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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않은 길 – 2

‘독일역사박물관’ 에서 전시 중인 “가지 않은 길” (Roads not Taken) 기획전을 관람했다. 유명한 프루스트의 시 제목과 동일한 주제를 통해 “실현되지 않은 역사적 가능성”을 생각하자는 의도라 했다. 통상 역사박물관의 전시는 연대기 순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인데 이 전시는 현재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독특한 방식이었다. 1989년 독일통일에서 시작하여 1848년의 혁명기 까지 주요 사건들을 계기적으로 전시하고 있는데 각각의 사건들은 이후 역사전개의 분기점으로 해석된다. 그 사건들 속에는 동방정책, 베를린 장벽 설치, 냉전과 나찌즘, 1차 세계대전이 있고 전시 속에서 한국전쟁도 바이마르 공화국도 만나게 된다. 유럽과 세계의 역사를 어느 정도 알지 못하면 맥락을 찾아내기조차 쉽지 않은 전시형태여서 일견 당혹스러우면서도 신선하고 흥미로왔다.

전시를 알리는 소개문에는 라파엘 그로스 관장의 다음과 같은 말이 적혀있다. “모든 역사학자는 왜 역사가 다른 방향으로 가지 않고 이미 이루어진 방향으로 오게 되었는지를 묻고 통상 그 지점에서 멈춘다. 일반인도 그 지점 이상을 나가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전시는 감히 다른 방향으로의 역사도 가능했음을 보여주려 한다.” “순간적인 열림” (momentary opening)이 드러난 역사적 국면과 계기들을 되돌아보면서 실현되지 않았지만 가능성의 영역으로 남아 있던 길이 무엇이었는지를 상상해 보자는 것이다. 예컨대 1989년의 시점에서 공산당 정부의 개혁을 요구했던 동독인민의 열정이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고 마침내 동서독을 통합시키는 평화통일로 이어졌는데 과연 이 흐름은 필연적으로 정해진 경로였을까? 다른 길로 이어질 계기나 무력충돌의 가능성은 없었을까를 묻는 것이다.

다른 가능성을 상상한다는 것이 우리 마음대로 역사경로를 선택할 수 있었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이 전시 브로셔에는 역사학자 Dan Diner의 다음과 같은 말이 실려있다. “이 전시는 다른 경로나 허구적 역사에 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목적은 여러 가능성을 살펴봄으로써 실제로 진행된 역사과정에 대한 더욱 명증한 시각을 얻으려는 것이다.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들을 살펴봄으로써 실현된 역사를 보다 잘 이해힐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미래에도 여러 가능성이 존재하지만 모든 것이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우리의 선택과 그에 따른 기회비용, 공동의 부담을 치루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막연한 기대나 무책임한 허구의 역사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현실로 이어지게 된 진정한 요인과 기회비용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긴요하다는 메시지가 마음에 와 닿는다.

미래의 경로도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방향이 선택 가능한 것도 아니다. 원하는 방향으로 역사가 진행될 수 있도록 여건을 준비하는 노력 속에서 싹트는 것이 가능성이다. 단순한 기대나 무책임한 허구와 구별되는 가능성의 포착, 막연한 목표를 실현가능한 영역으로 이끌어낼 역량이 국가의 가장 고급한 능력일테다. ‘역사적 가능성’ 그 자체가 다양한 변수의 결합으로 구성되는 것이고 준비하고 기획하며 책임지는 행동의 결과값임을 깨우칠 필요가 있겠다. 역사를 본다는 것은 곧 미래를 보는 일이고 그것은 다시 현재의 책임이기도 하다. “가지 않은 길”은 “선택하지 않은 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니 그만큼 기회비용에 대한 선택의 무거움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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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민족 – 1

