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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화묵회 전시

서울대 교직원 서예전시회가 8월 5일 서울대 미술대학 우석전시실에서 개막했다. 올해의 전시 컨셉은 여름을 보내는 서정… 무더운 날의 시상을 화선지 묵향에 담아보려는 의도였으리라. 두달전 전시계획을 통보받고 나는 바로 두 작품을 마음에 떠올렸다. 무더운 여름날 변방의 병사들의 수고를 보며 멋진 시를 남긴 두보의 ‘하야탄’과 여름의 길목에서 자연의 역동적 흐름을 ‘공양’이라는 화두로 담은 안도현의 시다.

사실 봄이나 가을에 비해 여름을 주제로 한 시는 중국에서나 한국에서나, 과거에도 지금도 상대적으로 적다. 하지만 두보는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도 만물이 각기 제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임을 일깨우고 인간사의 부자유함과 억지스러움을 변방의 병사들을 통해 노래한다. 안도현은 풀, 비, 바람, 새 등 만물이 제나름의 공을 들여 여름의 무성함을 만들어왔음을 신선한 감각으로 표현했다.

두보의 한시의 전반부를 행초로 썼다. 자유롭게 운필하려 했는데 그럴수록 기본기가 바탕임을 절감했다. 작품을 써보다가 황희지의 초천문을 다시 연습하곤 했다. 한글도 좀더 다양한 형식으로 표현해보고 싶어 여러 서체를 섞어 써보았다. 한자와 한글의 아름다움이 서로 다르면서도 붓의 감각에서는 상통한다는 생각을 해 본다.

activities · life · 시공간 여행

김민기, 70년대, 노래

김민기의 부음을 접했다. 얼마전 학전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과 함께 병세가 위중하다는 사실도 알려졌던만큼 뜻밖의 놀랄 뉴스는 아니다. 그래도 여느 유명인사의 죽음을 접할 때와는 다른 아련한 감정이 생겨난다. 그의 이름과 노래가 70년대 내 대학시절에 미친 영향 탓일 것이다. 페북에는 여러 사람들이 그의 노래와 엵힌 경험과 기억들을 적어 놓고 있다. 결혼식 축가로 김민기의 노래를 합창했다는 기억에서부터 그가 어두운 세월에 ‘푸른 하늘’을 보여준 사람이었다고 쓴 글도 있다. 쉽지 않았다는 그의 인터뷰 기사들도 여기저기 나타난다. 학전의 마지막 공연장에서 찍은 사진을 애도의 글과 함께 올린 글도 여럿 보였다. 그의 영향력이 오랫동안 강력했음을 보여주는 모습들이다.

카톡방에선 때아닌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암울했던 시대’에 맞선 김민기라는 글에 대해 그런 표현은 불성실한 왜곡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70년대는 정치적으로 불행했지만 긴 한국현대사에서 결코 암울한 시대로 단정할 일이 아니라는 항변이었다. 김민기의 생애를 두고 70년대의 성격을 논하는 것은 예의도 아니고 맥락을 벗어난 것이다. 우리의 시대인식은 너무 정치화되어 있어 한 인간의 죽음을 두고도 이런 논쟁이 생기는구나 다소 씁쓸한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표준화된 역사인식이나 관용적인 서술어가 얼마나 실체적 진실과 가까운가는 사실 쉬운 문제가 아니다. 김민기의 죽음을 계기로 70년대를 어찌 이해해야할까 자문해본다.

