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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테네

드디어 그리스 아테네에 왔다. 내가 파르테논 신전과 올림푸스, 제우스와 신탁의 이야기에 접한 것이 초등학교 시절이었고 그때부터 와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으니 무려 50년이 훌쩍 넘어 꿈이 이루어진 셈이다. 아테네에서의 첫 날 저녁 아크로폴리스가 올려다 보이는 아고라 광장 주변 거리 까페에서 식사를 했다. 주위엔 신나는 음악과 춤이, 광장에는 수많은 인파가 줄을 이었다. 세계 곳곳에서 온 사람들의 유쾌한 목소리와 붉은 색 조명들이 낭만적인 분위기를 더했다.

광장 위편으로 아크로폴리스의 모습이 조명 속에 드러났다. 때마침 보름달에 가까워 온 밝은 달이 휘영청 떠올라 광장과 신전, 둥근 달이 한폭의 그림처럼 어우러졌다. 이 주변에 도서관과 학당, 공연장 등이 두루 배치되어 있었으니 고대 아테네 폴리스의 진면목이 이 공간에 남아 있는 셈이다. 2천년전 이곳에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가르치고 대화하며 때론 격론을 벌었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에 뭉클한 무엇이 느껴진다.

첫날 밤 야경으로만 만족했던 아크로폴리스 방문길을 다음날 아침부터 준비했다. 시간대 별로 입장권 가격도 달라 인터넷으로 10시 예약을 했다. 비교적 이른 9시에 호텔을 나섰지만 내리쬐는 태양열은 무서울 정도였고 아무런 그늘도 없는 언덕 위에서 느끼는 열기는 참기 어려웠다. 그래도 어릴적 해외여행을 꿈꾸게 만들었던 곳에 왔다는 생각이 더위도 잊을만치 나를 들뜨게 했다. 마침내 들어가 만난 파르테논 신전은 아직 복원이 채 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어릴 적 사전으로 보았던 모습 그대로였다. 오랫동안 원형이 유지되었다는데 17세기 이 지역을 공격한 베네치아와의 전투시 튀르크군의 화약이 폭발하여 건물의 원형이 상당부분 훼손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 웅장함이나 균형미를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명불허전이라 할까.

아크로폴리스 정상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은 기원전 5세기에 아테나 여신에게 봉헌된 신전으로 건립되었다. 대리석으로 된 높은 도리아식 기둥들로 둘러싸인 전체 건축 양식은 특히 아름다와 현재 유네스코 문화유산 제1호로 등재되어 있다. 현재 진행 중인 복원공사에도 유럽연합의 재정지원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멀리 아테네 도시를 바라보는 중간언덕에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된 헤파이스토스 신전이 보인다. 파르테논 신전과 유사한 모습인데 파르테논 신전을 제일로 치는 연유 때문인지 찾는 사람이 별로 없다. 파르테논 신전의 옆으로는 규모가 제법되는 원형극장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네 명의 여신상이 벽면을 채운 또 하나의 작은 신전이 있다. 산 아래가 내려다보이는 한 모서리에는 그리스 국기가 높이 걸린 전망대가 있다. 산정의 바닥은 약한 핑크빛 색깔을 띤 바위들로 덮여있는데 반들거리는 모양으로 미루어 대리석이 아닌가 싶다.

내려오는 길에 로만 아고라와 하드리안 도서관을 둘러보았다. 원래 아테네 시민들이 모여 토론하고 공연하며 향연을 베풀기도 했던 곳은 ‘고대 아고라’였는데 그곳이 로마의 지배하에서 훼파된 이후 다시 형성된 것이 ‘로만 아고라’라 한다. 아고라라는 이름이 붙은 걸로 짐작하면 시민들이 모여 토론하고 상대를 설득하며 때로 권력을 비판하던 민주적 공론장의 역할이 계속되었던 모양이다. 도서관이 설립되어 있었고 많은 서적을 보관하고 있었다고 하니 고대 그리스 시민문화의 수준이 놀랍다. 주위 회랑의 기둥들이 여럿 남아 있는 이곳에서 많은 시민 들이 토론하고 대화하며 공론을 만들어 갔을 것이다. 더위도 식힐 겸 이 로만 아고라 문 앞에서 한참을 앉아 먼 과거로 시간여행을 해보는 즐거움을 가졌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작은 교회를 만났다. 주변 건물들에 비해 너무 작아 초라해 보이지만 독특한 건물양식과 길 모퉁이 위치가 남달라 조심스레 들어가보았다. 내부는 생각보다 화려하고 정교한 디자인과 성화들로 눈부실 정도였다. 천장의 벽화는 오랜 세월 보수되지 않아 어둡게 변색되고 부분적으로는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지만 금칠을 한 부분들, 정면의 제대 주변과 벽면의 성화는 무척 아름다왔다. 변색된 어두운 천정과 화려한 성화의 대조가 마치 기독교 문명의 찬란했던 과거와 약화된 오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고대 그리스의 문화와는 여러모로 결이 다른 기독교 문화가 이곳에 자리잡고 동로마 건립 이후에는 콘스탄티토플과 함께 그리스 정교 발상의 주요한 거점이 되었는데 15세기 이후엔 오스만 제국 하에서 이슬람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니 역동적인 역사라 할지 기구한 운명이라 해야할지 모르겠다.

이 작은 교회를 나서며 나는 소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전도여행을 떠났던 바울을 떠올렸다. 그는 이곳 아데테에서 만난 스토아 철학자들과 논쟁하면서 자신이 믿는 구원의 신앙을 열정적으로 설파했다. 바울은 아데네 사람들이 종교성이 많다고 인정하면서도 그들이 진정으로 신을 알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유일신앙을 설파했었다. 그가 열정적으로 논쟁했던 아레오바고 언덕도 이 주위 어딘가에 있으리라. 바울의 확신과 열정으로 이루어진 작은 만남이 로마를 기독교 국가로 만드는 씨앗이 되고 이곳 그리스 정교회의 형성으로 이어졌으니 참으로 경이로운 역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여전히 그리스는 정교회를 국교로 믿는 나라인데 다른 유럽 도시에 비해 눈에 띠는 교회나 성당 건물이 없고 관광안내서에도 정교회 관련 유적은 별로 나오지 않는 것이 다소 의아스러웠다.

