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오늘의 화두

가을의 빛깔

단독주택으로 이사 온 이후 첫 가을을 맞는다. 가을을 맞은 지 수십년이 되었지만 유난히 올해 계절이 바뀌는 것을 피부로 실감한다. 주택에서 거주하는 탓일게다. 아침 저녁으로 땅과 풀, 나무와 새들을 보고 신선한 공기를 맛보면서 우리의 삶이 자연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매 순간 깨닫는다.

9월이 되니 햇볕의 느낌이 다르다. 노란 기운이 강해지고 여름의 맹렬함보다 푸근함이 더하다. 대추나무를 비추는 햇살도 대추가 익어가는 것과 함께 익어가는 느낌이다. 계절 마다 제 빛깔을 가진다 하겠지만 유독 가을의 빛깔이 눈에 띠는 것은 형형색색으로 물드는 단풍과 낙엽때문이리라. 벌써 철이른 단풍과 낙엽을 보기가 어렵지 않다.

인생도 각 단계마다 제 빛깔이 있을 것이다. 지난 시기 내가 드러낸 삶의 빛깔이 어떠했든지 가을을 맞이한 나무들이 그윽한 색깔을 준비하는 것처럼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가을은 자연의 섭리와 함께 인생을 되돌아보며 성찰할 준비를 하게 만드는 복된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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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 천도교, 기독교

동학, 천도교와 기독교의 갈등과 연대 1893- 1919

이영호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이 최근 쓴 자신의 저서를 보내왔다. 제목 그대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친 시기 한국에서 동학, 천도교, 기독교의 종교적, 사상적, 조직적 갈등과 연대를 추적한 역저다. 이 세 종교는 모두 한국의 상황 속에서는 새로 시작하거나 수용되는 것이어서 전통적 질서와 세계관이 해체되고 있던 당대의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경쟁 속에 위치하였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 주제에는 관심이 컸었다. 동학의 발생, 그것의 천도교로의 전환, 기독교의 수용과 정착이 조선의 정치경제적 변화와 맞물려 진행되던 이 역동적 시기가 이론적으로나 역사적으로 흥미를 끌었다. 특히 과학주의, 세속주의 세계관이 문명의 이름으로 급속히 밀려들고 사회불평등에 대한 계급적 시각도 조악한 형태이지만 급진전되고 있던 때에 사람의 마음과 영성을 중시하는 종교적인 세계관이 강력한 힘을 발위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지 오랜 궁금함이었다.

되돌아보면 이런 개인적 관심을 충분히 끌어가지 못한 데에는 시대정신의 압력도 한 몫을 차지한다. 내적 윤리, 종교적 심성, 신앙의 본질을 정면에서 강조하기보다 늘 사회경제적 맥락과 기능의 관점에서, 외피와 문화의 수준에서만 인정하려는 역사유물론, 농민혁명론의 자장을 벗어나지 못한 이유가 적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그 한계를 넘어서려는 진지한 시도로 평가할만하다. 세계관의 기초로서의 종교, 그것이 지닌 독자적 힘, 그러면서도 동학과 천도교 사이의 분명한 단절, 다시 천도교와 기독교의 접점과 간극을 깊이 탐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1919년을 끝으로 삼고 있어서 결국 31운동에서의 천도교, 기독교의 연합으로 이어지는 맥락이 책 전체의 기본골격을 이룬다. 하지만 그 때문에 종교 자체의 본질적 긴장과 동학을 천착하는데까지 이르지 못했다는 느낌이다. 오히려 1920년대, 문화운동과 농민운동, 계급운동과 기독교 사회운동이 분출하는 과정에서 신앙과 종교, 종교와 세속의 접점과 긴장이 어떠했는지를 주목했더라면 설명의 틀도 좀더 깊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물론 그것은 또 다른 책의 주제가 되어야 할 것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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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사회학

내일부터 2학기가 시작된다. 여전히 학생들과 언제 대면할지 미지수인 상태다. 온라인 수업방식에는 꽤 익숙해졌지만 새로 개설한 ‘꿈의 사회학’ 강의 준비로 마음이 바쁘다. 한국사회학회장 취임논문으로 ‘희망의 사회학’을 썼고 3년 전 서울대 김홍중 교수와 [꿈의 사회학] 이란 책을 출간하기도 했으니 아주 낯선 주제는 아니지만 수업은 처음이다. 구글에서도 이런 명칭의 강의계획서는 찾질 못했다. 어쩌면 국내외를 막론하고 처음 하는 강좌일지도 모르겠다.