대학생으로 보낸 70년대 중후반을 우울하고 답답하게 경험했던 것은 분명하다. 일상의 생활전선에 힘겨워하던 사회인들이 당시 어떤 생각을 가졌을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자유로운 삶과 지성인되기를 꿈꾸던 사람들에겐 참으로 힘든 시대였다. 외마디 외침 한두마디로 제적과 투옥을 감내해야 했던 친구들이 느낀 절박함은 더욱 컸을 터이다. 그래서일까 내 주변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저항하고 몸부림치던 친구들이 적지 않았다. 기독교와는 전혀 무관하던 한 친구는 진지하게 신학교 진학을 고려한다고 내게 말했는데 사회를 바꿀 저항운동을 위해 ‘종교인의 외피’, 특히 기독교의 힘을 빌리는게 유용할 것같다는게 그 이유였다. 또 한 친구는 유명가수를 ‘의식화’ 시키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 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대중가수의 영향력을 이용하자는 것인데 남진은 너무 의식이 없으니 생각이 깊은 조용필을 그 대상으로 하는게 좋으리라는 구체적인 구상도 덧붙였다. 두 제안 모두 실현 되지 않았고 뜬금없는 망상같은 발상이었지만 각자 제 나름대로 시대의 중압감을 벗어나려던 몸부림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 시절에 노래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이곳 저곳 생겨났다. 노래를 이용하여 메시지를 퍼트리고 사람들을 결집시키려는 노력이었는데 초기엔 출처도 잘 모르는 노래들 (알고 보니 러시아 민요이거나 미국의 반전가요 등이었다), 또는 찬송가 같은 노래도 활용되었다. 노래가사바꿔부르기 (노가바)는 그 이전에도 있었지만 좀더 목적의식적으로 메시지를 담으려는 운동으로 전개되었다. 가사내용도 점점 더 과격하고 노골적인 것으로 변했다. 77년 소위 26동 사건이라 불리는 대형 시위를 촉발시킨 사회학과 심포지엄이 있었다. 진행 사회를 맡은 나는 미리 행사장에 가 았었는데 시간이 넘어도 발제와 토론을 맡은 후배들이 나타나질 않았다. 시위로 번질 것을 우려한 교직원들이 이들을 격리시킨 탓인데 그 사정을 알 수 없는 현장에서는 웅성거림이 시작되고 청중석에서는 자연스럽게 구호와 노래가 시작되었다. 잘 알려져 있는 건전가요의 곡에 박정희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하고 풍자하는 노랫말이 그날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주기도 했다.

그날 밤 많은 친구들이 관악경찰서로 잡혀갔다. 밤샘 취조의 내용은 이 행사를 시위로 이어지게 사전에 모의했는지, 누가 기획했는지를 밝히려는 것이었다. 경찰은 그날 새롭게 불린 노랫말 가사에 주목하고 이 노래를 퍼트린 사람을 찾아내려 했다. 거짓말을 못하던 1학년 후배가 일부 기억이 난다고 가사를 불러주었고 그는 이 날의 시위를 기획하고 주동한 인물의 하나로 지목되어 구속되었다. 후일 그가 학교에서도 제적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마음 속에 분노와 계면쩍음이 뒤섞여 올랐던 기억이 수십년이 지났는데도 마음 한켠에 남아있다.

대학4학년 때 주변의 몇몇이 노래모임을 만들자고 권유했다. ‘메아리’라는 이 노래동아리는 실천과 노래를 연결하는 일종의 문화운동을 모색했던 것으로 나는 초창기에 함께 하다가 꾸준히 참여하진 않았다. 메아리는 사회비판적인 내용을 담은 노래들을 확산시키고자 애썼는데 그 가운데 김민기의 노래는 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후일 80년대에 ‘노래를 찾는 사람들’로 이어져 큰 주목을 받고 이들의 노래 중에는 아름다운 선율과 묵직한 노랫말로 대중의 사랑을 받은 곳이 적지 않다. 광주의 비극을 거치고 노동운동이 확대되면서 노랫말과 곡조도 점점 강하고 투쟁적인 형태로 바뀌었다. 하지만 70년대에 바탕한 내 생활세계의 경험 속에는 작은 연못, 아침이슬, 상록수, 공장의 불빛, 금관의 예수 등 혼자 조용히 읖조리며 부르던 김민기 노래의 서정성이 깊이 자리한다. 존 바에즈를 좋아하던 친구가 김민기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이제 내 자신 70이 되어 그 시절을 상징하던 인물의 부음을 들으니 만감이 교차한다. 이미자가 ‘노래는 나의 인생’이라 했지만 우리의 개인사나 시대사도 노래의 변천사와 겹친다. 뽕짝이라 부르며 도외시하고 공순이들의 노래라 천시했던 가요는 트로트 열풍을 타고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다. 통기타를 치며 청년세대의 우울한 감수성을 일깨우던 노래는 사랑을 노래하는 발라드 가수들의 감미로운 정조로 이어지고 있다. 노찻사 출신의 가수가 유명인의 대열에 올라서기도 하고 각종 시위에 운동가요가 여전히 불리지만 더이상 독특한 의미를 부여받지 못한다. 그런가하면 서태지와 아이들을 효시로 터저나온 새로운 복합장르는 오늘날 K-Pop이란 대형 문화현상이자 기획산업으로 발전했다. 이름도 기억하기 어려운 숱한 아이돌 그룹이 나타나고 이들의 노래는 이해하기조차 어려울만큼 다양하고 이질적이다. 소비와 자극을 찾는 포스트 시대의 경향을 대변하는 노래도 있지만 무정부주의를 표방한 게릴라 정신을 내거는 노래도 인기를 끈다.

