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오늘의 화두

프로페셔널리즘과 아마추어리즘

토트넘의 손흥민 선수가 유럽 프리미어 리그에서 23골로 득점왕에 오르는 대기록을 세운 후 그를 키운 아버지 손웅정의 교육론이 덩달아 주목을 받고 있다. 수년간 패스와 드리볼이 두 발에 익숙해질 때까지 기본동작만 반복훈련 했다고 한다. 기본기를 강조하는 원칙을 아들에까지 철저하게 지킨 일관성이 놀랍고 그 아버지의 지도에 성실하게 부응한 손흥민의 자세는 더욱 놀랍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 원칙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굳이 청문회에서 쏟아져나오는 유명인사 가족의 변명을 듣지 않아도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바다.

탁월함을 강조하고 최고의 기량을 얻기까지 스스로를 절차탁마하는 프로정신은 개인에게나 사회에게나 발전의 원동력이다. 앞으로 손웅정의 교육론을 빌어서 월드클래스, 최고를 향한 끝없는 노력을 강조하는 주장들이 더욱 힘을 얻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집념이 반도체 강국과 BTS 신화를 가져온 한 힘임은 부인할 수 없는데 저런 방식을 모든 사람, 모든 영역에 보편화해도 좋을지는 의문이다. 모두가 일류 축구선수가 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시합이 프로게임일 수 없다. 어디에선가는 기본기가 모자란 사람도 축구를 즐길 기회가 주어져야 하고 개인의 기량보다 함께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가르쳐야 할 때도 있다.

아마추어리즘과 프로페셔널리즘은 우리 삶을 이끌어가는 두 바퀴다. 전문적 능력이 평가받고 뛰어난 프로들만 주목받는 세상인 듯 하지만 사실 우리의 삶은 대부분 아마추어적이다. 부모 노릇이나 시민 역할을 프로처럼 하고 있다고 장담할 사람이 누가 있을 것인가. 사회적으로도 프로들의 세계와 아마추어 활동무대의 경계가 생각처럼 분명한 것은 아니다. 아마추어 경연을 통해 발굴된 프로 연예인들이 적지 않고 곳곳의 인플루언서 인기가 제도언론의 영향력을 잠식하고 있다. 인터넷과 정보화는 아마추어형 프로, 프로형 아마추어 같은 융합형태를 더욱 조장할 것이다.

점점 더 프로페셔널리즘과 아마추어리즘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해 질 것이다. 프로 의식이 없으면 전문성과 경쟁력이 약해지지만 지나친 프로의식은 전문가주의나 실력주의의 덫에 빠지기 쉽다. 아마추어적 태도는 참신성과 유연성을 가져오지만 지나치면 무책임한 적당주의를 심화시킨다. 이 균형이 깨어지면 엘리트주의로 변질된 프로의식이나 팬덤정서를 부추기는 아마추어리즘의 위험이 커질 것이다. 존경받는 프로페셔널리즘과 책임있는 아마추어리즘을 어떻게 균형있게 재구축할 것인가 – 손흥민의 쾌거에 박수를 보내면서 자문해보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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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대상으로의 교회공동체

공동체에 대한 공부모임에서 윤진수 서울대 법대 명예교수의 ‘교회분열의 법적 고찰’ 발표를 들었다. 이전에도 교회의 공동체적 속성과 그 변화에 대한 서구 사례를 법학의 관점에서 다룬 발표를 들은 바 있다. 같은 신앙을 공유한 신자들의 자율적 모임이라 할 교회가 법률가의 연구대상이 되는 것 자체가 일견 의아해 보이지만 유럽의 경우 정교분리의 제도화가 근대화의 핵심이었던 점, 교회 내분으로 인한 갈등을 법정에서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한국의 현실, 가족간의 일에도 법의 도움을 구해야 할 경우가 적지 않은 오늘의 상황을 고려하면 법률적 관심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교회공동체의 법인격이 분할 가능한지, 분열의 절차적 타당성은 어떻게 충족되는지, 교회재산은 신자들의 공유인지 총유인지 등이 중요한 쟁점이 된다고 한다. 판례의 변화와 최근의 다수의견이 어떠한지 등을 배우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한국의 개신교는 이미 다양한 학문영역에서 연구대상이 되어 왔다. 비서구사회에서 1세기만에 강력한 종교로 성장한 것, 세계최대의 대형교회들이 한국에 집결되어 있는 것, 유난히 많은 교단과 교파로 나뉘어진 것, 통일교를 비롯한 신흥종교들이 출현한 것, 불교 및 천주교와 더불어 종교다원주의가 자리잡은 것 등이 국내외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어온 주제다. 70, 80년대 민주화와 인권운동과 친화력을 보이던 개신교가 정치문화적 보수주의와 결합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최근 새로운 연구주제가 된다. 곳곳에서 빈발하는 교회분열이라는 현상도 공동체론이나 조직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셈이다.

