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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판의 댓가, 무능의 비용

외우 조태열 전 유엔대사가 27일 매일경제에 실린 컬럼에서 2018년 전격적으로 추진된 북미정상회담이 중국을 alert 시켜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재평가하게 만들었고 북중을 밀착시켜 결국 북한비핵화를 위한 국제협력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돌이켜보면 2017년 당시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유엔 차원의 국제공조는 꽤 잘 작동했고 여러 제재가 합의될 수 있었다. 하지만 주목을 끌었던 남북미 탑다운 프로젝트가 실패로 끝난 후 오히려 북한 비핵화를 위한 국제공조는 더욱 힘들어졌다. 그렇다고 남북간의 불신과 갈등이 해소되지도 않았고 오히려 북한의 대남비방과 핵위협은 더욱 노골화되고 있다. 이 역설적 상황을 직시하고 북한비핵화 전략구상 전반을 재검토하고 플랜B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조대사는 주문한다.

29일 아침엔 최근 혹서와 전력난의 전례없는 어려움을 겪는 유럽 현지의 위기가 결국 러시아 위험에 대한 전략적 판단미스에 기인한 것이란 컬럼을 읽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의 급격한 가스공급 축소는 유럽이 기후위기와 에너지 위기, 사회적 불안과 안보위기를 동시에 겪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 가스 의존도가 50% 이상인 독일은 특히 심각한 어려움에 부딪치고 있는데 장차 환경오염이 심한 갈탄 화력까지 사용할 각오지만 장기적 전망은 불투명하다. [더컬럼니스트]의 컬럼은 이런 상황을 초래한 이유가 독일의 “과도한 친러시아 정책의 안일함”에 있다고 지적한다. 탈냉전 이래 러시아와의 지정학적 리스크, 전략적 위험성을 경시해온 결과라는 것이다.

한국의 진보정부가 북한에 대해 가졌던 기대와 탈냉전 후 독일이 러시아에 보인 대응을 같은 차원에서 취급할 순 없다. 하지만 그 기대가 좌절당한 현실 앞에서 그간의 전략구상을 근본적으로 되돌아보아야 할 상황 자체는 확실히 유사하다. 또 한국의 진보정부가 북한 정권과의 협력가능성을 강조할 때 늘 독일의 ‘접촉을 통한 변화’는 좋은 참조이자 선례이기도 했다. 독일은 탈냉전과정에서의 성공적인 통일과 유럽통합의 경험 위에서 신뢰와 통합의 힘이 러시아와의 관계를 새롭게 변화시키리라 믿었을 듯 하다. 하지만 2022년 현재 한반도도 독일도 그간 견지해온 정책적 전망의 타당성이 흔들리고 그 바탕을 이룬 이론적 공감력도 크게 동요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

누구도 원치않던 오늘의 현실은 정책적 오판의 아픈 댓가라 해야 할까? 타당한 정책이었는데 상대방의 배신이 빚은 어쩔 수 없는 결과일까? 대국주의와 약육강식의 논리가 횡행하는 국제질서의 퇴행 탓일까? 탓할 대상 찾기가 능사는 아니지만 역설적 결과를 가져온 정책에 대한 냉정한 검토 없이는 오류를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우리의 현실판단과 정책형성 프로세스 전반을 전면적으로 성찰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작업이 시급하다. 하지만 새정부의 어슬픈 언행과 정치권의 구태를 보노라면 오판의 댓가 못지 않게 무능의 비용도 크게 치루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과학기술 영역에서 논의되는 “혁신”이 정작 절실히 필요한 곳은 오히려 정치권이 아닐까 싶다.

life · 오늘의 화두

“출생을 넘어서”

백광열 박사가 공들여 번역한 책을 보내왔다. 호주 캔버라 대학의 황경문 교수의 Beyond Birth 를 옮긴 것인데 다소 도발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문제의식이 눈길을 끈다. 저자는 한국사회의 역동적 변화를 보편적 발전도식에 맞추려는 시각을 거부하고 전통시대의 한국적 특성이 누적적으로 작용한 장기효과에 주목한다. 사회혁명이 부재한 사회로 파악하면서 근대로의 이행과정에서 주요한 지위상승을 이룬 엘리트의 성장과 그 과정의 성격을 설명하려 한다.

