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시공간 여행

인왕산과 수성동계곡

오랫동안 가보고 싶었던 수성동계곡과 인왕산 성곽길을 다녀왔다. 한반도평화연구원 활동으로 인연을 맺은 분들과 모처럼의 저녁 모임을 갖게 된 곳이 이 주변이어서 미리 마음을 정해둔 여정이었다. 마침 날씨도 좋고 벗꽃도 만개한데다 곳곳에 진달래가 화사하게 피어 생각지 않은 즐거움도 컸다. 호젓하게 자유로이 윤동주 기념관과 한양도성 성곽길을 둘러본 것은 덤으로 누린 기쁨이었다.

수성동계곡은 겸재 정선의 그림 [장동팔경첩] 수성동의 현장이고 서울의 난개발 과정에서 사라져버렸던 돌다리와 계곡이 아파트 철거로 다시 드러나 옛모습을 찾게 된 곳이다. 겸재가 이곳을 유명하게 만들었고 이곳 둘레길에는 진경산수탐방이라는 팻말이 붙여져 있다. 하지만 이곳은 그 이전부터 풍류를 즐기던 문사들이 즐겨 찾던 장소다.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은 이곳에 비해당이란 정자를 짓고 당대 최고의 선비들과 시를 짓고 담소를 나누었는데 이들이 이곳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48詠詩’ 일부가 전해져 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수 년 전 서울대 화묵회 전시에 대나무 수묵화를 출품했다. 그림에 어떤 글을 적을까 생각하다가 성삼문이 안평대군과 더불어 주고받은 ’48영시’의 한 부분을 썼다. “度竹風聲碧 含風竹影淸” (대 숲 지나는 바람소리 푸르고/ 바람 머금은 대 그림자 맑다). 심경호 교수의 저서 덕분에 몽유도원도를 그린 안견을 비롯한 조선조 선비들과 안평대군 간에 주고받은 시들을 접해본 덕택이다. 수성동계곡을 오르면서 나는 안평, 안견, 성삼문, 박팽년, 겸재 등 만나본 적 없는 이들의 이름을 떠올렸다.

돌다리가 있는 수성동 입구는 버스 종점 바로 앞이었다. 조용하고 멋진 계곡의 풍광을 상상했던 나로서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계곡의 규모가 작아 물이 제대로 흘러도 작은 개울 수준을 넘기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인왕산 정상을 향한 길을 오르면서 아름다움은 반드시 장대함에서 오는 것이 아님을 이내 깨달았다. 다양한 모양의 바위와 작은 골짜기, 크고 작은 나무들이 한데 어우러져 빚어내는 진경산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경복궁 옆부터 인가 없는 길을 지나 이곳으로 오르던 이들에게 수성동은 말 그대로 조선산수의 정형과도 같은 풍경으로 와 닿았을 법하다.

인왕산 정상에서 내다보는 서울의 풍경은 장쾌하고 시원했다. 남산을 바라보면 시내의 전경이 눈에 들어오고 백운대 방면으로 눈길을 돌리면 아스라히 북한산 줄기가 다가온다. 그 사이로 청와대를 품은 북악산의 아름다운 자태도 또렷하다. 이 모든 것을 아우르면서 성곽둘레길이 이어져 있어 또다른 멋스러움을 더한다. 이곳의 성곽은 그 높이가 낮고 주변과 너무 잘 어우러져 외침을 막기 위한 군사적 목적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위한 미학적인 이유로 세운 것 아닐까 여겨질 정도다. 모처럼의 멋진 기억을 오래 간직하려 겸재의 문하생이 된 기분으로 화선지를 펴고 수묵으로 인왕산과 기린교, 계곡을 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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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논리

김성국 교수께서 새로이 출간한 신간 [하나논리] (2023, 이학사)를 보내주셨다. 국제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해온 원로 사회학자이자 부산 지역사회의 현안에도 열심히 참여하고 동아시아 지식인 네트워크에도 열정적으로 헌신하는 분이다. 정년을 한지 꽤 되었는데 여전히 왕성한 학문적 활동을 하고 계신데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동아시아 사회이론의 모색이란 부제가 달려있지만 이 책은 여느 사회이론 서적과 다른 분위기다. 학계의 보편적 관심사와 학계 내부의 논의도 없진 않지만, 핵심은 지난 시기 서구 사회과학의 사상적 한계를 넘어설 새로운 지적 패러다임을 독창적으로 구성하는 데 있다. 저자는 1960년대 이래로 자신이 주목해온 여러 사상적 맥락들을 실존주의, 구조주의, 맑스주의, 시민사회론, 탈근대론 등으로 추적하면서 그 특성과 한계를 성찰의 자원으로 삼아 대안적 논리를 구성하고 있다.

