가 있는 집이었다. 외조부 송정헌 옹은 말년에 중풍으로 걸음이 다소 불편하셨지만 언제나 깔끔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성품은 온화하셨지만 손자녀들에게 냉정한 훈계의 말씀도 곧잘 하셨다. 얼굴 빛이 매우 맑았고 눈매가 선명했는데 어머니는 그런 모습이 절제된 생활습관, 특히 식습관과 관련된다며 ‘식담심쾌'(食澹心快)라는 말을 종종 하셨다. ‘먹는 것이 담백하면 마음이 상쾌하다’는 이런 생각은 자연과의 조응을 강조하는 산림처사의 정신과도 연관이 있을 법하다. 실제로 외조부는 말년에 생식을 즐기셨고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셨다. 상할아버지도 생존해 계셔서 4대가 함께 하는 대가족이었는데 그런 가정의 대소사를 뒷바라지 하느라 외조모님은 굽은 허리에도 한시도 몸을 쉬지 않는 부지런함이 몸에 밴 분이셨다.

개인화와 도시화가 급진전된 한국사회에서 친족의 유대는 현저히 약화되었다. 세대가 달라지고 사는 곳이 같지 않아 친척들 간에도 서로의 얼굴과 저녀들 이름 기억하기 어려운게 현실이다. 나는 한국의 급속한 대가족제 해체를 강의할 때면 늘 박경리가 쓴 대하소설 [토지]를 예로 들곤 한다. 1부에서는 끈끈한 친족간 유대와 마을 단위의 공동체성이 뚜렷하지만 2부와 3부로 넘어가면 그런 정서적 연결성은 해체되고 새로운 인간관계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 소설에서 낮은 신분의 길상이와 결혼한 최참판댁 손녀 서희가 만주에서 돌아와 진주에 터를 잡는 2부와 3부의 내용은 농촌 중심의 시대에서 도시 중심의 시대로, 양반지주 중심의 사회에서 돈과 권력의 사회로 바뀌어가던 변화와 정확하게 대응한다. 외조부의 3남 5녀가 살아온 시대는 식민지배, 해방, 전쟁, 독재, 경제발전, 도시화 등 20세기 변화가 고스란히 담겨있으니 토지 3, 4부 이후 어디 쯤에 속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박경리 소설을 워낙 좋아했는데 그 덕분에 [토지] 완간기념 세미나에 발제자로 참여해 평사리의 인간관계를 분석한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최참판댁과 인근 주민들의 근끈한 신뢰가 너무 미화된 것은 아닌가라는 조심스런 의견을 피력했는데 한 신문에서 ‘토지의 시대인식에 오류’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해 당혹했던 기억이 난다. 후일 박경리씨가 내 논문에 좋은 평을 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경주에서 사촌들과의 즐거운 모임을 하면서 새삼 박경리가 떠오른 것은 수동 외가댁의 분위기가 토지 1부의 정서를 떠올리게 한 데다 어머니와의 인연이 생각난 탓이다. 박경리는 어머니와 일제시대 일신여고 동기셨는데 아쉽게도 어머니와 함께 만나 이야기 나눌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

경남의 작은 시골마을의 한 집안에서 나고 자란 자녀들이 성장하여 또 다른 사람들과 가정을 이루고 한 생애를 열심히 살았다. 그 세대가 낳은 손자녀들이 성장하여 사회 곳곳에서 활동하고 그 슬하에 여러 아이들이 태어나 자라고 있다. 예전에 비해 가문의 소중함이나 혈통의 무게감이 많이 약화된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가족을 통해 이어지는 생명의 연쇄는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념 대립과 전쟁의 상처가 깊었던 서부경남에서 외가댁도 그런 수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어 슬픈 사연들이 숨어 있지만,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후손의 세대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고 기적이다. 저녁을 먹은 후 안압지를 새롭게 복원 발굴한 ‘동궁과 월지’ 를 함께 둘러보면서 나는 야경을 감상하는 즐거움보다 그런 생각에 뿌듯함을 느끼는 기분이 더 컸다. 경주를 떠나기 전 잠시 올랐던 토함산에서 멀리 동해를 바라보며 각자의 삶 속에 건강과 행복이 늘 함께 하기를 마음으로 기도했다. 뜻깊은 1박 2일의 경주여행이었다.

activities · life · 시공간 여행

바이스바써 -7

한독통일자문회의의 공식 회의가 시작되기 앞서 독일측에서 준비한 현장 답사가 있었다. 폴란드 국경가까이에 있는 작센 주의 바이스바써라는 작은 마을을 방문하여 그 지역이 겪고 있는 여러 변화와 도전들을 경청할 기회를 가졌다. 통일후 많은 동독지역 농촌이 경험한 것과 유사한 변화를 겪었고 특히 기후변화와 관련한 독일의 그린에너지 정책의 여파로 이 지역경제가 재조정을 강요받고 있는 곳이라 한다. 답사를 안내한 베를린 자유대학의 김박사는 이곳이 복합적 위기상황을 독특한 내적 발상으로 대응하고 있는 사례여서 답사의 대상지로 선정했다고 했다.