한국은 민족국가의 완성이라는 관점에서 통일을 정당화한다. 나찌즘의 비극을 기억하는 독일사회는 민족의 정치화에 거부감이 있다. 89년 말에서 90년 3월에 걸쳐 ‘우리는 인민이다’라는 구호가 ‘우리는 민족이다’라는 구호로 대체되면서 통일열기가 부상할 때 독일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민족감정을 놓고 격렬한 대립을 겪었다. 십여년전 당시의 논쟁을 정리하면서 나는 독일통일에 민족정서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검토해본 바 있다. 작가 귄터 그라스 등의 강력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급속한 통일이 진행된 이 대전환에 민족이라는 정체성이 크게 작용한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분단시대 독일은 언제나 문화국가로의 통일을 강조했다. 전 연방내무부 차관보였던 크노블로흐는 수십년에 걸친 동서독 대립과 두 국가론에도 불구하고 단일국가로의 지향을 유지할 수 있었던 토대가 문화였다고 했다. 72년의 동서독 기본조약 체결과 86년 문화협정으로 이어진 바탕에는 독일이 공통의 문화를 지닌 역사적 공동체라는 믿음이 놓여있다. “문화는 독일 국가가 통일을 이루는 과정과 유럽연합으로 가는 길에 있어 자주적이며 필수불가결한 기여를 한다”는 조항이 그런 신념의 소산이다. 각 주의 ‘문화주권’과 연방정부의 관할권 사이의 긴장이 없지 않았지만 전체적으로는 평화통일의 능동적 요인으로 작동한 것으로 평가한다. 클라우디어 로스 장관 역시 미리 배포한 발제문에서 “문화”가 신뢰와 중재의 힘을 발휘했고 음악, 연극, 문학이 동독 내부의 불만, 비판, 자유를 향한 열망을 대변하면서도 그것에 ‘평화로운’이란 수식어를 붙게 만드는 핵심적 요인이었다고 썼다.

슈납파우프는 기본조약의 체결로 서로의 실체를 제도화하면서도 “독일 민족이 자유로운 자결권을 바탕으로 한 재통일”을 추구할 권리를 부인하지 않는 지속적 노력이 통일의 중요한 기초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기본조약이 국적관련 사안을 규정하지 않는다는 표명도 같은 맥락이다. 헌법재판소 역시 “기본법이 독일의 분단을 인정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것을 근거로 양독 간 경계선을 연방주들 사이의 경계선과 같은 성격으로 판시했다. 비행기 속에서 읽었던 김영희 대기자의 [베를린 여행]에서 브란트 정부가 동방정책을 추진하고 기본조약을 체결하면서도 모스크바와 주변국가들을 대상으로 독일의 통일이라는 미래비전을 인정받으려고 부단히 애썼음을 읽은 바 있었다. 조약이라는 양자관계의 틀을 발전시키면서 외교라는 고도의 정치과정을 통해 통일의 가능성을 열어놓으려 한 노력이 1990년 통일에 소중한 자산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문화와 조약을 근거로 동서독의 단일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독일 민주주의의 성숙함을 보여주는 한 특성이다. 문화국가는 민족국가의 부정적 함의를 대신할 대안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했다. 하지만 여전히 독일인을 증명하는 국적법의 핵심 요소는 혈통이다. 속지주의를 채택한 미국과 달리 독일은 한국과 같은 속인주의를 견지한다. 실제로 통일과정에서 동독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독일인이 국적을 인정받고 독일로 이주했다. 나는 토론에서 국적법의 혈통변수가 독일정체성을 구성하는데 어떤 비중을 점하는지 질문했으나 시원한 답을 듣지 못했다. 극우의 부상에 담긴 종족주의를 우려하는 독일사회에서 민족 개념은 여전히 인정하기엔 부담스럽고 부정하기엔 뿌리깊은 그 무엇일지 모르겠다. 언어, 문자, 전통, 역사, 신화가 문화의 핵심이라면 문화는 종족의 특성을 가르키는 것일 수 있으니 문화국가와 민족국가의 간격은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문화국가와 민족국가의 구별과 대비는 매우 중요했다고 판단된다. 문화가 혈통을 포괄하면서도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여백과 공간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독일은 문화국가라는 말이 갖는 유연함, 포괄성, 비정치성을 내세워 민족감정의 분출을 우려하는 안팎의 염려를 관리하는데 성공한 셈이다. 하버마스가 강조한 ‘헌법 애국주의’도 민주주의를 본질로 하는 헌법적 가치를 중시하고 혈통주의적 민족론을 극복하게 하는데 기여했을 것이다. 문화국가론은 통일과정의 여러 문제들을 감추는 이데올로기적 기능도 수행했고 냉정한 계산을 넘어 기대와 꿈을 갖게 만드는 유토피아적 전망으로도 작용했다. 통일 후의 여러 비판과 논란은 문화라는 말에 담겼던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의 긴장에서 유래하는 것일지 모른다.