미래적 전망을 지닌 대안적 사회이론의 가능성을 저자는 ‘하나논리’를 통해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삼라만상의 존재론적 연결성과 가치론적 하나됨을 중시하는 通一의 관점이 특히 중요한데, 이런 시각은 동아시아 유, 불, 도의 사상적 자원과 한국에서 그 맥을 이어온 선가의 사유를 지적 자원으로 삼아 구성할 수 있으리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 책은 천부경을 비롯하여 한국 전통사상에서 발견되는 천인합일 사유를 재해석하면서 저자 자신의 독특한 전망들, 즉 유아유심적 탈물질주의, 주체적 개인주의, 비관적 신비주의, 중도자비와 자유해방의 안락주의 등 문명론적 함의를 담은 새로운 이론적 논의를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21세기 사회이론의 탐구가 삶의 깨달음, 새로운 생활양식의 창출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실천적 함의도 담고 있다. 저자는 오랫동안 아나키즘의 현대적 의의에 주목해왔고 몇 년전 잡종사회의 문명적 비전을 다룬 대작을 상재한 바 있다. 이 책에도 저자는 하기락 교수의 아호인 ‘허유’ 개념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하고 동서문명을 넘어서는 대안적 삶을 희구하는 바램을 피력하고 있다. 자유롭고 개방적이면서도 창의적이고 주체적이며 늘 진지한 탐구의 자세를 잃지 않는 노학자의 애씀이 21세기의 소중한 지적 자원으로 활용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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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에서 탈식민으로

반일을 넘어 탈식민의 성찰로 – 조형근 박사가 쓴 [우리 안의 친일] 책의 부제로 달린 화두다. 나는 우리 사회 곳곳에 강한 정서와 상식으로 자리잡고 있는 집합적 정동, 자긍심과 혐오심의 이중주를 볼 때마다 이 주제가 우리 시대의 시급한 과제라는 생각을 한다. 한 쟁점에 대한 반대 자체가 무비판적이고 절대적인 가치로 자리잡을 때 제대로 된 성찰이나 문제해결로 나아가기는 어렵다.

윤석렬 정부가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소위 통 큰 결단을 강조하고 있다. 3.1 절 기념사에서 일본의 잘못과 식민통치의 수탈성을 강조해온 이전의 내용과는 사뭇 다르게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미래로 나가자는 주장을 내세우고 일본 기시다 수상과의 정상회담에서는 일본의 반성과 사과에 대한 담보 없이 일방적으로 위안부 문제를 매듭짓겠다고 했다. 한일관계를 개선하겠다는 뜻임을 밝혔지만 치밀하지 못한 접근에 대한 안팎의 우려가 만만치 않다. 예상대로 역사학계를 비롯하여 강력한 반발이 이어지고 있어서 과연 기대한 방향으로 진전될지 염려스럽다.

과거를 정리하고 새롭게 출발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개인도 국가도 이미 지나간 것에 연연하는 것은 좋을 것이 없다. 감정과 정서, 이해관계로 얽힌 이웃 국가간의 관계가 늘 과거사로 묶여 다람쥐 쳇바퀴돌 듯 하는 것은 피해야 할 일이다. 동시에 진실을 밝히고 책임을 분명히 하자는 주장이 그런 미래로의 진전과 배치되는 것은 아님을 깨닫는 것도 중요하다. 사과를 하고 응분의 책임을 묻는 것은 과거를 넘어서기 위함이지 지난 일 속으로 퇴행하려는 것이 아님을 한일의 지도자는 깨달아야 한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이 덫을 지혜롭게 넘어서는 일이 21세기 최대의 난제가 될지도 모르겠다.

