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오늘의 화두

성묘문화와 가문의식

6월 25일 아버지 기일을 하루 앞두고 고향 선산을 찾았다. 마산, 진주 등지에 흩어져 사는 누이들도 함께 모여 산소를 둘러보았는데 입구 돌계단도 부분적으로 무너져 내렸고 봉분에는 잡초가 무성했다. 조부모 산소로 이어지는 길은 찾기가 어려울 정도여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동네는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오가는 사람 대부분이 고령자들이고 젊은 사람 찾기가 쉽지 않다. 누이와 자형들도 대부분 70을 넘기셨고 나 또한 70 줄에 들어서기 직전이니 고령화가 내 실존이 되어 있는 셈이다.

점심을 함께 한 후 부친이 교장으로 재직하셨던 안의초등학교 앞의 한 까페에서 옛 추억을 이야기하고 정담을 나누었다. 누이들과 자형들도 대부분 교직에 계셨던 탓에 이곳이 낯설지 않다. 그러던 중 앞으로 산소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화제가 되었다. 지금처럼 아는 분에게 벌초를 부탁할 수 있는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데 모두가 공감했다. 자식들이 이곳까지 찾아와 성묘를 할 것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성묘라는 관행이자 도리가 언제까지 존속하게 될지도 자신하기 어려울만큼 시대상황도 달라지고 있다.

누이 한분은 부모 묘소를 가까운 곳으로 이장하면서 평토장을 하고 작은 비석만 세워두자고 했다.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채 잡초로 뒤덮인 산소를 그냥 두는 것은 민망하고 도리도 아니라는 이유다. 또 다른 누이는 굳이 평토장도 할 필요없이 우리 세대에까지만 성묘문화를 지키면 될 것이라 했다. 그 이후 누구도 찾지 않은 묘가 되어 잡초가 우거지는 것도 자연스런 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두 분의 주장은 다른 듯 하고 실제 격론도 이어졌지만 기실 공감하는 부분이 더 컸다. 이제 성묘와 관련한 의례를 우리 세대에 간소화하고 다음 세대에까지 넘겨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바탕에는 육체와 영혼을 구별하는 기독교 신앙이 깔려 있다.

장남으로서 내 의견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나도 언젠가는 이 문제에 대한 결단이 필요할 때가 오리라는 생각을 한다. 나 스스로도 이런 성묘문화에 철저하지 못한데 내 자녀들이 이 부분에 관심을 가지리라 기대하기는 더욱 어렵다. 사실 한국사회에서 성묘나 제사가 90년대 이후 새롭게 부각된 데는 계층의 분화에 따라 새로운 가문의식, 뿌리 의식이 커진 영향이 없지 않다. 더하여 영화나 미디어에서 그것을 한국의 전통풍습으로 재구성한 이유가 크다. 다종족화가 진행되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 더더욱 이 문화가 강조될 수도 있겠다.

솔직히 나는 조상이나 가문, 뿌리에 대한 의식이 그다지 강하지 않다.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한 이유가 컸을 듯 한데 실제로 나는 제사나 문중행사가 낯설다. 어릴 적부터 고향을 떠나 혼자 유학하며 생활한 나의 성장과정이 개인주의적 성향을 강화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내 아들 대에 이르면 훨씬 이런 문화는 약화될 것이 분명하고 나는 그것에 별로 안타까운 마음을 갖지 않는다. 다만, 부모님이 보여주셨던 독특한 삶의 자세와 정신적 지향, 조부로부터 이어진 문인적 지향과 선비로서의 자긍심은 잊지 않고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인데 그 분리가 가능할까? 그것은 어떤 가문의식과 의례를 필요로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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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 50년 지성사

2025년이면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설립 50주년이 된다. 1975년 문리대가 해체되고 대신 인문대, 사회대, 자연대의 세 기초학문대학으로 재편되면서 한국에 ‘사회과학’이라는 이름의 단과대학이 시작된지 반세기가 되는 것이다. 1년 여 전 사회대 50년의 역사를 한국의 지성사 맥락에서 정리하는 연구가 필요하지 않겠냐는 논의가 있었다. 해방후 학문의 본산으로 자임했던 서울대 문리대가 그 30년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할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사라진 것을 아쉬워했던 나로서는 이 공동연구의 필요성에 크게 공감했고 적극적으로 지지의 뜻을 보냈다.

그 결과 사회과학 여러 영역별로 중견 교수들이 참여한 프로젝트가 결정되어 현재 진행 중이다. 나는 사회학 분야를 담당하기로 하고 합류했는데 논의 과정에서 ‘사회과학’ 전체를 아우르는 총괄 원고 작성도 부탁 받았다. 다양한 분과학 전체를 포괄하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고 내 역량도 많이 모자라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것 같았고 또 나름 보람있는 일이기도 해서 수락했다. 6월 12일 각 분과학 별로 일년여 기간 준비한 초고들을 발표하고 공유하는 자리를 가졌다. 사회과학 전 영역에 걸친 50년 역사를 한 자리에서 토론하는 기회는 흔치 않은데 특히 총괄원고를 작성해야 하는 나로서는 소중한 경험이었고 유익했다.

