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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1, 1947 & 2022

독도를 다녀왔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주관한 “일제침탈과 역사왜곡 인식제고를 위한 독도탐방” 에 참여한 것이다. 답사단은 명실상부 최고위 기관장, 전문가들로 구성되었다. 재단의 이영호 이사장을 비롯하여 국사편찬위원회 김인걸 위원장, 한국학중앙연구원 안병우 원장, 독립기념관 한시준 관장, 중앙도서관 서혜란 관장, 인문지리학자 양보경 총장,고고학자 강현숙 교수, 한국근현대사 전문가 박찬승 교수와 박명림 교수가 함께 했다. 울릉도 출신이면서 독도연구가인 홍성근 박사가 안내와 설명을 맡아 세세한 현지의 상황까지 배우고 확인하는 고품격 답사여행이었다.

독도와 울릉도에 첫 조사단이 파견된 것은 해방 직후인 1947년이었다. 과도정부 민정장관이었던 안재홍의 후원 하에 조선산악회 주도로 국사관 관장 신석호, 진단학회장이자 국립민속박물관장 송석하, 언어학자 방종현 등이 포함된 63명의 대규모 조사단이었다. 역사, 문화, 민속, 언어, 생활실태 뿐 아니라 동식물과 지질광물에 걸친 광범위한 학술조사를 목표했는데 모든 여건이 미비했을 당시를 생각하면 그 규모와 열정이 놀랍다. 이들의 사명감을 바탕으로 독도연구자 1세대가 성장했고 독도문제를 둘러싼 외교적 논란에 대응할 자산들이 준비될 수 있었으니 가히 독도연구의 출발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47년은 또한 미국의 전후처리과정에서 독도를 두고 한국, 미국, 일본의 줄다리기가 시작된 해다. 미 국무부는 대일평화조약의 체결을 준비하면서 1947년 초안을 마련했는데 거기엔 리앙쿠르암 (독도)의 한국귀속이 분명히 적시되었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독도가 한국령이라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의 반영이었다. 하지만 일본은 미국과의 평화조약 체결과정에서 독도를 한국으로 반환하지 않기 위한 집요한 노력을 기울였다. 일본의 억지주장이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샌프란시스코 조약 초안에 있던 독도의 한국귀속이 최종안에 명기되지 않음으로써 논란이 계속될 빌미를 남겨 놓았다.

그로부터 75년이 지났다. 가난한 은둔의 나라는 어엿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고 학계의 연구 수준도 크게 발전했다. 스포츠와 음악, 영화 등 K-Culture의 파급력도 세계적이다.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권도 확장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어려움 없이 독도여행에 나서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부당한 독도영유권 주장은 계속되고 식민지 시대를 둘러싼 한일간 역사전쟁은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 이 어긋남의 일차적 원인이 일본의 우경화 탓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지만 그것을 지적하는 것으로 해법이 생길지는 모를 일이다. 향후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연구일까 더 세련된 외교일까 더 강한 국력일까? 더 강한 민족주의가 요청되는가 아니면 세계주의와 지역연대의 정신을 강화해야 할까? 홍박사는 1947년 이래 가장 권위있는 답사단이 아닌가 자찬하기도 했지만 그 때 이후 우리 역량은 얼마나 더 강해졌을까 곰곰 자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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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경이 앞에서

어제 밤 미국 항공우주국 (NASA)에서 제임스 웹 차세대 우주망원경으로 찍은 우주사진을 발표했다. 나는 실시간으로 현장자료를 보여주면서 전문가의 설명을 전하는 한 국내 유투브에 접속하여 시청했는데 심야 시간임에도 약 2만명이 접속했을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 바이든 대통령이 미리 발표했던 첫 사진을 포함한 5컷의 이미지는 서로 다른 모습으로 우주의 신비함과 경이로움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다양한 빛의 보석들을 진열한 것 같기도 하고 천지창조의 웅장한 장면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걸출한 예술가의 신비한 작품을 보는 듯 싶기도 했다. 작은 모래알 정도의 우주 공간 속에 저토록 많은 은하들과 거대한 가스 성운이 존재한다는 것, 뭇 별들의 생성과 소멸이 지금도 역동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중이라는 설명을 들으며 우주를 광대무변이라 표현한 것이 결코 문학적 표현이 아니구나 생각했다.