조박사는 이 책의 챕터에 여러 부제를 달았다. 나에게는 각 장의 제목과 부제가 저자의 뜻을 드러내는 명료한 메시지처럼 와 닿는다. “민족주의 – 제국의 욕망과 동행하다”, ” 역사의 단죄 – 당신은 친일하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까?”, “프랑스와 독일의 과거사 청산 – 역사에는 단판 승부가 없다” – 굳이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저자가 던지는 말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역사에 성실하려는 자세에서만 제대로 된 탈식민도 가능할 터… 우리 내부의 욕망을 숨기지 않을 때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약점과 떨림을 정면으로 대면하면서 화해와 연대를 이룰 길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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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로 얽힌 사람, 땅, 문화

봄은 매화와 더불어 오는가. 한겨울 매서운 날씨를 견디고 고고하게 계절의 변화를 알라는 매화의 향기가 곳곳에서 풍겨난다. 예로부터 매화는 그 기개와 품성이 선비와 닮았다 해서 사군자의 첫 소재로 꼽혔고 고택이나 서원의 한 켠에 자리해야 할 것처럼 여겨지곤 했다. 남도 섬진강변은 산기슭을 온통 매화가 차지할 정도로 군락을 이룬 곳들이 적지 않다. 매실을 재배하는 농원들이 많기 때문이겠지만 남도의 야트막한 산세와 풍광이 일조를 했을 터이다. 하동에서 벌어지는 매화축제에는 100만명을 넘는 사람들이 찾아온다.

한국사회사학회 활동을 처음부터 함께 했고 퇴임 후에도 학연을 이어가던 사사친 멤버들이 모처럼 매화 탐방을 내세운 여행길에 나섰다. 고매로 이름난 승주의 선암사, 홍매로 유명한 화엄사를 비롯하여 사람들로 들끓는 매화축제장 농원도 들렀다. 여행이 꽃구경 만일 수는 없는 법, 악양별서라는 멋진 이름의 집에서 시와 춤과 노래의 작은 모임도 갖고, 오래된 집을 전시관으로 만든 빈산 갤러리에서 작품도 감상했으며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로 알려진 악양들판을 내려다 보는 조씨 고택에서 조선조 명문가의 위세와 품격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높은 산마루에 올라 사방을 에워싼 지리산 주능선, 굽이치는 섬진강, 그 속에 넓게 자리잡은 땅을 한 눈에 바라보는 즐거움도 맛보았다.

선암사의 고매는 아름다운 사찰의 풍경과 어우러져 장관이었다. 이곳에는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비롯하여 이름있는 사람들의 현판들을 감상하는 즐거움도 크다. 태고종으로 많은 불사를 하지 않아 오히려 고풍스런 옛 아름다움이 유지되고 있다는 역설이 새삼스러웠다. 화엄사는 신라시대의 여러 유물로 이름있는 고찰인데 때마침 만개한 홍매가 또렷하게 드러난다. 국보로 지정된 각황전 앞 사자석등의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우람한 기세의 등걸과 붉은 색의 화려함으로 사찰의 분위기를 일거에 바꾸는 홍매의 절경이 가히 명불허전이다. 평소에 매화는 백매가 본류이고 홍매는 웬지 아류 같이 여겨졌는데 화엄사 홍매는 내 편견을 일순간 날려버렸다.

재작년 이맘때 제자들이 매암동인이란 모임을 만들었다. 내가 정년을 기념하여 제자들에게 써준 글씨들로 ‘以文會友’ 전시화를 열게 된 것을 계기로 서로의 근황과 관심사를 나누고 소중한 학연을 이어가자는 뜻에서였다. 지금도 개인적으로 또 몇명씩 간간히 만나면서 학문의 길에서 부딪친 생각과 경험들을 나누곤 한다. 고마운 인연들은 이래 저래 이어지고 이번 여행에서도 멋진 꿈과 뜻을 지닌 개성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선암사의 고매, 화엄사의 홍매만 아니라 나와 인연을 맺은 이 모든 이들이 각각의 향기와 아름다움을 지닌 매화 나무란 생각이 든다. 좋은 제자와 동학을 만난 복을 감사하고 새롭게 이어지는 인연들을 생각하며 선암사 백매의 모습을 화선지에 옮겨본다.

