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시공간 여행

친구

4월 28일, 미국에 살고 있는 친구 가족이 한국을 방문해서 오랫만에 만났다. 옛 친구를 만나는 것은 언제나 즐겁고 기쁜 일이다. 공자 역시 인생 3락의 하나로 ‘벗이 스스로 찾아오는 것’을 꼽았을 정도가 아닌가. 비록 내 집을 찾아온 것은 아니지만 먼나라에 떨어져 있다가 한국을 모처럼 오게되었으니 ‘자원방래’라 할만하다. 마침 오전에 월봉상 시상식이 있었던 터라 오후엔 편안한 마음으로 봄 빛 가득한 삼청동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더 글로리 촬영장소라는 까페로쏘 골목의 풍경도 보기 좋았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대학을 거쳐 이어진 우정이니 거의 50년이 넘었다. 반세기 넘도록 각각의 인생길에서 서로 다른 삶을 살았고 만날 기회도 거의 없었지만 간간히 소식이 전해질 계기가 생기고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해후하게 되는 날도 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싶다. 수유리 한 구석에서 맺어진 인연이 관악을 거쳐 샌디에고로 또 보스턴의 하바드 스퀘어에서 이어지는 것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얼마전 타계한 테너 박인수가 부른 ‘친구이야기’ 영상을 누군가 보내주었다. 그 노랫말과 곡조가 좋아 나도 몇 친구에게 전달한 적이 있다. 집으로 내려오는 기차 속에서 이 가사가 새삼 생각났다. <많지 않아도/ 그리고 자주 만날 수 없어도 / 내게 친구가 있음은 / 얼마나 소중한 것입니까 // 멀리 있어도 / 가만히 이름 불러볼 수 있는 / 친구가 나에게 있음은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내 좋은 친구를 만날때면/ 웃음마다 봄날 기쁨입니다 /보고픈 친구를 생각할때면 /그리움은 잔잔한 행복입니다.>

곧이어 5월 2일에는 역시 우이교회에서 함께 지냈던 오랜 친구 태영, 희용, 명곤 등과 만나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육군과 공군의 지휘관이었던 두 친구 덕분에 간간히 골프모임을 하는 호사를 누리는데 실력은 제각각 다르고 특히 나는 점수를 기록할수도 없을 정도지만 옛 우정이 이어주는 만남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느끼게 하는 모임이다. 세월이 가는만큼 사회적 활동이 줄어들수록 친구의 소중함은 더 뚜렷해지지 않을까 싶다. 오랫만에 고국을 찾은 친구 은영씨와 선배님이 내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특히 멋지게 자란 두 따님 가원 승원의 앞길에 좋은 일이 가득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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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회 월봉상 시상식

4월 28일 49회 월봉상 시상식이 명동의 유네스코 회관 강당에서 개최되었다. 코로나 시기동안은 매우 축소된 약식 시상식을 할 수 밖에 없었는데 올해 다소 완화된 상황이어서 조금 초청자가 확대되어 그간 못본 분들도 여럿 참여했다. 이철우 이사장과 수상자의 지도교수와 동료 학자들, 한성구 교수, 한민구 교수, 한승미 교수 등 월봉의 후손, 이선민 선생 등 기념사업회 관련 인사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올해의 월봉상은 장진엽이란 신진 학자가 조선후기 일본을 왕래한 통신사의 필담집을 분석한 책자에 주어졌다. 한국문화를 일본에 전수하는 활동이라고 이해되어온 조선통신사의 면모를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연구다. 저자는 이 통산사의 내왕이 두 나라의 외교적 행사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부분적으로 조선지식인과 일본지식인 사이에서 드물게 이루어진 지적 소통과 학술적 대화의 장이었다고 본다. 따라서 필담집 역시 공식적 문서에서 볼 수 없는 내밀한 교류를 담고 있는 사료라고 보고 그 속에 담긴 문화적 상호작용을 드러내려 했다.

