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오늘의 화두

폭력과 평화

폭력과 평화에 대한 책자를 기획한 후배 연구자로부터 책의 추천사를 써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목차를 보니 전쟁을 위한 무력강화는 물론이고 사회집단간의 억압과 문화적 폭력까지도 극복하자는 적극적 평화론의 기조를 담고 있는 책자처럼 여겨졌다. 한동안 생각을 하다가 고사했다. 사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나도 저런 생각을 가져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에서 내가 추진한 새로운 평화학 프로그램의 핵심 지향이기도 했다. 그런데 다시 전쟁과 폭력이 지구 곳곳에서 출현하는 시대를 맞이해서 이런 판단을 그대로 밀고 갈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졌다. 무엇보다도 자기중심적인 성향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인류의 현 문명 수준을 고려할 때 폭력일반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너무 낭만적인 시각은 아닐지 회의감도 커지는 것이 사실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세계적 분열은 이제 정상이 된 듯 곳곳에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 현실이 되고 있다. 나토가 강화되고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극우정당이 제1당이 되었고 독일에서도 AFD의 약진이 놀라울 정도다. 인류문명의 미래를 앞서 염려하고 대안을 모색해가던 유럽연합의 위상은 전례없이 약화되고 평화를 구가하던 국가에서 징병제가 부활하는 상황이다. 러시아의 푸틴은 정치적으로 오히려 더 강력해지는 듯하고 시진핑 장기지배를 굳힌 중국의 마이웨이도 여전하다.

미국의 혼란은 세상의 어지러움의 절정판 같다. 세계 제1의 강대국이자 자유와 혁신의 본산이라 자처하는 미국이 지구적 우려의 대상이 되고 있다. 불과 4개여월 앞으로 다가온 대선에서 바이든과 트럼프의 두 노인정객이 재대결을 하게 되는 모습은, 누군가가 ‘치매환자와 미치광이의 대결’이라고 불렀듯 전세계의 우려 대상이 되고 있다. 며칠전 NYT는 논설위원 전체의 뜻으로 바이든의 출마포기를 요구하고 나섰지만 그것이 이 혼돈을 극복할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트럼프의 재선 이후 나타날 미국주의와 정치적 편의주의가 세계질서에 어떤 충격을 미칠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것이 오늘의 모습이다.

한반도는 이런 지구적 차원의 모순과 긴장이 전형적으로 또 집약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높아지고 휴전선의 무력충돌 가능성도 커졌다. 심지어 제2의 한국전쟁을 염려하는 소리도 들려온다. 푸틴과 김정은의 밀착 계기가 전쟁협력이었다는 사실과 이번 조러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준동맹관계로의 격상이 갖는 무게감이 남다르게 다가온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파장이 현재의 한러관계에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도 걱정거리다. 한중관계가 다소 잠잠한 것은 다행스럽지만 결코 우호적인 상황은 아니다. 미중의 대립이 격화되고 한미일 공조가 강화되는 추세가 지속될 경우 한중관계도 언제든 악화될 개연성이 상존한다. 북핵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대만해협 문제도 조만간 부딪칠 현안이 될 수도 있다.

작년 말부터 북한이 내세우고 있는 ‘적대적 2국가론’은 이런 대전환에 대한 북한 나름의 대응방안이라 할 수 있다. 통일을 지향하는 민족관계라는 남북관계의 기본틀을 부정한 김정은의 과감하고도 도박같은 발상이 북한에서는 집요하게 또 체계적으로 진행 중이다. 핵무력에 기초하여 체제를 유지하려던 북한의 소극적 대응전략이 신냉전 구조에 편승하여 보다 적극적인 체제강화론으로 이행하는 모습이다. 민족으로서의 한국보다 체제로서의 러시아와 중국을 우선시하고 경제나 협력보다 무력과 대결을 앞세우는 방향을 확고히 선택한 것이다. 짧게는 탈냉전 30년의 역사, 길게는 분단 80년의 역사를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변경시킬 중대한 변화로 보인다.

이런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위기, 대전환의 상황앞에 국내의 정치권이 보이는 반응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2018년 이후의 급변한 현실을 어떻게 평가하고 분석할 것인가에 대한 냉정한 복기나 책임있는 염려보다 모든 논의가 문재인 정권 책임론과 윤석렬 정권 책임론으로 치닫는 모습이다. 모든 정치적 발언과 평가는 다음 대선에서의 권력을 누가 장악할 것인가로 맞춰져있고 당연히 정파적인 목소리만 득세한다. 외교와 내정, 실리와 명분의 지난한 줄다리기가 필요한 영역에서 감정적 이분법, 과장된 자신감, 이념적 정신승리가 도처에 즐비하다. 진보도 보수도 그런 행태에서는 거의 쌍생아라 해도 좋을 듯 싶다.

