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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테네

드디어 그리스 아테네에 왔다. 내가 파르테논 신전과 올림푸스, 제우스와 신탁의 이야기에 접한 것이 초등학교 시절이었고 그때부터 와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으니 무려 50년이 훌쩍 넘어 꿈이 이루어진 셈이다. 아테네에서의 첫 날 저녁 아크로폴리스가 올려다 보이는 아고라 광장 주변 거리 까페에서 식사를 했다. 주위엔 신나는 음악과 춤이, 광장에는 수많은 인파가 줄을 이었다. 세계 곳곳에서 온 사람들의 유쾌한 목소리와 붉은 색 조명들이 낭만적인 분위기를 더했다.

광장 위편으로 아크로폴리스의 모습이 조명 속에 드러났다. 때마침 보름달에 가까워 온 밝은 달이 휘영청 떠올라 광장과 신전, 둥근 달이 한폭의 그림처럼 어우러졌다. 이 주변에 도서관과 학당, 공연장 등이 두루 배치되어 있었으니 고대 아테네 폴리스의 진면목이 이 공간에 남아 있는 셈이다. 2천년전 이곳에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가르치고 대화하며 때론 격론을 벌었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에 뭉클한 무엇이 느껴진다.

첫날 밤 야경으로만 만족했던 아크로폴리스 방문길을 다음날 아침부터 준비했다. 시간대 별로 입장권 가격도 달라 인터넷으로 10시 예약을 했다. 비교적 이른 9시에 호텔을 나섰지만 내리쬐는 태양열은 무서울 정도였고 아무런 그늘도 없는 언덕 위에서 느끼는 열기는 참기 어려웠다. 그래도 어릴적 해외여행을 꿈꾸게 만들었던 곳에 왔다는 생각이 더위도 잊을만치 나를 들뜨게 했다. 마침내 들어가 만난 파르테논 신전은 아직 복원이 채 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어릴 적 사전으로 보았던 모습 그대로였다. 오랫동안 원형이 유지되었다는데 17세기 이 지역을 공격한 베네치아와의 전투시 튀르크군의 화약이 폭발하여 건물의 원형이 상당부분 훼손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 웅장함이나 균형미를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명불허전이라 할까.

아크로폴리스 정상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은 기원전 5세기에 아테나 여신에게 봉헌된 신전으로 건립되었다. 대리석으로 된 높은 도리아식 기둥들로 둘러싸인 전체 건축 양식은 특히 아름다와 현재 유네스코 문화유산 제1호로 등재되어 있다. 현재 진행 중인 복원공사에도 유럽연합의 재정지원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멀리 아테네 도시를 바라보는 중간언덕에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된 헤파이스토스 신전이 보인다. 파르테논 신전과 유사한 모습인데 파르테논 신전을 제일로 치는 연유 때문인지 찾는 사람이 별로 없다. 파르테논 신전의 옆으로는 규모가 제법되는 원형극장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네 명의 여신상이 벽면을 채운 또 하나의 작은 신전이 있다. 산 아래가 내려다보이는 한 모서리에는 그리스 국기가 높이 걸린 전망대가 있다. 산정의 바닥은 약한 핑크빛 색깔을 띤 바위들로 덮여있는데 반들거리는 모양으로 미루어 대리석이 아닌가 싶다.

내려오는 길에 로만 아고라와 하드리안 도서관을 둘러보았다. 원래 아테네 시민들이 모여 토론하고 공연하며 향연을 베풀기도 했던 곳은 ‘고대 아고라’였는데 그곳이 로마의 지배하에서 훼파된 이후 다시 형성된 것이 ‘로만 아고라’라 한다. 아고라라는 이름이 붙은 걸로 짐작하면 시민들이 모여 토론하고 상대를 설득하며 때로 권력을 비판하던 민주적 공론장의 역할이 계속되었던 모양이다. 도서관이 설립되어 있었고 많은 서적을 보관하고 있었다고 하니 고대 그리스 시민문화의 수준이 놀랍다. 주위 회랑의 기둥들이 여럿 남아 있는 이곳에서 많은 시민 들이 토론하고 대화하며 공론을 만들어 갔을 것이다. 더위도 식힐 겸 이 로만 아고라 문 앞에서 한참을 앉아 먼 과거로 시간여행을 해보는 즐거움을 가졌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작은 교회를 만났다. 주변 건물들에 비해 너무 작아 초라해 보이지만 독특한 건물양식과 길 모퉁이 위치가 남달라 조심스레 들어가보았다. 내부는 생각보다 화려하고 정교한 디자인과 성화들로 눈부실 정도였다. 천장의 벽화는 오랜 세월 보수되지 않아 어둡게 변색되고 부분적으로는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지만 금칠을 한 부분들, 정면의 제대 주변과 벽면의 성화는 무척 아름다왔다. 변색된 어두운 천정과 화려한 성화의 대조가 마치 기독교 문명의 찬란했던 과거와 약화된 오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고대 그리스의 문화와는 여러모로 결이 다른 기독교 문화가 이곳에 자리잡고 동로마 건립 이후에는 콘스탄티토플과 함께 그리스 정교 발상의 주요한 거점이 되었는데 15세기 이후엔 오스만 제국 하에서 이슬람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니 역동적인 역사라 할지 기구한 운명이라 해야할지 모르겠다.

