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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차 한독통일자문회의

12차 한독통일자문회의가 베를린에서 개최되어 5월 20-25일간 독일을 방문했다. 한국과 독일 정부간 정례 회의로 양국을 오가며 개최되는 이 모임은 분단의 경험과 통일의 과제와 관련한 정보와 지식을 교환하고 토론하는 장이다. 유럽에서 독일이 겪고 있는 여러 난관과 동북아의 지정학적 동요 속에서 한국이 감당해야 할 여러 문제들을 서로 나누는 공부기회이기도 하다. 감사하게도 나는 한국측 위원으로 여러 차례 이 회의에 참석할 기회를 가졌다.

이번 회의는 슈나이더 독일 연방총리실 차관과 한국의 김기웅 통일부차관이 주재했다. 회의는 총리실 대회의장에서 열렸는데 출입시 철저한 보안체크를 받아야 하는 불편이 있었지만 그만큼 무게감이 느껴졌다. 아데나워부터 역대 총리의 초상화가 걸려있는데 아직 메르켈 총리의 그림은 걸려 있지 않았다. 때마침 슐츠 총리가 한국을 방문하고 DMZ에서 한국분단의 현실을 안타까와하며 통일의 열정에 공감을 표한 뉴스가 전해져 회의의 시의성이 더 크게 느껴졌다. 콜 총리의 외교자문으로 통일과정을 조율한 텔칙과 통일의 전후과정에서 중요한 정치적 사회적 역할을 수행한 슈뢰더도 80대 후반의 나이에 노익장을 과시하며 회의에 열심으로 참여했다. 여러해 이 모임에서 만나 대화를 나눈 글라이케 차관, 슈납아우프 박사 등과도 반갑게 인사했다.

많은 쟁점들이 이틀동안 진지하게 논의되었고 현장 답사를 통해서도 새로운 사실들을 접했다. 언제나 그렇듯 두 나라 상황이 다른 탓에 발제의 초점과 고민의 수준이 일대 일로 대응되지는 않는다. 분단과 통일이라는 큰 화두를 공유하고 있고 모든 주제가 그렇게 모아지지만 구체적인 문제들과 정책구상, 사회적 평가등에는 차이도 적지 않다. 2023년에 개최된 이번 회의는 두 나라 사이에 고민의 성격과 내용의 차이가 그 어느 때보다 뚜렷하게 느껴졌다. 남북한 간의 단절이 심해지고 핵위기로 인한 정치군사적 대결상황이 강화된 한반도 상황이 동서독 내부통합과 민주주의의 성숙을 고민하는 독일의 현실과 너무 이질적으로 느껴진 탓일지 모르겠다. 다만 독일측이 통일의 성공이야기를 내놓는 대신 현재 겪고 있는 고민과 갈등을 솔직하게 드러내어 우리로서 참조할 공부거리를 새롭게 얻은 느낌이다.

회의가 종료된 후 개인적으로 만난 한 원로 정치학자는 자신은 요즈음 독일통일을 점점 더 비판적으로 보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한국도 독일로부터 배우려는 태도를 벗어날 필요가 있으리라고 했다. 여전히 독일의 많은 점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운 바 없지 않으나 저 부분까지 포함하는 종합적인 시선이 없이 독일통일 과정을 단순화하거나 공식화하는 것이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여러모로 생각을 많이 하게 한 학술회의였기에 그 쟁점을 몇 가지로 나누어 정리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