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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의 독도 그림

8월 15일 77주년 광복절이다. 일제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된 날로서 기미년 3.1 독립선언서에 쓰인대로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이 확인된 날이다. 3년 뒤 대한민국 헌법에 기초한 제1공화국이 출범한 정부수립일이기도 하다. 이 날에 담긴 의미는 다중적이고 기념하는 내용도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어서 단일하진 않다.

3.1운동 이래 널리 공유된 함성은 ‘대한독립만세’였고 여운형은 ‘건국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임시정부의 대일투쟁조직은 ‘광복군’이었다. 그래서 독립, 광복, 건국, 자주 등의 개념이 늘 함께 한다. 우리는 이 날을 광복절로 기념하지만 범국민적 열성으로 건립된 기념관의 이름은 독립기념관이다. 독립이란 말에는 과거에 국가가 없었던 신생국의 이미지가 있고 광복이란 말은 이전 시대와의 질적 차별성을 드러내는데 한계가 있다. 신생이나 회복의 의미를 넘어서는 역사적 이중성, 즉 복구하면서도 극복하는 질적 전환을 드러낼 개념화가 절실하다. 동시에 분단으로 인한 미완의 한계, 남은 과제까지도 포함될 수 있는 개념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광복절 하루를 나름 어떻게 보낼까 생각하다가 2주전 다녀온 독도를 그려보기로 했다. 풍랑으로 인해 상륙은 못했지만 망망 대해의 한가운데 의연한 자태로 서 있는 작은 섬의 모습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겨 언젠가는 그 이미지를 표현해보리라 생각했었다. 지금도 한일간 분쟁의 한복판에 서 있는 곳이지만 비바람, 풍랑, 고독, 정치 등 어떤 조건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의연하게 지켜내는 당당함을 절실하게 느꼈다. 화선지 위에 검은 먹의 농담으로 찌푸린 하늘, 넘실대는 바다, 그 가운데 당당히 선 독도의 모습을 그려보며, 21세기 독립자주와 인생살이에서의 의연함을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가 생각한다.

life · 오늘의 화두

소동파와 주자

여름 무더위를 이겨내려고 며칠 소동파의 적벽부를 써보고 있다. 행서로 이름난 명의 문장가 문징명의 서첩을 임서하는데 점점 더 글씨보다는 글의 내용에 빠져드는 느낌이다. 화자와 객이 나누는 두 갈래의 생각은 서로 다른 듯 하면서도 잘 어우러져 글 전반의 격조와 정감을 고조시킨다. 참으로 명문이구나 싶다.

객은 인생의 짧음과 강물의 끝없음을 비교하며 이를 슬퍼한다 (哀吾生之須臾 羨長江之無窮). 하지만 물이 제 아무리 흘러도 강은 그대로이고 달이 수없이 차고 기울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음을 들어 화자는 이렇게 응대한다. 변함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것이 일순간이고 불변의 시각에서 보면 만물이 끝이 없다고. (客亦知夫水與月乎? 逝者如斯而未嘗往也 盈虛者如彼而卒莫消長也。蓋將自其變者而觀之則天地曾不 能以一瞬 自其不變者而觀之則物與我皆無盡也)

성리학의 근간을 구축한 주자는 소동파 같은 사람이 권력을 잡으면 사회가 어지럽게 될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고 한다. 질서와 분수를 중시하고 위계적인 사회관계를 중시하는 주자학의 관점에서 도교적인 생각이나 행동은 위험해 보였을 법도 하다. 유교입국을 추구했던 삼봉 정도전도 그런 생각을 가졌을까? 조선 성리학의 대가인 퇴계는 주자를 숭앙했지만 동파의 태도를 나쁘게 보진 않았다 한다. 한국의 유자들이 중국에 비해 산림처사의 기질을 좀더 강하게 지녔던 탓이었을지 모르겠다. 어쨋든 중국에서도 조선에서도 이 글이 불후의 명문으로 인정되었던 것을 보면 사람의 정서가 유학적인 것만으로 환원되기는 어려웠음이 분명하다.