이 책은 중인, 향리, 서얼, 군인, 서북인 등 양반층에 비해 신분적 지위가 훨씬 낮았던 ‘제2신분집단’을 주목한다. 저자는 고려시대 이래 가문과 교육과 관료제의 복합적 연계 속에서 일종의 비귀족 엘리트층이 형성되었고 이들의 독특한 심성과 아비투스가 20세기 이래 특권적 엘리트층을 구성하는 한 요인이 되었다고 본다. 전통사회의 특질을 세밀하게 밝히는 역사학적 실증을 넘어 한국사회에서 확인되는 서열의식, 신분의식, 평등의식, 공정의식의 기원을 탐구하려는 장기사회사적 시선이 신선하다.

영미권의 한국학 저술은 한국 학계의 문제의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고 서구중심적 서술이 이루어진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동서양을 아우르는 비교사적 시각과 개념화 능력에서 주목할 만한 장점도 적지 않다. 이 책 역시 신분원리와 국가관료제의 공고한 결합, 그 틈새에서 생존해온 ‘제2신분층’의 기민함, 전통적 심성의 장기지속성 등의 주장은, 추가 분석이 필요하지만 흥미롭다. 조선시대 신분제도, 특히 양반지배층의 네트워크 특성을 새로운 시각으로 연구하고 있는 백광열 교수가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해 이런 저작을 번역 소개하는 것은 그런 점에서 매우 뜻깊고 성원할 일이다.

오늘의 한국사회는 다시 출생과 가족, 신분을 주목하게 만든다. 교육을 통한 상승이동의 가능성이 막히면서 금수저 흙수저 담론이 확산되고 있다. 일각에선 평등주의가 너무 강한 사회라 하고 다른 한편에선 새로운 신분사회가 되었다고 비판한다. 지속적 발전을 위해 경쟁주의와 실력주의를 강화하자는 주장과 과다경쟁이 야기하는 사회공동체 해체를 염려하는 목소리가 공존한다. 이 책의 제목인 Beyond Birth 가 특권층의 형성원리를 넘어 평등사회 실현으로 이어지려면 또 얼마나 많은 애씀과 노력이 따라야 할 것인가? 책장을 넘기면서 떠올리는 생각이다.

life · 시공간 여행

독도 5 의연함과 떨림

독도를 오가는 뱃길은 편치 않았다. 흐린 날씨에 파도도 높아 배는 꽤나 흔들렸다. 바다는 한 곳도 고요하지 않았다. 그러다 불현듯 마주친 독도는 의연했다. 끝없는 파도의 요동과 바람 앞에서 미동도 하지 않는 무게감으로 다가왔다. 나는 독도의 모습에서 의연함이란 이런 것이라는 메시지를 듣는 듯 했다. 청마 유치환의 “저 먼 아라비아의 사막”이 이와 같았을까 모르겠다. 하늘과 바다가 함께 연출하는 거대한 정적 속에서 독도는 ‘존재 그 자체의 힘’ 을 강렬하게 대변했다. 우주에 비하면 티끌같은 크기이지만 그 우주적 스케일에 당당히 맞서는 인간이 저런 모습 아닐까.