발표를 들으면서 종교사회학을 전공한 교수였다가 현장 목회자가 되어 사역한 노치준 목사의 최근 저서가 생각났다. 그는 [평신도 시대, 평신도 교회] (동연, 2021)에서 ‘평신도 아마추어리즘’과 ‘교역자 프로페셔널리즘’을 한 축으로 하고, 교회공동체의 양극화를 다른 한 축으로 하여 한국교회의 변화상을 설명하려 했다. 그에 의하면 평신도가 교회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이 1980년대 이래 한국교회의 특성인데 평신도의 역량과 열정이 커지고 평신도 신학이 자리를 잡는 한편으로 교권과 전통에 의존한 교역자 권위는 점점 약화되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열정적 참여를 가능케 하지만 책임을 지지 않는 아마추어리즘의 한계와 보수적이고 성직주의에 근거한 교역자 프로페셔널리즘의 위기가 만나게 되었다고 본다. 역동성과 위험성의 동시 성장이 다양한 문제들의 출현배경에 있다고 그는 분석한다.

한편 조직규모의 관점에서 보면 양극화 현상이 뚜렷하다. 현재 한국의 교회는 100명 이하의 소형교회가 66.5%에 달하고 자립이 불가능한 50명 이하의 교회도 거의 50%에 육박한다. 이에 반해 1만명 이상이 모이는 23개 초대형교회의 신도가 전체 신자의 20%를 넘는다. 당연히 대형교회와 중형 교회, 소형교회가 갖는 문제의 양상이 매우 다르다. 재벌과 소규모 자영업자를 상법만으로 규율하기 어렵듯이 교회공동체라는 본질론적 개념만으로 불균등한 현실 개교회를 포괄하는 것은 매우 불충분하다. 교회공동체에 대한 신학적인 답과 법률적인 답이 있겠으나 조직사회학적으로 주목할 쟁점들도 민감하게 대응하는 노력이 절실해지고 있는 것이다.

노치준 목사는 자립이 어려운 소형교회 경우 앞으로 교회폐지, 합병을 비롯한 조직형태의 재편성이 불가피하리라고 본다. 이 과정에서 마을목회, 분교회 모델, 자비량 목회, 작은 교회운동 등이 고려될 수 있겠지만 충분한 대안일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반면 대형교회의 경우는 제도개혁과 함께 분립이 필요하다고 본다. 최근 일부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긴 하지만 그것이 대형교회의 또다른 확산모델로 변질될 우려도 없지 않다. 중간규모의 교회는 자립성과 공동체성을 공유할 수 있지만 다양한 변화에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거버넌스의 안정성이 확보되지 못해 내부의 갈등과 분열의 가능성이 상존할 수 있다. 신앙공동체의 바람직한 규모와 그것을 보장할 제도가 어떠해야 할지, 그 규범력을 사회법에 의존할지 자체적으로 정립할 수 있을지, 신자와 교역자의 역할을 어떻게 재편할지, 분립과 통합의 새로운 조직형성을 어떻게 제도화할지 등이 앞으로 불가피할 과제가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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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강

2022년도 1학기 종강을 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3학기 연속 비대면 강의로 학기를 마쳤는데 광주과학기술원에 부임한 이래 대면수업을 해볼 기회를 지금껏 갖지 못한 셈이다. 오고 가는 수고를 덜었으니 분명 몸은 편했는데 모니터 앞에서만 1년 반을 보낸 허전함을 부인하기 어렵다. 두 과목을 열심히 준비해 가르쳤지만 일방적인 강의로 시종하게 된 것도, 학생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직접 들을 기회를 갖지 못한 것도 아쉽다.