개인의 삶도 공동체의 질서도, 자연의 생태계도 과도한 욕망으로 고통을 받는 21세기 오늘 더 필요한 자세는 어떤 것일까? 주자와 같이 옳고 그름을 항상 의식하면서 노력하는 적극적 주체형일까 아니면 동파처럼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포용하는 여유와 관조의 인간형일까? 자문하는 중 “조물자”라는 글에 눈이 간다. 만물은 다 주인이 있어서 내 소유라 할 것이 없지만 시원한 바람과 밝은 달은 제아무리 가져도 금할 자가 없고 아무리 써도 없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조물자의 끝없음이고 우리가 함께 기뻐할 일이 아닌가. (取之無禁 用之不竭 是造物者之無盡藏也 而吾與者之所共樂)

노력과 수고를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욕망과 집착에 사로잡히지 않고, 만물의 영고성쇄를 조망하면서도 덧없음의 허무에 빠지지 않는 것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것 같다. 자기 삶에 대한 당당한 자부심과 유일한 존재로서의 자긍심과 함께. 유아론을 벗어나 타자 및 만물과 공존하고 겸손할 줄 아는 것 – 매우 요긴한 지혜이자 태도가 아닐까 싶다. 이를 위해서는 적벽부의 내용처럼 만물의 주인인 조물자에 대한 믿음이 불가결할지 모른다. 그 믿음 위에서 화자의 관조와 객의 노래가 통했을 것이다. 주자와 유학, 근대 합리주의 정신이 놓친 것이 조물주에 대한 이 경외의 심성 아니었을지 모르겠다. 그렇게 보면 여전히 우리는 주자의 영향력 아래 있다고 보아야 할까…

life · 오늘의 화두

기한과 때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에 다 때가 있나니 /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할 때가 있으며,

아침에 전도서 3장을 읽다가 며칠전 정전기념일, 북한의 전승절 기념식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을 전한 영상을 떠올린다. 남북협력과 북미협상에의 기대보다 핵무력에 기초한 자주노선의 길을 견지하겠다는 분명한 선언이었다. 특히 한국에 대해 전례없이 강한 적대감을 드러낸 것이 예사롭지 않다. 윤석렬 정부의 출범이나 남한 보수층의 대북 비난이 빌미가 되었을 테지만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쇠퇴, 미중 대립의 격화와 북중관계의 호전이라는 달라진 국제환경이 체제내구력에 대한 확신을 강화시킨 결과임도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북한의 호전적이고 정제되지 않은 언사의 표출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한 시대가 가고 있다는 예감을 갖게 한다는 점에서 낯설게 느껴졌다. 탈냉전 이후 30년간 남북의 대화, 화해, 접촉, 신뢰가 2018년 한껏 고조되었다가 비행기 추락하듯 향후의 기대감마저 현저히 위축시킨 지금, 다시 그런 시대를 전제한 대응이 가능할지 의구심이 크다. 물론 냉전시대의 대결로 회귀하거나 일전불사를 외치는 무책임함이 그 대응책일 수는 없고 우리 사회 한켠에는 여전히 그 기대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과연 그 기대가 지속가능할까를 회의하게 만드는 상황이 너무 뚜렷한 것 같아 편치않다.

범사에 기한이 있다… 사랑할 때와 평화할 때의 기한이 다 된 것인가.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멜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 (전도서 3장 5-8) 이제는 되지 않을 미련을 갖기 보다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하는가 답답하다. 이 말씀이 위로가 되기보다 걱정을 더하는데 지혜자의 훈계에서 나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 것일까?

life · 오늘의 화두

경성제국대학

정준영 교수가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와 조선연구]라는 책을 출간하고 보내준 것을 두 달이나 지나서 훑어보았다. 경성제국대학은 국립서울대학사를 포함하여 한국학술장의 형성에 매우 중요한 주제이지만 제도사나 정책사 차원이 아닌 지식사의 대상이 된 경우는 드물다. 學知의 탐구와 연결, 그 사회역사적 영향이란 묵직한 시선으로 이에 대한 본격적 연구가 시도된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이 책은 6명의 학자를 다룬다. 경성제국대학 초대총장이자 저명한 동양학 연구자였던 핫도리 우노키치, 도쿄대 사학과 출신으로 초창기 조선사학 연구를 주도한 오다 쇼고와 이마니시 류, 도쿄대 지나철학과 출신으로 중국의 학술문화가 조선과 일본으로 확산되는 과정을 추적한 후지쓰카 지카시와 아베 요시오, 미국 유학자이자 독실한 기독교도로 강압적 식민정책을 비판했던 이즈미 아키라 등이다. 이들 연구자들의 학술활동을 통해 식민주의적인 것과 근대적인 것이 어떻게 지식의 형태로 공존할 수 있었는지를 탐색하고 있다. 식민통치와의 연결성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단순한 사실왜곡이나 정책효과만으로 환원하지 않으려는 문제의식이 야심차다.