우리의 민족국가론도 문화주의적인 재해석과 국제주의적 감각을 보다 수용해야 하리라 생각한다. 정주외국인 비율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다문화적 상황이 확대되는 시대에 통일논의의 종족주의적 혐의를 벗어나려면 공동체의 문화적 재구성이 절실하다. 또한 그런 지향이 전지구적 가치와 연대할 수 있는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것임을 설득하고 보여주려는 노력이 더해져야 한다. 이산가족찾기에서 보듯 민족정서는 남북을 하나로 잇는 강력한 자원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다만 21세기 한국사회가 인종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다원화하고 있고 북한의 민족관념도 크게 달라지고 있음을 고려할 때 다성과 이질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포용적 정체성으로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 권헌익 교수가 발제에서 민족을 넘는 다양한 남북간 소통과 관계양식을 고민할 필요성을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이었으리라. BTS를 위시한 K-Culture의 개방성과 역동성을 수용하고 다양한 혈통과 다중적 존재를 포용할 수 있는 혼성적 정체성이 자리잡을 때 통일의 가능성도 커질 것이란 생각이다. 그러려면 민주주의 가치의 일상화, 제도화가 필수적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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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차 한독통일자문회의

12차 한독통일자문회의가 베를린에서 개최되어 5월 20-25일간 독일을 방문했다. 한국과 독일 정부간 정례 회의로 양국을 오가며 개최되는 이 모임은 분단의 경험과 통일의 과제와 관련한 정보와 지식을 교환하고 토론하는 장이다. 유럽에서 독일이 겪고 있는 여러 난관과 동북아의 지정학적 동요 속에서 한국이 감당해야 할 여러 문제들을 서로 나누는 공부기회이기도 하다. 감사하게도 나는 한국측 위원으로 여러 차례 이 회의에 참석할 기회를 가졌다.

이번 회의는 슈나이더 독일 연방총리실 차관과 한국의 김기웅 통일부차관이 주재했다. 회의는 총리실 대회의장에서 열렸는데 출입시 철저한 보안체크를 받아야 하는 불편이 있었지만 그만큼 무게감이 느껴졌다. 아데나워부터 역대 총리의 초상화가 걸려있는데 아직 메르켈 총리의 그림은 걸려 있지 않았다. 때마침 슐츠 총리가 한국을 방문하고 DMZ에서 한국분단의 현실을 안타까와하며 통일의 열정에 공감을 표한 뉴스가 전해져 회의의 시의성이 더 크게 느껴졌다. 콜 총리의 외교자문으로 통일과정을 조율한 텔칙과 통일의 전후과정에서 중요한 정치적 사회적 역할을 수행한 슈뢰더도 80대 후반의 나이에 노익장을 과시하며 회의에 열심으로 참여했다. 여러해 이 모임에서 만나 대화를 나눈 글라이케 차관, 슈납아우프 박사 등과도 반갑게 인사했다.

많은 쟁점들이 이틀동안 진지하게 논의되었고 현장 답사를 통해서도 새로운 사실들을 접했다. 언제나 그렇듯 두 나라 상황이 다른 탓에 발제의 초점과 고민의 수준이 일대 일로 대응되지는 않는다. 분단과 통일이라는 큰 화두를 공유하고 있고 모든 주제가 그렇게 모아지지만 구체적인 문제들과 정책구상, 사회적 평가등에는 차이도 적지 않다. 2023년에 개최된 이번 회의는 두 나라 사이에 고민의 성격과 내용의 차이가 그 어느 때보다 뚜렷하게 느껴졌다. 남북한 간의 단절이 심해지고 핵위기로 인한 정치군사적 대결상황이 강화된 한반도 상황이 동서독 내부통합과 민주주의의 성숙을 고민하는 독일의 현실과 너무 이질적으로 느껴진 탓일지 모르겠다. 다만 독일측이 통일의 성공이야기를 내놓는 대신 현재 겪고 있는 고민과 갈등을 솔직하게 드러내어 우리로서 참조할 공부거리를 새롭게 얻은 느낌이다.

회의가 종료된 후 개인적으로 만난 한 원로 정치학자는 자신은 요즈음 독일통일을 점점 더 비판적으로 보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한국도 독일로부터 배우려는 태도를 벗어날 필요가 있으리라고 했다. 여전히 독일의 많은 점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운 바 없지 않으나 저 부분까지 포함하는 종합적인 시선이 없이 독일통일 과정을 단순화하거나 공식화하는 것이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여러모로 생각을 많이 하게 한 학술회의였기에 그 쟁점을 몇 가지로 나누어 정리해 보려 한다.

life · 오늘의 화두

이사

2년간 단독주택 생활을 끝내고 다시 아파트로 이사했다. 주인이 집을 매매하기로 했다는 전갈을 받은 후 새 전세집을 구했기 때문이다. 새소리로 잠을 깨고 정원의 잔디를 깎던 즐거움을 더 누리지 못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다. 다행히 이사한 아파트도 넓은 공유 정원과 각종 주민시설을 갖추고 있어 또다른 만족이 있으려니 기대를 가져본다.

