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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틀랜드 미술관

한겨울의 포틀랜드는 다소 을씨년스러웠다. 날씨가 흐렸던 탓도 있지만 여행객도 드물고 가게들도 대부분 문을 닫은 거리풍경 탓이 더 컸다. 해안을 따라 여러 등대들이 있는 곳을 찾았는데 사람은 없고 비는 내렸지만 경치는 아름다왔다. 곳곳에 과거 전투의 기억, 요새로서의 흔적들이 남겨져 있어서 이곳이 독립전쟁 당시의 격전지였음을 말해주지만 대부분 희미하게 퇴색되고 눈에 띄지도 않는다. 평화상태가 오래 지속된 미국의 풍요가 낳은 결과일터이다. 전쟁터가 관광지가 되는 것 – 좋은 것이다.

랍스터를 먹는 아름다운 레스토랑을 찾아 빗길을 무릅쓰고 찾아간 ‘두 등대’ 지역도 문을 닫아 발길을 돌려야 했다. 대안으로 태국 음식점을 찾아 한 시간을 달려간 곳도 역시 closed!. 결국 five guys 에서 햄버거로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그런데 저녁에 들렀던 레스토랑은 예상밖으로 멋지고 인상적이었다. 넓은 홀, 개방된 주방, 각종 해산물과 와인 바, 관광객이라기보다 지역주민들인 듯 싶은 많은 손님들이 제각기 즐겁게 담소하는 모습이 정말 정겹고 아름다왔다. 자연풍광이 주는 아름다움과 각양 인간들의 역동적인 활동이 주는 멋스러움은 그 결이 다른 듯 싶다.

이튿날 아침 포틀랜드 아트 미술관을 종인이와 함께 관람했다. 계획했던 곳이 아니었기에 큰 기대를 가졌던 것은 아닌데 의외로 전시내용이 훌륭했다. 고풍스러운 건물 외부에는 ‘인간’을 주제로 한 조각품이 설치되어 있었고 1층에는 다양한 인간들을 카메라에 담았던 사진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특히 Richard Avedon 의 마릴란 먼로, 에즈라 파운드, 마틴 루터 킹 등 유명인의 표정사진이 인상적이었다. 이름없는 평범한 시민의 일상을 담은 사진들의 무게감도 삶의 진정성이란 점에서는 다를 바 없었다. 우리 모두도 저런 한 장의 사진으로 남게 되는 것이 아닐까.

Picasso, Renoir, Degas, Mattise, Sisley, Sargent 등 낯익은 화가의 작품들도 있어 친숙한 느낌이었다. 현대화가들의 강렬하고 추상적인 이미지 가운데서도 간간히 눈길이 가는 작품이 없지 않지만, 역시 나같이 평범한 관람객의 입장에서 인상파, 낭만파의 그림만큼 한결같은 아름다움을 느끼는 장르는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작가의 작품 앞에서 한참을 서 있는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런 느낌과 감동은 역시 주관적일 수밖에 없겠구나 생각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