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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포럼 발제


6월 24-6일 제주포럼에 다녀왔다.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이영호) 에서 주관하는 “화해와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역사” 세션에서 발제를 했다. 한국과 일본에서 총 4명이 발제하고 2명이 토론을 하는 자리였고 동북아의 여러 쟁점들이 언급되었지만 시간이 부족하여 밀도있는 대화로 이어지기는 어려웠다.

나는 민족주의 문제를 다루었다. 근대 이래 한,중,일의 역동성을 담보했던 민족주의가 탈냉전 이후 한단계 업그레이드 되는 기회가 있었던 점, 최근 10여년간 그 흐름으로부터 퇴행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중국의 대국지향적 민족주의, 일본에서 나타나는 ‘불안형’ 네셔널리즘, 그리고 한국의 분열형 민족주의의 현상 – 그 차이도 분명하지만 모두 지그문트 바우만이 말했던 레트로토피아의 특징을 수반할 수 있다는 염려를 피력했다.

해묵은 주제인데 여전히 현안으로 다루어져야 한다는 점이 새롭고도 답답했다. 민족이란 화두, 민족주의란 동력으로부터 벗어나기엔 인간의 존재양식이 너무 근대적인 것일지 모르겠다. 남북관계의 교착으로 인해 현실과 상상력 사이의 간극이 큰 한국의 민족주의가 자기분열적인 성격을 노정하는 것은 당분간 불가피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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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ID 백신과 디지털 거버넌스

코로나 19 백신인 아스트라제네카 1차 접종을 마쳤다. 온 세계가 힘을 모으고 국가역량이 총동원되다시피 한 탓이겠지만 예약부터 접종 후 안내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거버넌스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하는 기회가 되었다. 인터넷 예약에서 질본의 실시간 안내, 접종 의료기관의 역할과 곧 이은 확인 증명서 발송 등 전 과정이 가히 일사분란하다 할만치 체계적이었다. 이 놀라운 효율적 동원에서 선진국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도 많겠고 감시 시스템의 심화를 염려하는 사람도 제법 있을 법하다.

어쨋든 백신 접종은 감염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개인에게도 절실한 일이고 국가 차원에서도 경제회복과 정치적 리더십에도 결정적인 변수다. 그런가 하면 전인류가 함께 극복해야 할 문명적 사안이기도 하다. 오늘 접종을 받은 일은 나의 개인적 안전을 넘어서 대한민국의 국격, 인류공동체의 숙제와 과학기술문명의 자부심까지 영향을 미치는 문명사적 사건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인, 국가, 인류 차원의 관심과 노력이 중첩되는 한편으로 그 불일치와 간극에서 비롯되는 긴장을 감당하는 일이 앞으로의 큰 과제일 듯하다. 통계적으로 ‘증명’하는 총체적 성과가 뚜렷하더라도 0.1 퍼센트의 리스크를 감당해야 하는 개인의 입장에서는 통계적 증명을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오’라는 말을 대부분의 사람이 공감한다고 볼 때 통계의 확실성과 실존적 불확실성을 연결할 지점이 어디일지는 여전한 숙제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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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여와 동파

검여 유희강은 평생 소동파와 김정희를 존경하여 글씨를 연마한 예인이다. 병으로 오른 팔이 부자유하게 된 이후에도 왼손을 연마하여 좌수서로 새 장을 열기까지 한 의지의 인물이기도 하다. 검여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는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에서 소동파의 진적, “백수산 불적사 유기” 거 전시되고 있다는 것을 친구 이주현 교수가 알려주었다. 검색해보니 한 일간지에서 대서특필한 바 있고 초기 5일 이후로는 진적이 아닌 복제본이 전시된다고 했다. 이 작품이 명말청초 어느 시기에 모사된 위작일 가능성이 있다는 논란도 있음을 알있다.

