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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틀랜드 미술관

한겨울의 포틀랜드는 다소 을씨년스러웠다. 날씨가 흐렸던 탓도 있지만 여행객도 드물고 가게들도 대부분 문을 닫은 거리풍경 탓이 더 컸다. 해안을 따라 여러 등대들이 있는 곳을 찾았는데 사람은 없고 비는 내렸지만 경치는 아름다왔다. 곳곳에 과거 전투의 기억, 요새로서의 흔적들이 남겨져 있어서 이곳이 독립전쟁 당시의 격전지였음을 말해주지만 대부분 희미하게 퇴색되고 눈에 띄지도 않는다. 평화상태가 오래 지속된 미국의 풍요가 낳은 결과일터이다. 전쟁터가 관광지가 되는 것 – 좋은 것이다.

랍스터를 먹는 아름다운 레스토랑을 찾아 빗길을 무릅쓰고 찾아간 ‘두 등대’ 지역도 문을 닫아 발길을 돌려야 했다. 대안으로 태국 음식점을 찾아 한 시간을 달려간 곳도 역시 closed!. 결국 five guys 에서 햄버거로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그런데 저녁에 들렀던 레스토랑은 예상밖으로 멋지고 인상적이었다. 넓은 홀, 개방된 주방, 각종 해산물과 와인 바, 관광객이라기보다 지역주민들인 듯 싶은 많은 손님들이 제각기 즐겁게 담소하는 모습이 정말 정겹고 아름다왔다. 자연풍광이 주는 아름다움과 각양 인간들의 역동적인 활동이 주는 멋스러움은 그 결이 다른 듯 싶다.

이튿날 아침 포틀랜드 아트 미술관을 종인이와 함께 관람했다. 계획했던 곳이 아니었기에 큰 기대를 가졌던 것은 아닌데 의외로 전시내용이 훌륭했다. 고풍스러운 건물 외부에는 ‘인간’을 주제로 한 조각품이 설치되어 있었고 1층에는 다양한 인간들을 카메라에 담았던 사진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특히 Richard Avedon 의 마릴란 먼로, 에즈라 파운드, 마틴 루터 킹 등 유명인의 표정사진이 인상적이었다. 이름없는 평범한 시민의 일상을 담은 사진들의 무게감도 삶의 진정성이란 점에서는 다를 바 없었다. 우리 모두도 저런 한 장의 사진으로 남게 되는 것이 아닐까.

Picasso, Renoir, Degas, Mattise, Sisley, Sargent 등 낯익은 화가의 작품들도 있어 친숙한 느낌이었다. 현대화가들의 강렬하고 추상적인 이미지 가운데서도 간간히 눈길이 가는 작품이 없지 않지만, 역시 나같이 평범한 관람객의 입장에서 인상파, 낭만파의 그림만큼 한결같은 아름다움을 느끼는 장르는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작가의 작품 앞에서 한참을 서 있는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런 느낌과 감동은 역시 주관적일 수밖에 없겠구나 생각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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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e Mountain과 IMF

3년전 하바드엔칭 연구소 학자들의 연례모임이 있었던 화이트마운틴 옴미마운트 워싱턴 리조트를 다시 찾았다. 아름다운 이곳을 방문했던 2020년 1월, 자고 일어나니 폭설로 온 천지가 하얗게 덮였다. 호텔 주변으로 아무도 걸어가지 않은 눈덮인 숲길을 걸으면서 넓은 평원, 하얗게 변한 침엽수들의 사이를 한참 걸었던 기억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1944년 7월 1일 2차대전 이후의 국제질서를 재편하기 위한 연합국통화금융회의가 이곳에서 개최되어 브레턴우즈협정이라 통칭되는 국제통화기금협정(Agreement of the International Monetary Fund)이 조인되었다. 44개국이 조인한 브레턴우즈협정의 핵심은 국제적인 자유무역의 활성화와 그에 기초한 외환시장의 안정이었다. 이를 위해 미국 달러의 금환본위제(금·달러본위제)와 조정 가능한 고정환율제를 채택했다. 미국의 달러화를 IMF 가맹국들이 일정한 환율로 매매함으로써 자국통화와 달러, 그리고 금이 간접적으로 연결되게 한 것이다. 기축통화의 지위를 확보한 미국은 막대한 양의 금을 보유하는 것과 함께 자국 경제를 인플레이션 없이 안정적으로 관리할 책임을 맡았다.

