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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 50년 지성사

2025년이면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설립 50주년이 된다. 1975년 문리대가 해체되고 대신 인문대, 사회대, 자연대의 세 기초학문대학으로 재편되면서 한국에 ‘사회과학’이라는 이름의 단과대학이 시작된지 반세기가 되는 것이다. 1년 여 전 사회대 50년의 역사를 한국의 지성사 맥락에서 정리하는 연구가 필요하지 않겠냐는 논의가 있었다. 해방후 학문의 본산으로 자임했던 서울대 문리대가 그 30년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할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사라진 것을 아쉬워했던 나로서는 이 공동연구의 필요성에 크게 공감했고 적극적으로 지지의 뜻을 보냈다.

그 결과 사회과학 여러 영역별로 중견 교수들이 참여한 프로젝트가 결정되어 현재 진행 중이다. 나는 사회학 분야를 담당하기로 하고 합류했는데 논의 과정에서 ‘사회과학’ 전체를 아우르는 총괄 원고 작성도 부탁 받았다. 다양한 분과학 전체를 포괄하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고 내 역량도 많이 모자라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것 같았고 또 나름 보람있는 일이기도 해서 수락했다. 6월 12일 각 분과학 별로 일년여 기간 준비한 초고들을 발표하고 공유하는 자리를 가졌다. 사회과학 전 영역에 걸친 50년 역사를 한 자리에서 토론하는 기회는 흔치 않은데 특히 총괄원고를 작성해야 하는 나로서는 소중한 경험이었고 유익했다.

돌이켜보면 내가 1974년에 서울대 사회계열에 입학했던 때가 종합화 출범 1년 전이었다. 교양과정부 1년을 보낸 75년에 관악으로 옮겨왔고 그 해에 사회대로 진입한 첫 학번이니 명실상부 사회과학대학의 첫 세대인 셈이다. 그 이후 지금까지 사회학자로 살아왔고 사회대 교수로 정년을 맞았으니 사회대 50년의 역사는 곧 내 개인의 삶과 고스란히 겹친다. 사회대 50년과 사회학 50년, 그리고 내 개인의 학문사 50년을 함께 되돌아보니 감회가 새롭다. 실제로 이 연구는 내 자신의 지적 궤적을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작업과도 무관할 수가 없다. 사회과학계열이라는 범주가 너무 생소해 ‘법대와 상대와 문리대’의 총칭이라 이해하고 주변에도 그렇게 설명했노리 하시던 아버님 말씀이 떠오른다.

사회대 50년은 한국의 지성사에 어떤 의미를 가졌을까? 사회대를 통해 이어진 지구적 차원의 사회과학과 한국 사회과학 사이에는 어떤 공통의 관심사와 상이한 긴장이 오갔을까? 수용된 서구 사회과학은 얼마나 보편성을 확인했으며 한국의 특수성에 주목한 논의들은 얼마나 이론적 지평을 넓히면서 세계 학계에 기여했을까? 경험과학으로서의 사회과학은 이데올로기적 사유와 다른 과학적 타당성을 얼마나 획득했을까? 그런 과정을 통해 오랜 쟁점이었던 사회과학의 가치중립과 가치개입의 딜렘마는 어떻게 해결해 왔는가?

사회대의 출범은 전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사회과학 분야의 여러 학문을 발전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 경제학, 정치외교학, 사회학, 지리학, 심리학, 인류학, 언론정보학, 사회복지학 등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데는 지난 50년의 수고가 컸다. 이 기간에 서구의 발전된 이론과 방법론이 수용되고 다음 세대의 사회과학자들이 성장했다. 한국사회의 압축적 발전과정에 필요한 기획, 평가, 조정의 소프트파워를 제공하는데도 큰 기여를 했다. 각 학문 분야별로 또 개별 교수 차원에서 국제적 교류와 소통으로 지적 보편성과 세계성을 높여온 것도 중요한 성과다. 정부와 기업에 도움이 되는 전문성 제공은 물론이고 시민사회와 문화영역에서 필요한 비판적 시야와 종합적 상상력을 제공한 것도 사회과학의 성과라 할 만하다.

하지만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이라는 3분법의 제도화가 지성사 전반에 미친 영향은 제대로 검토된 바가 없다. 대학제도에 뿌리밖은 분과학체계가 영역간 크로스오버와 융복합이 급증하는 현실과 괴리되고 있다는 주장도 곳곳에서 들여오고 있다. 의학과 법학을 비롯한 몇몇 분과학에 인재와 자원이 편중되는 현실과 이런 지식분류체계가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지도 돌아볼 문제다. 어떤 인간형을 키워낼 것인지에 대한 책임있는 고민과 노력보다 서울대가 지닌 정치적 영향력, 문화적 위상에 편승해온 측면은 없는지도 반성할 부분이다. 학력주의의 폐해가 대학의 서열화와 분과학간 장벽의 높이와 무관치 않다는 점에 대해서도 귀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저출산과 고용불안, 양극화의 사회적 난제에다가 인공지능과 디지털화, 바이오 테크놀로지가 불러오는 심대한 충격과 불확실성을 눈앞에서 보고 있다. 탈냉전과 세계화를 넘어 새로운 지정학적 분할과 생활세계의 위험을 목도한다. 인간-기계의 통합이 급진전되고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서자는 포스트 휴머니즘이 확산되며 기후위기를 넘어 인류세라는 묵시록적 논의까지 부상하는 상황이다. 인문-사회-자연 과학 3분류는 언제까지 유효하며 그에 기반한 전문성은 얼마나 유용성을 인정받을까? 서울대는 최고대학의 위상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각자도생의 경쟁에 함몰된 젊은 청년들에게 사회과학이 제공하는 삶의 향방과 지혜는 무엇이어야 할까? 언제까지 대학은 지식생산과 고등교육의 전담기구로 존속할 수 있을까? 글을 쓰면서 내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지게 되는 질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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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교육과 제도지체

염재호 태재대학교 총장, 이광형 카이스트 총장, 장병탁 서울대 AI 연구원장 등과 함께 저술한 책자 [AI 시대 대학교육의 미래] (나남출판) 가 출간되었다. 한림대 도헌학술원에서 기획한 도헌학술총서 제1권으로 대부분의 필자들은 1년여 전에 개최되었던 학술심포지엄에 참석한 분들이다. 나는 그 행사에는 참여하지 않았는데 책을 기획하면서 관련 주제의 글을 청탁받아 추가로 참여하게 되었다.