리듬과 운율, 달라진 노랫말을 보노라면 반세기 한국사회가 얼마나 역동적으로 변해왔는지를 느낄 수 있다. 노래를 좋아하던 나도 이젠 거의 대부분의 노래가 생소하고 곡조를 흉내내기조차 쉽지 않다. 어떤 의미에서 함께 노래한다는 것, 합창으로 연대하고 노랫말에 공감하는 감수성 자체가 크게 변하고 있다. 70년대 우리의 삶에 녹아있던 김민기, 노가바, 번안가요의 노래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이어지고 있을까. 김민기님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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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속 세대 감각

내 수업에서는 학생들에게 한 학기에 7-8 차례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요구한다. 한두번의 시험으로 성적을 평가하는 것이 어렵기도 하고 불합리하기도 해서 학생 개개인의 글쓰기 수준이나 생각의 깊이를 확인할 기회를 확대한 것이 그 첫 이유다. 하지만 제한된 시간에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을 조건이 되지 않는 현실에서 개개인의 진솔한 생각을 정리해보고 다른 친구들의 견해와 비교해보는 간접토론의 효과를 기대한 것도 그에 못지 않은 의도다.

실제로 그런 효과가 제법 뚜렷하다. 모든 글쓰기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몇 몇 주제에 대해서는 흥미로운 견해들이 제시되고 그 차이를 요약해주고 서로 의견을 주고 받게 하면 꽤 진지한 토론이 오가는 것을 확인했다. 때로는 문제 자체가 너무 거창하고 손쉽게 결론내리기 어려운 것들이어서 과연 이런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을까 싶은 것도 있지만 글 속에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그 이유를 분명히 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학기 초에 엉성한 글을 쓰다가 점차 자기 생각을 뚜렷하게 피력하는 경우를 보노라면 나름 괜찮은 훈련이 된다는 생각도 든다.

평가할 자료가 많아지면 채점은 그만큼 피곤해진다. 단지 양이 많아서만 아니라 주제에 따라 학생들의 글내용이 오락가락하기 때문이다. 나름 애써서 자기 생각을 서술한 보고서를 객관적인 지표에 맞춰 평가할 기준도 없고 엉뚱하지만 재미있는 글을 만나면 어떤 점수를 주어야 할지 한동안 고민에 쌓이기도 한다. 성적 평가에서 겪는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다양한 생각을 접하는 즐거움이 생각보다 크다. 이들이 MZ세대 전반을 대표하는 집단일 수는 없지만 간간히 신선한 의견이나 개성적인 주장을 만나면 요즘 세대의 감각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든다. 내가 대학생일 때 저런 글을 쓸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후생이 가회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것은 물론이다.

이번에 평가하면서 본 흥미로운 견해들 두어가지 정리해본다. 뒤르켐의 시민종교 개념을 오늘 한국사회에 적용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해 수강생의 80% 정도는 가능하다고 대답했다. 한국도 애국심이 강하고 축구나 문화 영역에서 강력한 동일시가 나타나고 있음을 그 이유로 들었다. 그런데 20% 정도는 부정적인 견해를 내놓았다. 그 이유는 개인주의와 아노미 수준이 매우 강하여 국가공동체에 대한 관심조차도 개인의 이익추구에 종속되기 때문이라 했다. 전쟁희생자나 국가를 위해 희생한 자들에 대한 존경심이나 명예부여의 수준이 매우 낮다는 것이 그런 기저를 보여주는 현상이라는 주장인데 흥미로운 생각이 아닐 수 없다.