그래서인지 요즘 뉴스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전문가의 논평을 경청하고 싶은 마음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알아야 속만 상하고 걱정만 커지는데 차라리 모르는게 편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굴원의 어부사가 새삼 떠오른다. ‘세상이 모두 탁하고 취했는데 나 홀로 맑고 깨어있으려 하니 결국은 쫓겨나고 말았다’는 작자의 한탄에 대해 ‘성인은 탁하고 취한 세상과도 어울려야 하며 냇물이 더러우면 발을 씻으면 그만’라는 어부의 말이 선명한 대조를 이루는 명문이다. 자신의 생각과 논리를 근거로 세상과 대면하고 부딪치는 삶의 방식과 현실에 맞추어 안분지족의 삶을 추구하는 자세가 대비되는 글로 종종 해석되었다. 세상과 부딪칠 각오를 가져야 하는 지식인이라면 어부의 조언을 무조건 받아들일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살기는 쉽지 않다. 자기 스스로 끝없이 공부하고 변화하는 현실과 대면해야 하는 부담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보다 더 격이 낮은 이유가 있다. 낡은 생각과 관성을 고집스럽게 내세우면서 그것을 지식인이나 선지자의 자세인 양 오해할 가능성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식인으로서의 자기성찰이나 성실한 분석 없이 주변 사람들과 끝없이 부딪치고 논쟁하며 불편한 관계를 만들어내는 자칭 전문가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인지 나는 개인적으로 어부의 지혜를 수용하고 싶은 마음인데 종종 이것이 과연 옳은 일일지 자문하게 된다. 안분지족하는 여유가 개인적으로는 편한 대응이지만 결국 정치적 무관심을 강화할 수도 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세상이 어지러워질수록 더욱 이런 내면의 갈등은 커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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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속 세대 감각

내 수업에서는 학생들에게 한 학기에 7-8 차례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요구한다. 한두번의 시험으로 성적을 평가하는 것이 어렵기도 하고 불합리하기도 해서 학생 개개인의 글쓰기 수준이나 생각의 깊이를 확인할 기회를 확대한 것이 그 첫 이유다. 하지만 제한된 시간에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을 조건이 되지 않는 현실에서 개개인의 진솔한 생각을 정리해보고 다른 친구들의 견해와 비교해보는 간접토론의 효과를 기대한 것도 그에 못지 않은 의도다.

실제로 그런 효과가 제법 뚜렷하다. 모든 글쓰기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몇 몇 주제에 대해서는 흥미로운 견해들이 제시되고 그 차이를 요약해주고 서로 의견을 주고 받게 하면 꽤 진지한 토론이 오가는 것을 확인했다. 때로는 문제 자체가 너무 거창하고 손쉽게 결론내리기 어려운 것들이어서 과연 이런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을까 싶은 것도 있지만 글 속에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그 이유를 분명히 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학기 초에 엉성한 글을 쓰다가 점차 자기 생각을 뚜렷하게 피력하는 경우를 보노라면 나름 괜찮은 훈련이 된다는 생각도 든다.

평가할 자료가 많아지면 채점은 그만큼 피곤해진다. 단지 양이 많아서만 아니라 주제에 따라 학생들의 글내용이 오락가락하기 때문이다. 나름 애써서 자기 생각을 서술한 보고서를 객관적인 지표에 맞춰 평가할 기준도 없고 엉뚱하지만 재미있는 글을 만나면 어떤 점수를 주어야 할지 한동안 고민에 쌓이기도 한다. 성적 평가에서 겪는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다양한 생각을 접하는 즐거움이 생각보다 크다. 이들이 MZ세대 전반을 대표하는 집단일 수는 없지만 간간히 신선한 의견이나 개성적인 주장을 만나면 요즘 세대의 감각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든다. 내가 대학생일 때 저런 글을 쓸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후생이 가회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것은 물론이다.

이번에 평가하면서 본 흥미로운 견해들 두어가지 정리해본다. 뒤르켐의 시민종교 개념을 오늘 한국사회에 적용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해 수강생의 80% 정도는 가능하다고 대답했다. 한국도 애국심이 강하고 축구나 문화 영역에서 강력한 동일시가 나타나고 있음을 그 이유로 들었다. 그런데 20% 정도는 부정적인 견해를 내놓았다. 그 이유는 개인주의와 아노미 수준이 매우 강하여 국가공동체에 대한 관심조차도 개인의 이익추구에 종속되기 때문이라 했다. 전쟁희생자나 국가를 위해 희생한 자들에 대한 존경심이나 명예부여의 수준이 매우 낮다는 것이 그런 기저를 보여주는 현상이라는 주장인데 흥미로운 생각이 아닐 수 없다.

베버의 합리화에 대한 논의를 근거로하여 한국사회가 과잉합리화 상태인지 아니면 합리성의 부족 상태인지를 물어본 질문에 대한 대답도 흥미로왔다. 대부분 과잉합리화라고 대답했는데 주로 단일한 성공도식, 성적 중심의 교육, 지나친 경쟁문화를 그 결과로 지적했다. 돈이 최고 가치가 되는 현실이 과잉합리화의 징조라고 지적한 글도 눈에 띄었다. 동시에 한국사회는 합리성이 퇴조하고 있고 집단주의와 정서적 휩쓸림이 지배하는 비합리화가 진전되고 있다고 주장한 학생도 있었다. 형식합리성과 가치합리성의 불일치와 모순이 심화되면서 합리성 전체의 기저를 흔들고 있다는 주장도 보였다.

