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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과 한반도 평화

10월 20일 제6회 포스텍 포스리 평화포럼을 조직하여 포스코센터 세미나롬에서 개최하고 좌장 역할을 수행했다. 북한이 핵을 방어용이 아닌 공격용 무기로 사용할 수 있다는 핵교리를 법제화하고 전술핵운용부대를 창설하는 등 북핵의 위협이 고도화되는 가운데 7차 핵실험 임박설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그간 금기시되었던 한국의 독자핵무장론이 고개를 들고 있고 군사충돌의 위험에 대한 안보불안도 대두되는 시점인만큼 전문가들의 격의없는 토론장으로 유익한 자리였다.

그간의 핵정책 전반에 대한 전문가로 한용섭 전 국방대 부총장과 세종연구소 정성장 박사 두 분의 발제를 듣고 십여명 전문가들이 패널로 토론에 참여했다. 한교수는 확장억제정책의 강화를, 정박사는 독자핵무장을 대응책으로 주장했고 다양한 배경을 지닌 패널들의 토론이 이어졌다. 국제정치, 남북관계, 군사안보, 평화구축, 한국경제 등 여러 관점에서 이 사안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논의되었다.

참가자들은 지난 30년 북한 비핵화를 목표로 한 한미의 대응정책은 총체적으로 실패했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이미 독자적 핵국가임을 주장하는 북한이고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국제사회가 받아들이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핵을 가진 북한과 어떻게 한반도 평화를 지속가능한 형태로 보장할 수 있는가인데 이와 관련해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난무했다. 핵이란 특수무기가 갖는 비대칭성을 고려하면 보다 발본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데는 큰 이견이 없었지만 대응방식에 대해서는 시원한 합의를 얻기 어려웠다.

결국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방법론인데 이것이 매우 중요한 전략적 방향설정과 무관치 않다는게 사안의 무거움이다. 지금까지 성공하지 못한 비핵화의 원칙과 비핵화 정책을 여전히 견지하면서 북한의 변화를 견인할 것인가, 북한이 반응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의 강력한 한미동맹의 가시적 확장억제정책 방안이 있을 수 있는가, 독자 핵무장을 추구할 때 얻을 수 있는 이익과 부담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등이 그 핵심적인 쟁점이라 하겠다.

전문가들의 대체적 견해는 고도화된 북핵에 대응하는 새로운 접근이 필수적이지만 한국의 독자 핵개발은 득보다 실이 만다는 의견이었다. 결국 미국핵에 의존하면서 기존의 3축체제를 비롯한 국방능력의 획기적 강화를 추구하는 것이 그 대안으로 언급되었고 주한미군의 존재 자체가 강력한 확장억제의 근간이라는 견해도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미국이 자국의 위험을 무릅쓰고 한국에 대한 확장억제정책을 언제까지나 견지할 것인가, 언젠가 도래할 수도 있는 미군철수나 한미동맹 약화의 때 한국의 안보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핵을 가진 북한이 북미수교라는 목표를 달성하게 될 경우 남북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등.. 쟁점이 무엇인지는 꽤 확인되었지만 여전히 시원한 답을 얻기 어려운, 그러나 유익한 포럼이었다. 다만 점점 어려운 시대로 접어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던 자리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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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산성

11일 오후 담양 금성산성을 올랐다. 원래 광주시 양림역사문화마을을 둘러볼 계획으로 출발했는데 노치준 목사께서 당신이 안내할 수 있는 날 오기를 원하는 문자를 보고 행선지를 도중에 바꾼 것이다. 금성산성은 의병운동과 동학농민운동 관련 자료에서 본 적이 있고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이 멋있어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가로수가 멋지게 도열한 옛 신작로 길을 꽤 달려 도착한 금성산성 주변은 갓 시작한 듯 보이는 고급 팬션이 주인공처럼 자리잡고 있었다. 멀리 산자락을 내다보는 좋은 자리에 멋진 카페와 숙소가 있고 잔디마당에는 젊은 사람들이 모여 사진 찍느라 여념이 없다. 그 아래에는 캠핑장도 있다고 하니 이 일대가 이런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 듯하다. 그러고보니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굳이 금성산성이란 역사적 유적을 의식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주차장에서 산성까지는 2키로의 산길을 올라야 한다. 비교적 길은 잘 닦여져 있지만 군데 군데 돌언덕을 넘어야 해서 손쉽게 오르기엔 다소 벅찬 거리다. 올라가는 동안 꼭 한 명이 호젓이 그 길을 오르고 있었고 산성 주변도 인적을 찾을 수 없었다. 길을 오르면서 계속 떠오른 생각은 이 높은 곳에 성을 쌓고 무엇을 지키려 했던 것일까 하는 것이다.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이런 수고와 정성을 쏟았던 것일까?