오늘날 파르테논은 건축미학이 뛰어난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간주된다. 인류적 차원의 문화유산보존을 주도하는 유네스코가 엠블렘으로 사용할 만하다. 하지만 종교성이 없는 파르테논은 무언가 핵심이 빠진 느낌이다. 돌이켜보면 파르테논은 종교성을 핵심으로 하는 공간이었다. 원래 아테나 여신을 위한 신전이었고 비진틴 제국이 성립된 이후에는 정교회 성당으로 활용되었다. 15세기 오스만 튀르크가 이 지역을 점령한 후에는 이슬람 모스크로 변모했다. 이 과정에 내부에 있던 신상, 제대, 벽화, 성상은 훼파되고 교체되었다. 1832년 그리스가 독립한 이후에는 종교와 무관한 문화재가 되었고 이제는 탈종교화된 세계적 관광지가 되었다. 신전에서 교회로 그리고 모스크를 거쳐 문화재로 변모해오는 과정에 남은 것은 무엇이고 사라진 것은 무엇일까? 대리석 건물의 미학과 아름다움 속에 간직되어 있던 오랜 종교성과 그 교대 과정에서의 공존과 갈등은 더이상 기념할 대상이 아니어도 좋은 것일까 생각해본다.

유태인 출신으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란 저서를 쓰고 현대 정치사상에 한 획을 그은 한나 아렌트는 자유를 공적이고 시민적인 것으로 위치지으면서 아테네 폴리스를 소환했다. 과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지혜, 아고라의 민주정치가 이 시대에 필요한 시민들의 참여정신과 집단 숙의의 유산으로 부활할 수 있을까? 중세 르네상스는 고대 그리스의 정신과 예술을 되살리면서 새로운 문예부흥을 주도했는데 21세기 르네상스를 다시 꽃피울 전통은 어디서 찾아질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에 답하려면 파르테논 신전과 아고라 광장을 고고학적 유적으로만 바라보는 눈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된다. 그 공간의 안팎에서 살아 숨쉬었을 풍부한 종교성, 예술적 감성, 인류적 지혜의 유산들을 상상할 수 있는 안목이 필수적이다. 그게 쉬울 리 없는 내 안목의 협소함이 안타깝지만 아테네 방문의 꿈이 이루어진 것을 기뻐하며 잠시나마 인류적 차원에서의 미학과 숭고함을 상상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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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차 세계코리아포럼

제25차 세계코리아포럼 (WKF)이 8월 14, 15 양일간 이스탄불 공과대학에서 개최되었다. “글로벌 대전환과 한반도의 대응”을 주제로 총 7개 세션에서 40여편의 발제와 패널, 토론이 이어졌고 마지막 행사로 국악 공연도 있었다. 미국, 중국, 러시아, 유럽, 일본 등 전세계에서 온 50여명의 전문가들이 최근 세계정세의 변화와 한반도 문제를 중심으로 의견을 교환하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4반세기의 기간동안 주요국 전문가들이 매년 만나 한반도 문제를 토론하고 의견을 조율해온 이 포럼은 보기 드문 민간주도 지식인포럼의 한 사례라 할 만하다.

제1회 모임이 2000년 뉴욕에서 “남북정상회담과 동북아 신질서”를 주제로 개최되었던 것에서 알 수 있듯 이 포럼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만난 남북정상회담이 자리한다. 그 이후 전개된 남북한 협력과 교류, 한반도 평화정착을 향한 전세계의 공조가 이 포럼의 성장과 발전의 조건으로 작용한 셈이다. 물론 이창주 의장의 헌신적 수고와 주위의 협력이 일차적인 동력이었지만 탈냉전기 한반도 주변상황이 이런 만남을 가능케 해준 긍정적인 배후환경의 도움도 부인할 수 없다. 참석자들의 국적과 전공, 배경이 서로 달라도 전문가들의 의사소통과 국제협력의 가능성을 공유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남북간의 협력과 화해, 평화와 통일이라는 큰 지향에 공감할 수 있었던 것도 이 포럼이 지속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지난 수년간 남북관계가 악화되고 국제정세가 달라지며 국내의 정치지형과 국민정서에 적지 않은 변화가 일어났다. 북핵위기가 고조화되는 가운데 남북간 협력과 화해의 기조가 현저히 약화되었고 북한정권 및 남북협력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훨씬 차가와졌다. 북한은 ‘적대적 2국가론’을 주창하고 러시아와 새로운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수립하면서 선대 이래의 남북 교류와 상호협력을 단절했다. 미중간 패권대립과 상호긴장이 커지고 한미일 공조가 기술경제 차원을 넘어 군사분야에까지 확대되면서 신냉전이란 시각도 커지고 있다. 유럽에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2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전쟁의 여파가 다시금 안보불안, 이념적 대결, 민주주의 위기의식을 불러온다. 요동치는 국제정세의 충돌지점으로 한반도나 양안이 심심찮게 언급될 정도로 실질적인 전쟁 우려조차 나타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런 사정을 반영하듯 이번 모임에서는 학자들 사이의 견해 차이가 두드러졌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측 발제자들은 자국의 입장을 반영하여 한국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쏟아냈다. 어쩌면 신냉전은 담론의 장에서 더 먼저 형성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미국측 6자회담 대북특사를 지낸 조셉 디트라니는 미리 보낸 원고에서 북한의 더욱 대담해진 위협을 언급하면서 북한은 단지 한국에의 위협에 그치지 않고 동북아 지정학적 불안의 핵심임을 지적했다. 이제는 중국이 적절한 행동을 해야 할 때임을 강조했다. 그린 포드 전 유럽의회 10선의원이자 아시아 투트랙포럼 대표는 달라지는 지정학적 상황에서 북한이 어떤 임장에 놓여있는지를 검토하면서 약자로서의 블러핑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가장 큰 견해차는 신냉전의 도래와 같은 대립상황을 야기하는 근본 원인을 보는 관점의 차이임이 확연이 드러났다. 중국과 러시아측 발제자들은 일관되게 한미일 연대가 위기의 본질이고 이에 적극 동참하는 한국의 책임을 지적했다. 이에 반해 유럽 및 한국, 인도의 학자들은 고조되는 북핵위협, 북중 및 북러 결속을 선행하는 위협으로 간주한다. 지구적 현안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시진핑-푸틴 정상회담, 북한의 대러시아 무기제공과 김정은-푸틴 회담과 조약갱신 및 핵무력 강화시도 등을 보는 시선에서도 양자의 입장차는 현저하게 컸다. 숩슬라 스텐젤 전EU 의회 한반도위원장은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유럽에서 나토를 강화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중국은 러시아의 길에 동참하기를 꺼려하고 미국은 일본과 한국과의 동맹을 강화하고 있으며 유럽은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는 상황을 반영하듯 신냉전 상황을 야기한 근본원인을 미국에서 찾으려는 러시아 학자들에 대해 EU의 전문가들은 비판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중국 인민대 스인홍 교수는 현재의 한중관계가 자칫 ‘블랙홀’로 이어질 수도 있을만치 악화되고 있는데 이런 상황을 야기하는 주요인이 한미일 동맹강화와 이를 최우선시하는 한국의 가치외교 탓이라는 입장을 피력했다. 길림대학 장예지 교수도 한미일 협력강화가 신냉전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는 중국측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북중관계는 언제나 전략적이고 그런 속성은 지속적일 것이라고 보았다. 중국은 신냉전 상황을 원하지 않으며 여전히 지역내 안정과 평화를 바라고 유엔합의를 존중한다는 전제를 달았지만 중국의 국가이익을 견고히 지킬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알렉산더 제빈 박사도 현재의 위기 상황이 한미일 동맹강화에서 초래된 것이라 지적하고 러시아로서는 한러관계를 존중하지만 한국의 행동여하에 따라 보복성 조치도 나올 수 있다는 발언까지 덧붙였다.