돌이켜보면 내가 1974년에 서울대 사회계열에 입학했던 때가 종합화 출범 1년 전이었다. 교양과정부 1년을 보낸 75년에 관악으로 옮겨왔고 그 해에 사회대로 진입한 첫 학번이니 명실상부 사회과학대학의 첫 세대인 셈이다. 그 이후 지금까지 사회학자로 살아왔고 사회대 교수로 정년을 맞았으니 사회대 50년의 역사는 곧 내 개인의 삶과 고스란히 겹친다. 사회대 50년과 사회학 50년, 그리고 내 개인의 학문사 50년을 함께 되돌아보니 감회가 새롭다. 실제로 이 연구는 내 자신의 지적 궤적을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작업과도 무관할 수가 없다. 사회과학계열이라는 범주가 너무 생소해 ‘법대와 상대와 문리대’의 총칭이라 이해하고 주변에도 그렇게 설명했노리 하시던 아버님 말씀이 떠오른다.

사회대 50년은 한국의 지성사에 어떤 의미를 가졌을까? 사회대를 통해 이어진 지구적 차원의 사회과학과 한국 사회과학 사이에는 어떤 공통의 관심사와 상이한 긴장이 오갔을까? 수용된 서구 사회과학은 얼마나 보편성을 확인했으며 한국의 특수성에 주목한 논의들은 얼마나 이론적 지평을 넓히면서 세계 학계에 기여했을까? 경험과학으로서의 사회과학은 이데올로기적 사유와 다른 과학적 타당성을 얼마나 획득했을까? 그런 과정을 통해 오랜 쟁점이었던 사회과학의 가치중립과 가치개입의 딜렘마는 어떻게 해결해 왔는가?

사회대의 출범은 전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사회과학 분야의 여러 학문을 발전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 경제학, 정치외교학, 사회학, 지리학, 심리학, 인류학, 언론정보학, 사회복지학 등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데는 지난 50년의 수고가 컸다. 이 기간에 서구의 발전된 이론과 방법론이 수용되고 다음 세대의 사회과학자들이 성장했다. 한국사회의 압축적 발전과정에 필요한 기획, 평가, 조정의 소프트파워를 제공하는데도 큰 기여를 했다. 각 학문 분야별로 또 개별 교수 차원에서 국제적 교류와 소통으로 지적 보편성과 세계성을 높여온 것도 중요한 성과다. 정부와 기업에 도움이 되는 전문성 제공은 물론이고 시민사회와 문화영역에서 필요한 비판적 시야와 종합적 상상력을 제공한 것도 사회과학의 성과라 할 만하다.

하지만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이라는 3분법의 제도화가 지성사 전반에 미친 영향은 제대로 검토된 바가 없다. 대학제도에 뿌리밖은 분과학체계가 영역간 크로스오버와 융복합이 급증하는 현실과 괴리되고 있다는 주장도 곳곳에서 들여오고 있다. 의학과 법학을 비롯한 몇몇 분과학에 인재와 자원이 편중되는 현실과 이런 지식분류체계가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지도 돌아볼 문제다. 어떤 인간형을 키워낼 것인지에 대한 책임있는 고민과 노력보다 서울대가 지닌 정치적 영향력, 문화적 위상에 편승해온 측면은 없는지도 반성할 부분이다. 학력주의의 폐해가 대학의 서열화와 분과학간 장벽의 높이와 무관치 않다는 점에 대해서도 귀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저출산과 고용불안, 양극화의 사회적 난제에다가 인공지능과 디지털화, 바이오 테크놀로지가 불러오는 심대한 충격과 불확실성을 눈앞에서 보고 있다. 탈냉전과 세계화를 넘어 새로운 지정학적 분할과 생활세계의 위험을 목도한다. 인간-기계의 통합이 급진전되고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서자는 포스트 휴머니즘이 확산되며 기후위기를 넘어 인류세라는 묵시록적 논의까지 부상하는 상황이다. 인문-사회-자연 과학 3분류는 언제까지 유효하며 그에 기반한 전문성은 얼마나 유용성을 인정받을까? 서울대는 최고대학의 위상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각자도생의 경쟁에 함몰된 젊은 청년들에게 사회과학이 제공하는 삶의 향방과 지혜는 무엇이어야 할까? 언제까지 대학은 지식생산과 고등교육의 전담기구로 존속할 수 있을까? 글을 쓰면서 내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지게 되는 질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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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교육과 제도지체

염재호 태재대학교 총장, 이광형 카이스트 총장, 장병탁 서울대 AI 연구원장 등과 함께 저술한 책자 [AI 시대 대학교육의 미래] (나남출판) 가 출간되었다. 한림대 도헌학술원에서 기획한 도헌학술총서 제1권으로 대부분의 필자들은 1년여 전에 개최되었던 학술심포지엄에 참석한 분들이다. 나는 그 행사에는 참여하지 않았는데 책을 기획하면서 관련 주제의 글을 청탁받아 추가로 참여하게 되었다.