높은 산 정상 가까이 바위 위에 세워진 성문과 누각을 보면서 나는 견고한 성문이라기 보다는 중세의 수도원 입구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임진왜란에서 또 동학농민전쟁 과정에서 이곳이 쓰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피란처 역할에 더 가까왔을 법하다. 성문에 ‘보국문’이라는 현편이 걸려있는 걸로 보아 분명 ‘나라’를 지키는 것임은 틀림없는데 그 나라를 이런 산꼭데기에서 지킬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일까? 신앙을 지키려 수도원에 은거하던 마음을 빗대어 본다면 이들에게 국가는 그런 신앙의 대상, 신성한 무엇으로 표상되었을지 모르겠다. ,

정작 이곳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 것은 성문 누각에 서서 멀리 첩첩의 산자락을 바라볼 때였다. 여러 산줄기들이 앞뒤로 겹쳐 이어지는 산맥과 그 사이의 들판을 바라보면서 ‘국토산하’라는 말이 실감있게 와 닿았다. 이들이 지키려던 것은 결국 이 땅이었고 산과 강을 내다보는 이 자리가 그런 산하의식을 자각케 하는 곳이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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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최재석 학술상

한국사회사학회가 주관하는 최재석 학술상 3회 시상식이 열렸다. 고려대학교 수암패컬티 하우스에서 학회 임원진, 유족대표를 포함한 운영위원들, 심사위원들이 모여 수상자들에게 시상하고 성과를 치하했다. 나는 이사장으로서 인사말을 하고 상패를 수여하며 여러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하느라 몸도 마음도 바빴다.

내실이 있고 학문적 내공도 만만찮지만 규모는 크지 않은 학회에서 이만한 학술상을 운영할 수 있는 것은 대단한 자원이다. 고 최재석 교수의 유지가 뚜렷했고 또 그 뜻을 깊이 새겨 실행한 부인 이춘계 여사의 거액 쾌척이 이것을 가능케 했지만, 한국사회사학회를 이만큼 신뢰할만한 학술단체로 키운 여러 선학, 동학 들의 수고와 열정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내심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김상준 교수가 본상을 받았다. 동서양 문명을 큰 틀에서 조감하면서 과거와 미래를 새롭게 해석하려는 야심찬 저작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결과다. 사실 동서양의 비교는 해묵은 주제이지만 정작 그것을 붙들고 씨름하는 지적 탐구 수준은 그다지 깊다 하기 어려운 탓에 김교수의 노력이 더욱 기대되는 것이다. 우수박사학위논문으로 선정된 박해남 박사의 논문은 내가 지도했던 것이어서 더욱 고맙고 기뻤다. 1980년대 올림픽이라는 대형 스포츠 이벤트를 전후하여 진행된 다양한 생활세계 재조정 노력을 사회정책으로 개념화한 신선한 시각이 앞으로도 더욱 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life · 오늘의 화두

秋聲

가을비가 온 종일 내리면서 채 물들지 못한 낙엽들로 마당이 어지럽다. 비 내리는 소리를 듣다가 중국 송대 문장가 구양수의 글 추성부(秋聲賦)가 생각났다. 한 폐친이 이에 관한 이야기를 올려놓은 글을 읽었던 기억 때문일터이다. 인터넷에서 전문을 다운 받아 다시 읽어보았다. 지금 읽어도 명문이니 명불허전이다.

동자와의 문답으로 시작해서 동자 이야기로 마무리되는 글이다. 때론 조용한 듯 때론 요란한 듯 들리는 것이 무엇인가 물으니 동자는 나무들 사이에서 들려오는 소리라 한다. 시인은 이것이 바로 秋聲 곧 ‘가을소리’라 했다. 차갑고 냉정한 기운으로 무성함을 자랑하던 초목의 잎을 떨어뜨리는 가을은 만물변화의 섭리를 드러내는 기운이 드러나는 계절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인가 말년의 김홍도가 추성부를 화제로 한 그림을 남기기도 했다.