이번 이사는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 집값 하락으로 매매의사를 철회한 주인이 전세금 반환의 어려움을 알려왔기 때문이다. 은행에서 융자받아 전세금 일부를 지급하고 나머지는 전세가 구해지는대로 상환하겠다고 했다. 한국 특유의 전세제도는 통상 새 임차인의 전세금으로 앞 사람 전세금을 갚는 구조여서 어느 한 부분에 문제가 생기면 선의 여부와 상관없이 연쇄적인 파장이 생길 수밖에 없다. 전세대란 뉴스가 연일 들리는 것은 경기가 어렵기도 하지만 이런 연쇄구조에 문제가 생긴 것일테다.

주변의 지인들은 한결같이 구두 약속만 믿고 이사해서는 낭패를 당할 수 있음을 염려했다. 언론에는 전해지는 소식에는 전세사기라 할만한 고약한 사례도 있지만 상당부분은 주택 임대의 연쇄고리가 깨어지면서 파생된 불가항력적인 사태여서 어느 한 편을 비난하기도 쉽지 않다. 이런 연쇄고리에서 나도 자유로울 수는 없어 법적 자문을 받기로 했다. 변호사는 친절하면서도 단호하게 추가초지의 불가피함을 설명했다. 이미 주민등록을 옮겨 법적 대항권이 소멸되었으므로 차선책으로 임차권 등기 신청, 지급명령 신청을 하는 것이 좋으리라고 했다. 생소한 법률 절차를 충분히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그 설명이 타당하게 여겨져 제안을 수락하기로 했다.

내가 변호사의 조언에 따라 주민등록을 다시 현주소로 옮겨놓고 임차권 등기가 완료될 때까지 이사짐 일부를 남겨두겠다고 알리자 집주인은 서운함을 표했다. 자기도 최선을 다하고 있고 은행대출까지 해서 일부를 지급하는 성의를 보였는데 이런 조처를 취하느냐는 섭섭한 감정이 느껴졌다. 신뢰할 수 없어서 한 일이 아니고 불가항력적 상황에 대비한 것일 뿐이니 양해하시라 설명했지만 사실 나로서도 이런 일은 정서적으로 불편할 밖에 없다. 이사 당일 찾아온 주인의 부인은 나의 조처를 충분히 이해하며 제때 전세금을 반환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뜻을 전했다. 심성이 좋은 분들인데 이분 들도 마음 고생을 한다는 생각을 했다.

이사 당일, 새벽부터 시작된 기민한 작업과정을 지켜본 것은 또다른 경험이었다. 7-8명이 한 팀으로 작업하는데 누구의 지시나 명시적 업무절차도 없이 고도의 정밀 기계처럼 이곳 저곳 크고 작은 짐들을 재빠르게 정리하고 포장했다. 새 집에 와서 그 짐들을 배치할 때도 손발이 척척 맞는 기민한 일처리 과정이 마치 고속으로 상영되는 한편의 모노 드라마를 보는 듯 했다. K-culture에는 한국 영화나 음악 만이 아니라 포장이사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과연 그럴 만했다. 각자의 개성이 드러나면서도 전체가 조화롭고 다이내믹한 장면을 구성하는 K-Pop 공연이, 저 포장이사의 놀라운 협업시스템과 맥이 닿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버리기보다 쌓아두는 것이 더 익숙한 탓에 짐은 언제나 불어난다. 내 삶에 요긴한 도움을 준 것들이니 계속 지닐 필요가 있는 것들이 많지만 그 중에는 사실 버려도 지장이 없는 것이 적지 않다. 저 많은 책들 가운데 앞으로 내가 다시 볼 것은 얼마나 될 것이며 이런 저런 계기로 생긴 물건들 역시 언제까지 소장해야 할지 모르겠다. 운동을 해야 몸이 가벼워지고 묵은 것을 비울 때 새로운 것이 채워지는 법이니 이제는 더 과감하게 버리고 줄이는 삶을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몸도 마음도 물건도 가볍게 하기 – 이사를 마무리 하며 다짐해 본 단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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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헌학술원 자문위원회

한림대학교 도헌학술원의 자문위원회가 2월 2일 프라자 호텔에서 개최되었다. 오세정 서울대 총장, 김용학 전 연세대 총장, 김도연 전 포항공대 총장 등이 자문위원으로 위촉되었다. 나도 자문위원이지만 이들의 유명세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데 송 원장은 나를 자문위원장이라고 했다. 하긴 아무런 역할이 없는 이런 직함은 그냥 듣기 좋으라고 부르는 이름일 뿐이리라.

