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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헌학술원 심포지엄

한림대학교 도헌학술원이 개원되어 2월 16일 기념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하는 기술혁신의 큰 흐름 속에서 대학의 역할을 묻는 학술회의였다. 하지만 한국 산업의 견인차이자 21세기 쌀이라고까지 여겨지는 반도체가 미중 기술패권경쟁의 핵심쟁점이 되어 기존의 글로벌 공급과 생산의 체인에 큰 변화가 예상되는 시점이어서 관심이 대학에 한정될 수는 없는 것이다. 최근 반도체 경기의 하락이 무역적자폭을 크게 하는 시점이고 미국의 압력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어서 한국사회 전반에까지 시야가 확대될 수밖에 없는 회의였다.

삼성전자, 하이닉스에서 반도체 산업을 총괄하는 CEO 들과 서울대, 카이스트, 한림대 총장들이 참여하는 발표자 면면도 관심을 끌기에 족했다. 한림대학 이사장으로 자신의 아호을 딴 연구원의 첫 행사인만큼 이사장의 관심이 컸을 것은 분명하고 실제로 윤대원 이사장의 인사말은 기조강연에 해당할만큼 밀도가 있었다. 행사가 이처럼 성대하고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것은 초대 원장으로 취임한 송호근 교수의 네트워크가 큰 역할을 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다.

나는 도헌학술원의 자문위원으로 그 설립과정에 작은 힘을 보탰다. 이전 한림학술원의 뜻을 기억하면서 또 송원장의 새로운 활동을 성원하는 뜻도 겸하여 이 학술원이 잘 자리잡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도헌학술원의 현판을 쓰고 기념달력 제작을 위해 스케치한 작품을 제공했다. 내 글씨와 그림이 뜻깊은 학술원의 출범을 장식할 수 있어서 기쁘고 보람을 느낀다. 오세정 총장과 최양희 총장의 발제에 대한 토론에서 언급했듯이 한림대가 새로운 지방명문대학의 모델을 보여주기를 기대하는 마음 간절하다.

life · 시공간 여행

매화 속 사람과 자연

봄은 매화와 더불어 오는가. 한겨울 매서운 날씨를 견디고 고고하게 계절의 변화를 알라는 매화의 향기가 곳곳에서 풍겨난다. 예로부터 매화는 그 기개와 품성이 선비와 닮았다 해서 사군자의 첫 소재로 꼽혔고 고택이나 서원의 한 켠에 자리해야 할 것처럼 여겨지곤 했다. 남도 섬진강변과 하동지방은 산기슭을 온통 매화가 차지할 정도로 군락을 이룬 곳들이 적지 않다. 매실을 재배하는 농원들이 많기 때문이겠지만 남도의 야트막한 산세와 풍광이 일조를 했을 터이다. 하동에서 벌어지는 매화축제에는 100만명을 넘는 사람들이 찾아온다.

한국사회사학회 활동을 처음부터 함께 했고 이제는 학계에서 퇴임하여 정담을 나누던 사시친 멤버들이 모처럼 매화 답사길에 나섰다. 고매로 이름난 승주의 선암사, 홍매로 유명한 화엄사를 비롯하여 사람들로 들끓는 매화축제장 농원도 들렀다. 여행이 꽃구경 만일 수는 없는 법, 박경리의 토지의 무대로 알려진 악양에 묵으면서 이런 저런 사람도 만났다. 악양별서라는 멋진 이름의 집에서 시와 춤과 노래의 작은 모임도 갖고, 오래된 집을 멋진 전시관으로 만든 빈산 갤러리에서 작품도 감상했으며 조씨 고택에서 조선조 명문가의 위세와 품격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높은 산마루에 올라 사방을 에워싼 지리산 능선, 그 속에 넓게 자리잡은 땅, 굽이치는 섬진강을 한 눈에 바라보는 즐거움도 맛보았다.