전 북한주재 영국대사를 역임한 외교관 존 에버레드는 중국과 러시아의 현실인식의 기본구조가 잘못되었음을 지적했다. 즉 지금의 상황을 초래한 원인은 기본적으로 북한, 러시아, 중국에 있는 것이고 한미일 협력강화는 기본적으로 방어적인 것임을 잊어선 안된다고 했다. 연세대 장동진 명예교수 역시 같은 견해를 피력하였고 인도 델리대학의 선닐 교수도 동북아 및 동남아, 서남아 등지에서 중국이 지역의 불안과 우려를 심화시키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영국 캠브리지대 라이트 교수는 북한의 위협이 심화되고 북중러 협력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한미일 삼자협력구조가 어떻게 형성되고 추진되어 왔는지, 그 중요성과 함께 과정상의 여러 어려움을 정리한 발제를 했다. 임반석 교수는 중국몽에 대한 상세한 분석을 통해 중국의 전략적 지향이 제국주의 경쟁시대 열강이 보여준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지적했다. 중국은 주변 국가들과의 협력과 공존을 통해 지역평화와 발전의 공공재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변모해야 함을 주장했다.

오프닝 세션에서 문정인 교수는 현재 상황을 보는 여러 시각들을 조망하는 발제를 했다. 미중 패권대립으로 큰 변화가 진행중이지만 신냉전이란 개념보다 차가운 평화의 시대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평가하면서 지금이라도 평화와 안보를 향한 새로운 처방으로 유엔협약에 기초한 다자주의를 강화해야 함을 주장했다.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에서 동북아 안보협의체, 동복아 안보정상회의, 동북아 비핵지대화 등을 추진할 수 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장동진 연세대 명예교수는 이러한 시각이 과연 현실성이 있겠느냐고 비판적 코멘트를 했고 청중석에서 동북아비핵지대화를 중국이 받아들이겠느냐는 질문도 제기되었다. 오랫동안 한국의 대외정책에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현실정치에 깊이 관여해온 학자의 발제로서는 너무 막연하고 이상적인 내용이란 느낌을 피하기 어려웠다.

25년을 이어온 이 포럼이 더이상 지속되기 어려워졌다는 사실 자체가 변화한 현실을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남북정상회담과 뒤이은 서울-평양의 교류확대, 북핵해결을 위한 국제공조가 이루어지던 시기의 동력이 현저이 약화되면서 그 계기로 출범한 포럼의 역동성 역시 약화될 것은 예상되는 바였다. 하지만 어려워진 재정여건과 세대 교체 등으로 이 포럼의 지속여부가 불투명해진 모양이다. 민간 분야에서 이만큼 광범위한 국제적 네트워크가 지속되어온 다자적 학술장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상황이 아쉽지 않을 수 없다. 변화한 시대상황에 걸맞는 또다른 형태의 플랫폼이 새롭게 출현하리라 믿으면서도 당분간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대화와 이해보다 비난과 논쟁이 심화될 것을 예감하는 듯해서 염려가 앞선다. 그래서일까 마지막 국악공연에서의 퉁소 소리가 더욱 애잔하게 내 마음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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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에서 맞은 광복절

올해로 25주년을 맞는 국제코리아포럼 참석차 오게된 이스탄불에서 제79회 광복절을 맞이했다. 이스탄불 거리와 건물 곳곳에 걸려있는 붉은색 국기를 보면서 튀르키에 역시 국가상징을 유난히 강조하는구나 생각을 했다. 군부가 주도하여 서구적 문명국가로의 길을 연 터키의 국부 아타튀르크, 그와 유사한 모델로 권위주의적 산업화를 추진했던 박정희 대통령이 동시에 떠올랐다. 이슬람 정체성과 세속적 근대성의 공존방식을 두고 긴장이 커지고 있지만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형성되어온 민족적 자부심과 국가의식을 보존하려는 노력이 역사박물관에서만 아니라 길거리에서도 재확인되는 느낌이다.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오전 세션에서 영국 캠브리지대학 존 닐슨 라이트 교수의 발제를 들으면서 한국에서 진행중인 역사논쟁을 떠올렸다. 라이트 교수는 ‘동아시아 신냉전 형성과정에서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제목의 글에서 미국이 지속적으로 일본 및 한국과의 연대 강화를 위해 노력했지만 한일간의 여러 문제로 인해 번번히 실패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일본의 기시다 내각 출범과 한국의 윤석렬 정부 출범은 삼자협력체제를 공고히 하는데 절호의 기회를 마련해 주었고 2023년 캠프 데이비드에서의 삼자회동이 상징하듯 한미일 협력의 강도와 수준이 획기적으로 강화되었다. 라이트 교수는 북중러의 위협이 강해지는 상황에서 한미일 삼자협력은 매우 중요하다고 보면서도 여전히 한일간의 역사쟁점이 큰 장애물로 남아 있다고 보았다. 한일이 모두 직면하고 있는 포퓰리즘도 중대한 걸림돌이 될 것이라 덧붙였다.

