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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매화

남도부터 매화 소식이 전해지더니 내가 근무하는 광주과기원 교정에도 매화가 피었다. 크거나 화려하지 않지만 고고하고 은은한 자태가 새 봄을 알린다. 옛부터 매화는 절개의 표상으로 간주되어 사군자의 첫자리를 차지했다. 특히 유학자들은 고매(古梅), 한매(寒梅), 설중매(雪中梅) 를 즐겨 그렸는데 한겨울을 지나면서 꽃을 피우는 매화가 세속에 물들지 않으려는 선비의 기개를 표상한다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매화는 벗꽃에 비해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못한다. 벗꽃이 필 때면 상춘객들로 전국이 부산하지만, 매화를 찾아 길을 떠나는 사람들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 최근 하동 섬진강변의 매화마을이 새로운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화엄사의 홍매나 선암사의 고매를 아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여전히 한두 그루 매화가 고고하게 꽃을 피운 자태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치 않다. 고결함과 절개를 그다지 중시하지 않는 21세기에 벗꽃의 화려함에 미치지 못하는 매화가 주목받지 못하는 건 당연할지 모르겠다.

매화를 좋아했던 퇴계 이황은 매화를 소재로 한 시 백여수를 남겼다. 매화를 매형이라 부르기도 한 그는 선비 정신을 대변하는 인물답게 엄동설한을 견뎌낸 절개를 매화의 전형적인 성품으로 여겼다. 그런데 그의 매화시 가운데는 다소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하는 것도 있다. ‘梅窓又見春消息 莫向瑤琴嘆絶絃’ (매화 핀 창을 통해 또다시 찾아온 봄을 본다 / 거문고 마주앉아 줄 끊어진 것 탄식하지 마라.) – 또우 (又) 자에 주목해서 읽어보면 ‘다시’ 피는 매화, ‘다시’ 오는 봄을 주목하는 시인의 독특한 감수성이 느껴진다.

매화는 때가 되면 반드시 다시 핀다. 추운 겨울을 견디고 낡은 고목에도 생명을 피워내는 그 꽃은 끝없이 재생되고 되살아나는 기운의 상징이다. 그러니 매화 다시 피는 걸 보는 이들이라면, 줄 끊어진 거문고에서 새로운 노래 울릴 때가 올 것을 믿을 수 있다. – 퇴계는 매화에서 이런 반복, 재생, 희망의 모습을 읽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러고보면 21세기에 매화는 절개의 상징으로보다 희망과 부활의 전령으로 읽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새로 시작한다는 것, 다시 봄소식을 접한다는 것, 죽은 고목에서 꽃이 피는 부활이 실재한다는 것 – 매화의 새로운 이미지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그래야 거문고줄 끊어져 상심한 사람들이 새로운 희망을 가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런 의미를 담아 고목에서 피어난 매화와 퇴계의 싯구를 제사로 한 매화도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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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성 ‘小山秘景’ 三樂

가나아트에서 전시 중인 소산 박대성 기념전인 ‘소산비경’을 관람했다. 월봉상 심사가 마친 후 두어시간 비는 틈을 이용해서 다녀오리라 세종서 상경하면서부터 작정을 했었다. 점심 장소가 시내로 잡혀 시간이 조금 촉박해졌지만 도진순 교수도 함께 가겠다고 해서 택시를 탔다. 역사학자인 도교수는 문화예술, 특히 서화와 작가에 대해 남다른 식견을 지닌 분이어서 늘 듣고 배우는 바가 많다. 예상치 못한 즐거움이 더해져 풍성한 견학이 되었는데 가히 ‘소산비경 3락’이다.

제1락, 소산의 여러 최신 작품을 접한 즐거움이 크다. 일부 작품은 재작년 경주 솔거미술관의 코리아판타지 전에서 본 것이었지만 나머지는 새로왔다. 대작들은 금강산, 불국사 등을 대상으로 한 것이고 소품들은 담장과 산, 폭포의 아름다운 모습을 다양한 방식으로 묘사했다. 특히 2024년 작으로 되어 있는 ‘불국설경’은 인상적이었다. 이와 크기와 구도가 유사한 그의 1996년 작 “불국사”가 강한 농묵으로 소나무와 사찰을 표현한 이전 작품에 비해 이번 작품은 먹의 강도와 비중을 최소화하여 훨씬 밝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삼릉비경’은 흑백의 먹으로 그려진 신라의 풍경에 샛노란 달을 배치하여 몽환적인 분위기를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그의 작품 속에는 산 속에 부처와 탑이 만화처럼 자리하는 상상도가 종종 눈에 띤다. 또 하나의 대작 “금강설경”(2019)도 역시 기암괴석과 소나무를 최대한 자제된 갈필로 처리하여 웅장하면서도 담백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왼편 아래에 ‘금강에 살으리랏다’ 시조가사가 한글 서체로 쓰여있다. 그림과 글씨가 하나라는 소산의 지론대로 그의 글씨는 조형미를 우선시하는 일종의 글그림이라 해도 좋을 듯 싶다. 두루마리 양식에 쓰인 그의 한시작품 역시 글자의 조형미만으로 충분히 아름다왔다.

제2락, 소산 화백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친필 도록을 받은 것이다. 작가와의 만남도 행운이었지만 소산이 자신의 작품집을 챙겨 내 이름과 작가 사인을 담아 선물해 준 것, 게다가 서대문까지 택시로 동승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 것은 망외의 즐거움이었다. 하바드 대학에서 개최되었던 소산 심포지엄에 참여했던 일, 경주 솔거박물관 코리아 판타지 전을 가 보았던 일을 들은 소산은 티없이 웃으며 좋아했다. 그를 창원대로 초빙한 적 있는 도교수는 이전의 기억들과 부인인 정미연 화백의 안부를 물었고 오랜 지기마냥 다정한 담소를 나누었다. 소산의 도록집은 Park Dae Sung – Ink Reimagined 라는 제목의 영문책자인데 정성들여 잘 제작된 일종의 박대성 연구서다. 미국에서 소산을 알리는데 중심 역할을 하고 있는 김성림 교수가 대표집필하고 다트머스 예술박물관이 후원하여 출간된 것이다. 내용 중 ‘眞-幻 dynamics’라는 개념이 눈에 들어온다. 사물의 실재성과 작가의 상상력이 상호작용하면서 빚어내는 동양 산수화의 미학에 대한 해석틀인데 미술에만 국한될 것은 아닐 듯도 싶다.