천문학과 물리학 관련 글을 읽고 유투브 강연을 듣는게 일종의 취미가 된지 몇 년이 되었다. 십여년 전 유럽의 학자들과 civility 의 지구적 확산을 공동연구할 때 서로 다른 문화권 사이의 개념적 ‘entanglement’에 주목하자는 논의들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했고 결과물이 책자로 간행된 이후에야 현대물리학의 주요 개념임을 알았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전혀 업데이트되지 않은 내 과학지식의 엉성함이 부끄러운 감정으로 남아 천문학과 물리학 분야의 강의와 영상들을 듣기 시작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적지 않고 듣다가 잠이 드는 경우가 다반사지만 새로운 내용을 접하는 느낌이 상쾌해서 지금도 잠자리에선 음악 대신 과학강연을 틀어놓는 날이 많다.

아마추어 귀동냥 지식이지만 가랑비에도 옷은 젖는 법이다. 가볍게 흥미로 듣기 시작했지만 점점 내 생각과 사고 전반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느낀다. 실제로 빅뱅 우주론과 양자물리학의 설명들은 시간과 공간, 존재와 무, 힘과 에너지, 물질과 생명 등 근원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만들고 근대 과학주의에 근거하여 초월적 세계관을 우습게 보려던 지난날을 겸손하게 되돌아보게 한다. 그런가 하면 휴머니즘과 민족주의, 근대주의를 바탕으로 한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시야가 얼마나 좁은가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보여주는 경이로운 우주에 놀라면서도 다소 착잡해지는 마음을 숨기기 어려운 까닭도 저 세계관에 수반될 미래가 좀처럼 상상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칸트가 자신을 감탄하게 만들었다는 “밤하늘의 별과 내 마음 속 도덕률”을 떠올리면서 저 놀랍고 아름다운 우주의 이미지 너머에서 내가 찾아야 하고 또 확인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를 자문해 본다. 첨단 우주과학의 시대에 인문학과 사회과학, 신학과 역사학, 윤리와 정치는 무엇일 수 있고 무엇이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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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너머’의 상상

중장기 남북관계를 새롭게 모색하는 한 심포지엄에 종합토론의 좌장으로 참여했다. 다양한 주제들이 논의되는 가운데 한반도 기후위기와 생태환경을 다룬 한 발제자가 ‘인간 너머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폈다. 남북간 협력이 사람 중심으로부터 벗어나 동식물과 자연환경, 생태적 차원의 교류에까지 넓혀져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사회과학의 ‘물질적 전환’, 행위자 네크워크 이론의 문제의식을 남북관계에 적용하려는 시도로 참석자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여러 분야에서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서자는 주장을 접하게 된다. 인문학, 사회과학은 물론이고 신학과 예술 분야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이다. 근대 휴머니즘의 한계가 부각되는 반면 인공지능, 로봇, 알고리즘 같은 비인간적 행위자성 (Agency)은 더욱 확대되는 기술문명시대의 반영일 터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간과 자연, 생명과 무생물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던 상식이 크게 동요한 것도 한 요인이라 할 수 있겠다. 전근대적 사유라고 홀시되던 물활론, 생기론의 시각이 새로운 지적 자산이자 윤리적 상상력의 원천으로 재조명되고 있고 SF 영화나 소설은 이미 비인간적 주체가 살아있는 행위자이자 사건의 주역으로 등장한지 오래다.

인간 너머의 접근이라는 시각은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그런 주장을 떳떳하게 내놓을만큼 우리는 그동안 인간중심적이었던가도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효율과 발전, 성장과 성공의 추구 속에, 민주화와 개인주의의 확산 속에 인간의 위치는 어디였을까? 전쟁과 대결, 불신의 시대를 살아온 한반도의 이념대립과 안보계산 속에 인간이 차지할 자리가 얼마나 확보되었던 것일까? 문화적 동질성이 외쳐지고 이산가족상봉의 감격을 공유하며 탈북자를 수용하고 교류 협력의 상생을 추구하자는 민족 담론 속에는 과연 진정한 인간적 시선이 자리하고 있었던가?

