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vities

사사친, 사비넷

오랜 대학생활을 하면서 주로 학술조직이나 연구관련 학회들에 참여해왔다. 사회학자로서 한국사회학회와 사회사 연구자로서 한국사회사학회는 내 오랜 학교생활과 거의 겹칠 정도로 많은 시간을 보낸 학술조직이다. 그래서일까 지금 나는 두 학회의 법인 이사장 직을 맡고 있다. 학회의 이사장이란 직책이 별 권한이나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생 관여해온 학술조직을 그런 모양으로라도 도울 수 있다는 것이 명예로운 일임은 분명하다.

정년을 하고 나니 새로운 모임에 참여할 기회가 생긴다. 포럼이란 이름을 지닌 모임이 그 대표적인 사례인데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정기적으로 만나 강연을 듣거나 정보를 공유하는 자리다. 형태에 따라 꽤 제도화가 된 규모있는 포럼도 있고 그동안 활동해온 개별적 인연을 바탕으로 가벼운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포럼도 있다. 개인적으로 어떤 포럼에는 수동적으로 참여하고 더이상 참여하지 않는 포럼도 있지만 적극적인 참여를 하는 포럼도 있다.

거창한 이름을 내걸지 않으면서 참여하게 되는 모임들도 있다. 최근 참여하게 된 사비넷과 사사친이 그런 사례다. 사비넷은 사회학과 비즈니스 네트워크란 말에서 짐작하듯 사회학과 동문들 가운데 비지니스 활동을 하는 분들 중심으로 이어져온 모임이다. 사회학과 동문회가 출범하고 주로 학계 바깥에서 중요한 활동을 하던 분들 중심으로 이 모임이 시작되었고 개인적으로는 그 출범과정을 지켜보면서 일부 뒷바라지를 했던 기억이 있다. 학교를 정년하자 김병용 회장께서 나도 초청해주어 참여하기 시작했다.

사사친은 사회사학회 친구들이란 말의 줄임말 격인데 한국사회사학회 활동에 깊이 참여해온 연구자들 가운데 이제 정년을 한 노학자들 중심의 친목모임이다. 사사친은 대체로 비슷한 연배의 학자들로 구성된 소규모 모임인 탓에 아직은 학술적인 주제나 학회 관련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주를 이룬다. 반면 사비넷은 세대를 달리하는 다양한 연령층의 모임으로 골프를 통해 친목을 도모하면서 서로의 유대를 확인하는 모임이다.

지난 주말 사비넷의 모임이 있었고 나로선 처음으로 참여했다. 오랫동안 기업을 경영해온 선배도 있고 퇴직을 한 분도 있지만 대부분 다양한 영역에서 현역으로 활동하는 동문 후배와 제자들이었다. 골프라는 운동이 한편으로 높은 문턱이 될 수 도 있어 보이지만 역으로 그 운동이 지닌 특성이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묶어주고 또 정서적인 유대감을 강화하는 듯 했다. 학계 중심의 모임과는 그 색깔과 분위기가 다른, 독특한 정감과 적절한 자율성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life · 시공간 여행

소쇄원

GIST에 와 있는 기간동안 강의가 없는 시간을 이용해서 남도여행을 시작하기로 했다. 다녀보고 싶었지만 좀처럼 짬을 내지 못한 곳이 적지 않은데 광주를 거점으로 오갈 수 있으니 비교적 수월하게 길을 나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오늘 그 첫 장소로 담양의 소쇄원을 택했는데 약 30분이면 갈 수 있다는 후배교수의 조언이었다. 실제로 주중이어서 길은 크게 붐비지 않았고 소쇄원을 찾은 방문객도 많지 않아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었다.

소쇄원(瀟灑園)은 조선 중종 때의 학자 양산보(梁山甫,1503~1557)가 지은 별서정원이다. 소쇄라는 말은 ‘밝고 깨끗하다’는 뜻인데 자연미와 구도 면에서 조선시대 정원 중에서 첫손으로 꼽힌다. 1983년 7월 사적 제304호로 지정되었고, 2008년 5월에 명승 제40호로 변경되었다. 조선 중기 호남 사림문화를 이끈 인물들, 예컨대 면앙 송순, 하서 김인후, 제봉 고경명, 송강 정철 등이 이곳에서 교유하며 정치, 학문, 시를 논했다.

