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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평화담론

한반도 평화 국제회의 (KGFP) 에서 ‘새로운 평화론’을 논의하는 세션이 구성되어 그 좌장을 맡았다. 젊고 유능한 학자들이 21세기적 맥락에서 평화의 성격과 확산을 위해 필요한 새로운 생각들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자리였다. 세 명의 발제자가 각각 ‘적극적 평화’ (정혁), ‘안정적 평화'(허지영), ‘생태적 평화'(주윤정)라는 화두를 던졌다. 이들은 모두 국가의 무력강화와 안보체제로 전쟁을 방지하는 것 만으로는 평화의 본래적 가치실현이 어렵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한 듯 했다. 구조적 폭력을 해소하는 것, 평화를 지속가능하고 안정적이게 공고화하는 것, 평화의 가치를 인간을 넘어 동물과 환경에까지 확대하는 것을 주문한 이날의 발제는 신선하고 유익했다.

토론도 진지했다. 일본 게이오대학의 명예교수인 소에야 요시히데 교수는 전세계적으로 이상주의적인 국제관계론, 평화론이 벽에 부딪치면서 현실주의적 반격이 거세지고 있음을 언급하면서 이런 변화된 상황에 어느 정도 적합성을 가질 것인지를 질문했다. 깊이 숙고해야 할 쟁점이자 어려운 숙제인 셈이다. 뉴질랜드 오타고 대학의 이성용 교수도 적극적 평화라는 개념보다 안정적 평화라는 개념이 좀 더 적합성이 높다고 평가하면서 그에 따르는 조건들이 좀더 명료해져야 할 필요를 제시했다. 강원대학교 강혁민 박사는 생태적 평화가 갖는 문명적 가치에 공감하면서 그것이 좀더 구체적인 정책아젠다로 자리잡아야 할 필요성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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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독통일자문회의

독일통일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남북관계의 진전을 모색하는 한독통일자문회의가 8월 4,5일 이틀간 열렸다. 코로나로 인해 계속 연기되다가 뒤늦게 온라인으로 개최된 이번 포럼에서는 통일독일의 내적 통합이 핵심 주제로 다루어졌다.

독일 통일 30년에 대한 양국 전문가들의 평가는 두 가지 점에서 일치했다. 구동독 지역의 경제는 구서독의 80% 수준을 상회하고 여타 영역의 통합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통일의 효과는 명백히 긍정적이다. 동시에 30%를 넘는 신연방주 주민들이 여전히 이등시민이라는 자의식을 피력하고 자신들이 차별받는다는 ‘머릿속 장벽’을 호소하고 있다. 마음과 감정의 통합은 정치와 경제의 수렴과는 별개의 과제임을 말해준다.

우리 정부의 민족공동체 통일방안도 본디 통합을 앞세우는 정책이다. 통합은 통일과 평화의 두 프로세스를 연결시키는 매개조건이자 필수요소다. 통합 없는 평화가 통일로 이어질리 없기 때문이다. 대선을 앞두고 통합-통일-평화의 정책조합을 혁신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이 어디에선가는 진지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려니 믿고 싶다. 그렇지 않다면 겨우 군통신선 복원이란 뉴스 하나에 온 정치권이 들썩이는 오늘의 모습이 너무 처량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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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봉상 심사

2021년도 월봉상 1차 심사를 했다. 코로나 19의 거리두기 지침이 완화되기를 기다린 탓에 평년에 비해 많이 늦어졌다. 작년에 출간된 200여권의 연구서들을 살펴보면서 2차심사에 올릴 5권의 저작을 선정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한 해 동안 한국학계의 한 흐름을 일별할 수 있는 흥미로운 기회임에 틀림없다.

같은 심사위원인 이기동 교수님과 도진순 교수님은 한국사 분야의 학자 개개인의 장점과 그들의 연구성향, 학계 안팎의 동향에 매우 밝다. 나는 상대적으로 사회과학계의 사회사나 근대변동, 한국학 일반을 살펴본다. 손쉽게 합의되는 수작도 있지만 평가와 의의를 달리보는 견해차가 나타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학술상의 무게와 영예가 과거에 비해 약해진 느낌이지만 필생의 연구활동에 대한 정당한 평가와 격려라는 점에서 심사의 역할은 영예로우면서도 무겁고 힘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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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학기 수업 개강

6월 28일부터 계절학기가 시작되었다. 나도 ‘현대사회사상의 흐름’이란 과목을 설강했고 15명의 학생이 수강신청을 해서 강의가 진행되고 있다. 영어로는 Lives and Thoughts of the Great Thinkers 라 했는데 사회학이라는 분과학에 한정하지 않은 삶의 궤적과 사상적 특징을 살펴보려는 뜻을 담은 것이다.