향후 우리의 접근은 인간을 뛰어넘는 것을 지향해야 할까? 오히려 인간을 주목하는 관점을 회복하자고 주장해야 할까? 아니면 인간-비인간을 함께 고려하는 제3의 길을 모색해야할까? 인간 너머를 강조하기에 앞서 던져보아야 할 질문이라 생각된다. 제3의 길이 종종 애매한 종합이 될 우려가 없지 않지만, 근대 휴머니즘에 내장된 인간중심성의 한계를 직시하면서도 그것에 담긴 인류적 자산과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애써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한반도의 엄중한 현실 앞에서 인간의 자리를 제대로 확인하는 것은 중요하고도 절실하다. “인간과 함께 인간을 넘어”- 이런 모토는 비현실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반드시 추구해야 할 과제가 아닐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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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를 향한 에코백

작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에 기증했던 한글 병풍의 글을 활용해 제작한 에코백을 건네 받았다. 내 글씨가 이런 형태로도 도움될 수 있다니 기쁘다. 푸른 색 바탕에 흰 글씨 색채 대비가 청명한 하늘의 하얀 구름마냥 상큼하다. 네모꼴로 발췌된 글씨를 배치해 전통적 전각작품을 떠올리게 한 디자인도 산뜻한 느낌을 더한다. 화선지의 먹과 붓의 느낌이 사라진 대신 글의 내용은 더욱 또렷히 부각된다. “정부의 정치적 경제적 조정에만 기초를 둔 평화는 세계국민들의 일치되고 영속적이고 성실한 지지를 확보할 수 없다. 인류의 지적 도덕적 연대 위에 평화를 건설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패권경쟁이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세계는 자국주의와 혐오의 감정정치로 곳곳에서 균열한다. 자기 죽음을 염려하는 인공지능이 등장할 정도로 급진전하는 과학문명이 인류공동체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구축할 수 있을지 여전히 논란 중이다. 동북아는 상호소통과 문화교류보다 국가주의와 신냉전의 암운이 짙어지고 한반도 긴장은 완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국력과 역동적 민주주의를 자랑하지만 낡은 남탓정치와 내부의 권력다툼으로 바람잘 날 없어 도덕적 연대를 말하기조차 민망할 지경이다.

인류의 지적 도덕적 유대라는 유네스코의 화두는 실현가능한 꿈인가? 유네스코는 ‘국제연합 교육과학문화기구’라는 긴 이름에서 보듯 교육, 과학, 예술, 문화의 힘을 강조해 온 국제기구다. 출범 당시부터 정부관료나 기업가보다 교육자, 과학자, 예술가, 문화인의 보편적 정신을 중시하는 지향이 강했다. 실제로 지금도 인류적 문화다양성과 지식교류, 과학적 접근과 생태적 사유의 종합을 위해 다방면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하지만 자국주의와 이익추구의 힘이 여전한 오늘, 과연 과학자와 예술가, 교사와 문화인이 국가의 경계를 넘어 인류공동체의 연대를 주도할 주체가 될 것이란 확신을 갖기는 쉽지 않다. 과학과 교육, 예술과 문화의 힘이 인류적 차원의 지적 권위와 도덕적 유대를 구축하는 시대가 올 것을 기대해도 좋을까? 상큼한 디자인의 에코백을 보면서 해 보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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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복 지성사 북토크

작가이자 사회학자인 정수복 박사의 역저 [한국사회학의 지성사] 4권 북토크가 군산의 인문학까페 정담에서 있었다. 김백영 교수가 사회를 보고 저자의 발제를 들은 후 나와 김민환 교수, 최민석 교수가 차례로 논평을 하고 이후 청중들과 대화하는 방식이었다. 참석자 모두 앞선 군산 일대의 답사로 피곤할수도 있었을텐데 모두들 진지하게 3시간 가까운 시간 대화를 주고 받았다. 오랜 건물의 분위기가 더해져 가히 지식의 향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즐겁고 뜻깊은 자리였다.