필자들 대부분 유수한 대학이나 관련 기관의 운영을 책임진 분들인데다 인공지능이나 과학기술 분야의 학자들이어서 책의 주제와 잘 어울린다. 나도 광주과학기술원에 초빙석학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니 직함만으로는 어색하지 않지만 그동안 내가 연구하고 가르쳐온 주제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전의 나를 기억하는 분들이라면 내가 이런 주제의 책에 공저자로 이름을 올린 것을 생뚱맞게 여길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십여년 전부터 나는 테크놀로지가 핵심적인 변수가 된 시대가 도래했다고 느꼈고 그런 맥락에서 관련 연구들을 기획하기도 하고 [커넥트파워]라는 책을 공저하기도 했기에 내 자신으로는 전혀 엉뚱한 관심확장은 아니다.

한림대 측으로부터 원고청탁을 받았을 때 글을 써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이유도 그런 저간의 변화 때문이었다. 사회학회장을 하면서 가졌던 여러 관심사들에 더하여 코로나 19 시기의 충격이 내게 미친 영향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깊다. 그 경험은 단지 개인의 실존적 생활경험에 한정되지 않고 불현듯 나타난 온라인 경제, 플랫폼 사회, 커넥트 파워들의 충격으로 이어졌고 광주과학기술원에서 강의를 하면서 그런 문제의식은 더욱 깊어졌다. 이제 다시 이 모든 변화를 아우르면서 인공지능의 쓰나미가 들이닥치고 있어 커즈화일이 말한 ‘특이점이 오고 있다’는 주장을 새삼 떠올리게 만든다.

나는 이런 변화가 일상, 경제, 문화, 종교 등 각 영역에 두루 나타나지만 특히 교육현장과 학교라는 제도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리라는 생각한다. 코로나 19를 겪으면서 내가 계속 떠올리는 개념이 ‘제도지체’인데 이 첨단의 기술변화를 제도와 관성이 따라가지 못해 생기는 각종 문제들을 말한다. 챗 GPT 3.5로부터 시작된 LLM 기반 인공지능의 급성장은 조만간 AGI라 불리는 일반인공지능의 출현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확대시키고 있다. 한국의 고도성정기를 뒷받침해온 강력한 교육시스템이 겪고 있는 제도지체의 여러 측면들을 점검하고 대비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절실한 우리 사회의 숙제다.

나는 네가지 차원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답찾기식 교육과 분과학주의에 갇힌 연구방식을 넘어서는 것, 그래서 창의적 발상과 융복합적 소통이 교육과 연구방식에 상시적으로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캠퍼스와 지역사회가 단절되어 있는 구조를 넘어 산업계, 지방정부, 시민사회의 다양한 주체들과 결합되는 지식생태계를 형성하는 것도 중요하고 젊은 세대의 청년들이 새로운 꿈을 꾸고 미래를 향해 비상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대학문화를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쉽지 않은 목표고 지나치게 이상적인 주장이라 할 수도 있겠다.

글을 쓰면서 늘 느끼는 것지만 분석하기보다 제안하기가 어렵고, 제안하기보다 실천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제안에는 책임이 따르는데 ‘과연 나는 그렇게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안하고 주장해야 하는 것은 해야 한다. 제도지체의 한계를 넘어서려면 상당한 혁신이 불가피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남에게 권유하는 제안이기 이전에 내 자신에게 하는 다짐이기도 한 까닭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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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과 논쟁

5월 9일 사단법인 ‘통일과 나눔’에서 주최하는 정책 심포지엄이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급변하는 한반도 주변 정세를 고려할 때 어떤 통일을 어떻게 추진해야 할지, 이에 필요한 새로운 전략적 구상과 쟁점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논의해 보자는 취지였다. 특히 연초에 북한이 적대적 2국가론을 내놓은 상황이어서 더더욱 현실감과 정치성이 담긴 심포지엄이 되었다. 애초 2주제의 발제를 부탁받았지만 보다 젊은 세대의 이야기가 더 필요하리라 생각해서 덕성여대 이수정 교수를 추천했다. 대신 나는 종합토론을 맡았다.

1주제를 발제한 윤영관 교수는 지정학적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통일을 향한 꿈’이 중요함을 역설했다. 폴란드가 오랜 피억압상황에서도 독립의 꿈을 잃지 않았기에 오늘의 폴란드가 있다는 마무리가 묵직하게 울렸다. 두번째 발제자인 이수정 교수는 최근 젊은 세대의 통일에의 무관심, 북한에의 거부감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솔직하게 논의했다. 달라지고 있는 정체성, 감수성에다 분단 70년의 무게감이 더하여 무관심이 커지는 것은 당연한 변화이지만, 남북대결이라는 현실이 갖는 규정력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젊은 세대가 보이는 딜렘마, 혼란, 위기감을 공감할 수 있었다.