돌아오는 뱃길은 더욱 파도가 거셌다. 순식간에 생겨나 몰려왔다가 부서지는 물결을 보면서 고등과학원 이필진 교수의 강의 “거시세계의 양자물리”를 떠올렸다. 최근 즐겨듣는 동영상 강좌 중 하나인데 미시세계든 거시세계든 존재의 본질은 일종의 파동 즉 움직임이며 모든 물질과 존재는 그 떨림으로부터 생성된다는 것이다. 입자와 반입자의 생성과 소멸이 끝없이 진행되는 양자요동의 이미지가 파도치는 바다에서 연상된 것은 엉뚱하면서도 신기했다. 자칫 색즉시공의 동양철학 곁길로 빠지지 않도록 경계할 일이지만 최신 물리학의 설명이 내 근대적 사유의 틀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좋은 자극제임은 부인할 수 없다.

의연함과 떨림, 그것은 모든 존재가 지닌 두 속성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삶 속에서 요동않는 무게감과 한없이 가벼운 떨림 사이를 수시로 오간다. 때론 손해를 알면서도 내 주장과 의지를 고수해 보지만 자신만만했던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 또한 얼마나 많은가. 나침반이 언제나 북쪽을 가르칠 수 있으려면 미세한 움직임에도 흔들리는 가벼움이 필수적이라 했다. 그런 점에서 의연함과 떨림은 양자택일의 대상이라기 보다 동전의 양면이다. 문제는 균형이다.

국악 페스티벌 풍류대장 1회 우승팀 서도밴드가 ‘바다’란 노래를 불렀었다. 굿을 하듯 토해내는 그 노래는 끝없는 파도의 요동침을 moving 과 무너짐으로 표현했다. “이미 너는 알지 이 moving / 다시 무너진다는 걸.” 무너져 버리지만 끝없이 쉬임없이 움직이고 요동치는 것 – 이 속에 바다의 의연함과 떨림이 함께 하는 것이리라. 그 노래를 들으며 인생을 떠올리기도 했었다. 물리학자와 천문학자, 시인과 가수가 함께하는 섬여행, 별여행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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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4, 마음 속 그림

가없는 바다 한 가운데 동도와 서도가 마주하고 그 사이에 작은 바위가 점처럼 이어진 독도전경은 그 자체로 한폭의 수묵화다. 잿빛 하늘과 검푸른 파도를 배경으로 암갈색의 독도를 향해 배 위에서 마구 누른 카메라 샷 어느 것 하나 명장면이 아닌 것이 없다. 독도는 그 자체가 그림이지만 그리기 좋은 소재이기도 하다. 유명한 화가들이 독도를 그리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전국의 학교, 단체들이 독도그림 그리기, 독도그림 전시회를 주도한다.

일찌기 독도 그림그리기를 주도한 서울대 이종상 화백은 그것을 민족문화를 지키는 운동이라 했다. 초등학생들의 독도그리기는 그림 자체보다 영토주권을 상상하게 만드는 일종의 교육이다. 그래서 독도 그림은 어쩔 수 없이 정치적이다. 올해 초 아이보시 고이치 주한 일본 대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설 선물을 수취거부하고 반송했는데 선물상자에 독도로 보이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라 했다. 독도가 빠진 한반도 그림을 사용한 단체나 책자가 대중의 비난을 받는 사례도 적지 않다. 추상화된 독도 그림이 격렬한 감정정치의 진원이 되는 미묘한 현실이다.

그래서 독도 그림은 백두산, 금강산과 함께 남북간에 공통의 정서를 확인하는 상징이 되기도 한다. 남북이 함께 모이는 곳에는 으례 금강산과 백두산 그림이 걸리는데 독도도 비슷한 기능을 지닌다. 남북관계 개선의 기대가 있던 2019년에는 북한의 대표적 화가 정창모와 선우영의 독도 그림 전시회가 경북에서 개최되기도 했다. 정창모의 이름은 십수년전 평양을 방문했을 때 들었고 만수대 창작소에서 담묵과 농묵만으로 그린 백두산 설경 그림에 경탄한 적이 있다.