자연히 ‘사회학사’ 수업과는 구성도 내용도 다소 달라질 수밖에 없다. 같은 사람의 삶과 사상도 그것이 사회학에 미친 영향과 일반 사회에 미친 영향이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학계에 남긴 이론적 영향보다도 일반인의 삶과 행동에 남긴 기여에 좀더 초점을 맞추어 수업을 재구성해볼 생각이다.

새로운 강의안을 준비하면서 새삼스레 분과학의 틀이 내 개인의 사고와 행동을 크게 규정했다는 생각이 든다. 학계에 남긴 족적은 잘 알지만 사회적으로 어떤 활동과 영향을 미쳤는지를 잘 모르는 학자를 강의하기가 생각보다 어렵다. 이번 계절학기 수업은 그런 점에서 내게도 새로운 도전이다. 일반인에게 사회학, 또는 사회과학이란 어떤 의미를 가졌고 또 가질 수 있을 것인가.

life · 오늘의 화두

관심과 시력

세종으로 이사오면서 안경을 잃어버렸다. 그런데 안경이 없이 보낸 두 달이 크게 불편하지 않다. 원래 시력이 크게 나쁘지 않은 탓이겠지만 애초 시력이 문자 해독에 맞추어져 있었던 탓도 있는 것 같다. 책 보는 것과 글 쓰는 일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던 때는 시력이 조금만 나빠도 불편을 크게 느꼈지만 정원을 돌보고 산책을 하며 저녁 노을을 감상하기에는 지금의 시력으로도 큰 불편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당분간 안경을 쓰지 않고 지내보려 마음을 먹었다. 책을 보거나 글을 써야 하는 일이 여전히 적지 않으니 언젠가는 안경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당분간 만이라도 소나무의 잎이 자라는 것과 대추나무 열매가 커가는 것을 안경 없이 바라볼 생각이다. 노트북과 핸드폰이 필수품이 되는 시대에 시력의 불편이 나를 조금 더 그런 기기들로부터 자유롭게 만들어줄지도 모른다.

곰곰 생각하면 관심에 따라 시력이 좌우되는 것 못지 않게 명료한 시력을 중시하는 것 자체가 내 생각을 좌우하기도 한다. 내 시선이 머무는 곳, 내 눈이 미치는 대상에 내 마음과 정신도 쏠리게 되는 법이기 때문이다. ‘본다’는 행위는 단순히 보이는 영상을 인지하는 것 이상의 주관적 행위임을 새삼 느낀다. 안경을 잃어버린 것이 불편한 다행이 될 수 있을까?

life · 오늘의 화두

심고 거두는 것

손바닥 만한 텃밭이지만 채소를 심고 싶은 욕구가 컸다. 조치원 시장을 가서 상추와 고추, 쑥갓과 깻잎 모종을 사 오던 날, 매우 무더웠지만 기분이 좋았다. 작은 모종 속에 담긴 생명이 새로웠기 때문일까.

심은지 꼭 일주일이 되는 날 첫 상추잎을 따서 먹었다. 향긋한 내음이 입안을 가득 채웠고 사서 먹던 맛과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입견이었을테지만 내가 심어 거두는 행동에 수반되는 어떤 감정이 입맛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심고 거두는 일 사이에는 내가 하는 일이 없다. 물을 주기도 하고 간간히 흙을 돋우어주기도 하지만 그 녀석들이 자라는데 내가 미칠 힘은 전무하다. 자라게 하시는 이는 그 분이라는 성경의 말씀이 가슴에 와 닿는다. 대지의 생명력, 흙의 약동함을 새삼 느끼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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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포럼 발제


6월 24-6일 제주포럼에 다녀왔다.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이영호) 에서 주관하는 “화해와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역사” 세션에서 발제를 했다. 한국과 일본에서 총 4명이 발제하고 2명이 토론을 하는 자리였고 동북아의 여러 쟁점들이 언급되었지만 시간이 부족하여 밀도있는 대화로 이어지기는 어려웠다.

나는 민족주의 문제를 다루었다. 근대 이래 한,중,일의 역동성을 담보했던 민족주의가 탈냉전 이후 한단계 업그레이드 되는 기회가 있었던 점, 최근 10여년간 그 흐름으로부터 퇴행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중국의 대국지향적 민족주의, 일본에서 나타나는 ‘불안형’ 네셔널리즘, 그리고 한국의 분열형 민족주의의 현상 – 그 차이도 분명하지만 모두 지그문트 바우만이 말했던 레트로토피아의 특징을 수반할 수 있다는 염려를 피력했다.