울창한 대숲을 배후로 하고 작지만 아름다운 계곡을 굽어보며 중앙에 ‘光風閣’이란 현판이 걸린 정자가 서 있다. 꾸미지 않은 담백한 모습이 주위와 잘 어울려 마치 원래부터 있던 자연물처럼 느껴진다. 왜 저런 이름이 붙여졌을까 생각하다가 내가 국민학교 시절 매일 오가던 금호강변에도 ‘光風樓’라는 2층 누각이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조선 태종 12년(1412)에 처음 짓고 선화루라 이름 지었던 것을 성종 25년(1494)에 당시 안의 현감 정여창이 광풍루라고 이름을 바꾼 곳이다. 광풍각과 광풍루 – 어린 시절 고향의 기억을 남도여행 첫 날 담양에서 떠올리게 된 것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광풍(光風)은 ‘비가 갠 뒤에 맑은 햇살과 함께 부는 상쾌하고 시원한 바람’이란 뜻이다. 과연 두 곳 모두 그런 곳이어서 이름과 실제가 잘 어울린다. 하지만 저 이름 속에 그런 뜻만 담겨 있었을까는 의문이다. 스승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화를 입은 후 향리로 내려온 양산보는 은거하는 선비의 삶에 더 이상 조정 권력다툼의 그림자가 어른거리지 말기를 바라는 심정을 저 현판에 담고싶지 않았을까. 강직한 성품에 김종직 문하였던 정여창이 선화루를 광풍루로 바꿔 부른 것도 장차 무오사화가 일어나 많은 사람이 희생되고 자신도 연루되어 유배될 것을 예감한 탓일지 모르겠다는 과한 상상까지 해보게 된다.

상쾌한 光風을 바랬는데 성난 狂風을 만나는 역경을 양산보도 정여창도 겪었다. 그런 인생사 아이러니는 지금 우리도 종종 접하지만, 자연은 그때나 오늘이나 멋과 여유를 잃지 않는게 중요하다고 교훈하는 듯 하다. 소쇄나 광풍의 뜻에는 그렇게 살리라 다짐하는 사림 처사 특유의 결기가 담겨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하며 21세기 오늘 내 삶도 되돌아 본다.

life · 오늘의 화두

묘한 9월

9월 개학으로 4학기 만에 대면강의가 시작된다. 여전히 감염자 숫자는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경각심이나 조심스러움은 많이 사라졌다. 식당이나 커피숍은 이미 이전 상황으로 돌아간 모습이고 학교 캠퍼스도 예전같은 활기를 기대하는 모양새다. 개인적으로도 코로나로부터 벗어나는 날이어서 반갑다. 국민비서 구삐의 이름으로 귀하는 격리대상자이며… 위반하면 처벌될 수 있으며… 어려움이 있으면 아래 번호로 연락하십시요라는 영혼없는 메시지를 받았을 때 기분이 떠오른다. 마침 날씨도 선선하고 마당의 대추나무와 감나무 잎새들에는 옅은 주황색이 비치기도 해서 신선한 가을, 해방감을 느껴도 되리란 기대감이 차오른다.

한 주일 전 좌담을 위해 몇 시간 대화와 식사를 함께 했던 사람 중 한 분이 감염되었는데 며칠 내로 참석자 3명 전원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지금까지 잘 피해왔는데 결국… 하는 안타까움도 없지 않지만,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일인 담에야 언젠가는 올 일이 이제 왔다는 담담함이 더 컸다. 둘러보면 드러내지 않으면서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이 주변에 적지 않다. 자발적 격리라 하지만 좁은 자기공간에 갇혀있어야 하는 생활이 쉬울 리는 없다. 혼자 있을 공간의 경계선을 치면서 ‘위리안치’라는 옛 유배형을 떠올렸다. 사람의 이동을 제한하고 만남을 통제하는 것이 태형이나 장형보다 훨씬 가혹한 형벌임을 오래전부터 알았던 것이다.