life · 오늘의 화두

상쾌한 삶 무거운 숙제

동네 사회학자를 자처하면서 새로운 삶의 형식을 실천하고 있는 조형근 박사가 [나는 글을 쓸 때만 정의롭다]라는 책을 출간했다. “연대사회를 갈구하는 어느 지식인의 자기성찰”이라는 부제 그대로 조박사는 진지한 사색과 성실한 생활에서 우러나오는 진솔한 생각들을 이 책에 담았다. 글의 형식은 딱딱한 논문투가 아닌 에세이 같지만 담긴 내용의 깊이와 폭은 매우 깊고 넓다. “계시가 아니라 고백이라 좋고 고뇌하되 중심을 잃지 않아 좋다”는 한 평자의 지적에 공감이 간다.

조박사는 서문에서 이 책을 쓰게된 계기의 하나로 ‘그럭저럭 살기가 불가능해’진 상황을 꼽았다. 구체적으로는 세월호 사건을 들었지만 글의 곳곳에서 그의 이런 지적 성실함은 그 이전부터 지속된 것이었음을 확인한다. 그는 세상을 비판하는 글은 동시에 자신을 성찰하는 고백록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데 실제 그의 글은 자신의 경험에서 시대를 읽고 개인적 한계에서 사회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섬세함으로 가득차있다.

저자는 자신이 동네 사회학자임을 자처한다. 실제로 신문지상의 저자 소개에 다른 수식어 없는 사회학자라는 타이틀을 붙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소수의 사람 중 하나다. 대학교수직을 버리고 동네책방과 크고작은 문화활동에 참여하면서 그의 마음은 편안해지고 시선은 더욱 예리해졌다.

더구나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에 살면서 동네라는 작은 현장, 사람들이 사는 공간에 발딛고 있는 생동감이 뚜렷하다. 1988년 사당동 철거촌에서의 기억을 잊지 않는 조박사의 글은 그의 말대로 ‘찾아온 길이면서 돌아온 길’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진솔함이야말로 변함없는 글과 생각의 힘이 아닐까. 조형근 박사의 책이 던진 화두 앞에 반가움과 무거움을 함께 느낀다.

life · 오늘의 화두

‘일어서는 땅’

2월 17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중인 임옥상 화백의 일어서는 땅을 관람했다. 친구인 이승재 교수와 함께 갔는데 프랑스에서 왔다는 외국인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열정적인 임화백의 설명들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들은 열심히 작품을 보고 또 통역을 통해서 작가의 해설을 경청했다. 임화백과 사진을 찍으려하고 함께 포즈를 취하면서 기뻐하는 모습들 속에서 예술이 갖는 힘과 함께 국제적인 셀럽이 된 임화백의 존재감이 크게 와 닿았다.

흙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이전에도 보아왔지만 그림과 글씨를 함께 묶고 흙과 철과 땅을 연결하는 놀라운 발상과 스케일에 가히 압도당했다. 특히 봄이 되어서인지 매화 작품들이 인상적이었다. 겸재의 매화 병풍을 연상케 하는 오랜 고매화의 힘찬 등걸, 뒤틀리면서도 용솟음치는 역동성, 바람에 휘날리는 잔가지들, 꽃비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흐드러진 매화꽃잎들… 백매의 아름다움과 홍매의 화려함이 모두 격조와 스케일로 감동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임화백과 점심을 함께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얼마전 미국방문에서의 경험담에 더하여 최근 인터넷, 디지털 기술문명이 화단에도 영향을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흥미있는 말도 들었다. 보관과 전시, 제작에 여러 한계를 지니는 실제의 작품보다 이미지와 영상으로 만들어지고 거래되는 변화가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벤야민이 말했던 복제기술 시대의 예술론이 일상화되는 느낌이었다.