세번째 주제를 발제한 김병연 교수는 남북한의 통일을 중요한 목표로 설정하면서 점진적이고 단계적이어야 함을 강조했다. 분단 70년의 역사를 통해 전혀 다른 체제와 경험을 공유해온데다 경제적 조건이 크게 다른 남북이 급속한 통합을 이루기도 어렵거니와 그 후유증은 매우 클 것이기 때문이다. 통일로의 과정에서 남북간 정치와 문화의 이질성과 독자성을 상당기간 용납하도록 구상된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기조이기도 하다. 하지만 경제적 통합력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이런 중간단계가 안정적일 수 없으므로 중간단계로 경제공동체를 상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김교수의 주장이다. 이런 중간단계 설정을 위해서 북한의 전략적 전환이 필수적이라는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긴 하다.

종합토론에서는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 천영우 전 외교안보수석, 이신화 북한인권대사 등이 패널로 참석했다. 나는 패널 참석자들에게 현재의 한반도 상황악화를 가져온 근본 요인을 무엇으로 보는지, 그리고 향후 방향설정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이종석 장관은 윤석열 정부의 강경일변도 대북정책이 가장 큰 요인이며, 남북한이 별개의 국가로 지내면서 평화로운 통일을 먼 미래의 과제로 설정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을 했다. 천영우 수석은 미중의 패권경쟁을 비롯한 지정학적 변화와 그에 편승한 북한의 전략적 선택이 가장 큰 요인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그리고 북한과 평화공존을 추진하려는 발상을 낭만적이고 무책임한 것이라는 입장을 피력했다. 현 시점에서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진보, 보수의 입장이 뚜렷하게 대비되는 자리였다.

워낙 입장 차이가 뚜렷한 주제여서 애초 화기애애한 토론이 진행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양측 모두 현실의 무거운 상황을 직시할 수밖에 없기에 진솔한 고민을 나누고 공유가능한 방향을 탐색하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했다. 결과적으로는 문재인 정부 책임론과 윤석렬 정부 책임론으로 서로를 비판하고 좌장, 또는 사회자로서의 역할이 개입할 수 없는 논쟁이 되고 말았다. 시간도 충분치 못한데다 정파적 입장까지 더해진 탓에 제대로된 마무리도 하지 못하고 끝을 맺었다. 나름대로 기대를 갖고 시작하는 토론이지만 결국은 뻔한 논쟁으로 귀결되는 경험을 또 한번 겪은 셈이다. 청중과 언론은 각기 원하는 내용들만 취사선택에서 제2, 제3의 논쟁거리를 재생산하리라. 이런 토론도 서로 다른 입장을 보여줌으로써 독자와 청중에게 도움이 되려니 생각해보지만 그런 믿음의 강도가 조금씩 줄어드는 느낌이다. 지혜를 구하는 토론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까 자문해본다.

life · 시공간 여행

곁에 온 100세 시대

장인어른께서 올해 100세가 되셨다. 물론 전통적으로 세는 우리 나이여서 만으로 치자면 조금 더 있어야 하지만, 오히려 100세 느낌은 지금 더 나는 것 같다. 신문 지상에서 또는 남의 이야기로 간간히 100세란 말을 듣곤 했지만 가까운 집안 어른이 100세를 맞이하니 그 실감이 남다르게 다가온다.

마침 5월 초에 부산에 일정이 생겼는데 어버이날도 앞둔 시기라 장인 어른을 모시고 식사를 함께 했다. 모시고 나온 손윗 처남이 70을 훌쩍 넘기셨으니 두 분을 부자지간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느낌이었다. 다행히 장인 어른께서는 기억력이 많이 퇴색되었을 뿐 여전히 꼿꼿하시고 스스로 걸으실 뿐 아니라 식사도 혼자 큰 어려움 없이 하셨다. 간간히 약간의 농담 섞인 대화에도 큰 어려움 없이 대꾸하실 정도로 객관적 연세에 비해 정정하셨다.

지극 정성으로 보살피는 7순 아들의 효성이 그 일차적인 힘이 되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여기에 더하여 노인학교를 오갈 수 있는 여건, 이런 노인들을 보살피고 도와주는 복지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는 덕분임도 분명하다. 실제로 우리 주위에 이런 노인복지에 고마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남의 나라 부러워한지 엊그제 같은데 이제 한국이 그런 부러움을 사는 나라가 되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다만 이런 현상을 보노라면 세계최고의 저출산율을 보이는 또다른 한 측면을 떠올리게 된다. 앞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감당해갈 수 있을까? 노인복지와 저출산율의 두 이미지가 빚어내는 어긋난 영상이 앞날에 대한 우리 생각을 어지럽게 한다.

life · 오늘의 화두

김사인 함께 읽기

이종민 교수의 수고 덕택에 [김사인 함께 읽기] 책자가 멋지게 출간되었다.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시인이자 좋아하는 벗인 김사인 교수의 정년을 축하하기 위해 몰래 기획한 작품인데 52명의 문인 작가 지인들이 흔쾌히 글을 보내 성사된 결과물이다. 표지에 흰고무신 차림으로 한옥 툇마루에 앉아있는 김사인의 모습이 정겹다.