복합적인 문제가 속출하는 21세기에 과학적인 대응과 인간적인 소통 중 어떤 가치가 더 중요할지에 대한 물음에는 후자에 손을 든 학생들이 많았다. 과학기술대학에 재학한 젊은 세대의 반응인데 다소 의외였지만 개인주의적 성향의 한켠에 나름대로 공동체적 지향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개성적이고 다양한 견해들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저들 세대의 특징일수도 있겠다. 경청할만한 의견들을 읽는 즐거움이 있어 채점의 수고를 꽤나 상쇄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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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원정의 유산

의친왕 이강이 조부께 써 준 글씨 현판 몇 점을 집으로 가져왔다. 이 현판들은 고향에 조부께서 건립한 정자에 걸려있던 것인데 십수년전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정자가 무너져 현판들만 따로 떼어 고향 친지 집에 맡겨두었었다. 정자를 복원하거나 외부 공간이 있는 주택에 살게 되면 다시 걸어두리라 생각을 했지만 세월만 흘렀다. 그동안 현판이 두어점 사라졌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누군가가 현판의 행방을 수소문한다는 소문도 들리는데다 현판을 맡아두었던 먼 친척도 세상을 떠나 이대로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 정자를 건립한 조부 화사 박영화는 특히 충효의 가치를 이 공간에 담고자 했다. 증조부인 애산 박준구를 기려 당호를 ‘애산당’으로 하고 인근 각처의 문사들이 보낸 시와 글들을 각자한 현판을 걸었다. 그런가 하면 고종의 아들 의친왕의 글씨를 통해 국가와 왕조에 대한 애틋한 심정을 담았다. 의친왕이 쓴 ‘先韓日月 李朝雨露’라는 글귀는 선한와 이조가 일월과 우로가 되라는 뜻을 담았다. 의친왕이 쓴 글씨 옆에는 ‘대한국 의친왕 전하 어하사친필’이라고 조부께서 각자해 두었는데 ‘大韓國 義親王 殿下’라는 표현이 어색하면서도 흥미롭게 와 닿는다.

함양, 특히 안의는 정자의 고장으로 불릴 정도인데 특히 화림동 계곡에는 농월정, 심원정, 동호정, 거연정 등 멋진 정자들이 줄을 이어 서 있다. 이들 정자는 모두 사면이 트여 주변을 내다볼 수 있는 건축물이다. 그런데 귀원정은 사면이 트인 정자를 한켠으로 하고 다른 한켠에는 방이 달려 있었다. 이 두 기능을 함께 담고 싶었던 모양으로 사면이 트인 공간에는 ‘귀원정’이란 현판을 달고 방이 달린 공간은 ‘애산당’이란 현판을 달았다. 정면 윗편에는 큰 글씨의 현판과 작은 글자의 현판들이 여러 점 걸려 있었고 기둥에는 대련으로 쓰여진 작품이 세로로 걸려 있었다. 정자의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았는데 작은 실개천을 넘어 돌계단을 올라가 아름드리 벗꽃 나무를 마주하는 작은 마당에 격식을 갖춰 세워졌다. 옆으론 큰 바위가 있고 앞뒤에 작은 대숲이 우거져 우아했고 아름다왔다.

비닐 하우스에 보관되어 있는 현판들은 30여점이 넘었다. 오랜 시일 제대로 돌보지도 않은 채 방치되어 있었음에도 까만 옻칠에 흰 색으로 부각된 글씨들의 모습은 반듯하고 아름다왔다. 아마도 당대 제일의 서각 장인의 작품이 아니었을까 싶다. 자획이 분명함은 말할 것도 없고 깊이와 강약도 너무 명료하여 마치 최근의 작품을 보는 듯 했다. ‘이조 우로’라는 작품과 ‘경운독월은사정취’ 라는 의친황의 작품은 명필이고 아름다운데 모두 대련의 한쪽이 사라졌다. 누군가 몰래 가져가려다 한 쪽만 떼어내는데 성공한 탓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집안의 소중한 유산이자 지역의 문화재라 할수도 있을 것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미안함이 솟구친다. 누이가 두어점 현판을 가져가기로 하고 나도 몇 점을 챙겨 오기로 했다.