선암사의 고매는 아름다운 사찰의 풍경과 어우러져 장관이었다. 태고종으로 많은 불사를 하지 않아 오히려 고풍스런 옛 아름다움이 유지되고 있다는 역설이 새삼스러웠다. 이곳에는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비롯하여 이름있는 사람들의 현판들이 여럿 있다. 화엄사는 홍매 한 그루가 대웅전에 맞먹는 높이로 장중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전에 이곳을 왔을 때 국보로 지정된 각황전 앞의 사자석등에 눈이 머물렀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는 우람한 기세의 등걸과 붉은 색의 화려함으로 사찰의 분위기를 일거에 바꾸는 홍매의 절경에 사로잡혀 다른 곳이 보이지 않는 느낌이었다. 가히 명불허전이다. 평소에 매화는 백매가 본류이고 홍매는 웬지 아류 같이 여겨졌는데 화엄사 홍매는 내 편견을 일순간 날려버렸다.

재작년 이맘때 제자들이 매암동인이란 모임을 만들었다. 내가 정년을 기념하여 제자들에게 써준 글씨들로 ‘以文會友’ 전시화를 열게 된 것을 계기로 서로의 근황과 관심사를 나누고 소중한 학연을 이어가자는 뜻에서였다. 지금도 개인적으로 또 몇명씩 간간히 만나면서 학문의 길에서 부딪친 생각과 경험들을 나누곤 하는 고마운 제자들이다. 광주과학기술원에서는 또다른 학생들과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번 여행에서도 이런 저런 꿈과 뜻을 지닌 사람들이 개성있는 삶을 살아가는 모습들을 본다. 선암사의 고매, 화엄사의 홍매만 아니라 내가 인연한 이 모든 이들이 각각의 향기와 아름다움을 지닌 매화 나무란 생각을 했다. 좋은 제자를 만난 복을 감사하고 새롭게 이어지는 인연들을 생각하며 선암사 백매의 모습을 화선지에 옮겨본다.

life · 시공간 여행

서소문 성지역사박물관

감동이었다. 숭고한 정신과 아픈 역사, 그리고 탁월한 건축양식이 함께 빚는 숙연한 아름다움 – 서소문 성지역사박물관을 돌아보면서 받은 인상이다. 떠들석한 말과 번잡한 물증 없이도 인생과 역사, 정치와 종교, 서구와 동양, 삶과 죽음의 관계를 묵상하게 만드는 종교적 학습장이다. 어두움과 빛, 직선과 곡선, 절제된 구성에서 성스러움을 실감하는 체험장이기도 하다.

이곳은 원래 조선시대 죄인들을 처형하던 장소인데 특히 많은 천주교도들이 순교의 피를 뿌린 곳이다. 그 아픔을 망각하지 않고 내면의 성찰로 되새김질하게 만드는 이런 공간을 서울의 한복판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고마왔다.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뮤지엄을 들렀을 때, 또 뉴욕 그라운드 제로 기념관을 방문했을 때 받았던, 장중하면서도 슬픈 다크 투어리즘의 미학을 느끼게 한다. 특히 지하의 어두움과 지상의 밝음이 다양한 방식으로 교차되고 대비되는 절묘한 구성이 감동적이었다.

공원 입구 기념탑에는 성인과 순교자들의 명단과 ‘복되어라 의로움에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이라는 중앙 석판이 새겨져 있다.  공원의 한 구석 벤치에는 ‘노숙자 예수’란 청동상이 누워있다. 티모시 슈말츠라는 작가의 작품이란 설명문을 보지 못하면 실제로 한 사람이 공원에서 노숙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할 만하다. 청동상이든 노숙자든 오가는 사람들은 그다지 주목하지 않는다. 강도만난 사람을 두고 지나가던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태도가 오늘날 도시의 바쁜 사람들의 자세와 얼마나 다르겠는가 작가가 묻는 듯 하지만 그 어떤 명시적 메시지도 생략되어 있다.