대부분 시인이나 작가, 문학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 틈에 내가 한 필자로 끼어 있는 것이 한편 어색하고 한편 기분이 좋다. 물론 내가 문인들과 견줄만한 필력이 있다거나 글솜씨가 좋아서인 것은 전혀 아니다. 김사인과 서로 좋아하는 친구사이이고 이 책을 편집한 이종민과도 막역한 사이인 것이 작용한 것이니 정실이 작용한 것이라 해도 할말은 없다. 다만 이 책의 기획 자체가 그런 우정과 정실을 높이 사자는 것이었으니 용납받을 만 하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나는 코로나 1년을 지내던 어느날 김사인의 시 한편을 써서 표구해 걸어옿았던 일을 내 글의 소재로 삼았다. 작은 낙엽하나, 철이르게 떨어져 굴러온 것을 두고 ‘실은 이런 작은 일이 고마운 것이다’라 노래한 그 소박한 정서에 깊이 공감했었다. 시인은 그 낙엽이 자기 옆에 와 ‘있는다’고 적었는데 나는 그것을 ‘앉는다’고 잘못 적었었다. 뒤에 다시 생각하니 그 두 말의 차이는 적지 않았다. 미안함과 함께 나는 그의 단어 선택에 담긴 깊은 뜻을 헤아려보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앉는다는 네 옆에 가 있겠다는 주체의 적극적 의지가 느껴진다. 반면 있는다는 그런 작위보다는 조심스러운 자기처신의 의미가 더 크다. 도와준다는 생각이나 무언가를 행한다는 자의식보다도 주변과 더불어 공감하고 동행하려는 바람 같은 모습을 떠올린다. 나는 김사인이 그런 인간이라 생각하기에 그가 앉는다보다 있는다가 어울리는 시인이라고 썼다. 하지만 요즘 시대에 과연 그런 삶의 자세가 환영받을 수 있겠나 생각하면 나부터 쉽지 않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 책의 출간기념을 겸해 한마당 북토크가 기획되었다. 작가와 화가 등 문인예술가 들 사이에 나도 한자리 초청을 받았다. 감사하기도 하고 쑥쓰럽기도 한데 나이 먹어 우정을 논하고 그 우정을 즐거워 하는 사람들과 교유하는 즐거움은 호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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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회 6 기억과 미래

미래센터를 책임진 미하엘 마르텐 과정의 발제는 이런 시각의 종합판이라 할만 했다. 그는 현재 추진하는 미래센터가 과거경험을 정형화하고 박제화한 박물관이 아니라,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는 시각과 경험들이 소통하고 대화하며 성찰하는 플랫폼이 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특히 동독과 서독, 과거와 미래, 독일과 유럽 사이에 존재했고 또 존재하는 기억과 기대의 차이, 대립하는 시각을 드러내는 장으로 기획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역사는 (동서독인, 또 전 유럽인) 이 함께 이루어낸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특정한 집단이 중심이 된 해석이 아니라 기억문화 내부의 다원적인 목소리를 용인하고 서로 다른 기억들이 소통되게 만드는 것을 중시한다. 당연히 열린토론과 대화를 강조하는데 일방적이고 단순화된 공식기억, 기억의 독점으로 개개인의 생애사가 부정당할 때 포퓰리스트의 선동에 취약해진다는 것을 언급했다.

기억의 주체는 사람이며 그런만큼 다양하다. 또 기억은 늘 새롭게 재구성되는 과정이어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연결되는 지점이다. 기억은 늘 미래를 향해 열려있어야 하며 긍정적으로 이야기하는 대화로 이어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분단, 북한과 관련한 우리의 과거경험을 어떻게 말하고 서술할 것인지, 우리의 분단서사와 통일서사를 보다 세밀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박제화되고 정형화된 기념관이나 전시관이 아닌, 상충하는 기대와 기억들이 소통하고 연결되며 공존하는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 — 앞으로의 큰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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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열린 시각과 집합지성

문승현 차관은 이틀의 회의를 종료하면서 ‘열린 시각’과 ‘집합지성’을 핵심적 교훈으로 언급했다. 열린 시각이란 현실의 다층적 차원을 균형있게 그리고 깊이있게 다루는 역량을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개인의 사고가 유연해져야 함은 물론이고 현실의 복합성을 인지하는 실력이 더해져야 할 것이다. 특정한 개인이나 정파의 목소리보다 사회 각 영역의 지혜가 결합하여 고급한 집합지성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이 중요한 것은 그 당연한 귀결이다. 나는 열린 시각을 서로 다른 관점의 균형이라는 방식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고 보는데 내가 특히 주목했던 세가지 차원을 중심으로 개방적이고 복합적인 사고의 균형을 생각해본다.

첫째는 과거의 미래의 균형이다. 흔히들 독일에게 통일은 과거사가 되었고 한국의 통일은 미래적 과제라고 말한다. 하지만 역사의 긴 과정으로 보면 통일이라는 사건도 과거와 미래가 연결되어 있는 장기적 대전환의 한 부분이다. 독일의 이번 발제에서 ‘전환’이란 화두가 자주 등장한 것이나 분단시대의 긴 트라우마를 언급한 것은 통일을 지난 과거사로 볼 수 없으며 미래로의 전환과 결합해서 파악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둘리히 장관이 말했듯이 이 프로세스는 분단에서 통일로의 전환 뿐 아니라 과거에서 미래로의 전환까지 포함한다. 마르텐 역시 분단시기와 통일시기를 사람들의 생애사 속에서 연속적으로 포착할 것을 강조했다.