독도는 그 자체로 아름답다. 이종상의 “독도의 기 II” 작품은 수묵의 농담으로 상하 대칭의 삼각형 형상을 배치한 것인데 이 그림에서 굳이 정치역사적 의미를 떠올릴 필요는 없다. 먹의 농담만으로 바다위 독도를 그린 정창모의 수묵화 마찬가지다. 사실 독도 앞에 서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바다와 하늘, 섬이 빚어내는 모습에 감탄한다. 흰 화선지 위에 검은 먹으로 잿빛 하늘과 바다 가운데 짙은 색의 독도를 그려보고 싶지만 당분간 머리 속에만 담아두기로 한다. 남북이, 한일이 손잡고 독도를 다시 갈 때면 얼마나 감격스럽게 마음 속 그림이 바깥으로 표출될 것인가! 그 날이 언제나 올까 궁금함과 함께 과연 그런 날이 올까 의구심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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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2, 컨텐츠의 시간성

울릉도에는 여러 기념관과 전시관이 있다. 방문자들로 하여금 독도가 한국령임을 확신하게 만드는 교육공간의 성격이 강하다. 울릉도와 독도의 한반도 귀속을 보여주는 과거의 문서와 지도들이 전시되어 있는가 하면 이곳을 생활터전으로 삼고 살았던 사람들의 행적이 소개되어 있기도 하다. 수토사와 같이 중앙정부에서 파견된 관리의 문서와 활동도 있고 홍순칠 등 독도의용수비대와 같이 민간인의 활동이 중심이 된 전시도 있다. 시마네현 고시를 시작으로 일본이 독도를 침탈한 과정도 소개되어 있는가 하면 해방후 미군정이 독도의 한국령임을 명확히 확인해준 SCAPIN 자료 등도 전시되고 있다.

뜻밖에 방문하게 된 박정희 기념관은 또다른 공간이었다. 1962년 울릉도를 방문한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회의 의장이 묵었던 일본식 관사를 개조하여 제3공화국 시기 개발정책과 성과들을 종합적으로 전시하고 있다. 박정희 정부는 소위 국적있는 교육을 내세워 국가주의 역사관을 강조했는데 그 맥락에서 안용복 기념비를 세우고 독도의용수비대를 청와대로 초청하는 등 독도상징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었다. 이 기념관은 박정희 정부 시기에 진행된 개발과 동원, 상징정치의 여러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다른 전시관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1960년대와 70년대의 기억을 재생하고 있다.

21세기 울릉도의 변화는 심대하다. 관광객은 늘어나지만 2만명에 달하던 주민 숫자는 8,000명 수준으로 줄었다. 어업이 주를 이루던 경제활동 양상도 관광서비스업 중심으로 변모하고 있다. 고즈넉하던 항구와 마을은 관광버스와 렌트카로 혼잡하다. 이미 생태환경의 파괴가 적지 않이 진행되었는데 장차 공항이 들어서면 더 가속화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김대중 정부 하에서 조인된 신한일어업협정이 울릉도와 오키도를 기점으로 중간공동수역을 결정한 것 때문에 적지 않은 논란이 있었는데 그 이후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이곳의 어업활동이나 이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궁금했지만 확인할 길이 없다. 최근의 생활상, 진행되는 문화사를 보여주는 전시관도 마련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독도영유권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전시가 중심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동시에 나날이 바뀌는 현실과 궁금해하는 내용의 다양성을 반영할 컨텐츠 보완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세대감각이 다르고 우리 사회의 문제가 복합적인 만큼 과거와 현재, 육지와 바다, 정치와 경제, 문화와 생태 전반을 아우르는 폭넓은 내용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그 일은 단순한 전시방식을 바꾸는 문제가 아니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일대 혁신이 필요한 어려운 과제이긴 하다. 任重道遠, 임무는 중한데 갈길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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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1, 유치환과 김민기

청마 유치환의 ‘울릉도’ 시비가 독도박물관 입구에 서 있다. 울릉도를 “금수로 굽이쳐 내리던 장백의 묏부리 방울 튀어” 이루어진 “애닯은 국토의 막내”라고 노래한 시인의 상상이 기발하다. 울릉도와 한반도의 밀접한 연결성을 이 표현 이상으로 묘사할 수 있을까. 하지만 시인의 상상력은 문화와 역사, 정치로까지 이어져 “멀리 조국의 사직의 어지러운 소식이 들려올 적마다/ 미칠 수 없음이 이렇게도 간절”한 “어린 마음”을 울릉도에서 읽어낸다. 식민지와 분단, 전쟁의 험난한 역사를 살아와야 했던 시인 자신의 정서가 먼 바다 외딴 섬의 모습 속에 투영되었을 법하다.