제3락, 권상연 성당과 그 미학을 담당한 정미연 화백을 알게 된 것이다. 소산의 도록집과 함께 받은 [치유]라는 책자는 2021년 한국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 권상연을 기리는 성당 건립과정과 함께 그 미학을 담당한 정미연 화백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검박하면서도 여성적이며 숭고하면서도 친근한 예수상과 마리아상이 이 뜻깊은 성당의 역사성과 신성함을 잘 드러내는 것 같다. 이들이 순교한 장소에 세워진 것이 전동성당이고 그 아름다운 자태는 지금도 여전한데 230년만에 순교자의 유해가 발굴되자 그들을 기념하는 성당을 건립하기로 결정한 카톨릭의 역사가꾸기 정신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인 정화백은 혼신의 힘을 다해 이 성당의 곳곳을 성스럽고 아름다운 작품들로 채웠는데 순교자의 아픔이 어딘가에 담겨져 있는 느낌이 든다. 암투병 중이었음에도, 아니 어쩌면 그런 육신의 질고를 겪고 있었기에 더욱 더 이런 일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정 화백의 글과 작품들을 보면서 나는 십여년전 소천한 김영무 시인이 떠올랐다. 그는 암으로 투병하면서 온 몸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시적으로 노래한 시집 [가상현실]을 출간했다. “시간의 뿌리와 공간의 돌쩌귀가 / 뽑혀나간 너의 현실은 안과 밖 따로 없이 / 무한복제로 자가증식하는 / 아, 디지털 테크놀로지 최첨단 / 암세포들의 세상 /…. 덫에 걸린 너의 삶은 / 순백색 빛의 나라, 가상현실” — 무한복제로 자기증식하는 암세포와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한데 묶는 시인의 상상력에 놀라왔던 기억이 새롭게 떠오른다. 정미연 작가 역시 암세포와 싸우며 고통을 은총으로 바꾸어주는 신앙의 힘을 느꼈다고 고백하는 것을 보면서, 아름다움으로 고통을 이겨내는 저들의 모습에는 깊은 종교적 신심과 함께 예술혼의 숭고함이 깔려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소산의 진지하고 한국적인 미학과 정 화백의 여성적이고 종교적인 미학도 그런 점에서 상통하는 것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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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 해공, 2국가론

2월 6일 국민대 한반도미래연구원과 민주평통 교류협력분과위원회가 공동주최하는 라운드 테이블에 패널로 참여했다. ‘국제정세와 남북관계를 중심으로 2024년을 전망한다’는 것이 전체 주제였다. 이 행사에는 조현 (서울대 교수, 전 유엔대사), 신각수 (세토포럼 이사장, 전 주일대사), 김천식 (통일연구원장, 전 통일부차관), 박명규 (GIST 초빙석학교수, 전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장), 김병연 (서울대 교수, 전 국가미래연구원장)이 패널 발제자로 참여했고 김주현 초대 원장 (전 현대경제연구원장)이 좌장으로 토론을 이끌었다. 많은 숫자가 모인 것은 아니나 청중들의 경청하는 태도나 질문의 내용에서 진지함을 느낀 좋은 자리였다.

행사장으로 향하는 본관과 법학관 건물 입구에 해공 신익희 선생 동상이 서 있다. 간밤에 내린 눈으로 소복히 눈덮인 동상 앞에서 잠시 국민대 설립자이자 초대총장이었던 해공을 떠올렸다. 해방 직후 건국을 담당할 인재양성을 위해 대학 설립이 긴요하고 그 새로운 대학은 민족의식이 투철한 독립운동가들이 주도해야 한다는 확신을 해공은 지니고 있었다. 당연히 당시 미군정이 추진하던 ‘국립대학설립안’에 극력 반대했고 많은 어려움 속에서 1946년 9월 국민대학을 설립했다. 이 해에 평양의 김일성종합대학과 서울의 국립서울대학이라는 두 대학이 쌍생아처럼 병립하게 된 현상은 제법 알려졌지만, 남한 사회 내부에서 국대안 파동 속에 국립 서울대와 민립 국민대가 함께 출범한 사실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다.

사립학교를 방문할 때면 으례 접하는 설립자의 동상을 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어느때부터인가 생각이 다소 달라졌다. 뚜렷한 사명감과 정신적 가치를 지닌 설립자의 삶이 귀감이 되는 경우에는 그런 상징이 대학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주요한 구심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일본 게이오대학에 있는 후쿠자와 유키찌의 흉상을 보았을 때 내가 느꼈던 부러움도 그런 맥락에서였을 것이다. 해공의 동상 앞에서 변변한 상징적 인물을 내놓기 어려운 한국의 대학들, 특히 내가 다니고 근무했던 서울대학을 생각했다. 국립대학으로서 특정 인물로 상징화하기엔 어려움이 있을테고 보편적 인류적 사명감을 중시한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빠리 소르본느에 꽁트, 파스퇴르, 위고의 흉상이 있음을 생각하면 그렇게만 해석할 일도 아닌 듯 싶다.

남북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려는 국민대의 정성은 해공 이래 대학의 정체성을 잊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선한 노력이 아닌가 싶다. 김형진 교학부총장이 대독한 정승렬 총장의 인사말에서도 국민대의 이런 지향이 느껴졌는데 평화통일대학원 건립이 거의 실현단계에 도달했다는 소식도 접했다. 작금의 한반도 사정을 생각하면 쉽지 않은 일일텐데 국민대의 건학이념에서 보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라운드 테이블에서는 대체로 유사한 현실진단을 내리면서도 일부 쟁점에서는 상이한 견해들이 피력되기도 했다. 국제관계를 전망하면서 조현 교수는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 약화, 유엔의 기능정지, global South의 확대, 경제와 안보의 수렴 등으로 인한 국제질서의 불안정성을 주요한 변수로 꼽았다. 특히 ‘취약국가 한국’이라는 표현이 눈에 띠었는데 변화하는 세계정세가 한국의 ‘취약성’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논지였다. 동북아 정세를 발표한 신각수 대사는 큰 틀에서 미중관계가 안정화되는 흐름을 보일 것으로 예측하면서도 중국경제의 부진, 미 대통령 선거, 북핵 고도화 등 여러 불확실한 변수에 대비해야 할 것을 지적했다. 특히 한미동맹을 위시하여 한일 및 한중간의 양자관계와 한미일 3각 협력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적극적 인태전략과 유럽연계를 통해 주변국에 의한 전략공간의 제약을 돌파할 필요성도 함께 지적했다.

남북관계가 악화되고 있는 현실이지만 김천식 원장은 1민족 1국가 1체제 통일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할 것과 남북한 동질성 회복노력을 지속해야 할 당위성을 강조했다. 그 맥락에서 북한의 최근 2국가론이 얼마나 반민족적이고 반통일적인지, 통일의지의 확인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나는 북한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고 특히 적대적 2국가론은 잘못된 발상임을 전제하면서, 남북간의 상호성을 규율할 전략적 프레임을 재구성해야 할 필요성을 지적했다. 분단 80년이 가까워오고 유엔 동시가입 30년을 넘긴 남북한이 실질적으로 별개의 주권적 실체로 존재함을 인정하면서 상호통합을 추구하기 위한 새로운 발상과 동력을 탐색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의 국민의식에서도 무리하거나 급속한 통일보다는 평화공존 형태의 2체제 상태를 지지하는 경향이 높다. 이런 점에서 평화공존형, 통합지향형 2국가 상태를 필요한 중간단계로 간주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 쟁점은 객석에서의 질문과 토론으로도 이어졌는데 여전히 국가론과 민족론은 뜨거운 화두임을 느끼기에 족했다.