그래도 한번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전화로 예약을 했다. 찾아간 박물관은 코로나 때문인지 접근이 어려웠고 담당자가 직접 문을 열어주어야 들어갈 수 있었다. 덕택에 아무도 없이 혼자 여유롭게 관람할 수 있었다. 동파의 작품은 한 점에 불과한 데다 그 가치에 대한 논란이 의식되어서인지 새로움을 크게 느끼지는 못하였다. 다만 검여 유희강의 글들, 특히 관서악부의 대작을 비롯하여 좌수서 이전의 작품들은 이전에 도록으로 볼 때와는 다른 감동을 주었다. 박물관 입구에 걸린 “恨古人不見我” 란 글 속에 담긴 검여의 대단한 자부심이 참으로 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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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위에 살다

오랜 아파트 생활을 마감하고 단독 주택으로 이사한 후 땅 위에 산다는 느낌이 새삼 와 닿는다. 넓지는 않으나 정원이 있고 소나무와 대추나무, 살구나무와 매화나무가 줄장미와 함께 자라기 때문만은 아니다. 문 밖을 나서도 동네 한바퀴를 돌아도 흙과 땅이 보이는 환경 그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니 아파트 생활이 무려 40년이었으니 그간 땅은 여행할 때만 밟는 곳처럼 되어 있었다. 오랫동안 공중에 떠서 살다가 땅 위에 내려와 사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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須讀五車書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3층 로비에 ‘수독오거서’라는 글씨 액자를 걸었다. 김명환 관장의 부탁으로 두보의 시구 중 한 부분을 쓴 것인데 학생들이 더 많은 책과 가까이 할 것을 권하는 내용이다. 한자와 친숙하지 않은 지금의 학생들을 감안하여 아래에 한글로 그 뜻과 함께 중앙도서관이 지혜로운 인재의 산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재직한 모교의 중앙도서관에 정성을 담은 글을 기증할 기회가 생겼다는 것, 그것이 학생들에게 격려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기쁘고 보람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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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 and new

조형근 박사가 장인이 만든 수제품 만년필을 보내왔다. 정성이 깃들였을 그 만년필을 대하니 초보 강사 시절 ‘old and new’란 쪽지와 함께 받았던 선물이 떠올랐다. 그 속에는 붓과 만년필이 들어있었는데 보낸 분의 탁월한 감각에 감탄했었다.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학자에게 문방사우나 필기구에 대한 욕심은 없을 수 없다. 실제로 붓과 펜은 동양의 선비와 서양의 지식인들의 가장 중시하던 아이템이었다.

동서양 문명이 붓과 펜 위에 성립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편리한 연필과 불펜이 등장하면서 점차 일상에서 멀어졌고 컴퓨터 시대가 되어서는 아예 우리 주변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뛰어난 글을 쓰는 작가나 학자들도 정작 글씨는 초등학생 같은 경우도 적지 않다. 붓으로 쓴 글씨에 놀라는 중국 학자도 적지 않다. 기술이 동서문명을 통합시키고 있다고 환영해야 할 지 오랜 문명의 품격을 폐기한다고 아쉬워해야 할지 모르겠다.

짐을 정리하면서 붓과 만년필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 어떤 것은 자주 써서 손때가 묻었고 어떤 것은 아예 새 것으로 남아 있지만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글을 쓰는 시대의 ‘new’는 디지털 첨단기기의 몫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붓과 만년필에 담겨온 정성과 품격은 결코 사라지거나 무의미해지지 않을 것이다. ‘流水居然’이란 글씨까지 새겨진 정갈한 만년필을 접하니 法古創新을 표방한 새로운 도전을 해볼 마음이 생기는 듯 하다. 무모한 과욕일까 참신한 발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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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위원 활동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의 위원으로 위촉되어 어제 (5.20) 8차 총회에 참석했다. 1945년 유앤 창설과 더불어 출범한 유엔 산하 전문기구인 유네스코는 교육 문화 분야의 국제협력을 주요 활동으로 삼고 있다. 유엔의 역할이 매우 컸던 한국에서 유네스코의 활동은 초창기부터 괄목할만 했다. 한국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문화의 교류와 소통에 큰 몫을 담당했다.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관련해서만 이해되는 오늘의 관심이 아쉬운 이유이기도 하다.