스마트폰과 인공지능이 보편화된 21세기에 이런 가문의 유산에 주목할 사람은 많지 않다. 가족들 조차 관심의 크기는 다르고 아이들 세대에서는 특별한 감정을 느낄 가능성이 별로 없을 것이다. 안의의 화림동 계곡은 선비의 문화를 체현하여 지역의 자긍심을 높이고 싶어하지만 오가는 사람들에게는 단지 물좋고 산좋은 경승지의 표지일 뿐이다. 아파트의 공간이 일상이 되고 효율적인 도시살이가 보편이 된 시절에 선비의 정체성을 운운하는 것도 낯설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와 글, 문인들의 교류를 중시한 조부의 자취를 접하노라니 마음 한켠에 뿌듯한 감정이 솟구친다. 시대에 맞지 않을지 모르나 이런 것을 집안에 내려오눈 향기라 해도 좋으리라. 제대로 관리도 하지 못한 처지에 자랑스레 내놓을 일은 아니겠으나 집안의 소중한 향취를 맛보고 귀히 여기는 마음은 그대로 중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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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묘문화와 가문의식

6월 25일 아버지 기일을 하루 앞두고 고향 선산을 찾았다. 마산, 진주 등지에 흩어져 사는 누이들도 함께 모여 산소를 둘러보았는데 입구 돌계단도 부분적으로 무너져 내렸고 봉분에는 잡초가 무성했다. 조부모 산소로 이어지는 길은 찾기가 어려울 정도여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동네는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오가는 사람 대부분이 고령자들이고 젊은 사람 찾기가 쉽지 않다. 누이와 자형들도 대부분 70을 넘기셨고 나 또한 70 줄에 들어서기 직전이니 고령화가 내 실존이 되어 있는 셈이다.

점심을 함께 한 후 부친이 교장으로 재직하셨던 안의초등학교 앞의 한 까페에서 옛 추억을 이야기하고 정담을 나누었다. 누이들과 자형들도 대부분 교직에 계셨던 탓에 이곳이 낯설지 않다. 그러던 중 앞으로 산소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화제가 되었다. 지금처럼 아는 분에게 벌초를 부탁할 수 있는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데 모두가 공감했다. 자식들이 이곳까지 찾아와 성묘를 할 것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성묘라는 관행이자 도리가 언제까지 존속하게 될지도 자신하기 어려울만큼 시대상황도 달라지고 있다.

누이 한분은 부모 묘소를 가까운 곳으로 이장하면서 평토장을 하고 작은 비석만 세워두자고 했다.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채 잡초로 뒤덮인 산소를 그냥 두는 것은 민망하고 도리도 아니라는 이유다. 또 다른 누이는 굳이 평토장도 할 필요없이 우리 세대에까지만 성묘문화를 지키면 될 것이라 했다. 그 이후 누구도 찾지 않은 묘가 되어 잡초가 우거지는 것도 자연스런 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두 분의 주장은 다른 듯 하고 실제 격론도 이어졌지만 기실 공감하는 부분이 더 컸다. 이제 성묘와 관련한 의례를 우리 세대에 간소화하고 다음 세대에까지 넘겨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바탕에는 육체와 영혼을 구별하는 기독교 신앙이 깔려 있다.

장남으로서 내 의견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나도 언젠가는 이 문제에 대한 결단이 필요할 때가 오리라는 생각을 한다. 나 스스로도 이런 성묘문화에 철저하지 못한데 내 자녀들이 이 부분에 관심을 가지리라 기대하기는 더욱 어렵다. 사실 한국사회에서 성묘나 제사가 90년대 이후 새롭게 부각된 데는 계층의 분화에 따라 새로운 가문의식, 뿌리 의식이 커진 영향이 없지 않다. 더하여 영화나 미디어에서 그것을 한국의 전통풍습으로 재구성한 이유가 크다. 다종족화가 진행되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 더더욱 이 문화가 강조될 수도 있겠다.

솔직히 나는 조상이나 가문, 뿌리에 대한 의식이 그다지 강하지 않다.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한 이유가 컸을 듯 한데 실제로 나는 제사나 문중행사가 낯설다. 어릴 적부터 고향을 떠나 혼자 유학하며 생활한 나의 성장과정이 개인주의적 성향을 강화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내 아들 대에 이르면 훨씬 이런 문화는 약화될 것이 분명하고 나는 그것에 별로 안타까운 마음을 갖지 않는다. 다만, 부모님이 보여주셨던 독특한 삶의 자세와 정신적 지향, 조부로부터 이어진 문인적 지향과 선비로서의 자긍심은 잊지 않고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인데 그 분리가 가능할까? 그것은 어떤 가문의식과 의례를 필요로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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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 50년 지성사

2025년이면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설립 50주년이 된다. 1975년 문리대가 해체되고 대신 인문대, 사회대, 자연대의 세 기초학문대학으로 재편되면서 한국에 ‘사회과학’이라는 이름의 단과대학이 시작된지 반세기가 되는 것이다. 1년 여 전 사회대 50년의 역사를 한국의 지성사 맥락에서 정리하는 연구가 필요하지 않겠냐는 논의가 있었다. 해방후 학문의 본산으로 자임했던 서울대 문리대가 그 30년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할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사라진 것을 아쉬워했던 나로서는 이 공동연구의 필요성에 크게 공감했고 적극적으로 지지의 뜻을 보냈다.