광복절 당일 행사 중간 중간 한국 뉴스를 검색해 보았다. 예상대로 야권 및 광복회의 불참 속에 반쪽의 광복절 기념식이 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윤석렬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어떤 내용을 담았는지도 부분적으로 알게 되었다. 한일관계의 미래를 강조하면서 과거를 벗어나자 했고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새로운 통일방안도 내놓았다 한다. 하지만 적절치 않은 연이은 인사들로 해묵은 역사논쟁을 불러 일으킨 것이나 진지한 토론과 전략적 평가가 수반되지 않은 새로운 통일방안의 제시가 얼마나 의미있는 결실을 맺을지 의심스러웠다. 평화와 우호의 한일관계를 열어가야 한다는 큰 방향은 공감되고 새로운 남북관계의 구상이 필요하다는 데도 동의하지만 정교한 로드맵이나 국민적 공감대나 상호신뢰구축의 준비 없는 선언적 논의가 큰 힘을 발휘하기 어려움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때마침 카톡으로 이철우 교수가 동아일보에서 대담한 기사를 보내주어 읽었다. 착잡한 심정이 더해졌다. 대통령 주위에 아마도 한미일 연대를 위해 역사논란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조언을 하는 사람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외교안보의 중요성을 내세워 역사논란을 장애물로 여겼을 수도 있겠다. 어떠하든 그런 인물들을 중용한 대통령 책임이 아닐 수 없다. 광복절 행사논란을 보면서 해방 직후 3.1절 기념식을 둘러싸고 좌우진영이 대립했던 상황을 떠올렸다. 돌이켜보면 그때도 한반도 상황은 미소의 전략적 입장으로부터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국제환경의 조건을 강조하고 그 흐름과 함께 가는 체제수립을 추구한 세력이 남북한에서 권력을 잡았다. 민족자주론은 내부적으로는 대중의 심정적 공감을 불러올 수 있었지만 현실적으로는 허약할 수밖에 없는 자기중심적 대응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로부터 80년이 흐른 지금, 다시 세계는 분열되고 강대국간 대립은 심화되면서 신냉전의 도래가 운위되는 형국이다. 유럽에서는 전쟁이 진행중이고 동아시아가 다음 격전지가 될지 모른다는 염려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북한의 위협은 커지고 북중러 연대도 강화되는 상황에 미국은 고립주의의 유혹을 받고 있다. 큰 전략적 사고와 외교적 지혜가 절실한 시기에 여전히 우리 논의가 친일논쟁, 과거사 논란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 우려스럽다. 대중의 지적 자폐증, 포퓰리즘의 문제도 있지만 이런 잠재적 우려들을 미연에 방지하지 못하고 오히려 정치적 자산으로 삼으려는 우리 정치권의 문제가 더 크지 않을까 싶다. 이런 상황이 초래되지 않도록 관리하고 중지를 모으기는커녕 오히려 역사논쟁의 자중지란을 벌이게 만든 윤석렬 정부 거버넌스의 편협함과 무감각이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이다.

life · 오늘의 화두

탄식과 감탄

무더위가 계속이다. 에어컨을 켜고 산과 강을 찾아도 열대야의 고통을 참기가 어렵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교훈을 따라 여름을 노래한 두 편의 시를 화선지에 담았다. 서울대 화묵회 전시회 출품작으로 준비한 것이지만 무더위와 싸우는 내 나름의 방편이기도 했다.

두보의 夏夜歎은 ‘여름밤의 탄식’이란 제목 그대로 참기 어려운 무더위 속에서 나온 시다. 시인은 푹푹 찌는 열기 속에서 ‘만리청풍’을 기대하면서도 달, 빛, 바람, 벌레 등 만물이 크고 작음의 구별없이 제 스스로 편안코자 하는 것이 본성임을 확인한다. (物情無巨細 自適固基常) 이런 깨달음은 후반부에서 변방의 병사들의 고통스런 모습에 대한 연민으로 이어져 세상사에 대한 탄식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나는 자적의 소중함을 노래한 전반부를 행초로 썼다.

안도현의 시는 여름으로 오는 길목에 만나는 싸리꽃, 산벌, 칡꽃 향기, 백도라지 미동, 소나기 소리, 매미울음 등을 ‘공양’이라는 화두 속에 담았다. 뭇 생명의 소리와 향기와 미동이 제각기 무언가를 향한 정성스런 기원이라고 본 시인의 시선이 놀랍고 그 무게감을 근, 평, 치, 발, 되 같은 척도로 표현한 신선한 발상이 아름답다. 이런 시인의 서정에 공감하면서 나도 대상마다 서로 다른 서체로 작품을 구성했다.

나라 안팎의 인간사를 보면 ‘탄식’을 금하기 어려운 요즈음이다. 무더위가 더하는 짜증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만물이 제각각의 아름다움, 지극함, 기원과 정성들을 지니고 있다는 섭리를 확인하는 것은 이런 답답함을 이기게 하는 소중한 깨달음이다. 힘든 더위와 성가신 벌레 조차도 우주와 나를 이어주는 생명 연쇄의 고리임을 확인한다면 두보와는 달리 ‘탄식’에서 시작해서 ‘감탄’으로 끝나는 발상의 전환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모든 분들의 건강한 여름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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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화묵회 전시

서울대 교직원 서예전시회가 8월 5일 서울대 미술대학 우석전시실에서 개막했다. 올해의 전시 컨셉은 여름을 보내는 서정… 무더운 날의 시상을 화선지 묵향에 담아보려는 의도였으리라. 두달전 전시계획을 통보받고 나는 바로 두 작품을 마음에 떠올렸다. 무더운 여름날 변방의 병사들의 수고를 보며 멋진 시를 남긴 두보의 ‘하야탄’과 여름의 길목에서 자연의 역동적 흐름을 ‘공양’이라는 화두로 담은 안도현의 시다.

사실 봄이나 가을에 비해 여름을 주제로 한 시는 중국에서나 한국에서나, 과거에도 지금도 상대적으로 적다. 하지만 두보는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도 만물이 각기 제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임을 일깨우고 인간사의 부자유함과 억지스러움을 변방의 병사들을 통해 노래한다. 안도현은 풀, 비, 바람, 새 등 만물이 제나름의 공을 들여 여름의 무성함을 만들어왔음을 신선한 감각으로 표현했다.

두보의 한시의 전반부를 행초로 썼다. 자유롭게 운필하려 했는데 그럴수록 기본기가 바탕임을 절감했다. 작품을 써보다가 황희지의 초천문을 다시 연습하곤 했다. 한글도 좀더 다양한 형식으로 표현해보고 싶어 여러 서체를 섞어 써보았다. 한자와 한글의 아름다움이 서로 다르면서도 붓의 감각에서는 상통한다는 생각을 해 본다.

activities · life · 시공간 여행

김민기, 70년대, 노래

김민기의 부음을 접했다. 얼마전 학전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과 함께 병세가 위중하다는 사실도 알려졌던만큼 뜻밖의 놀랄 뉴스는 아니다. 그래도 여느 유명인사의 죽음을 접할 때와는 다른 아련한 감정이 생겨난다. 그의 이름과 노래가 70년대 내 대학시절에 미친 영향 탓일 것이다. 페북에는 여러 사람들이 그의 노래와 엵힌 경험과 기억들을 적어 놓고 있다. 결혼식 축가로 김민기의 노래를 합창했다는 기억에서부터 그가 어두운 세월에 ‘푸른 하늘’을 보여준 사람이었다고 쓴 글도 있다. 쉽지 않았다는 그의 인터뷰 기사들도 여기저기 나타난다. 학전의 마지막 공연장에서 찍은 사진을 애도의 글과 함께 올린 글도 여럿 보였다. 그의 영향력이 오랫동안 강력했음을 보여주는 모습들이다.