chat GPT 로 인한 교육과 글쓰기에서의 새로운 상황이 초래하는 내 경험도 함께 화제가 되었다. 과학기술문명의 영향이 그 어느때보다 심대하고 조밀해지는 시대에 학문과 예술, 진리와 품격을 유지하고 가꾸어갈 지혜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큰 숙제라는데 공감했다. 그럴수록 창조력을 지닌 지식인과 임화백 같은 예술가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 질 것이다. 제아무리 인터넷과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시대가 오더라도 창조와 혁신, 품위와 기개는 역시 사람의 몫일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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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헌학술원 심포지엄

한림대학교 도헌학술원이 개원되어 2월 16일 기념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하는 기술혁신의 큰 흐름 속에서 대학의 역할을 묻는 학술회의였다. 하지만 한국 산업의 견인차이자 21세기 쌀이라고까지 여겨지는 반도체가 미중 기술패권경쟁의 핵심쟁점이 되어 기존의 글로벌 공급과 생산의 체인에 큰 변화가 예상되는 시점이어서 관심이 대학에 한정될 수는 없는 것이다. 최근 반도체 경기의 하락이 무역적자폭을 크게 하는 시점이고 미국의 압력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어서 한국사회 전반에까지 시야가 확대될 수밖에 없는 회의였다.

삼성전자, 하이닉스에서 반도체 산업을 총괄하는 CEO 들과 서울대, 카이스트, 한림대 총장들이 참여하는 발표자 면면도 관심을 끌기에 족했다. 한림대학 이사장으로 자신의 아호을 딴 연구원의 첫 행사인만큼 이사장의 관심이 컸을 것은 분명하고 실제로 윤대원 이사장의 인사말은 기조강연에 해당할만큼 밀도가 있었다. 행사가 이처럼 성대하고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것은 초대 원장으로 취임한 송호근 교수의 네트워크가 큰 역할을 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다.

나는 도헌학술원의 자문위원으로 그 설립과정에 작은 힘을 보탰다. 이전 한림학술원의 뜻을 기억하면서 또 송원장의 새로운 활동을 성원하는 뜻도 겸하여 이 학술원이 잘 자리잡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도헌학술원의 현판을 쓰고 기념달력 제작을 위해 스케치한 작품을 제공했다. 내 글씨와 그림이 뜻깊은 학술원의 출범을 장식할 수 있어서 기쁘고 보람을 느낀다. 오세정 총장과 최양희 총장의 발제에 대한 토론에서 언급했듯이 한림대가 새로운 지방명문대학의 모델을 보여주기를 기대하는 마음 간절하다.

life · 시공간 여행

매화 속 사람과 자연

봄은 매화와 더불어 오는가. 한겨울 매서운 날씨를 견디고 고고하게 계절의 변화를 알라는 매화의 향기가 곳곳에서 풍겨난다. 예로부터 매화는 그 기개와 품성이 선비와 닮았다 해서 사군자의 첫 소재로 꼽혔고 고택이나 서원의 한 켠에 자리해야 할 것처럼 여겨지곤 했다. 남도 섬진강변과 하동지방은 산기슭을 온통 매화가 차지할 정도로 군락을 이룬 곳들이 적지 않다. 매실을 재배하는 농원들이 많기 때문이겠지만 남도의 야트막한 산세와 풍광이 일조를 했을 터이다. 하동에서 벌어지는 매화축제에는 100만명을 넘는 사람들이 찾아온다.

한국사회사학회 활동을 처음부터 함께 했고 이제는 학계에서 퇴임하여 정담을 나누던 사시친 멤버들이 모처럼 매화 답사길에 나섰다. 고매로 이름난 승주의 선암사, 홍매로 유명한 화엄사를 비롯하여 사람들로 들끓는 매화축제장 농원도 들렀다. 여행이 꽃구경 만일 수는 없는 법, 박경리의 토지의 무대로 알려진 악양에 묵으면서 이런 저런 사람도 만났다. 악양별서라는 멋진 이름의 집에서 시와 춤과 노래의 작은 모임도 갖고, 오래된 집을 멋진 전시관으로 만든 빈산 갤러리에서 작품도 감상했으며 조씨 고택에서 조선조 명문가의 위세와 품격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높은 산마루에 올라 사방을 에워싼 지리산 능선, 그 속에 넓게 자리잡은 땅, 굽이치는 섬진강을 한 눈에 바라보는 즐거움도 맛보았다.