둘째는 민족사와 지역사의 균형이다. 독일측은 분단해소와 통일과정이 결코 독일에 한정된 사안이 아니었고 또 그렇게 해석되어선 안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동독의 인권사항도 동서독 교류협력도 민족사의 차원을 넘어서 보편사, 유럽사의 맥락을 잃지 않으려는 시각을 드러냈다. 이번 회의에서는 논의되지 않은 헬싱키 프로세스와 유럽통합이란 지향 속에서만 독일통일의 쾌거가 가능했다는 교훈을 새삼 확인한다. 우리 맥락에서는 한반도적 관점과 동북아 지정학이 함께 가야 한다는 말이겠는데 민족사나 국가사 못지 않게 세계사의 흐름과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대북정책이 주변국외교와 긴밀히 연계되어야 함을 말해주는 것이다.

셋째는 정치경제와 사회문화의 균형이다. 분단과 통일의 시각은 늘 정치적 시각과 경제적 고려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것이 현실이기도 하고 정치적 판단과 경제적 통합이 가장 중요한 동력임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독일측은 유난히 사회적인 것, 개인적인 생애경험을 중시할 필요를 강조했다. 변화를 감당하는 시민들이 어떤 경험과 생각을 하게 되는지, 자신의 생애 속에서 소중히 여기던 경력과 경험들을 새로운 체제전환과 어떻게 연결시킬지가 중요하며, 그런 의미에서 통일은 국가적 의제임과 동시에 시민사회적 쟁점이기도 하다. 민주주의 원리가 강조되는 것도 이런 차원에서

내 개인적으로는 이런 복합적 시각과 열린 자세를 잘 드러낸 것이 독일의 미래센터 기획이 아닌가 싶다. 2022년 연방정부와 연방의회의 결의를 거쳐 추진되고 있는 이 센터는 10년의 건립기간을 두고 과거와 미래, 독일과 유럽, 서독과 동독을 함께 묶는 새로운 비전을 구축하겠다는 비전을 표방한다. 이 작업을 책임진 미하엘 마르텐 과장은 발제에서 현재 추진하는 미래센터가 과거경험을 정형화하고 박제화한 박물관이 아니라,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는 시각과 경험들이 소통하고 성찰하는 플랫폼이 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특히 정부나 특정 집단이 컨텐츠를 정형화하거나 공식화하지 않도록 사회 곳곳에 개인별로 상이한 경험과 기억을 존중하는 기획이 되도록 할 것임을 강조했다.

‘역사는 (동서독인, 또 전 유럽인) 이 함께 이루어낸 것’임을 보여주면서 기억문화 내부의 다원적인 목소리를 용인하고 서로 다른 기억들이 소통되게 만드는 것을 중시할 것을 강조했다. 일방적이고 단순화된 공식기억, 기억의 독점으로 개개인의 생애사가 부정당할 때 포퓰리스트의 선동에 취약해진다는 것을 언급하는데서 나는 정책담당자가 웬만한 인문사회학자 이상의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경험과 기대, 기억과 평가에 상이함이 크고 모순적인 대립이 존재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집합적이고 문화적인 역량이 한국의 통일담론과 정책구상에도 확대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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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회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

이번 회의에서 독일측 참석자들이 자주 언급한 것이 ‘사회’와 ‘인간’이었다. 경제적인 문제가 논의될 때도, 정치적인 쟁점을 다룰 때도, 기억과 문화를 언급할 때도 사회와 개인을 소환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이것이 현재 독일문화 전반적인 특징인지 확언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통일 이후의 변화를 주목하고 있는 구동독지역 지식인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화두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귄터 총장은 분단시절의 지역별 특허출원을 검토한 후 발명정신은 체제와 무관하다는 결론을 맺었다. 사회주의 집단경제 하에서는 창의력과 기업가정신이 발휘되기 어렵다는 통설에 대한 반론처럼 들렸다. 김병연 교수가 북한의 경제발전모델을 설명하면서 시장화를 일종의 필수적 전제로 강조한 것과도 결이 다른 발제였다. 귄터는 어떤 체제 하에서도 혁신과 창의의 아이디어는 출현할 수 있고 그것이 실현되는 영역이 있게 마련인 바, 전환과정에서 그 경험을 해체하거나 무화시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정치적 판단과 경제적 타산 하에서는 종종 무시당했던 동독 하에서의 긍정적 자산들을 사회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되살리고자 하는 노력으로 읽혀졌다.