카톡방에선 때아닌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암울했던 시대’에 맞선 김민기라는 글에 대해 그런 표현은 불성실한 왜곡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70년대는 정치적으로 불행했지만 긴 한국현대사에서 결코 암울한 시대로 단정할 일이 아니라는 항변이었다. 김민기의 생애를 두고 70년대의 성격을 논하는 것은 예의도 아니고 맥락을 벗어난 것이다. 우리의 시대인식은 너무 정치화되어 있어 한 인간의 죽음을 두고도 이런 논쟁이 생기는구나 다소 씁쓸한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표준화된 역사인식이나 관용적인 서술어가 얼마나 실체적 진실과 가까운가는 사실 쉬운 문제가 아니다. 김민기의 죽음을 계기로 70년대를 어찌 이해해야할까 자문해본다.

대학생으로 보낸 70년대 중후반을 우울하고 답답하게 경험했던 것은 분명하다. 일상의 생활전선에 힘겨워하던 사회인들이 당시 어떤 생각을 가졌을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자유로운 삶과 지성인되기를 꿈꾸던 사람들에겐 참으로 힘든 시대였다. 외마디 외침 한두마디로 제적과 투옥을 감내해야 했던 친구들이 느낀 절박함은 더욱 컸을 터이다. 그래서일까 내 주변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저항하고 몸부림치던 친구들이 적지 않았다. 기독교와는 전혀 무관하던 한 친구는 진지하게 신학교 진학을 고려한다고 내게 말했는데 사회를 바꿀 저항운동을 위해 ‘종교인의 외피’, 특히 기독교의 힘을 빌리는게 유용할 것같다는게 그 이유였다. 또 한 친구는 유명가수를 ‘의식화’ 시키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 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대중가수의 영향력을 이용하자는 것인데 남진은 너무 의식이 없으니 생각이 깊은 조용필을 그 대상으로 하는게 좋으리라는 구체적인 구상도 덧붙였다. 두 제안 모두 실현 되지 않았고 뜬금없는 망상같은 발상이었지만 각자 제 나름대로 시대의 중압감을 벗어나려던 몸부림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 시절에 노래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이곳 저곳 생겨났다. 노래를 이용하여 메시지를 퍼트리고 사람들을 결집시키려는 노력이었는데 초기엔 출처도 잘 모르는 노래들 (알고 보니 러시아 민요이거나 미국의 반전가요 등이었다), 또는 찬송가 같은 노래도 활용되었다. 노래가사바꿔부르기 (노가바)는 그 이전에도 있었지만 좀더 목적의식적으로 메시지를 담으려는 운동으로 전개되었다. 가사내용도 점점 더 과격하고 노골적인 것으로 변했다. 77년 소위 26동 사건이라 불리는 대형 시위를 촉발시킨 사회학과 심포지엄이 있었다. 진행 사회를 맡은 나는 미리 행사장에 가 았었는데 시간이 넘어도 발제와 토론을 맡은 후배들이 나타나질 않았다. 시위로 번질 것을 우려한 교직원들이 이들을 격리시킨 탓인데 그 사정을 알 수 없는 현장에서는 웅성거림이 시작되고 청중석에서는 자연스럽게 구호와 노래가 시작되었다. 잘 알려져 있는 건전가요의 곡에 박정희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하고 풍자하는 노랫말이 그날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주기도 했다.

그날 밤 많은 친구들이 관악경찰서로 잡혀갔다. 밤샘 취조의 내용은 이 행사를 시위로 이어지게 사전에 모의했는지, 누가 기획했는지를 밝히려는 것이었다. 경찰은 그날 새롭게 불린 노랫말 가사에 주목하고 이 노래를 퍼트린 사람을 찾아내려 했다. 거짓말을 못하던 1학년 후배가 일부 기억이 난다고 가사를 불러주었고 그는 이 날의 시위를 기획하고 주동한 인물의 하나로 지목되어 구속되었다. 후일 그가 학교에서도 제적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마음 속에 분노와 계면쩍음이 뒤섞여 올랐던 기억이 수십년이 지났는데도 마음 한켠에 남아있다.

대학4학년 때 주변의 몇몇이 노래모임을 만들자고 권유했다. ‘메아리’라는 이 노래동아리는 실천과 노래를 연결하는 일종의 문화운동을 모색했던 것으로 나는 초창기에 함께 하다가 꾸준히 참여하진 않았다. 메아리는 사회비판적인 내용을 담은 노래들을 확산시키고자 애썼는데 그 가운데 김민기의 노래는 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후일 80년대에 ‘노래를 찾는 사람들’로 이어져 큰 주목을 받고 이들의 노래 중에는 아름다운 선율과 묵직한 노랫말로 대중의 사랑을 받은 곳이 적지 않다. 광주의 비극을 거치고 노동운동이 확대되면서 노랫말과 곡조도 점점 강하고 투쟁적인 형태로 바뀌었다. 하지만 70년대에 바탕한 내 생활세계의 경험 속에는 작은 연못, 아침이슬, 상록수, 공장의 불빛, 금관의 예수 등 혼자 조용히 읖조리며 부르던 김민기 노래의 서정성이 깊이 자리한다. 존 바에즈를 좋아하던 친구가 김민기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이제 내 자신 70이 되어 그 시절을 상징하던 인물의 부음을 들으니 만감이 교차한다. 이미자가 ‘노래는 나의 인생’이라 했지만 우리의 개인사나 시대사도 노래의 변천사와 겹친다. 뽕짝이라 부르며 도외시하고 공순이들의 노래라 천시했던 가요는 트로트 열풍을 타고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다. 통기타를 치며 청년세대의 우울한 감수성을 일깨우던 노래는 사랑을 노래하는 발라드 가수들의 감미로운 정조로 이어지고 있다. 노찻사 출신의 가수가 유명인의 대열에 올라서기도 하고 각종 시위에 운동가요가 여전히 불리지만 더이상 독특한 의미를 부여받지 못한다. 그런가하면 서태지와 아이들을 효시로 터저나온 새로운 복합장르는 오늘날 K-Pop이란 대형 문화현상이자 기획산업으로 발전했다. 이름도 기억하기 어려운 숱한 아이돌 그룹이 나타나고 이들의 노래는 이해하기조차 어려울만큼 다양하고 이질적이다. 소비와 자극을 찾는 포스트 시대의 경향을 대변하는 노래도 있지만 무정부주의를 표방한 게릴라 정신을 내거는 노래도 인기를 끈다.