필자들 대부분 유수한 대학이나 관련 기관의 운영을 책임진 분들인데다 인공지능이나 과학기술 분야의 학자들이어서 책의 주제와 잘 어울린다. 나도 광주과학기술원에 초빙석학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니 직함만으로는 어색하지 않지만 그동안 내가 연구하고 가르쳐온 주제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전의 나를 기억하는 분들이라면 내가 이런 주제의 책에 공저자로 이름을 올린 것을 생뚱맞게 여길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십여년 전부터 나는 테크놀로지가 핵심적인 변수가 된 시대가 도래했다고 느꼈고 그런 맥락에서 관련 연구들을 기획하기도 하고 [커넥트파워]라는 책을 공저하기도 했기에 내 자신으로는 전혀 엉뚱한 관심확장은 아니다.

한림대 측으로부터 원고청탁을 받았을 때 글을 써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이유도 그런 저간의 변화 때문이었다. 사회학회장을 하면서 가졌던 여러 관심사들에 더하여 코로나 19 시기의 충격이 내게 미친 영향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깊다. 그 경험은 단지 개인의 실존적 생활경험에 한정되지 않고 불현듯 나타난 온라인 경제, 플랫폼 사회, 커넥트 파워들의 충격으로 이어졌고 광주과학기술원에서 강의를 하면서 그런 문제의식은 더욱 깊어졌다. 이제 다시 이 모든 변화를 아우르면서 인공지능의 쓰나미가 들이닥치고 있어 커즈화일이 말한 ‘특이점이 오고 있다’는 주장을 새삼 떠올리게 만든다.

나는 이런 변화가 일상, 경제, 문화, 종교 등 각 영역에 두루 나타나지만 특히 교육현장과 학교라는 제도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리라는 생각한다. 코로나 19를 겪으면서 내가 계속 떠올리는 개념이 ‘제도지체’인데 이 첨단의 기술변화를 제도와 관성이 따라가지 못해 생기는 각종 문제들을 말한다. 챗 GPT 3.5로부터 시작된 LLM 기반 인공지능의 급성장은 조만간 AGI라 불리는 일반인공지능의 출현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확대시키고 있다. 한국의 고도성정기를 뒷받침해온 강력한 교육시스템이 겪고 있는 제도지체의 여러 측면들을 점검하고 대비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절실한 우리 사회의 숙제다.

나는 네가지 차원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답찾기식 교육과 분과학주의에 갇힌 연구방식을 넘어서는 것, 그래서 창의적 발상과 융복합적 소통이 교육과 연구방식에 상시적으로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캠퍼스와 지역사회가 단절되어 있는 구조를 넘어 산업계, 지방정부, 시민사회의 다양한 주체들과 결합되는 지식생태계를 형성하는 것도 중요하고 젊은 세대의 청년들이 새로운 꿈을 꾸고 미래를 향해 비상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대학문화를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쉽지 않은 목표고 지나치게 이상적인 주장이라 할 수도 있겠다.

글을 쓰면서 늘 느끼는 것지만 분석하기보다 제안하기가 어렵고, 제안하기보다 실천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제안에는 책임이 따르는데 ‘과연 나는 그렇게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안하고 주장해야 하는 것은 해야 한다. 제도지체의 한계를 넘어서려면 상당한 혁신이 불가피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남에게 권유하는 제안이기 이전에 내 자신에게 하는 다짐이기도 한 까닭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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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과 논쟁

5월 9일 사단법인 ‘통일과 나눔’에서 주최하는 정책 심포지엄이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급변하는 한반도 주변 정세를 고려할 때 어떤 통일을 어떻게 추진해야 할지, 이에 필요한 새로운 전략적 구상과 쟁점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논의해 보자는 취지였다. 특히 연초에 북한이 적대적 2국가론을 내놓은 상황이어서 더더욱 현실감과 정치성이 담긴 심포지엄이 되었다. 애초 2주제의 발제를 부탁받았지만 보다 젊은 세대의 이야기가 더 필요하리라 생각해서 덕성여대 이수정 교수를 추천했다. 대신 나는 종합토론을 맡았다.

1주제를 발제한 윤영관 교수는 지정학적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통일을 향한 꿈’이 중요함을 역설했다. 폴란드가 오랜 피억압상황에서도 독립의 꿈을 잃지 않았기에 오늘의 폴란드가 있다는 마무리가 묵직하게 울렸다. 두번째 발제자인 이수정 교수는 최근 젊은 세대의 통일에의 무관심, 북한에의 거부감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솔직하게 논의했다. 달라지고 있는 정체성, 감수성에다 분단 70년의 무게감이 더하여 무관심이 커지는 것은 당연한 변화이지만, 남북대결이라는 현실이 갖는 규정력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젊은 세대가 보이는 딜렘마, 혼란, 위기감을 공감할 수 있었다.

세번째 주제를 발제한 김병연 교수는 남북한의 통일을 중요한 목표로 설정하면서 점진적이고 단계적이어야 함을 강조했다. 분단 70년의 역사를 통해 전혀 다른 체제와 경험을 공유해온데다 경제적 조건이 크게 다른 남북이 급속한 통합을 이루기도 어렵거니와 그 후유증은 매우 클 것이기 때문이다. 통일로의 과정에서 남북간 정치와 문화의 이질성과 독자성을 상당기간 용납하도록 구상된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기조이기도 하다. 하지만 경제적 통합력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이런 중간단계가 안정적일 수 없으므로 중간단계로 경제공동체를 상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김교수의 주장이다. 이런 중간단계 설정을 위해서 북한의 전략적 전환이 필수적이라는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긴 하다.

종합토론에서는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 천영우 전 외교안보수석, 이신화 북한인권대사 등이 패널로 참석했다. 나는 패널 참석자들에게 현재의 한반도 상황악화를 가져온 근본 요인을 무엇으로 보는지, 그리고 향후 방향설정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이종석 장관은 윤석열 정부의 강경일변도 대북정책이 가장 큰 요인이며, 남북한이 별개의 국가로 지내면서 평화로운 통일을 먼 미래의 과제로 설정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을 했다. 천영우 수석은 미중의 패권경쟁을 비롯한 지정학적 변화와 그에 편승한 북한의 전략적 선택이 가장 큰 요인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그리고 북한과 평화공존을 추진하려는 발상을 낭만적이고 무책임한 것이라는 입장을 피력했다. 현 시점에서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진보, 보수의 입장이 뚜렷하게 대비되는 자리였다.