1층 한 구석에 IMF 협정이 체결된 방이 기념공간으로 보존되어 있다. 당시 연합국 대표들의 사진과 테이블이 남겨져 있다. 하지만 이 장소성을 홍보하려는 의지가 별로 없는 듯 눈여겨보지 않으면 스쳐 지나가기 십상이다. 오히려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는 넓은 홀의 소파와 아름다운 주변 풍경에 더 눈이 간다. 전후질서구축이란 세계사적 결정이 내려진 곳이지만 2023년 이곳의 모습은 그냥 호젓하고 아름다운 한 리조트에 불과하다. 찾아오는 사람들 역시 그 누구도 이곳에서 브레튼우즈 체제나 IMF 를 떠올리지 않는다. 흰 눈과 빨간 지붕, 고풍스런 건물의 위용 속에서 사람들은 제각기 휴식과 평안을 찾기 바쁘다.

미국이 금본위제를 폐지하면서 브레튼우즈 협정의 축은 크게 흔들렸고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패권적 지위도 이전만 못하다. 하지만 대안이 없는 현실에서 달러가 지니는 힘은 여전하다. 세계 각국은 달러보유고를 신경써야 하고 유동성 위기를 겪는 국가들은 IMF라는 구원투수에 의해 강제적인 구조조정을 당하기도 한다. 중국의 부상, 미국의 방대한 재정적자, 양적 완화에 의한 달러인플레 등이 앞으로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전후질서의 구축이란 역사적 결정이 내려진 장소가 휴가와 여행을 즐기는 일상인의 리조트가 되어 있는 모습을 보면서 세계의 흐름과 개개인의 삶의 관계를 생각해본다.

life · 시공간 여행

The Life 와 real life

보스턴 아트 뮤지엄의 특별전시를 관람했다. The Power of Photography 라는 부제를 달고 잡지 The Life 의 역사를 보여주는 자리였다. 전쟁, 폭동, 축제, 슬픔, 기술 등 삶의 현장 곳곳을 카메라에 담으려 애쓴 작가들, 그 순간의 진실을 보도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았던 기자와 편집인들의 수고와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세계대전, 한국전쟁, 아폴로 달착륙, 르완다 내전 등 현대사의 장면들이 여러 사진 속에 담겨있었다.

아마도 사진의 힘은 현실의 정확한 재현능력에 있을 것이다. 부인할 수 없는 현장성, 살아있고 움직이는 모습을 포착한 사진의 사실성을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호소력과 증언력을 지닌다. 죽음이 널려있던 전장에서 망연해하는 병사의 모습이나 1945년 8월 17일 종전 소식을 듣고 길거리에서 환호하는 시민의 모습은 평화에의 갈망을 그 어떤 매체보다 더 리얼하게 보여주는 힘을 지녔다.

하지만 사진의 힘을 대체하는 매체환경의 변화로 인해 The Life 지는 더 이상 존속할 수 없게 되었다. 그 퇴장을 안타까와하는 여러 움직임과 목소리가 있지만 텔레비젼을 필두로 하는 전자영상 기술의 확대는 사진의 힘을 현저히 약화시켰다. 아폴로 우주선의 달착륙 소식을 전하는 순간, The Life 지의 독점적 영향력을 텔레비젼 중계가 대체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전시공간에는 웬지 쓸쓸함이 자리한 듯 했다.