리듬과 운율, 달라진 노랫말을 보노라면 반세기 한국사회가 얼마나 역동적으로 변해왔는지를 느낄 수 있다. 노래를 좋아하던 나도 이젠 거의 대부분의 노래가 생소하고 곡조를 흉내내기조차 쉽지 않다. 어떤 의미에서 함께 노래한다는 것, 합창으로 연대하고 노랫말에 공감하는 감수성 자체가 크게 변하고 있다. 70년대 우리의 삶에 녹아있던 김민기, 노가바, 번안가요의 노래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이어지고 있을까. 김민기님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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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기본

2024년 서울대 화묵회 전시를 위해 작품을 준비했다. 여름의 시상을 표현하는 것이 주제여서 두보의 한시 한편과 안도현의 시 한편을 각기 반절 크기의 한자와 한글로 썼다. 두보의 ‘夏夜歎’은 더운 여름날의 무더위와 씨름하면서 시인의 생각을 피력한 시인데 전반은 자연 속에서의 감흥을 후반은 변방의 병졸들을 안쓰러워하는 마음을 담았다. 안도현의 시는 봄에서 여름을 지나면서 온 세상 만물의 움직임 속에 담긴 생명의 연동과 역동을 ‘공양’으로 포착한 아름다운 안목이 와 닿는 작품이다.

두보의 한시는 행초서로 써보고 싶었다. ‘여름 한낮의 뜨거운 열기로 괴로운데, 어디서 만리의 바람을 얻어 내 옷을 흔들게 할까’ – 내용도 그렇거니와 자유로운 감성을 표현하기엔 운필이 자유로운 행초서가 나을 것은 분명했다. 마침 얼마전부터 왕희지의 ‘초결가’를 임서하면서 초서필법을 익혀보던 중이어서 도전하는 마음도 얼마간 있었다. 과연 자유로이 획을 이어가니 필의도 살아나고 글씨 쓰는 재미도 더하는 듯 했다. 여러 장을 써 보면서 점점 대담해지기도 하고 멋을 부려보기도 했다.

문제는 쓸 때의 호기에 비해 쓰여진 작품은 좀처럼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파지가 늘어나는만큼 글씨는 더욱 흐트러지고 잘못된 붓놀림은 더 늘어났다. 결구가 괜찮으면 장법이 마음에 들지 않고 구도가 괜찮다 싶으면 낙관 글씨가 분위기를 망쳤다. 어떤 부분을 바꾸면 좋겠다 마음을 먹고 새로운 화선지를 펴보지만 내 의지와 무관하게 이전 것과 별 차이가 없는 글씨가 되곤 하는 반복을 계속했다.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푸념을 늘어놓다가 급기야 종이 탓을 하기까지 했다.

자고 일어나 이전에 썼던 글들을 다시 보면 이전 것이 더 나은 듯 싶은 경우가 적지 않았다. 멋을 부린 글씨는 운필이 제멋대로인 경우가 많고 꼼꼼하게 쓴 글씨는 어딘지 부자유스럽고 초보자 냄새가 난다. 실력이 미치지 못하는데 왕희지 작품을 꿈꾸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구나 싶은데 즐겁게 글씨를 쓰는 아마추어의 그런 마음을 탓하기는 어렵다. 내 눈이 높아지는 것만으로도 성장이려니 생각하기도 한다.

흐트러지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왕희지의 ‘초결가’를 다시 임서해 본다. 그 자획을 통해 운필의 강약과 꺾임을 확인할수록 내가 쓴 글에서 ‘속기’라 불리는 잘못된 붓놀림을 곳곳에서 보게 된다. 결국은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핵심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필법이 몸에 밸 때 비로소 운필도 자유로와지는 법일 터… 욕심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평범하고도 당연한 원리를 깨닫게 된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가장 크게 얻은 교훈이라 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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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평화

폭력과 평화에 대한 책자를 기획한 후배 연구자로부터 책의 추천사를 써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목차를 보니 전쟁을 위한 무력강화는 물론이고 사회집단간의 억압과 문화적 폭력까지도 극복하자는 적극적 평화론의 기조를 담고 있는 책자처럼 여겨졌다. 한동안 생각을 하다가 고사했다. 사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나도 저런 생각을 가져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에서 내가 추진한 새로운 평화학 프로그램의 핵심 지향이기도 했다. 그런데 다시 전쟁과 폭력이 지구 곳곳에서 출현하는 시대를 맞이해서 이런 판단을 그대로 밀고 갈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졌다. 무엇보다도 자기중심적인 성향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인류의 현 문명 수준을 고려할 때 폭력일반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너무 낭만적인 시각은 아닐지 회의감도 커지는 것이 사실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세계적 분열은 이제 정상이 된 듯 곳곳에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 현실이 되고 있다. 나토가 강화되고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극우정당이 제1당이 되었고 독일에서도 AFD의 약진이 놀라울 정도다. 인류문명의 미래를 앞서 염려하고 대안을 모색해가던 유럽연합의 위상은 전례없이 약화되고 평화를 구가하던 국가에서 징병제가 부활하는 상황이다. 러시아의 푸틴은 정치적으로 오히려 더 강력해지는 듯하고 시진핑 장기지배를 굳힌 중국의 마이웨이도 여전하다.

미국의 혼란은 세상의 어지러움의 절정판 같다. 세계 제1의 강대국이자 자유와 혁신의 본산이라 자처하는 미국이 지구적 우려의 대상이 되고 있다. 불과 4개여월 앞으로 다가온 대선에서 바이든과 트럼프의 두 노인정객이 재대결을 하게 되는 모습은, 누군가가 ‘치매환자와 미치광이의 대결’이라고 불렀듯 전세계의 우려 대상이 되고 있다. 며칠전 NYT는 논설위원 전체의 뜻으로 바이든의 출마포기를 요구하고 나섰지만 그것이 이 혼돈을 극복할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트럼프의 재선 이후 나타날 미국주의와 정치적 편의주의가 세계질서에 어떤 충격을 미칠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것이 오늘의 모습이다.