카톨릭이 서학의 이름으로 전래된 과정을 보여주는 지하의 전시실 역시 절제되어 있다. 유학이 지배하던 조선후기 사회 곳곳에 새로운 사상이 전파되고 생겨나는 흐름을 당대의 전적과 자료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데 서학은 물론이고 실학과 동학, 개화사상이 그 흐름 속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이 눈에 띤다. 기독교의 종교적 측면에 한정하지 않고 그 정신이 지니는 세계문명사적 함의를 역사적 맥락 속에 자리매김하려는 의도가 고급스럽고 반가왔다. 그래서일까 한쪽 벽면에 걸린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던 안중근의 유묵, ‘평화’가 더욱 묵직한 메시지로 다가온다.

지하 3층의 콘솔레이션 홀은 역사 속에서 희생당한 자들을 추모하고 현실에서 지친 인생을 위로하는 곳이라 한다. 공간 전체를 채우는 짙은 어두움 속에 은은한 빛이 비치는 제단이 있어 누구든 무릎을 꿇고 싶은 경건함을 느끼게 한다. 실제로 그 제단 옆에 무릎을 꿇은 한 참배객의 굽은 어깨가 한폭의 성화 같은 실루엣을 만들고 있다. 고개를 돌리면 하늘광장이라 이름한, 위로 뚫린 광장에 사상과 신앙의 자유를 지키러다 희생당한 사람들을 기리는 조형물이 서있고 그 옆 좁은 문을 열면 순례길을 연상케 하는 어두운 회랑 끝에 별같은 빛이 손짓하고 있다. 누군가를 추념하는 장소라기보다 스스로를 위로하고 치유받는 공간이란 생각이 든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방문과 한국순교자 124위의 시복을 기념하기 위해 김경자 작가가 제작한 ‘일어나 비추어라’라는 제목의 나전칠기 작품도 눈이 갔다. 과거, 현재, 미래의 세 부분으로 좁게는 카톨릭 이백년사를 넓게는 한국 근현대사를 그리고 있는데 동양의 예술적 상징과 기독교적 성서관이 아름답게 혼융되어 있다. 십장생도의 미학과 불화의 분위기, 무릉도원에의 꿈도 있고 몽둥이와 칼을 든 사람들, 포승줄에 묶여 끌려가는 사람들, 예수를 품에 안은 피에타상도 있고 각국의 국기들도 있다. 일견 복잡해 보이는 이 모든 상징물들이 희생과 수난을 거쳐 모든이의 평화를 이루는 미래에의 도정을 드러내는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기능적 효율성이나 과욕의 메시지 전달, 다수 대중의 이목끌기에 급급한 현대사회에 이런 절제된 공간미학을 구현하고 만들어가는 카톨릭의 문화역량에 깊은 존경의 뜻을 표하고 싶다.

life · 오늘의 화두

냉안과 허심

음력 설을 하루 앞두고 박규수의 시 한편을 계묘년 신년휘호 삼아 쓴다. ‘냉철한 눈으로 시대의 쟁점을 살피고, 욕심없는 마음으로 고서를 읽는다’ (冷眼看時務 虛心讀古書) 개항기 조선왕조에 몰아닥친 격동의 풍랑을 헤쳐가야 했던 유학지식인의 책임감과 진정성이 잘 드러나는 시다.

관심과 초연, 冷眼과 虛心의 두 측면을 모두 중시하려는 박규수의 마음에 공감이 간다. 현실의 위기와 모순에 두 눈 부릅뜨고 개입하는 참여정신은 소중하다. 동시에 어지러운 세상사로부터 눈을 돌려 내면의 평안을 구하려는 은자의 지혜도 무시해서는 안된다. 전자가 없으면 사회에 무책임해지고 후자가 없으면 실존적 삶에 여유가 없어진다.