식민사학의 극복을 부르짖은지 수십년이고 한국학의 전 세계적 확산을 지향하는 지금, 식민지 시대 일본인 학자의 조선연구를 추적하게 만든 동력은 무엇일까? 이태진 교수가 주도한 총서기획이 ‘식민사학의 극복’을 표방한데서 그 답의 일단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그 문제의식에 더하여 정치사나 제도사의 시각과 다른 지성사의 독자적 공간을 탐색하려 한다. 다루어진 6명의 인물들은 개인적으로 성실하고 유능한 학자들이면서 동시에 식민지 문화통치의 주요한 기능수행자였다. 연구자의 시대적 환경과 학문적 가치지향 간에는 암묵적 협력과 잠재적 긴장이 공존하기 마련이다. 이들에게 이 문제는 2차방정식이 3차 방정식으로 바뀌듯 더 복잡했을까 아니면 오히려 1차 방정식처럼 단순화되어 있었을까? 결국 연구자의 존재구속성과 자율성이란 쟁점으로 이어지는 지성사 고유의 문제와 맞닿는다.

일본에 중점을 두면서도 중국, 일본, 조선을 가로지르는 문명 교류사의 맥락에서 조선을 연구했던 이들의 유산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도 남겨진 과제다. 저자는 이 책에 “지양으로서의 조선, 지향으로서의 동양”이란 부제를 달았는데 지양과 지향의 종합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 실제로 후지쓰카가 청조문명의 조선전파가 독특하고도 독보적임을 확인하고 홍대용, 박제가, 김정희의 높은 성취를 평가한 것, 아베 요시오가 송명학의 일본 전래길에 우뚝 선 퇴계 이황을 주목한 것은 지금도 의미있는 지적 유산이 되어 있다. 한양대 정민 교수는 후지쓰카 교수의 컬렉션 일부를 하바드 옌칭 도서관에서 찾아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이란 책을 출간하기도 했고 식민지 하에서 한중일을 잇는 네트워크는 더욱 확대된 것이 사실이다.

식민지 하 동양연구는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을 뒷받침하는 작업이 되고 말았고 결국 해방후 그 맥이 단절되었다. 하지만 냉전기를 겪으면서 기피되고 잊혀진 것일 뿐 그것을 지적으로 극복했다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정면으로 부딪쳐 그 유산과 싸울 기회를 갖지 못한 채 1990년대 이후 한중일을 함께 사고하는 논의는 급격히 증대했다. 일본 학계의 논의가 적극 소개되고 중국과의 교류가 급진전하면서 한중일 학술회의가 붐을 이루기도 했다. 그 맥락에서 동아시아 범주가 주목을 받았고 동북아 지역연구의 중요성도 높아졌다.

다시 동북아는 정치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숨고르기를 하는 형국이다. 미중의 패권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한중관계도 소원해지고 한일관계는 더욱 악화되고 있다. 중국은 중화주의로의 노골적인 경사를 뚜렷이 하고 있고 일본도 자국주의로의 걸음을 가속화한다. 이런 상황에서 동아시아, 동북아시아는 어떻게 상상되어야 할까? 오늘의 동아시아나 동북아는 동양학의 지향과 어떻게 다른 것일까? 가치와 문명의 차원에서 서구의 존재는 배제해도 좋은가? 질문은 계속되고 공부할 과제는 끝이 없다. 정교수를 비롯한 유능한 후학들의 건투를 비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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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과 사회의 탄생

포스텍 융합문명연구원장 박상준 교수의 신작 [현대 한국인과 사회의 탄생]을 중심으로 한 세미나에 줌으로 참여했다. 흥미로운 주제인데다 박교수로부터 그 책을 증정받은 고마움도 있어 즐겁게 동참했다. 융합문명연구원을 설립한 초대원장 송호근 교수, 토론자로 온 권보드레 교수, 작가이자 사회학자인 정수복 박사도 볼 수 있어서 더욱 반가왔다.

