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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류와 통합- 6

분단된 국가에서 교류는 통합과 신뢰를 증진시키는 핵심적 통로다. 서독이 60년대 말 동방정책을 통해 동독과 다양한 접촉과 교류를 추진한 것이 90년대 동서독 통일의 마중물이 된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 동방정책을 입안했던 에곤 바가 강조했던 ‘접촉을 통한 변화’는 접촉과 교류가 가져올 긍정적 해빙효과를 잘 표현한다. 한국의 김대중 정부에서 유사한 접근을 ‘햇볕정책’이라고 이름붙였던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 가능하다. 유행가도 만나면 정이들고 좋아진다고 노래하지 않는가.

교류가 신뢰와 통합을 증진시키리라는 이 구상은 일종의 기능론적 전략을 상정한다. 쉽고 덜 민감한 영역에서의 접촉과 교류가 일단 진행되면 점차 어려운 영역에까지 신뢰가 구축될 수 있으리라는 단계론, 점진론의 근거이기도 하다. 실제로 한국의 대북정책이 오랫동안 ‘선이후난’을 강조했고 통일방안 역시 3단계의 점진적 단계론을 표방하는데 가장 중요한 기초가 교류협력이다. 역대 정부가 이런 입장에서 대북정책을 추구해왔고 민간의 대북접촉 및 교류사업이 이루어져 왔다. 손선홍 교수는 역대 정부 정책이 어떤 구상 하에서 이루어져 왔는지를 정리했는데 독일의 경험과 비교하면서 이런 단계론적 접근을 잘 보여주었다. 이광빈 기자는 민간 영역에서 이루어진 여러 교류사례들을 발제했는데 잘 알려지지 않은 에피소드적인 사례들도 소개되었다. 한편 북한을 탈출하여 한국으로 들어온 탈북자들은 독특한 형태의 접촉이자 교류에 해당되는데 이봉기 전 독일문화원장은 이들이 정착하고 활동하는 다양한 모습을 통계적으로 보여주었다. 2023년 현재는 대부분의 교류협력이 중단된 상태이고 탈북자의 숫자도 현저히 줄어든 상황이어서 교류협력을 강조하면서도 현실화되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피하긴 어려웠다.

토론과정에서 몇 독일 참석자들은 한국의 분단이 얼마나 철저한 것인가를 새삼 느낀 듯 했다. 탈북자의 숫자가 너무 적다는 사실, 남북한간에 언론이나 문화의 교류도 완전히 단절되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도 읽혔다. 아마도 60년대 동독시절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독일측 참석자 중 한두명이 분단 시기에 서독의 텔레비전을 보면서 외부의 정보를 접할 수 있었던 것이 새로운 욕망과 행동을 가능케 했다는 개인적 경험을 이야기했다. 실제로 동독인들이 서독에 대하여 가졌던 기대감은 막연한 민족감정이 아니라 매체를 통해 인지하게 된 서독의 발전상에 기인한 것이었다. 이 세션을 종합하면서 사회자는 접촉교류를 사람이나 물자 중심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정보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겠다는 코멘트를 했다. 실제 한국의 경우 교류와 접촉이 주로 인적, 물적 차원으로 이해되고 북한이 극구 반대하는 문화나 정보의 소통은 금기시되는게 현실이다. 특히 대북 전단살포를 두고 많은 대립이 있고 지난 정부에서 이를 불법화한 것을 두고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현실에서 정보의 접촉이란 쟁점은 논쟁을 불러오기 쉬운 주제다. 하지만 모든 것이 정보화하고 디지털화하며 소통과 신뢰 역시 그런 정보에 기반행 하는 21세기 상황에서 남북간의 교류협력에 정보를 적극적으로 포함해야 한다는 지적은 당연하고도 필수적인 것이 아닐까 싶다.

적대적인 상대방과의 교류와 접촉은 통상 제도화된 차원만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비공식적이고 비공개적이며 때로는 비밀스러운 접촉도 필요하다. 정부정책이나 공식접촉만이 아니라 다양한 민간영역의 자발적이고 다차원적인 접촉과 교류가 함께 해야 한다. 이런 비공식적 교류와 접촉은 합법적이고 제도적인 방식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으며 종종 비법적, 탈법적 수단들이 동원되기도 한다. 한편의 선의가 다른 편의 불법이 되는 것이 남북한 관계의 실상이다. 이점에서 교류협력에 대한 거버넌스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큰 숙제다. 모든 교류협력을 합법과 공식의 영역에 한정하면 상호신뢰와 통합의 증진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모든 형태의 교류를 장려할 수도 없고 법적으로 관할하는 것도 효율적이지 않다. 디지털 인프라와 각종 정보가 중시되는 21세기 현실에서 교류접촉의 방식과 내용도 새롭게 혁신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북한의 거부감이 심하지만 남북한 간에도 다양한 차원의 접촉, 특히 정보의 유입과 소통을 보장할 미디어 환경의 구축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다양한 차원의 남북접촉을 가능케 하면서도 자율적이고 혁신적인 활동을 유연하게 관리할 새로운 거버넌스 체제의 구축이 앞으로의 큰 숙제라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