두 마리 토끼를 좇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다. 자칫 어느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좌고우면하는 삶이 될 우려도 있다. 2023년 토끼의 해를 맞이했으니 時務에의 관심과 古書로의 침잠이란 두 마리 토끼를 좇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이 바램을 묵향에 담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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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틀랜드 미술관

한겨울의 포틀랜드는 다소 을씨년스러웠다. 날씨가 흐렸던 탓도 있지만 여행객도 드물고 가게들도 대부분 문을 닫은 거리풍경 탓이 더 컸다. 해안을 따라 여러 등대들이 있는 곳을 찾았는데 사람은 없고 비는 내렸지만 경치는 아름다왔다. 곳곳에 과거 전투의 기억, 요새로서의 흔적들이 남겨져 있어서 이곳이 독립전쟁 당시의 격전지였음을 말해주지만 대부분 희미하게 퇴색되고 눈에 띄지도 않는다. 평화상태가 오래 지속된 미국의 풍요가 낳은 결과일터이다. 전쟁터가 관광지가 되는 것 – 좋은 것이다.

랍스터를 먹는 아름다운 레스토랑을 찾아 빗길을 무릅쓰고 찾아간 ‘두 등대’ 지역도 문을 닫아 발길을 돌려야 했다. 대안으로 태국 음식점을 찾아 한 시간을 달려간 곳도 역시 closed!. 결국 five guys 에서 햄버거로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그런데 저녁에 들렀던 레스토랑은 예상밖으로 멋지고 인상적이었다. 넓은 홀, 개방된 주방, 각종 해산물과 와인 바, 관광객이라기보다 지역주민들인 듯 싶은 많은 손님들이 제각기 즐겁게 담소하는 모습이 정말 정겹고 아름다왔다. 자연풍광이 주는 아름다움과 각양 인간들의 역동적인 활동이 주는 멋스러움은 그 결이 다른 듯 싶다.

이튿날 아침 포틀랜드 아트 미술관을 종인이와 함께 관람했다. 계획했던 곳이 아니었기에 큰 기대를 가졌던 것은 아닌데 의외로 전시내용이 훌륭했다. 고풍스러운 건물 외부에는 ‘인간’을 주제로 한 조각품이 설치되어 있었고 1층에는 다양한 인간들을 카메라에 담았던 사진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특히 Richard Avedon 의 마릴란 먼로, 에즈라 파운드, 마틴 루터 킹 등 유명인의 표정사진이 인상적이었다. 이름없는 평범한 시민의 일상을 담은 사진들의 무게감도 삶의 진정성이란 점에서는 다를 바 없었다. 우리 모두도 저런 한 장의 사진으로 남게 되는 것이 아닐까.

Picasso, Renoir, Degas, Mattise, Sisley, Sargent 등 낯익은 화가의 작품들도 있어 친숙한 느낌이었다. 현대화가들의 강렬하고 추상적인 이미지 가운데서도 간간히 눈길이 가는 작품이 없지 않지만, 역시 나같이 평범한 관람객의 입장에서 인상파, 낭만파의 그림만큼 한결같은 아름다움을 느끼는 장르는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작가의 작품 앞에서 한참을 서 있는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런 느낌과 감동은 역시 주관적일 수밖에 없겠구나 생각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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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e Mountain과 IMF

3년전 하바드엔칭 연구소 학자들의 연례모임이 있었던 화이트마운틴 옴미마운트 워싱턴 리조트를 다시 찾았다. 아름다운 이곳을 방문했던 2020년 1월, 자고 일어나니 폭설로 온 천지가 하얗게 덮였다. 호텔 주변으로 아무도 걸어가지 않은 눈덮인 숲길을 걸으면서 넓은 평원, 하얗게 변한 침엽수들의 사이를 한참 걸었던 기억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1944년 7월 1일 2차대전 이후의 국제질서를 재편하기 위한 연합국통화금융회의가 이곳에서 개최되어 브레턴우즈협정이라 통칭되는 국제통화기금협정(Agreement of the International Monetary Fund)이 조인되었다. 44개국이 조인한 브레턴우즈협정의 핵심은 국제적인 자유무역의 활성화와 그에 기초한 외환시장의 안정이었다. 이를 위해 미국 달러의 금환본위제(금·달러본위제)와 조정 가능한 고정환율제를 채택했다. 미국의 달러화를 IMF 가맹국들이 일정한 환율로 매매함으로써 자국통화와 달러, 그리고 금이 간접적으로 연결되게 한 것이다. 기축통화의 지위를 확보한 미국은 막대한 양의 금을 보유하는 것과 함께 자국 경제를 인플레이션 없이 안정적으로 관리할 책임을 맡았다.