워낙 입장 차이가 뚜렷한 주제여서 애초 화기애애한 토론이 진행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양측 모두 현실의 무거운 상황을 직시할 수밖에 없기에 진솔한 고민을 나누고 공유가능한 방향을 탐색하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했다. 결과적으로는 문재인 정부 책임론과 윤석렬 정부 책임론으로 서로를 비판하고 좌장, 또는 사회자로서의 역할이 개입할 수 없는 논쟁이 되고 말았다. 시간도 충분치 못한데다 정파적 입장까지 더해진 탓에 제대로된 마무리도 하지 못하고 끝을 맺었다. 나름대로 기대를 갖고 시작하는 토론이지만 결국은 뻔한 논쟁으로 귀결되는 경험을 또 한번 겪은 셈이다. 청중과 언론은 각기 원하는 내용들만 취사선택에서 제2, 제3의 논쟁거리를 재생산하리라. 이런 토론도 서로 다른 입장을 보여줌으로써 독자와 청중에게 도움이 되려니 생각해보지만 그런 믿음의 강도가 조금씩 줄어드는 느낌이다. 지혜를 구하는 토론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까 자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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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열린 시각과 집합지성

문승현 차관은 이틀의 회의를 종료하면서 ‘열린 시각’과 ‘집합지성’을 핵심적 교훈으로 언급했다. 열린 시각이란 현실의 다층적 차원을 균형있게 그리고 깊이있게 다루는 역량을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개인의 사고가 유연해져야 함은 물론이고 현실의 복합성을 인지하는 실력이 더해져야 할 것이다. 특정한 개인이나 정파의 목소리보다 사회 각 영역의 지혜가 결합하여 고급한 집합지성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이 중요한 것은 그 당연한 귀결이다. 나는 열린 시각을 서로 다른 관점의 균형이라는 방식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고 보는데 내가 특히 주목했던 세가지 차원을 중심으로 개방적이고 복합적인 사고의 균형을 생각해본다.

첫째는 과거의 미래의 균형이다. 흔히들 독일에게 통일은 과거사가 되었고 한국의 통일은 미래적 과제라고 말한다. 하지만 역사의 긴 과정으로 보면 통일이라는 사건도 과거와 미래가 연결되어 있는 장기적 대전환의 한 부분이다. 독일의 이번 발제에서 ‘전환’이란 화두가 자주 등장한 것이나 분단시대의 긴 트라우마를 언급한 것은 통일을 지난 과거사로 볼 수 없으며 미래로의 전환과 결합해서 파악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둘리히 장관이 말했듯이 이 프로세스는 분단에서 통일로의 전환 뿐 아니라 과거에서 미래로의 전환까지 포함한다. 마르텐 역시 분단시기와 통일시기를 사람들의 생애사 속에서 연속적으로 포착할 것을 강조했다.

둘째는 민족사와 지역사의 균형이다. 독일측은 분단해소와 통일과정이 결코 독일에 한정된 사안이 아니었고 또 그렇게 해석되어선 안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동독의 인권사항도 동서독 교류협력도 민족사의 차원을 넘어서 보편사, 유럽사의 맥락을 잃지 않으려는 시각을 드러냈다. 이번 회의에서는 논의되지 않은 헬싱키 프로세스와 유럽통합이란 지향 속에서만 독일통일의 쾌거가 가능했다는 교훈을 새삼 확인한다. 우리 맥락에서는 한반도적 관점과 동북아 지정학이 함께 가야 한다는 말이겠는데 민족사나 국가사 못지 않게 세계사의 흐름과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대북정책이 주변국외교와 긴밀히 연계되어야 함을 말해주는 것이다.

셋째는 정치경제와 사회문화의 균형이다. 분단과 통일의 시각은 늘 정치적 시각과 경제적 고려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것이 현실이기도 하고 정치적 판단과 경제적 통합이 가장 중요한 동력임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독일측은 유난히 사회적인 것, 개인적인 생애경험을 중시할 필요를 강조했다. 변화를 감당하는 시민들이 어떤 경험과 생각을 하게 되는지, 자신의 생애 속에서 소중히 여기던 경력과 경험들을 새로운 체제전환과 어떻게 연결시킬지가 중요하며, 그런 의미에서 통일은 국가적 의제임과 동시에 시민사회적 쟁점이기도 하다. 민주주의 원리가 강조되는 것도 이런 차원에서

내 개인적으로는 이런 복합적 시각과 열린 자세를 잘 드러낸 것이 독일의 미래센터 기획이 아닌가 싶다. 2022년 연방정부와 연방의회의 결의를 거쳐 추진되고 있는 이 센터는 10년의 건립기간을 두고 과거와 미래, 독일과 유럽, 서독과 동독을 함께 묶는 새로운 비전을 구축하겠다는 비전을 표방한다. 이 작업을 책임진 미하엘 마르텐 과장은 발제에서 현재 추진하는 미래센터가 과거경험을 정형화하고 박제화한 박물관이 아니라,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는 시각과 경험들이 소통하고 성찰하는 플랫폼이 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특히 정부나 특정 집단이 컨텐츠를 정형화하거나 공식화하지 않도록 사회 곳곳에 개인별로 상이한 경험과 기억을 존중하는 기획이 되도록 할 것임을 강조했다.

‘역사는 (동서독인, 또 전 유럽인) 이 함께 이루어낸 것’임을 보여주면서 기억문화 내부의 다원적인 목소리를 용인하고 서로 다른 기억들이 소통되게 만드는 것을 중시할 것을 강조했다. 일방적이고 단순화된 공식기억, 기억의 독점으로 개개인의 생애사가 부정당할 때 포퓰리스트의 선동에 취약해진다는 것을 언급하는데서 나는 정책담당자가 웬만한 인문사회학자 이상의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경험과 기대, 기억과 평가에 상이함이 크고 모순적인 대립이 존재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집합적이고 문화적인 역량이 한국의 통일담론과 정책구상에도 확대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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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회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

이번 회의에서 독일측 참석자들이 자주 언급한 것이 ‘사회’와 ‘인간’이었다. 경제적인 문제가 논의될 때도, 정치적인 쟁점을 다룰 때도, 기억과 문화를 언급할 때도 사회와 개인을 소환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이것이 현재 독일문화 전반적인 특징인지 확언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통일 이후의 변화를 주목하고 있는 구동독지역 지식인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화두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귄터 총장은 분단시절의 지역별 특허출원을 검토한 후 발명정신은 체제와 무관하다는 결론을 맺었다. 사회주의 집단경제 하에서는 창의력과 기업가정신이 발휘되기 어렵다는 통설에 대한 반론처럼 들렸다. 김병연 교수가 북한의 경제발전모델을 설명하면서 시장화를 일종의 필수적 전제로 강조한 것과도 결이 다른 발제였다. 귄터는 어떤 체제 하에서도 혁신과 창의의 아이디어는 출현할 수 있고 그것이 실현되는 영역이 있게 마련인 바, 전환과정에서 그 경험을 해체하거나 무화시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정치적 판단과 경제적 타산 하에서는 종종 무시당했던 동독 하에서의 긍정적 자산들을 사회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되살리고자 하는 노력으로 읽혀졌다.