독도의용수비대 기념관 앞에도 또다른 시비 하나가 서 있다. 70년대 문화운동의 주역이었던 김민기의 “내 나라 내 겨레” 라는 시다. “보라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 누구의 머리위에 이글거리나”로 시작되는 이 글은 송창식이 곡을 붙인 노래로도 널리 알려졌다. “피어린 항쟁의 세월 속에 고귀한 순결함을 얻은 우리” 라거나 “눈부신 선조의 얼 속에 고요히 기다려온 우리 민족”이라는 표현 속에서 전쟁과 가난과 독재를 뚫고 의연히 성장해온 한반도 백성에 대한 강한 신뢰를 읽을 수 있다. 이 시비 건립을 위해 2000년에 김민기가 새로 글씨를 썼다는데 민주화된 21세기를 맞이하는 감격과 미래에 대한 기대를 이 글에 덧입혀 담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유치환의 시와 김민기의 시는 정서와 분위기에 뚜렷한 차이가 있다. 청마의 시에서는 애절함과 고독함이 강하게 느껴지고 김민기의 노래에선 자신감과 공동체성이 읽혀진다. 청마는 바다, 파도, 바위, 사막 등을 통해 꺾이지 않는 생명의 강인함을 확인하려 한데 반해 김민기는 항쟁의 역사와 선조의 얼, 순결함과 기다림의 공동체를 노래한다. 유치환이 울릉도를 통해 “사념의 머리 곱게 씻기”우고 “지나 새나 뭍으로만 향하는 그리운 마음”을 읽어내는 것과는 달리 김민기는 “보라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 우리가 간직함이 옳지 않겠나”라며 선언하듯 과감하게 자신감을 피력한다. 이 두 시비 건립의 사이에는 수십년 한국 현대사가 자리하고 두 시인의 감성 사이에는 그동안 변해온 시대정서의 차이가 존재할 것이다. 2022년 지금 또 다른 시인이 이곳에서 노래한다면 어떤 정서를 담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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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3, 石 돌 獨

독도가 석도임을 논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 것이 개인적으로 이번 여행에서 얻은 중요한 성과다. 1900년에 제정된 대한제국칙령 제41호에 의해 울릉도가 울도군으로 지정되면서 그 관할지역으로 울릉전도와 죽도, 그리고 석도가 적시되었다. 죽도가 어디인지는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석도란 지명이 논란이다. 한국은 석도가 곧 독도이며 역사적으로 지녀온 영유권을 1900년 대한제국 칙령으로 재확인한 것으로 설명한다. 반면 일본은 이 석도가 현재의 관음도라고 주장하면서 독도의 한국영유권을 부인하는 근거로 삼으려 한다.

제한된 문서자료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현장의 공간감과 생태적 특징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영호 이사장의 주장에 모두 공감하면서 관음도, 죽도를 방문하고 이름과의 연관성을 비교했다. 죽도에는 산죽이 곳곳에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서 죽도 또는 댓섬이란 이름이 그 생태적 특성에서 온 것임이 분명했다. 반면 관음도는 나무가 울창하고 경관도 수려해서 석도라는 이름과는 그 생태적 특성이 너무 어울리지 않았다. 현지인들이 부른다는 섬목이라는 지명 역시 석도나 돌섬과는 거리가 멀다. 이에 반해 독도를 본 첫 이미지는 분명한 돌섬이었고 그것은 석도라는 이름값과 정확히 부합한다. 독도와 죽도, 관음도를 둘러본 후 나는 돌섬과 석도, 그리고 독도가 같은 지명이라는 설명이 타당하리라는 확신이 보다 강해졌다.