5월 초 대면수업으로 전환해도 좋다는 조치가 있어 학생들의 의견을 물었다. 90% 이상이 비대면 수업을 찬성했다. 이미 익숙해진 강의방식이 주는 편리함에서 굳이 벗어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읽혀졌다. 강의하는 나도 관성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데 학생들이라고 그렇지 않겠는가. 스크린 앞에서 수동적인 청중으로 앉아있어야 하는 비대면 수업이 결코 즐거운 것만은 아니겠으나 외출에 필요한 여러 부담을 피할 수 있는 장점은 결코 무시하지 못할 듯하다.

다음 학기는 대면 수업으로 전환할 것이 예상되지만 비대면 수업의 장점을 어떻게 이어갈지는 새로운 과제다. 각자 편리한 자리에서 화면을 통해서지만 서로의 얼굴을 정면으로 대하고 눈과 눈을 마주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던 비대면 수업에 비해, 마스크를 한 채 떨어져 앉아 조심스레 강의하는 대면 수업이 얼마나 더 ‘face to face’ 에 부합할지 내 스스로 확신이 서질 않는다. 디지털 환경이 가져온 상호관계와 정보전달 방식의 대전환이 교육현장에 미치고 있는 변화가 팬데믹이 끝난다고 중단될 리는 없을 터… 앞으로의 변화와 경험이 흥미로운 관찰거리가 아닐 수 없다.

life · 오늘의 화두

사사친

5월 16일 스승의 날을 맞아 사회사학회 활동으로 오래동안 학연을 이어온 몇분들이 학회의 창립과 발전에 초석을 놓으신 서울대 신용하 명예교수님을 모시고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모두들 정년을 해서 학교에선 명예교수가 되고 지하철을 무임승차할 자격을 얻어 소위 ‘지공도사’ 반열에 들어섰지만 스승과 함께 하는 자리에서는 늘 학생 시절이나 초보 교수 시절의 느낌이 되살아나는 모양이다. 다들 이전 일들 회상하면서 즐거운 담소를 나누었다. 신용하 교수님은 최근 출간한 또 한권의 묵직한 저서를 가져오셔서 모두를 놀라게 했다.

사회사연구회가 태동하던 1980년으로부터 따져보면 벌써 40년이 넘었다. 한국사회가 엄청난 변화를 겪었던 시기였던만큼 개개인의 생애도 몇 권의 책으로도 모자랄 스토리들로 가득할 터이다. 노치준 목사는 종교사회학자로서의 활동을 뛰어넘어 직접 목회의 현장에서 새로운 길을 걸었고 황경숙 교수는 학장으로 학교와 학계 이곳저곳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성실한 연구자의 모범이라 해도 좋을 김필동 교수는 사회사학회와 충남세종 사회학계의 중추역할을 해왔고 국내외 시민운동에 열심으로 참여해온 이정옥 교수는 여가부 장관으로 국정에 참여했다. 일본연구자인 한영혜 교수는 전통춤을 배우고 즐기는 춤꾼이 되었고 정근식 교수는 새로운 연구영역을 개척하는 열정에 더하여 2기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 자리를 함께 하지 못했지만 조성윤 교수는 제주를 중심으로 민속종교와 기층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지속하고 있고 김경일 교수는 정년기념저작만으로도 두 권의 묵직한 책을 내놓을 정도로 여전한 건필을 자랑한다.

비슷한 시기에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학문활동을 했고 일이년을 사이에 두고 정년을 한 동세대여서인지 오랜 동학으로서의 우애를 깊이 공감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서로의 일상을 나누며 간간히 만나는 모임을 만들자는 제안에 너나없이 찬성했다. 한영혜 교수가 발빠르게 ‘사회사 노친네’라는 이름으로 카톡방을 개설했는데, 정겨운 이름이지만 아직은 ‘ 나 젊어’를 외치고 싶은 마음을 반영하여 새 이름을 정하기로 했다. 황경숙 교수가 서로의 의견을 모으는 프로그램을 공람한 덕분에 ‘사사친’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사회사학회 친구들’의 줄임말이면서 편하고 사사로운 모임이란 의미도 담을 수 있는데다 부르기도 편해 참 좋다. 한국사회사학회가 내 학문여정에 큰 도움을 준 곳인데 이제는 이런 좋은 모임까지 선사하는 인연이 되니 너무 감사한 일이다. 사사친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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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평화연구원 창립 16주년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16주년 기념심포지엄이 5월 17일 시흥캠퍼스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오세정 총장께서 축사를 해 주셨고 2006년 당시 서울대 총장으로 연구원 설립을 주도했던 정운찬 전 총리께서 ‘동반성장과 남북관계’라는 기조발제를 해 주셨다. 뒤이어 내가 ‘통일평화의 16년 여정과 새로운 길찾기’라는 발표를 했다. 서울대학교에 통일관련 종합연구원 설립을 기획하고 전 과정을 주도할 수 있게 적극 후원해주셨던 정운찬 전 총장님과 함께 기조발제의 자리에 서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었다.