동서독간 소포에 담겼던 문화적 함의를 발제한 콘스탄체 조흐 역시 ‘독재사회에서 일상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이런 영역을 주목했다. 그 일상은 일방적인 억압과 감시, 수동적인 행동으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고 나름대로의 기쁨과 애환을 담고 있는 삶의 현장이며 다양한 정서들이 축적되던 영역이었다. 동서독 사이에 오고간 소포는 단순히 동서독 교류, 경제적 효과, 정치적 함의로 환원될 수 없는 다양하고도 복합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 소포상자를 대하는 태도와 감정도 세대에 따라 시기에 따라 달랐다. 아이러니하게도 통일 후 소포상자에 담겼던 우호적인 애틋한 기억이 변질되기도 했다는 설명을 들으면서 작년 베를린에서 들었던 징치교육센터장의 발제가 떠올랐다. 독재에 대한 해석은 그 독재 하에서 느꼈던 평안함과 익숙함까지도 포함해야 한다는 것, 그래야만 제대로 된 독재경험의 극복이 가능하다는 것 — 독재와 억압도 사회와 개인의 삶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라 할 만했다.

미하일 마르텐은 공식 기억에서 놓치기 쉬운 개인적인 차원을 주목할 것을 강조했다. 통일 이후에 과거를 어떻게 해석하고 기억할 것인가, 어떤 방식으로 기념할 것인가가 중요한 쟁점인데 그는 누구든 과거의 독점은 곤란하다고 했다. 다양한 경험을 가진 개인과 사회 차원에서 보면 기억의 충돌과 대립이 오히려 정상적인 것이다. 국가가 과거를 서술하는 주체가 되어서도 곤란하며 개인의 삶, 각각의 생애사 속에 담긴 다양한 경험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특정한 경험과 기억에 특권을 부여하지 않고 모든 기억과 경험을 민주적으로 대하고 상호소통의 기회를 허용하는 것, 기억을 영구적이고 살아있는 과정으로 되살리는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역설했다. 기억의 공간이 그 어느 곳보다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말에 공감이 갔다.

북한과의 교류 협력 경험보다 단절과 위험이 심화된 오늘 한국에서 북한 및 통일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방식은 훨씬 단순해지고 공식화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체제가 동독에 비할 수 없을만큼 전체주의적이어서 개인적, 사회적 차원의 다양성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안타까운 현실의 반영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탈북자와 북한인권문제가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불가피하다. 현재 추진되는 국립북한인권센터가 북한, 인권, 남북관계를 어떻게 서술하고 이미지화 할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최근 김정은 주도하의 북한동향과 악화되는 남북관계를 고려하면 사회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을 신경쓸 여지는 현저히 좁아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북한인권을 공식화, 평면화, 정치화하지 않고 그 다양한 차원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방식이 찾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먼저온 통일’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면서 정부가 관심을 갖고 지원하고 관리하는 탈북자에 대한 정책적 대응도 그들의 개인적이고 미시적인 생활사를 놓치지 않으려는 섬세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탈북자가 독특한 경험을 공유한 집단임은 분명하고 이들에게 한국의 통일이라는 큰 과제와 연결시키려는 스토리텔링을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실제로 ‘먼저온 통일’이라는 말에 자부심을 느끼는 탈북자도 있고 그런 관점에서 우리 사회의 포용성이 커질 수도 있다. 하지만 탈북자라는 범주로 자신의 삶이 규정되는 것을 불편해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개개인이 탈북과 정착 과정에서 경험하고 갖게된 독특한 삶의 이야기를 다면적으로 이해하고 포용하는 노력은 지금보다 더 섬세하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최근 독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서독의 발명으로서의 동독] 처럼 한국의 발명품으로서의 탈북자 서사가 되지 않도록 그들의 다면적 삶을 이해하고 지원하는 노력이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남북한 관계, 통일과 평화의 주제가 언제나 정치적 의제로 다루어지는 우리 사회에서는 김병연 교수가 보여주는 경제적 접근조차 신선하고 새롭게 여겨진다. 이런 한국적 현실에서 징치와 경제를 넘어서 사회와 개인을 강조하는 시각은 힘을 얻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우리의 일상현실조차 정치와 경제가 중심을 이루는 현실에서 시민들의 사회적 공간과 개인의 독특한 경험을 중시하는 것은 애매하고 불투명한 태도로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차원을 얼마나 제대로 감당할 수 있느냐가 정책의 고급성을 좌우하고 선진국으로의 이행을 보장할 것은 분명하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대북정책이 요동치는 우리의 현실도 사회와 인간에 대한 깊은 숙고가 부재한 탓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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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Property, Nation, Constitution

한국과 독일 사이에 공유된 주요 키워드 중 하나가 민주주의다. 한국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이 헌법적 가치인데다 현 정부 들어 자유와 인권의 보편적 가치확산을 대북정책의 핵심으로 내세우고 있다. 독일 역시 통일과정은 물론이고 현재의 통합과제에도 민주주의를 핵심 원칙으로 강조하고 있다. 독일은 가장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로 인식되고 한국 역시 아시아에서 역동적인 민주주의를 실현한 사회로 인식되고 있으니 이런 모습은 당연하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했다.

회의 도중 독일 통일 직후에 유명한 정치사회학자인 Claus Offe 가 쓴 글이 생각났다. “Property, Nation, Constitution”이라는 제목으로 기억되는데 독일 통일의 주된 동력이 경제력 (마르크와 풍요), 민족애 (집합정체성과 감정), 헌법 ( 민주주의와 시민권) 셋 중 어디에 있었는가를 다룬 것이었다. 통일과정에서 독일 마르크의 경제력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고 또 동족애와 민족감정이 주요한 요인임은 많이 언급된 내용이다. 이 글은 하버마스의 제자답게 민주주의라는 원리가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임을 강조했는데 시민권을 보장하고 대화를 강조하는 것이 통일과정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밝힌 글로 기억 속에 남아있다.

통일과 관련하여 내세우는 민주주의의 핵심가치가 두 나라 사이에서 차이를 보인다는 사실이 흥미로왔다. 독일은 대화를 중시했고 한국은 자유를 강조했다. 한국이 자유를 중시한 것은 그 역사가 오래다.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좌우분열과 분단을 겪고 한국전쟁과 냉전시대를 거쳐오면서 자유는 체제이념의 핵심요소로 간주되어 공식 이데올로기로의 중요성이 부과되었다. 실제로 독립운동이나 공산주의와의 대립과 전쟁, 그리고 독재정권 하에서의 민주화운동을 관통하며 모두에게 공유된 가치의 하나가 ‘자유’였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오늘날 한국이 다양한 영역에서 역동적인 창의력을 보이고 K-Pop의 개방성과 융합성이 전지구적 관심을 끄는 배후에도 한국인의 자유로운 사고와 행동이 큰 자산으로 자리하고 있다.

