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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매화

남도부터 매화 소식이 전해지더니 내가 근무하는 광주과기원 교정에도 매화가 피었다. 크거나 화려하지 않지만 고고하고 은은한 자태가 새 봄을 알린다. 옛부터 매화는 절개의 표상으로 간주되어 사군자의 첫자리를 차지했다. 특히 유학자들은 고매(古梅), 한매(寒梅), 설중매(雪中梅) 를 즐겨 그렸는데 한겨울을 지나면서 꽃을 피우는 매화가 세속에 물들지 않으려는 선비의 기개를 표상한다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매화는 벗꽃에 비해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못한다. 벗꽃이 필 때면 상춘객들로 전국이 부산하지만, 매화를 찾아 길을 떠나는 사람들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 최근 하동 섬진강변의 매화마을이 새로운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화엄사의 홍매나 선암사의 고매를 아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여전히 한두 그루 매화가 고고하게 꽃을 피운 자태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치 않다. 고결함과 절개를 그다지 중시하지 않는 21세기에 벗꽃의 화려함에 미치지 못하는 매화가 주목받지 못하는 건 당연할지 모르겠다.

매화를 좋아했던 퇴계 이황은 매화를 소재로 한 시 백여수를 남겼다. 매화를 매형이라 부르기도 한 그는 선비 정신을 대변하는 인물답게 엄동설한을 견뎌낸 절개를 매화의 전형적인 성품으로 여겼다. 그런데 그의 매화시 가운데는 다소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하는 것도 있다. ‘梅窓又見春消息 莫向瑤琴嘆絶絃’ (매화 핀 창을 통해 또다시 찾아온 봄을 본다 / 거문고 마주앉아 줄 끊어진 것 탄식하지 마라.) – 또우 (又) 자에 주목해서 읽어보면 ‘다시’ 피는 매화, ‘다시’ 오는 봄을 주목하는 시인의 독특한 감수성이 느껴진다.

매화는 때가 되면 반드시 다시 핀다. 추운 겨울을 견디고 낡은 고목에도 생명을 피워내는 그 꽃은 끝없이 재생되고 되살아나는 기운의 상징이다. 그러니 매화 다시 피는 걸 보는 이들이라면, 줄 끊어진 거문고에서 새로운 노래 울릴 때가 올 것을 믿을 수 있다. – 퇴계는 매화에서 이런 반복, 재생, 희망의 모습을 읽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러고보면 21세기에 매화는 절개의 상징으로보다 희망과 부활의 전령으로 읽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새로 시작한다는 것, 다시 봄소식을 접한다는 것, 죽은 고목에서 꽃이 피는 부활이 실재한다는 것 – 매화의 새로운 이미지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그래야 거문고줄 끊어져 상심한 사람들이 새로운 희망을 가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런 의미를 담아 고목에서 피어난 매화와 퇴계의 싯구를 제사로 한 매화도를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