도진순 교수는 ‘차가운 평화, 뜨거운 필전’이란 멋진 제목을 단 심사평을 작성했다. 세밀한 분석력과 남다른 문장력을 지닌 도교수는 언제나 상당한 공력을 기울여 글을 작성하는 분이다. 안중근이나 이육사에 대한 그의 새로운 해석들도 자료 하나 사료 한 문장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꼼꼼함에서 얻어진 결과다. 이번 심사평도 제목을 두고 여러 분의 의견을 청해듣는 정성을 보여주었다. 개인적으로 ‘뜨거운 필전’이라 이름할 정도의 치열함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후학에 대한 애정과 유익한 조언이 담긴 좋은 글이라 생각된다.

심사위원으로 월봉상에 관여해온지 십수년이 지났지만 매년 다양한 영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책들 가운데 하나를 선정하는 작업은 쉽지 않고 해마다 그 어려움은 가중되는 느낌이다. 언제나 참신함과 노련함, 흥미와 중요성, 대중성과 전문성 사이의 어디에 무게추를 놓아야 할지 고민거리다. 다양한 연구서를 평가할 안목과 식견이 충분치 못하고 국내외 학문분야 동향에 대한 정보도 부족함을 절감하면서 오히려 내 스스로가 심사를 받는 느낌조차 든다. 식사 자리에서 농담조로 언젠가는 심사위원의 자격도 심사되어야 할지 모르겠다 한 것도 그런 마음의 반영이었던 셈이다.

시상식이 끝나고 유네스코 사무총장 방에서 한홍구 교수 등과 잠시 환담을 했다. 내가 한글로 쓴 유네스코 헌장의 두 폭 병풍이 접견실의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게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한 총장의 설명으로는 이곳에 오는 국내외 인사들이 한결같이 이 병풍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그때마다 한글의 아름다운 조형미에 대한 말들을 주고 받는다 했다. 알만한 분들에겐 내가 쓴 작품이란 설명도 덧붙인다니 감사하고 개인적으로는 영광이다. 이 글씨의 일부를 이용해서 다시 제작한 에코백을 선물로 받고 나온 명동길은 시민과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오랫만에 활기를 되찾은 듯 해서 반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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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묵으로 그린 초상

광주시립미술관의 김호석 수묵화전 개막전에 참석했다. 먹과 붓 만으로 오랜 동안 작업을 해 온 작가인데 정근식 교수가 축사를 한다고 알려와서 가게 되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지만 GIST에서 외곽 고속도로를 통해 많은 시간 걸리지 않고 갈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전시회 장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고 뜻밖에 시인 박남준도 반갑게 만났다. 화동 악양 마을에서 살고 있는 그도 이 전시회를 보러 일부러 광주를 찾았다 했다.

초기 작품에는 더러 채색이 있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작품이 먹의 농담만으로 표현된 수묵 담채였다. 통상의 전통 수묵화가 자연풍경을 대상으로 한 것이 많은데 비해 이 작가는 인물과 동물을 주로 대상으로 삼았다. 특히 현실 속의 인물들을 초상화의 형태로 그려왔는데 최근에 오면서 역사성이 담긴 시대화를 그리기도 하고 작은 곤충의 모습을 통해 환경주의적 메시지를 담으려 한 모습도 보인다. 사실성에 기초한 섬세한 묘사에 과감한 붓질, 생략과 추가의 독창적 구도를 통해 작가만의 독특한 작품을 만들고 있는 듯 했다.

미국 화단에서 주목을 받았다고 언론에 소개되었던 황희의 초상화는 마치 흔들려 찍은 사진처럼 눈과 코와 입술이 모두 두 겹으로 그려져 있다. 한 인물이 보여주는 상이한 면모를 이런 입체적 기법으로 드러내려 했다고 설명되는 모양이다. 실제로 위 아래로 그려진 네 개의 눈동자를 자세히 들여다 보노라면 외양의 눈과 내면의 눈을 함께 그린 것이 더욱 사실적이라는 느낌조차 갖게 된다. 도산 안창호의 얼굴을 그린 거대한 초상은 살아있는 듯한 눈매와 결연한 표정, 힘찬 붓질의 수염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좋아하는 인물을 저런 붓터치로 나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개인적으로는 ‘아들인 줄 알았는데 허공이었다’는 제목의 그림이 강렬해서 그 작품 앞에서 한동안 발을 떼지 못했다. 어머니인듯 한 여성이 누군가를 안고 있는데 정작 그 품에는 아무도 없이 텅 비어있다. 언뜻 보면 그리다 만 미완성 작품 같기도 한데 제목을 읽으면서 비로소 이 빈 공간의 의미가 와 닿는다. 허공이지만 아들인 줄 알고 감싸안은 여인의 모습을 통해 빈 여백 속에 귀한 무언가가 담겨 있을 수 있다는 희망을 말하는 듯 하다. 그런가하면 무언가 소중했던 것이 사라지고 없다는 안타까움을 그린 것 같다. 보기에 따라서는 허공조차도 아들로 알고 따뜻하게 껴안을 수 있다는 희망과 의지를 읽을 수도 있겠다. 작가의 어머니가 그 아들을 군대에 보내며 그린 것이라는 누군가의 설명을 들으면서 연민, 사랑, 회한 등의 복잡한 심사를 함께 느껴본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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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 평화포럼