한국에서의 사회 형성은 나도 관심을 가져온 주제다. 개념사와 사회사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전환기 역사를 해석하는데 미력이지만 애를 썼다. 유교적이고 자족적이었던 전통체제로부터 벗어나 낯선 시대에 직면한 한국인들에게 ‘사회’란 ‘문학’이나 ‘개인’ 못지 않게 새로운 현상이었고 그것은 현실보다 개념의 형태로 ‘다가올 미래’를 표상했다. 애국계몽운동기, 글쓰기를 담당한 식자층들이 이런 미래를 상상하고 새로이 등장한 매체가 그것을 확산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인직이 사회 개념을 ‘만세보’에 소개하고 이광수가 문학을 강조하며 청년들이 사회운동에 관심을 보인 것도 유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겠다.

문제는 식민지라는 조건, 국가를 잃게 된 상황에서의 ‘새로운 미래’ 상상이 겪어야 하는 제약이었다. 사회, 문화, 개인은 국가라는 정치공동체를 전제함으로써 그 구체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 근대의 특징이다. 1910년 국가의 소멸은 식민지 하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개인과 사회, 문화를 어떻게 사고해야할지 새로운 곤경을 야기했다. 이 시기 등장한 민족범주는 혈연적이고 문화역사적인 공동체로서 국가를 대체하는 효율적인 주체로 부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개인과 사회의 공간을 열어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현대한국인의 탄생을 국가나 민족이 아닌 사회의 탄생과 연결시키고 그것을 문학의 장에서 확인하려는 발제자의 시각은 참신하다. 권보드레 교수도 민주주의의 문제를 소환한 것을 중요하게 평가했다. 20세기 한국의 지성사를 꿰는 화두로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주목할 때 사회의 영역과 개인의 존재가 좀더 잘 부각될 수 있는 것도 분명하다. 어쩌면 민족주의, 사회주의, 국가주의의 과도한 영향을 벗어날 때 문학이 미친 심대한 영향을 더욱 또렷이 확인할 수 있을지 모른다.

종교의 문제가 결락된 것 아닌가는 질문이 청중에게서 제기되었다. 내 개인의 체험으로도 개인과 사회라는 말에 이끌린 바탕에는 기독교적 사유가 작용했음을 또렷하게 느낀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던 동학과 천도교의 영향도 20세기 초반에는 매우 강력했다. 실제로 개인의 존재, 그들의 자발적인 연대로 형성되는 사회를 강력히 옹호한 것은 정부도 민족도 아니었고 종교단체를 비롯한 민중의 결사체들이었다. 개인의 각성이 정치적 권리나 경제적 부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세속과 맞서는 종교적 윤리체계에서 비롯되었다는 막스 베버의 명제를 떠올렸다. 그런 점에서 문학과 종교는 같은 기능을 수행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좋은 세미나였다.

life · 오늘의 화두

한국문화의 세계화?

보스턴에서 만난 적 있던 Peggy Levitt 교수가 자신이 쓴 논문을 보내왔다. 하바드 한국학연구소에서 개최한 문화관련 심포지엄에서 만났다가 심보선 교수와의 인연을 알게 되었고, 마침 한국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상을 수상한 직후라 자연스럽게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이후 다시 전반적인 한국상황을 알고싶다고 해서 약 한시간 반 정도 인터뷰를 하기도 했었다.

글이 던지는 질문이 신선하다. 저자들의 관심은 다음과 같은 문제의식에 담겨있다. ” How does art from what have been culturally peripheral countries that were not former colonies of Western powers scale shift or find its way to the global center? What can the Korean case tell us about the circulation of contemporary literature in a “small language?” 한마디로 서구 식민지도 아니었던 주변부 국가의 예술이 지구적 중심부로 진출할 길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 한국의 사례는 그런 ‘소수 언어’가 세계문화에 대해 미치는 영향력과 관련하여 어떤 의미를 갖는가?