그 결과 사회과학 여러 영역별로 중견 교수들이 참여한 프로젝트가 결정되어 현재 진행 중이다. 나는 사회학 분야를 담당하기로 하고 합류했는데 논의 과정에서 ‘사회과학’ 전체를 아우르는 총괄 원고 작성도 부탁 받았다. 다양한 분과학 전체를 포괄하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고 내 역량도 많이 모자라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것 같았고 또 나름 보람있는 일이기도 해서 수락했다. 6월 12일 각 분과학 별로 일년여 기간 준비한 초고들을 발표하고 공유하는 자리를 가졌다. 사회과학 전 영역에 걸친 50년 역사를 한 자리에서 토론하는 기회는 흔치 않은데 특히 총괄원고를 작성해야 하는 나로서는 소중한 경험이었고 유익했다.

돌이켜보면 내가 1974년에 서울대 사회계열에 입학했던 때가 종합화 출범 1년 전이었다. 교양과정부 1년을 보낸 75년에 관악으로 옮겨왔고 그 해에 사회대로 진입한 첫 학번이니 명실상부 사회과학대학의 첫 세대인 셈이다. 그 이후 지금까지 사회학자로 살아왔고 사회대 교수로 정년을 맞았으니 사회대 50년의 역사는 곧 내 개인의 삶과 고스란히 겹친다. 사회대 50년과 사회학 50년, 그리고 내 개인의 학문사 50년을 함께 되돌아보니 감회가 새롭다. 실제로 이 연구는 내 자신의 지적 궤적을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작업과도 무관할 수가 없다. 사회과학계열이라는 범주가 너무 생소해 ‘법대와 상대와 문리대’의 총칭이라 이해하고 주변에도 그렇게 설명했노리 하시던 아버님 말씀이 떠오른다.

사회대 50년은 한국의 지성사에 어떤 의미를 가졌을까? 사회대를 통해 이어진 지구적 차원의 사회과학과 한국 사회과학 사이에는 어떤 공통의 관심사와 상이한 긴장이 오갔을까? 수용된 서구 사회과학은 얼마나 보편성을 확인했으며 한국의 특수성에 주목한 논의들은 얼마나 이론적 지평을 넓히면서 세계 학계에 기여했을까? 경험과학으로서의 사회과학은 이데올로기적 사유와 다른 과학적 타당성을 얼마나 획득했을까? 그런 과정을 통해 오랜 쟁점이었던 사회과학의 가치중립과 가치개입의 딜렘마는 어떻게 해결해 왔는가?

사회대의 출범은 전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사회과학 분야의 여러 학문을 발전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 경제학, 정치외교학, 사회학, 지리학, 심리학, 인류학, 언론정보학, 사회복지학 등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데는 지난 50년의 수고가 컸다. 이 기간에 서구의 발전된 이론과 방법론이 수용되고 다음 세대의 사회과학자들이 성장했다. 한국사회의 압축적 발전과정에 필요한 기획, 평가, 조정의 소프트파워를 제공하는데도 큰 기여를 했다. 각 학문 분야별로 또 개별 교수 차원에서 국제적 교류와 소통으로 지적 보편성과 세계성을 높여온 것도 중요한 성과다. 정부와 기업에 도움이 되는 전문성 제공은 물론이고 시민사회와 문화영역에서 필요한 비판적 시야와 종합적 상상력을 제공한 것도 사회과학의 성과라 할 만하다.

하지만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이라는 3분법의 제도화가 지성사 전반에 미친 영향은 제대로 검토된 바가 없다. 대학제도에 뿌리밖은 분과학체계가 영역간 크로스오버와 융복합이 급증하는 현실과 괴리되고 있다는 주장도 곳곳에서 들여오고 있다. 의학과 법학을 비롯한 몇몇 분과학에 인재와 자원이 편중되는 현실과 이런 지식분류체계가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지도 돌아볼 문제다. 어떤 인간형을 키워낼 것인지에 대한 책임있는 고민과 노력보다 서울대가 지닌 정치적 영향력, 문화적 위상에 편승해온 측면은 없는지도 반성할 부분이다. 학력주의의 폐해가 대학의 서열화와 분과학간 장벽의 높이와 무관치 않다는 점에 대해서도 귀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저출산과 고용불안, 양극화의 사회적 난제에다가 인공지능과 디지털화, 바이오 테크놀로지가 불러오는 심대한 충격과 불확실성을 눈앞에서 보고 있다. 탈냉전과 세계화를 넘어 새로운 지정학적 분할과 생활세계의 위험을 목도한다. 인간-기계의 통합이 급진전되고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서자는 포스트 휴머니즘이 확산되며 기후위기를 넘어 인류세라는 묵시록적 논의까지 부상하는 상황이다. 인문-사회-자연 과학 3분류는 언제까지 유효하며 그에 기반한 전문성은 얼마나 유용성을 인정받을까? 서울대는 최고대학의 위상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각자도생의 경쟁에 함몰된 젊은 청년들에게 사회과학이 제공하는 삶의 향방과 지혜는 무엇이어야 할까? 언제까지 대학은 지식생산과 고등교육의 전담기구로 존속할 수 있을까? 글을 쓰면서 내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지게 되는 질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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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교육과 제도지체