기록상 독도가 처음 나타나는 것은 1905년 일본 해군성 소속 군함 신고호의 항해일지인데 여기에는 ‘리앙쿠르토 암을 한인들은 독도라고 쓰고 본방인들은 줄여 량코도라고 부른다’라고 되어 있다. 1906년 울도 군수 심흥택이 오키도 관리들의 방문을 받고 그 결과를 보고한 기록이 ‘본군 소속 독도가…’라고 시작함으로써 한국 문헌 속에 독도가 처음 등장했다. 기술 내용으로 미루어 이전부터 독도라는 이름이 울릉도 주민들 사이에서 통용되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고 그것이 현지의 돌섬, 석도와 같다는 추정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한글학회의 지명조사나 신용하 교수 연구서에는 돌섬을 독섬 또는 석도로 표기하는 다른 사례들이 여럿 언급되어 있다. 울릉도에서 나고 자란 홍성근 박사의 상세한 지명 고찰 역시 그것을 뒷받침한다.

1900년대 초반은 일제의 조선병탄이 본격화되던 때이면서 동시에 갑오개혁 이후 표기법의 심대한 변화가 진행되던 시기다. 많은 고유어들이 한자어로 바뀌고 그 과정에서 동음이의어가 혼용된 사례들이 적지 않았다. 돌섬이 석도로, 다시 독도로 달리 불리고 쓰이게 된 것도 현지의 우리말, 그것의 한자표기, 음차와 훈독의 뒤섞임이 초래한 결과다. 전라도에서 이주해온 주민들이 돌을 독이라 부르는 방언을 사용하여 멀리 있는 돌섬을 독섬이라 불렀고 그것을 관리가 표기할 때 어떤 경우는 석도로 또 다른 곳에서는 한자를 음차하여 독도로 기록했던 것이다.

인터넷에는 독도를 ‘외로운 섬’으로 부른 홀로 아리랑 노래 가사를 수정해야 한다는 글이 올라와 있다. ‘獨島’의 獨은 음차에 불과한 것이어서 그냥 독이나 돌로 읽어야 한다는 것인데 실제로 독도와 석도와 돌섬을 연결하는 논지와 부합하는 타당한 주장이다. 그렇지만 망망한 바다 한 가운데서 독도를 보면 외롭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으니 실효적 지배가 확실한 오늘 외로운 섬이라 부르는 문학적 표현을 막을 수도 없어 보인다. 어쨋든 돌섬, 석도가 독도임을 확증해주는 분명한 문서자료가 부재한다는 점은 아쉬운 현실인데 일본의 부당한 주장을 완전히 잠재줄 수 있을 명료한 문서가 발굴될 날이 오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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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2, 역사와 생태

독도는 특별한 곳이다. 꽤 많은 시간 파도의 시달림을 감내하면서 가야 하지만 상륙 여부가 불확실하며 접안에 성공해도 30분 내외 머물 뿐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독도를 찾는다. 어떤 이는 답사라 하고 어떤 이는 관광이라 부르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독도방문 자체가 정치외교적 논란이 되었지만 지금은 하루에도 수차례 꽤 큰 선박이 독도를 오가고 있고 인터넷에는 독도관광을 선전하는 글귀가 널려 있다.

누구나 언제든지 갈 수 있지만 독도는 특별한 곳이다. 유별난 애국자가 아니더라도 독도라는 말에서 빼앗긴 주권과 되찻은 주권을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무명용사의 기념탑에서 민족을 가시적으로 경험한다고 주장했는데 독도는 그런 상징적 공간에 해당한다.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지키려다 목숨을 잃은 어민들의 위령비와 독도의용수비대의 활동사진은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역사전쟁의 용사탑인 셈이다. 그래서 독도앞에서 누구나 민족감정을 느끼고 국가를 체험한다. 독도로의 여정은 어쩔 수 없이 역사기행이자 애국여행이다.

