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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e Mountain과 IMF

3년전 하바드엔칭 연구소 학자들의 연례모임이 있었던 화이트마운틴 옴미마운트 워싱턴 리조트를 다시 찾았다. 아름다운 이곳을 방문했던 2020년 1월, 자고 일어나니 폭설로 온 천지가 하얗게 덮였다. 호텔 주변으로 아무도 걸어가지 않은 눈덮인 숲길을 걸으면서 넓은 평원, 하얗게 변한 침엽수들의 사이를 한참 걸었던 기억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1944년 7월 1일 2차대전 이후의 국제질서를 재편하기 위한 연합국통화금융회의가 이곳에서 개최되어 브레턴우즈협정이라 통칭되는 국제통화기금협정(Agreement of the International Monetary Fund)이 조인되었다. 44개국이 조인한 브레턴우즈협정의 핵심은 국제적인 자유무역의 활성화와 그에 기초한 외환시장의 안정이었다. 이를 위해 미국 달러의 금환본위제(금·달러본위제)와 조정 가능한 고정환율제를 채택했다. 미국의 달러화를 IMF 가맹국들이 일정한 환율로 매매함으로써 자국통화와 달러, 그리고 금이 간접적으로 연결되게 한 것이다. 기축통화의 지위를 확보한 미국은 막대한 양의 금을 보유하는 것과 함께 자국 경제를 인플레이션 없이 안정적으로 관리할 책임을 맡았다.

1층 한 구석에 IMF 협정이 체결된 방이 기념공간으로 보존되어 있다. 당시 연합국 대표들의 사진과 테이블이 남겨져 있다. 하지만 이 장소성을 홍보하려는 의지가 별로 없는 듯 눈여겨보지 않으면 스쳐 지나가기 십상이다. 오히려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는 넓은 홀의 소파와 아름다운 주변 풍경에 더 눈이 간다. 전후질서구축이란 세계사적 결정이 내려진 곳이지만 2023년 이곳의 모습은 그냥 호젓하고 아름다운 한 리조트에 불과하다. 찾아오는 사람들 역시 그 누구도 이곳에서 브레튼우즈 체제나 IMF 를 떠올리지 않는다. 흰 눈과 빨간 지붕, 고풍스런 건물의 위용 속에서 사람들은 제각기 휴식과 평안을 찾기 바쁘다.

미국이 금본위제를 폐지하면서 브레튼우즈 협정의 축은 크게 흔들렸고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패권적 지위도 이전만 못하다. 하지만 대안이 없는 현실에서 달러가 지니는 힘은 여전하다. 세계 각국은 달러보유고를 신경써야 하고 유동성 위기를 겪는 국가들은 IMF라는 구원투수에 의해 강제적인 구조조정을 당하기도 한다. 중국의 부상, 미국의 방대한 재정적자, 양적 완화에 의한 달러인플레 등이 앞으로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전후질서의 구축이란 역사적 결정이 내려진 장소가 휴가와 여행을 즐기는 일상인의 리조트가 되어 있는 모습을 보면서 세계의 흐름과 개개인의 삶의 관계를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