BTS의 인기와 K-Culture 의 영향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아직 적절한 설명틀은 보이지 않는다. 누구는 정부의 정책효과로 설명하고 누구는 한국인의 독특한 기질을 강조한다. 필자들은 문학의 “하부구조”라는 말로 포괄될 수 있는, 쓰기, 읽기, 출판, 마케팅의 플랫폼, 통로, 켄테이너, 대문들에 주목한다. 한국문화의 세계화가 주변부-중심부 패러다임의 단순성을 극복하고 비서구 사회의 문화가 지구적 중심성을 획득할 수 있는 설명도식으로 보완, 활용될 수 있을지 기대해 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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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판의 댓가, 무능의 비용

외우 조태열 전 유엔대사가 27일 매일경제에 실린 컬럼에서 2018년 전격적으로 추진된 북미정상회담이 중국을 alert 시켜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재평가하게 만들었고 북중을 밀착시켜 결국 북한비핵화를 위한 국제협력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돌이켜보면 2017년 당시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유엔 차원의 국제공조는 꽤 잘 작동했고 여러 제재가 합의될 수 있었다. 하지만 주목을 끌었던 남북미 탑다운 프로젝트가 실패로 끝난 후 오히려 북한 비핵화를 위한 국제공조는 더욱 힘들어졌다. 그렇다고 남북간의 불신과 갈등이 해소되지도 않았고 오히려 북한의 대남비방과 핵위협은 더욱 노골화되고 있다. 이 역설적 상황을 직시하고 북한비핵화 전략구상 전반을 재검토하고 플랜B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조대사는 주문한다.

29일 아침엔 최근 혹서와 전력난의 전례없는 어려움을 겪는 유럽 현지의 위기가 결국 러시아 위험에 대한 전략적 판단미스에 기인한 것이란 컬럼을 읽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의 급격한 가스공급 축소는 유럽이 기후위기와 에너지 위기, 사회적 불안과 안보위기를 동시에 겪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 가스 의존도가 50% 이상인 독일은 특히 심각한 어려움에 부딪치고 있는데 장차 환경오염이 심한 갈탄 화력까지 사용할 각오지만 장기적 전망은 불투명하다. [더컬럼니스트]의 컬럼은 이런 상황을 초래한 이유가 독일의 “과도한 친러시아 정책의 안일함”에 있다고 지적한다. 탈냉전 이래 러시아와의 지정학적 리스크, 전략적 위험성을 경시해온 결과라는 것이다.

한국의 진보정부가 북한에 대해 가졌던 기대와 탈냉전 후 독일이 러시아에 보인 대응을 같은 차원에서 취급할 순 없다. 하지만 그 기대가 좌절당한 현실 앞에서 그간의 전략구상을 근본적으로 되돌아보아야 할 상황 자체는 확실히 유사하다. 또 한국의 진보정부가 북한 정권과의 협력가능성을 강조할 때 늘 독일의 ‘접촉을 통한 변화’는 좋은 참조이자 선례이기도 했다. 독일은 탈냉전과정에서의 성공적인 통일과 유럽통합의 경험 위에서 신뢰와 통합의 힘이 러시아와의 관계를 새롭게 변화시키리라 믿었을 듯 하다. 하지만 2022년 현재 한반도도 독일도 그간 견지해온 정책적 전망의 타당성이 흔들리고 그 바탕을 이룬 이론적 공감력도 크게 동요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

누구도 원치않던 오늘의 현실은 정책적 오판의 아픈 댓가라 해야 할까? 타당한 정책이었는데 상대방의 배신이 빚은 어쩔 수 없는 결과일까? 대국주의와 약육강식의 논리가 횡행하는 국제질서의 퇴행 탓일까? 탓할 대상 찾기가 능사는 아니지만 역설적 결과를 가져온 정책에 대한 냉정한 검토 없이는 오류를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우리의 현실판단과 정책형성 프로세스 전반을 전면적으로 성찰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작업이 시급하다. 하지만 새정부의 어슬픈 언행과 정치권의 구태를 보노라면 오판의 댓가 못지 않게 무능의 비용도 크게 치루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과학기술 영역에서 논의되는 “혁신”이 정작 절실히 필요한 곳은 오히려 정치권이 아닐까 싶다.

life · 오늘의 화두

“출생을 넘어서”

백광열 박사가 공들여 번역한 책을 보내왔다. 호주 캔버라 대학의 황경문 교수의 Beyond Birth 를 옮긴 것인데 다소 도발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문제의식이 눈길을 끈다. 저자는 한국사회의 역동적 변화를 보편적 발전도식에 맞추려는 시각을 거부하고 전통시대의 한국적 특성이 누적적으로 작용한 장기효과에 주목한다. 사회혁명이 부재한 사회로 파악하면서 근대로의 이행과정에서 주요한 지위상승을 이룬 엘리트의 성장과 그 과정의 성격을 설명하려 한다.