책 1-4권은 각각 ‘한국사회학과 세계사회학’, ‘아카데미 사회학의 계보학’, ‘비판사회학의 계보학’, ‘역사사회학의 계보학’이란 제목을 달았다. 학사 대신 지성사라고 한 데서 한국사회학을 분과학차원을 넘어 지식의 형성과 변동이려는 맥락에서 살펴보려는 문제의식이 느껴진다. 실제로 이 책은 사회학적 사유나 지식의 전개가 개인의 성장배경과 활동영역, 시대의 사회정치적 조건과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잘 보여준다. 계보학이란 어휘도 지식이 다양한 시대적 조건과 여러 사람들의 복합적 상호작용 속에서 구성된 것임을 강조하려는 뜻이 담겨 있지 않을까 싶다.

아직 생존해 있는 분들을 포함하는 이런 유형의 저설은 늘 이런저런 학문외적 논란이 따르기 마련이어서 선뜻 추진하기가 쉽지 않다. 저자 역시 연구대상 인물을 설정하는데 고민이 컸을 법하다. 저자는 섬세하게 균형을 추구하면서도 서울과 서울대학 중심이라는 한국사회의 지적 사회적 편중성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정공법을 택했다. 저자 자신의 경험과 무관치 않을 부분에 대해서도 생경한 회한이나 감정적 평가가 아닌 극도의 절제와 자기겸양을 견지하는 글쓰기 격조를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경험과 정서조차도 역사적 맥락과 사회적 조건 속에서 상대화시킬 줄 아는 고도의 지적 자제력이 돋보이는 책이라 할만하다.

이 책을 일별하고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학계에도 적용된다는 생각을 했다. 학문공동체 내 이곳 저곳에 흩어져 있는 많은 개별적 구슬들을 발굴하고 연결시키며 체계적으로 꿰어내는 작업이 중요하다. 단순한 과거회고가 그 몫을 할 수는 없는 일. 그런 흩어진 구슬들, 개인들의 작은 작업들을 한데 꿰어 큰 지식으로 만드는 학자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한국사회학은 정수복이란 학자를 만나고 그가 쓴 이 책을 통해서 곳곳에 흩어져 있던 구슬들로 멋진 작품을 만들게 된 셈이다. 이 작업을 통해 아카데미 사회학, 비판사회학, 역사사회학을 한국사회학의 세 영역으로 구획한 것도 향후 의미있는 지적 지형도가 되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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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의 시간 여행

한국사회사학회 주관으로 6월 29-30 이틀간 군산 일대의 답사여행을 다녀왔다. 한국 근대의 역사가 건물과 공간 속에 가장 뚜렷하게 남아있는 도시의 하나인 이곳을 오랫만에 다시 방문하니 여러모로 새로웠다. 2022년의 군산은 고층 아파트가 곳곳에 있고 새만금 1차 간척지로 확보된 넓은 공단지대와 고군산군도까지 방제도로와 연육교로 이어져 20여년 전의 모습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십여 년전 새만금 제방의 최종연결을 앞두고 이 간척지의 용도를 둘러싸고 논란이 있었을 때 고 김석철 교수가 국제적 바다 도시를 만들자는 주장을 했던 것이 생각났다. 유럽의 베니스처럼 한중일을 통합하고 연결하는 미래형 도시, 초국경 공간을 창조하자는 신선한 발상에는 감탄을 하면서도 과연 실현가능성이 있을까 못내 의아했었다. 초국경 국제 바다도시라는 구상이 헛된 망상처럼 여겨질만큼 바다에도 하늘에도 국가간 불신의 담이 높아지고 있는 오늘, 새만금 넓은 간척지를 바라보는 마음은 시원하기보다 다소 착잡했다.