불현듯 나도 그 기분을 표현해 보고 싶었다. 먹을 갈고 붓을 잡아 잎이 떨어진 나목 두 그루를 그리고 추성부 문장 가운데 마음에 와닿는 부분들을 적었다. ‘성정이 없는 초목도 때가 오면 내려놓을 줄 안다’고 노래한 시인은 “사람이 금석의 몸을 지닌 것도 아닌데 어찌 초목과 더불어 영욕을 다툴 것인가”라고 자문한다. 그래서 가을소리를 안타까와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덧붙인다.

시인은 가을 소리를 들으면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동자 이야기로 글을 마무리한다. 계절을 즐기지 못하고 인생사의 교훈만 찾으려는 식자들의 버릇에 대한 따끔한 일침을 이런 천진스런 행동 속에 담으려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고보니 가을비를 그냥 즐기지 못하고 이런 저런 일거리를 만들려는 나한테도 던지는 가르침일지 모르겠다. 어쨋든 가을의 정서만은 담뿍 담으려 노력한 소품 한 점이 만들어졌다. 올 가을 거실에 걸어두고 추성을 들어보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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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聲

가을비가 온 종일 내리면서 채 물들지 못한 나뭇잎들도 떨어진다. 조용히 비 내리는 소리를 듣다가 중국 당대 문장가 구양수의 명문 추성부를 떠올렸다. 한 폐친이 이에 관한 이야기를 올려놓은 글을 읽었던 기억이 있지만 인터넷에서 추성부 전문을 다운 받아 천천히 읽어보았다. 명문으로 알려져온 글귀 답게 지금 읽어도 글맛이 좋다.

동자와의 문답으로 시작해서 동자 이야기로 마무리되는 글이다. 때론 조용한 듯 때론 요란한 듯 들리는 것이 무엇인가 물으니 동자는 나무들 사이에서 나오는 소리라 한다. 작자는 이것을 ‘가을소리’라 했다. 그리고 곧 가을풍경으로 시선을 옮긴다. 가을은 그 차갑고 냉정한 기운으로 무성함을 자랑하던 초목의 색을 물들이고 잎을 떨어뜨린다. 시인은 가을을 만물의 마무리를 깔끔하게 하는 기운으로 파악한다.

불현듯 추성부의 기분을 표현해 보고 싶어 붓을 잡았다. 잎이 떨어진 나목 두 그루를 앞에 배치하고 마음에 와닿는 문장의 대부분을 화제처럼 담았다. ‘초목은 성정이 없으나 때가 오면 내려놓을 줄 안다’고 노래한 시인은 다시 “사람이 금석의 몸을 지닌 것도 아닌데 어찌 초목과 더불어 영욕을 다툴 것인가”라고 자문하고 마침내 가을소리를 안타까와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마무리한다. 이런 감정을 획 속에 충분히 담아내기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지만 마음만은 글씨 속에 담뿍 담으려 노력했다.

과거의 명문들 속에는 종종 제3자가 등장하여 작가의 허세를 뒤흔드는 촌철살인의 메시지를 던지곤 한다. 이 글에 등장한 동자는 가을 소리를 배경으로 꾸벅꾸벅 졸고 있다. 계절을 즐기지 못하고 인생사의 교훈만 찾으려는 식자들의 버릇에 대한 따끔한 일침이 아닐까 싶다. 그러고보니 가을비를 그냥 즐기지 못하고 이런 저런 일거리를 만들고 만 나한테도 던지는 동자의 가르침일지로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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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암박물관

미암일기의 필자이자 조선 중기의 학자 유희춘의 종가와 박물관이 있는 담양 장산마을을 다녀왔다. 오랜 고택과 정자, 박물관의 멋진 배치가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이다. 특히 연못 한가운데 서 있는 모현관은 그 규모나 배치, 건물양식 등 여러 면에서 다른 곳에서 보기 어려운 이색적인 모습으로 눈길을 모은다.