하긴 나는 이 학술원의 출범에 꽤 역할을 한 셈이니 전혀 뜬금없는 명칭은 아닐 수도 있겠다. 내가 쓴 학술원 현판을 내건 현판식이 12월에 있었는데 꽤 좋은 평판을 받았다는 전언이다. 청명 선생의 글씨로 만들어진 한림과학원 현판과 비교가 되는데 내가 보아도 도헌학술원 현판이 더 좋아 보인다. 한학과 한문에 대한 조예에서는 청명선생에 비할 바가 아님에도 그 분의 현판과 나란히 내 글씨가 자리잡고 글의 기세가 크게 모자라지 않다는 것 자체로 보람있는 일이다.

자문위원으로 함께 위촉된 분들 중에는 한림대학 재단관계자도 있고 오랫동안 한림대학교와 인연을 맺은 학자들도 있다. 건강이 다소 안좋아진 분도 계시지만 대부분 현직에서 쌓은 지식과 경험을 여러 영역에 기여하고 있는 중이다. ‘자문’이라는 역할이 유명무실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필요한 독특한 지혜를 만들어갈 자리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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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신록 단상

5월 코로나에서 벗어난 신록의 달을 맞이하는 마음이 새롭다. 학생들의 수업 분위기도 달라 보인다. 봄이 봄같지 않았던 지난 3년에 비추어 보면 사람들의 걸음걸이도, 수목의 초록빛도 확실히 더 활기찬 듯하다. 경제적으로 불경기가 계속되고 한반도 주변 안보상황도 어려움이 가중되어 마음 한 구석이 무거운데 계절이 주는 활력 만이라도 듬뿍 받아 누리는 것은 너나 없이 소중한 일일테다.

그래서인지 세종 집에 걸어둔 도연명 ‘귀거래사’가 내용은 좋지만 너무 은둔적이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자연은 조용하기도 하지만 활기차기도 한 것인데 이 글은 너무 소극적인 정서에 쏠려 있어 봄의 역동성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언젠가 한 후배가 세종 집에 왔을 때 정년 후 보다 적극적인 활동력이 필요한 데 저런 글은 도움이 되지 않으니 떼어 내는게 좋겠다고 핀잔을 준 적이 있다. 욕심을 줄이고 세상사의 관심을 축소시킬 필요가 있다는 생각은 지금도 여전하지만 새 봄 푸르게 변하는 자연의 활력을 보노라면 그 후배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생각을 점점 더 하게 된다.

지난 3월 학과의 후배 정 교수 퇴임행사가 호암교수회관에서 열렸을 때 축사를 부탁받았다. 축사 내용을 준비하면서 통상의 덕담과 함께 정년 전후의 삶이 달라질 필요가 있음을 언급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왕성한 활동력과 인적 네트워크를 과시하고 또 모든 일에 열정적으로 참여해온 정 교수에게는 정년 후에 더 열정적으로 활동하라는 조언이 적절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2년간 열심을 다했던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 직을 내려놓은 허전함과 퇴직이 가져올 공허함을 당당히 넘어서고 지속가능한 생활패턴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정년 전후의 질적 변화를 진지하게 수용하는 마음자세가 필요하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이 조언은 사실 내 자신의 댜짐이기도 했다. 코로나 팬데믹 와중에서 수십년간 몸담았던 학교를 떠나면서 새로운 변화에 정서적, 심리적으로 얼마나 잘 적응할지 내심 염려가 없지 않았고, 그럴수록 내 기대수준을 줄여야 한다는 다짐을 스스로에게 애써 강조하곤 했다. 그 이후 비교적 소프트랜딩한 것은 참으로 다행인데, 광주과학기술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 것이 큰 도움이 되었지만 활동의 폭을 축소하려고 애쓴 나름의 각오도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소프트랜딩은 소프트랜딩일 뿐, 앞으로 지속가능한 생활태도의 확립은 또 다른 과제임을 깨닫고 있다.