2021년 국가간, 종족간, 인종간, 계층간, 종교간 갈등이 더욱 거세지는 추세다. 문화와 양식의 충돌도 적지 않고 코로나 19가 보여주듯 환경위험도 긴장을 더한다. 그럼에도 유네스코와 위상이 전만 못한 것은 다양한 국제기구들, NGO 들의 활동이 유네스코의 독자적 지위를 상대화시킨 탓도 있겠지만 평화라는 상위 목표, 본질적 가치에 대한 민감성이 약해진 탓도 없지 않을 듯하다.

이번에 살펴본 유네스코 헌장 전문에는 유엔 창설의 목적이었던 평화가 가장 앞에 언급되어 있다. 교육도 문화도 평화라는 가치의 실현으로 수렴되어야 할 20세기 숙제를 천명한 것이리라. 온라인으로 열린 어제 총회에서도 다양한 분야의 국제협력과 다양성 교육이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여러 전문가들과 함께 이런 일에 함께 할 수 있어서 기쁘다. 한경구 사무총장의 식견과 리더십이 큰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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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남 외, 절멸과 갱생 사이

박해남, 김재형, 곽귀병, 김일환, 이상직, 최종숙, 추지현 등이 함께 연구하고 펴낸 책 <절멸과 갱생 사이: 형제복지원의 사회학>이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에서 간행되었다. 40여년 전 신용하 교수님 주도로 사회사학회를 만들어 역사적 사건과 자료들을 사회학적으로 해석하는 작업을 시작한 이래 역사사회학, 사회사적 연구가 그 폭과 너비를 확장해왔다. 이 책이 그로부터 시작된 지적 역량의 꾸준한 발전상을 보여준 것 같아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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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축의 시간

어제 오늘 달라지는 잔디와 나무잎의 초록빛을 감상하다가 아 어제가 5월 18일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스치자 고요하던 마음에 파문이 인다. 40년 전 그 날 아침 신문을 보면서 느꼈던 당혹스러움과 그 이후의 역사적 부침, 오늘의 정치적 소란에 대한 소회까지 파장의 폭은 넓다. 평온하던 마음이 흐트러지는 것이 싫어 애써 생각의 깊이를 축소시키려 하는 나를 발견한다.

개인이 실존적으로 경험하는 시간과 공동체의 역사가 구성되는 시간은 그 결이 다를 수 밖에 없다. 나라의 흥망성쇄가 개인의 생노병사와 별개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대신할 수 없으니 양자가 모두 소중한 것이다. 하지만 인류 공동체의 관점에서 보면 개인의 실존적 시간은 부차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헤겔은 ‘역사의 간지’라는 말로 표현한 바 있다.

종교가 가르치는 우주적 시간, 신의 개입, 카이로스의 순간은 국가공동체가 전유하는 시간감각의 한계를 더 문명론적이면서 실존적인 차원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코로나의 위험, 기술문명의 충격 앞에서, 여전히 삶의 무게와 질병의 두려움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 5월 18일을 맞이하는 방식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시간감각을 국가화하지 않으면서 개인의 실존적 삶과 문명사적 시간성까지 포괄하는 해석의 폭과 다양성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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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탈출

아파트를 벗어났다. 결혼 후 40년 가까이 몸에 밴 아파트의 편리함 대신 흙과 정원을 손 보는 즐거움으로 바꾸고 싶은 바램의 결과다. 휘어진 살구나무 가지에 줄을 매 주면서 맛보는 새로운 기쁨이 앞으로의 기대감을 높인다. 하지만 분주한 일상과 각종 모임에 익숙해진 탓인지 오랜 삶의 방식과 연결망에서 소외될 수도 있으리라는 일말의 불안도 없지 않다. 일과 여유, 대화와 사색, 함께와 홀로의 균형을 찾아가는 일은 내게 주어진 새로운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