해묵은 주제인데 여전히 현안으로 다루어져야 한다는 점이 새롭고도 답답했다. 민족이란 화두, 민족주의란 동력으로부터 벗어나기엔 인간의 존재양식이 너무 근대적인 것일지 모르겠다. 남북관계의 교착으로 인해 현실과 상상력 사이의 간극이 큰 한국의 민족주의가 자기분열적인 성격을 노정하는 것은 당분간 불가피할 것인가.

life · 오늘의 화두

COVID 백신과 디지털 거버넌스

코로나 19 백신인 아스트라제네카 1차 접종을 마쳤다. 온 세계가 힘을 모으고 국가역량이 총동원되다시피 한 탓이겠지만 예약부터 접종 후 안내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거버넌스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하는 기회가 되었다. 인터넷 예약에서 질본의 실시간 안내, 접종 의료기관의 역할과 곧 이은 확인 증명서 발송 등 전 과정이 가히 일사분란하다 할만치 체계적이었다. 이 놀라운 효율적 동원에서 선진국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도 많겠고 감시 시스템의 심화를 염려하는 사람도 제법 있을 법하다.

어쨋든 백신 접종은 감염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개인에게도 절실한 일이고 국가 차원에서도 경제회복과 정치적 리더십에도 결정적인 변수다. 그런가 하면 전인류가 함께 극복해야 할 문명적 사안이기도 하다. 오늘 접종을 받은 일은 나의 개인적 안전을 넘어서 대한민국의 국격, 인류공동체의 숙제와 과학기술문명의 자부심까지 영향을 미치는 문명사적 사건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인, 국가, 인류 차원의 관심과 노력이 중첩되는 한편으로 그 불일치와 간극에서 비롯되는 긴장을 감당하는 일이 앞으로의 큰 과제일 듯하다. 통계적으로 ‘증명’하는 총체적 성과가 뚜렷하더라도 0.1 퍼센트의 리스크를 감당해야 하는 개인의 입장에서는 통계적 증명을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오’라는 말을 대부분의 사람이 공감한다고 볼 때 통계의 확실성과 실존적 불확실성을 연결할 지점이 어디일지는 여전한 숙제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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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여와 동파

검여 유희강은 평생 소동파와 김정희를 존경하여 글씨를 연마한 예인이다. 병으로 오른 팔이 부자유하게 된 이후에도 왼손을 연마하여 좌수서로 새 장을 열기까지 한 의지의 인물이기도 하다. 검여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는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에서 소동파의 진적, “백수산 불적사 유기” 거 전시되고 있다는 것을 친구 이주현 교수가 알려주었다. 검색해보니 한 일간지에서 대서특필한 바 있고 초기 5일 이후로는 진적이 아닌 복제본이 전시된다고 했다. 이 작품이 명말청초 어느 시기에 모사된 위작일 가능성이 있다는 논란도 있음을 알있다.

그래도 한번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전화로 예약을 했다. 찾아간 박물관은 코로나 때문인지 접근이 어려웠고 담당자가 직접 문을 열어주어야 들어갈 수 있었다. 덕택에 아무도 없이 혼자 여유롭게 관람할 수 있었다. 동파의 작품은 한 점에 불과한 데다 그 가치에 대한 논란이 의식되어서인지 새로움을 크게 느끼지는 못하였다. 다만 검여 유희강의 글들, 특히 관서악부의 대작을 비롯하여 좌수서 이전의 작품들은 이전에 도록으로 볼 때와는 다른 감동을 주었다. 박물관 입구에 걸린 “恨古人不見我” 란 글 속에 담긴 검여의 대단한 자부심이 참으로 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life · 오늘의 화두

땅 위에 살다

오랜 아파트 생활을 마감하고 단독 주택으로 이사한 후 땅 위에 산다는 느낌이 새삼 와 닿는다. 넓지는 않으나 정원이 있고 소나무와 대추나무, 살구나무와 매화나무가 줄장미와 함께 자라기 때문만은 아니다. 문 밖을 나서도 동네 한바퀴를 돌아도 흙과 땅이 보이는 환경 그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니 아파트 생활이 무려 40년이었으니 그간 땅은 여행할 때만 밟는 곳처럼 되어 있었다. 오랫동안 공중에 떠서 살다가 땅 위에 내려와 사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