독도에서 국가를 떠올린다면 울릉도에선 새로운 자연을 만난다. 화산섬의 위용과 용암석의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대단한 경이이고 바다를 끼고 있는 한반도 생태의 살아있는 공부시간이다. 울릉도 관광이 독도상징을 활용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생태와 지질관광 역시 중시할 일이다. 독도와 울릉도의 이 절묘힌 조합은 역사와 자연, 정치와 생태, 답사와 관광이 공존하는 여행문화를 가능케 한다. 공들여 지은 전시관을 찾는 여행자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걱정을 들었는데 어쩌면 이런 균형이 좀더 필요함을 알려주는 사인일지 모른다.

개인적으로 전시관을 둘러보면서, 또 버스 속에서 역사공부와 쟁점정리의 유익한 시간을 가진 것 못지 않게 울릉도와 독도의 지질적 특성, 아름다운 자연을 만나고 감상한 시간 역시 더없이 소중했다. 독도와 울릉도, 울릉도와 독도가 함께 고려되어야 하는 것은 굳이 어민들의 생활권 차원이나 영유권 문제에 한정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의미있는 여행이 되기 위해서도 독도와 울릉도, 역사와 자연은 함께 있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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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1, 1947 & 2022

독도를 다녀왔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주관한 “일제침탈과 역사왜곡 인식제고를 위한 독도탐방” 에 참여한 것이다. 답사단은 명실상부 최고위 기관장, 전문가들로 구성되었다. 재단의 이영호 이사장을 비롯하여 국사편찬위원회 김인걸 위원장, 한국학중앙연구원 안병우 원장, 독립기념관 한시준 관장, 중앙도서관 서혜란 관장, 인문지리학자 양보경 총장,고고학자 강현숙 교수, 한국근현대사 전문가 박찬승 교수와 박명림 교수가 함께 했다. 울릉도 출신이면서 독도연구가인 홍성근 박사가 안내와 설명을 맡아 세세한 현지의 상황까지 배우고 확인하는 고품격 답사여행이었다.

독도와 울릉도에 첫 조사단이 파견된 것은 해방 직후인 1947년이었다. 과도정부 민정장관이었던 안재홍의 후원 하에 조선산악회 주도로 국사관 관장 신석호, 진단학회장이자 국립민속박물관장 송석하, 언어학자 방종현 등이 포함된 63명의 대규모 조사단이었다. 역사, 문화, 민속, 언어, 생활실태 뿐 아니라 동식물과 지질광물에 걸친 광범위한 학술조사를 목표했는데 모든 여건이 미비했을 당시를 생각하면 그 규모와 열정이 놀랍다. 이들의 사명감을 바탕으로 독도연구자 1세대가 성장했고 독도문제를 둘러싼 외교적 논란에 대응할 자산들이 준비될 수 있었으니 가히 독도연구의 출발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47년은 또한 미국의 전후처리과정에서 독도를 두고 한국, 미국, 일본의 줄다리기가 시작된 해다. 미 국무부는 대일평화조약의 체결을 준비하면서 1947년 초안을 마련했는데 거기엔 리앙쿠르암 (독도)의 한국귀속이 분명히 적시되었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독도가 한국령이라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의 반영이었다. 하지만 일본은 미국과의 평화조약 체결과정에서 독도를 한국으로 반환하지 않기 위한 집요한 노력을 기울였다. 일본의 억지주장이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샌프란시스코 조약 초안에 있던 독도의 한국귀속이 최종안에 명기되지 않음으로써 논란이 계속될 빌미를 남겨 놓았다.