온갖 영상물이 범람하고 사진이 일상의 취미가 되어버린 요즈음 ‘사진의 힘’은 더 이상 사실성과 재현성에 있지 않다. 사진은 과시와 자랑과 취향의 도구가 되거나 상상의 이미지로 변형되기 일쑤여서 이제 사진 그 자체의 사실성에 감동하는 경우는 현저히 사라졌다. 팩트와 허구가 결합된 팩션 (faction)이 강조되는 것도 이런 영상 기술의 발전과 깊이 결부된 현상이다. 이미지의 시대, 상상력의 시대라고 불리는 21세기에 사진의 힘은 어떻게 변형되고 존속할 것인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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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ndall Square 의 Technology Park

다시 찾은 켄달 스퀘어는 깔끔한 첨단지구로 거의 탈바꿈해 있었다. 3년전 이곳에 와 살펴볼 때도 이미 상당한 변화가 진행 중이었지만 곳곳에 채 마무리되지 못한 공사들이 널려있었다. 이제 대부분 완료가 된 듯 주요 기업들이 입주하거나 들어올 예정이라 한다. MIT 가 이 지역의 첨단 기술생태계의 거점으로 홍보하던 건물도 완공이 되었고 지하철역과 연결된 고층건물에는 구글 로고가 뚜렷하게 빛나고 있다.

30여년전 처음 이곳 캠브리지에 와서 1년 반을 생활했을 때 이곳은 별로 오고싶지 않은 곳이었다. 하바드 스퀘어가 각종 문화적 활동과 방문객으로 북적일때도 이곳은 MIT의 한두 건물을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오래되고 낡은 벽돌 건물들로 낙후한 지역의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그것이 역설적으로 대변신의 조건이 되었다고 할까. 켄달스퀘어의 도심재개발이 추진되면서 MIT 대학과 첨단과학기술에 기반한 벤쳐기업을 연계하는 대학-도시-기업 복합공간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하바드 스퀘어와 켄달스퀘어의 지난 30년을 비교해 보면 전통의 무게감과 혁신의 대전환이 뚜렷하게 대비된다.

기술이 주도하는 21세기인만큼 캐임브리지의 공간동학도 하바드 스퀘어에서 켄달 스퀘어로 옮겨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돈과 기술과 창업과 역동성의 측면에서 이미 두 지역의 차이는 분명하다. 최근에는 뉴스를 주도하는 것도 MIT 라는 말도 들린다. 물론 하바드의 인문사회적 역량과 전통의 힘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첨단의 고층빌딩이 주는 현대적 감각보다 고색창연한 하바드 대학의 오래된 무게감이 더 멋스럽고 중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MIT 가 주도하는 과학기술문명의 충격이 전례없는 힘으로 다가올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켄달 스퀘어의 곳곳에 멋지게 세워진 건물의 다수가 고가의 아파트라고 한다. 첨단의 생태계가 지속가능하기 위해 일정한 주거공간이 필요한 것은 당연할 터이지만, 웬지 또하나의 현상을 보는 듯한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도심개발이 땅값의 상승으로 이어지고 결국은 자본력이 있는 대형 빅테크의 거점이 되고 값비싼 아파트 지구로 바뀌면서 대학 주변에서 지식과 창의성으로 무장한 신생 벤쳐들의 활력을 뒷받침한다는 애초의 명분과 목표가 흐릿해질 가능성이 커 보였다. 커먼즈를 확보하려는 노력인지 구글 건물의 외부에 오픈 가든이 조성 중이었는데, 그 규모로보아 얼마나 실질적인 커먼즈가 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해 보인다. 자본과 기술, 지식과 창의가 연결되는 방식 그 자체는 완전히 혁신적이기 어려운 것일까.

life · 시공간 여행

보스턴 도원기

날씨는 차가왔지만 꿈같은 기간이었다. 보스턴에서의 가족여행은 기대 이상의 만족감으로 마치 ‘도원’에 와 있는 듯 했다. 새롭고 멋진 장소나 유적을 여행해서가 아니라 가족과의 대화와 여유로운 휴식, 그 가운데서 잔잔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여건에서 얻어진 것이었다. 나는 안견의 ‘몽유도원기’를 떠올리면서 이번 여정에 ‘보스턴 도원기’라는 이름을 붙여본다.

늘 바빴고 일에 부대꼈던 지난 시기, 부담없이 평안하게 가족들과 감정과 시간을 공유한 기회가 너무 적었다. 사랑을 표하는데도 인색했고 아이들과 대화하는 역량도 부족했다. 잘 자라준 아이들이 고마우면서 마음 속 깊이 미안한 감정이 적지 않다. 그래서인가 더욱 이번의 시간이 너무 뜻깊고 소중했다. 그냥 같이 있는 것, 함께 먹고 마시며 쉬는 것, 그러면서 잔잔한 사랑을 확인하는 것 – 최고의 여행이라 할 만 했다.