염재호 태재대학교 총장, 이광형 카이스트 총장, 장병탁 서울대 AI 연구원장 등과 함께 저술한 책자 [AI 시대 대학교육의 미래] (나남출판) 가 출간되었다. 한림대 도헌학술원에서 기획한 도헌학술총서 제1권으로 대부분의 필자들은 1년여 전에 개최되었던 학술심포지엄에 참석한 분들이다. 나는 그 행사에는 참여하지 않았는데 책을 기획하면서 관련 주제의 글을 청탁받아 추가로 참여하게 되었다.

필자들 대부분 유수한 대학이나 관련 기관의 운영을 책임진 분들인데다 인공지능이나 과학기술 분야의 학자들이어서 책의 주제와 잘 어울린다. 나도 광주과학기술원에 초빙석학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니 직함만으로는 어색하지 않지만 그동안 내가 연구하고 가르쳐온 주제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전의 나를 기억하는 분들이라면 내가 이런 주제의 책에 공저자로 이름을 올린 것을 생뚱맞게 여길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십여년 전부터 나는 테크놀로지가 핵심적인 변수가 된 시대가 도래했다고 느꼈고 그런 맥락에서 관련 연구들을 기획하기도 하고 [커넥트파워]라는 책을 공저하기도 했기에 내 자신으로는 전혀 엉뚱한 관심확장은 아니다.

한림대 측으로부터 원고청탁을 받았을 때 글을 써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이유도 그런 저간의 변화 때문이었다. 사회학회장을 하면서 가졌던 여러 관심사들에 더하여 코로나 19 시기의 충격이 내게 미친 영향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깊다. 그 경험은 단지 개인의 실존적 생활경험에 한정되지 않고 불현듯 나타난 온라인 경제, 플랫폼 사회, 커넥트 파워들의 충격으로 이어졌고 광주과학기술원에서 강의를 하면서 그런 문제의식은 더욱 깊어졌다. 이제 다시 이 모든 변화를 아우르면서 인공지능의 쓰나미가 들이닥치고 있어 커즈화일이 말한 ‘특이점이 오고 있다’는 주장을 새삼 떠올리게 만든다.

나는 이런 변화가 일상, 경제, 문화, 종교 등 각 영역에 두루 나타나지만 특히 교육현장과 학교라는 제도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리라는 생각한다. 코로나 19를 겪으면서 내가 계속 떠올리는 개념이 ‘제도지체’인데 이 첨단의 기술변화를 제도와 관성이 따라가지 못해 생기는 각종 문제들을 말한다. 챗 GPT 3.5로부터 시작된 LLM 기반 인공지능의 급성장은 조만간 AGI라 불리는 일반인공지능의 출현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확대시키고 있다. 한국의 고도성정기를 뒷받침해온 강력한 교육시스템이 겪고 있는 제도지체의 여러 측면들을 점검하고 대비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절실한 우리 사회의 숙제다.

나는 네가지 차원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답찾기식 교육과 분과학주의에 갇힌 연구방식을 넘어서는 것, 그래서 창의적 발상과 융복합적 소통이 교육과 연구방식에 상시적으로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캠퍼스와 지역사회가 단절되어 있는 구조를 넘어 산업계, 지방정부, 시민사회의 다양한 주체들과 결합되는 지식생태계를 형성하는 것도 중요하고 젊은 세대의 청년들이 새로운 꿈을 꾸고 미래를 향해 비상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대학문화를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쉽지 않은 목표고 지나치게 이상적인 주장이라 할 수도 있겠다.

글을 쓰면서 늘 느끼는 것지만 분석하기보다 제안하기가 어렵고, 제안하기보다 실천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제안에는 책임이 따르는데 ‘과연 나는 그렇게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안하고 주장해야 하는 것은 해야 한다. 제도지체의 한계를 넘어서려면 상당한 혁신이 불가피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남에게 권유하는 제안이기 이전에 내 자신에게 하는 다짐이기도 한 까닭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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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과 논쟁

5월 9일 사단법인 ‘통일과 나눔’에서 주최하는 정책 심포지엄이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급변하는 한반도 주변 정세를 고려할 때 어떤 통일을 어떻게 추진해야 할지, 이에 필요한 새로운 전략적 구상과 쟁점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논의해 보자는 취지였다. 특히 연초에 북한이 적대적 2국가론을 내놓은 상황이어서 더더욱 현실감과 정치성이 담긴 심포지엄이 되었다. 애초 2주제의 발제를 부탁받았지만 보다 젊은 세대의 이야기가 더 필요하리라 생각해서 덕성여대 이수정 교수를 추천했다. 대신 나는 종합토론을 맡았다.