자그마하지만 독특한 양식의 이 건물은 한국전쟁 직후 미암일기의 가치를 인식한 서울대총장, 전남대총장, 광주시장 등이 참여한 유적보존회가 후손과 함께 건립한 것이라 한다. 유서깊은 종택과 사당 앞에 기하학적 모양을 담은 서양식 석조 건물을 짓기로 한 이들의 미학과 결단이 놀랍다. 모현관이란 글씨는 허백련이 썼다 하는데 단아하면서도 힘이 있다. 돌에 새긴 글씨가 생각보다 건물과 잘 어울려 굳이 나무 편액을 달려 하지 않은 유연함이 신선하게 와닿는다.

미암일기는 유희춘이 평생 쓴 일기인데 현재는 1567년부터 1577년까지 쓴 일기 11권이 전해져온다. 조선중기의 사회상이 다양하게 기록되어 있지만 특히 사대부 집안의 부부간 역할을 보여주는 내용들이 조선가족사를 연구하는 이들이 종종 언급하곤 한다. 미암의 부인인 송덕봉은 유교적 가치에 얽메이지 않고 자신의 의사를 매우 분명하게 내세운 당당한 여성이었고 자신의 문집을 남길 정도로 학식도 남달랐다. 입구의 미암박물관에 미암일기를 비롯한 여러 자료들이 보관되어 있다.

소나무들이 울창한 먼산을 배경으로 수백년 역사가 여러 건물 속에 쌓여있는 이 마을의 모습이 정겹다. 종택 뒤에는 16세기 건축양식과 미술사적으로도 가치가 있는 벽화가 담긴 사당이 있고 언덕위의 단아한 정자에는 이들이 자연과 더불어 살던 자취가 서려있다. 종택과 박물관 사이의 연못 속에는 한말과 일제하, 전쟁기의 힘들었던 세월이 뭍혀있을 것이다. 서양식 모현관과 한식풍의 박물관은 20세기 문명개화의 힘이 이곳에까지 미친 자취일 터인데 이런 궁벽진 곳을 찾는 이가 점점 없어지는 21세기에는 어떤 자취와 이야기가 이 공간에 새로이 덧붙여질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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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친, 사비넷

오랜 대학생활을 하면서 주로 학술조직이나 연구관련 학회들에 참여해왔다. 사회학자로서 한국사회학회와 사회사 연구자로서 한국사회사학회는 내 오랜 학교생활과 거의 겹칠 정도로 많은 시간을 보낸 학술조직이다. 그래서일까 지금 나는 두 학회의 법인 이사장 직을 맡고 있다. 학회의 이사장이란 직책이 별 권한이나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생 관여해온 학술조직을 그런 모양으로라도 도울 수 있다는 것이 명예로운 일임은 분명하다.

정년을 하고 나니 새로운 모임에 참여할 기회가 생긴다. 포럼이란 이름을 지닌 모임이 그 대표적인 사례인데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정기적으로 만나 강연을 듣거나 정보를 공유하는 자리다. 형태에 따라 꽤 제도화가 된 규모있는 포럼도 있고 그동안 활동해온 개별적 인연을 바탕으로 가벼운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포럼도 있다. 개인적으로 어떤 포럼에는 수동적으로 참여하고 더이상 참여하지 않는 포럼도 있지만 적극적인 참여를 하는 포럼도 있다.

거창한 이름을 내걸지 않으면서 참여하게 되는 모임들도 있다. 최근 참여하게 된 사비넷과 사사친이 그런 사례다. 사비넷은 사회학과 비즈니스 네트워크란 말에서 짐작하듯 사회학과 동문들 가운데 비지니스 활동을 하는 분들 중심으로 이어져온 모임이다. 사회학과 동문회가 출범하고 주로 학계 바깥에서 중요한 활동을 하던 분들 중심으로 이 모임이 시작되었고 개인적으로는 그 출범과정을 지켜보면서 일부 뒷바라지를 했던 기억이 있다. 학교를 정년하자 김병용 회장께서 나도 초청해주어 참여하기 시작했다.

사사친은 사회사학회 친구들이란 말의 줄임말 격인데 한국사회사학회 활동에 깊이 참여해온 연구자들 가운데 이제 정년을 한 노학자들 중심의 친목모임이다. 사사친은 대체로 비슷한 연배의 학자들로 구성된 소규모 모임인 탓에 아직은 학술적인 주제나 학회 관련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주를 이룬다. 반면 사비넷은 세대를 달리하는 다양한 연령층의 모임으로 골프를 통해 친목을 도모하면서 서로의 유대를 확인하는 모임이다.