4월 20일 포스텍 평화포럼 일곱번째 행사가 개최되었다. 최근 정부의 강력한 의지로 추진 중인, 제3자변제를 통한 강제동원피해자 보상안에 입각한 한일관계 개선 노력을 평가하고 국내외 파장과 향후 전망을 논의하는 자리로 기획한 것이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의 기조발제와 이원덕, 박찬승, 이근 교수의 토론, 여러 패널리스트의 의견개진으로 밀도있는 대화를 통한 배움과 소통의 장이 되었다.

발제자는 현 정부의 시도가 아쉬운 점이 있음에도 의미 있는 결단이었다고 평가하면서, 국내의 반응이 우호적이지 않고 일본측의 대응 역시 불확실하여 향후 전망이 밝지 않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토론에서는 여러 난관에도 불구하고 불가피한 전략적 선택이란 긍정적 평가와, 우리 대법원 판결의 정신을 훼손하고 향후 한일관계 정립에도 악영향을 끼칠 잘못된 정책이란 지적이 함께 제기되었다. 패널들의 견해 역시 이런 스펙트럼 상에 위치해 있었다. 다만 한일문제가 매우 어려운 난제이고 미래를 향해서는 해결되어야 하는 과제라는 점에는 다들 공감했다.

기획단계에서 가급적 다양한 관점을 지닌 분들을 초청하려 했다. 한국사, 한일관계, 남북관계, 한미관계, 동북아 지역연구 전문가들이 두루 참여해서 서로 다른 시각을 나누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대체로 그런 기대에 부응하는 뜻깊은 포럼이었지만 역시 국제관계학의 시각과 역사학의 시각은 접점찾기가 쉽지 않았다. 미래를 향한 결단이 필요하다는 당위와 과거의 족쇄를 풀어야 한다는 당위 사이의 긴장을 역동적 해법찾기로 풀어가는 지혜를 찾는 길은 여전히 멀어 보였다. “과거의 굴레와 미래의 도전”이란 부제에서 이 양자를 함께 넘어설 것을 목표로 했지만 그만큼 어려운 과제임도 확인된 자리다.

최근 뉴스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 및 대만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외신기자회견 언급으로 야기된 러시아와 중국의 강력한 반발이 대서특필되고 있다. 외교적 언사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의 거친 말들이 오가는 현 동북아 상황은 분명 그 자체로 염려스러운 현실이다. 중국의 강력한 부상과 중국중심주의가 큰 요인임은 부인할 수 없지만 이를 지혜롭게 다루는 외교역량의 부족, 미국일변도 전략 마인드도 심각한 문제인 듯 하다. 지구적인 상황변화에 따른 한국의 지정학적 리스크도 커지는데 그 복합방정식을 풀 능력은 오히려 퇴조하고 있는 것 아닌가 걱정스럽다.

방향이 옳다는 것과 방향전환을 지혜롭게 이루어내는 능력을 갖추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큰 틀에서 방향에 동의하더라도 이를 감당할만큼 충분한 소프트파워를 갖추었는지는 별도로 따져볼 일이다. 실제로 안팎의 여건과 상황을 고려한 시간계획, 선후연계, 강약조절의 정치외교적 역량이 어떠한가에 따라 결과는 하늘과 땅만큼 달라질 수 있는데 현 정부의 추진방식에 대해서는 신뢰보다 염려가 앞서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3차방정식을 2차방정식처럼 풀고자 하는 단순화의 오류가 21세기 지정학의 복합성에 제대로 대응할 역량을 약화시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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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과 수성동계곡