김병연 교수는 경제학자답게 권력은 총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빵에서 나오는 것이라 했다. 그런 맥락에서 김정은의 현 정책방향은 빵보다 총구를 중시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라 보았다. 내부의 시장효율성을 억제하면서 사회주의 계획경제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이는 오늘 북한의 경제는 지속가능하기 어려울 것이 분명해 보인다. 다만 장기간의 국제제재와 내부자원결핍에도 불구하고 저토록 강력한 군사주의와 동원체제를 유지해가는 나름의 물적 기반에 대해서 우리가 경시하는 것은 아닌지도 자문해 볼 일이다. 빵을 얻기 위해 총구를 사용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독재자들도 역사에선 결코 드물지 않다는 점을 생각하면 경제적 분석이 정치적 동학과 함께 숙고되어야 할 필요도 커지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세종으로 돌아온 다음날 RFA의 기자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이날 내가 말한 논지를 잘 들었고 ‘한반도 2국가론’과 관련한 좀더 깊이있는 인터뷰를 했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개학을 앞두고 여러 일들이 있는데다가 날짜 조정도 여의치 않아 다음 기회를 보자고 정중히 거절했다. 분명 우리 사회의 젊은 세대와 일반 국민들 사이에선 북한에 대한 거부감과 따로 살자는 정서가 존재하지만 2국가론이라는 발상에 따르는 정치적 심리적 전략적 부담도 만만치 않아 고민스러운 것이 현실이다. 정주외국인의 숫자가 급증하면서 다종족 상황도 커지는 한국에서 전통적인 민족감정에만 기초해서 사회통합을 달성하기도 어려운 것이 오늘의 모습이다. 수년전에 “비대칭적 분단국가체제”로 이름했던 논지를 새롭게 다듬어 통일을 지향하되 2체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2 분단국가론”으로 좀더 정교한 틀을 발전시킬 필요를 느낀다. 나름 방향은 잡히는 듯 한데 당장 내딛을 길에 대한 확신이 아직은 부족하다. 아, 언제나 내 공부가 충분한 깊이에 도달할까, 임중도원 (任重道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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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비아토르 (Homo Viator)

1980년대에 전북대학교에서 90년대에는 서울대학교로 옮겨 오랜 기간 교직생활을 함께 한 우한용 교수, 서경호 교수와 저녁을 함께 했다. 두 분 다 나보다는 선배지만 비슷한 시대에 대학생활을 했고 같은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친 인연으로 서로 좋아하고 최근에는 페북과 유네스코 활동을 통해 간간히 교류하기도 하는 사이다. 하지만 여유롭게 깊은 대화를 나눌 기회는 갖지 못했기에 정년을 한 이후 언제 한번 보자 하다가 이제야 그 약속을 이루게 된 것이다.

서경호 교수가 예약해둔 장소는 경복궁 옆 서촌의 한 조그만 한옥 까페 ‘한옥달’이었다. 좁은 골목길 안쪽 오래된 한옥을 그대로 활용하고 내부에도 전통적인 가구와 소품들을 배치한 예스런 분위기가 문화인들이 좋아할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 한국측 위원장으로 활약한 서교수께서 경복궁의 문화재청에서 회의가 있을 때 종종 이용한 곳이라 했다. 음식도 이태리식을 한국인 입맛에 다소 퓨전화 한 것인데 맛깔스럽고 좋았다. 때마침 얕은 눈이 내려 작은 마당이 하얗게 덮였는데 강하지 않은 조명과 어우러져 옛날 어느 시대로 내가 돌아가 있는 느낌을 받았다.

우한용 교수는 단편 10권, 중편 2권, 장편 5권의 소설집을 펴넨 중진 소설가다. 시집도 여러 권 출간했으며 다양한 장르와 주제를 다루면서 문학의 지경을 넓히는데 지금도 열정적인 분이다. 이 날도 소설집 [왕의 손님]을 증정받았다. 페북에도 적극적으로 글을 올리는 우교수의 글쓰기는 일상의 소재에서 인생사의 굴곡과 지혜를 찾아내는 중후하고도 맛깔나는 글로 페친들 사이에 정평이 나 있다. 나도 우교수가 올리는 글들은 늘 정독하는데 동서양의 시나 경구, 문학과 예술에 얽힌 각종 에피소드들을 적절히 활용하고 소개하는 그의 글을 읽는 즐거움이 크기 때문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자주 올리는 글인데도 글의 길이와 깊이가 어느 누구도 흉내내기 어려울 정도여서 읽을 때마다 그 기억력과 상상력, 문장력에 경탄하곤 한다.

모임 바로 전에 뉴질랜드와 타이티를 여행하고 돌아왔노라 했다. 그 여행이 고갱에 대한 탐구와 맛닿아 있다는 것을 페북에서 읽어 알고 있었지만 쉽지 않은 여행동선을 들으면서 인문학자다운 탐사여행이란 생각을 했다. 내 페북에 보스톤 미술관에서 찍은 고갱의 대작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라는 작품을 내 사진으로 올렸는데 우교수께서 ‘왜 그림 속에 웃는 여인은 없는가’고 물었었다. 고갱에 대한 깊은 관심과 맛닿아 있음을 뒤늦게 알았지만 제대로 답을 할 식견이 내겐 없었다. 고갱이 문명화된 빠리를 떠나 자연 그대로라 상상한 타이티로 갔으나 정작 파페에테는 당시에도 이미 도시화되어 있었던 현실에 실망한 탓일지도 모르겠다. 고갱은 파페에테의 ‘반얀트리’ 아래에 앉아 건너다 보이는 섬 우레아를 내다보고 또다른 탈출을 꿈꾸었다고 우교수는 적었다. 타이티를 두루 다니면서 그 답을 얻으셨을까?

서경호 교수는 [신해경연구]를 비롯하여 중국 고전문학의 탁월한 업적을 남긴 중문학자다. 또 [자메이카]라는 제목의 두툼한 장편소설을 상재한 작가이기도 하다. 하바드 대학에서 박사를 받았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 위원으로 지구촌 곳곳의 문화유적에 해박한 분이다. 전북대 시절부터 그의 자유롭고 폭넓은 식견과 문화적 포용력을 좋아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서울대 자유전공학부장으로 인문학적 상상력과 융복합적 사고의 중요성을 학생들에게 늘 강조한 분이기도 하다. 작년부터 나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의 위원으로 위촉을 받아 간간히 회의에서 뵙는 기회가 있었지만 좀처럼 긴 시간 이야기 나눌 시간을 갖지 못했다.

