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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에서 탈식민으로

반일을 넘어 탈식민의 성찰로 – 조형근 박사가 쓴 [우리 안의 친일] 책의 부제로 달린 화두다. 나는 우리 사회 곳곳에 강한 정서와 상식으로 자리잡고 있는 집합적 정동, 자긍심과 혐오심의 이중주를 볼 때마다 이 주제가 우리 시대의 시급한 과제라는 생각을 한다. 한 쟁점에 대한 반대 자체가 무비판적이고 절대적인 가치로 자리잡을 때 제대로 된 성찰이나 문제해결로 나아가기는 어렵다.

윤석렬 정부가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소위 통 큰 결단을 강조하고 있다. 3.1 절 기념사에서 일본의 잘못과 식민통치의 수탈성을 강조해온 이전의 내용과는 사뭇 다르게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미래로 나가자는 주장을 내세우고 일본 기시다 수상과의 정상회담에서는 일본의 반성과 사과에 대한 담보 없이 일방적으로 위안부 문제를 매듭짓겠다고 했다. 한일관계를 개선하겠다는 뜻임을 밝혔지만 치밀하지 못한 접근에 대한 안팎의 우려가 만만치 않다. 예상대로 역사학계를 비롯하여 강력한 반발이 이어지고 있어서 과연 기대한 방향으로 진전될지 염려스럽다.

과거를 정리하고 새롭게 출발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개인도 국가도 이미 지나간 것에 연연하는 것은 좋을 것이 없다. 감정과 정서, 이해관계로 얽힌 이웃 국가간의 관계가 늘 과거사로 묶여 다람쥐 쳇바퀴돌 듯 하는 것은 피해야 할 일이다. 동시에 진실을 밝히고 책임을 분명히 하자는 주장이 그런 미래로의 진전과 배치되는 것은 아님을 깨닫는 것도 중요하다. 사과를 하고 응분의 책임을 묻는 것은 과거를 넘어서기 위함이지 지난 일 속으로 퇴행하려는 것이 아님을 한일의 지도자는 깨달아야 한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이 덫을 지혜롭게 넘어서는 일이 21세기 최대의 난제가 될지도 모르겠다.

조박사는 이 책의 챕터에 여러 부제를 달았다. 나에게는 각 장의 제목과 부제가 저자의 뜻을 드러내는 명료한 메시지처럼 와 닿는다. “민족주의 – 제국의 욕망과 동행하다”, ” 역사의 단죄 – 당신은 친일하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까?”, “프랑스와 독일의 과거사 청산 – 역사에는 단판 승부가 없다” – 굳이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저자가 던지는 말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역사에 성실하려는 자세에서만 제대로 된 탈식민도 가능할 터… 우리 내부의 욕망을 숨기지 않을 때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약점과 떨림을 정면으로 대면하면서 화해와 연대를 이룰 길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