오랫동안 가보고 싶었던 수성동계곡과 인왕산 성곽길을 다녀왔다. 한반도평화연구원 활동으로 인연을 맺은 분들과 모처럼의 저녁 모임을 갖게 된 곳이 이 주변이어서 미리 마음을 정해둔 여정이었다. 마침 날씨도 좋고 벗꽃도 만개한데다 곳곳에 진달래가 화사하게 피어 생각지 않은 즐거움도 컸다. 호젓하게 자유로이 윤동주 기념관과 한양도성 성곽길을 둘러본 것은 덤으로 누린 기쁨이었다.

수성동계곡은 겸재 정선의 그림 [장동팔경첩] 수성동의 현장이고 서울의 난개발 과정에서 사라져버렸던 돌다리와 계곡이 아파트 철거로 다시 드러나 옛모습을 찾게 된 곳이다. 겸재가 이곳을 유명하게 만들었고 이곳 둘레길에는 진경산수탐방이라는 팻말이 붙여져 있다. 하지만 이곳은 그 이전부터 풍류를 즐기던 문사들이 즐겨 찾던 장소다.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은 이곳에 비해당이란 정자를 짓고 당대 최고의 선비들과 시를 짓고 담소를 나누었는데 이들이 이곳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48詠詩’ 일부가 전해져 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수 년 전 서울대 화묵회 전시에 대나무 수묵화를 출품했다. 그림에 어떤 글을 적을까 생각하다가 성삼문이 안평대군과 더불어 주고받은 ’48영시’의 한 부분을 썼다. “度竹風聲碧 含風竹影淸” (대 숲 지나는 바람소리 푸르고/ 바람 머금은 대 그림자 맑다). 심경호 교수의 저서 덕분에 몽유도원도를 그린 안견을 비롯한 조선조 선비들과 안평대군 간에 주고받은 시들을 접해본 덕택이다. 수성동계곡을 오르면서 나는 안평, 안견, 성삼문, 박팽년, 겸재 등 만나본 적 없는 이들의 이름을 떠올렸다.

돌다리가 있는 수성동 입구는 버스 종점 바로 앞이었다. 조용하고 멋진 계곡의 풍광을 상상했던 나로서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계곡의 규모가 작아 물이 제대로 흘러도 작은 개울 수준을 넘기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인왕산 정상을 향한 길을 오르면서 아름다움은 반드시 장대함에서 오는 것이 아님을 이내 깨달았다. 다양한 모양의 바위와 작은 골짜기, 크고 작은 나무들이 한데 어우러져 빚어내는 진경산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경복궁 옆부터 인가 없는 길을 지나 이곳으로 오르던 이들에게 수성동은 말 그대로 조선산수의 정형과도 같은 풍경으로 와 닿았을 법하다.

인왕산 정상에서 내다보는 서울의 풍경은 장쾌하고 시원했다. 남산을 바라보면 시내의 전경이 눈에 들어오고 백운대 방면으로 눈길을 돌리면 아스라히 북한산 줄기가 다가온다. 그 사이로 청와대를 품은 북악산의 아름다운 자태도 또렷하다. 이 모든 것을 아우르면서 성곽둘레길이 이어져 있어 또다른 멋스러움을 더한다. 이곳의 성곽은 그 높이가 낮고 주변과 너무 잘 어우러져 외침을 막기 위한 군사적 목적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위한 미학적인 이유로 세운 것 아닐까 여겨질 정도다. 모처럼의 멋진 기억을 오래 간직하려 겸재의 문하생이 된 기분으로 화선지를 펴고 수묵으로 인왕산과 기린교, 계곡을 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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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논리

김성국 교수께서 새로이 출간한 신간 [하나논리] (2023, 이학사)를 보내주셨다. 국제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해온 원로 사회학자이자 부산 지역사회의 현안에도 열심히 참여하고 동아시아 지식인 네트워크에도 열정적으로 헌신하는 분이다. 정년을 한지 꽤 되었는데 여전히 왕성한 학문적 활동을 하고 계신데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동아시아 사회이론의 모색이란 부제가 달려있지만 이 책은 여느 사회이론 서적과 다른 분위기다. 학계의 보편적 관심사와 학계 내부의 논의도 없진 않지만, 핵심은 지난 시기 서구 사회과학의 사상적 한계를 넘어설 새로운 지적 패러다임을 독창적으로 구성하는 데 있다. 저자는 1960년대 이래로 자신이 주목해온 여러 사상적 맥락들을 실존주의, 구조주의, 맑스주의, 시민사회론, 탈근대론 등으로 추적하면서 그 특성과 한계를 성찰의 자원으로 삼아 대안적 논리를 구성하고 있다.