지난 주말 사비넷의 모임이 있었고 나로선 처음으로 참여했다. 오랫동안 기업을 경영해온 선배도 있고 퇴직을 한 분도 있지만 대부분 다양한 영역에서 현역으로 활동하는 동문 후배와 제자들이었다. 골프라는 운동이 한편으로 높은 문턱이 될 수 도 있어 보이지만 역으로 그 운동이 지닌 특성이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묶어주고 또 정서적인 유대감을 강화하는 듯 했다. 학계 중심의 모임과는 그 색깔과 분위기가 다른, 독특한 정감과 적절한 자율성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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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쇄원

GIST에 와 있는 기간동안 강의가 없는 시간을 이용해서 남도여행을 시작하기로 했다. 다녀보고 싶었지만 좀처럼 짬을 내지 못한 곳이 적지 않은데 광주를 거점으로 오갈 수 있으니 비교적 수월하게 길을 나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오늘 그 첫 장소로 담양의 소쇄원을 택했는데 약 30분이면 갈 수 있다는 후배교수의 조언이었다. 실제로 주중이어서 길은 크게 붐비지 않았고 소쇄원을 찾은 방문객도 많지 않아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었다.

소쇄원(瀟灑園)은 조선 중종 때의 학자 양산보(梁山甫,1503~1557)가 지은 별서정원이다. 소쇄라는 말은 ‘밝고 깨끗하다’는 뜻인데 자연미와 구도 면에서 조선시대 정원 중에서 첫손으로 꼽힌다. 1983년 7월 사적 제304호로 지정되었고, 2008년 5월에 명승 제40호로 변경되었다. 조선 중기 호남 사림문화를 이끈 인물들, 예컨대 면앙 송순, 하서 김인후, 제봉 고경명, 송강 정철 등이 이곳에서 교유하며 정치, 학문, 시를 논했다.

울창한 대숲을 배후로 하고 작지만 아름다운 계곡을 굽어보며 중앙에 ‘光風閣’이란 현판이 걸린 정자가 서 있다. 꾸미지 않은 담백한 모습이 주위와 잘 어울려 마치 원래부터 있던 자연물처럼 느껴진다. 왜 저런 이름이 붙여졌을까 생각하다가 내가 국민학교 시절 매일 오가던 금호강변에도 ‘光風樓’라는 2층 누각이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조선 태종 12년(1412)에 처음 짓고 선화루라 이름 지었던 것을 성종 25년(1494)에 당시 안의 현감 정여창이 광풍루라고 이름을 바꾼 곳이다. 광풍각과 광풍루 – 어린 시절 고향의 기억을 남도여행 첫 날 담양에서 떠올리게 된 것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광풍(光風)은 ‘비가 갠 뒤에 맑은 햇살과 함께 부는 상쾌하고 시원한 바람’이란 뜻이다. 과연 두 곳 모두 그런 곳이어서 이름과 실제가 잘 어울린다. 하지만 저 이름 속에 그런 뜻만 담겨 있었을까는 의문이다. 스승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화를 입은 후 향리로 내려온 양산보는 은거하는 선비의 삶에 더 이상 조정 권력다툼의 그림자가 어른거리지 말기를 바라는 심정을 저 현판에 담고싶지 않았을까. 강직한 성품에 김종직 문하였던 정여창이 선화루를 광풍루로 바꿔 부른 것도 장차 무오사화가 일어나 많은 사람이 희생되고 자신도 연루되어 유배될 것을 예감한 탓일지 모르겠다는 과한 상상까지 해보게 된다.

상쾌한 光風을 바랬는데 성난 狂風을 만나는 역경을 양산보도 정여창도 겪었다. 그런 인생사 아이러니는 지금 우리도 종종 접하지만, 자연은 그때나 오늘이나 멋과 여유를 잃지 않는게 중요하다고 교훈하는 듯 하다. 소쇄나 광풍의 뜻에는 그렇게 살리라 다짐하는 사림 처사 특유의 결기가 담겨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하며 21세기 오늘 내 삶도 되돌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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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9월

9월 개학으로 4학기 만에 대면강의가 시작된다. 여전히 감염자 숫자는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경각심이나 조심스러움은 많이 사라졌다. 식당이나 커피숍은 이미 이전 상황으로 돌아간 모습이고 학교 캠퍼스도 예전같은 활기를 기대하는 모양새다. 개인적으로도 코로나로부터 벗어나는 날이어서 반갑다. 국민비서 구삐의 이름으로 귀하는 격리대상자이며… 위반하면 처벌될 수 있으며… 어려움이 있으면 아래 번호로 연락하십시요라는 영혼없는 메시지를 받았을 때 기분이 떠오른다. 마침 날씨도 선선하고 마당의 대추나무와 감나무 잎새들에는 옅은 주황색이 비치기도 해서 신선한 가을, 해방감을 느껴도 되리란 기대감이 차오른다.