선암사의 고매는 아름다운 사찰의 풍경과 어우러져 장관이었다. 태고종으로 많은 불사를 하지 않아 오히려 고풍스런 옛 아름다움이 유지되고 있다는 역설이 새삼스러웠다. 이곳에는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비롯하여 이름있는 사람들의 현판들이 여럿 있다. 화엄사는 홍매 한 그루가 대웅전에 맞먹는 높이로 장중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전에 이곳을 왔을 때 국보로 지정된 각황전 앞의 사자석등에 눈이 머물렀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는 우람한 기세의 등걸과 붉은 색의 화려함으로 사찰의 분위기를 일거에 바꾸는 홍매의 절경에 사로잡혀 다른 곳이 보이지 않는 느낌이었다. 가히 명불허전이다. 평소에 매화는 백매가 본류이고 홍매는 웬지 아류 같이 여겨졌는데 화엄사 홍매는 내 편견을 일순간 날려버렸다.

재작년 이맘때 제자들이 매암동인이란 모임을 만들었다. 내가 정년을 기념하여 제자들에게 써준 글씨들로 ‘以文會友’ 전시화를 열게 된 것을 계기로 서로의 근황과 관심사를 나누고 소중한 학연을 이어가자는 뜻에서였다. 지금도 개인적으로 또 몇명씩 간간히 만나면서 학문의 길에서 부딪친 생각과 경험들을 나누곤 하는 고마운 제자들이다. 광주과학기술원에서는 또다른 학생들과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번 여행에서도 이런 저런 꿈과 뜻을 지닌 사람들이 개성있는 삶을 살아가는 모습들을 본다. 선암사의 고매, 화엄사의 홍매만 아니라 내가 인연한 이 모든 이들이 각각의 향기와 아름다움을 지닌 매화 나무란 생각을 했다. 좋은 제자를 만난 복을 감사하고 새롭게 이어지는 인연들을 생각하며 선암사 백매의 모습을 화선지에 옮겨본다.

life · 시공간 여행

서소문 성지역사박물관

감동이었다. 숭고한 정신과 아픈 역사, 그리고 탁월한 건축양식이 함께 빚는 숙연한 아름다움 – 서소문 성지역사박물관을 돌아보면서 받은 인상이다. 떠들석한 말과 번잡한 물증 없이도 인생과 역사, 정치와 종교, 서구와 동양, 삶과 죽음의 관계를 묵상하게 만드는 종교적 학습장이다. 어두움과 빛, 직선과 곡선, 절제된 구성에서 성스러움을 실감하는 체험장이기도 하다.

이곳은 원래 조선시대 죄인들을 처형하던 장소인데 특히 많은 천주교도들이 순교의 피를 뿌린 곳이다. 그 아픔을 망각하지 않고 내면의 성찰로 되새김질하게 만드는 이런 공간을 서울의 한복판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고마왔다.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뮤지엄을 들렀을 때, 또 뉴욕 그라운드 제로 기념관을 방문했을 때 받았던, 장중하면서도 슬픈 다크 투어리즘의 미학을 느끼게 한다. 특히 지하의 어두움과 지상의 밝음이 다양한 방식으로 교차되고 대비되는 절묘한 구성이 감동적이었다.

공원 입구 기념탑에는 성인과 순교자들의 명단과 ‘복되어라 의로움에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이라는 중앙 석판이 새겨져 있다.  공원의 한 구석 벤치에는 ‘노숙자 예수’란 청동상이 누워있다. 티모시 슈말츠라는 작가의 작품이란 설명문을 보지 못하면 실제로 한 사람이 공원에서 노숙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할 만하다. 청동상이든 노숙자든 오가는 사람들은 그다지 주목하지 않는다. 강도만난 사람을 두고 지나가던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태도가 오늘날 도시의 바쁜 사람들의 자세와 얼마나 다르겠는가 작가가 묻는 듯 하지만 그 어떤 명시적 메시지도 생략되어 있다.