손녀 이든과 올리브의 재롱과 웃음은, 그것만으로 하루 종일을 보내도 모자랄 신비로운 모습이었다. 영롱한 눈망울을 반짝이면서 ‘이게 뭐에요?’ 라고 묻다가 맘에 들지 않으면 토라지고 또 금방 기쁘게 안겨오는 아이는 소중하고 역동적인 생명 그 자체다. 이런 아이로부터 할아버지라고 불릴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인생의 축복이다.

특히 장성한 아들 종인이와 오랜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 아들이 운전하는 차에 앉아 이곳 저곳을 다니며 식사를 함께 하고, 저녁엔 술 한잔을 나누며 시간을 공유한 기억은 오랫동안 남을 것 같다. 내가 대학을 입학했을 때 아버지가 다방에서 아들과 커피를 마시는 순간을 무척 기뻐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 때 그 분도 지금 나와 같은 심정이셨으리라. 여행 내내 아들이 살아갈 미래에 건강과 행복, 자신감과 활력이 늘 함께 하기를 마음으로 기도했다.

귀한 휴가시간을 모두 내어 화이트마운틴 좋은 곳에 집을 얻고 긴 시간 가족과 함께 할 여건을 만든 딸과 사위가 고마왔다. 어린 어이들을 키우면서 하루도 단잠을 자기가 어려운 형편인데도 기쁘게 그 모든 것을 감당하고 직장에서도 능력을 발휘해가는 것이 대견하고 든든했다. 이렇게 있다가 떠나면 당분간 허전함이 있을텐데 몸과 마음이 늘 건강하고 삶의 보람이 계속되기를 내내 기도했다. ‘도원’이라고 이름할 정도로 좋았던 시간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 마음 깊은 곳에서 아이들을 위해 기도한 시간이기도 했다.

life · 오늘의 화두

감동 감사 감내

2022년이 가고 있다. 변화가 컸던 한 해다. 코로나의 여진 속에서 일상은 그런대로 회복 중이지만 환경도 관계도 마음도 적지 않게 변했다. 정권의 교체와 이념갈등, 집값 폭등과 폭락, 청년층의 좌절과 세대격차, 디지털 기술의 명암, 재난을 내장한 역동성 등 전례없이 많은 문제들이 터져나온 한 해다. 2023년에도 역대급 경제불황이 닥칠 것이고 한반도 긴장도 심해질 것이란 암울한 전망이 뒤를 잇는다. 탈냉전 평화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우크라이나 전쟁도 해를 넘길 것이 분명하다.

박노해의 “여명에 물을 긷다”란 시를 떠올린다. 해뜨는 순간, 여명의 시간이 ‘생의 신비’라고 노래하는 시인은 에티오피아의 척박한 땅에서 먼 길을 걸어 물을 길어오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을 상상한다. 그 무의미해 보이는 일상의 반복 속에 놀랍게도 사랑과 희망이 자라고 그 힘이 삶의 무게를 감당케 한다는 것이다. ‘감동하고 감사하고 감내하며’ 라는 마지막 연은 이런 생의 역동성, 신비로운 힘을 확인하는 사람들에게서 찾아지는 독특한 품성이다.

감동의 정서가 점점 사라지는 것 – 현대인의 병폐이자 늙어가는 징조다. 감사하는 마음이 줄어드는 것 – 인간성의 고갈과 자기중심성의 표지다. 감내할 여력이 없어지는 것 – 믿음과 희망이 사라지는 시대의 징표다. 역설적으로 감동, 감사, 감내는 이런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낼 핵심적인 자산이 된다. 얻기 여려운 것 같지만 누구든 마음공부로 얻을 수 있는 자산이기도 하다. 이 자세로 2022년을 마무리하고 2023년을 맞이할 것을 다짐해 본다.