베버의 합리화에 대한 논의를 근거로하여 한국사회가 과잉합리화 상태인지 아니면 합리성의 부족 상태인지를 물어본 질문에 대한 대답도 흥미로왔다. 대부분 과잉합리화라고 대답했는데 주로 단일한 성공도식, 성적 중심의 교육, 지나친 경쟁문화를 그 결과로 지적했다. 돈이 최고 가치가 되는 현실이 과잉합리화의 징조라고 지적한 글도 눈에 띄었다. 동시에 한국사회는 합리성이 퇴조하고 있고 집단주의와 정서적 휩쓸림이 지배하는 비합리화가 진전되고 있다고 주장한 학생도 있었다. 형식합리성과 가치합리성의 불일치와 모순이 심화되면서 합리성 전체의 기저를 흔들고 있다는 주장도 보였다.

복합적인 문제가 속출하는 21세기에 과학적인 대응과 인간적인 소통 중 어떤 가치가 더 중요할지에 대한 물음에는 후자에 손을 든 학생들이 많았다. 과학기술대학에 재학한 젊은 세대의 반응인데 다소 의외였지만 개인주의적 성향의 한켠에 나름대로 공동체적 지향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개성적이고 다양한 견해들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저들 세대의 특징일수도 있겠다. 경청할만한 의견들을 읽는 즐거움이 있어 채점의 수고를 꽤나 상쇄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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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 50년 지성사

2025년이면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설립 50주년이 된다. 1975년 문리대가 해체되고 대신 인문대, 사회대, 자연대의 세 기초학문대학으로 재편되면서 한국에 ‘사회과학’이라는 이름의 단과대학이 시작된지 반세기가 되는 것이다. 1년 여 전 사회대 50년의 역사를 한국의 지성사 맥락에서 정리하는 연구가 필요하지 않겠냐는 논의가 있었다. 해방후 학문의 본산으로 자임했던 서울대 문리대가 그 30년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할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사라진 것을 아쉬워했던 나로서는 이 공동연구의 필요성에 크게 공감했고 적극적으로 지지의 뜻을 보냈다.

그 결과 사회과학 여러 영역별로 중견 교수들이 참여한 프로젝트가 결정되어 현재 진행 중이다. 나는 사회학 분야를 담당하기로 하고 합류했는데 논의 과정에서 ‘사회과학’ 전체를 아우르는 총괄 원고 작성도 부탁 받았다. 다양한 분과학 전체를 포괄하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고 내 역량도 많이 모자라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것 같았고 또 나름 보람있는 일이기도 해서 수락했다. 6월 12일 각 분과학 별로 일년여 기간 준비한 초고들을 발표하고 공유하는 자리를 가졌다. 사회과학 전 영역에 걸친 50년 역사를 한 자리에서 토론하는 기회는 흔치 않은데 특히 총괄원고를 작성해야 하는 나로서는 소중한 경험이었고 유익했다.

돌이켜보면 내가 1974년에 서울대 사회계열에 입학했던 때가 종합화 출범 1년 전이었다. 교양과정부 1년을 보낸 75년에 관악으로 옮겨왔고 그 해에 사회대로 진입한 첫 학번이니 명실상부 사회과학대학의 첫 세대인 셈이다. 그 이후 지금까지 사회학자로 살아왔고 사회대 교수로 정년을 맞았으니 사회대 50년의 역사는 곧 내 개인의 삶과 고스란히 겹친다. 사회대 50년과 사회학 50년, 그리고 내 개인의 학문사 50년을 함께 되돌아보니 감회가 새롭다. 실제로 이 연구는 내 자신의 지적 궤적을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작업과도 무관할 수가 없다. 사회과학계열이라는 범주가 너무 생소해 ‘법대와 상대와 문리대’의 총칭이라 이해하고 주변에도 그렇게 설명했노리 하시던 아버님 말씀이 떠오른다.