한 주일 전 좌담을 위해 몇 시간 대화와 식사를 함께 했던 사람 중 한 분이 감염되었는데 며칠 내로 참석자 3명 전원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지금까지 잘 피해왔는데 결국… 하는 안타까움도 없지 않지만,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일인 담에야 언젠가는 올 일이 이제 왔다는 담담함이 더 컸다. 둘러보면 드러내지 않으면서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이 주변에 적지 않다. 자발적 격리라 하지만 좁은 자기공간에 갇혀있어야 하는 생활이 쉬울 리는 없다. 혼자 있을 공간의 경계선을 치면서 ‘위리안치’라는 옛 유배형을 떠올렸다. 사람의 이동을 제한하고 만남을 통제하는 것이 태형이나 장형보다 훨씬 가혹한 형벌임을 오래전부터 알았던 것이다.

21세기 유배형이 있다면 집주위의 가시울타리를 치는 대신 스마트폰을 압수하거나 전원을 차단하는 것이 되었을 듯 싶다. 격리기간 중 유투브가 친절한 방문객 노릇을 톡톡히 했으니 말이다. 마음에 드는 동영상은 마치 나를 찾아 먼길을 온 벗과 같이 반가왔다. 온라인 상에서 이런 저런 강연과 정보들을 접하면서 나는 위리안치 상황에서도 빈객을 맞아 담소할 수 있었던 조선조의 선비를 떠올렸다. 간혹 내 상태를 꿰뚫어보고 있는 듯한 추천동영상을 접할 때면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빅브라더를 만나는 놀라움에 흠칫 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온라인을 통해 공간의 격리감을 뛰어넘고 정서적 고립감을 해소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나도 전형적인 포노사피엔스로 변모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격리 해제를 목전에 둔 상태에서 돌이켜보니 잠시나마 강제적으로라도 휴식하게 된 의미있는 기간이었다. 약간의 열과 기침이 동반되긴 했으나 크게 어려움 없이 회복된 것 매우 감사한 일이다. GIST 부임 후 네 학기만에 처음으로 대면수업이 시작되었는데 그 첫 주 수업부터 휴강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은 못내 아쉽다. 하지만 학생들은 언제나 그러하듯 휴강을 환영했으리라. 아! 묘한 느낌으로 맞이하는 9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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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티즈 게릴라

이틀간 에이티즈의 노래를 계속 들었다. 이번에 발매한 앨범 8집 타이틀곡 ‘게릴라’ 영상을 유투브에서 보게된 것이 계기였다. 이들이 해외에서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고 특히 올해 초 유럽 현지공연에 수만의 청중을 열광시킨 그룹이란 사실은 진작 알고 있었다. 최근 빌보드 차트의 상위에 진입하고 국내에서도 상당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는 소식도 접했다. 하지만 굳이 이들의 노래를 찾아 들어보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이들이 발산하려는 메시지가 내 사회학적 호기심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노래를 음악 외적인 시각에서 평가하는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니지만, 에이티즈 같은 아티스트의 경우는 그런 시각에서 살펴보는 것도 필요하고 유용하리라 생각을 한다.

실제로 이번 앨범 발매에 앞서 공개한 트레일러와 포스트는 문명론적 관점에서 읽어야 할 내용으로 가득하다. 아이돌의 역동적인 노래에 어울리지 않는 디스토피아적 도시공간이 영상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나키스트를 상징하는 문양을 영상 속에 또렷하게 배치시킨 이유는 무엇인가? 왜 해적과 게릴라의 이미지를 내걸고자 하는가? 이런 물음들은 음악적이기에 앞서 사회문화적으로 답할 쟁점이다. 체계적으로 통제되고 감시되는 현실의 벽과 그 ‘지겨운 반복’을 부셔버리려는 자유로운 영혼을 대비시킨 노랫말들과 영상은 아티스트로서의 에이티즈 나름의 현실진단이자 응답인 셈이다. 세상을 바꾸고 벽을 허물라는 과격한 구호를 외치면서도 개개인의 필링, 감정, 사랑, 자유를 강조하는 모습에서 수십년 전 전세계적으로 심대한 영향을 미쳤던 비틀즈가 연상되기도 한다. 이들이 한국보다 유럽에서 더 열렬한 사랑을 받은 이유 가운데는 그런 점도 있을지 모른다.