남북간 교류협력이 강조되던 시기에는 통일과 관련하여 자유라는 가치를 그다지 강조하지 않았다. 그런데 현정부 들어 자유는 대북정책 및 통일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강조되고 있다. 통일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기초해야 한다는 관점,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 원칙의 확산’을 통일의 핵심으로 강조한 사실등이 이런 경향을 추동한 주요한 요인이 되었다. 내용적으로 헌법에 규정된 바인만큼 특별히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북한이 한국과의 협력과 교류를 거부하고 핵무력에 입각한 적대노선을 고집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이상 민족통일을 추구하지 않으며 한국을 최대적으로 간주하겠다는 상황에서 자유라는 가치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북한에 대해서는 진보정권이 추구했던 교류와 협력 못지 않게 자유민주주의라는 체제논리의 우선성을 강조하겠다는 메시지일 수 있다. 당연히 북한으로부터 ‘체제통일’ ‘흡수통일’의 지향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 박근혜 정부 당시의 통일대박론이 북한에게 ‘흡수통일론’으로 인식되었던 것과 유사하다.

독일측 발제에서 구동독 지역에서 AFD를 비롯한 극우세력이 높은 지지를 받는 현상과 관련하여 민주주의, 대화의 중요성이 언급되었다. 사통당 독재희생자 특임관실의 슈비더스키는 현재의 극우 부상을 ‘사통당 독재의 장기적 트라우마’와 연결시켜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부당한 체제의 감시와 폭력이 미친 영향은 수십년 후에 나타나기도 하는 장기적이고 지속적인데 이런 어려움이 방치되면서 포퓰리즘이 번성할 토양이 조성된다는 것이다. 사통당 희생자 특임관 제도가 그 장기 트라우마에 공적 목소리를 부여하고 참여를 통해 심리적 위기를 극복할 계기를 만들려 한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대화와 인정이야말로 소중한 가치임을 역설했다.

작센주 장관 둘리히 역시 구동독 지역주민들의 내면에 깔린 ‘미래에의 불안’을 지적하였다. 그것은 단지 동독시절의 억압의 경험만이 아니라 통일과정에서 자신의 오랜 삶이 부정당했던 아픈 기억의 결과이기도 하다. 이런 부정적 기억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을 때에 해소가능하며 그런 긍정적 미래상을 위해서는 지속적 대화와 교육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작년 회의시 방문했던 바이써바써 지역에서도 시장은 주민들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 민주적 대화가 극우의 확산을 막는 관건이라고 했던 것을 떠올렸다.

극우정당과 혐오문화는 독일의 현상이지만 그 기저에 깔린 사회심리적 차원은 오늘 한국의 현실과도 결코 무관치 않다. 한국사회 역시 정치가 팬덤화하고 싫어하는 집단을 악마화하는 혐오문화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특히 북한과 일본, 특정 소수집단은 정치적 논란이 심해질 때면 악마화의 대상이 되기 쉽다. 통일을 향한 길에 남북간 상호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할텐데 불신과 비난이 난무하는 현실이 걱정스럽다. 자유가 매우 중요한 가치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으며 오늘 한국의 발전이 자유의 추구에 힘입은 바 큼도 사실이다. 하지만 자유가 민주주의의 모든 것일 수는 없다. 자본주의와 디지털문명과 결합한 오늘의 자유주의가 많은 문제들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통일이라는 미래과제와 관련해볼 때 자유라는 가치 이외에도 우애, 책임, 신뢰, 포용의 가치들이 소중하며 어떤 측면에선 더욱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기도 함을 새삼 재확인하게 된다. 하버마스가 민주주의를 ‘의사소통’이란 말로 이해하려 했던 뜻이기도 할 터이다. 민주주의의 두 축으로서 자유와 대화를 균형있게 발전시켜야 할 필요성을 새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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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통합, 전환, 거버넌스

독일측 참가자의 발제에서 ‘전환’이란 개념이 부각되고 있는 모습이 흥미로왔다. 통일이나 통합 대신 전환이란 말을 사용하는 데서 ‘평화혁명 35주년 기본법 75주년’을 맞고 있는 오늘 독일의 지성적 흐름을 느껴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전환이란 말은 그다지 새로운 것은 아니다. 탈냉전 후 사회주의 체제의 시장경제화를 논의할 때 ‘체제전환’이란 개념이 널리 사용되었고 21세기에 들어와서는 인터넷의 일상화와 정보화를 포함하는 ‘디지털 전환’이란 말이 종종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독일측 발제에서는 이 말을 통해 통일 이후 독일사회가 겪는 다차원적 변화를 종합적으로 다루려는 새로운 의도가 읽혀지는 듯 해서 흥미로왔다.

독일은 통일보다 통합이란 말을 선호했었다. 통일이란 특정 시기의 정치적 이벤트로 보지 않고 긴 역사적 변화, 진행중인 프로세스로 파악하려는 의도에서였을 것이다. 이제 전환이란 말을 내세운 데는 과거 30년의 역사경험에 한정하지 않고 미래지향적 변화를 포함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둘리히 작센주 장관은 구동독의 시장경제화, 제도통합 등의 과제에 더하여 디지털화, 기후변화, 탈탄소화 등 21세기적 과제도 함께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다. 최근 정체성을 둘러싼 혐오정치와 종족주의가 대두하는 위험도 단지 통일의 후유증, 통합의 미흡함으로 간주되기보다 새로운 사회관계 형성에서 경험하는 미래에의 불안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문제의식이 드러난다. 과거의 경험과 유산에 한정되지 않고 미래를 향한 새로운 노력과 숙제를 고민하려는 의도가 ‘전환’이라는 개념 뒤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종합토론에서 독일측 위원 세 분이 한반도 통일에 대해 조언을 했는데 나는 ‘전환’이란 말과 ‘복합 거버넌스’라는 두 측면에서 이들의 공통된 관점을 읽을 수 있었다. 통일은 결코 분단국가가 이전상태로 되돌아가는 회복정치가 아니며 다양한 안팎의 변수가 뒤엉키는 역동적 과정인만큼 다면적 전환 프로세스를 감당할 역량구축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장기적 시야가 필요하고 모순적이고 예기치 않은 요소들을 다룰 총체적 거버넌스가 중요하다는 말일텐데 사실 그것이 선진국가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고급한 문화지식적 소프트 파워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먼저 슈납파우프 박사가 말한 것은 “현실은 준비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통일의 역동적 과정을 지켜보며 실무를 담당해 본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메시지였으리라 생각되는데 그는 우연성, 의외성, 불확실성을 감당하기 위한 조직과 거버넌스를 특히 강조했다. 역사가 격동의 물결에 휩쓸릴 때 그 흐름을 읽으면서도 방향을 조정할 유연한 조율역량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것이 아니다. 통일이라는 매우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는 사회에서는 더더욱 다원적이고 모순적인 상황을 관리하고 통제하며 향도하는 복합적 거버넌스가 필수적이리라.