발제후 김병연 원장의 사회로 회고와 전망을 담은 대담을 했다. 정운찬 전 총장께서는 통일평화연구원 설립을 구상하게 된 배경, 총장으로서 당시 가졌던 꿈과 비전을 말씀하셨고 국정을 담당하셨던 분 답게 동반성장의 대의와 남북관계의 미래를 결합시킬 것을 주문하셨다. 나는 연구원을 설립하면서 지키려 했던 몇가지 원칙들과 어떤 정체성을 가져야 할 것인지 고민했던 경험들을 이야기했다. 특히 현실적인 쟁점을 다루면서도 정파적이지 않을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일, 진보보수 및 국내외를 막론하고 신뢰하고 공유할 데이터와 담론을 산출할 역량을 확보하려 했음을 말했다. 개인적인 회고이고 경험이지만 나름의 역사자료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메시지였다고 해도 좋을 듯 싶다.

돌이켜볼 때 이처럼 중요한 연구기관을 설립에서부터 10년간 책임질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과분한 축복이었다. 내 능력을 뛰어넘은 일이라는 생각이 강했던만큼 더 절실하게 애쓰고 선학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며 해외의 유명 연구소를 벤치마킹하려고 노력한 것은 사실이다. 내 50대 10년 동안을 줄곧 고민하게 만들었지만 이 기간을 통해 개인적으로 참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했다. 그 과정에서 좋은 분들을 만나 함께 큰 꿈을 나누고 지식의 지평을 넓혀가면서 사회적으로 유익한 영향력을 행사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 성과 뒤에 담긴 수고를 기억해주며 그 뜻을 이어가려는 동학, 후배 교수들이 계시니 그 감사함은 말로 하기 어렵다.

한 해 전 통일평화연구원이 시흥캠퍼스로 옮겨간 것을 기념해서 써준 액자를 김병연 원장께서 로비 입구에 잘 보이게 배치해 두어 빛이 났다. 반갑게 만난 여러 연구원들과 그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통일평화’라는 생소한 개념을 내걸고 두 과제를 새롭게 사고하려던 문제의식을 떠올리며 며칠 고심하던 끝에 생각해낸 글귀였다. “통일은 평화로 가는 길이고 평화는 통일이 피울 꽃이다”. 남북관계가 교착된 오늘 유난히 마음에 와 닿는다. 그런 길이 열리고 그런 꽃이 필 날을 고대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닐 터인데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큰 역할을 감당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life · 시공간 여행

지.덕.체와 친구들

지난 주 오랜 친구인 태영, 희용, 명곤과 귀한 모임을 가졌다. 중학교 시절 학교와 교회를 함께 다니면서 우정이 시작된 사이이니 무려 50년이 넘었다. 그동안 각기 목회, 군인, 학자의 길을 걷는라 잘 만나지 못했다. 더구나 남을 가르치는 역할을 해야 하고 일요일엔 교회 일에 바쁘다 보니 현직에 있을 때는 좀처럼 편한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 이제 대부분 퇴직을 해서 몸도 마음도 여유를 누릴 수 있게 되어 다시 만나니 반백년의 세월도 어제인 듯 반갑고 기쁘다. 잘 치지 못하는 골프를 핑게삼아 푸른 잔디를 밟으며 하루를 즐겁게 이야기하며 보냈다.