life · 오늘의 화두

양림동 근대문화유적

12월 6일 광주시 양림문화마을을 탐방했다. 호남지방의 근대화 과정, 특히 기독교를 중심으로 진행된 초기의 다양한 변화가 역사적인 건물과 함께 농축되어 있는 곳이다. 이전부터 남도답사 대상 리스트에 올려 놓았었는데 이제야 현장을 오게 되었다. 오웬, 유진벨 등 이름이 익숙한 초기 선교사들의 삶이 배어있는 공간과 기념물을 둘러보았고 최흥종, 조아라, 김필례, 김현승 등 이곳에서 배출된 초기 한국 지도자들의 행적도 그들이 활동했던 병원,교회, 학교, 기념관 속에서 만날 수 있었다.

도로변의 한 건물이 눈에 띠었다. 붉은 3층 건물의 외벽에 이국적인 선교사 얼굴이 장식처럼 붙어있고 흰색의 부조로 제작된 ‘최후의 만찬’ 작품이 걸려있다. 가만히 보니 예수를 한 가운데 두고 좌우로 이 지역에서 헌신했던 선교사와 초기 기독교 리더들 11명을 배치한 것이다. 베드로, 요한 등을 대신하여 오웬, 유진벨, 쉐핑, 정율성, 최흥봉, 조아라 등을 식탁 주위에 배치한 창조적 구성이 놀랍다. 저런 작품을 상상하고 저런 컨텐츠를 거리에 조성할 수 있는 이 지역의 문화적 안목이 대단하다.

호남신학교에 연한 작은 동산에는 이곳에서 활동하고 생을 마친 벽안의 선교사들이 잠들어 있는 묘역이 있다. 그 뒤에는 일제시대와 6.25를 거치면서 순교한 호남지방의 850여 순교자들을 기리는 돌비가 세워져 있다. 동산을 돌아나가는 곳에 이들 순교자들의 이름을 새긴 돌계단이 있는데 ‘고난의 길’이란 이름처럼 한발 한발 걸으며 인생을 생각하게 한다. 종교사회학자로 대학에서 가르치다가 양림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셨던 노치준 목사께서 이곳저곳을 설명해 주어 더욱 깊은 이해를 할 수 있었다.

묘역에서 내려오면서 유진밸 기념관을 들러 4대에 걸친 이 가문의 헌신적 활동을 살펴보았다. 100년 이전 가난하고 낙후한 한국, 식민지로 전락한 조선인들과 살기로 작정한 저들의 헌신과 수고는 참으로 고귀한 것인데 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생각만큼 살갑지 않다. 한 때 북한돕기활동으로 만나곤 했던 인세반, 인요한 형제의 사진도 반갑게 확인했다.

이 지역에 큰 발자취를 남긴 오방 최흥종 목사의 일생을 자세히 알게 된 것도 큰 보람이었다. 3년전 완공되었다는 오방기념관에서 손자인 최협 교수를 반갑게 만났고 그로부터 직접 여러 설명을 들었다. 낯선 선교사와의 만남이 계기가 되어 회심한 이후 평생 한센인을 위한 헌신자로 생활했고 평양신학교를 거쳐 시베리아 선교사로 활동한 신앙인이었으면서 3.1운동, 신간회, YMCA, 노동공제회 등 한국의 근현대사 곳곳에 깊은 족적을 남긴 최 목사의 활동 폭은 참으로 놀랍다.

기념관의 전시 내용을 통해 초기 한국기독교에는 참으로 폭이 넓고 뜻이 깊은 어른들이 계셨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옥고도 치루었고 해방 직후 사회정치적 영향력이 컸을 법한데 스스로 권력과 명성을 멀리했다 하니 왜 백범 김구가 그에게 ‘和光同塵’이란 휘호를 남겼는지 이해될 듯 했다. 공식역사에서조차 힘있는 유명인들만 기억되는 오늘날 뒤늦게라도 이런 기념관이 세워진 것이 얼마나 다행한가.