나는 서교수님을 볼 때면 그의 소설을 읽었을 때의 충격을 떠올린다. 탁월한 중문학자가 소설을 썼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그 소설이 다룬 시공간적 배경의 스케일이 매우 큰 것에 더욱 놀랐다. 그 소설은 한반도 남북분단의 현실을 배경으로 하지만 전지구적인 동학과 인물들이 등장한다. 미래의 어느 시점을 상정한 상상력이 빚어낸 그 작품은 예상 가능한 국내의 징치동학과 해외의 지정학적 영향력을 치밀하게 녹여내 미래학 탐구서로 사용되어도 좋을 정도였다. 이 소설에서는 한반도가 통일되는 대신 중국과 한반도 사이에 일종이 완충구역을 두자는 안이 미국을 비롯한 주변강국 사이에서 논의되고 있는데 소설적 상상력이지만 역사적인 개연성이 없다 할 수 없는 미묘한 포인트가 흥미롭지만 무겁게 전개된다. 임진왜란 전후하여 주변국가들 사이에 한반도 분할안이 여러 차례 등장했던 역사적 경험들을 떠올렸었다. 새 소설은 쓰지 않으시냐고 물었더니 손사래를 치신다. 한반도 중심의 스토리텔링이 재미있고 역동적이기보다 힘겹고 부담스러운 상황으로 이행하고 있는 탓일지도 모르겠다.

두 병의 와인을 비우면서 나눈 우리의 대화는 끝이 없었다. 즐거웠고 유쾌했으며 식견이 넓어지는 망외의 소득까지 있었다. 까페가 문을 닫는 시간까지 떠들다가 지하철도 함께 타고 각자의 집으로 갔다. 떠나기 전 찍은 사진을 다음날 보냈더니 우교수께서 ‘이 건달들을 어찌할 것인가’라고 적고 ‘호모 비아토르’라고 덧붙였다. 여행하는 자, 한 곳에 머물지 않는 자라는 뜻인데 프랑스 철학자 마르셀이 인간의 속성으로 규정한 말이라 한다. 그 표현이 정겹게 느껴져 이 사진에 ‘호모 비아토르 – 아름다운 건달들’이란 이름을 붙여두었다. 모두들 건강하고 그 멋진 필력과 상상으로 더 많은 작품 남기시길 기원한다.

activities · life · 오늘의 화두

sing again, life again

싱어게인 3 프로그램의 마지막 공연이 끝났다. 실력있는 무명가수들의 노래를 듣는 즐거움이 크지만 누군가는 탈락해야 하는 모습을 보는게 힘들어 중간에 채널을 돌리곤 했던 프로다. 최종회는 선정된 일곱명이 더이상 탈락의 두려움 없이 자기 이름을 걸고 노래하는 자리여서 나도 부담없이 마지막까지 지켜보았다. 누구는 10여년을 자취방에서 위축되어가는 자존감과 싸우며 음악을 했고 누구는 지방에서 작은 까페를 하며 대중의 사랑을 받을 날을 기다렸으며 어떤이는 캠핑장의 야외무대에서 십수년 무명가수 생활을 했다. 하지만 한결같이 오랜 기다림과 좌절의 터널을 벗어나 새로운 미래와 희망을 노래하려는 열정이 충만했다. 외로움 속에서 자신을 지켜내온 자만이 드러낼 수 있는 울림이 이들의 말과 음율 속에 담겨져 있었다.

여느 음악 프로그램보다 힘든 환경에서도 뮤지션으로서의 자긍심을 지키려 한 이들의 열정이 강렬해서 노래실력 못지 않게 선곡한 노래의 가사에도 주목하게 된다. 스스로를 산골가수라 불렀던 신해솔이 ‘곡예사의 첫사랑’을 선곡한 이유가 힘들지만 웃어야 하는 곡예사의 삶이 가수를 지향하는 자신의 삶과 같아보였기 때문이라는 말에 공감이 갔다. 이젤은 DAY6의 ‘한페이지가 될 수 있게’라는 노래를 통해 오늘 하루의 삶이 인생 사진첩의 멋진 한 부분을 장식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소수빈은 ‘한번만 더’라는 노래말로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자신을 응원하고 격려하려는 간절한 마음을 표현했다. 나로선 한두곡을 제외하곤 잘 알지 못하는 곡들이지만 부르는 이의 진속한 마음을 느끼기에 어려움이 없었다.

특히 강성희가 드라마 미생의 OST 였다는 이승엽의 노래 ‘날아’를 부를 때 그 가사가 뭉클하게 다가와 눈자위마저 뜨거워졌다. “모든 것이 무너져있고 발 디딜 곳 하나 보이질 않아 … 눈을 뜰 수 조차 없게 한대도/ 거기서 멈춰있지마 그곳은 네 자리가 아냐/ 그대로 일어나 멀리 날아가기를/ 얼마나 오래 지날지 시간은 알 수 없지만 견딜 수 있어 날개를 펴고 날아/ …. 차갑게 내뱉는 한숨이 널 덮어 숨을 쉴 수 조차 없게 한대도/ 거기서 멈춰있지마 그곳은 네 자리가 아냐 그대로 일어나 멀리 날아가기를 ” 우리 시대 모든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 ‘그곳은 네 자리가 아냐, 그대로 일어나 멀리 날아가기를.’

최종우승은 홍이삭에게 돌아갔다. 아프리카에서 선교와 교육활동을 하신다는 부모와의 대화가 소개되었다. 아들의 음악활동을 충분히 뒷바라지 하지 못한 미안함을 표현하는 아버지와, 번듯한 아들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늘 죄송했다는 아들의 말이 아름답고 진솔하게 느껴졌다. 홍이삭은 이 프로그램에서 뮤지션으로서 자신의 ‘유통기한’을 확인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가 유통기한이란 말을 했을 때 나는 유발 하라리가 말한 ‘무용계급'(useless class) 을 떠올렸다. 사회에서 쓸모가 없는 사람들로 평가받는 사람들이 늘어간다는 암울한 전망이 이 신조어에 담겨있는데 유통기한이란 말이 인생의 쓸모를 확인받아야 하는 절박함을 담고 있는 듯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 경연을 거쳐오면서 유통기한이란 인생에서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있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참 다행스러운 결론인데 과연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저런 마음을 가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홍이삭이 선곡한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는 나도 간간히 불렀던 곡이다. 조용필의 노래 ‘꿈’은 화려한 도시생활 속에서 방황하는 현대인의 상실감을 너무도 잘 표현해서 수업에서 소개하기도 했다. 바람의 노래 역시 음미할 내용으로 가득하다. ” 살면서 듣게 될까 언젠가는 바람의 노래를/ 세월 가면 그때는 알게 될까 꽃이 지는 이유를/ 나를 떠난 사람들과 만나게 될 또 다른 사람들/ 스쳐가는 인연과 그리움은 어느 곳으로 가는가/ 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 수가 없네 내가 아는 건 살아가는 방법뿐이야 /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아야 해/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 꽤 긴 삶을 지나온 나는 이 바람의 노래를 들은 적 있었을까?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을 비켜갈 해답이 사랑임을 깨달았던가? 나는 살아가는 방법과 지혜를 알고 있는가? 그 노래는 곧 나의 물음처럼 다가왔다.