동서독간 소포에 담겼던 문화적 함의를 발제한 콘스탄체 조흐 역시 ‘독재사회에서 일상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이런 영역을 주목했다. 그 일상은 일방적인 억압과 감시, 수동적인 행동으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고 나름대로의 기쁨과 애환을 담고 있는 삶의 현장이며 다양한 정서들이 축적되던 영역이었다. 동서독 사이에 오고간 소포는 단순히 동서독 교류, 경제적 효과, 정치적 함의로 환원될 수 없는 다양하고도 복합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 소포상자를 대하는 태도와 감정도 세대에 따라 시기에 따라 달랐다. 아이러니하게도 통일 후 소포상자에 담겼던 우호적인 애틋한 기억이 변질되기도 했다는 설명을 들으면서 작년 베를린에서 들었던 징치교육센터장의 발제가 떠올랐다. 독재에 대한 해석은 그 독재 하에서 느꼈던 평안함과 익숙함까지도 포함해야 한다는 것, 그래야만 제대로 된 독재경험의 극복이 가능하다는 것 — 독재와 억압도 사회와 개인의 삶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라 할 만했다.

미하일 마르텐은 공식 기억에서 놓치기 쉬운 개인적인 차원을 주목할 것을 강조했다. 통일 이후에 과거를 어떻게 해석하고 기억할 것인가, 어떤 방식으로 기념할 것인가가 중요한 쟁점인데 그는 누구든 과거의 독점은 곤란하다고 했다. 다양한 경험을 가진 개인과 사회 차원에서 보면 기억의 충돌과 대립이 오히려 정상적인 것이다. 국가가 과거를 서술하는 주체가 되어서도 곤란하며 개인의 삶, 각각의 생애사 속에 담긴 다양한 경험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특정한 경험과 기억에 특권을 부여하지 않고 모든 기억과 경험을 민주적으로 대하고 상호소통의 기회를 허용하는 것, 기억을 영구적이고 살아있는 과정으로 되살리는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역설했다. 기억의 공간이 그 어느 곳보다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말에 공감이 갔다.

북한과의 교류 협력 경험보다 단절과 위험이 심화된 오늘 한국에서 북한 및 통일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방식은 훨씬 단순해지고 공식화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체제가 동독에 비할 수 없을만큼 전체주의적이어서 개인적, 사회적 차원의 다양성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안타까운 현실의 반영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탈북자와 북한인권문제가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불가피하다. 현재 추진되는 국립북한인권센터가 북한, 인권, 남북관계를 어떻게 서술하고 이미지화 할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최근 김정은 주도하의 북한동향과 악화되는 남북관계를 고려하면 사회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을 신경쓸 여지는 현저히 좁아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북한인권을 공식화, 평면화, 정치화하지 않고 그 다양한 차원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방식이 찾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먼저온 통일’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면서 정부가 관심을 갖고 지원하고 관리하는 탈북자에 대한 정책적 대응도 그들의 개인적이고 미시적인 생활사를 놓치지 않으려는 섬세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탈북자가 독특한 경험을 공유한 집단임은 분명하고 이들에게 한국의 통일이라는 큰 과제와 연결시키려는 스토리텔링을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실제로 ‘먼저온 통일’이라는 말에 자부심을 느끼는 탈북자도 있고 그런 관점에서 우리 사회의 포용성이 커질 수도 있다. 하지만 탈북자라는 범주로 자신의 삶이 규정되는 것을 불편해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개개인이 탈북과 정착 과정에서 경험하고 갖게된 독특한 삶의 이야기를 다면적으로 이해하고 포용하는 노력은 지금보다 더 섬세하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최근 독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서독의 발명으로서의 동독] 처럼 한국의 발명품으로서의 탈북자 서사가 되지 않도록 그들의 다면적 삶을 이해하고 지원하는 노력이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남북한 관계, 통일과 평화의 주제가 언제나 정치적 의제로 다루어지는 우리 사회에서는 김병연 교수가 보여주는 경제적 접근조차 신선하고 새롭게 여겨진다. 이런 한국적 현실에서 징치와 경제를 넘어서 사회와 개인을 강조하는 시각은 힘을 얻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우리의 일상현실조차 정치와 경제가 중심을 이루는 현실에서 시민들의 사회적 공간과 개인의 독특한 경험을 중시하는 것은 애매하고 불투명한 태도로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차원을 얼마나 제대로 감당할 수 있느냐가 정책의 고급성을 좌우하고 선진국으로의 이행을 보장할 것은 분명하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대북정책이 요동치는 우리의 현실도 사회와 인간에 대한 깊은 숙고가 부재한 탓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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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Property, Nation, Constitution

한국과 독일 사이에 공유된 주요 키워드 중 하나가 민주주의다. 한국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이 헌법적 가치인데다 현 정부 들어 자유와 인권의 보편적 가치확산을 대북정책의 핵심으로 내세우고 있다. 독일 역시 통일과정은 물론이고 현재의 통합과제에도 민주주의를 핵심 원칙으로 강조하고 있다. 독일은 가장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로 인식되고 한국 역시 아시아에서 역동적인 민주주의를 실현한 사회로 인식되고 있으니 이런 모습은 당연하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했다.

회의 도중 독일 통일 직후에 유명한 정치사회학자인 Claus Offe 가 쓴 글이 생각났다. “Property, Nation, Constitution”이라는 제목으로 기억되는데 독일 통일의 주된 동력이 경제력 (마르크와 풍요), 민족애 (집합정체성과 감정), 헌법 ( 민주주의와 시민권) 셋 중 어디에 있었는가를 다룬 것이었다. 통일과정에서 독일 마르크의 경제력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고 또 동족애와 민족감정이 주요한 요인임은 많이 언급된 내용이다. 이 글은 하버마스의 제자답게 민주주의라는 원리가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임을 강조했는데 시민권을 보장하고 대화를 강조하는 것이 통일과정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밝힌 글로 기억 속에 남아있다.