한반도는 이런 지구적 차원의 모순과 긴장이 전형적으로 또 집약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높아지고 휴전선의 무력충돌 가능성도 커졌다. 심지어 제2의 한국전쟁을 염려하는 소리도 들려온다. 푸틴과 김정은의 밀착 계기가 전쟁협력이었다는 사실과 이번 조러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준동맹관계로의 격상이 갖는 무게감이 남다르게 다가온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파장이 현재의 한러관계에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도 걱정거리다. 한중관계가 다소 잠잠한 것은 다행스럽지만 결코 우호적인 상황은 아니다. 미중의 대립이 격화되고 한미일 공조가 강화되는 추세가 지속될 경우 한중관계도 언제든 악화될 개연성이 상존한다. 북핵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대만해협 문제도 조만간 부딪칠 현안이 될 수도 있다.

작년 말부터 북한이 내세우고 있는 ‘적대적 2국가론’은 이런 대전환에 대한 북한 나름의 대응방안이라 할 수 있다. 통일을 지향하는 민족관계라는 남북관계의 기본틀을 부정한 김정은의 과감하고도 도박같은 발상이 북한에서는 집요하게 또 체계적으로 진행 중이다. 핵무력에 기초하여 체제를 유지하려던 북한의 소극적 대응전략이 신냉전 구조에 편승하여 보다 적극적인 체제강화론으로 이행하는 모습이다. 민족으로서의 한국보다 체제로서의 러시아와 중국을 우선시하고 경제나 협력보다 무력과 대결을 앞세우는 방향을 확고히 선택한 것이다. 짧게는 탈냉전 30년의 역사, 길게는 분단 80년의 역사를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변경시킬 중대한 변화로 보인다.

이런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위기, 대전환의 상황앞에 국내의 정치권이 보이는 반응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2018년 이후의 급변한 현실을 어떻게 평가하고 분석할 것인가에 대한 냉정한 복기나 책임있는 염려보다 모든 논의가 문재인 정권 책임론과 윤석렬 정권 책임론으로 치닫는 모습이다. 모든 정치적 발언과 평가는 다음 대선에서의 권력을 누가 장악할 것인가로 맞춰져있고 당연히 정파적인 목소리만 득세한다. 외교와 내정, 실리와 명분의 지난한 줄다리기가 필요한 영역에서 감정적 이분법, 과장된 자신감, 이념적 정신승리가 도처에 즐비하다. 진보도 보수도 그런 행태에서는 거의 쌍생아라 해도 좋을 듯 싶다.

그래서인지 요즘 뉴스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전문가의 논평을 경청하고 싶은 마음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알아야 속만 상하고 걱정만 커지는데 차라리 모르는게 편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굴원의 어부사가 새삼 떠오른다. ‘세상이 모두 탁하고 취했는데 나 홀로 맑고 깨어있으려 하니 결국은 쫓겨나고 말았다’는 작자의 한탄에 대해 ‘성인은 탁하고 취한 세상과도 어울려야 하며 냇물이 더러우면 발을 씻으면 그만’라는 어부의 말이 선명한 대조를 이루는 명문이다. 자신의 생각과 논리를 근거로 세상과 대면하고 부딪치는 삶의 방식과 현실에 맞추어 안분지족의 삶을 추구하는 자세가 대비되는 글로 종종 해석되었다. 세상과 부딪칠 각오를 가져야 하는 지식인이라면 어부의 조언을 무조건 받아들일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살기는 쉽지 않다. 자기 스스로 끝없이 공부하고 변화하는 현실과 대면해야 하는 부담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보다 더 격이 낮은 이유가 있다. 낡은 생각과 관성을 고집스럽게 내세우면서 그것을 지식인이나 선지자의 자세인 양 오해할 가능성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식인으로서의 자기성찰이나 성실한 분석 없이 주변 사람들과 끝없이 부딪치고 논쟁하며 불편한 관계를 만들어내는 자칭 전문가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인지 나는 개인적으로 어부의 지혜를 수용하고 싶은 마음인데 종종 이것이 과연 옳은 일일지 자문하게 된다. 안분지족하는 여유가 개인적으로는 편한 대응이지만 결국 정치적 무관심을 강화할 수도 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세상이 어지러워질수록 더욱 이런 내면의 갈등은 커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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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속 세대 감각

내 수업에서는 학생들에게 한 학기에 7-8 차례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요구한다. 한두번의 시험으로 성적을 평가하는 것이 어렵기도 하고 불합리하기도 해서 학생 개개인의 글쓰기 수준이나 생각의 깊이를 확인할 기회를 확대한 것이 그 첫 이유다. 하지만 제한된 시간에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을 조건이 되지 않는 현실에서 개개인의 진솔한 생각을 정리해보고 다른 친구들의 견해와 비교해보는 간접토론의 효과를 기대한 것도 그에 못지 않은 의도다.

실제로 그런 효과가 제법 뚜렷하다. 모든 글쓰기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몇 몇 주제에 대해서는 흥미로운 견해들이 제시되고 그 차이를 요약해주고 서로 의견을 주고 받게 하면 꽤 진지한 토론이 오가는 것을 확인했다. 때로는 문제 자체가 너무 거창하고 손쉽게 결론내리기 어려운 것들이어서 과연 이런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을까 싶은 것도 있지만 글 속에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그 이유를 분명히 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학기 초에 엉성한 글을 쓰다가 점차 자기 생각을 뚜렷하게 피력하는 경우를 보노라면 나름 괜찮은 훈련이 된다는 생각도 든다.

평가할 자료가 많아지면 채점은 그만큼 피곤해진다. 단지 양이 많아서만 아니라 주제에 따라 학생들의 글내용이 오락가락하기 때문이다. 나름 애써서 자기 생각을 서술한 보고서를 객관적인 지표에 맞춰 평가할 기준도 없고 엉뚱하지만 재미있는 글을 만나면 어떤 점수를 주어야 할지 한동안 고민에 쌓이기도 한다. 성적 평가에서 겪는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다양한 생각을 접하는 즐거움이 생각보다 크다. 이들이 MZ세대 전반을 대표하는 집단일 수는 없지만 간간히 신선한 의견이나 개성적인 주장을 만나면 요즘 세대의 감각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든다. 내가 대학생일 때 저런 글을 쓸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후생이 가회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것은 물론이다.