사회대 50년은 한국의 지성사에 어떤 의미를 가졌을까? 사회대를 통해 이어진 지구적 차원의 사회과학과 한국 사회과학 사이에는 어떤 공통의 관심사와 상이한 긴장이 오갔을까? 수용된 서구 사회과학은 얼마나 보편성을 확인했으며 한국의 특수성에 주목한 논의들은 얼마나 이론적 지평을 넓히면서 세계 학계에 기여했을까? 경험과학으로서의 사회과학은 이데올로기적 사유와 다른 과학적 타당성을 얼마나 획득했을까? 그런 과정을 통해 오랜 쟁점이었던 사회과학의 가치중립과 가치개입의 딜렘마는 어떻게 해결해 왔는가?

사회대의 출범은 전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사회과학 분야의 여러 학문을 발전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 경제학, 정치외교학, 사회학, 지리학, 심리학, 인류학, 언론정보학, 사회복지학 등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데는 지난 50년의 수고가 컸다. 이 기간에 서구의 발전된 이론과 방법론이 수용되고 다음 세대의 사회과학자들이 성장했다. 한국사회의 압축적 발전과정에 필요한 기획, 평가, 조정의 소프트파워를 제공하는데도 큰 기여를 했다. 각 학문 분야별로 또 개별 교수 차원에서 국제적 교류와 소통으로 지적 보편성과 세계성을 높여온 것도 중요한 성과다. 정부와 기업에 도움이 되는 전문성 제공은 물론이고 시민사회와 문화영역에서 필요한 비판적 시야와 종합적 상상력을 제공한 것도 사회과학의 성과라 할 만하다.

하지만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이라는 3분법의 제도화가 지성사 전반에 미친 영향은 제대로 검토된 바가 없다. 대학제도에 뿌리밖은 분과학체계가 영역간 크로스오버와 융복합이 급증하는 현실과 괴리되고 있다는 주장도 곳곳에서 들여오고 있다. 의학과 법학을 비롯한 몇몇 분과학에 인재와 자원이 편중되는 현실과 이런 지식분류체계가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지도 돌아볼 문제다. 어떤 인간형을 키워낼 것인지에 대한 책임있는 고민과 노력보다 서울대가 지닌 정치적 영향력, 문화적 위상에 편승해온 측면은 없는지도 반성할 부분이다. 학력주의의 폐해가 대학의 서열화와 분과학간 장벽의 높이와 무관치 않다는 점에 대해서도 귀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저출산과 고용불안, 양극화의 사회적 난제에다가 인공지능과 디지털화, 바이오 테크놀로지가 불러오는 심대한 충격과 불확실성을 눈앞에서 보고 있다. 탈냉전과 세계화를 넘어 새로운 지정학적 분할과 생활세계의 위험을 목도한다. 인간-기계의 통합이 급진전되고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서자는 포스트 휴머니즘이 확산되며 기후위기를 넘어 인류세라는 묵시록적 논의까지 부상하는 상황이다. 인문-사회-자연 과학 3분류는 언제까지 유효하며 그에 기반한 전문성은 얼마나 유용성을 인정받을까? 서울대는 최고대학의 위상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각자도생의 경쟁에 함몰된 젊은 청년들에게 사회과학이 제공하는 삶의 향방과 지혜는 무엇이어야 할까? 언제까지 대학은 지식생산과 고등교육의 전담기구로 존속할 수 있을까? 글을 쓰면서 내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지게 되는 질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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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교육과 제도지체

염재호 태재대학교 총장, 이광형 카이스트 총장, 장병탁 서울대 AI 연구원장 등과 함께 저술한 책자 [AI 시대 대학교육의 미래] (나남출판) 가 출간되었다. 한림대 도헌학술원에서 기획한 도헌학술총서 제1권으로 대부분의 필자들은 1년여 전에 개최되었던 학술심포지엄에 참석한 분들이다. 나는 그 행사에는 참여하지 않았는데 책을 기획하면서 관련 주제의 글을 청탁받아 추가로 참여하게 되었다.

필자들 대부분 유수한 대학이나 관련 기관의 운영을 책임진 분들인데다 인공지능이나 과학기술 분야의 학자들이어서 책의 주제와 잘 어울린다. 나도 광주과학기술원에 초빙석학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니 직함만으로는 어색하지 않지만 그동안 내가 연구하고 가르쳐온 주제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전의 나를 기억하는 분들이라면 내가 이런 주제의 책에 공저자로 이름을 올린 것을 생뚱맞게 여길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십여년 전부터 나는 테크놀로지가 핵심적인 변수가 된 시대가 도래했다고 느꼈고 그런 맥락에서 관련 연구들을 기획하기도 하고 [커넥트파워]라는 책을 공저하기도 했기에 내 자신으로는 전혀 엉뚱한 관심확장은 아니다.