미래적 전망을 지닌 대안적 사회이론의 가능성을 저자는 ‘하나논리’를 통해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삼라만상의 존재론적 연결성과 가치론적 하나됨을 중시하는 通一의 관점이 특히 중요한데, 이런 시각은 동아시아 유, 불, 도의 사상적 자원과 한국에서 그 맥을 이어온 선가의 사유를 지적 자원으로 삼아 구성할 수 있으리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 책은 천부경을 비롯하여 한국 전통사상에서 발견되는 천인합일 사유를 재해석하면서 저자 자신의 독특한 전망들, 즉 유아유심적 탈물질주의, 주체적 개인주의, 비관적 신비주의, 중도자비와 자유해방의 안락주의 등 문명론적 함의를 담은 새로운 이론적 논의를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21세기 사회이론의 탐구가 삶의 깨달음, 새로운 생활양식의 창출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실천적 함의도 담고 있다. 저자는 오랫동안 아나키즘의 현대적 의의에 주목해왔고 몇 년전 잡종사회의 문명적 비전을 다룬 대작을 상재한 바 있다. 이 책에도 저자는 하기락 교수의 아호인 ‘허유’ 개념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하고 동서문명을 넘어서는 대안적 삶을 희구하는 바램을 피력하고 있다. 자유롭고 개방적이면서도 창의적이고 주체적이며 늘 진지한 탐구의 자세를 잃지 않는 노학자의 애씀이 21세기의 소중한 지적 자원으로 활용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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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에서 탈식민으로

반일을 넘어 탈식민의 성찰로 – 조형근 박사가 쓴 [우리 안의 친일] 책의 부제로 달린 화두다. 나는 우리 사회 곳곳에 강한 정서와 상식으로 자리잡고 있는 집합적 정동, 자긍심과 혐오심의 이중주를 볼 때마다 이 주제가 우리 시대의 시급한 과제라는 생각을 한다. 한 쟁점에 대한 반대 자체가 무비판적이고 절대적인 가치로 자리잡을 때 제대로 된 성찰이나 문제해결로 나아가기는 어렵다.

윤석렬 정부가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소위 통 큰 결단을 강조하고 있다. 3.1 절 기념사에서 일본의 잘못과 식민통치의 수탈성을 강조해온 이전의 내용과는 사뭇 다르게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미래로 나가자는 주장을 내세우고 일본 기시다 수상과의 정상회담에서는 일본의 반성과 사과에 대한 담보 없이 일방적으로 위안부 문제를 매듭짓겠다고 했다. 한일관계를 개선하겠다는 뜻임을 밝혔지만 치밀하지 못한 접근에 대한 안팎의 우려가 만만치 않다. 예상대로 역사학계를 비롯하여 강력한 반발이 이어지고 있어서 과연 기대한 방향으로 진전될지 염려스럽다.

과거를 정리하고 새롭게 출발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개인도 국가도 이미 지나간 것에 연연하는 것은 좋을 것이 없다. 감정과 정서, 이해관계로 얽힌 이웃 국가간의 관계가 늘 과거사로 묶여 다람쥐 쳇바퀴돌 듯 하는 것은 피해야 할 일이다. 동시에 진실을 밝히고 책임을 분명히 하자는 주장이 그런 미래로의 진전과 배치되는 것은 아님을 깨닫는 것도 중요하다. 사과를 하고 응분의 책임을 묻는 것은 과거를 넘어서기 위함이지 지난 일 속으로 퇴행하려는 것이 아님을 한일의 지도자는 깨달아야 한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이 덫을 지혜롭게 넘어서는 일이 21세기 최대의 난제가 될지도 모르겠다.