21세기 유배형이 있다면 집주위의 가시울타리를 치는 대신 스마트폰을 압수하거나 전원을 차단하는 것이 되었을 듯 싶다. 격리기간 중 유투브가 친절한 방문객 노릇을 톡톡히 했으니 말이다. 마음에 드는 동영상은 마치 나를 찾아 먼길을 온 벗과 같이 반가왔다. 온라인 상에서 이런 저런 강연과 정보들을 접하면서 나는 위리안치 상황에서도 빈객을 맞아 담소할 수 있었던 조선조의 선비를 떠올렸다. 간혹 내 상태를 꿰뚫어보고 있는 듯한 추천동영상을 접할 때면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빅브라더를 만나는 놀라움에 흠칫 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온라인을 통해 공간의 격리감을 뛰어넘고 정서적 고립감을 해소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나도 전형적인 포노사피엔스로 변모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격리 해제를 목전에 둔 상태에서 돌이켜보니 잠시나마 강제적으로라도 휴식하게 된 의미있는 기간이었다. 약간의 열과 기침이 동반되긴 했으나 크게 어려움 없이 회복된 것 매우 감사한 일이다. GIST 부임 후 네 학기만에 처음으로 대면수업이 시작되었는데 그 첫 주 수업부터 휴강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은 못내 아쉽다. 하지만 학생들은 언제나 그러하듯 휴강을 환영했으리라. 아! 묘한 느낌으로 맞이하는 9월이다.

life · 오늘의 화두

에이티즈 게릴라

이틀간 에이티즈의 노래를 계속 들었다. 이번에 발매한 앨범 8집 타이틀곡 ‘게릴라’ 영상을 유투브에서 보게된 것이 계기였다. 이들이 해외에서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고 특히 올해 초 유럽 현지공연에 수만의 청중을 열광시킨 그룹이란 사실은 진작 알고 있었다. 최근 빌보드 차트의 상위에 진입하고 국내에서도 상당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는 소식도 접했다. 하지만 굳이 이들의 노래를 찾아 들어보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이들이 발산하려는 메시지가 내 사회학적 호기심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노래를 음악 외적인 시각에서 평가하는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니지만, 에이티즈 같은 아티스트의 경우는 그런 시각에서 살펴보는 것도 필요하고 유용하리라 생각을 한다.

실제로 이번 앨범 발매에 앞서 공개한 트레일러와 포스트는 문명론적 관점에서 읽어야 할 내용으로 가득하다. 아이돌의 역동적인 노래에 어울리지 않는 디스토피아적 도시공간이 영상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나키스트를 상징하는 문양을 영상 속에 또렷하게 배치시킨 이유는 무엇인가? 왜 해적과 게릴라의 이미지를 내걸고자 하는가? 이런 물음들은 음악적이기에 앞서 사회문화적으로 답할 쟁점이다. 체계적으로 통제되고 감시되는 현실의 벽과 그 ‘지겨운 반복’을 부셔버리려는 자유로운 영혼을 대비시킨 노랫말들과 영상은 아티스트로서의 에이티즈 나름의 현실진단이자 응답인 셈이다. 세상을 바꾸고 벽을 허물라는 과격한 구호를 외치면서도 개개인의 필링, 감정, 사랑, 자유를 강조하는 모습에서 수십년 전 전세계적으로 심대한 영향을 미쳤던 비틀즈가 연상되기도 한다. 이들이 한국보다 유럽에서 더 열렬한 사랑을 받은 이유 가운데는 그런 점도 있을지 모른다.

이번 8집 앨범에 수록된 7곡은 서로 연결된 메시지로 뚜렷한 서사성을 지니고 있는데다 그 내용이 갖는 사회문화적 함의가 강렬하고 만만치 않다. 곡의 제목들만 봐도 프로파간다, 사이버펑크, 게릴라, Where Do I Go, 뉴월드 등으로 문명비판적 시리즈물을 방불케 한다. “세상이여 깨어나라”고 명령조로 일갈한 뒤 거짓, 통제, 규율, 증오, 이기심과 같은 저항할 대상을 열거하고 “우리를 감시하는 하늘의 눈(“eyes in the sky”)을 보라고 외친다. 또한 거짓과 감시로 박제된 디스토피아적 현실과 그것을 벗어나려는 움직임, 감정의 힘을 느끼기 시작한 자들의 결집과 각성,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힘과 운동을 강조한다. 동영상의 화면에는 프랑스 혁명, 감시사회, 대중통제를 상징하는 이미지가 오마주되어 있고, 공식 설명 영상에서는 보다 직설적으로 이 게릴라적 저항운동의 의의와 그 범위를 언급하기도 한다.