이번 8집 앨범에 수록된 7곡은 서로 연결된 메시지로 뚜렷한 서사성을 지니고 있는데다 그 내용이 갖는 사회문화적 함의가 강렬하고 만만치 않다. 곡의 제목들만 봐도 프로파간다, 사이버펑크, 게릴라, Where Do I Go, 뉴월드 등으로 문명비판적 시리즈물을 방불케 한다. “세상이여 깨어나라”고 명령조로 일갈한 뒤 거짓, 통제, 규율, 증오, 이기심과 같은 저항할 대상을 열거하고 “우리를 감시하는 하늘의 눈(“eyes in the sky”)을 보라고 외친다. 또한 거짓과 감시로 박제된 디스토피아적 현실과 그것을 벗어나려는 움직임, 감정의 힘을 느끼기 시작한 자들의 결집과 각성,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힘과 운동을 강조한다. 동영상의 화면에는 프랑스 혁명, 감시사회, 대중통제를 상징하는 이미지가 오마주되어 있고, 공식 설명 영상에서는 보다 직설적으로 이 게릴라적 저항운동의 의의와 그 범위를 언급하기도 한다.

가사들도 의외로 직설적이다. 시적이기보다 산문적이고 은유적이기보다 선언적이다. 그래서 노래말에 담긴 지향과 주장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내 안의 무언가가 계속 눈뜨려 하고 있어. 눈을 떠 느껴 봐, 하늘에 날린 빛처럼 우린 자유로워…(섹터1) /사슬에 묶인 듯 꼭두각시 같은 춤사위만, 무엇도 느낄 수 없는 이곳은 full of lies (사이버펑크) / 두 귀를 막은 채 두 눈을 가린 채 똑같은 인형처럼 살 수 없잖아 이제 시간이 됐어, 우리 필로 세상을 깨워, break the wall, 세상을 바꿀 우린 게릴라 (게릴라). / 눈을 떠 진실들과 마주할 때 비로소 세상은 바뀔 수 있어, 어둠이 걷힐 때는 한 줄기 빛이면 충분하지, 천둥처럼 깨워 세상을, 신세계가 눈앞에 곧 다가올 이 시대. 새로운 세계를 준비해.. (뉴월드)

유투브로 노래와 영상을 들으면서 나는 소설 ‘멋진 신세계’를 생각했다. 고도의 과학기술에 기반한 감시사회의 도래, 인간의 기계화를 추적한 문명비판물의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멋진 신세계에서는 이 암울한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간의 출현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는다. 에이티즈의 앨범에서도 완벽하게 관리되는 세상, 뻔한 행동이 지겹게 반복되는 현실 앞에서 내면의 감정, feeling, 자유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이들이 저항의 연대를 형성하는 것을 주요한 모티브로 삼는다. 노래로 예술로 감정과 필링으로 암울한 시대상을 깨트리자는 메시지가 강렬하다.

아나키즘의 세계관을 표방하면서도 과거 유럽의 68세대나 미국의 히피들에게서 보였던 거칠고 퇴폐적인 모습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사실도 주목할 일이다. 멤버들은 한결같이 단정하고 깔끔하며 밝은 표정으로 역동적인 군무를 춘다. 영화배우를 뺨칠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과 단정한 표정으로 노래하는 이들과 노랫말에 담긴 강렬한 저항서사는 언뜻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아름다운 개성과 저항의 파워가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한국 아이돌 문화의 놀라운 혁신일지 모르겠다. 에이티지는 그런 가능성을 전형적으로 또 성공적으로 보여준 사례라 할만하다. 나름의 세계관을 노래 속에 담아 전파하려는 이들의 원대한 포부가 앞으로 어디까지 확장될 것인지 궁금하다. 이 대담한 그룹의 활동이 예술적으로는 물론이고 사회문화적으로도 선한 영향력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