최근 젊은 여행객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는 펭귄마을도 양림동의 중요한 한 모습이다. 정겨운 골목길, 오랜 담장들 곳곳에 재미있는 사진과 글귀를 붙이고 옛날 형식의 사진관과 점방 등을 만든 도시재생의 한 사례다. 선교와 교육과 계몽과 의료라는 중요하면서도 다소 무거운 분위기가 깉은 공간과 달리 이곳은 일반인들의 일상적 삶에 기반한 만큼 유쾌하고 소박한 느낌이 강했다.

골목길에 선교사와 기독교 지도자들의 이름이 붙여져 있고 담장에 이들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걸로 미루어 당시의 근대문물이 주민들에게 이질적이거나 거부감을 주진 않았음이 분명하다. 종교적 가치와 계몽적 과학이 잘 어우러진 현장이었다 하겠다. 선교사들의 집과 기념관은 대체로 우아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지니고 있다. 영화를 찍을 때 배경으로 선호되기도 하고 문화공원으로 조성되어 시민교육의 현장이 되고 있는 것도 좋아보인다.

다만 유산으로 남는 것과 현실의 영향력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닐 터이다. 종교와 역사가 지닌 무게감과 여행과 소비의 즐거움 사이의 차이도 점점 커진다. 한국의 기독교가 세계적 규모를 자랑하며 성장해오는 동안 가난하고 병든 민중과 함께 했던 모습은 점점 기념관 속으로 박제화되고 있는게 안타까운 현실이다. 저 유서깊은 공간과 건물에 담겨있는 숭고한 헌신과 교훈이 과거의 유적이나 기념물로만 남지 않으려면 어떤 노력이 더해져야 할까 내내 머리에 맴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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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위한 대화

11월 30일 현 한반도 위기상황에서 평화를 모색하는 모임이 평창동 대화문화아카데미에서 개최되었다. 나는 이 좌담의 사회자로 초청을 받아 세 시간을 넘기는 대화시간을 주재했다. 평창동 높은 곳에 호젓하게 위치한 이 아담한 4층 공간은 경동교회 목사로 한국의 기독교와 사회운동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던 여해 강원룡의 정신을 기려 如海軒이라 이름붙인 곳이다. 이홍구 전 총리, 하태경 국민의 힘 의원, 이재정 민주당 의원, 이삼열 대화아카데미 이사장, 최상룡 전 주일대사, 이부영 전 의원, 이현숙 WPS 아카데미 이사장 등 다수의 원로와 전문가들이 자리를 같이 했고 줌으로 참여한 분도 여럿 되었다.

기조발제를 맡은 박명림 교수는 중요한 쟁점들과 제안들을 포괄적으로 제시했다. 미중대립은 신냉전이라기보다 과학기술과 문명의 표준을 둘러싸고 복합적으로 진행되는 다층적 경쟁임을 강조하고 구별된 대응을 통해 패권경쟁에 한국이 휩쓸리지 않아야 할 것을 주장했다. 북한의 국가성을 인정하는 위에 통일보다 평화에 주목하는 남북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것, 비핵화 원칙을 견지하면서 안보와 대화의 병행전략을 추구해야 할 것도 강조했다. 무엇보다도 선진국으로 부상하여 제국적 속성까지 지니게 된 한국이 민족주의적 특수주의를 벗어나 보편적이고 문명사적인 시야를 확보해야 할 것을 제안했다. 역사적 경험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미래지향적인 발상을 강조한 박교수의 진지한 발제 내용에 대체로 공감하면서 참석자들은 그 실행방안, 구체적 실마리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를 두고 여려 견해들을 주고 받았다.

잔잔하지만 경륜이 담긴 이홍구 전 총리의 언급도 나로선 인상적이었다. 몇년전 같은 모임에서 나는 신냉전이 오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섞인 발언을 그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YS,DJ,JP,노태우 같은 큰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 안타까움과 함께 북한변수 특히 김정은 위원장의 판단과 행동이 상황을 어렵게 만드는 주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 그래서 한반도 미래를 생각할 때 비관적인 느낌이 강해진다는 발언을 들으면서 마음이 무거워짐을 느꼈다. 사회자로서 다른 분들께는 좀더 긍정적 미래전망을 말해달라고 주문하기는 했지만 문명사의 흐름은 반드시 진보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바우만이 말한 레트로토피아적 경로가 한반도에서 나타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을 쉽게 떨쳐버리기 어려웠다.