1층 한 구석에 IMF 협정이 체결된 방이 기념공간으로 보존되어 있다. 당시 연합국 대표들의 사진과 테이블이 남겨져 있다. 하지만 이 장소성을 홍보하려는 의지가 별로 없는 듯 눈여겨보지 않으면 스쳐 지나가기 십상이다. 오히려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는 넓은 홀의 소파와 아름다운 주변 풍경에 더 눈이 간다. 전후질서구축이란 세계사적 결정이 내려진 곳이지만 2023년 이곳의 모습은 그냥 호젓하고 아름다운 한 리조트에 불과하다. 찾아오는 사람들 역시 그 누구도 이곳에서 브레튼우즈 체제나 IMF 를 떠올리지 않는다. 흰 눈과 빨간 지붕, 고풍스런 건물의 위용 속에서 사람들은 제각기 휴식과 평안을 찾기 바쁘다.

미국이 금본위제를 폐지하면서 브레튼우즈 협정의 축은 크게 흔들렸고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패권적 지위도 이전만 못하다. 하지만 대안이 없는 현실에서 달러가 지니는 힘은 여전하다. 세계 각국은 달러보유고를 신경써야 하고 유동성 위기를 겪는 국가들은 IMF라는 구원투수에 의해 강제적인 구조조정을 당하기도 한다. 중국의 부상, 미국의 방대한 재정적자, 양적 완화에 의한 달러인플레 등이 앞으로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전후질서의 구축이란 역사적 결정이 내려진 장소가 휴가와 여행을 즐기는 일상인의 리조트가 되어 있는 모습을 보면서 세계의 흐름과 개개인의 삶의 관계를 생각해본다.

life · 시공간 여행

The Life 와 real life

보스턴 아트 뮤지엄의 특별전시를 관람했다. The Power of Photography 라는 부제를 달고 잡지 The Life 의 역사를 보여주는 자리였다. 전쟁, 폭동, 축제, 슬픔, 기술 등 삶의 현장 곳곳을 카메라에 담으려 애쓴 작가들, 그 순간의 진실을 보도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았던 기자와 편집인들의 수고와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세계대전, 한국전쟁, 아폴로 달착륙, 르완다 내전 등 현대사의 장면들이 여러 사진 속에 담겨있었다.

아마도 사진의 힘은 현실의 정확한 재현능력에 있을 것이다. 부인할 수 없는 현장성, 살아있고 움직이는 모습을 포착한 사진의 사실성을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호소력과 증언력을 지닌다. 죽음이 널려있던 전장에서 망연해하는 병사의 모습이나 1945년 8월 17일 종전 소식을 듣고 길거리에서 환호하는 시민의 모습은 평화에의 갈망을 그 어떤 매체보다 더 리얼하게 보여주는 힘을 지녔다.

하지만 사진의 힘을 대체하는 매체환경의 변화로 인해 The Life 지는 더 이상 존속할 수 없게 되었다. 그 퇴장을 안타까와하는 여러 움직임과 목소리가 있지만 텔레비젼을 필두로 하는 전자영상 기술의 확대는 사진의 힘을 현저히 약화시켰다. 아폴로 우주선의 달착륙 소식을 전하는 순간, The Life 지의 독점적 영향력을 텔레비젼 중계가 대체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전시공간에는 웬지 쓸쓸함이 자리한 듯 했다.