기성세대의 꿈은 한국사회의 고도성장, 도시화, 민주화, 세계화의 역동적 흐름 속에서 구성되고 작동했다. 교육을 통한 계층상승의 기회가 주어지던 시대에 가능했던 꿈이었다. 불평등은 고착화하고 지위상승의 가능성은 희박하며 원하는 일자리는 부족한 시대, 정치는 패거리 권력다툼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남북관계의 전망도 어두운 저성장의 시대에 어떤 꿈꾸기가 가능할 것인가. 디지털 기술혁신으로 열리는 초연결사회의 변화가 새로운 기회와 꿈자원을 제공해 줄 수 있을까. 그 가능성을 힘써 찾아보려는 마음이지만 수강생들의 공감을 얼마나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 단초만이라도 여는 수업이 되기를 꿈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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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공동체

잠을 깨면 대문을 열고 심호흡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 코로나와 무더위로 답답해진 만큼이나 아침 공기의 상쾌함이 좋다. 풀내음을 담은 신선한 바람을 폐부 깊이 들이마시노라면 내 숨이 생명의 원천에 가닿는듯한 신비함마저 느낀다. 헬라어에서 바람, 호흡, 영혼, 숨 등은 모두 같은 어원을 지녔다고 들었는데 충분히 그럴 법하다.

호흡공동체라는 책을 접했다. 인류는 물론이고 동식물까지도 공기를 나눠 마시는 생명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관점에서 공동체의 공기를 주목하자는 논지가 신선했다. 어떤 공기를 누구와 더불어 마시는지, 그로 인한 위험과 기회가 어떻게 배분되고 공유되는지를 공기관계로 개념화하고 그것을 둘러싼 공기의 과학과 공기의 정치를 도모하자는 제안도 새로웠다.

공기는 지구공동체에 속한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값없는 공유재이지만 오염되면 모든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미세먼지가 초래하는 오늘의 위기는 울리히 벡의 경고처럼 국경과 계층, 남녀와 노소를 불문하고 민주적으로 확산되는 위험의 명백한 신호탄이다. 숨쉬기가 힘든 위기 앞에서 공기의 과학을 강조하는 저자들의 주장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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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평화담론

한반도 평화 국제회의 (KGFP) 에서 ‘새로운 평화론’을 논의하는 세션이 구성되어 그 좌장을 맡았다. 젊고 유능한 학자들이 21세기적 맥락에서 평화의 성격과 확산을 위해 필요한 새로운 생각들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자리였다. 세 명의 발제자가 각각 ‘적극적 평화’ (정혁), ‘안정적 평화'(허지영), ‘생태적 평화'(주윤정)라는 화두를 던졌다. 이들은 모두 국가의 무력강화와 안보체제로 전쟁을 방지하는 것 만으로는 평화의 본래적 가치실현이 어렵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한 듯 했다. 구조적 폭력을 해소하는 것, 평화를 지속가능하고 안정적이게 공고화하는 것, 평화의 가치를 인간을 넘어 동물과 환경에까지 확대하는 것을 주문한 이날의 발제는 신선하고 유익했다.

토론도 진지했다. 일본 게이오대학의 명예교수인 소에야 요시히데 교수는 전세계적으로 이상주의적인 국제관계론, 평화론이 벽에 부딪치면서 현실주의적 반격이 거세지고 있음을 언급하면서 이런 변화된 상황에 어느 정도 적합성을 가질 것인지를 질문했다. 깊이 숙고해야 할 쟁점이자 어려운 숙제인 셈이다. 뉴질랜드 오타고 대학의 이성용 교수도 적극적 평화라는 개념보다 안정적 평화라는 개념이 좀 더 적합성이 높다고 평가하면서 그에 따르는 조건들이 좀더 명료해져야 할 필요를 제시했다. 강원대학교 강혁민 박사는 생태적 평화가 갖는 문명적 가치에 공감하면서 그것이 좀더 구체적인 정책아젠다로 자리잡아야 할 필요성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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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독통일자문회의

독일통일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남북관계의 진전을 모색하는 한독통일자문회의가 8월 4,5일 이틀간 열렸다. 코로나로 인해 계속 연기되다가 뒤늦게 온라인으로 개최된 이번 포럼에서는 통일독일의 내적 통합이 핵심 주제로 다루어졌다.

독일 통일 30년에 대한 양국 전문가들의 평가는 두 가지 점에서 일치했다. 구동독 지역의 경제는 구서독의 80% 수준을 상회하고 여타 영역의 통합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통일의 효과는 명백히 긍정적이다. 동시에 30%를 넘는 신연방주 주민들이 여전히 이등시민이라는 자의식을 피력하고 자신들이 차별받는다는 ‘머릿속 장벽’을 호소하고 있다. 마음과 감정의 통합은 정치와 경제의 수렴과는 별개의 과제임을 말해준다.

우리 정부의 민족공동체 통일방안도 본디 통합을 앞세우는 정책이다. 통합은 통일과 평화의 두 프로세스를 연결시키는 매개조건이자 필수요소다. 통합 없는 평화가 통일로 이어질리 없기 때문이다. 대선을 앞두고 통합-통일-평화의 정책조합을 혁신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이 어디에선가는 진지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려니 믿고 싶다. 그렇지 않다면 겨우 군통신선 복원이란 뉴스 하나에 온 정치권이 들썩이는 오늘의 모습이 너무 처량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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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봉상 심사

2021년도 월봉상 1차 심사를 했다. 코로나 19의 거리두기 지침이 완화되기를 기다린 탓에 평년에 비해 많이 늦어졌다. 작년에 출간된 200여권의 연구서들을 살펴보면서 2차심사에 올릴 5권의 저작을 선정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한 해 동안 한국학계의 한 흐름을 일별할 수 있는 흥미로운 기회임에 틀림없다.