70년대 아카데미의 대화 모임은 사회적 소통을 증진시키고 민주주의 정신을 확산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민주화가 실현되고 다양한 목소리들이 혼재하는 시대에 접어들면서 그 존재감이 크게 약화되었다. 언론과 국회가 사회적 소통의 기제로서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한다면 시민들의 일상적 대화는 굳이 무거운 쟁점들에 주목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숱한 미디어와 말들의 잔치 속에서 오히려 신뢰도 화해도 힘들어진 상황을 목도하고 있다. 거대양당의 정략적 판단이 일사분란하게 작동하는 국회는 고급한 대화의 장이라기보다 말의 오남용과 논리싸움의 현장이 되고 있다. 유투버, 1인 미디어, 인플루언서, 소문과 팬덤이 혼합된 디지털 시대에 대화의 존재양식도 크게 달라졌다. 신뢰와 합의를 위한 의사소통 방식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가 새로운 과제로 대두되는 상황인 것이다.

2022년 말, 유럽은 전쟁과 에너지난으로 뒤숭숭하고 미중의 대립은 전방위적으로 진행되는데 남북관계도 최악의 국면을 맞고 있다. 믿을 것은 무력 뿐이라는 신념으로 핵위협을 고도화하는 북한과 그에 따른 불안감을 호소하는 우리 내부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남남갈등은 다시 고개를 들고 정치권은 해묵은 보수 진보의 대립를 반복한다. 말이 정치가 되고 논리가 승패의 무기로 간주되는 시대에 위기해소의 지혜를 제공하는 대화란 어떤 것일까? 날선 편가름과 원초적 무력 숭배가 상황을 좌우할 때 대화가 제공하는 솔루션의 효용성은 어디까지일까? 일방적인 자기 주장, 타자와의 차별화를 목표로 한 진열장식 대화가 빈발하는 오늘, 대화가 진정 문제해결의 기반이 될 수 있는 근거와 조건은 무엇일까? 남북간에, 미중간에, 여야간의 갈등이 대화로 해소될 수 있으리란 믿음을 정말 우리는 공유하는가? 이런 근본적 질문들에 대한 겸허한 성찰과 새로운 소통양식을 탐구해야 할 문명적 전환기에 있다는 생각을 더욱 절감하게 된 자리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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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藝無疆

서울대 문화관에서 10월 24일부터 28일까지 열린 한중합동의 [가없는 서예술: 書藝無疆] 서예전에 참가했다. 한국측은 소동파를 비롯한 중국의 시문을, 중국측은 이규보와 퇴계 등 한국의 문장을 쓰는 방식으로 기획된 일종의 문화교류 행사다. 서울대 교직원 서예모임인 화묵회가 홍콩 학자들의 서예단체 集古學社와 함께 개최한 이 전시에 나는 전적벽부 전문을 쓴 작품을 출품했다.

적벽부는 첫 문장을 비롯해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구절이 더러 있다. 하지만 올 여름 文徵明 서첩을 구해 그의 행서를 임서해보면서 비로소 내용 전체를 제대로 음미할 수 있었다. 배 위에서 동파와 객이 주고받는 대화는 지금 읽어도 우아한 품격이 느껴지는 고품질의 토크다. 한 때 일세영웅이었던 조조를 생각하다가 그도 세월이 흐르니 흔적조차 없어졌음을 깨달은 객은 “장강의 끝없음을 부러워하고 인생의 유한함을 슬퍼” 하는 마음을 담아 애절한 통소를 불었다.

그 소리에 화답하여 소동파는 “만물을 그 변하는 것에서 보면 어느 것 하나 순간이 아닌 것 없지만, 변하지 않는 면에서 보면 모든 것이 끝없이 존속하는 것” 임을 강조한다. 인생도 산하도 변화하는 것과 지속되는 것이 동전의 양면이니 어느 한 면에 매달려 자만하거나 애석해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럴 때에야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이 ‘조물자’가 우리에게 준 무진장의 선물임을 깨닫게 된다는 말도 덧붙인다. 造物者라는 표현에서 느껴지는 종교적 깨달음이라 할까, 인간과 자연을 함께 생각하는 달관이라 할까 독특한 여유와 정조가 마음에 와 닿는다.