1주제를 발제한 윤영관 교수는 지정학적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통일을 향한 꿈’이 중요함을 역설했다. 폴란드가 오랜 피억압상황에서도 독립의 꿈을 잃지 않았기에 오늘의 폴란드가 있다는 마무리가 묵직하게 울렸다. 두번째 발제자인 이수정 교수는 최근 젊은 세대의 통일에의 무관심, 북한에의 거부감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솔직하게 논의했다. 달라지고 있는 정체성, 감수성에다 분단 70년의 무게감이 더하여 무관심이 커지는 것은 당연한 변화이지만, 남북대결이라는 현실이 갖는 규정력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젊은 세대가 보이는 딜렘마, 혼란, 위기감을 공감할 수 있었다.

세번째 주제를 발제한 김병연 교수는 남북한의 통일을 중요한 목표로 설정하면서 점진적이고 단계적이어야 함을 강조했다. 분단 70년의 역사를 통해 전혀 다른 체제와 경험을 공유해온데다 경제적 조건이 크게 다른 남북이 급속한 통합을 이루기도 어렵거니와 그 후유증은 매우 클 것이기 때문이다. 통일로의 과정에서 남북간 정치와 문화의 이질성과 독자성을 상당기간 용납하도록 구상된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기조이기도 하다. 하지만 경제적 통합력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이런 중간단계가 안정적일 수 없으므로 중간단계로 경제공동체를 상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김교수의 주장이다. 이런 중간단계 설정을 위해서 북한의 전략적 전환이 필수적이라는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긴 하다.

종합토론에서는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 천영우 전 외교안보수석, 이신화 북한인권대사 등이 패널로 참석했다. 나는 패널 참석자들에게 현재의 한반도 상황악화를 가져온 근본 요인을 무엇으로 보는지, 그리고 향후 방향설정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이종석 장관은 윤석열 정부의 강경일변도 대북정책이 가장 큰 요인이며, 남북한이 별개의 국가로 지내면서 평화로운 통일을 먼 미래의 과제로 설정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을 했다. 천영우 수석은 미중의 패권경쟁을 비롯한 지정학적 변화와 그에 편승한 북한의 전략적 선택이 가장 큰 요인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그리고 북한과 평화공존을 추진하려는 발상을 낭만적이고 무책임한 것이라는 입장을 피력했다. 현 시점에서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진보, 보수의 입장이 뚜렷하게 대비되는 자리였다.

워낙 입장 차이가 뚜렷한 주제여서 애초 화기애애한 토론이 진행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양측 모두 현실의 무거운 상황을 직시할 수밖에 없기에 진솔한 고민을 나누고 공유가능한 방향을 탐색하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했다. 결과적으로는 문재인 정부 책임론과 윤석렬 정부 책임론으로 서로를 비판하고 좌장, 또는 사회자로서의 역할이 개입할 수 없는 논쟁이 되고 말았다. 시간도 충분치 못한데다 정파적 입장까지 더해진 탓에 제대로된 마무리도 하지 못하고 끝을 맺었다. 나름대로 기대를 갖고 시작하는 토론이지만 결국은 뻔한 논쟁으로 귀결되는 경험을 또 한번 겪은 셈이다. 청중과 언론은 각기 원하는 내용들만 취사선택에서 제2, 제3의 논쟁거리를 재생산하리라. 이런 토론도 서로 다른 입장을 보여줌으로써 독자와 청중에게 도움이 되려니 생각해보지만 그런 믿음의 강도가 조금씩 줄어드는 느낌이다. 지혜를 구하는 토론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까 자문해본다.

life · 시공간 여행

곁에 온 100세 시대

장인어른께서 올해 100세가 되셨다. 물론 전통적으로 세는 우리 나이여서 만으로 치자면 조금 더 있어야 하지만, 오히려 100세 느낌은 지금 더 나는 것 같다. 신문 지상에서 또는 남의 이야기로 간간히 100세란 말을 듣곤 했지만 가까운 집안 어른이 100세를 맞이하니 그 실감이 남다르게 다가온다.

마침 5월 초에 부산에 일정이 생겼는데 어버이날도 앞둔 시기라 장인 어른을 모시고 식사를 함께 했다. 모시고 나온 손윗 처남이 70을 훌쩍 넘기셨으니 두 분을 부자지간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느낌이었다. 다행히 장인 어른께서는 기억력이 많이 퇴색되었을 뿐 여전히 꼿꼿하시고 스스로 걸으실 뿐 아니라 식사도 혼자 큰 어려움 없이 하셨다. 간간히 약간의 농담 섞인 대화에도 큰 어려움 없이 대꾸하실 정도로 객관적 연세에 비해 정정하셨다.