주 답사지역인 군산 구도심의 변화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 지역 출신으로 영국에서 공부한 이현경 박사의 설명에 의하면 도시문화재생사업에 선정되어 지방정부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추진된지 여러 해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도로를 걷는 것 만으로도 수십년 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되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영화 세트장을 떠올릴 정도로 각양 모습의 주택과 건물이 새로운 문화공간과 까페들로 새롭게 탄생한 것이 골목마다 눈에 들어왔다. 숙소 옆에 ‘신민회 1907’ 이란 간판을 달고 태극기까지 걸려있는 건물이 기념관인줄 알고 들어가보려다가 까페임을 알고 혼자 웃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활동하던 도산 안창호를 군산에서 떠올리게 되다니….시차와 거리를 뛰어넘은 카페공간의 이미지가 흥미롭고 신선했다. 역사적 유산과 흔적을 문화적으로 재구성하여 한국의 압축근대화의 모습을 재현하고 이것을 관광과 소비, 지역경제와 결합하는 것은 분명 뜻있고 의미있는 일이다.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이런 저런 논란도 있고 실제 도시재생 사업의 명암이 있지만 과거와 현재, 전통과 미래를 삶의 현장과 연결시키는 작업은 필요하고 중요하다.

다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도 과거를 문화적으로 재현하고 그곳에 현재적 의미를 제공해줄 스토리를 어떻게 구성하고 발전시킬 것인가가 큰 숙제일 듯 싶다. 열정적으로 해설을 해준 현지의 퇴직 언론인의 스토리 구조는 일제의 수탈이란 프레임에만 의존하고 있는 듯 해서 답답했다. 군산의 도시유산이 지닌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성격을 단순화시키지 않고 저 공간성에 담긴 근대성과 식민성과 현재성을 종합적으로 해석해줄 창의적 스토리가 절실해 보였다. 식민지 시대를 견디면서 때론 타협하고 때론 저항하며 독특한 삶의 지혜들을 찾아내고 전유했을 이 지역의 간단치 않은 역사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재현된 문화적 상상이 오늘 이곳에서 여전히 살아가는 주민들의 자부심과 정체성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교과서적 해설이나 민족주의 서사, 국가주의 담론으로 그 답이 얻어질 리는 없다. 지역사나 도시사, 미시사 차원에서 새로운 담론과 서사, 이론의 창안이 이루어져야 할 일이다. 물론 과거를 읽는 학계의 역량이 더 성숙해져야 함도 두말할 필요가 없다.

조정우 교수의 안내로 식민지시대 농업이민회사로 유명했던 불이흥업의 현장을 답사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말로만 들었던 옥구 저수지의 거대한 규모, 풀로 뒤덮여있는 옥구역의 녹슨 철길, 여전히 활용되고 있는 관개시설 등에서 100년 전 이 일대에서 이루어진 변화를 상상해 보았다. 근대 기술을 동원한 간척, 수리조합과 농업이민, 농장제 영농의 변화 속에서 진행되었을 혁신과 수탈, 환영과 거부, 탄성과 소외, 지배와 복종의 복잡한 조합들을 생각해 보지만 넓은 논밭과 농촌의 주거에서 그 흔적을 찾아내기란 어려웠다. 땅은 여전히 그대로인데 인간만 굳이 과거의 역사와 유산을 이렇게 저렇게 해석하려 애쓰는 것일까? 21세기 우리에게 20세기 전반 식민지시대의 의미는 무엇인가? 꽤 오래 공부한 주제인데 이 과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쾌하고 즐거우면서 남겨진 숙제를 떠올리게 만든 유익한 답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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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로 쓰는 글씨

우연히 해보기 시작한 물로 쓰는 글씨연습이 퍽 재미있다. 화선지에 물만 적신 붓으로 안진경의 ‘쟁좌위고’ 행서를 임서해 보는데 의외로 먹을 사용할 때와 크게 다르지 않게 획의 강약과 섬세함이 잘 드러난다. 글을 쓴지 십여분 만에 글씨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지만 어차피 남기려는 뜻이 없는 연습일 바에야 큰 상관이 없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 깨끗한 화선지를 다시 사용할 수 있고 연습이 끝난 후 붓을 빨아둘 필요도 없으니 금상첨화다. 짧은 짜투리 시간을 이용하기도 좋아 붓을 잡는 시간이 오히려 늘어나는 효과도 있다.