그로부터 75년이 지났다. 가난한 은둔의 나라는 어엿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고 학계의 연구 수준도 크게 발전했다. 스포츠와 음악, 영화 등 K-Culture의 파급력도 세계적이다.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권도 확장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어려움 없이 독도여행에 나서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부당한 독도영유권 주장은 계속되고 식민지 시대를 둘러싼 한일간 역사전쟁은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 이 어긋남의 일차적 원인이 일본의 우경화 탓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지만 그것을 지적하는 것으로 해법이 생길지는 모를 일이다. 향후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연구일까 더 세련된 외교일까 더 강한 국력일까? 더 강한 민족주의가 요청되는가 아니면 세계주의와 지역연대의 정신을 강화해야 할까? 홍박사는 1947년 이래 가장 권위있는 답사단이 아닌가 자찬하기도 했지만 그 때 이후 우리 역량은 얼마나 더 강해졌을까 곰곰 자문하게 된다.

life · 오늘의 화두

우주의 경이 앞에서

어제 밤 미국 항공우주국 (NASA)에서 제임스 웹 차세대 우주망원경으로 찍은 우주사진을 발표했다. 나는 실시간으로 현장자료를 보여주면서 전문가의 설명을 전하는 한 국내 유투브에 접속하여 시청했는데 심야 시간임에도 약 2만명이 접속했을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 바이든 대통령이 미리 발표했던 첫 사진을 포함한 5컷의 이미지는 서로 다른 모습으로 우주의 신비함과 경이로움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다양한 빛의 보석들을 진열한 것 같기도 하고 천지창조의 웅장한 장면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걸출한 예술가의 신비한 작품을 보는 듯 싶기도 했다. 작은 모래알 정도의 우주 공간 속에 저토록 많은 은하들과 거대한 가스 성운이 존재한다는 것, 뭇 별들의 생성과 소멸이 지금도 역동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중이라는 설명을 들으며 우주를 광대무변이라 표현한 것이 결코 문학적 표현이 아니구나 생각했다.

천문학과 물리학 관련 글을 읽고 유투브 강연을 듣는게 일종의 취미가 된지 몇 년이 되었다. 십여년 전 유럽의 학자들과 civility 의 지구적 확산을 공동연구할 때 서로 다른 문화권 사이의 개념적 ‘entanglement’에 주목하자는 논의들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했고 결과물이 책자로 간행된 이후에야 현대물리학의 주요 개념임을 알았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전혀 업데이트되지 않은 내 과학지식의 엉성함이 부끄러운 감정으로 남아 천문학과 물리학 분야의 강의와 영상들을 듣기 시작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적지 않고 듣다가 잠이 드는 경우가 다반사지만 새로운 내용을 접하는 느낌이 상쾌해서 지금도 잠자리에선 음악 대신 과학강연을 틀어놓는 날이 많다.

아마추어 귀동냥 지식이지만 가랑비에도 옷은 젖는 법이다. 가볍게 흥미로 듣기 시작했지만 점점 내 생각과 사고 전반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느낀다. 실제로 빅뱅 우주론과 양자물리학의 설명들은 시간과 공간, 존재와 무, 힘과 에너지, 물질과 생명 등 근원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만들고 근대 과학주의에 근거하여 초월적 세계관을 우습게 보려던 지난날을 겸손하게 되돌아보게 한다. 그런가 하면 휴머니즘과 민족주의, 근대주의를 바탕으로 한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시야가 얼마나 좁은가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보여주는 경이로운 우주에 놀라면서도 다소 착잡해지는 마음을 숨기기 어려운 까닭도 저 세계관에 수반될 미래가 좀처럼 상상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칸트가 자신을 감탄하게 만들었다는 “밤하늘의 별과 내 마음 속 도덕률”을 떠올리면서 저 놀랍고 아름다운 우주의 이미지 너머에서 내가 찾아야 하고 또 확인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를 자문해 본다. 첨단 우주과학의 시대에 인문학과 사회과학, 신학과 역사학, 윤리와 정치는 무엇일 수 있고 무엇이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