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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위한 대화

11월 30일 현 한반도 위기상황에서 평화를 모색하는 모임이 평창동 대화문화아카데미에서 개최되었다. 나는 이 좌담의 사회자로 초청을 받아 세 시간을 넘기는 대화시간을 주재했다. 평창동 높은 곳에 호젓하게 위치한 이 아담한 4층 공간은 경동교회 목사로 한국의 기독교와 사회운동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던 여해 강원룡의 정신을 기려 如海軒이라 이름붙인 곳이다. 이홍구 전 총리, 하태경 국민의 힘 의원, 이재정 민주당 의원, 이삼열 대화아카데미 이사장, 최상룡 전 주일대사, 이부영 전 의원, 이현숙 WPS 아카데미 이사장 등 다수의 원로와 전문가들이 자리를 같이 했고 줌으로 참여한 분도 여럿 되었다.

기조발제를 맡은 박명림 교수는 중요한 쟁점들과 제안들을 포괄적으로 제시했다. 미중대립은 신냉전이라기보다 과학기술과 문명의 표준을 둘러싸고 복합적으로 진행되는 다층적 경쟁임을 강조하고 구별된 대응을 통해 패권경쟁에 한국이 휩쓸리지 않아야 할 것을 주장했다. 북한의 국가성을 인정하는 위에 통일보다 평화에 주목하는 남북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것, 비핵화 원칙을 견지하면서 안보와 대화의 병행전략을 추구해야 할 것도 강조했다. 무엇보다도 선진국으로 부상하여 제국적 속성까지 지니게 된 한국이 민족주의적 특수주의를 벗어나 보편적이고 문명사적인 시야를 확보해야 할 것을 제안했다. 역사적 경험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미래지향적인 발상을 강조한 박교수의 진지한 발제 내용에 대체로 공감하면서 참석자들은 그 실행방안, 구체적 실마리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를 두고 여려 견해들을 주고 받았다.

잔잔하지만 경륜이 담긴 이홍구 전 총리의 언급도 나로선 인상적이었다. 몇년전 같은 모임에서 나는 신냉전이 오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섞인 발언을 그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YS,DJ,JP,노태우 같은 큰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 안타까움과 함께 북한변수 특히 김정은 위원장의 판단과 행동이 상황을 어렵게 만드는 주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 그래서 한반도 미래를 생각할 때 비관적인 느낌이 강해진다는 발언을 들으면서 마음이 무거워짐을 느꼈다. 사회자로서 다른 분들께는 좀더 긍정적 미래전망을 말해달라고 주문하기는 했지만 문명사의 흐름은 반드시 진보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바우만이 말한 레트로토피아적 경로가 한반도에서 나타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을 쉽게 떨쳐버리기 어려웠다.

70년대 아카데미의 대화 모임은 사회적 소통을 증진시키고 민주주의 정신을 확산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민주화가 실현되고 다양한 목소리들이 혼재하는 시대에 접어들면서 그 존재감이 크게 약화되었다. 언론과 국회가 사회적 소통의 기제로서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한다면 시민들의 일상적 대화는 굳이 무거운 쟁점들에 주목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숱한 미디어와 말들의 잔치 속에서 오히려 신뢰도 화해도 힘들어진 상황을 목도하고 있다. 거대양당의 정략적 판단이 일사분란하게 작동하는 국회는 고급한 대화의 장이라기보다 말의 오남용과 논리싸움의 현장이 되고 있다. 유투버, 1인 미디어, 인플루언서, 소문과 팬덤이 혼합된 디지털 시대에 대화의 존재양식도 크게 달라졌다. 신뢰와 합의를 위한 의사소통 방식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가 새로운 과제로 대두되는 상황인 것이다.

2022년 말, 유럽은 전쟁과 에너지난으로 뒤숭숭하고 미중의 대립은 전방위적으로 진행되는데 남북관계도 최악의 국면을 맞고 있다. 믿을 것은 무력 뿐이라는 신념으로 핵위협을 고도화하는 북한과 그에 따른 불안감을 호소하는 우리 내부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남남갈등은 다시 고개를 들고 정치권은 해묵은 보수 진보의 대립를 반복한다. 말이 정치가 되고 논리가 승패의 무기로 간주되는 시대에 위기해소의 지혜를 제공하는 대화란 어떤 것일까? 날선 편가름과 원초적 무력 숭배가 상황을 좌우할 때 대화가 제공하는 솔루션의 효용성은 어디까지일까? 일방적인 자기 주장, 타자와의 차별화를 목표로 한 진열장식 대화가 빈발하는 오늘, 대화가 진정 문제해결의 기반이 될 수 있는 근거와 조건은 무엇일까? 남북간에, 미중간에, 여야간의 갈등이 대화로 해소될 수 있으리란 믿음을 정말 우리는 공유하는가? 이런 근본적 질문들에 대한 겸허한 성찰과 새로운 소통양식을 탐구해야 할 문명적 전환기에 있다는 생각을 더욱 절감하게 된 자리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