한림대 측으로부터 원고청탁을 받았을 때 글을 써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이유도 그런 저간의 변화 때문이었다. 사회학회장을 하면서 가졌던 여러 관심사들에 더하여 코로나 19 시기의 충격이 내게 미친 영향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깊다. 그 경험은 단지 개인의 실존적 생활경험에 한정되지 않고 불현듯 나타난 온라인 경제, 플랫폼 사회, 커넥트 파워들의 충격으로 이어졌고 광주과학기술원에서 강의를 하면서 그런 문제의식은 더욱 깊어졌다. 이제 다시 이 모든 변화를 아우르면서 인공지능의 쓰나미가 들이닥치고 있어 커즈화일이 말한 ‘특이점이 오고 있다’는 주장을 새삼 떠올리게 만든다.

나는 이런 변화가 일상, 경제, 문화, 종교 등 각 영역에 두루 나타나지만 특히 교육현장과 학교라는 제도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리라는 생각한다. 코로나 19를 겪으면서 내가 계속 떠올리는 개념이 ‘제도지체’인데 이 첨단의 기술변화를 제도와 관성이 따라가지 못해 생기는 각종 문제들을 말한다. 챗 GPT 3.5로부터 시작된 LLM 기반 인공지능의 급성장은 조만간 AGI라 불리는 일반인공지능의 출현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확대시키고 있다. 한국의 고도성정기를 뒷받침해온 강력한 교육시스템이 겪고 있는 제도지체의 여러 측면들을 점검하고 대비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절실한 우리 사회의 숙제다.

나는 네가지 차원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답찾기식 교육과 분과학주의에 갇힌 연구방식을 넘어서는 것, 그래서 창의적 발상과 융복합적 소통이 교육과 연구방식에 상시적으로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캠퍼스와 지역사회가 단절되어 있는 구조를 넘어 산업계, 지방정부, 시민사회의 다양한 주체들과 결합되는 지식생태계를 형성하는 것도 중요하고 젊은 세대의 청년들이 새로운 꿈을 꾸고 미래를 향해 비상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대학문화를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쉽지 않은 목표고 지나치게 이상적인 주장이라 할 수도 있겠다.

글을 쓰면서 늘 느끼는 것지만 분석하기보다 제안하기가 어렵고, 제안하기보다 실천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제안에는 책임이 따르는데 ‘과연 나는 그렇게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안하고 주장해야 하는 것은 해야 한다. 제도지체의 한계를 넘어서려면 상당한 혁신이 불가피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남에게 권유하는 제안이기 이전에 내 자신에게 하는 다짐이기도 한 까닭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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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과 논쟁

5월 9일 사단법인 ‘통일과 나눔’에서 주최하는 정책 심포지엄이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급변하는 한반도 주변 정세를 고려할 때 어떤 통일을 어떻게 추진해야 할지, 이에 필요한 새로운 전략적 구상과 쟁점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논의해 보자는 취지였다. 특히 연초에 북한이 적대적 2국가론을 내놓은 상황이어서 더더욱 현실감과 정치성이 담긴 심포지엄이 되었다. 애초 2주제의 발제를 부탁받았지만 보다 젊은 세대의 이야기가 더 필요하리라 생각해서 덕성여대 이수정 교수를 추천했다. 대신 나는 종합토론을 맡았다.

1주제를 발제한 윤영관 교수는 지정학적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통일을 향한 꿈’이 중요함을 역설했다. 폴란드가 오랜 피억압상황에서도 독립의 꿈을 잃지 않았기에 오늘의 폴란드가 있다는 마무리가 묵직하게 울렸다. 두번째 발제자인 이수정 교수는 최근 젊은 세대의 통일에의 무관심, 북한에의 거부감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솔직하게 논의했다. 달라지고 있는 정체성, 감수성에다 분단 70년의 무게감이 더하여 무관심이 커지는 것은 당연한 변화이지만, 남북대결이라는 현실이 갖는 규정력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젊은 세대가 보이는 딜렘마, 혼란, 위기감을 공감할 수 있었다.