가사들도 의외로 직설적이다. 시적이기보다 산문적이고 은유적이기보다 선언적이다. 그래서 노래말에 담긴 지향과 주장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내 안의 무언가가 계속 눈뜨려 하고 있어. 눈을 떠 느껴 봐, 하늘에 날린 빛처럼 우린 자유로워…(섹터1) /사슬에 묶인 듯 꼭두각시 같은 춤사위만, 무엇도 느낄 수 없는 이곳은 full of lies (사이버펑크) / 두 귀를 막은 채 두 눈을 가린 채 똑같은 인형처럼 살 수 없잖아 이제 시간이 됐어, 우리 필로 세상을 깨워, break the wall, 세상을 바꿀 우린 게릴라 (게릴라). / 눈을 떠 진실들과 마주할 때 비로소 세상은 바뀔 수 있어, 어둠이 걷힐 때는 한 줄기 빛이면 충분하지, 천둥처럼 깨워 세상을, 신세계가 눈앞에 곧 다가올 이 시대. 새로운 세계를 준비해.. (뉴월드)

유투브로 노래와 영상을 들으면서 나는 소설 ‘멋진 신세계’를 생각했다. 고도의 과학기술에 기반한 감시사회의 도래, 인간의 기계화를 추적한 문명비판물의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멋진 신세계에서는 이 암울한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간의 출현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는다. 에이티즈의 앨범에서도 완벽하게 관리되는 세상, 뻔한 행동이 지겹게 반복되는 현실 앞에서 내면의 감정, feeling, 자유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이들이 저항의 연대를 형성하는 것을 주요한 모티브로 삼는다. 노래로 예술로 감정과 필링으로 암울한 시대상을 깨트리자는 메시지가 강렬하다.

아나키즘의 세계관을 표방하면서도 과거 유럽의 68세대나 미국의 히피들에게서 보였던 거칠고 퇴폐적인 모습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사실도 주목할 일이다. 멤버들은 한결같이 단정하고 깔끔하며 밝은 표정으로 역동적인 군무를 춘다. 영화배우를 뺨칠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과 단정한 표정으로 노래하는 이들과 노랫말에 담긴 강렬한 저항서사는 언뜻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아름다운 개성과 저항의 파워가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한국 아이돌 문화의 놀라운 혁신일지 모르겠다. 에이티지는 그런 가능성을 전형적으로 또 성공적으로 보여준 사례라 할만하다. 나름의 세계관을 노래 속에 담아 전파하려는 이들의 원대한 포부가 앞으로 어디까지 확장될 것인지 궁금하다. 이 대담한 그룹의 활동이 예술적으로는 물론이고 사회문화적으로도 선한 영향력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activities

광복절의 독도 그림

8월 15일 77주년 광복절이다. 일제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된 날로서 기미년 3.1 독립선언서에 쓰인대로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이 확인된 날이다. 3년 뒤 대한민국 헌법에 기초한 제1공화국이 출범한 정부수립일이기도 하다. 이 날에 담긴 의미는 다중적이고 기념하는 내용도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어서 단일하진 않다.