약 2시간이 넘는 시간을 버스로 달려 도착한 곳은 자그만 하지만 깔끔해 보이는 지방도시였다. 시청에 도착해보니 회의장에 식사가 케이터링 된 상태로 준비되어 있고 시장이 브리핑을 준비해 두고 있었다. 소탈해 보이는 페취 시장은 휴일이어서인지 혼자 모든 방문객 응접과 시청 건물의 열고닫음을 감당했다. 상세하게 준비된 브리핑에서는 그의 열정과 수고가 전해졌다. 시장의 설명에 따르면 이 도시는 38천명의 주민이 살던 곳이지만 지금은 15천명 수준으로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동독의 빈곤한 농촌 10 분위 중 9분위에 속할 정도로 어려운 지역으로 평가되고 탄광산업의 사양화와 맞물려 더욱 미래가 밝지 않은 지역이다.

하지만 시장은 주민참여형 문화재생을 통해 이 도시에 새로운 활력과 비전을 만들어가고 있음을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도시중심부의 활력 구축, 네트워크 강화, 공동협력과 참여, 그리고 디지털 인프라 구축의 네 가지 중점과제를 내걸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행정체계를 일원화하고 직업교육과 각종 훈련기회를 조성하며 주거지역을 새롭게 단장함으로써 300여 가구가 귀환하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했다. 과거 유리공장이었던 공장건물에 소규모 스타트업과 벤쳐기업을 유치하고 외부의 중소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다각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현장을 가 보기도 했다. 동독 시절의 거대한 집단건물들을 해체하고 그 자리에 조성한 녹지공간을 지나며 주택과 환경사업에도 관심을 기울인다고 했다.

이 도시의 노력은 전형적인 도시재생사업이라 할만하다. 미국 뉴욕에서도 슬럼지역을 새롭게 탈바꿈하려는 노력이 추진되었고 서울에서도 성수동을 비롯한 여러 곳에 유사한 변화가 시도되었다. 군산이나 전주 등지는 특색있는 공간의 역사성을 새로운 문화관광지로 변화시킴으로써 도시의 활력을 강화하고자 한다. 상당한 성과를 거둔 곳도 있지만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으로 비용만 증대시키고 토지소유주의 이익추구 사업으로 변질되었다는 비판도 따라 다닌다. 이 도시가 고령화, 인구이동, 탈화석연료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유지되고 발전될 수 있을지는 단지 동독지역만이 아닌 21세기 인류공동체 공통의 관심사라 해도 좋을 듯 싶다. 자전거를 싣고 여러 곳을 다니며 열심히 설명하는 시장의 모습은 오늘날 지방소멸을 우려하는 한국 지방 소도시에서 벤치마킹할 만 했다.

최근 관심을 끌고 있는 극우의 부상과 관련한 에피소드도 들었다. 도시의 한 빈 건물을 이들이 무단 점거한 적이 있는데 시는 그 건물을 매입해서 해체시켰다고 한다. 과감한 대응이 다행히 좋은 결과를 거두었고 극우의 영향력을 차단하는 적극적 사례로 내세울만 했다. 다만 모든 도시가 같은 대응과 결과를 얻는다는 보장이 없어서 누군가는 이 지역이 예외적인 곳일 수도 있겠다고 했다. 현재 독일에서 극우정치를 대표하는 Alternative for Germany (AfD) 정당은 2013년에 설립된 이래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극우적, 국가주의적 가치와 이념을 중심으로 이민정책과 유럽 통합에 대한 비판을 주된 공격논리로 내세운다. 자유 시장 경제를 강조하고 이민자들에 대한 혐오와 적대성을 숨기지 않음으로써 사회적 불만과 불안정을 정치자산화 하려 한다. 이런 변화가 통일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이 도시의 사례가 보여주듯 현상적으로는 중층적으로 겹쳐 나타나고 있는 것은 사실인 듯 하다. 결국 사람이 사는 현장, 지방과 도시, 시민사회 곳곳에서 건강한 삶을 구축하기 위한 열정, 협력, 비전, 리더십이 삶의 현장을 풍요롭게 하고 극우도 잠재우는 처방이 될 것이다. 중앙집중성이 너무 강한 한국사회에 여러모로 던지는 메시지가 적지 않은 답사였다.

activities

교류와 통합- 6

분단된 국가에서 교류는 통합과 신뢰를 증진시키는 핵심적 통로다. 서독이 60년대 말 동방정책을 통해 동독과 다양한 접촉과 교류를 추진한 것이 90년대 동서독 통일의 마중물이 된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 동방정책을 입안했던 에곤 바가 강조했던 ‘접촉을 통한 변화’는 접촉과 교류가 가져올 긍정적 해빙효과를 잘 표현한다. 한국의 김대중 정부에서 유사한 접근을 ‘햇볕정책’이라고 이름붙였던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 가능하다. 유행가도 만나면 정이들고 좋아진다고 노래하지 않는가.