이 책은 중인, 향리, 서얼, 군인, 서북인 등 양반층에 비해 신분적 지위가 훨씬 낮았던 ‘제2신분집단’을 주목한다. 저자는 고려시대 이래 가문과 교육과 관료제의 복합적 연계 속에서 일종의 비귀족 엘리트층이 형성되었고 이들의 독특한 심성과 아비투스가 20세기 이래 특권적 엘리트층을 구성하는 한 요인이 되었다고 본다. 전통사회의 특질을 세밀하게 밝히는 역사학적 실증을 넘어 한국사회에서 확인되는 서열의식, 신분의식, 평등의식, 공정의식의 기원을 탐구하려는 장기사회사적 시선이 신선하다.

영미권의 한국학 저술은 한국 학계의 문제의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고 서구중심적 서술이 이루어진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동서양을 아우르는 비교사적 시각과 개념화 능력에서 주목할 만한 장점도 적지 않다. 이 책 역시 신분원리와 국가관료제의 공고한 결합, 그 틈새에서 생존해온 ‘제2신분층’의 기민함, 전통적 심성의 장기지속성 등의 주장은, 추가 분석이 필요하지만 흥미롭다. 조선시대 신분제도, 특히 양반지배층의 네트워크 특성을 새로운 시각으로 연구하고 있는 백광열 교수가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해 이런 저작을 번역 소개하는 것은 그런 점에서 매우 뜻깊고 성원할 일이다.

오늘의 한국사회는 다시 출생과 가족, 신분을 주목하게 만든다. 교육을 통한 상승이동의 가능성이 막히면서 금수저 흙수저 담론이 확산되고 있다. 일각에선 평등주의가 너무 강한 사회라 하고 다른 한편에선 새로운 신분사회가 되었다고 비판한다. 지속적 발전을 위해 경쟁주의와 실력주의를 강화하자는 주장과 과다경쟁이 야기하는 사회공동체 해체를 염려하는 목소리가 공존한다. 이 책의 제목인 Beyond Birth 가 특권층의 형성원리를 넘어 평등사회 실현으로 이어지려면 또 얼마나 많은 애씀과 노력이 따라야 할 것인가? 책장을 넘기면서 떠올리는 생각이다.

life · 시공간 여행

독도 5 의연함과 떨림

독도를 오가는 뱃길은 편치 않았다. 흐린 날씨에 파도도 높아 배는 꽤나 흔들렸다. 바다는 한 곳도 고요하지 않았다. 그러다 불현듯 마주친 독도는 의연했다. 끝없는 파도의 요동과 바람 앞에서 미동도 하지 않는 무게감으로 다가왔다. 나는 독도의 모습에서 의연함이란 이런 것이라는 메시지를 듣는 듯 했다. 청마 유치환의 “저 먼 아라비아의 사막”이 이와 같았을까 모르겠다. 하늘과 바다가 함께 연출하는 거대한 정적 속에서 독도는 ‘존재 그 자체의 힘’ 을 강렬하게 대변했다. 우주에 비하면 티끌같은 크기이지만 그 우주적 스케일에 당당히 맞서는 인간이 저런 모습 아닐까.

돌아오는 뱃길은 더욱 파도가 거셌다. 순식간에 생겨나 몰려왔다가 부서지는 물결을 보면서 고등과학원 이필진 교수의 강의 “거시세계의 양자물리”를 떠올렸다. 최근 즐겨듣는 동영상 강좌 중 하나인데 미시세계든 거시세계든 존재의 본질은 일종의 파동 즉 움직임이며 모든 물질과 존재는 그 떨림으로부터 생성된다는 것이다. 입자와 반입자의 생성과 소멸이 끝없이 진행되는 양자요동의 이미지가 파도치는 바다에서 연상된 것은 엉뚱하면서도 신기했다. 자칫 색즉시공의 동양철학 곁길로 빠지지 않도록 경계할 일이지만 최신 물리학의 설명이 내 근대적 사유의 틀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좋은 자극제임은 부인할 수 없다.