카톨릭이 서학의 이름으로 전래된 과정을 보여주는 지하의 전시실 역시 절제되어 있다. 유학이 지배하던 조선후기 사회 곳곳에 새로운 사상이 전파되고 생겨나는 흐름을 당대의 전적과 자료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데 서학은 물론이고 실학과 동학, 개화사상이 그 흐름 속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이 눈에 띤다. 기독교의 종교적 측면에 한정하지 않고 그 정신이 지니는 세계문명사적 함의를 역사적 맥락 속에 자리매김하려는 의도가 고급스럽고 반가왔다. 그래서일까 한쪽 벽면에 걸린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던 안중근의 유묵, ‘평화’가 더욱 묵직한 메시지로 다가온다.

지하 3층의 콘솔레이션 홀은 역사 속에서 희생당한 자들을 추모하고 현실에서 지친 인생을 위로하는 곳이라 한다. 공간 전체를 채우는 짙은 어두움 속에 은은한 빛이 비치는 제단이 있어 누구든 무릎을 꿇고 싶은 경건함을 느끼게 한다. 실제로 그 제단 옆에 무릎을 꿇은 한 참배객의 굽은 어깨가 한폭의 성화 같은 실루엣을 만들고 있다. 고개를 돌리면 하늘광장이라 이름한, 위로 뚫린 광장에 사상과 신앙의 자유를 지키러다 희생당한 사람들을 기리는 조형물이 서있고 그 옆 좁은 문을 열면 순례길을 연상케 하는 어두운 회랑 끝에 별같은 빛이 손짓하고 있다. 누군가를 추념하는 장소라기보다 스스로를 위로하고 치유받는 공간이란 생각이 든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방문과 한국순교자 124위의 시복을 기념하기 위해 김경자 작가가 제작한 ‘일어나 비추어라’라는 제목의 나전칠기 작품도 눈이 갔다. 과거, 현재, 미래의 세 부분으로 좁게는 카톨릭 이백년사를 넓게는 한국 근현대사를 그리고 있는데 동양의 예술적 상징과 기독교적 성서관이 아름답게 혼융되어 있다. 십장생도의 미학과 불화의 분위기, 무릉도원에의 꿈도 있고 몽둥이와 칼을 든 사람들, 포승줄에 묶여 끌려가는 사람들, 예수를 품에 안은 피에타상도 있고 각국의 국기들도 있다. 일견 복잡해 보이는 이 모든 상징물들이 희생과 수난을 거쳐 모든이의 평화를 이루는 미래에의 도정을 드러내는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기능적 효율성이나 과욕의 메시지 전달, 다수 대중의 이목끌기에 급급한 현대사회에 이런 절제된 공간미학을 구현하고 만들어가는 카톨릭의 문화역량에 깊은 존경의 뜻을 표하고 싶다.

life · 오늘의 화두

냉안과 허심

음력 설을 하루 앞두고 박규수의 시 한편을 계묘년 신년휘호 삼아 쓴다. ‘냉철한 눈으로 시대의 쟁점을 살피고, 욕심없는 마음으로 고서를 읽는다’ (冷眼看時務 虛心讀古書) 개항기 조선왕조에 몰아닥친 격동의 풍랑을 헤쳐가야 했던 유학지식인의 책임감과 진정성이 잘 드러나는 시다.

관심과 초연, 冷眼과 虛心의 두 측면을 모두 중시하려는 박규수의 마음에 공감이 간다. 현실의 위기와 모순에 두 눈 부릅뜨고 개입하는 참여정신은 소중하다. 동시에 어지러운 세상사로부터 눈을 돌려 내면의 평안을 구하려는 은자의 지혜도 무시해서는 안된다. 전자가 없으면 사회에 무책임해지고 후자가 없으면 실존적 삶에 여유가 없어진다.

두 마리 토끼를 좇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다. 자칫 어느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좌고우면하는 삶이 될 우려도 있다. 2023년 토끼의 해를 맞이했으니 時務에의 관심과 古書로의 침잠이란 두 마리 토끼를 좇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이 바램을 묵향에 담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