결국은 균형잡기가 문제다. 열심히 활동하되 과욕을 줄이고, 평안을 유지하되 활력을 잃지 않는 새로운 균형점을 찾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물론 말처럼 쉽지 않은 과제다. 새로운 활동영역을 찾아나서는 것도 지혜로와야 하고 변해가는 환경에 자족하며 평정심을 유지하려면 내면이 더욱 충실해져야 한다. 소망의 끈을 지상에서 하늘로 옮기는 종교적 실천만이 답일지도 모르겠다. 조용했던 주변이 놀랍게 깨어나고 있는 5월의 신록을 보며 앞으로 필요한 균형잡힌 생활양식이 어떤 것이어야할지를 곰곰 자문하게 된다.

life · 시공간 여행

친구

4월 28일, 미국에 살고 있는 친구 가족이 한국을 방문해서 오랫만에 만났다. 옛 친구를 만나는 것은 언제나 즐겁고 기쁜 일이다. 공자 역시 인생 3락의 하나로 ‘벗이 스스로 찾아오는 것’을 꼽았을 정도가 아닌가. 비록 내 집을 찾아온 것은 아니지만 먼나라에 떨어져 있다가 한국을 모처럼 오게되었으니 ‘자원방래’라 할만하다. 마침 오전에 월봉상 시상식이 있었던 터라 오후엔 편안한 마음으로 봄 빛 가득한 삼청동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더 글로리 촬영장소라는 까페로쏘 골목의 풍경도 보기 좋았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대학을 거쳐 이어진 우정이니 거의 50년이 넘었다. 반세기 넘도록 각각의 인생길에서 서로 다른 삶을 살았고 만날 기회도 거의 없었지만 간간히 소식이 전해질 계기가 생기고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해후하게 되는 날도 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싶다. 수유리 한 구석에서 맺어진 인연이 관악을 거쳐 샌디에고로 또 보스턴의 하바드 스퀘어에서 이어지는 것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얼마전 타계한 테너 박인수가 부른 ‘친구이야기’ 영상을 누군가 보내주었다. 그 노랫말과 곡조가 좋아 나도 몇 친구에게 전달한 적이 있다. 집으로 내려오는 기차 속에서 이 가사가 새삼 생각났다. <많지 않아도/ 그리고 자주 만날 수 없어도 / 내게 친구가 있음은 / 얼마나 소중한 것입니까 // 멀리 있어도 / 가만히 이름 불러볼 수 있는 / 친구가 나에게 있음은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내 좋은 친구를 만날때면/ 웃음마다 봄날 기쁨입니다 /보고픈 친구를 생각할때면 /그리움은 잔잔한 행복입니다.>

곧이어 5월 2일에는 역시 우이교회에서 함께 지냈던 오랜 친구 태영, 희용, 명곤 등과 만나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육군과 공군의 지휘관이었던 두 친구 덕분에 간간히 골프모임을 하는 호사를 누리는데 실력은 제각각 다르고 특히 나는 점수를 기록할수도 없을 정도지만 옛 우정이 이어주는 만남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느끼게 하는 모임이다. 세월이 가는만큼 사회적 활동이 줄어들수록 친구의 소중함은 더 뚜렷해지지 않을까 싶다. 오랫만에 고국을 찾은 친구 은영씨와 선배님이 내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특히 멋지게 자란 두 따님 가원 승원의 앞길에 좋은 일이 가득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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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회 월봉상 시상식

4월 28일 49회 월봉상 시상식이 명동의 유네스코 회관 강당에서 개최되었다. 코로나 시기동안은 매우 축소된 약식 시상식을 할 수 밖에 없었는데 올해 다소 완화된 상황이어서 조금 초청자가 확대되어 그간 못본 분들도 여럿 참여했다. 이철우 이사장과 수상자의 지도교수와 동료 학자들, 한성구 교수, 한민구 교수, 한승미 교수 등 월봉의 후손, 이선민 선생 등 기념사업회 관련 인사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올해의 월봉상은 장진엽이란 신진 학자가 조선후기 일본을 왕래한 통신사의 필담집을 분석한 책자에 주어졌다. 한국문화를 일본에 전수하는 활동이라고 이해되어온 조선통신사의 면모를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연구다. 저자는 이 통산사의 내왕이 두 나라의 외교적 행사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부분적으로 조선지식인과 일본지식인 사이에서 드물게 이루어진 지적 소통과 학술적 대화의 장이었다고 본다. 따라서 필담집 역시 공식적 문서에서 볼 수 없는 내밀한 교류를 담고 있는 사료라고 보고 그 속에 담긴 문화적 상호작용을 드러내려 했다.