이번에 평가하면서 본 흥미로운 견해들 두어가지 정리해본다. 뒤르켐의 시민종교 개념을 오늘 한국사회에 적용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해 수강생의 80% 정도는 가능하다고 대답했다. 한국도 애국심이 강하고 축구나 문화 영역에서 강력한 동일시가 나타나고 있음을 그 이유로 들었다. 그런데 20% 정도는 부정적인 견해를 내놓았다. 그 이유는 개인주의와 아노미 수준이 매우 강하여 국가공동체에 대한 관심조차도 개인의 이익추구에 종속되기 때문이라 했다. 전쟁희생자나 국가를 위해 희생한 자들에 대한 존경심이나 명예부여의 수준이 매우 낮다는 것이 그런 기저를 보여주는 현상이라는 주장인데 흥미로운 생각이 아닐 수 없다.

베버의 합리화에 대한 논의를 근거로하여 한국사회가 과잉합리화 상태인지 아니면 합리성의 부족 상태인지를 물어본 질문에 대한 대답도 흥미로왔다. 대부분 과잉합리화라고 대답했는데 주로 단일한 성공도식, 성적 중심의 교육, 지나친 경쟁문화를 그 결과로 지적했다. 돈이 최고 가치가 되는 현실이 과잉합리화의 징조라고 지적한 글도 눈에 띄었다. 동시에 한국사회는 합리성이 퇴조하고 있고 집단주의와 정서적 휩쓸림이 지배하는 비합리화가 진전되고 있다고 주장한 학생도 있었다. 형식합리성과 가치합리성의 불일치와 모순이 심화되면서 합리성 전체의 기저를 흔들고 있다는 주장도 보였다.

복합적인 문제가 속출하는 21세기에 과학적인 대응과 인간적인 소통 중 어떤 가치가 더 중요할지에 대한 물음에는 후자에 손을 든 학생들이 많았다. 과학기술대학에 재학한 젊은 세대의 반응인데 다소 의외였지만 개인주의적 성향의 한켠에 나름대로 공동체적 지향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개성적이고 다양한 견해들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저들 세대의 특징일수도 있겠다. 경청할만한 의견들을 읽는 즐거움이 있어 채점의 수고를 꽤나 상쇄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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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원정의 유산

의친왕 이강이 조부께 써 준 글씨 현판 몇 점을 집으로 가져왔다. 이 현판들은 고향에 조부께서 건립한 정자에 걸려있던 것인데 십수년전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정자가 무너져 현판들만 따로 떼어 고향 친지 집에 맡겨두었었다. 정자를 복원하거나 외부 공간이 있는 주택에 살게 되면 다시 걸어두리라 생각을 했지만 세월만 흘렀다. 그동안 현판이 두어점 사라졌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누군가가 현판의 행방을 수소문한다는 소문도 들리는데다 현판을 맡아두었던 먼 친척도 세상을 떠나 이대로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 정자를 건립한 조부 화사 박영화는 특히 충효의 가치를 이 공간에 담고자 했다. 증조부인 애산 박준구를 기려 당호를 ‘애산당’으로 하고 인근 각처의 문사들이 보낸 시와 글들을 각자한 현판을 걸었다. 그런가 하면 고종의 아들 의친왕의 글씨를 통해 국가와 왕조에 대한 애틋한 심정을 담았다. 의친왕이 쓴 ‘先韓日月 李朝雨露’라는 글귀는 선한와 이조가 일월과 우로가 되라는 뜻을 담았다. 의친왕이 쓴 글씨 옆에는 ‘대한국 의친왕 전하 어하사친필’이라고 조부께서 각자해 두었는데 ‘大韓國 義親王 殿下’라는 표현이 어색하면서도 흥미롭게 와 닿는다.

함양, 특히 안의는 정자의 고장으로 불릴 정도인데 특히 화림동 계곡에는 농월정, 심원정, 동호정, 거연정 등 멋진 정자들이 줄을 이어 서 있다. 이들 정자는 모두 사면이 트여 주변을 내다볼 수 있는 건축물이다. 그런데 귀원정은 사면이 트인 정자를 한켠으로 하고 다른 한켠에는 방이 달려 있었다. 이 두 기능을 함께 담고 싶었던 모양으로 사면이 트인 공간에는 ‘귀원정’이란 현판을 달고 방이 달린 공간은 ‘애산당’이란 현판을 달았다. 정면 윗편에는 큰 글씨의 현판과 작은 글자의 현판들이 여러 점 걸려 있었고 기둥에는 대련으로 쓰여진 작품이 세로로 걸려 있었다. 정자의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았는데 작은 실개천을 넘어 돌계단을 올라가 아름드리 벗꽃 나무를 마주하는 작은 마당에 격식을 갖춰 세워졌다. 옆으론 큰 바위가 있고 앞뒤에 작은 대숲이 우거져 우아했고 아름다왔다.

비닐 하우스에 보관되어 있는 현판들은 30여점이 넘었다. 오랜 시일 제대로 돌보지도 않은 채 방치되어 있었음에도 까만 옻칠에 흰 색으로 부각된 글씨들의 모습은 반듯하고 아름다왔다. 아마도 당대 제일의 서각 장인의 작품이 아니었을까 싶다. 자획이 분명함은 말할 것도 없고 깊이와 강약도 너무 명료하여 마치 최근의 작품을 보는 듯 했다. ‘이조 우로’라는 작품과 ‘경운독월은사정취’ 라는 의친황의 작품은 명필이고 아름다운데 모두 대련의 한쪽이 사라졌다. 누군가 몰래 가져가려다 한 쪽만 떼어내는데 성공한 탓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집안의 소중한 유산이자 지역의 문화재라 할수도 있을 것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미안함이 솟구친다. 누이가 두어점 현판을 가져가기로 하고 나도 몇 점을 챙겨 오기로 했다.

스마트폰과 인공지능이 보편화된 21세기에 이런 가문의 유산에 주목할 사람은 많지 않다. 가족들 조차 관심의 크기는 다르고 아이들 세대에서는 특별한 감정을 느낄 가능성이 별로 없을 것이다. 안의의 화림동 계곡은 선비의 문화를 체현하여 지역의 자긍심을 높이고 싶어하지만 오가는 사람들에게는 단지 물좋고 산좋은 경승지의 표지일 뿐이다. 아파트의 공간이 일상이 되고 효율적인 도시살이가 보편이 된 시절에 선비의 정체성을 운운하는 것도 낯설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와 글, 문인들의 교류를 중시한 조부의 자취를 접하노라니 마음 한켠에 뿌듯한 감정이 솟구친다. 시대에 맞지 않을지 모르나 이런 것을 집안에 내려오눈 향기라 해도 좋으리라. 제대로 관리도 하지 못한 처지에 자랑스레 내놓을 일은 아니겠으나 집안의 소중한 향취를 맛보고 귀히 여기는 마음은 그대로 중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