온갖 영상물이 범람하고 사진이 일상의 취미가 되어버린 요즈음 ‘사진의 힘’은 더 이상 사실성과 재현성에 있지 않다. 사진은 과시와 자랑과 취향의 도구가 되거나 상상의 이미지로 변형되기 일쑤여서 이제 사진 그 자체의 사실성에 감동하는 경우는 현저히 사라졌다. 팩트와 허구가 결합된 팩션 (faction)이 강조되는 것도 이런 영상 기술의 발전과 깊이 결부된 현상이다. 이미지의 시대, 상상력의 시대라고 불리는 21세기에 사진의 힘은 어떻게 변형되고 존속할 것인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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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ndall Square 의 Technology Park

다시 찾은 켄달 스퀘어는 깔끔한 첨단지구로 거의 탈바꿈해 있었다. 3년전 이곳에 와 살펴볼 때도 이미 상당한 변화가 진행 중이었지만 곳곳에 채 마무리되지 못한 공사들이 널려있었다. 이제 대부분 완료가 된 듯 주요 기업들이 입주하거나 들어올 예정이라 한다. MIT 가 이 지역의 첨단 기술생태계의 거점으로 홍보하던 건물도 완공이 되었고 지하철역과 연결된 고층건물에는 구글 로고가 뚜렷하게 빛나고 있다.

30여년전 처음 이곳 캠브리지에 와서 1년 반을 생활했을 때 이곳은 별로 오고싶지 않은 곳이었다. 하바드 스퀘어가 각종 문화적 활동과 방문객으로 북적일때도 이곳은 MIT의 한두 건물을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오래되고 낡은 벽돌 건물들로 낙후한 지역의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그것이 역설적으로 대변신의 조건이 되었다고 할까. 켄달스퀘어의 도심재개발이 추진되면서 MIT 대학과 첨단과학기술에 기반한 벤쳐기업을 연계하는 대학-도시-기업 복합공간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하바드 스퀘어와 켄달스퀘어의 지난 30년을 비교해 보면 전통의 무게감과 혁신의 대전환이 뚜렷하게 대비된다.

기술이 주도하는 21세기인만큼 캐임브리지의 공간동학도 하바드 스퀘어에서 켄달 스퀘어로 옮겨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돈과 기술과 창업과 역동성의 측면에서 이미 두 지역의 차이는 분명하다. 최근에는 뉴스를 주도하는 것도 MIT 라는 말도 들린다. 물론 하바드의 인문사회적 역량과 전통의 힘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첨단의 고층빌딩이 주는 현대적 감각보다 고색창연한 하바드 대학의 오래된 무게감이 더 멋스럽고 중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MIT 가 주도하는 과학기술문명의 충격이 전례없는 힘으로 다가올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켄달 스퀘어의 곳곳에 멋지게 세워진 건물의 다수가 고가의 아파트라고 한다. 첨단의 생태계가 지속가능하기 위해 일정한 주거공간이 필요한 것은 당연할 터이지만, 웬지 또하나의 현상을 보는 듯한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도심개발이 땅값의 상승으로 이어지고 결국은 자본력이 있는 대형 빅테크의 거점이 되고 값비싼 아파트 지구로 바뀌면서 대학 주변에서 지식과 창의성으로 무장한 신생 벤쳐들의 활력을 뒷받침한다는 애초의 명분과 목표가 흐릿해질 가능성이 커 보였다. 커먼즈를 확보하려는 노력인지 구글 건물의 외부에 오픈 가든이 조성 중이었는데, 그 규모로보아 얼마나 실질적인 커먼즈가 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해 보인다. 자본과 기술, 지식과 창의가 연결되는 방식 그 자체는 완전히 혁신적이기 어려운 것일까.

life · 시공간 여행

보스턴 도원기

날씨는 차가왔지만 꿈같은 기간이었다. 보스턴에서의 가족여행은 기대 이상의 만족감으로 마치 ‘도원’에 와 있는 듯 했다. 새롭고 멋진 장소나 유적을 여행해서가 아니라 가족과의 대화와 여유로운 휴식, 그 가운데서 잔잔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여건에서 얻어진 것이었다. 나는 안견의 ‘몽유도원기’를 떠올리면서 이번 여정에 ‘보스턴 도원기’라는 이름을 붙여본다.

늘 바빴고 일에 부대꼈던 지난 시기, 부담없이 평안하게 가족들과 감정과 시간을 공유한 기회가 너무 적었다. 사랑을 표하는데도 인색했고 아이들과 대화하는 역량도 부족했다. 잘 자라준 아이들이 고마우면서 마음 속 깊이 미안한 감정이 적지 않다. 그래서인가 더욱 이번의 시간이 너무 뜻깊고 소중했다. 그냥 같이 있는 것, 함께 먹고 마시며 쉬는 것, 그러면서 잔잔한 사랑을 확인하는 것 – 최고의 여행이라 할 만 했다.