도진순 교수는 ‘차가운 평화, 뜨거운 필전’이란 멋진 제목을 단 심사평을 작성했다. 세밀한 분석력과 남다른 문장력을 지닌 도교수는 언제나 상당한 공력을 기울여 글을 작성하는 분이다. 안중근이나 이육사에 대한 그의 새로운 해석들도 자료 하나 사료 한 문장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꼼꼼함에서 얻어진 결과다. 이번 심사평도 제목을 두고 여러 분의 의견을 청해듣는 정성을 보여주었다. 개인적으로 ‘뜨거운 필전’이라 이름할 정도의 치열함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후학에 대한 애정과 유익한 조언이 담긴 좋은 글이라 생각된다.

심사위원으로 월봉상에 관여해온지 십수년이 지났지만 매년 다양한 영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책들 가운데 하나를 선정하는 작업은 쉽지 않고 해마다 그 어려움은 가중되는 느낌이다. 언제나 참신함과 노련함, 흥미와 중요성, 대중성과 전문성 사이의 어디에 무게추를 놓아야 할지 고민거리다. 다양한 연구서를 평가할 안목과 식견이 충분치 못하고 국내외 학문분야 동향에 대한 정보도 부족함을 절감하면서 오히려 내 스스로가 심사를 받는 느낌조차 든다. 식사 자리에서 농담조로 언젠가는 심사위원의 자격도 심사되어야 할지 모르겠다 한 것도 그런 마음의 반영이었던 셈이다.

시상식이 끝나고 유네스코 사무총장 방에서 한홍구 교수 등과 잠시 환담을 했다. 내가 한글로 쓴 유네스코 헌장의 두 폭 병풍이 접견실의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게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한 총장의 설명으로는 이곳에 오는 국내외 인사들이 한결같이 이 병풍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그때마다 한글의 아름다운 조형미에 대한 말들을 주고 받는다 했다. 알만한 분들에겐 내가 쓴 작품이란 설명도 덧붙인다니 감사하고 개인적으로는 영광이다. 이 글씨의 일부를 이용해서 다시 제작한 에코백을 선물로 받고 나온 명동길은 시민과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오랫만에 활기를 되찾은 듯 해서 반가왔다.

life · 시공간 여행

수묵으로 그린 초상

광주시립미술관의 김호석 수묵화전 개막전에 참석했다. 먹과 붓 만으로 오랜 동안 작업을 해 온 작가인데 정근식 교수가 축사를 한다고 알려와서 가게 되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지만 GIST에서 외곽 고속도로를 통해 많은 시간 걸리지 않고 갈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전시회 장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고 뜻밖에 시인 박남준도 반갑게 만났다. 화동 악양 마을에서 살고 있는 그도 이 전시회를 보러 일부러 광주를 찾았다 했다.

초기 작품에는 더러 채색이 있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작품이 먹의 농담만으로 표현된 수묵 담채였다. 통상의 전통 수묵화가 자연풍경을 대상으로 한 것이 많은데 비해 이 작가는 인물과 동물을 주로 대상으로 삼았다. 특히 현실 속의 인물들을 초상화의 형태로 그려왔는데 최근에 오면서 역사성이 담긴 시대화를 그리기도 하고 작은 곤충의 모습을 통해 환경주의적 메시지를 담으려 한 모습도 보인다. 사실성에 기초한 섬세한 묘사에 과감한 붓질, 생략과 추가의 독창적 구도를 통해 작가만의 독특한 작품을 만들고 있는 듯 했다.

미국 화단에서 주목을 받았다고 언론에 소개되었던 황희의 초상화는 마치 흔들려 찍은 사진처럼 눈과 코와 입술이 모두 두 겹으로 그려져 있다. 한 인물이 보여주는 상이한 면모를 이런 입체적 기법으로 드러내려 했다고 설명되는 모양이다. 실제로 위 아래로 그려진 네 개의 눈동자를 자세히 들여다 보노라면 외양의 눈과 내면의 눈을 함께 그린 것이 더욱 사실적이라는 느낌조차 갖게 된다. 도산 안창호의 얼굴을 그린 거대한 초상은 살아있는 듯한 눈매와 결연한 표정, 힘찬 붓질의 수염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좋아하는 인물을 저런 붓터치로 나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개인적으로는 ‘아들인 줄 알았는데 허공이었다’는 제목의 그림이 강렬해서 그 작품 앞에서 한동안 발을 떼지 못했다. 어머니인듯 한 여성이 누군가를 안고 있는데 정작 그 품에는 아무도 없이 텅 비어있다. 언뜻 보면 그리다 만 미완성 작품 같기도 한데 제목을 읽으면서 비로소 이 빈 공간의 의미가 와 닿는다. 허공이지만 아들인 줄 알고 감싸안은 여인의 모습을 통해 빈 여백 속에 귀한 무언가가 담겨 있을 수 있다는 희망을 말하는 듯 하다. 그런가하면 무언가 소중했던 것이 사라지고 없다는 안타까움을 그린 것 같다. 보기에 따라서는 허공조차도 아들로 알고 따뜻하게 껴안을 수 있다는 희망과 의지를 읽을 수도 있겠다. 작가의 어머니가 그 아들을 군대에 보내며 그린 것이라는 누군가의 설명을 들으면서 연민, 사랑, 회한 등의 복잡한 심사를 함께 느껴본 자리다.