화선지에 공들여 쓴 글자가 서서히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삶의 한 단면을 보는 느낌이다. 정확한 필획의 모습을 구현하려고 최선을 다해 써 보지만 그 디테일은 서서히 사라지고 마침내 흰 화선지만 남는다. 어제의 행적과 성과가 어떠하든 늘 새로운 내일이 주어지는 인생의 이치와 같다고 할까. 어쩌면 우리 삶이 먹으로 쓰여지지 않고 물로 쓰여지기에 희망이 있는지도 모른다. 부끄럽고 안타까운 어제도 잊혀질 수 있고 늘 새롭게 시작할 내일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잘못도 얼마든지 용서받을 수 있다는 기독교의 구원사상이 과거에 억메인 인생에게 큰 해방의 복음이 될 수 있음을 몇 번이고 재생되는 화선지 속에서 떠올리게도 된다.

하지만 우리 삶이 전부 물로만 쓰여지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끝끝내 없이지지 않고 인생 전반에 긴 영향을 남기는 과거도 적지 않은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물로 쓴다고 생각했는데 사라지지 않는 과거도 있고 먹으로 썼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들도 적지 않다. 사라질 기억과 남길 과거를 내 마음대로 선택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먹과 물을 선택할 자유가 애초부터 인간에게 주어지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붓으로 쓸 뿐이고 그것이 물로 쓰여질지 먹으로 쓰여질지를 결정하는 것은 절대자의 권한일른지 모른다.

그래서 쓰는 순간에는 먹인지 물인지 의식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리라 생각을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물로 쓸 때는 마음가짐부터 먹으로 쓸 때와 같지 않아 마음은 편한데 집중도가 떨어진다. 인생에서도 그렇지 않을까. 내일이란 새로운 기회가 한없이 주어진다는 생각을 하면 오늘 최선을 다하려는 마음이 약해지기 쉽다. 그렇다고 매일을 공든 작품 쓰듯 모든 힘을 쏟아붇는 것은 감당하기도 어렵고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물로 쓰는 여유와 먹으로 쓰는 집중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삶의 균형감이 중요할텐데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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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포럼 2.0 단상

코로나 상황으로 오랫동안 지체되던 가진포럼 모임이 6월 16일 새롭게 재출범했다. 남북관계와 한반도 주변상황에 대한 관심을 갖고 이런 저런 자리에서 종종 만나게 된 학계, 관계, 외교, 정치 영역의 전문가들이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가지면서 시작된 비공식 모임이다. 현직에서 한발 물러나 새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분이 대부분이다. 이전에 비해 여유가 생긴만큼 자유로운 모임 그 자체가 주는 의미가 더욱 커질 것으로 생각된다.

주로 모여 식사하던 식당의 이름을 따서 가진포럼이란 이름을 붙였었는데 촛불시위와 뒤이은 코로나 상황을 거치면서 점점 가기가 어려운 곳이 되었다. 다시 모임을 하게 되면서는 교통도 좀더 편리하고 근처에 있는 한 연구소 세미나실을 이용할 수 있다는 이유로 안국동에서 모이게 되었다. 앞뒤의 시간을 이용해서 화랑들을 둘러볼 수 있는 것도 좋은 덤이다. 앞으로 이름도 안국포럼으로 불러야 할까 모르겠다.