경남의 한 작은 마을에서 혼자 올라와 자취를 하며 학교를 다니던 내게 당시 수유리는 내 주말과 정서를 책임지던 곳이었다. 백운대와 4.19 탑은 답답할 때 가곤 했던 산책로였고 우이감리교회는 주말마다 들리던 집과 같았다. 하교길에 교회당을 들리면 반가운 친구를 만날 수도 있고 간간히 목사님이 나를 불러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해 주셨다. 태영, 명곤, 희용, 은영, 후용, 승기 등은 내 정서의 빈구석을 채워주던 고마운 동기들인데 특히 태영, 명곤은 학교도 같아서 등하교를 함께 하곤 했다. 언젠가 태영, 희용과 어느 자리에서 지, 덕, 체라는 가치를 한 사람이 모두 갖기는 어려우니 한가지씩 나눠 가지자고 했다. 당시는 재미삼아 했던 말이었을텐데 약속을 지켰다고 할까 아니면 말이 씨가 되었다고 할까 실제로 그 다짐은 실현되었다. ‘덕’을 맡기로 한 희용은 신학교를 거쳐 목회자가 되었고 ‘용’을 맡은 태영은 공군사관학교를 거쳐 유능한 조종사이자 비행 교관이 되었다. ‘지’를 맡기로 한 나는 학자의 길을 밟아 모교인 서울대 교수를 하고 다시 광주과학기술원 석좌교수가 되어 있으니 돌이켜보면 재미있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이제 정년 이후의 삶은 다시 지, 덕, 체의 통합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똑똑한 것도, 후덕한 것도, 건강한 것도 그 어느 하나만으로는 점점 노령화 시대를 헤쳐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오랜 생활에서 몸에 밴 생각과 행동 탓에 각자의 개성은 쉽게 변하지 않아 운동하는 과정에서도 각자의 기질이 드러나곤 한다. 육군의 장군으로 제대한 명곤과 공군의 고급장교였던 태영 덕에 간간히 함께 운동을 하게 된 것은 참으로 소중한데 옛날 수유리 학창 시절을 떠올릴 정도의 장난기와 농담이 스스럼없이 오가는 것을 보면 오랜 우정이 갖는 강한 힘이 놀랍다. 친구들의 만남에서는 운동을 잘 하거나 못하는 것이 자랑도 흠도 아니며 신앙의 깊이와 지식의 많고 적음도 큰 변수가 되지 않음을 실감한다. 지금은 연락이 없어 만지지 못하는 다른 친구들도 비슷할 것이다. 젊은 시절 각기 나누어 갖기로 했던 지, 덕, 체를 이제 다시 개성적인 삶 속에 녹아내야 하는 단계에 접어 들었음을 느끼면서 우정의 소중함에 감사하게 된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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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 대학원 열정이 남긴 것

서울대 대학원 50주년 기념책자가 간행되었다. 간행위원회로부터 글을 부탁받고 “주체적 학문을 향하여 – 7080 대학원 열정이 남긴 것”이란 글을 썼다. 내 대학원 시절을 되돌아보는 기회였고 그 시대의 긴장, 고민, 열정, 방황을 추체험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1978년 대학원 사회학과에 진학했다. 박사학위를 받은 해가 1991년이었으니 13년 가까운 시간을 대학원에 적을 두었던 셈이다. 서울대 대학원 시절이 내 개인적으로 성장의 시기였지만 특히 그 과정이 한국사회학의 주체화랄까 정체성 강화의 흐름과 결부되어 있었던 것은 참으로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역사적 흐름에 동참하면서 시야를 넓히고 문제의식을 심화시킬 수 있었다.

대학원에 진학하던 1978년은 유신체제 말기의 억압과 좌절감이 극에 달했던 해다. 캠퍼스 안에서는 몇 명만 모여도 감시의 눈초리가 번득이고 교수들이 학생지도의 명목으로 소위 문제학생의 가정을 방문하고 시위현장에 설득하러 나서던 시절이었다. 열정적인 선후배들이 시위로 구속되고 노학연대를 위해 노동현장으로 뛰어들던 상황에서 대학원으로의 진학은 현실에서 도피하는 것처럼 여겨져 심리적으로는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그래서 연구실에서 공부하는 것이 노동운동이나 시위참여에 맞먹을 정도의 가치가 있다는 명분을 애써 찾으려는 강박감 같은 것이 있었다. 밤 10시 이전에 연구실을 나서면 안된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대학원 시절 저녁시간은 거의 관악캠퍼스에서 지냈던 것 같다.

당시 사회학과 대학원은 학문의 주체성을 내건 학술운동의 진원지였다. 지식생산의 대외종속성을 벗어나야 한다는 움직임은 두 모임으로 시작되어 한국학계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하나는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주목하면서 비판적이고 실천적인 사회과학을 주장하는 그룹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적 특수성에 바탕을 둔 사회과학을 주장하는 역사지향의 그룹이었다. 나는 두 번째 그룹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람의 하나였다. 1980년 신용하 교수의 연구실에서 5-6 명의 대학원생들이 모여 유럽의 사회사 저작들을 독해하는 모임을 시작했고 참여자들의 공동작업으로 [사회학과 사회사]라는 책을 번역하는 것을 비롯하여 역사적 맥락을 강조하는 사회과학의 정립을 추구했다.

