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간 여행

려순감옥

여순, 뤼순이라고도 하는 곳은 동북아 근대사의 요충지였고 20세기 한국사와도 연관이 깊다. 러시아의 영향 하에 개발된 곳이면서 러일전쟁으로 승리한 일본이 할양받았다가 3국간섭으로 내놓은 곳이다. 이토오 히로부미를 저격한 의사 안중근이 투옥,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곳이다.  신채호를 비롯한 적지 않은 한국의 독립지사들이 옥고를 치루고 심지어 옥사한 가슴 아픈 역사가 배어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국사회사학회의 학술회의를 마치고 현지 교수의 도움으로 이곳을 방문, 곳곳을 둘러보면서 동북아 지정학의 안타까운 엇갈림을 생각했다. 이곳이 유럽 지중해의 도시처럼 중국과 조선, 러시아와 일본을 잇고 서로의 문물이 섞이며 신뢰와 호혜의 도시를 건설할 가능성이 없진 않았을 터… 그 길이 막힌 연유가 어디에 있었을까를 생각하며 동북아의 초국가적 도시형성의 미래를 꿈꿔본다.  

시공간 여행

압록강 철교의 일출

중국과 북한을 잇는 도시 단둥의 정경은 특이하다. 압록강을 경계로 대비되는 양 지역의 변화상은 개혁개방으로 대국굴기를 이루어가는 중국과 자력갱생을 부르짖는 위기의 북한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곳에는 두 개의 철교가 있다. 일제 강점기부터 존재하던 압록강철교는 한국전쟁때 파괴되어 중간이 끊긴 모습 그대이고 그 옆에 새로이 세워진 철교 위로 열차와 화물차들이 오간다. 이 두 철교는 한반도 근현대의 안타까운 역사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역사의 조형물인 셈이다.  

시공간 여행

하바드옌칭연구소

하바드 옌칭연구소는 내 삶의 여정에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Visiting Fellow 로 1년 반을 지냈던 1989-1990년, 이곳에서 조선과 일본의 근대국가형성을 비교한 박사논문을 마무리했고 아들 종인이도 여기서 태어났다. 이 시기는 탈냉전과 천안문 사건, 베를린 장벽붕괴와 독일통일 등 굵직한 사건들이 줄을 잇던 때였고 민족사에 갇혀있던 내가 세계사의 감각에 눈을 뜬 곳도 이곳이었다. 둘째 윤영이가 하버드로 유학하여 박사학위를 받고 케임브리지에 정착하게 된 것, 2019년 다시 이곳을 방문해서 마지막 연구학기를 보내게 된 것, 하버드옌칭한국학회의 회장을 맡게 된 것 등도 내 삶의 여정을 풍요롭게 만들어준 것들이다. 내 삶의 종반전에는 어떤 오아시스를 만날 것인가 …  

시공간 여행

뫼들라로이트

베를린 대학 석좌교수인 박성조 교수의 안내로 통일독일의 현장을 둘러보던 여행길에 들린  마을. 이 작은 마을은 분단으로 동네 한 가운데에 장벽이 생기고 감시탑이 높이 세워져 작은 베를린이라고 불린 곳이다. 지금은 그 장벽의 일부와 철조망, 감시탑 등이 모두 관광의 대상이 되고 있고 그 터무니없던 역사는 기록관에서 새롭게 재해석되고 있었다. 장벽이 서 있던 곳에 작업용 포크레인이 그려진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construction 은 물리적 건설을 뜻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삶, 새로운 관계, 새로운 기억의 구성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저런 문화적 포크레인이 한반도의 휴전선 지대에 세워질 날은 언제일까…

시공간 여행

알함브라 궁전

기타연주곡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감미로운 선율로 일찍이 친숙해진 노래다. 하지만 정작 알함브라 궁전을 가보고 싶은 마음은 크지 않았다. 그럴 기회가 내게 올 리 없으리라는 지레 짐작이 이유였을지 모른다. 스페인의 중부도시 그라나다에서 회의가 있는 절호의 기회, 한 여행단에 섞여 안달루시아 지방을 둘러보았다. 이슬람 문명의 아름다움과 건축미가 온축되어 있는 알함브라 궁전의 섬세한 배치, 선, 대칭, 구도에 놀랐던 감동이 새롭다. 기독교 국가의 문화 속에 이슬람 문명의 예술성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그 모습은 21세기 인류가 본받아야 할 어떤 방향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 날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내 마음 속에 선율없는 노래로 남아있다.   

시공간 여행

효경언해

선대로부터 내려오던 오랜 문집들을 정리하다 발견한 책. 효경을 번역하여 부녀자들의 교육용으로 사용한 언해본으로 16세기에 처음 간행되었다. 이 판본을 사진으로 본 한 전문가의 견해로는 17세기에 제작된 목판본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경상도의 궁벽진 지역에까지 이런 언해본이 퍼져서 활용되었다는 사실도 흥미롭지만, 이 목판본의 한글체가 매우 아름답고 정갈해서 더욱 관심이 간다. 

시공간 여행

명사산의 선

어릴 적부터 사막을 가보고 싶었다. 고운 모래만 한없이 펼쳐진 땅, 바람이 만들고 부수는 기이한 선, 그 속에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낙타행렬 등이 마음 속 사막의 이미지였다. 쓸모없는 땅을 뜻하는 황무지와는 달리 사막은 신비감과 장엄함의 아우라를 지닌, 살아있는 공간이다.  청마 유치환의 ‘그곳은 熱沙의 끝’ 이란 시구를 접했을 때 장엄한 불모성을 떠올렸던 것도 그런 감각의 연장이었을 것이다. 돈황을 가면서 들렀던 명사산은 글자 그대로 모래가 만든 산인데 그 아름다운 선은 바람에 따라 수시로 변한다. 내 삶이 특별한 소출을 남기지 못해도 황무지의 삭막함이 아닌, 사막의 신비함으로 장엄하기를 기대해본다.   

오늘의 화두

讀書와 廳書

집콕의 시간이 계속되면서 책 읽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런데 강제로 유폐된 느낌이어서 그런지 책에 집중할 마음의 평정심이 자주 깨진다. 잡생각이 많아지고 이런 저런 염려들이 마음을 뒤흔든다. 유발 하라리의 3부작 [호모 사피엔스], [호모데우스]와 [21세를 위한 21가지 주제]를 e-book으로 읽다가 소리로 읽어주는 기능에 처음 접했다. 침대에 누워서 듣는 독서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아직은 기계음의 어색함이 이해를 방해하고 눈으로 읽는 것만큼 의미파악이 되는 것 같진 않았지만 청각으로 와 닿는 타인의 생각은 확실히 달랐다. 독서가 아니라 청서의 시대가 오는 것인가.  

오늘의 화두

거연재 (居然齋)

번잡한 도시를 떠나 전원생활을 해 보려 마음먹은 지 몇 년이 지났다. 조용한 시골에 땅을 보러 다니기도 했고 어떤 집이 좋을지 다른 집들의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고 관련 프로그램들을 시청하기도 했다. 아직 그 꿈은 미완으로 남아있지만 가상의 공간에 새로운 집을 짓게 되니 마음이 즐겁다. 비대면의 기술환경이 강의나 회의, 거래와 소비에 한정될 이유는 없을 터, 웹사이트의 공간이 주는 새로운 방식이 21세기형 선비의 혁신공간이 될 수도 있겠다. 제자들의 정성으로 터가 닦인 이 집을 ‘거연재’라 이름하면서 담담하면서도 역동적일 새 삶을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