3.1운동 이래 널리 공유된 함성은 ‘대한독립만세’였고 여운형은 ‘건국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임시정부의 대일투쟁조직은 ‘광복군’이었다. 그래서 독립, 광복, 건국, 자주 등의 개념이 늘 함께 한다. 우리는 이 날을 광복절로 기념하지만 범국민적 열성으로 건립된 기념관의 이름은 독립기념관이다. 독립이란 말에는 과거에 국가가 없었던 신생국의 이미지가 있고 광복이란 말은 이전 시대와의 질적 차별성을 드러내는데 한계가 있다. 신생이나 회복의 의미를 넘어서는 역사적 이중성, 즉 복구하면서도 극복하는 질적 전환을 드러낼 개념화가 절실하다. 동시에 분단으로 인한 미완의 한계, 남은 과제까지도 포함될 수 있는 개념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광복절 하루를 나름 어떻게 보낼까 생각하다가 2주전 다녀온 독도를 그려보기로 했다. 풍랑으로 인해 상륙은 못했지만 망망 대해의 한가운데 의연한 자태로 서 있는 작은 섬의 모습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겨 언젠가는 그 이미지를 표현해보리라 생각했었다. 지금도 한일간 분쟁의 한복판에 서 있는 곳이지만 비바람, 풍랑, 고독, 정치 등 어떤 조건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의연하게 지켜내는 당당함을 절실하게 느꼈다. 화선지 위에 검은 먹의 농담으로 찌푸린 하늘, 넘실대는 바다, 그 가운데 당당히 선 독도의 모습을 그려보며, 21세기 독립자주와 인생살이에서의 의연함을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가 생각한다.

life · 오늘의 화두

소동파와 주자

여름 무더위를 이겨내려고 며칠 소동파의 적벽부를 써보고 있다. 행서로 이름난 명의 문장가 문징명의 서첩을 임서하는데 점점 더 글씨보다는 글의 내용에 빠져드는 느낌이다. 화자와 객이 나누는 두 갈래의 생각은 서로 다른 듯 하면서도 잘 어우러져 글 전반의 격조와 정감을 고조시킨다. 참으로 명문이구나 싶다.

객은 인생의 짧음과 강물의 끝없음을 비교하며 이를 슬퍼한다 (哀吾生之須臾 羨長江之無窮). 하지만 물이 제 아무리 흘러도 강은 그대로이고 달이 수없이 차고 기울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음을 들어 화자는 이렇게 응대한다. 변함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것이 일순간이고 불변의 시각에서 보면 만물이 끝이 없다고. (客亦知夫水與月乎? 逝者如斯而未嘗往也 盈虛者如彼而卒莫消長也。蓋將自其變者而觀之則天地曾不 能以一瞬 自其不變者而觀之則物與我皆無盡也)

성리학의 근간을 구축한 주자는 소동파 같은 사람이 권력을 잡으면 사회가 어지럽게 될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고 한다. 질서와 분수를 중시하고 위계적인 사회관계를 중시하는 주자학의 관점에서 도교적인 생각이나 행동은 위험해 보였을 법도 하다. 유교입국을 추구했던 삼봉 정도전도 그런 생각을 가졌을까? 조선 성리학의 대가인 퇴계는 주자를 숭앙했지만 동파의 태도를 나쁘게 보진 않았다 한다. 한국의 유자들이 중국에 비해 산림처사의 기질을 좀더 강하게 지녔던 탓이었을지 모르겠다. 어쨋든 중국에서도 조선에서도 이 글이 불후의 명문으로 인정되었던 것을 보면 사람의 정서가 유학적인 것만으로 환원되기는 어려웠음이 분명하다.

개인의 삶도 공동체의 질서도, 자연의 생태계도 과도한 욕망으로 고통을 받는 21세기 오늘 더 필요한 자세는 어떤 것일까? 주자와 같이 옳고 그름을 항상 의식하면서 노력하는 적극적 주체형일까 아니면 동파처럼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포용하는 여유와 관조의 인간형일까? 자문하는 중 “조물자”라는 글에 눈이 간다. 만물은 다 주인이 있어서 내 소유라 할 것이 없지만 시원한 바람과 밝은 달은 제아무리 가져도 금할 자가 없고 아무리 써도 없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조물자의 끝없음이고 우리가 함께 기뻐할 일이 아닌가. (取之無禁 用之不竭 是造物者之無盡藏也 而吾與者之所共樂)

