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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학사협의회

6월 19-20 목포에서 광주과학기술원 기초교육학부 학사협의회가 열렸다. 부임 이래 동료 교수들과 만나 이야기 나눌 기회가 별로 없었던 나로서는 특히 반가운 모임이었다. 공식 회의에는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석학교수 신분이어서 조용히 그간의 강의와 내 연구활동을 되돌아 보았다. 코로나 팬데믹과 온라인 수업이라는 초유의 상황에서 매 강의 자체가 새로운 경험이었던 지난 2년은 여러모로 미지의 내일을 향한 탐구여행이었다. 이제 그 지적 여정에서 어디쯤 와 있는지를 점검해볼 때가 되었고 이 조용한 바닷가는 그런 성찰에 적절한 장소란 생각을 했다. 때마침 이곳에 교수회의를 하러 온 국방대학교 김병조 부총장을 오랫만에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도 뜻밖의 기쁨이었다. 내가 가르쳤던 육사 42기 교수와도 인사를 나누면서 잠시 80년대 초반 시절을 되돌아보는 여유도 가졌다.

숙소인 현대호텔에서 내려다 본 목포 앞바다 정경은 아름다왔다. 영산강 하구가 시원한 바다와 만나는 곳에는 작은 섬들이 다리와 제방으로 이어져 있어서 내륙에서 보기 어려운 독특한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다음날 해양 케이블카를 통해 유달산에 올라 내려다 본 풍경은 잿빛 하늘과 수평선이 겹쳐 마치 한폭의 수묵화를 보는 듯 했다. 배로 오가야 했을 작은 섬 고하도가 멋진 관광지구로 변신하고 있는 모습에서 간척과 개발이 이 지역에 미치는 영향을 전형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작년에 육지로 이어진 고군산열도와 광활한 새만금 일대를 둘러 보면서 개발이 가져오는 지역생태의 변화와 이에 대한 환경단체들의 문제제기를 접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곳 목포도 이순신 장군의 영웅적 행적이나 ‘목포의 눈물’의 이난영, 또는 김우진, 박화성 같은 예인의 고장임을 자랑하는 것 못지 않게 도시화, 산업화, 정보화와 맞물린 해양생태계의 변화를 어떻게 조율하고 21세기형 생활양식을 만들 것인지에 대한 미래지향적 스토리텔링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GIST 부임 이래 ‘문명으로 보는 21세기’ 과목을 개설하고 여러 쟁점을 학생들과 토론해오면서 나는 과학기술 연구와 인문사회학적 문제의식이 긴밀히 연계되어야 할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과 더불어 전지구적으로 확산된 생태위기와 디지털 문명에 대한 논란은 물론이고 최근 Chat GPT 4의 출현을 계기로 진행 중인 다학제적 토론과 대화도 그 좋은 예에 속한다. 스탠포드 대학에서 개최되었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와 인공지능 전문가 페이페이 리 사이의 토론에 대한 논평문을 학생들에게 쓰게 했을 때 대부분이 두 사람의 문제제기가 서로 다르지만 상호보완적이고 반드시 필요하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일반 종합대학에서는 전공별, 단과대학별 장벽이 높고 과학기술영역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제대로 이런 쟁점들에 대한 깊이 있는 토론이 쉽지 않은데 반해 과학기술대학이야말로 그런 논의의 최적지가 아닐까 싶다. GIST 내부의 긴장감이나 공유된 화두가 그다지 강하지 와 닿지 않는 것은 각 전공영역이나 개별 교수들의 노력을 내가 아직 잘 모른 탓이리라 생각한다.

저녁 식사 후 가진 방담 시간은 이런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는 좋은 기회였다. 다양한 연구영역간 소통과 창의적 발상을 뒷받침하고 교수들의 개별적 역량과 자부심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좀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려면 전공교육과 기초교육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분과학간의 융복합적 연구를 지원하는 대학 차원의 혁신적 거버넌스가 구축될 필요가 있다. 이 문제는 총장의 혁신적 리더십이나 정부의 정책지원에 더하여 학내 교수들로부터의 비전과 혁신이 동반되어야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사안이긴 하다. 과학기술분야와 인문사회분야, 첨단기술개발과 기초소양교육 사이에는 일정한 거리와 견해차가 있게 마련인 바 그 긴장을 어떻게 건강하고 창의적인 동력으로 전환시킬 것인가가 중요할 것이다. 현재 수학과 인문사회학이 함께 기초교육학부를 구성하고 있는데 이 모델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인지 다른 모델을 지향할 것인지도 앞으로 고민해 볼 사안이겠다. 조만간 결정될 새 총장이 유능한 리더십으로 시대적 소명에 부응할 창의적 거버넌스를 정착시켜 GIST 대도약의 계기를 마련하기를 기대하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