세번째 주제를 발제한 김병연 교수는 남북한의 통일을 중요한 목표로 설정하면서 점진적이고 단계적이어야 함을 강조했다. 분단 70년의 역사를 통해 전혀 다른 체제와 경험을 공유해온데다 경제적 조건이 크게 다른 남북이 급속한 통합을 이루기도 어렵거니와 그 후유증은 매우 클 것이기 때문이다. 통일로의 과정에서 남북간 정치와 문화의 이질성과 독자성을 상당기간 용납하도록 구상된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기조이기도 하다. 하지만 경제적 통합력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이런 중간단계가 안정적일 수 없으므로 중간단계로 경제공동체를 상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김교수의 주장이다. 이런 중간단계 설정을 위해서 북한의 전략적 전환이 필수적이라는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긴 하다.

종합토론에서는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 천영우 전 외교안보수석, 이신화 북한인권대사 등이 패널로 참석했다. 나는 패널 참석자들에게 현재의 한반도 상황악화를 가져온 근본 요인을 무엇으로 보는지, 그리고 향후 방향설정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이종석 장관은 윤석열 정부의 강경일변도 대북정책이 가장 큰 요인이며, 남북한이 별개의 국가로 지내면서 평화로운 통일을 먼 미래의 과제로 설정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을 했다. 천영우 수석은 미중의 패권경쟁을 비롯한 지정학적 변화와 그에 편승한 북한의 전략적 선택이 가장 큰 요인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그리고 북한과 평화공존을 추진하려는 발상을 낭만적이고 무책임한 것이라는 입장을 피력했다. 현 시점에서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진보, 보수의 입장이 뚜렷하게 대비되는 자리였다.

워낙 입장 차이가 뚜렷한 주제여서 애초 화기애애한 토론이 진행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양측 모두 현실의 무거운 상황을 직시할 수밖에 없기에 진솔한 고민을 나누고 공유가능한 방향을 탐색하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했다. 결과적으로는 문재인 정부 책임론과 윤석렬 정부 책임론으로 서로를 비판하고 좌장, 또는 사회자로서의 역할이 개입할 수 없는 논쟁이 되고 말았다. 시간도 충분치 못한데다 정파적 입장까지 더해진 탓에 제대로된 마무리도 하지 못하고 끝을 맺었다. 나름대로 기대를 갖고 시작하는 토론이지만 결국은 뻔한 논쟁으로 귀결되는 경험을 또 한번 겪은 셈이다. 청중과 언론은 각기 원하는 내용들만 취사선택에서 제2, 제3의 논쟁거리를 재생산하리라. 이런 토론도 서로 다른 입장을 보여줌으로써 독자와 청중에게 도움이 되려니 생각해보지만 그런 믿음의 강도가 조금씩 줄어드는 느낌이다. 지혜를 구하는 토론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까 자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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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열린 시각과 집합지성

문승현 차관은 이틀의 회의를 종료하면서 ‘열린 시각’과 ‘집합지성’을 핵심적 교훈으로 언급했다. 열린 시각이란 현실의 다층적 차원을 균형있게 그리고 깊이있게 다루는 역량을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개인의 사고가 유연해져야 함은 물론이고 현실의 복합성을 인지하는 실력이 더해져야 할 것이다. 특정한 개인이나 정파의 목소리보다 사회 각 영역의 지혜가 결합하여 고급한 집합지성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이 중요한 것은 그 당연한 귀결이다. 나는 열린 시각을 서로 다른 관점의 균형이라는 방식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고 보는데 내가 특히 주목했던 세가지 차원을 중심으로 개방적이고 복합적인 사고의 균형을 생각해본다.

첫째는 과거의 미래의 균형이다. 흔히들 독일에게 통일은 과거사가 되었고 한국의 통일은 미래적 과제라고 말한다. 하지만 역사의 긴 과정으로 보면 통일이라는 사건도 과거와 미래가 연결되어 있는 장기적 대전환의 한 부분이다. 독일의 이번 발제에서 ‘전환’이란 화두가 자주 등장한 것이나 분단시대의 긴 트라우마를 언급한 것은 통일을 지난 과거사로 볼 수 없으며 미래로의 전환과 결합해서 파악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둘리히 장관이 말했듯이 이 프로세스는 분단에서 통일로의 전환 뿐 아니라 과거에서 미래로의 전환까지 포함한다. 마르텐 역시 분단시기와 통일시기를 사람들의 생애사 속에서 연속적으로 포착할 것을 강조했다.