노력과 수고를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욕망과 집착에 사로잡히지 않고, 만물의 영고성쇄를 조망하면서도 덧없음의 허무에 빠지지 않는 것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것 같다. 자기 삶에 대한 당당한 자부심과 유일한 존재로서의 자긍심과 함께. 유아론을 벗어나 타자 및 만물과 공존하고 겸손할 줄 아는 것 – 매우 요긴한 지혜이자 태도가 아닐까 싶다. 이를 위해서는 적벽부의 내용처럼 만물의 주인인 조물자에 대한 믿음이 불가결할지 모른다. 그 믿음 위에서 화자의 관조와 객의 노래가 통했을 것이다. 주자와 유학, 근대 합리주의 정신이 놓친 것이 조물주에 대한 이 경외의 심성 아니었을지 모르겠다. 그렇게 보면 여전히 우리는 주자의 영향력 아래 있다고 보아야 할까…

life · 오늘의 화두

기한과 때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에 다 때가 있나니 /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할 때가 있으며,

아침에 전도서 3장을 읽다가 며칠전 정전기념일, 북한의 전승절 기념식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을 전한 영상을 떠올린다. 남북협력과 북미협상에의 기대보다 핵무력에 기초한 자주노선의 길을 견지하겠다는 분명한 선언이었다. 특히 한국에 대해 전례없이 강한 적대감을 드러낸 것이 예사롭지 않다. 윤석렬 정부의 출범이나 남한 보수층의 대북 비난이 빌미가 되었을 테지만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쇠퇴, 미중 대립의 격화와 북중관계의 호전이라는 달라진 국제환경이 체제내구력에 대한 확신을 강화시킨 결과임도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북한의 호전적이고 정제되지 않은 언사의 표출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한 시대가 가고 있다는 예감을 갖게 한다는 점에서 낯설게 느껴졌다. 탈냉전 이후 30년간 남북의 대화, 화해, 접촉, 신뢰가 2018년 한껏 고조되었다가 비행기 추락하듯 향후의 기대감마저 현저히 위축시킨 지금, 다시 그런 시대를 전제한 대응이 가능할지 의구심이 크다. 물론 냉전시대의 대결로 회귀하거나 일전불사를 외치는 무책임함이 그 대응책일 수는 없고 우리 사회 한켠에는 여전히 그 기대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과연 그 기대가 지속가능할까를 회의하게 만드는 상황이 너무 뚜렷한 것 같아 편치않다.

범사에 기한이 있다… 사랑할 때와 평화할 때의 기한이 다 된 것인가.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멜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 (전도서 3장 5-8) 이제는 되지 않을 미련을 갖기 보다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하는가 답답하다. 이 말씀이 위로가 되기보다 걱정을 더하는데 지혜자의 훈계에서 나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 것일까?

life · 오늘의 화두

경성제국대학

정준영 교수가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와 조선연구]라는 책을 출간하고 보내준 것을 두 달이나 지나서 훑어보았다. 경성제국대학은 국립서울대학사를 포함하여 한국학술장의 형성에 매우 중요한 주제이지만 제도사나 정책사 차원이 아닌 지식사의 대상이 된 경우는 드물다. 學知의 탐구와 연결, 그 사회역사적 영향이란 묵직한 시선으로 이에 대한 본격적 연구가 시도된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이 책은 6명의 학자를 다룬다. 경성제국대학 초대총장이자 저명한 동양학 연구자였던 핫도리 우노키치, 도쿄대 사학과 출신으로 초창기 조선사학 연구를 주도한 오다 쇼고와 이마니시 류, 도쿄대 지나철학과 출신으로 중국의 학술문화가 조선과 일본으로 확산되는 과정을 추적한 후지쓰카 지카시와 아베 요시오, 미국 유학자이자 독실한 기독교도로 강압적 식민정책을 비판했던 이즈미 아키라 등이다. 이들 연구자들의 학술활동을 통해 식민주의적인 것과 근대적인 것이 어떻게 지식의 형태로 공존할 수 있었는지를 탐색하고 있다. 식민통치와의 연결성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단순한 사실왜곡이나 정책효과만으로 환원하지 않으려는 문제의식이 야심차다.