스페셜 무대로 임재범이 나와 부른 노래는 모든 참가자들의 마음을 대변하기에 족했다. “누구나 한번쯤은 자기만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는 순간이 있지/ 너무 많은 생각과 너무 많은 걱정에 온통 내자신을 가둬두었지/ 이젠 이런 내모습 나조차 불안해 보여 어디부터 시작할지 몰라서/ 나도 세상에 나가고 싶어 당당히 내 꿈들을 보여줘야 해 /그토록 오랫동안 움츠렸던 날개 하늘로 더 넓게 펼쳐 보이며 날고싶어/ 그렇게 많은 걸 잃었지만 후회는 없어 그래서 더 멀리 갈 수 있다면/ 상처받는 것보단 혼자를 택한거지 고독이 꼭 나쁜 것은 아니야 /외로움은 나에게 누구도 말하지 않은 소중한 것 깨닫게 했으니까 / 이젠 세상에 나갈 수 있어 당당히 내 꿈들을 보여줄거야 그토록 오랫동안 움츠렸던 날개 하늘로 더 넓게 펼쳐 보이며/ 다시 새롭게 시작할거야 더이상 아무것도 피하지 않아 이세상 견뎌낼 그 힘이 되줄거야 힘겨웠던 방황은”

‘나도 세상에 나가고 싶어 당당히 내 꿈들을 보여줄거야’ / ‘그곳은 네 자리가 아냐, 그대로 일어나 멀리 날아가기를.’ — 노래만 아니라 인생에서도 새로운 시작, 어게인의 기회가 있을 것이다. 꼭 현실적인 성공이 보장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자존감의 회복, 살아갈 이유의 확인 만으로도 어게인의 충분한 이유가 된다. 영적인 깨달음은 차원을 달리하는 거듭남의 길일 것이다. 오랜 시간 ‘무명’의 아픔을 견뎌야 했던 이들이 ‘sing again’할 기회를 만난 것처럼 인생이 뜻같지 않아 힘들어하는 사람들, 특히 미래의 불확실성에 힘들어하는 젊은이들이 ‘life again’의 꿈과 희망을 회복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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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대적 국가관계’의 미래

북한이 새해 벽두에 남북관계를 더 이상 동족관계가 아닌 교전상태에 있는 적대적 국가관계로 규정한다는 입장표명을 한 이래 그 후속조치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13일 조선중앙통신은 “대남 정책 전환 방침을 철저히 관철하기 위한 대적 부문 일군(간부)들의 궐기 모임이 12일에 진행됐다”고 보도하면서 이 모임에서는 “북남관계 개선과 평화통일을 위한 연대기구로 내왔던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북측본부, 민족화해협의회, 단군민족통일협의회 등 우리 관련 단체들을 모두 정리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 단체들은 북한의 대남 파트를 담당하는 외곽기구로 주로 남측과 민간 교류에서 역할을 해왔다.

‘특수관계론’에 근거한 남북관계를 일종의 국가관계로 재구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우리 사회에서도 꽤 제기되었다. 북한 역시 실질적으로 두 국가론으로 전환해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지도 제법 되었다. 나도 남북한을 두 ‘분단국가’ 관계로 재정립함으로써 특수관계라는 규정과 남북연합이라는 중간단계를 새로운 틀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북한의 이번 결정은 경제난을 벗어나지 못한 가운데 남한에서 ‘자유민주주의’ 통일론이 부각되는 데 대한 방어적 대응일 수 있다. 하지만 핵을 보유한 군사강국으로서의 자신감에 기초한 공격적이고 전략적인 방향전환일 가능성도 충분하다. 북한의 속셈과 지향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는 좀더 두고 볼 일이지만 남한을 적대적 대상으로 규정하고 군사적 정복의지까지 내비친 현재로서는 ‘평화공존형 2국가’론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민족관계를 부정하면서 통일의 정당성이나 필요성을 어떻게 정립할지를 놓고 북한에서도 논리적, 전략적 재조정이 뒤따를 것이다.

남북관계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중대한 뉴스인데 정작 국내 언론에서는 그다지 심각하게 평가하지 않는 듯하다. 북의 말폭탄과 위협이 어제오늘이 아닌 상황에서 이런 무덤덤함이 우리 사회의 힘이기도 하고 일상의 안정을 지켜주는 조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심대한 상황변화가 진행되는데 눈앞의 권력투쟁과 손익계산에만 골몰하는 한국 정치와 사회의 민낯을 보는 느낌도 없지 않다. 항간에 해방직후 상황에 빗댄 염려도 등장하지만 여전히 국내 정파의 대립과 이해관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지구적 흐름에 대한 총체적 시야가 아쉬운 감이 크다. 이런 가운데 [38 North]에 일주일 간격으로 해외 전문가들의 논평이 실렸다. 이 글의 일부 내용은 부분적으로 국내 언론에도 소개되었지만 내용을 정확히 확인하고 싶어 정독을 했다. 한반도 문제에 오랜 경험과 식견을 가진 해외 전문가들의 분석인데 이 사안을 무겁고 진지하게 평가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로버트 칼린과 지크프리드 해커 두 분이 쓴 ‘김정은은 전쟁을 준비하는가?’라는 글은 현재 한반도 상황이 매우 위태로운 상태로 이행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 논지를 요약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김정은은 전쟁을 선택하는 전략적 결정을 내렸을 수 있다 / 현 한반도는 ‘북한의 도발’이라는 상투적 용어로 설명할 수 없는 위험한 상태다 / 북한이 체제소멸을 감수하면서 전쟁을 할 리 없다는 믿음은 심각한 상황판단 오류다 / 2021년 이후 김정은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포기하고 다시 중,러와의 연대로 전환했다 / 북한은 세계적 조류가 그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판단한다 / 필요시 북한은 핵을 사용할 것이고, 현재의 핵탄두 숫자만으로도 가공할 재앙으로 귀결될 것이다.”