모두들 한국사회에서 최고수준의 전문가들이고 다양한 경험과 조직운영을 해본 분들인데 그 역량과 에너지를 공적으로 활용할 기회가 더이상 주어지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다. 취업의 어려움을 겪는 젋은 세대와 급속하게 변화하는 기술문화 생태계를 생각하면 일정한 연령에 도달하면 퇴직해야 하는 제도가 반드시 부정적이진 않다. 실제로 조직상층이 고령화될수록 권위주의와 관행주의가 힘을 얻고 혁신과 변화에 부정적일 가능성이 높다. 사회전체로 볼 때 은퇴자가 늘어나는 것 자체를 안타까워 하기보다는 새로운 세대가 성장하는 모습에 주목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물학적 연령을 근거로 현역과 퇴역을 기계적으로 분할하는 지금의 방식이 마냥 긍정적인 것만도 아니다. 우선 이런 제도는 공공의 조직분야에서만 적용될 뿐 변호사, 의사, 기업가의 영역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공공조직분야에서 능력을 키운 고급엘리트층이 예비군처럼 늘어나면서 정치적 연줄로 임명되는 자리를 둘러싼 갈등이 커진다. 5년마다 열리는 대선이 점점 더 엽관제의 모습을 띠게 되고 캠프에 많은 엘리트 예비군들이 참여하는 것도 그런 이유일텐데 그것이 미치는 영향의 명암을 손쉽게 말하기는 어렵다. 인구학적 고령화와 더불어 늘어가는 퇴직 고급인력의 활용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향후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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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조정과 사회통합

6월 14일 강원도 사회갈등조정위원회가 주관하고 한국사회학회 및 한국갈등학회 등이 공동주관하는 심포지엄에 참여했다. “갈등조정과 사회통합”을 대주제로 하고 해소되기 어려운 사회갈등을 극복하고 통합을 증진시키기 위한 정책적, 학술적 기법과 그 운용사례를 점검하는 야심찬 행사였다. 나를 초청해준 강원대 김원동 교수가 국가 및 지방 단위의 통합적 거버넌스 모색을 위해 관련 학회들과 함께 심포지엄 전반을 기획한 듯 했다. 기조강연을 한 고려대 김문조 명예교수는 오늘날 변화하는 사회기술환경 속에서 갈등을 조정하고 통합을 증진시키기 위해 어떤 대응이 필요한지를 종합적으로 발제했다. 도 차원의 직제에 사회갈등조정위원회가 설치되어 있는 것도 신선했고 학계 전문가와 지방행정 담당자, 시민운동가가 머리를 맞대어 지혜를 모색하려는 기획 자체가 그런 통합지향 거버넌스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여겨졌다.

내가 좌장을 맡은 첫날 두번째 세션은 한국사회에서 오랫동안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고리원전 5,6호기 건설문제와 사용후 핵연료 처리관련 추진된 공론화위원회의 성과와 한계를 논하는 자리였다. 첫번째 발제를 맡은 김주환 교수는 고리원전 건설을 둘러싼 갈등이 공론화 방식을 거쳐 조건부 공사재개로 이어진 과정과 제주녹지병원 건립을 둘러싼 갈등이 다른 결과로 이어진 사례을 비교검토한 연구였다. 두번째 정정화 교수 발제는 사용후 핵원료 처리와 관련한 갈등과 그 해소를 위한 정부위원회에 참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그 과정과 결과를 비판적으로 점검한 것이었다. 원자력과 관련한 쟁점 자체도 쉬운 것이 아니지만 공론화라는 방식 자체에도 따져볼 조건과 변수가 적지 않았다. 공론화의 전 과정에 유관주체들이 모두 참여하는지, 정부가 내정한 정책적 결론이 존재하는지, 위원회의 중립성과 전문성이 보장되는지 등 여러 변수에 따라 그 방식과 효과도 달리 나타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두 발제와 토론을 통해 한가지 명확해진 사실은 공론화 방식이 갈등해소의 유용한 절차이긴 하지만 그것이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거나 이미 정해진 정책을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남용될 경우 갈등해소의 기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사실 갈등이 큰 사안은 그만큼 정책결정의 기회비용이 클 가능성이 높고 정책효과에 대한 중장기적이고 전문적인 평가가 필수적이다. 이런 노력을 경주하지 않은 채 중요한 결정을 공론화란 이름으로 시민적 판단에 위임하는 것은 그만큼 위험부담이 클 수 있다. 첫 세션에서 공론화라는 방식 이외에도 다양한 갈등해소방법 (ADR) 이 있다는 점이 발제되었는데 사안과 맥락에 따라 적합한 방법을 선택하는 것 자체가 거버넌스와 지혜의 요체일지 모르겠다. 최종적으로는 정치적 판단과 책임윤리의 문제로 이어지고 그것은 다시 한 사회의 총체적 문화수준과 이어질 터이다. 저런 노력들이 의미있는 공공의 지혜로 축적되어 통합의 역량이 커지기를 기대해 본 자리다.