손녀 이든과 올리브의 재롱과 웃음은, 그것만으로 하루 종일을 보내도 모자랄 신비로운 모습이었다. 영롱한 눈망울을 반짝이면서 ‘이게 뭐에요?’ 라고 묻다가 맘에 들지 않으면 토라지고 또 금방 기쁘게 안겨오는 아이는 소중하고 역동적인 생명 그 자체다. 이런 아이로부터 할아버지라고 불릴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인생의 축복이다.

특히 장성한 아들 종인이와 오랜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 아들이 운전하는 차에 앉아 이곳 저곳을 다니며 식사를 함께 하고, 저녁엔 술 한잔을 나누며 시간을 공유한 기억은 오랫동안 남을 것 같다. 내가 대학을 입학했을 때 아버지가 다방에서 아들과 커피를 마시는 순간을 무척 기뻐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 때 그 분도 지금 나와 같은 심정이셨으리라. 여행 내내 아들이 살아갈 미래에 건강과 행복, 자신감과 활력이 늘 함께 하기를 마음으로 기도했다.

귀한 휴가시간을 모두 내어 화이트마운틴 좋은 곳에 집을 얻고 긴 시간 가족과 함께 할 여건을 만든 딸과 사위가 고마왔다. 어린 어이들을 키우면서 하루도 단잠을 자기가 어려운 형편인데도 기쁘게 그 모든 것을 감당하고 직장에서도 능력을 발휘해가는 것이 대견하고 든든했다. 이렇게 있다가 떠나면 당분간 허전함이 있을텐데 몸과 마음이 늘 건강하고 삶의 보람이 계속되기를 내내 기도했다. ‘도원’이라고 이름할 정도로 좋았던 시간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 마음 깊은 곳에서 아이들을 위해 기도한 시간이기도 했다.

life · 오늘의 화두

감동 감사 감내

2022년이 가고 있다. 변화가 컸던 한 해다. 코로나의 여진 속에서 일상은 그런대로 회복 중이지만 환경도 관계도 마음도 적지 않게 변했다. 정권의 교체와 이념갈등, 집값 폭등과 폭락, 청년층의 좌절과 세대격차, 디지털 기술의 명암, 재난을 내장한 역동성 등 전례없이 많은 문제들이 터져나온 한 해다. 2023년에도 역대급 경제불황이 닥칠 것이고 한반도 긴장도 심해질 것이란 암울한 전망이 뒤를 잇는다. 탈냉전 평화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우크라이나 전쟁도 해를 넘길 것이 분명하다.

박노해의 “여명에 물을 긷다”란 시를 떠올린다. 해뜨는 순간, 여명의 시간이 ‘생의 신비’라고 노래하는 시인은 에티오피아의 척박한 땅에서 먼 길을 걸어 물을 길어오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을 상상한다. 그 무의미해 보이는 일상의 반복 속에 놀랍게도 사랑과 희망이 자라고 그 힘이 삶의 무게를 감당케 한다는 것이다. ‘감동하고 감사하고 감내하며’ 라는 마지막 연은 이런 생의 역동성, 신비로운 힘을 확인하는 사람들에게서 찾아지는 독특한 품성이다.

감동의 정서가 점점 사라지는 것 – 현대인의 병폐이자 늙어가는 징조다. 감사하는 마음이 줄어드는 것 – 인간성의 고갈과 자기중심성의 표지다. 감내할 여력이 없어지는 것 – 믿음과 희망이 사라지는 시대의 징표다. 역설적으로 감동, 감사, 감내는 이런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낼 핵심적인 자산이 된다. 얻기 여려운 것 같지만 누구든 마음공부로 얻을 수 있는 자산이기도 하다. 이 자세로 2022년을 마무리하고 2023년을 맞이할 것을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