같은 심사위원인 이기동 교수님과 도진순 교수님은 한국사 분야의 학자 개개인의 장점과 그들의 연구성향, 학계 안팎의 동향에 매우 밝다. 나는 상대적으로 사회과학계의 사회사나 근대변동, 한국학 일반을 살펴본다. 손쉽게 합의되는 수작도 있지만 평가와 의의를 달리보는 견해차가 나타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학술상의 무게와 영예가 과거에 비해 약해진 느낌이지만 필생의 연구활동에 대한 정당한 평가와 격려라는 점에서 심사의 역할은 영예로우면서도 무겁고 힘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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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학기 수업 개강

6월 28일부터 계절학기가 시작되었다. 나도 ‘현대사회사상의 흐름’이란 과목을 설강했고 15명의 학생이 수강신청을 해서 강의가 진행되고 있다. 영어로는 Lives and Thoughts of the Great Thinkers 라 했는데 사회학이라는 분과학에 한정하지 않은 삶의 궤적과 사상적 특징을 살펴보려는 뜻을 담은 것이다.

자연히 ‘사회학사’ 수업과는 구성도 내용도 다소 달라질 수밖에 없다. 같은 사람의 삶과 사상도 그것이 사회학에 미친 영향과 일반 사회에 미친 영향이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학계에 남긴 이론적 영향보다도 일반인의 삶과 행동에 남긴 기여에 좀더 초점을 맞추어 수업을 재구성해볼 생각이다.

새로운 강의안을 준비하면서 새삼스레 분과학의 틀이 내 개인의 사고와 행동을 크게 규정했다는 생각이 든다. 학계에 남긴 족적은 잘 알지만 사회적으로 어떤 활동과 영향을 미쳤는지를 잘 모르는 학자를 강의하기가 생각보다 어렵다. 이번 계절학기 수업은 그런 점에서 내게도 새로운 도전이다. 일반인에게 사회학, 또는 사회과학이란 어떤 의미를 가졌고 또 가질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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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과 시력

세종으로 이사오면서 안경을 잃어버렸다. 그런데 안경이 없이 보낸 두 달이 크게 불편하지 않다. 원래 시력이 크게 나쁘지 않은 탓이겠지만 애초 시력이 문자 해독에 맞추어져 있었던 탓도 있는 것 같다. 책 보는 것과 글 쓰는 일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던 때는 시력이 조금만 나빠도 불편을 크게 느꼈지만 정원을 돌보고 산책을 하며 저녁 노을을 감상하기에는 지금의 시력으로도 큰 불편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당분간 안경을 쓰지 않고 지내보려 마음을 먹었다. 책을 보거나 글을 써야 하는 일이 여전히 적지 않으니 언젠가는 안경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당분간 만이라도 소나무의 잎이 자라는 것과 대추나무 열매가 커가는 것을 안경 없이 바라볼 생각이다. 노트북과 핸드폰이 필수품이 되는 시대에 시력의 불편이 나를 조금 더 그런 기기들로부터 자유롭게 만들어줄지도 모른다.

곰곰 생각하면 관심에 따라 시력이 좌우되는 것 못지 않게 명료한 시력을 중시하는 것 자체가 내 생각을 좌우하기도 한다. 내 시선이 머무는 곳, 내 눈이 미치는 대상에 내 마음과 정신도 쏠리게 되는 법이기 때문이다. ‘본다’는 행위는 단순히 보이는 영상을 인지하는 것 이상의 주관적 행위임을 새삼 느낀다. 안경을 잃어버린 것이 불편한 다행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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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고 거두는 것

손바닥 만한 텃밭이지만 채소를 심고 싶은 욕구가 컸다. 조치원 시장을 가서 상추와 고추, 쑥갓과 깻잎 모종을 사 오던 날, 매우 무더웠지만 기분이 좋았다. 작은 모종 속에 담긴 생명이 새로웠기 때문일까.

심은지 꼭 일주일이 되는 날 첫 상추잎을 따서 먹었다. 향긋한 내음이 입안을 가득 채웠고 사서 먹던 맛과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입견이었을테지만 내가 심어 거두는 행동에 수반되는 어떤 감정이 입맛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심고 거두는 일 사이에는 내가 하는 일이 없다. 물을 주기도 하고 간간히 흙을 돋우어주기도 하지만 그 녀석들이 자라는데 내가 미칠 힘은 전무하다. 자라게 하시는 이는 그 분이라는 성경의 말씀이 가슴에 와 닿는다. 대지의 생명력, 흙의 약동함을 새삼 느끼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