통일과 관련하여 내세우는 민주주의의 핵심가치가 두 나라 사이에서 차이를 보인다는 사실이 흥미로왔다. 독일은 대화를 중시했고 한국은 자유를 강조했다. 한국이 자유를 중시한 것은 그 역사가 오래다.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좌우분열과 분단을 겪고 한국전쟁과 냉전시대를 거쳐오면서 자유는 체제이념의 핵심요소로 간주되어 공식 이데올로기로의 중요성이 부과되었다. 실제로 독립운동이나 공산주의와의 대립과 전쟁, 그리고 독재정권 하에서의 민주화운동을 관통하며 모두에게 공유된 가치의 하나가 ‘자유’였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오늘날 한국이 다양한 영역에서 역동적인 창의력을 보이고 K-Pop의 개방성과 융합성이 전지구적 관심을 끄는 배후에도 한국인의 자유로운 사고와 행동이 큰 자산으로 자리하고 있다.

남북간 교류협력이 강조되던 시기에는 통일과 관련하여 자유라는 가치를 그다지 강조하지 않았다. 그런데 현정부 들어 자유는 대북정책 및 통일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강조되고 있다. 통일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기초해야 한다는 관점,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 원칙의 확산’을 통일의 핵심으로 강조한 사실등이 이런 경향을 추동한 주요한 요인이 되었다. 내용적으로 헌법에 규정된 바인만큼 특별히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북한이 한국과의 협력과 교류를 거부하고 핵무력에 입각한 적대노선을 고집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이상 민족통일을 추구하지 않으며 한국을 최대적으로 간주하겠다는 상황에서 자유라는 가치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북한에 대해서는 진보정권이 추구했던 교류와 협력 못지 않게 자유민주주의라는 체제논리의 우선성을 강조하겠다는 메시지일 수 있다. 당연히 북한으로부터 ‘체제통일’ ‘흡수통일’의 지향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 박근혜 정부 당시의 통일대박론이 북한에게 ‘흡수통일론’으로 인식되었던 것과 유사하다.

독일측 발제에서 구동독 지역에서 AFD를 비롯한 극우세력이 높은 지지를 받는 현상과 관련하여 민주주의, 대화의 중요성이 언급되었다. 사통당 독재희생자 특임관실의 슈비더스키는 현재의 극우 부상을 ‘사통당 독재의 장기적 트라우마’와 연결시켜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부당한 체제의 감시와 폭력이 미친 영향은 수십년 후에 나타나기도 하는 장기적이고 지속적인데 이런 어려움이 방치되면서 포퓰리즘이 번성할 토양이 조성된다는 것이다. 사통당 희생자 특임관 제도가 그 장기 트라우마에 공적 목소리를 부여하고 참여를 통해 심리적 위기를 극복할 계기를 만들려 한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대화와 인정이야말로 소중한 가치임을 역설했다.

작센주 장관 둘리히 역시 구동독 지역주민들의 내면에 깔린 ‘미래에의 불안’을 지적하였다. 그것은 단지 동독시절의 억압의 경험만이 아니라 통일과정에서 자신의 오랜 삶이 부정당했던 아픈 기억의 결과이기도 하다. 이런 부정적 기억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을 때에 해소가능하며 그런 긍정적 미래상을 위해서는 지속적 대화와 교육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작년 회의시 방문했던 바이써바써 지역에서도 시장은 주민들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 민주적 대화가 극우의 확산을 막는 관건이라고 했던 것을 떠올렸다.

극우정당과 혐오문화는 독일의 현상이지만 그 기저에 깔린 사회심리적 차원은 오늘 한국의 현실과도 결코 무관치 않다. 한국사회 역시 정치가 팬덤화하고 싫어하는 집단을 악마화하는 혐오문화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특히 북한과 일본, 특정 소수집단은 정치적 논란이 심해질 때면 악마화의 대상이 되기 쉽다. 통일을 향한 길에 남북간 상호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할텐데 불신과 비난이 난무하는 현실이 걱정스럽다. 자유가 매우 중요한 가치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으며 오늘 한국의 발전이 자유의 추구에 힘입은 바 큼도 사실이다. 하지만 자유가 민주주의의 모든 것일 수는 없다. 자본주의와 디지털문명과 결합한 오늘의 자유주의가 많은 문제들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통일이라는 미래과제와 관련해볼 때 자유라는 가치 이외에도 우애, 책임, 신뢰, 포용의 가치들이 소중하며 어떤 측면에선 더욱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기도 함을 새삼 재확인하게 된다. 하버마스가 민주주의를 ‘의사소통’이란 말로 이해하려 했던 뜻이기도 할 터이다. 민주주의의 두 축으로서 자유와 대화를 균형있게 발전시켜야 할 필요성을 새삼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