의연함과 떨림, 그것은 모든 존재가 지닌 두 속성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삶 속에서 요동않는 무게감과 한없이 가벼운 떨림 사이를 수시로 오간다. 때론 손해를 알면서도 내 주장과 의지를 고수해 보지만 자신만만했던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 또한 얼마나 많은가. 나침반이 언제나 북쪽을 가르칠 수 있으려면 미세한 움직임에도 흔들리는 가벼움이 필수적이라 했다. 그런 점에서 의연함과 떨림은 양자택일의 대상이라기 보다 동전의 양면이다. 문제는 균형이다.

국악 페스티벌 풍류대장 1회 우승팀 서도밴드가 ‘바다’란 노래를 불렀었다. 굿을 하듯 토해내는 그 노래는 끝없는 파도의 요동침을 moving 과 무너짐으로 표현했다. “이미 너는 알지 이 moving / 다시 무너진다는 걸.” 무너져 버리지만 끝없이 쉬임없이 움직이고 요동치는 것 – 이 속에 바다의 의연함과 떨림이 함께 하는 것이리라. 그 노래를 들으며 인생을 떠올리기도 했었다. 물리학자와 천문학자, 시인과 가수가 함께하는 섬여행, 별여행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life · 시공간 여행

독도 4, 마음 속 그림

가없는 바다 한 가운데 동도와 서도가 마주하고 그 사이에 작은 바위가 점처럼 이어진 독도전경은 그 자체로 한폭의 수묵화다. 잿빛 하늘과 검푸른 파도를 배경으로 암갈색의 독도를 향해 배 위에서 마구 누른 카메라 샷 어느 것 하나 명장면이 아닌 것이 없다. 독도는 그 자체가 그림이지만 그리기 좋은 소재이기도 하다. 유명한 화가들이 독도를 그리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전국의 학교, 단체들이 독도그림 그리기, 독도그림 전시회를 주도한다.

일찌기 독도 그림그리기를 주도한 서울대 이종상 화백은 그것을 민족문화를 지키는 운동이라 했다. 초등학생들의 독도그리기는 그림 자체보다 영토주권을 상상하게 만드는 일종의 교육이다. 그래서 독도 그림은 어쩔 수 없이 정치적이다. 올해 초 아이보시 고이치 주한 일본 대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설 선물을 수취거부하고 반송했는데 선물상자에 독도로 보이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라 했다. 독도가 빠진 한반도 그림을 사용한 단체나 책자가 대중의 비난을 받는 사례도 적지 않다. 추상화된 독도 그림이 격렬한 감정정치의 진원이 되는 미묘한 현실이다.

그래서 독도 그림은 백두산, 금강산과 함께 남북간에 공통의 정서를 확인하는 상징이 되기도 한다. 남북이 함께 모이는 곳에는 으례 금강산과 백두산 그림이 걸리는데 독도도 비슷한 기능을 지닌다. 남북관계 개선의 기대가 있던 2019년에는 북한의 대표적 화가 정창모와 선우영의 독도 그림 전시회가 경북에서 개최되기도 했다. 정창모의 이름은 십수년전 평양을 방문했을 때 들었고 만수대 창작소에서 담묵과 농묵만으로 그린 백두산 설경 그림에 경탄한 적이 있다.

독도는 그 자체로 아름답다. 이종상의 “독도의 기 II” 작품은 수묵의 농담으로 상하 대칭의 삼각형 형상을 배치한 것인데 이 그림에서 굳이 정치역사적 의미를 떠올릴 필요는 없다. 먹의 농담만으로 바다위 독도를 그린 정창모의 수묵화 마찬가지다. 사실 독도 앞에 서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바다와 하늘, 섬이 빚어내는 모습에 감탄한다. 흰 화선지 위에 검은 먹으로 잿빛 하늘과 바다 가운데 짙은 색의 독도를 그려보고 싶지만 당분간 머리 속에만 담아두기로 한다. 남북이, 한일이 손잡고 독도를 다시 갈 때면 얼마나 감격스럽게 마음 속 그림이 바깥으로 표출될 것인가! 그 날이 언제나 올까 궁금함과 함께 과연 그런 날이 올까 의구심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