그런데 이 시기가 엄청난 세계사적 변혁기였다. 부시와 고르바쵸프의 탈냉전 선언이 있었고 그해 11월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었으며 마침내 1990년에는 독일이 통일되는 대변혁이 진행된 것이다. 비난 일색이었던 1988년 서울올림픽의 성공이 탈냉전과 세계화의 흐름과 맞물려 미친 전방위적 효과는 참으로 엄청났다. 한국으로 다시 돌아온 직후엔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이 해체되는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이런 변화들이 당시 대학원에 공부하던 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자 혼돈이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 세계사적 격변과 관악의 사회과학 사이의 간극이 주는 혼란을 극복하느라 이 시기 대학원생들은 적지 않은 어려움과 긴장을 겪어야 했다.

그런 시기를 거쳐 학자가 되고 모교의 교수로 부임하는 영광을 입었다. 특히 7080년대학문의 주체화를 내걸고 국내에서 씨름하던 연구자가 서울대 사회대의 교수가 되었다는 사실이 언론에 기사화될 정도로 주위의 관심을 받기도 한 탓에 부임 이후에도 부담과 긴장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런 자의식이 나로 하여금 나름의 이론적 지향과 개념적 작업을 수행하는 독립적인 학자가 되는데 큰 밑거름이 된 것은 분명하다. 그 과정에서 나를 성장케 해 주었던 한국사회학회와 한국사회사학회의 회장을 역임하고 지금은 이사장으로 미력이나마 뒷받침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정년을 하고 돌이켜보니 서울대학교 대학원의 시기가 그런 자산을 배양한 비옥한 토양이었다. 비록 거친 땅에서 마구 자란 야생화처럼 다듬어지지 않고 열정만 넘쳐났던 시기였지만 그 힘이 오늘까지 나를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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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혜 교수의 춤꿈

한영혜 교수의 공연 ‘춤꿈’을 관람했다. 춤을 취미로 해온지 안 것은 꽤 오래되었지만 정작 본격적인 무대공연을 지켜본 것은 처음이었다. 작년에 재일한국인들의 문화 속에 춤이 어떻게 전승되고 그것이 그들의 정체성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다룬 두툼한 연구서를 받았을 때 그 열정의 깊이를 새삼 느꼈던 적이 있었는데 공연에서 받은 울림은 또다른 것이었다. 한교수와 함께 출현한 사람들이 대부분 취미로 춤을 익혀온 분들이라 하니 놀라왔다.

춤의 기본도 알지 못하는 나로서 어떤 평가를 할 처지가 못되지만, 강한 움직임과 고요한 정지동작이 이어지는 춤사위가 글씨의 붓놀림과 매우 유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부드럽게 이어지는가 하면 강하게 꺾이기도 하고 큰 동작과 섬세한 움직임이 어울려 한 매듭을 짓는다. 빠른 속도감에 이어 미세한 움직임이 뒤따르는 것도 글씨의 운필과 상통하는 느낌이었다. 나이 지긋한 남성출연자의 다소 어색한 몸놀림을 보면서 마음처럼 써지지 않는 글씨가 떠올라 혼자 웃기도 했다. 사실 약함 속에 강함이 있고 가득한 듯하면서 여백이 있는 것이 좋은 글씨인데 아마 춤꾼도 웬만한 훈련 없이는 섬세한 몸동작을 강한 춤사위와 접맥시키기가 쉽지 않을 터이다.

정년을 하고, 심지어 정년에 앞서 퇴직을 하고 열정을 쏟을 대상을 갖고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늙는다는 것은 그런 열정이 사그라드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고령화가 진행되는 요즈음 소란한 만남과 허세가 아닌, 내부의 기쁨과 행복을 길어올릴 역량을 키우는 것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절실한 과제가 된 듯 싶다. ‘춤꿈’이라는 표제가 남을 위한 공연이기 이전에 스스로의 꿈을 꾸는 자리를 만든다는 뜻을 담은 것일텐데 일생 힘을 쏟았던 영역에서 벗어나 제2의 꿈들을 찾고 키워가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한교수의 건강한 열정이 지속되기를 성원하며 돌아온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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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과 나눔 심포지엄 발제