일주일 뒤에 유럽의 북한전문가 뢰디거 프랭크 교수의 글이 올라왔다. ‘북한의 새로운 통일정책’이란 제목에서 보듯 국제 지정학적 관점보다는 남북관계의 미래에 초점을 맞춘 글이었다. 내용을 요약하면, ” 민족관계가 아닌 적대국가 관계라는 규정은 ‘우리민족끼리’ 노선의 포기를 의미한다 / 1972년의 김일성의 조국통일 3대 원칙 이래의 반세기 전략을 실패로 규정함으로써 선대로부터의 유산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 동독이 걸었던 길과 유사한 변화가 예상되는데 북한의 광범위한 위험회피 전략과 연결될 것이다 / 통일을 포기한 것은 아니고 보다 공격적인 노선으로 변화할 것이다 / 한국이 민족공동체론을 독점함으로써 골든 타임을 맞이할 수 있다/ 한국내 진보세력은 타격을 입을 것이고 보수세력이 힘을 가능성이 있다”

이 두 글은 우리가 주목해야 할 안팎의 위험과 쟁점을 잘 보여준다. 칼린과 해커의 분석은 새로운 안보위기, 평화유지의 절박함을 부각시킨다. 북한이 세계정세의 변화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판단하고, 전쟁을 전략적 선택지로 결정했을 수 있다는 분석은 경청해야 마땅하다. 지구촌 곳곳에 전쟁이 진행중이거나 무력충돌의 위기가 높아지고 미국의 세계경찰 역할은 현저히 위축되는 가운데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이 높아지는 현실은 더더욱 이런 가능성을 주목하게 만든다. 프랭크의 글은 칼린과 해커의 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전쟁의 위험보다 한반도 정치지형에 미칠 영향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민족공동체라는 공유자산이 없어짐으로써 갈등과 긴장이 더 높아질 가능성을 지적한다. 우리사회 진보/보수의 이념지형에 미칠 영향도 중요한 논점이다. 북한 도발에 대한 상투적인 대응이나 설마 하는 오랜 관성적 사고로부터 벗어나 위기관리와 평화유지를 위한 진지한 새 전략구축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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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를 추모하며

뛰어난 인류학자이자 한국을 사랑한 연구자로 안타깝게 수년전 타계한 낸시 교수의 추모 모임이 1월 6일 오전에 있었다. 일리노이 대학 어바나 샴페인을 중심으로 그녀가 키워낸 국내외 연구자들은 숫자도 상당하거니와 학문적 능력과 품성에서도 주목할만 분들이 적지 않다. 낸시의 한국 필드 과정에서부터 오랜 인연을 맺었던 박소진 교수와 이규호 교수 등이 주선하고 정병호 교수가 대부도 집을 제공하여 이 귀한 자리가 성사되었다.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십여명 학자가 모였는데 나는 온라인으로 추모의 시간에 참여했다. 낸시의 오랜 동학 조한혜정 교수도 줌으로 함께 했다.

낸시 사진을 앞에두고 국화꽃을 헌화하며 각자 추모의 말을 건넸다. 짧은 시간이지만 모두들 고마움과 안타까움, 그리움을 교감한 자리였다. 내게도 말할 기회가 주어졌는데 갑자기 울컥 눈시울이 붉어지고 낸시와 만난 40년 세월이 주마등 같이 지나가면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낸시가 여전히 건강하게 활동하고 있다면 미국의 한국학 연구 수준이나 학문후속세대의 성장에 얼마나 큰 힘이 되었을까 생각하면 안타깝기 짝이 없다. 낸시를 기억하며, 그녀를 추모하는 자리를 잊지 않고 마련해준 후학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크다. 낸시도 하늘에서 저들의 건강과 활약을 지켜보고 성원할 것이라 생각된다.

1984년으로 기억되는 어느날 전북대 연구실에서 만난 파란 눈의 외국인, 다소 어색한 한국어지만 분명하게 자신의 관심사를 말하고 필요한 도움을 구하는 당차고 키 큰 여성 – 내가 낸시를 만난 첫 기억이니 어언 40년 전이다. 하바드 대학을 졸업한 후 버클리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한국의 농민을 대상으로 박사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인류학자라 했다. 그녀는 한국의 현 농민운동 배경에 조선시대와 식민지기의 토지문제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해방 이후 농지개혁이 어떤 영향을 남겼는지 총체적인 역사적 맥락을 알고싶어 했다. 내가 구한말 토지문제를 분석한 논문을 건네주고 당시의 관행과 쟁점들을 설명하면 너무나 반가와하며 열심히 기록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낸시가 전북의 한 농촌마을에서 생활하며 필드를 할 때 나는 현지의 학생들을 소개해 주거나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간간히 방문하는 약간의 도움을 주었는데 낸시는 오랫동안 그것을 고마와했다. 어느날 낸시는 자신이 공부했던 하바드의 연구환경을 접해 볼 것을 권유하면서 내게 하바드 엔칭 프로그램을 적극 추천했다. 당시 대학과 지역사회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한 소위 ‘서명교수’ 로 낙인이 찍혔던 나로서는 총장의 추천을 받는 것 자체가 어려웠는데 낸시는 엔칭연구소로 내 사정을 알리는 편지를 보냈고 나는 총장의 추천 없이도 방한한 베이커 부소장의 면담자 리스트에 포함될 수 있었다.

낸시는 자기 박사논문 초고의 한 챕터가 작성될 때마다 내게 검토를 부탁했다. 지금 되돌아보면 내가 지적하거나 코멘트한 것들은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이나 어휘들, 지역별 사례들에 대한 것이었고 인류학자로서 그녀가 품고 있던 이론적 지향이나 개념들에 대해선 별 도움을 주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낸시는 언제나 내 코멘트를 존중해 주었다. 내가 서울대학교로 옮기게 되자 함께 기뻐했고 관악 캠퍼스로 세 자녀를 데리고 와 학교 이곳 저곳을 둘러보기도 했다. 내 둘째 딸 윤영이가 하바드 대학 박사과정에 합격했을 때도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격려해 주었다. 낸시가 하바드 대학에서 초청을 받아 케임브리지로 옮길 것을 심각하게 고민할 때는 내게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남편과 자녀를 위해 하바드 교수 기회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고 알려주었을 때 그 얼굴 한편에서 엿본 아쉬운 표정도 잊기 어렵다.

3년전 보스톤을 방문했을 때 낸시가 잠들어 있는 마운트 어번 세미트리를 찾았다. 그 날은 비가 부슬 부슬 내려 그렇지 않아도 무거웠던 내 마음을 더욱 힘들게 했다. 화려한 석조물들이 서 있는 묘역이 아닌 납골당 형태의 방을 한참 돌아 그 아버지 이름 옆 낸시의 이름을 발견했다. 그토록 존경하고 좋아하던 아버지 곁에서 안식하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작은 꽃 한송이를 그 앞에 놓았다. 내가 1989년 엔칭 펠로우로 케임브리지에 도착했을 때 낸시 부모님 댁에서 우리 가족을 초대해 주셔서 함께 식사를 했었던 일이 선연히 떠오른다. 이곳 세미트리를 공원삼아 즐거운 생활을 하라고 성원해준 분들인데 이렇게 먼저 떠나다니… 누구보다도 한국을 사랑했고 한국인을 이해했던 사람…누구에게나 성심을 다해 조언과 배려를 아까지 않았던 참으로 좋은 친구였는데, 하늘은 종종 너무 좋은 사람을 일찍 데려가시나 보다.