life · 오늘의 화두

브랜드가 된 유네스코

장성의 필암서원을 다녀왔다. 입구에 ‘유네스코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 이란 간판이 우뚝하다. 서원 내 마루에는 오드레 아즐레 유네스코 사무총장의 서명이 담긴 “서원, 한국의 성리학 교육기관을 세계유산목록에 등재한다”는 확인서가 걸려있다. 2019년 이곳을 비롯하여 안동의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함양의 남계서원 등 9곳이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일년 전에는 통도사, 부석사 등 한국의 전통사찰 7곳이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란 이름으로 세계유산에 등재되었고 이들 산사 에도 유네스코 세계유산 표지는 자랑스레 세워져있다. 한국 유교와 불교의 유산이 모두 유네스코로 인해 세계적 유산임을 공인 받은 셈이라 할 수 있겠다.

유네스코 표지판은 그 자체 문화 브랜드다. 조선왕조실록이나 KBS 이산가족찾기 자료의 가치는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는 사실로 설명되곤 한다. 아리랑이나 판소리, 종묘제례약의 품격 역시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이란 해설로 뒷받침된다. 지방정부들이 앞을 다투어 자기 지역의 유무형 문화유산의 가치를 확인받고자 유네스코 문을 두드린다. 집 가까이 있는 고등학교 교문에는 ‘유네스코 협력학교’란 간판이 걸려있다. 대학입시 부담이 강한 한국에서 유네스코가 표방하는 지속가능교육의 가치들이 실제로 학교현장에 얼마나 비중있게 반영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지만 학교의 자긍심을 구성하는 한 부분이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유네스코가 이런 브랜드 파워를 갖게 된 것은 매우 다행한 일이다. 다른 어떤 국제기구도 갖지 못한 유네스코만이 지닌 문화적 영향력이다. 그런만큼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는 국가적 관심사가 되고 문화다양성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든든한 기반이 된다. 하지만 일본의 군함도 유적 소개와 사도광산 등재추천에서 식민지 역사경험을 배제하려는 시도, 중화민족의 문화력을 확인하려는 자국주의 기획이 고조되는 중국의 문화공정에서 보듯 아직은 인류보편의 역사이해보다 국가주의적 역사해석에 더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문화가 상품이 되고 팩트보다 상상력이 힘을 얻는 시대가 될수록 관광자원을 위해 과거유산을 침소봉대하려는 유혹에 빠지기도 쉽다.

조용한 산사나 서원 앞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란 표지판을 보는 사람들이 떠올리는 생각은 무엇일까? 민족적 자부심? 관광자원의 우수함? 지역적 정체성? 유네스코의 정신은 이런 것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문화권의 자긍심과 무형예술의 가치를 인정함으로써 인류보편의 지적 도덕적 연대를 강화하는 것이다. 과연 21세기에 저 브랜드가 그런 효과를 가져오게 될 것인가? 관건은 유네스코가 확보한 이 독특한 브랜드 파워를 새로운 지구적 문화실천과 어떻게 결합하는가에 달려있을 것이다. 디지털 기술혁명으로 삶의 전 영역이 크게 변하는 시대에 과거보다는 미래, 자랑보다는 책임, 지역보다 인류를 표상하는 형태로 유네스코 브랜드 파워가 새롭게 조명될 필요가 있을 듯 싶다. 필암서원 앞에서 일본의 군함도, 중국의 문화공정이 떠올라 유네스코라는 멋진 브랜드 파워와 인류평화란 미래과제에 대해 갖게된 생각의 한 조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