교류가 신뢰와 통합을 증진시키리라는 이 구상은 일종의 기능론적 전략을 상정한다. 쉽고 덜 민감한 영역에서의 접촉과 교류가 일단 진행되면 점차 어려운 영역에까지 신뢰가 구축될 수 있으리라는 단계론, 점진론의 근거이기도 하다. 실제로 한국의 대북정책이 오랫동안 ‘선이후난’을 강조했고 통일방안 역시 3단계의 점진적 단계론을 표방하는데 가장 중요한 기초가 교류협력이다. 역대 정부가 이런 입장에서 대북정책을 추구해왔고 민간의 대북접촉 및 교류사업이 이루어져 왔다. 손선홍 교수는 역대 정부 정책이 어떤 구상 하에서 이루어져 왔는지를 정리했는데 독일의 경험과 비교하면서 이런 단계론적 접근을 잘 보여주었다. 이광빈 기자는 민간 영역에서 이루어진 여러 교류사례들을 발제했는데 잘 알려지지 않은 에피소드적인 사례들도 소개되었다. 한편 북한을 탈출하여 한국으로 들어온 탈북자들은 독특한 형태의 접촉이자 교류에 해당되는데 이봉기 전 독일문화원장은 이들이 정착하고 활동하는 다양한 모습을 통계적으로 보여주었다. 2023년 현재는 대부분의 교류협력이 중단된 상태이고 탈북자의 숫자도 현저히 줄어든 상황이어서 교류협력을 강조하면서도 현실화되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피하긴 어려웠다.

토론과정에서 몇 독일 참석자들은 한국의 분단이 얼마나 철저한 것인가를 새삼 느낀 듯 했다. 탈북자의 숫자가 너무 적다는 사실, 남북한간에 언론이나 문화의 교류도 완전히 단절되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도 읽혔다. 아마도 60년대 동독시절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독일측 참석자 중 한두명이 분단 시기에 서독의 텔레비전을 보면서 외부의 정보를 접할 수 있었던 것이 새로운 욕망과 행동을 가능케 했다는 개인적 경험을 이야기했다. 실제로 동독인들이 서독에 대하여 가졌던 기대감은 막연한 민족감정이 아니라 매체를 통해 인지하게 된 서독의 발전상에 기인한 것이었다. 이 세션을 종합하면서 사회자는 접촉교류를 사람이나 물자 중심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정보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겠다는 코멘트를 했다. 실제 한국의 경우 교류와 접촉이 주로 인적, 물적 차원으로 이해되고 북한이 극구 반대하는 문화나 정보의 소통은 금기시되는게 현실이다. 특히 대북 전단살포를 두고 많은 대립이 있고 지난 정부에서 이를 불법화한 것을 두고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현실에서 정보의 접촉이란 쟁점은 논쟁을 불러오기 쉬운 주제다. 하지만 모든 것이 정보화하고 디지털화하며 소통과 신뢰 역시 그런 정보에 기반행 하는 21세기 상황에서 남북간의 교류협력에 정보를 적극적으로 포함해야 한다는 지적은 당연하고도 필수적인 것이 아닐까 싶다.

적대적인 상대방과의 교류와 접촉은 통상 제도화된 차원만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비공식적이고 비공개적이며 때로는 비밀스러운 접촉도 필요하다. 정부정책이나 공식접촉만이 아니라 다양한 민간영역의 자발적이고 다차원적인 접촉과 교류가 함께 해야 한다. 이런 비공식적 교류와 접촉은 합법적이고 제도적인 방식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으며 종종 비법적, 탈법적 수단들이 동원되기도 한다. 한편의 선의가 다른 편의 불법이 되는 것이 남북한 관계의 실상이다. 이점에서 교류협력에 대한 거버넌스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큰 숙제다. 모든 교류협력을 합법과 공식의 영역에 한정하면 상호신뢰와 통합의 증진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모든 형태의 교류를 장려할 수도 없고 법적으로 관할하는 것도 효율적이지 않다. 디지털 인프라와 각종 정보가 중시되는 21세기 현실에서 교류접촉의 방식과 내용도 새롭게 혁신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북한의 거부감이 심하지만 남북한 간에도 다양한 차원의 접촉, 특히 정보의 유입과 소통을 보장할 미디어 환경의 구축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다양한 차원의 남북접촉을 가능케 하면서도 자율적이고 혁신적인 활동을 유연하게 관리할 새로운 거버넌스 체제의 구축이 앞으로의 큰 숙제라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