activities

한일관계 평화포럼

4월 20일 포스텍 평화포럼 일곱번째 행사가 개최되었다. 최근 정부의 강력한 의지로 추진 중인, 제3자변제를 통한 강제동원피해자 보상안에 입각한 한일관계 개선 노력을 평가하고 국내외 파장과 향후 전망을 논의하는 자리로 기획한 것이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의 기조발제와 이원덕, 박찬승, 이근 교수의 토론, 여러 패널리스트의 의견개진으로 밀도있는 대화를 통한 배움과 소통의 장이 되었다.

발제자는 현 정부의 시도가 아쉬운 점이 있음에도 의미 있는 결단이었다고 평가하면서, 국내의 반응이 우호적이지 않고 일본측의 대응 역시 불확실하여 향후 전망이 밝지 않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토론에서는 여러 난관에도 불구하고 불가피한 전략적 선택이란 긍정적 평가와, 우리 대법원 판결의 정신을 훼손하고 향후 한일관계 정립에도 악영향을 끼칠 잘못된 정책이란 지적이 함께 제기되었다. 패널들의 견해 역시 이런 스펙트럼 상에 위치해 있었다. 다만 한일문제가 매우 어려운 난제이고 미래를 향해서는 해결되어야 하는 과제라는 점에는 다들 공감했다.

기획단계에서 가급적 다양한 관점을 지닌 분들을 초청하려 했다. 한국사, 한일관계, 남북관계, 한미관계, 동북아 지역연구 전문가들이 두루 참여해서 서로 다른 시각을 나누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대체로 그런 기대에 부응하는 뜻깊은 포럼이었지만 역시 국제관계학의 시각과 역사학의 시각은 접점찾기가 쉽지 않았다. 미래를 향한 결단이 필요하다는 당위와 과거의 족쇄를 풀어야 한다는 당위 사이의 긴장을 역동적 해법찾기로 풀어가는 지혜를 찾는 길은 여전히 멀어 보였다. “과거의 굴레와 미래의 도전”이란 부제에서 이 양자를 함께 넘어설 것을 목표로 했지만 그만큼 어려운 과제임도 확인된 자리다.

최근 뉴스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 및 대만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외신기자회견 언급으로 야기된 러시아와 중국의 강력한 반발이 대서특필되고 있다. 외교적 언사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의 거친 말들이 오가는 현 동북아 상황은 분명 그 자체로 염려스러운 현실이다. 중국의 강력한 부상과 중국중심주의가 큰 요인임은 부인할 수 없지만 이를 지혜롭게 다루는 외교역량의 부족, 미국일변도 전략 마인드도 심각한 문제인 듯 하다. 지구적인 상황변화에 따른 한국의 지정학적 리스크도 커지는데 그 복합방정식을 풀 능력은 오히려 퇴조하고 있는 것 아닌가 걱정스럽다.

방향이 옳다는 것과 방향전환을 지혜롭게 이루어내는 능력을 갖추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큰 틀에서 방향에 동의하더라도 이를 감당할만큼 충분한 소프트파워를 갖추었는지는 별도로 따져볼 일이다. 실제로 안팎의 여건과 상황을 고려한 시간계획, 선후연계, 강약조절의 정치외교적 역량이 어떠한가에 따라 결과는 하늘과 땅만큼 달라질 수 있는데 현 정부의 추진방식에 대해서는 신뢰보다 염려가 앞서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3차방정식을 2차방정식처럼 풀고자 하는 단순화의 오류가 21세기 지정학의 복합성에 제대로 대응할 역량을 약화시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