식민사학의 극복을 부르짖은지 수십년이고 한국학의 전 세계적 확산을 지향하는 지금, 식민지 시대 일본인 학자의 조선연구를 추적하게 만든 동력은 무엇일까? 이태진 교수가 주도한 총서기획이 ‘식민사학의 극복’을 표방한데서 그 답의 일단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그 문제의식에 더하여 정치사나 제도사의 시각과 다른 지성사의 독자적 공간을 탐색하려 한다. 다루어진 6명의 인물들은 개인적으로 성실하고 유능한 학자들이면서 동시에 식민지 문화통치의 주요한 기능수행자였다. 연구자의 시대적 환경과 학문적 가치지향 간에는 암묵적 협력과 잠재적 긴장이 공존하기 마련이다. 이들에게 이 문제는 2차방정식이 3차 방정식으로 바뀌듯 더 복잡했을까 아니면 오히려 1차 방정식처럼 단순화되어 있었을까? 결국 연구자의 존재구속성과 자율성이란 쟁점으로 이어지는 지성사 고유의 문제와 맞닿는다.

일본에 중점을 두면서도 중국, 일본, 조선을 가로지르는 문명 교류사의 맥락에서 조선을 연구했던 이들의 유산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도 남겨진 과제다. 저자는 이 책에 “지양으로서의 조선, 지향으로서의 동양”이란 부제를 달았는데 지양과 지향의 종합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 실제로 후지쓰카가 청조문명의 조선전파가 독특하고도 독보적임을 확인하고 홍대용, 박제가, 김정희의 높은 성취를 평가한 것, 아베 요시오가 송명학의 일본 전래길에 우뚝 선 퇴계 이황을 주목한 것은 지금도 의미있는 지적 유산이 되어 있다. 한양대 정민 교수는 후지쓰카 교수의 컬렉션 일부를 하바드 옌칭 도서관에서 찾아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이란 책을 출간하기도 했고 식민지 하에서 한중일을 잇는 네트워크는 더욱 확대된 것이 사실이다.

식민지 하 동양연구는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을 뒷받침하는 작업이 되고 말았고 결국 해방후 그 맥이 단절되었다. 하지만 냉전기를 겪으면서 기피되고 잊혀진 것일 뿐 그것을 지적으로 극복했다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정면으로 부딪쳐 그 유산과 싸울 기회를 갖지 못한 채 1990년대 이후 한중일을 함께 사고하는 논의는 급격히 증대했다. 일본 학계의 논의가 적극 소개되고 중국과의 교류가 급진전하면서 한중일 학술회의가 붐을 이루기도 했다. 그 맥락에서 동아시아 범주가 주목을 받았고 동북아 지역연구의 중요성도 높아졌다.

다시 동북아는 정치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숨고르기를 하는 형국이다. 미중의 패권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한중관계도 소원해지고 한일관계는 더욱 악화되고 있다. 중국은 중화주의로의 노골적인 경사를 뚜렷이 하고 있고 일본도 자국주의로의 걸음을 가속화한다. 이런 상황에서 동아시아, 동북아시아는 어떻게 상상되어야 할까? 오늘의 동아시아나 동북아는 동양학의 지향과 어떻게 다른 것일까? 가치와 문명의 차원에서 서구의 존재는 배제해도 좋은가? 질문은 계속되고 공부할 과제는 끝이 없다. 정교수를 비롯한 유능한 후학들의 건투를 비는 마음이다.

activities

한국문학과 사회의 탄생

포스텍 융합문명연구원장 박상준 교수의 신작 [현대 한국인과 사회의 탄생]을 중심으로 한 세미나에 줌으로 참여했다. 흥미로운 주제인데다 박교수로부터 그 책을 증정받은 고마움도 있어 즐겁게 동참했다. 융합문명연구원을 설립한 초대원장 송호근 교수, 토론자로 온 권보드레 교수, 작가이자 사회학자인 정수복 박사도 볼 수 있어서 더욱 반가왔다.

한국에서의 사회 형성은 나도 관심을 가져온 주제다. 개념사와 사회사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전환기 역사를 해석하는데 미력이지만 애를 썼다. 유교적이고 자족적이었던 전통체제로부터 벗어나 낯선 시대에 직면한 한국인들에게 ‘사회’란 ‘문학’이나 ‘개인’ 못지 않게 새로운 현상이었고 그것은 현실보다 개념의 형태로 ‘다가올 미래’를 표상했다. 애국계몽운동기, 글쓰기를 담당한 식자층들이 이런 미래를 상상하고 새로이 등장한 매체가 그것을 확산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인직이 사회 개념을 ‘만세보’에 소개하고 이광수가 문학을 강조하며 청년들이 사회운동에 관심을 보인 것도 유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겠다.