브레멘 대학 총장이자 경제학자로서 귄터 박사는 체제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날 것을 제안했다. 체제가 잘못되어도 그 속에서 활동하는 사람과 특정 영역의 경험은 소중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으며 인간적 상호존중과 신뢰구축이 효율일변도 정책보다 더 중요하다고 했다. 그녀는 발제에서도 동독의 과학기술수준이 결코 형편없는 것이 아니었음을 강조하고 통일과정에서 그 역량과 경험이 무시당한 것의 후유증이 매우 컸음을 언급했다. 북한의 체제비판이나 남북한 경제격차를 다룸에 있어서도 냉정한 현실인식에 더하여 체제론이나 이념적 차원으로 환원되기 어려운 인간과 사회를 중시하는 연구자적 시각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작센주 장관이기도 한 둘리히 위원은 통일이 목표가 아닌 과정, 심지어 중간단계일 수 있음을 인식할 것을 주문했다. 지나보면 통일은 긴 전환과 변화의 한 지점이었고 통일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만병통치약도 아닌 것이 금방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는 통일과정이 자칫 정치적 승자와 패자로 나뉘어지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성을 언급했는데 그런 감정은 일단 형성되면 매우 오래 부정적인 변수가 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그는 독일의 사례도 단지 참고사항일 뿐임을 강조하고 너무 독일정책을 모델화할 필요가 없음을 언급했다. 결과론적 해석이나 체제 중심적 접근보다 인간적 사회적 측면이 강조되어야 하며 특히 청년세대의 미래와 긍정적 전망이 통일과정과 연계될 수 있어야 함을 지적했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이미 통일을 달성한 독일사회에서나 가능한 여유있는 시각이라 볼 수도 있다. 실제로 이런 독일의 논의에 대해 부럽다는 인상을 언급한 한국측 위원들도 여럿이다. 하지만 우리의 사고 전반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타산지석으로서의 의미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도 단일목표지향형 사고를 넘어설 필요가 있다. 통일은 남북한과 동북아, 세계체제의 변화와 상호연동되는 복합적 과정이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심리, 정체성 등 삶의 전 영역에 걸친 재조정을 요구하는 대전환이다. 이런 과제들의 선후와 완급을 조율하고 관리하는 복합적 거버넌스가 통일역량의 요체인 바, 그것은 우리 사회의 총체적 소프트파워와 지정학적 환경이 함께 작용하는 사안이다. 통일이란 쟁점이 국내정치용으로 이용되거나 국제정치의 명분으로 활용되기 쉬운 우리로서는 진지하게 유념할 교훈이 아닐 수 없다. 독일의 경험을 박제화, 정형화하지 않으먄서 현재진행형 교훈으로 삼는 것이 중요하리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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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특수관계와 2국가론

북한이 남북한의 동질성과 민족통일론을 부정하고 적대적 2국가론을 표방한 이래 남북관계의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가 우리 사회의 큰 쟁점이 되었다. 적대적이란 말에 담긴 군사적 위협도 문제지만 ‘통일을 향한 잠정적 특수관계’라는 오랜 합의가 더이상 남북관계를 규율하는 기본원칙으로서의 힘을 잃게 되는데서 오는 문제가 만만치 않다. 한국 사회 내에서도 청년층 사이에서 통일을 추구하기보다 두 국가로 공존하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확산되고 있다. 교류협력을 기초로 점진적인 통일과정을 상정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고수할 것이냐 새로운 통일방안을 마련할 것이냐도 이런 맥락에서 따라오는 현안이다.

분단시기 동독이 2국가론을 내세웠고 동서독 기본조약이 우리 기본합의서의 모델이었다는 점에서 기본조약과 통일의 관계를 다룬 안드레아 행어의 발제가 주목을 끌었다. 건강문제로 참여하지 못한 그의 글은 세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1) 기본조약 체결로 동서독 관계가 크게 개선되었다. 2) 서독은 통일조항을 견지하고 있었지만 통일정책은 뚜렷하지 않았고 실질적 2국가상태가 정상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3) 1990년의 통일과정은 예상하거나 기획한 것이 아닌 ‘즉흥적’ 사건이었다. 기본조약을 체결한 후 에곤 바는 “아무 관계가 아닌 것에서 나쁜 관계로 이행했는데 이것은 진전이다”라고 했는데 이 ‘진전’이란 말 속에 통일의 미래가 담겨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실제로 기본조약 체결 이후 동서독간에는 페터 벤더의 말처럼 “서독은 승인없는 교류만을 원했고 동독은 교류없는 승인만을 원”하는 동상이몽이 오래 지속되었다. 통일은 동독에서 일어난 ‘평화혁명’이 결정적인 변수였고 그런 점에서 즉흥적인 사건이었다는 것이다.

” 독일통일과 기본조약의 연관성을 어떻게 평가하는가?”라는 내 질문에 대해 행어 대신 발표를 맡았던 슈납파우프 박사는 여러 요인 중 하나임은 인정하면서도 “통일은 통일정책의 산물이 아니었다” 라는 말을 덧붙였다. 2023년 베를린에서 개최된 12차 회의에서 그는 ‘포괄적 조약체계 내 구성요소로서의 기본조약’이란 글을 발제했었다. 그의 논지는 동서독 기본조약은 다른 여러 조약들, 즉 서독이 추진한 70년 모스크바 조약과 바르샤바조약, 그리고 73년의 프라하 조약과 함께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 기본조약이 동서독을 조약관계로 변화시켰지만 통일이란 목표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애를 썼다는 점도 강조했다. 연방헌법재판소는 기본조약이 분단조약에 해당되지 않으며 ‘통일명제에 따라 독일 민족이 평화와 자유 아래 국가통일을 다시 이룰 수 있도록 총력을 다할 것’ 이라는 사실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했음을 들어 통일조항의 유지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었다.

언제나 진지하고 깊은 생각을 피력했던 분이어서 나로서는 계속 생각할 화두 하나를 얻은 느낌이었다. 작년 그의 발제문을 다시 살펴보면서 기본조약과 통일의 관련성을 곰곰 생각해 보았다. 그는 기본조약에 의해 동서독 관계에 많은 진전이 있었지만 정작 기본조약 1조가 표방한 ‘정상적이며 상호우호적인 이웃관계’ 수립이라는 목표는 전혀 구현되지 못한 희망사항으로 남아있었을 뿐이라고 했다. 그의 발제문 행간에서 기본조약이 수행한 역할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하는 것을 조심스러워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통일은 동서독 관계의 개선을 포함하되 그것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헬싱키 프로세스와 유럽통합, 탈냉전의 전과정과 연관된 흐름 속에서 가능했던 것이라는 것을 강조했던 것이다. “통일은 통일정책의 산물이 아니었다”는 말은 동서독 관계개선이 통일의 충분조건일 수 없다는 말로도 이해될 수 있겠다.

