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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편사회와 사회학

2023년도 한국사회학회 학술대회가 6월 16-17일 개최되었다. 행사가 열린 전북대학교는 꼭 40년 전인 1983년 신참 교수로 부임하여 10년 넘게 봉직했던 곳이다. 내 연구실이 있었던 사회과학대학 건물을 보면서 윤근섭, 김영기, 홍성영 교수 등 오래 전 도움을 주고 받던 선배 교수들을 떠올렸고 최근 정년을 하신 김영정, 남춘호 교수, 학회를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박천웅 학과장, 대학원에서 가르쳤던 김재우 교수 등도 반갑게 만났다. 학교 캠퍼스를 한바퀴 돌며 이곳에서의 생활을 회상하니 나름 열심히 살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모저모 아쉽고 부끄러웠던 기억도 따라온다.

학술대회의 주제가 ‘파편사회와 사회적 연대’다. 설동훈 회장이 주도하여 추진하는 전북대학교 BK 연구단의 핵심 연구 테마이기도 하다. 사회학은 그 초기부터 사회통합에 관심을 가져왔는데 기실 그 바탕에는 전통적 공동체의 해체와 이질화된 개인의 아노미가 있다. 사회학은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파편화의 문제를 해결할 지혜를 탐구한 학문이라 할 수 있고 서구 근대성이라 부르는 제도와 원리들이 모두 이와 직결되어 있다. 21세기에 파편사회라는 말이 회자되는 이유는 근대사회학의 처방과 설명으로는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운 새로운 문제들을 인류가 대면하고 있기 때문일 터이다. 사실 “파편사회 극복”이라는 현수막의 화두는 더 이상 학계만의 쟁점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모든 사람들의 실존적 문제가 되었다.

전체 프레네리 세션에서는 김홍중, 신진욱, 양승훈 세 분이 파편사회의 양상을 다룬 글을 발표했다. 김홍중 교수는 지구문명 전체가 처해 있는 위기를 근원적으로 재조명하기 위해 이제는 ‘파국주의’를 이야기할 때임을 주장하면서 라뚜르를 중심으로 여러 최근 학자들의 논의를 소개했다. 신진욱 교수는 ‘다중균열’과 ‘유동하는 적대’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사회적 파편화를 설명하고 특히 정치의 표류 현상에 주목했다. 양승훈 교수는 오늘날 지방청년들이 부딪치고 있는 딜렘마를 통해 지방이란 공간과 청년이란 세대에 나타나는 구조와 주체의 불일치 현상을 설명했다. 세 발제는 그 시선이 각기 지구, 국가, 지역이라는 다른 공간성을 향하고 있지만 문제의식에서는 상호보완적으로 느껴졌다. 파편화라는 현상이 정말 문명적이고 근본적인 흐름이라면 거시적 차원과 미시적 차원이 함께 다루어져야 할텐데 근대문명과 국가사회, 그리고 생활세계 사이 사회학이 자리할 새로운 위치설정을 어떻게 할지가 어렵고도 시급한 과제가 아닐까 여겨졌다.

광주과학기술원에서 ‘문명으로 보는 21세기’라는 강좌를 개설하고 학생들과 관련 쟁점들을 탐색해오고 있는 나로서는 문명적인 시각을 강조한 발제와 토론에 좀더 관심이 갔다. 구순을 바라보는 연세에도 왕성한 지적 탐색을 계속하시는 김경동 교수는 기조강연을 통해 동양적 지혜가 파국사회를 넘어설 문명적 자원이 될 수 있으리라는 주장을 했다. 흥미롭고 중요한 주제인데 현대 중국의 문명론적 점검을 포함한 여러 부문의 검토가 더해져야 할 듯 싶었다. 김홍중 교수가 내건 ‘파국주의’ 주장에서는 이전에 내걸었던 마음의 사회학, 사회학적 파상력, 스노비즘, 은둔주의 처럼 깊은 지적 사유와 참신한 문제의식이 느껴졌다. 하지만 서구근대성에 대한 비판을 넘어 지구생태계 전체가 겪고 있는 상황에 대한 새로운 전망을 이로부터 얻을 수 있을지는 아직 불분명해 보였다. 오늘날 기술문명의 위험 심화, 비인간적 행위자의 대두, 인간-기계-물질의 관련을 재조정하려는 포스트휴머니즘 등이 파국이란 화두를 주목하게 만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피티림 소로킨의 문명론적 접근이 그러했고 오늘날 지그문트 바우만이나 유발 하라리 등의 저작이 그러하듯, 본원적인 문명 비판이 사회학 이론 및 방법론에 의미있게 연결되기에는 빈 부분이 너무 많다. 분과학으로서의 사회학과 총체적 문명론이 첨단과학의 시대와 어떻게 결합할 수 있을지 중요한 지적 과제다.

사회학계를 포함한 학문공동체 자체도 파편화의 큰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은 시대다. . 새로 건립된 멋진 건물 8층에 정성껏 차려진 저녁 만찬장의 자리 곳곳이 비어있고 학계의 중심을 구성해온 원로, 중견 연구자들의 참여도 전과 같지 않은 듯 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다만 새로운 주제들을 붙들고 씨름하는 여러 신진 학자들의 패기와 어려운 여건에서도 세번의 학술대회를 기획한 설동훈 회장, 2027년 광주에서 개최가 결정된 세계사회학대회를 준비하는 대회위원장 장원호 교수의 수고와 열정에서 새로운 힘을 확인할 수 있어서 기뻤다. 대학 안팎의 연구자들이 더 진지하고 더 창의적이며 더 혁신적인 지적 노력에 나서야 ‘파편사회 극복’을 위한 사회학적 전망이 얻어질 것이란 생각을 하며 후학들의 열정에 박수와 성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