재단법인 통일과 나눔이 주최한 학술행사가 많은 청중의 참여로 성황리에 끝났다. 통일을 준비하는 민간재단으로 출범한 이후 다양한 연구지원과 차세대 육성에 애써오다가 이번에 큰 학술회의를 연 것이다. 인사말을 한 이영선 이사장은 한반도 안팎의 어려움이 커질수록 장기적 전망으로 통일을 향한 준비와 노력이 절실함을 강조했다. ‘통합으로 통일을 연다’라는 대 주제가 그런 문제의식을 반영한 것이라 하겠는데 윤영관 전장관이 국제정치적 시각에서, 김병연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장이 경제통합의 관점에서 그리고 내가 사회문화교류의 측면에서 각기 발제를 했다. 세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줄곧 자리를 지킨 청중들의 표정에서 진지함이 강하게 느껴졌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있지만 코로나 상황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고 남북관계는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어서 이런 행사가 다소 위축될지 모르겠다는 염려도 있었는데 대한상공회의소 대강당 200여명 자리가 꽉 찼고 유투브 실황중계에 접속한 사람들 숫자만 7천명 가까이 되었다고 한다. 심포지엄을 준비한 주최측의 노력이 컸을 것은 물론이고 남북관계의 개선을 바라고 통일의 꿈을 지닌 사람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적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리라.

구성 상 나는 사회문화통합을 위주로 발표했지만 남북관계는 언제나 정치와 경제가 주를 이루어왔다. 지속가능한 평화를 위해서 민간교류, 사회문화적 신뢰구축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정치군사적인 쟁점과 국제적 이해득실을 따지는 냉정한 계산이 늘 우선되는 것이 현실이다. 핵무력과 정치주의를 앞세운 북한은 더더욱 민간교류에 소극적이고 사회문화 접촉이 북한 체제의 이완을 가져올 가능성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당위적 균형감각과 현실적 우선순위가 어긋나는 경우는 남남갈등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며 최근 세대간, 젠더간 그 편차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지름길을 찾으려는 조급함이 드센 시기에 지속가능한 신뢰와 장기적 통합역량을 키워나갈 큰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다시금 확인하는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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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국가연합’ 구상

새 책을 출간했다. 포스텍 평화연구소의 후원을 받아 내가 책임연구자로 주관을 했고 박영호 박사, 김상준 교수, 전재성 교수가 함께 참여한 공동연구의 결과물이다. 오랫동안 생각해오던 남북관계의 새로운 틀을 모색하려 한 작업인데 ‘평화공존의 중간단계 구상’을 부제로 [한반도평화 신로드맵]이란 제목을 달게 되었다.

2018년 판문점과 평양에서 보였던 남북정상간 합의와 신뢰는 불과 한두해를 지속하지 못하고 예전의 단절상태로 되돌아갔다. 단순히 되돌아간 것에 그치지 않고 낙담과 좌절, 비방과 신뢰상실의 후유증이 매우 큰 전환이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국제적 공조가 뚜렷했던 이전에 비해 미중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이제 유엔 차원에서의 효율적인 대응이 가능할지조차 의심스러워졌다. 국내에서도 이번 대선에서 경험한 바와 같이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관심은 크게 줄어들었다.

이 연구에 참여한 사람들의 견해는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애매한 남북한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생각에 공감한다. ‘국가간 관계가 아닌 잠정적 특수관계’라는 규정과 민족내부관계라는 틀이 활용되어 왔고 지금도 그 논리가 남북관계의 근간을 이루고 있지만 이것은 21세기 남북관계를 총체적으로 규율하는 틀이 되기 어렵다. 그렇다고 손쉽게 한반도 두 국가론을 받아들이면서 두 개의 주권국가임을 공언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다.

필자들은 표현은 다르지만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두 국가성을 전제한 위에 책무성과 협약존중의 틀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공감한다. 이와 관련하여 남북관계 진전의 중간단계로 설정되어 있는 남북연합 구상이 그런 국제법적 원칙과 상호존중의 정신을 반영하기 어려움을 지적한다. 나는 분단에서 통일로 가는 과정으로 미래를 보는 관점에 근거한 이 모델이 70년의 역사를 거치면서 형성되어 온 두 주권체 사이의 모순적인 관계를 조율하기 어렵다고 보아 분단국가로서의 정체성과 서로 다른 분단국가간 관계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좀더 생각을 다듬어야 할 부분이 적지 않지만 새로운 사고와 혁신적인 대응이 불가피한 시대에 들어선 것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