온라인 추모를 끝낸 후 아쉬운 마음을 금하기 어려워 먹을 갈고 붓을 들어 중국의 유명한 시인 두보가 아끼는 벗을 먼 곳으로 보내며 쓴 ‘송원’ (送遠) 이란 시를 써 내 마음을 담아본다. —- “갑옷입은 병사 천지에 가득한데 / 어찌 그대 먼 길을 떠나려는가 / 벗들이 모두 통곡을 하는데 /말타고 홀로 이 성을 떠나는구나 / 나무와 풀은 세월따라 시들어가고 / 변방의 강에는 눈서리 내려 날씨는 차가우리 / 이별한 게 어제 같은데 / 옛 친구의 우정은 더욱 그립구나 (杜甫, 送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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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하례식

1월 4일 사회학과 신년하례식이 호암교수회관에서 열려 서울을 다녀왔다. 정년 이후, 그러니까 명예교수가 된 이후로 처음 참석하는 자리다. 작년에는 내가 미국에 가 있었던 관계로, 또 그 전에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모임 자체가 어려웠었다. 그래서인지 수십년간 참석해오던 모임인데 서울로 가는 느낌이 예전같지 않았다. 세종으로 이주해 기차를 타고 올라가는 물리적 공간감각도 일조를 했는지 모르겠다.

조금 늦게 도착하여 행사장에 들어섰을 때 한참 덕담이 진행 중이었는데 참석자의 세대적 불균형이 더욱 심해졌구나 하는 첫 인상이었다. 55학번인 김진현 전 장관, 57학번인 김경동 교수, 58학번인 신용하 교수, 63학번인 한상진 교수, 그리고 동문회장이 헤드 테이블에 앉아 계셨다. 현직 교수들의 참석도 많지 않아 이재열, 김백영, 추지현, 임동균 교수가 자리했고 작년에 정년을 한 정근식 교수가 같은 테이블에 있었다. 학생들 자리는 더욱 많이 비어 대학원생이 십여명, 학부생은 두세명에 불과한 듯 했다. 모임이 더욱 고령화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금하기 어려웠다.

신년 덕담을 나누는 시간을 1시간여 가졌다. 새해 복과 건강을 비는 관례적인 인사가 계속되었지만 걱정스런 시대론이 뒤를 이었다. 인류문명, 한국사회의 위기에 대한 염려로부터 사회학의 학문적 위축, 사회학과의 위상 하락에 대한 걱정도 표출되고 후학들에 대한 권면과 조언도 있었다. 강한 사회적 영향력을 누리며 사회학 융성기를 지냈던 선배 세대의 입장에서 충분히 나올법한 덕담들이었다. 좀더 연대하자, 사회학에 대한 애정을 강화하자, 시대적 소명감을 잃지 말자 등의 말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과제이다.

그런데 이런 포맷이 정작 젊은 세대, 학생들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궁금했다. 사실 신년 덕담이 꼭 선배 세대들이 후배세대, 특히 학생들을 대상으로 의견을 표하는 형식일 필요는 없고 특히 이 자리가 그런 시간으로만 채워지는 것은 아쉽다. 역으로 젊은 세대의 현실인식과 고민을 표출하는 자리로 만들 수도 있을테고 학생들이 느끼고 있는 그들 나름의 자부심을 듣는 기회일 수도 있다. 걱정과 염려를 공유한다 해도 관성화된 세대론보다 서로의 진솔한 대화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부모와 자녀간에도 관심의 영역이 변하고 소통의 방식이 달라지고 있는 시대인데 학과의 세대간 상호작용 방식도 좀 새로워질 필요는 있겠다.

이미 학계 전반에서 분과별, 세대별 모임과 활동에 비해 모학회의 결집력과 연대감은 현저히 약화되고 있다. 개인주의가 강화되면서 소속감 만으로도 결집하고 연대하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분과학의 경계를 횡단하면서 관심사를 확대하는 탈경계의 흐름 속에서 기존의 학술공동체를 고수하자는 주장이 언제까지 지지받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문제는 정보와 소통을 실시간으로 다양하게 할 수 있는 디지털 문명에 걸맞는 새로운 유대와 연대를 구축하는 일이다. 21세기 뒤르켐적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 셈이다. 젊은 세대에 대한 못마땅함과 기성세대에 대한 거부감을 모두 넘어서는 혁신적 변화, 공감의 재구성은 불가능할까? 신년하례식을 하고 오는 기차속에서 내내 생각한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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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대전환?

새해 첫날 북한 발 뉴스가 충격적이다. 매번 신년사 형태로 자신들의 정책기조를 설명해 온 북한이지만 이번의 뉴스는 남북관계의 근간과 관련된 것이어서 그 무게감이 예사롭지 않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1일 조선중앙통신은 12월 26~30일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9차 전원회의 결과와 함께 김정은 총비서가 한 말을 전했다. “북남(남북) 관계는 더 이상 동족 관계, 동질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는 것이 그 골조다.

‘체제는 다르지만 통일을 지향하는 민족공동체’라는 것이 지난 30여년간 남북관계를 규정해온 큰 틀이다. 남북의 정치군사적 대립에도 불구하고 이 시각을 공유했기 때문에 여러 협력과 소통이 가능했다. 북한의 핵개발이 본격화하고 국제적 대북제제가 강화되면서 이 정책은 지속불가능하게 되었다. 개성공단 폐쇄는 정경분리 방식의 대북정책이 불가능함을 분명히 한 사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특수관계론과 민족공동체론을 견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보수 진보 정권을 막론하고 남북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님’을 강조하면서 화해나 대화에 대한 기대와 통일지향성에 대한 믿음을 견지해 온 것도 이 때문이다.

북한의 언설이 정제되지 않고 위협적인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남북관계를 ‘교전국 관계’로 규정하겠다는 언급은 단순한 레토릭으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핵무력 군사강국으로서 앞으로 다가올 지구적 지형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북한 나름의 전략적 방향설정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관계의 재조정과 함께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를 언급한 것도 그간의 외톨이 전략, 농성체제 차원을 벗어나 ‘군사국가’로서의 존재감을 분명히 하려는 뜻이 읽혀진다. 어쩌면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재선되고 지구적 지정학의 큰 변화가 일어날 경우를 내다본 계산도 포함되었을 수 있다. 한반도 차원에서는 우려스럽고 위험한 방향설정이 아닐 수 없다.

남북관계는 세가지 차원으로 규정되는 삼중구조다. 민족관계, 적대관계, 국가관계의 세 영역이 중층적으로 겹쳐 있어 때로는 ‘동포’이지만 때로는 ‘적 ‘이 되고 때로는 ‘외국’으로 대해야 하는 복잡하고도 미묘한 관계다. 통일부, 국방부, 외교부의 역할이 그 각각의 기능에 부응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세 측면을 어떻게 탄력적으로 조율하고 관리하는가가 미래의 핵심 과제다. 분단 70년을 지나면서 점차 민족관계 (통일부)의 비중이 축소되고 국가관계 (외교부)의 비중이 커질 것은 예상되는 바였고 오늘 국민들의 여론에서도 그런 경향은 뚜렷이 확인된다. 다만 장구한 역사성을 지닌 민족관계는 어떤 계기가 주어지면 강력한 에너지를 분출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남북한의 통합과 신뢰를 뒷받침할 자산으로 활용될 수 있음을 무시할 수 없다.