조박사는 이 책의 챕터에 여러 부제를 달았다. 나에게는 각 장의 제목과 부제가 저자의 뜻을 드러내는 명료한 메시지처럼 와 닿는다. “민족주의 – 제국의 욕망과 동행하다”, ” 역사의 단죄 – 당신은 친일하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까?”, “프랑스와 독일의 과거사 청산 – 역사에는 단판 승부가 없다” – 굳이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저자가 던지는 말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역사에 성실하려는 자세에서만 제대로 된 탈식민도 가능할 터… 우리 내부의 욕망을 숨기지 않을 때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약점과 떨림을 정면으로 대면하면서 화해와 연대를 이룰 길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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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로 얽힌 사람, 땅, 문화

봄은 매화와 더불어 오는가. 한겨울 매서운 날씨를 견디고 고고하게 계절의 변화를 알라는 매화의 향기가 곳곳에서 풍겨난다. 예로부터 매화는 그 기개와 품성이 선비와 닮았다 해서 사군자의 첫 소재로 꼽혔고 고택이나 서원의 한 켠에 자리해야 할 것처럼 여겨지곤 했다. 남도 섬진강변은 산기슭을 온통 매화가 차지할 정도로 군락을 이룬 곳들이 적지 않다. 매실을 재배하는 농원들이 많기 때문이겠지만 남도의 야트막한 산세와 풍광이 일조를 했을 터이다. 하동에서 벌어지는 매화축제에는 100만명을 넘는 사람들이 찾아온다.

한국사회사학회 활동을 처음부터 함께 했고 퇴임 후에도 학연을 이어가던 사사친 멤버들이 모처럼 매화 탐방을 내세운 여행길에 나섰다. 고매로 이름난 승주의 선암사, 홍매로 유명한 화엄사를 비롯하여 사람들로 들끓는 매화축제장 농원도 들렀다. 여행이 꽃구경 만일 수는 없는 법, 악양별서라는 멋진 이름의 집에서 시와 춤과 노래의 작은 모임도 갖고, 오래된 집을 전시관으로 만든 빈산 갤러리에서 작품도 감상했으며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로 알려진 악양들판을 내려다 보는 조씨 고택에서 조선조 명문가의 위세와 품격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높은 산마루에 올라 사방을 에워싼 지리산 주능선, 굽이치는 섬진강, 그 속에 넓게 자리잡은 땅을 한 눈에 바라보는 즐거움도 맛보았다.

선암사의 고매는 아름다운 사찰의 풍경과 어우러져 장관이었다. 이곳에는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비롯하여 이름있는 사람들의 현판들을 감상하는 즐거움도 크다. 태고종으로 많은 불사를 하지 않아 오히려 고풍스런 옛 아름다움이 유지되고 있다는 역설이 새삼스러웠다. 화엄사는 신라시대의 여러 유물로 이름있는 고찰인데 때마침 만개한 홍매가 또렷하게 드러난다. 국보로 지정된 각황전 앞 사자석등의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우람한 기세의 등걸과 붉은 색의 화려함으로 사찰의 분위기를 일거에 바꾸는 홍매의 절경이 가히 명불허전이다. 평소에 매화는 백매가 본류이고 홍매는 웬지 아류 같이 여겨졌는데 화엄사 홍매는 내 편견을 일순간 날려버렸다.

재작년 이맘때 제자들이 매암동인이란 모임을 만들었다. 내가 정년을 기념하여 제자들에게 써준 글씨들로 ‘以文會友’ 전시화를 열게 된 것을 계기로 서로의 근황과 관심사를 나누고 소중한 학연을 이어가자는 뜻에서였다. 지금도 개인적으로 또 몇명씩 간간히 만나면서 학문의 길에서 부딪친 생각과 경험들을 나누곤 한다. 고마운 인연들은 이래 저래 이어지고 이번 여행에서도 멋진 꿈과 뜻을 지닌 개성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선암사의 고매, 화엄사의 홍매만 아니라 나와 인연을 맺은 이 모든 이들이 각각의 향기와 아름다움을 지닌 매화 나무란 생각이 든다. 좋은 제자와 동학을 만난 복을 감사하고 새롭게 이어지는 인연들을 생각하며 선암사 백매의 모습을 화선지에 옮겨본다.

