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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신록 단상

5월 코로나에서 벗어난 신록의 달을 맞이하는 마음이 새롭다. 학생들의 수업 분위기도 달라 보인다. 봄이 봄같지 않았던 지난 3년에 비추어 보면 사람들의 걸음걸이도, 수목의 초록빛도 확실히 더 활기찬 듯하다. 경제적으로 불경기가 계속되고 한반도 주변 안보상황도 어려움이 가중되어 마음 한 구석이 무거운데 계절이 주는 활력 만이라도 듬뿍 받아 누리는 것은 너나 없이 소중한 일일테다.

그래서인지 세종 집에 걸어둔 도연명 ‘귀거래사’가 내용은 좋지만 너무 은둔적이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자연은 조용하기도 하지만 활기차기도 한 것인데 이 글은 너무 소극적인 정서에 쏠려 있어 봄의 역동성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언젠가 한 후배가 세종 집에 왔을 때 정년 후 보다 적극적인 활동력이 필요한 데 저런 글은 도움이 되지 않으니 떼어 내는게 좋겠다고 핀잔을 준 적이 있다. 욕심을 줄이고 세상사의 관심을 축소시킬 필요가 있다는 생각은 지금도 여전하지만 새 봄 푸르게 변하는 자연의 활력을 보노라면 그 후배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생각을 점점 더 하게 된다.

지난 3월 학과의 후배 정 교수 퇴임행사가 호암교수회관에서 열렸을 때 축사를 부탁받았다. 축사 내용을 준비하면서 통상의 덕담과 함께 정년 전후의 삶이 달라질 필요가 있음을 언급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왕성한 활동력과 인적 네트워크를 과시하고 또 모든 일에 열정적으로 참여해온 정 교수에게는 정년 후에 더 열정적으로 활동하라는 조언이 적절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2년간 열심을 다했던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 직을 내려놓은 허전함과 퇴직이 가져올 공허함을 당당히 넘어서고 지속가능한 생활패턴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정년 전후의 질적 변화를 진지하게 수용하는 마음자세가 필요하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이 조언은 사실 내 자신의 댜짐이기도 했다. 코로나 팬데믹 와중에서 수십년간 몸담았던 학교를 떠나면서 새로운 변화에 정서적, 심리적으로 얼마나 잘 적응할지 내심 염려가 없지 않았고, 그럴수록 내 기대수준을 줄여야 한다는 다짐을 스스로에게 애써 강조하곤 했다. 그 이후 비교적 소프트랜딩한 것은 참으로 다행인데, 광주과학기술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 것이 큰 도움이 되었지만 활동의 폭을 축소하려고 애쓴 나름의 각오도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소프트랜딩은 소프트랜딩일 뿐, 앞으로 지속가능한 생활태도의 확립은 또 다른 과제임을 깨닫고 있다.

결국은 균형잡기가 문제다. 열심히 활동하되 과욕을 줄이고, 평안을 유지하되 활력을 잃지 않는 새로운 균형점을 찾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물론 말처럼 쉽지 않은 과제다. 새로운 활동영역을 찾아나서는 것도 지혜로와야 하고 변해가는 환경에 자족하며 평정심을 유지하려면 내면이 더욱 충실해져야 한다. 소망의 끈을 지상에서 하늘로 옮기는 종교적 실천만이 답일지도 모르겠다. 조용했던 주변이 놀랍게 깨어나고 있는 5월의 신록을 보며 앞으로 필요한 균형잡힌 생활양식이 어떤 것이어야할지를 곰곰 자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