이 작은 교회를 나서며 나는 소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전도여행을 떠났던 바울을 떠올렸다. 그는 이곳 아데테에서 만난 스토아 철학자들과 논쟁하면서 자신이 믿는 구원의 신앙을 열정적으로 설파했다. 바울은 아데네 사람들이 종교성이 많다고 인정하면서도 그들이 진정으로 신을 알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유일신앙을 설파했었다. 그가 열정적으로 논쟁했던 아레오바고 언덕도 이 주위 어딘가에 있으리라. 바울의 확신과 열정으로 이루어진 작은 만남이 로마를 기독교 국가로 만드는 씨앗이 되고 이곳 그리스 정교회의 형성으로 이어졌으니 참으로 경이로운 역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여전히 그리스는 정교회를 국교로 믿는 나라인데 다른 유럽 도시에 비해 눈에 띠는 교회나 성당 건물이 없고 관광안내서에도 정교회 관련 유적은 별로 나오지 않는 것이 다소 의아스러웠다.

오늘날 파르테논은 건축미학이 뛰어난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간주된다. 인류적 차원의 문화유산보존을 주도하는 유네스코가 엠블렘으로 사용할 만하다. 하지만 종교성이 없는 파르테논은 무언가 핵심이 빠진 느낌이다. 돌이켜보면 파르테논은 종교성을 핵심으로 하는 공간이었다. 원래 아테나 여신을 위한 신전이었고 비진틴 제국이 성립된 이후에는 정교회 성당으로 활용되었다. 15세기 오스만 튀르크가 이 지역을 점령한 후에는 이슬람 모스크로 변모했다. 이 과정에 내부에 있던 신상, 제대, 벽화, 성상은 훼파되고 교체되었다. 1832년 그리스가 독립한 이후에는 종교와 무관한 문화재가 되었고 이제는 탈종교화된 세계적 관광지가 되었다. 신전에서 교회로 그리고 모스크를 거쳐 문화재로 변모해오는 과정에 남은 것은 무엇이고 사라진 것은 무엇일까? 대리석 건물의 미학과 아름다움 속에 간직되어 있던 오랜 종교성과 그 교대 과정에서의 공존과 갈등은 더이상 기념할 대상이 아니어도 좋은 것일까 생각해본다.

유태인 출신으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란 저서를 쓰고 현대 정치사상에 한 획을 그은 한나 아렌트는 자유를 공적이고 시민적인 것으로 위치지으면서 아테네 폴리스를 소환했다. 과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지혜, 아고라의 민주정치가 이 시대에 필요한 시민들의 참여정신과 집단 숙의의 유산으로 부활할 수 있을까? 중세 르네상스는 고대 그리스의 정신과 예술을 되살리면서 새로운 문예부흥을 주도했는데 21세기 르네상스를 다시 꽃피울 전통은 어디서 찾아질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에 답하려면 파르테논 신전과 아고라 광장을 고고학적 유적으로만 바라보는 눈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된다. 그 공간의 안팎에서 살아 숨쉬었을 풍부한 종교성, 예술적 감성, 인류적 지혜의 유산들을 상상할 수 있는 안목이 필수적이다. 그게 쉬울 리 없는 내 안목의 협소함이 안타깝지만 아테네 방문의 꿈이 이루어진 것을 기뻐하며 잠시나마 인류적 차원에서의 미학과 숭고함을 상상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4 Comments

  1. 교수님 귀한 글을 접하게 해주셔서 감사드려요. 교수님의 “… 건물의 미학과 아름다움 속에 간직되어 있던 오랜 종교성”, 이 공감되며 유럽 종교개혁유적 탐방시의 로마에서 깊이 느꼈던 감정이었어요. 일부분이었지만 로마 자체가 미학과 아름다움이었거든요. 그리고 지혜의 터인 아테네를 꼭 방문할 소망을 안고 교수님의 다음 기행문을 기다려요

  2. 박교수님,
    파르테논 앞에 서 계신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저도 예전 무심코 다녀왔는데, “종교성이 없는 파르테논은 무언가 핵심이 빠진 느낌”이란 지적에, 미학과 숭고함이란 고고학적 건축학적 무엇을 넘어서는 지경에 있지 않나 새삼 동감합니다. 건강하신 모습으로 일정 잘 마무리하고 귀국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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