문제는 식민지라는 조건, 국가를 잃게 된 상황에서의 ‘새로운 미래’ 상상이 겪어야 하는 제약이었다. 사회, 문화, 개인은 국가라는 정치공동체를 전제함으로써 그 구체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 근대의 특징이다. 1910년 국가의 소멸은 식민지 하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개인과 사회, 문화를 어떻게 사고해야할지 새로운 곤경을 야기했다. 이 시기 등장한 민족범주는 혈연적이고 문화역사적인 공동체로서 국가를 대체하는 효율적인 주체로 부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개인과 사회의 공간을 열어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현대한국인의 탄생을 국가나 민족이 아닌 사회의 탄생과 연결시키고 그것을 문학의 장에서 확인하려는 발제자의 시각은 참신하다. 권보드레 교수도 민주주의의 문제를 소환한 것을 중요하게 평가했다. 20세기 한국의 지성사를 꿰는 화두로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주목할 때 사회의 영역과 개인의 존재가 좀더 잘 부각될 수 있는 것도 분명하다. 어쩌면 민족주의, 사회주의, 국가주의의 과도한 영향을 벗어날 때 문학이 미친 심대한 영향을 더욱 또렷이 확인할 수 있을지 모른다.

종교의 문제가 결락된 것 아닌가는 질문이 청중에게서 제기되었다. 내 개인의 체험으로도 개인과 사회라는 말에 이끌린 바탕에는 기독교적 사유가 작용했음을 또렷하게 느낀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던 동학과 천도교의 영향도 20세기 초반에는 매우 강력했다. 실제로 개인의 존재, 그들의 자발적인 연대로 형성되는 사회를 강력히 옹호한 것은 정부도 민족도 아니었고 종교단체를 비롯한 민중의 결사체들이었다. 개인의 각성이 정치적 권리나 경제적 부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세속과 맞서는 종교적 윤리체계에서 비롯되었다는 막스 베버의 명제를 떠올렸다. 그런 점에서 문학과 종교는 같은 기능을 수행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좋은 세미나였다.

life · 오늘의 화두

한국문화의 세계화?

보스턴에서 만난 적 있던 Peggy Levitt 교수가 자신이 쓴 논문을 보내왔다. 하바드 한국학연구소에서 개최한 문화관련 심포지엄에서 만났다가 심보선 교수와의 인연을 알게 되었고, 마침 한국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상을 수상한 직후라 자연스럽게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이후 다시 전반적인 한국상황을 알고싶다고 해서 약 한시간 반 정도 인터뷰를 하기도 했었다.

글이 던지는 질문이 신선하다. 저자들의 관심은 다음과 같은 문제의식에 담겨있다. ” How does art from what have been culturally peripheral countries that were not former colonies of Western powers scale shift or find its way to the global center? What can the Korean case tell us about the circulation of contemporary literature in a “small language?” 한마디로 서구 식민지도 아니었던 주변부 국가의 예술이 지구적 중심부로 진출할 길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 한국의 사례는 그런 ‘소수 언어’가 세계문화에 대해 미치는 영향력과 관련하여 어떤 의미를 갖는가?

BTS의 인기와 K-Culture 의 영향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아직 적절한 설명틀은 보이지 않는다. 누구는 정부의 정책효과로 설명하고 누구는 한국인의 독특한 기질을 강조한다. 필자들은 문학의 “하부구조”라는 말로 포괄될 수 있는, 쓰기, 읽기, 출판, 마케팅의 플랫폼, 통로, 켄테이너, 대문들에 주목한다. 한국문화의 세계화가 주변부-중심부 패러다임의 단순성을 극복하고 비서구 사회의 문화가 지구적 중심성을 획득할 수 있는 설명도식으로 보완, 활용될 수 있을지 기대해 봄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