이번 김정은의 발언은 ‘민족공동체’라는 남북간 공통분모를 부정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민주’를 표방하든 ‘보수’의 탈을 썼든 조금도 다를 바 없다”는 말로 보수집단이나 진보세력을 막론하고 남한을 통째로 타자화하려는 의지가 읽힌다. “우리(북)를 ‘주적’으로 선포하고 외세와 야합해 ‘정권 붕괴’와 ‘흡수통일’의 기회만을 노리는 족속들을 화해와 통일의 상대로 여기는 것은 더 이상 우리가 범하지 말아야 할 착오”라는 말에는 그동안의 남북협력기조나 통일지향노력을 전략적 오류로 규정하려는 단호함도 드러난다. 하지만 이런 입장이 얼마나 공고하게 전략적 원칙으로 자리잡을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천여년을 지나온 공통의 역사적 경험과 문화적 특징에 기초한 한반도의 에쓰니적 요소, 민족감정은 지속적으로 약화될 것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사라지게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북한은 적대적 국가관계론과 함께 김일성주의에 기초한 주체민족론을 더욱 극단적으로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주체사상이나 백두혈통의 수령지위을 절대적으로 강화하려면 그 뿌리인 항일투쟁 민족정서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민족공동체를 부정할 경우 통일이란 목표는 물론이고 남한 사정에 대한 발언권을 주장할 근거도 찾기 어렵다. 예상컨대 한국의 식민지성, 미국예속의 반민족 체제라는 이념적 공세와 정서적 거부감을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 그 결과는 남북관계를 전례없이 불안정한 상태로 몰아갈 수 있고 원치 않는 군사충돌의 개연성도 커질 수 있어서 우려를 더하게 된다. 이데올로기와 결부된 북한의 강한 반외세 민족론이 한국전쟁의 참상을 야기했던 아픈 경험이 있는 우리로서는 북한의 이번 발표를 엄중한 변화로 인식하고 종합적인 대처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정치권과 전문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일반 국민들에게도…. 갑진년이 의외로 무겁고 어둡게 시작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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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칭과 탕탕평평

하바드 옌칭 한국학회 모임이 12월 13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있었다. 내가 회장을 끝낸 후인데다 정근식 회장과 한승미 교수가 열심히 준비해 주어서 편한 마음으로 참석했다. 이번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특별전시되는 영정조대의 시문과 회화전인 ‘탕탕평평’을 관람하고 ‘정조와 궁중회화’에 대한 강연을 듣기로 되어 있었다. 참석자는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최종고, 임지현, 김준환 교수 등 오랫만에 뵙는 분들이 여럿 계셔서 반가왔다.

발제자인 유재빈 교수는 영정조대 궁중화원제도의 변화 배후엔 시화를 통해 정치변화를 꾀하려 한 국왕의 의지가 있었다고 보았다. 도화서의 개혁, 특히 차비대령화원의 설치가 그런 의도의 산물인데 사적도, 궁중 계병, 화성원행도병 등의 제작과 유포를 통해 왕조 권력을 강화하려 했다는 것이다. 시문과 회화를 통해 국정운영의 변화를 꾀하고 왕권을 강화하려 했다는 설명이 흥미로왔다. 유교수로부터 저서인 [정조와 궁중회화]를 받았는데 부제로 달린 ‘문예군주 정조, 그림으로 나라를 다스리다’라는 말이 그런 시각을 잘 요약해주는 듯 했다. 문예군주라는 말, 그림으로 다스린다는 말에서 신선하면서도 과연?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느낌도 든다.

‘탕탕평평전’은 그런 시각을 반영한 기획인 듯 했다. 2024년이 영조 즉위 300년이 되는 해여서 영조와 정조가 글과 그림을 어떻게 국정운영에 활용하려 했는지를 부각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붕당정치의 폐해가 심했던 이 때 영조와 정조의 탕평책은 인재를 고루 기용한다는 기조로 이해되어왔다. 그런데 탕탕평평이란 말은 “무편무당 왕도탕탕 무당무편 왕도평평”이라는 [상서]의 황극조에서 나온 표현으로, 국왕의 위상을 북극성에 비유하여 임금의 중심성을 강조한 표현이다. 탕평이란 말은 인재를 고루 등용하거나 정파를 두루 포용한다는 뜻을 직접 담거나 신료들의 역할을 중시하는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임금의 역할, 국왕의 중심성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전시실 입구에서 영조가 쓴 글씨를 만났다. “周而不比 乃君子之公心 比而不周是小人之私意” 라는 글인데 1742년 사도세자가 성균관에 입학할 때 영조가 세운 비석의 탁본이다. “군자는 친밀하지만 편파적이지 않고 소인은 파당을 지으면서 친밀하지 않다” (君子 周而不比 小人 比而不周)라는 논어의 글을 토대로 군자의 공심과 소인의 사의를 대비시킨 것이다. 단정한 글씨체가 아름다왔고 영조의 각오나 사도세자에 대한 기대를 느낄 듯 했다. 그런데 그 아들을 죽이고 만 영조의 심경 변화와 궁중 내 정치 동학이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다. 1762년 영조가 죽은 세자에게 ‘사도’라는 이름을 붙이고 지었다는 ‘사도세자묘지’나 정조의 사도세자 추존과 어보를 둘러보면서 어지러움마저 느끼는 듯 했다.

영조와 정조는 화원들로 하여금 공신들의 초상을 제작하고 그 옆에 시를 지어 병기하곤 했다. 영조는 박문수의 초상을 제작하게 했고 대동법을 주도한 김육의 그림에 시를 지어 붙이기도 했다. 정조는 강세황의 초상을 그리게 했고 그가 죽은 후 역시 ‘인재를 얻기 어렵다’는 글을 보냈다. 정조가 심환지와 주고 받은 편지인 ‘어찰첩’도 전시되었는데 은밀한 편지 속에 마음속의 불안을 위무받고 싶은 국왕의 심정이 담겨 있다. 글씨는 활달하고 명필이라 할 만한데 내용은 쓸쓸하고 안타깝다. ‘화성원행도’를 비롯한 그림에서 국왕 주도의 국정운영을 시도하려는 노력을 찾아볼 수 있다는 설명을 들으면서 18세기 세계사는 얼마나 격동의 시기였는지를 잠시 생각했다. 시와 그림, 화원을 통한 국정개혁이나 탕평정치의 시도는 고상하고 멋있어 보이지만 그런 접근이 현실정치의 한계를 넘어서기 어려웠음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文治를 강조한 유교국가의 독특함이기도 하고 강제력에 의존하지 않는 세상을 지향하는 것이 문명사적 발전일 수는 있겠는데 그것이 ‘文弱’의 폐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무슨 조건이 더해져야 할까 생각하게 된다. 무기의 힘과 돈의 위세가 나날이 커져가는 21세기여서 더욱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