지극 정성으로 보살피는 7순 아들의 효성이 그 일차적인 힘이 되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여기에 더하여 노인학교를 오갈 수 있는 여건, 이런 노인들을 보살피고 도와주는 복지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는 덕분임도 분명하다. 실제로 우리 주위에 이런 노인복지에 고마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남의 나라 부러워한지 엊그제 같은데 이제 한국이 그런 부러움을 사는 나라가 되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다만 이런 현상을 보노라면 세계최고의 저출산율을 보이는 또다른 한 측면을 떠올리게 된다. 앞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감당해갈 수 있을까? 노인복지와 저출산율의 두 이미지가 빚어내는 어긋난 영상이 앞날에 대한 우리 생각을 어지럽게 한다.

life · 오늘의 화두

김사인 함께 읽기

이종민 교수의 수고 덕택에 [김사인 함께 읽기] 책자가 멋지게 출간되었다.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시인이자 좋아하는 벗인 김사인 교수의 정년을 축하하기 위해 몰래 기획한 작품인데 52명의 문인 작가 지인들이 흔쾌히 글을 보내 성사된 결과물이다. 표지에 흰고무신 차림으로 한옥 툇마루에 앉아있는 김사인의 모습이 정겹다.

대부분 시인이나 작가, 문학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 틈에 내가 한 필자로 끼어 있는 것이 한편 어색하고 한편 기분이 좋다. 물론 내가 문인들과 견줄만한 필력이 있다거나 글솜씨가 좋아서인 것은 전혀 아니다. 김사인과 서로 좋아하는 친구사이이고 이 책을 편집한 이종민과도 막역한 사이인 것이 작용한 것이니 정실이 작용한 것이라 해도 할말은 없다. 다만 이 책의 기획 자체가 그런 우정과 정실을 높이 사자는 것이었으니 용납받을 만 하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나는 코로나 1년을 지내던 어느날 김사인의 시 한편을 써서 표구해 걸어옿았던 일을 내 글의 소재로 삼았다. 작은 낙엽하나, 철이르게 떨어져 굴러온 것을 두고 ‘실은 이런 작은 일이 고마운 것이다’라 노래한 그 소박한 정서에 깊이 공감했었다. 시인은 그 낙엽이 자기 옆에 와 ‘있는다’고 적었는데 나는 그것을 ‘앉는다’고 잘못 적었었다. 뒤에 다시 생각하니 그 두 말의 차이는 적지 않았다. 미안함과 함께 나는 그의 단어 선택에 담긴 깊은 뜻을 헤아려보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앉는다는 네 옆에 가 있겠다는 주체의 적극적 의지가 느껴진다. 반면 있는다는 그런 작위보다는 조심스러운 자기처신의 의미가 더 크다. 도와준다는 생각이나 무언가를 행한다는 자의식보다도 주변과 더불어 공감하고 동행하려는 바람 같은 모습을 떠올린다. 나는 김사인이 그런 인간이라 생각하기에 그가 앉는다보다 있는다가 어울리는 시인이라고 썼다. 하지만 요즘 시대에 과연 그런 삶의 자세가 환영받을 수 있겠나 생각하면 나부터 쉽지 않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 책의 출간기념을 겸해 한마당 북토크가 기획되었다. 작가와 화가 등 문인예술가 들 사이에 나도 한자리 초청을 받았다. 감사하기도 하고 쑥쓰럽기도 한데 나이 먹어 우정을 논하고 그 우정을 즐거워 하는 사람들과 교유하는 즐거움은 호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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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회 6 기억과 미래

미래센터를 책임진 미하엘 마르텐 과정의 발제는 이런 시각의 종합판이라 할만 했다. 그는 현재 추진하는 미래센터가 과거경험을 정형화하고 박제화한 박물관이 아니라,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는 시각과 경험들이 소통하고 대화하며 성찰하는 플랫폼이 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특히 동독과 서독, 과거와 미래, 독일과 유럽 사이에 존재했고 또 존재하는 기억과 기대의 차이, 대립하는 시각을 드러내는 장으로 기획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역사는 (동서독인, 또 전 유럽인) 이 함께 이루어낸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특정한 집단이 중심이 된 해석이 아니라 기억문화 내부의 다원적인 목소리를 용인하고 서로 다른 기억들이 소통되게 만드는 것을 중시한다. 당연히 열린토론과 대화를 강조하는데 일방적이고 단순화된 공식기억, 기억의 독점으로 개개인의 생애사가 부정당할 때 포퓰리스트의 선동에 취약해진다는 것을 언급했다.

기억의 주체는 사람이며 그런만큼 다양하다. 또 기억은 늘 새롭게 재구성되는 과정이어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연결되는 지점이다. 기억은 늘 미래를 향해 열려있어야 하며 긍정적으로 이야기하는 대화로 이어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분단, 북한과 관련한 우리의 과거경험을 어떻게 말하고 서술할 것인지, 우리의 분단서사와 통일서사를 보다 세밀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박제화되고 정형화된 기념관이나 전시관이 아닌, 상충하는 기대와 기억들이 소통하고 연결되며 공존하는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 — 앞으로의 큰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