중국측 출품작 가운데서는 홍콩 중문대학 심천학장 徐揚生이 퇴계 이황이 기대승에게 보낸 글을 쓴 작품이 글씨도 멋스럽고 내용과 구도도 마음에 들었다. “선비가 태어나 혹 출세하기도 하고 혹 은거하기도 하며 혹 뜻을 이루기도 하고 혹 불우하기도 하지만 오로지 자기 몸을 정결하게 하고 옳음을 행할 뿐 禍福을 논할 것은 아니다.” 조선 유자의 반듯함이 드러나는 글인데 소동파의 도학적인 분위기와 이퇴계의 유학적인 정신이 같은 듯 다른 듯, 화이부동의 싫지않은 긴장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 현실을 돌아보면 삽시간에 저련 정신의 여유가 사라지고 만다. 도무지 품격이란 찾아볼 수 없고 개인과 자파의 ‘화복’만 따지는 국내의 정치현실, 자국의 이익 앞에 인류의 공존이 위협받는 국제정세, 핵무장론이 등장할만큼 어려워진 남북관계 등 답답한 상황을 앞에 두고 소동파와 이퇴계는 무어라 조언할까? 또 통소를 불던 저 객은 어떤 노래를 부를까? 한중 민간의 문화교류가 정치갈등의 파고를 넘어 서로를 존중하며 순항할 것인가? 전시회를 지키면서 자문해본 물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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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공동체 통일방안 평가

10월 21일 통일부와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함께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수정 보완 필요성에 대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박영호, 전재성, 김병연 등 세 분의 발제와 8명의 패널 토론이 다양한 쟁점들을 심도있게 부각시킨 자리였다. 전체 발표와 토론을 이끄는 좌장역할을 부탁받았을 때 선약을 취소하면서까지 그 제안을 수락했을만큼 내 개인적으로도 관심이 큰 행사였다.

발제자들은 각기 다른 맥락에서 이 방안의 수정보완, 발전적 계승을 주장했다. 박영호 박사는 30년간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방안이 갖는 의의를 강조했고 전재성 교수는 탈근대적 시대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변화를 주문했다. 특히 십여년 전 내가 주도해서 서울대 통평원에서 내놓았던 [연성복합통일론]의 문제의식이 더욱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해서 반가왔다. 김병연 교수는 중간단계로서 경제통합을 좀더 구체화하고 그 실현을 향한 보완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패널의 토론은 다양했는데 나는 대략 다음 몇가지로 그 쟁점을 요약할 수 있다고 보았다. 1) 30년간 잘 유지되어온 통일방안을 굳이 다시 건드릴 필요성이 있는가 2) 민족이란 개념과 범주를 여전히 중시할 것인가 3) 중간단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 4) 통일방안은 남북이 함께 추구할 것인가 아니면 대한민국의 전략구상으로 추구할 것인가 5) 국내정치에서 이 사안이 정쟁과 이념분쟁의 소재로 오용되지 않고 큰 국가전략으로서의 통합적 지위를 갖도록 할 방안이 있는가 6) MZ 세대의 반응과 생각을 어떻게 통일이란 미래전략에 결합할 것인가.

뚜렷한 답은 얻기 어려웠고 사안별로 의견은 갈렸다. 무엇보다도 이 사안을 들고 나온 통일부나 통평원이 이것을 얼마나 무겁고 중요한 아젠다로 생각하고 있는지가 불확실해 보였다. 나로서는 반드시 다루어야 할 쟁점이고 지금이 그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진지함과 결의가 없이 많은 사안들 중 하나로 다루어보고 그 효과를 이용해 보려는 차원이라면 별반 의미가 없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두번의 선약을 바꾸면서까지 참여하고 싶었던 자리였고 실제 발제와 토론이 매우 격조높고 충실해서 대단히 유익한 행사였지만, 돌아오는 기차 속에서 이 사안에 대해 얼마나 깊은 무게감을 우리 사회가 부여하고 있는가에 대해선 의구심을 버리기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