life · 오늘의 화두

상쾌한 삶 무거운 숙제

동네 사회학자를 자처하면서 새로운 삶의 형식을 실천하고 있는 조형근 박사가 [나는 글을 쓸 때만 정의롭다]라는 책을 출간했다. “연대사회를 갈구하는 어느 지식인의 자기성찰”이라는 부제 그대로 조박사는 진지한 사색과 성실한 생활에서 우러나오는 진솔한 생각들을 이 책에 담았다. 글의 형식은 딱딱한 논문투가 아닌 에세이 같지만 담긴 내용의 깊이와 폭은 매우 깊고 넓다. “계시가 아니라 고백이라 좋고 고뇌하되 중심을 잃지 않아 좋다”는 한 평자의 지적에 공감이 간다.

조박사는 서문에서 이 책을 쓰게된 계기의 하나로 ‘그럭저럭 살기가 불가능해’진 상황을 꼽았다. 구체적으로는 세월호 사건을 들었지만 글의 곳곳에서 그의 이런 지적 성실함은 그 이전부터 지속된 것이었음을 확인한다. 그는 세상을 비판하는 글은 동시에 자신을 성찰하는 고백록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데 실제 그의 글은 자신의 경험에서 시대를 읽고 개인적 한계에서 사회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섬세함으로 가득차있다.

저자는 자신이 동네 사회학자임을 자처한다. 실제로 신문지상의 저자 소개에 다른 수식어 없는 사회학자라는 타이틀을 붙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소수의 사람 중 하나다. 대학교수직을 버리고 동네책방과 크고작은 문화활동에 참여하면서 그의 마음은 편안해지고 시선은 더욱 예리해졌다.

더구나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에 살면서 동네라는 작은 현장, 사람들이 사는 공간에 발딛고 있는 생동감이 뚜렷하다. 1988년 사당동 철거촌에서의 기억을 잊지 않는 조박사의 글은 그의 말대로 ‘찾아온 길이면서 돌아온 길’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진솔함이야말로 변함없는 글과 생각의 힘이 아닐까. 조형근 박사의 책이 던진 화두 앞에 반가움과 무거움을 함께 느낀다.

life · 오늘의 화두

‘일어서는 땅’

2월 17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중인 임옥상 화백의 일어서는 땅을 관람했다. 친구인 이승재 교수와 함께 갔는데 프랑스에서 왔다는 외국인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열정적인 임화백의 설명들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들은 열심히 작품을 보고 또 통역을 통해서 작가의 해설을 경청했다. 임화백과 사진을 찍으려하고 함께 포즈를 취하면서 기뻐하는 모습들 속에서 예술이 갖는 힘과 함께 국제적인 셀럽이 된 임화백의 존재감이 크게 와 닿았다.

흙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이전에도 보아왔지만 그림과 글씨를 함께 묶고 흙과 철과 땅을 연결하는 놀라운 발상과 스케일에 가히 압도당했다. 특히 봄이 되어서인지 매화 작품들이 인상적이었다. 겸재의 매화 병풍을 연상케 하는 오랜 고매화의 힘찬 등걸, 뒤틀리면서도 용솟음치는 역동성, 바람에 휘날리는 잔가지들, 꽃비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흐드러진 매화꽃잎들… 백매의 아름다움과 홍매의 화려함이 모두 격조와 스케일로 감동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임화백과 점심을 함께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얼마전 미국방문에서의 경험담에 더하여 최근 인터넷, 디지털 기술문명이 화단에도 영향을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흥미있는 말도 들었다. 보관과 전시, 제작에 여러 한계를 지니는 실제의 작품보다 이미지와 영상으로 만들어지고 거래되는 변화가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벤야민이 말했던 복제기술 시대의 예술론이 일상화되는 느낌이었다.

chat GPT 로 인한 교육과 글쓰기에서의 새로운 상황이 초래하는 내 경험도 함께 화제가 되었다. 과학기술문명의 영향이 그 어느때보다 심대하고 조밀해지는 시대에 학문과 예술, 진리와 품격을 유지하고 가꾸어갈 지혜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큰 숙제라는데 공감했다. 그럴수록 창조력을 지닌 지식인과 임화백 같은 예술가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 질 것이다. 제아무리 인터넷과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시대가 오더라도 창조와 혁신, 품위와 기개는 역시 사람의 몫일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