김천식 원장은 변화하는 환경에도 불구하고 통일의 당위성은 변함이 없으며 반드시 추구해야 할 민족적 과제임을 강조했다. 오랜 단일민족적 배경과 강한 통일의지가 중요함을 지적하고 북한의 2국가론을 반민족적, 반통일적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 대해서는 그 기본정신을 수용하면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강조했다. 현재 국면에서 어떤 새로운 대안이나 원칙이 필요할지에 대해서는 말을 아낀 듯 보였다. 김병연 교수는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기본틀을 유지하면서 그 중간단계로 ‘경제공동체’를 설정할 것을 제안했다. 남북이 경제영역에서 같은 공동체로서의 통합을 이루는 것은 통일로 이어지기 위한 필수적 전제가 아닐까 하는 그의 주장은 깊이 숙고해볼 쟁점이 아닌가 싶다. 북한의 적대적 2국가론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실질적 2국가 상태로의 이행을 당연시하는 국내의 여론에 대응하는 새로운 통일담론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가 만만치 않은 숙제임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통일이 국내외 수많은 예기치 못한 사건들과 뒤엉키면서 진행되어야 하는 과정임을 고려하면 통일에 대한 분명한 주체적 의지, 민족적 열정을 재확인하는 것 못지 않게 21세기 지정학의 복잡한 흐름도 반영하는 총체적 비전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이 세션을 거치면서 두 가지 공부거리를 내 스스로 던지게 되었다. 1) 우리는 너무 통일을 남북관계 중심으로만 사고하는 편향을 지니고 있는 것 아닐까? 한 때 남북기본합의서나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통일로의 대장정인 듯 믿었던 과잉기대가 우리 사회 일각에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을 남북간 합의만으로 성사시킬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발상도 마찬가지다. 2) 남북간에 실질적 2국가상태가 강화되는 것과 통일을 추구하는 노력은 반드시 상충하는 것일까? 북한의 적대적 2국가론은 당연히 수용할 수 없는 것이지만 별개의 주권체로서 남북간 국제법적 관계가 진전되는 것이 반드시 영구분단이나 반통일로 이어질 필연성은 없다는 사실을 독일의 사례가 보여주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다층적인 변화가 역동적 결과로 이어지는 역사의 미묘한 공간을 포착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시기를 맞이한 셈이다.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가는 노력 속에 이런 섬세함이 담겨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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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차 한독통일자문회의

13차 한독통일자문회의가 부산 해운대에서 이틀간 개최되었다. 독일에선 카스텐 슈나이더 연방 총리실 정무차관을 대표로 한 이십여명이 참석했고 한국에선 문승현 통일부차관을 대표로 한 이십여명이 발표와 토론에 참여했다. 독일측 참가자 중에는 슈납파우프, 콘첸도르프 등 여러 차례 만난 분도 있지만 새로운 얼굴도 많았다. 지난번 베를린 회의에서도 뵈었던 쉬뢰더 총리, 텔칙 차관 등은 이제 먼길 여행이 어려워졌다 한다. 한국측에선 통일부의 2030 청년자문단이 자리를 함께 해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양국 대표의 기조발제는 현재 두 나라가 처한 상황을 잘 짚어주었다. 문승현 차관은 하노이 회담 실패 이후 경색된 남북관계가 최근 북한의 전략적 입장변경으로 더욱 악화되고 있는 현실을 설명했다. 향후 북한의 도발이 심화되고 한반도 군사긴장이 고조될 것을 예상하면서 북한의 의도가 미국신정부와의 핵담판, 한미일 안보협력구도에 대한 반발 등으로 보인다는 판단도 덧붙였다. 한국정부는 ‘힘에 의한 평화’ 원칙에 입각하여 무력도발을 불허하고 대화와 외교로 해결을 추구한다는 것, 그리고 북한주민 인권개선과 탈북민 적극 포용의 노력을 지속하고 있음을 밝혔다. 또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이란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새로운 통일담론의 확산을 주요한 과제로 제시하면서 “자유는 통일의 전제조건‘이라는 콜 수상의 말, 그리고 ’신의 옷자락을 붙드는 정치력‘을 강조했다.

슈나이더 차관은 최근의 동향과 조사자료를 근거로 현재 독일이 처한 상황을 설명했다. 특히 구동독 지역에서 급격히 부상하고 있는 인종주의적 정서와 에너지 문제에 우려를 언급했다. 구조적 차별은 뚜렷하지 않지만 자기 지역이 뒤쳐져 있다는 느낌, 지역이탈이나 지위상실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동독지역에 여전하다는 점, 그래서 통일에 대한 동부지역의 평가가 10년전보다 훨씬 부정적이 되었음을 지적했다. 그는 이런 상황이 포퓰리즘 정치의 사회문화적 토양이 될 수 있음을 우려하면서 민주주의와 복지국가의 강화로 ‘사회적 결속력’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통일과 통합을 위해 최근 두 나라에서 추진되고 있는 새로운 활동을 확인하고 공유한 것도 뜻깊었다. 독일은 재작년부터 사통당독재희생자 특임관 제도를 두고 희생자들에 대한 총체적 지원을 담당하고 있다. 또 2030년 완공을 목표로 ‘평화혁명과 유럽통합의 전환을 향한 미래센터’를 건립해가는 중이라 한다. 통일 30년이 지났지만 역사적 트라우마가 남긴 긴 상처를 해소하는 노력은 지속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런 결정들을 가능케 했다고 한다. 과거가 아닌 미래, 독일만 아닌 유럽, 공공 역사만 아닌 개인의 생애사를 포용하려는 새롭고도 과감한 시도가 놀라왔다. 한국의 새 정부 출범 이후 시작된 국립북한인권센터 건립계획과 북한인권문제를 국제화하기 위한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의 전방위적 활동, 그리고 최근 탈북자 동향에 대한 정책적 노력을 들은 것도 좋은 공부였다.

2024년 한국과 독일 모두 만만치 않은 도전을 받고 있다. 한국은 북한의 적대적 2국가론 표방과 군사적 위협이 급증하고 지정학적 환경도 크게 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기본법 75주년, 평화혁명 35주년을 기념하는 독일은 점증하는 극우세력, 난민문제와 에너지 위기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난관의 성격이 다르고 여건도 같지 않지만 서로의 경험이 타산지석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런 지식공유의 노력은 지속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이번 회의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환송만찬이 열린 누리마루에서 APEC 정상회의 때의 사진들을 보면서 20년이 넘은 지금, 또 이 회의가 13차를 거듭해 오면서, 우리의 시야와 정책적 역량은 얼마나 글로벌해졌고 깊어졌을까 자문해 본다. 올 해 이 회의에서 느낀 바들을 다섯 쟁점으로 정리하면서 이틀간의 소회를 내 나름의 질문과 결부시켜 기록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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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 한완상 장학금

두달 전 어느날 아침 한완상 교수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학창시절 이상백 선생으로부터 받은 사랑과 사회학이란 학문에서 받은 도움을 후학들에게 되갚는 일을 하고 싶으시다는 것이 요지였다. 장학금, 학술상, 연구지원 등 여러 방안이 있을 것이라 말씀드린 후 댁으로 찾아뵙고 상의하기로 했다. 몇 차례 논의를 거쳐 ‘한민 한완상 장학기금’을 제정하는게 상백 선생의 뜻도 기리고 후학들에게도 격려가 될 것이라는데 의견을 모았다.

서울대와의 실무적 논의를 거친 후 4월 25일 ‘한민 한완상 장학기금 전달식’을 가졌다. 당일 댁으로 모시러 갔을 때 선생님은 단정하게 옷을 차려 입고 마치 소풍을 떠나는 아이같은 표정으로 기다리고 계셨다. 이재열 교수와 임동균 사발연 소장, 그리고 이도훈 대학원 주임이 함께 한 자리에서 감사패를 읽었다.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를 역임하시고 한국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 탁월한 사회학자 한민 한완상 교수께서 이상백 교수의 학은을 기리는 장학기금을 기탁 ….. 후학들의 마음을 담아 깊은 감사의 뜻을 표”한다는 내용에 흡족해 하시는 표정이 역력했다.

한 선생님은 은사 상백 선생의 후의를 종종 말씀하셨다. 상백 선생은 역사적 접근을 중시한 연구자이지만 제자인 한민 선생께는 미국에 가서 그곳의 정통 사회학을 공부하고 오라고 권하셨다고 한다. 올림픽 위원회 위원으로 세계를 오가며 구한 귀한 선물을 주기도 하셨고 유학하는 제자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셔서 달러를 쥐어주시기도 했다. 상백 선생의 제자 사랑에 대해서는 김채윤, 신용하, 강신표 교수 등도 여러 형태로 언급한 바 있으니 좋은 스승의 영향력은 그만큼 깊고 다양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나도 한민 선생님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 혼자 서울로 유학와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친척집 가까이 있던 수유동교회를 다녔는데 한완상 교수님도 출석하고 계셨다. 고3 시절 대학진학을 앞두고 어떤 전공을 선택할지 고민이었다. 아버님은 법대 진학을 원하셨고 어머니는 신학교 진학을 바라셨는데 나는 그 둘 모두 피하고 싶었다. 전화가 없어 편지로만 간간히 소통하던 시절이었다. 어머님이 한완상 교수님께 요청을 하셨던 모양이다. 어느 주말 저녁 한 선생님이 내 자취방으로 찾아 오셔서 김치 하나 놓인 식사를 하며 어머니과 내 진로에 관해 오랜 대화를 나누셨다.

일면식도 없는 지방의 한 어머니가 아들의 진학상담을 위해 서울대 교수를 만나고 싶다고 할 때 선뜻 응할 분이 얼마나 있을까? 그것도 번듯한 장소가 아니라 누추하고 비좁은 학생의 자취방일 때 그 가능성은 전무하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 자신 교수 생활을 하면서 학생들을 대하는 내 자세를 성찰할 때마다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곤 했다. 어쨋든 그 날 나는 어렴풋이나마 사회학이 매우 포용적이며 기독교 신앙과도 접맥되는 매력적 학문이라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목사가 되기를 소원하시던 어머니도 사회학을 한 후 신학을 하는게 좋다는 한선생님 말씀에 공감을 하셨던 것 같다.

한 교수님은 음악에 조예가 깊으셨고 성가대 지휘를 하고 계셨다. 노래를 좋아하던 나도 대학 진학 후 성가대에 합류했고 매주일 한 교수님 지휘 아래 찬양을 했다. 학과 교수님으로서 만나기 이전에 성가대 지휘자로 먼저 만난 셈이다. 성가대원들 중에는 김교신의 무교회주의 영향을 받은 분도, 미국사를 전공하신 시니컬한 교수님도, 전기공학을 전공하신 공학자도 계셨다. 그 성가대의 개성적이면서도 문화적이며 유머러스한 분위기가 참 좋았는데 한교수님의 리더십과도 무관치 않았다. 성가곡의 장중함, 합창의 매력 못지 않게 코이노니아의 소중함도 이 때 배웠던 것 같다.

얼마후 한교수님은 교회를 옮기셨다가 새길교회라는 평신도 교회사역을 시작하셨다. 이 교회는 한국교회사에서도 참신한 시도로 주목을 받았는데 기성교회에 만족하지 못한 지식인들, 엘리트 신자들이 많이 모이는 교회로 알려져 있다. 한교수님은 한국교회와 기독교에 대해 날선 비판을 해 오셨지만 한번도 기독교 신앙, 예수정신으로부터 벗어난 적은 없다. 실제로 한교수님의 저작들은 제목에서부터 성경과 예수정신이 뭍어나는 것이 많다. 많은 지식인들이 탈종교, 탈신앙, 탈기독교를 추구하는 시대에 특기할만한 사례가 아닌가 싶다.

내가 사회학과로 진학한 직후 한교수님은 해직을 당하셔서 직접 가르침을 받을 기회는 없었다. 하지만 선생님과의 인연은 계속되었다. 기독교서회에서 활동하실 때 찾아뵙기도 했고 복직후 사회학회장이 되셨을 때는 학회총무로 도왔다. 학회의 프로젝트로 한국전쟁연구를 하고 그 결과물을 책으로 출간하면서 서장을 공동명의로 썼다. 김영삼 정부 초기 한교수님이 통일부장관으로 이인모 노인을 송환하는 등 유연한 대북정책을 추진하자 이 글이 보수층의 공격소재로 부각되었다. 분단극복과 평화지향적 연구의 필요성을 주장한 것이 정치적 공격의 빌미로 사용된 것이지만 초고를 작성했던 나로서는 좀더 세심한 표현을 했더라면하는 송구한 마음을 금할 길 없었다. 하지만 한교수님은 한번도 그와 관련하여 언짢은 말씀을 하신 적이 없다.

90이 되신 노학자가 후학들을 위해 큰 돈을 쾌척하시는 마음씀에 깊은 감사가 솟구친다. 은사의 사랑을 잊지 못하는 회상에서 학창시절의 인격적 만남이 얼마나 오래 기억되는지를 깨닫게 한다. 오늘 대학의 문화, 학과의 분위기가 저런 정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끈끈한 사제관계, 인간적 대화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 동료교수들 사이도 예전같지 않다. 개성적이고 개방적이 되었지만 같은 시대를 사는 공동체적 연대감이나 상호신뢰는 지속적으로 약화되고 있다. 불가피한 흐름이겠지만 아쉬움도 적지 않다. 한 선생님의 건강을 기원하며 사회학과가 겪어오고 이루어온 지난 역사와 족적을 공동의 자산으로 재구성해가는 일에 이 장학금이 좋은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