둘째는 민족사와 지역사의 균형이다. 독일측은 분단해소와 통일과정이 결코 독일에 한정된 사안이 아니었고 또 그렇게 해석되어선 안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동독의 인권사항도 동서독 교류협력도 민족사의 차원을 넘어서 보편사, 유럽사의 맥락을 잃지 않으려는 시각을 드러냈다. 이번 회의에서는 논의되지 않은 헬싱키 프로세스와 유럽통합이란 지향 속에서만 독일통일의 쾌거가 가능했다는 교훈을 새삼 확인한다. 우리 맥락에서는 한반도적 관점과 동북아 지정학이 함께 가야 한다는 말이겠는데 민족사나 국가사 못지 않게 세계사의 흐름과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대북정책이 주변국외교와 긴밀히 연계되어야 함을 말해주는 것이다.

셋째는 정치경제와 사회문화의 균형이다. 분단과 통일의 시각은 늘 정치적 시각과 경제적 고려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것이 현실이기도 하고 정치적 판단과 경제적 통합이 가장 중요한 동력임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독일측은 유난히 사회적인 것, 개인적인 생애경험을 중시할 필요를 강조했다. 변화를 감당하는 시민들이 어떤 경험과 생각을 하게 되는지, 자신의 생애 속에서 소중히 여기던 경력과 경험들을 새로운 체제전환과 어떻게 연결시킬지가 중요하며, 그런 의미에서 통일은 국가적 의제임과 동시에 시민사회적 쟁점이기도 하다. 민주주의 원리가 강조되는 것도 이런 차원에서

내 개인적으로는 이런 복합적 시각과 열린 자세를 잘 드러낸 것이 독일의 미래센터 기획이 아닌가 싶다. 2022년 연방정부와 연방의회의 결의를 거쳐 추진되고 있는 이 센터는 10년의 건립기간을 두고 과거와 미래, 독일과 유럽, 서독과 동독을 함께 묶는 새로운 비전을 구축하겠다는 비전을 표방한다. 이 작업을 책임진 미하엘 마르텐 과장은 발제에서 현재 추진하는 미래센터가 과거경험을 정형화하고 박제화한 박물관이 아니라,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는 시각과 경험들이 소통하고 성찰하는 플랫폼이 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특히 정부나 특정 집단이 컨텐츠를 정형화하거나 공식화하지 않도록 사회 곳곳에 개인별로 상이한 경험과 기억을 존중하는 기획이 되도록 할 것임을 강조했다.

‘역사는 (동서독인, 또 전 유럽인) 이 함께 이루어낸 것’임을 보여주면서 기억문화 내부의 다원적인 목소리를 용인하고 서로 다른 기억들이 소통되게 만드는 것을 중시할 것을 강조했다. 일방적이고 단순화된 공식기억, 기억의 독점으로 개개인의 생애사가 부정당할 때 포퓰리스트의 선동에 취약해진다는 것을 언급하는데서 나는 정책담당자가 웬만한 인문사회학자 이상의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경험과 기대, 기억과 평가에 상이함이 크고 모순적인 대립이 존재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집합적이고 문화적인 역량이 한국의 통일담론과 정책구상에도 확대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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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회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

이번 회의에서 독일측 참석자들이 자주 언급한 것이 ‘사회’와 ‘인간’이었다. 경제적인 문제가 논의될 때도, 정치적인 쟁점을 다룰 때도, 기억과 문화를 언급할 때도 사회와 개인을 소환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이것이 현재 독일문화 전반적인 특징인지 확언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통일 이후의 변화를 주목하고 있는 구동독지역 지식인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화두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귄터 총장은 분단시절의 지역별 특허출원을 검토한 후 발명정신은 체제와 무관하다는 결론을 맺었다. 사회주의 집단경제 하에서는 창의력과 기업가정신이 발휘되기 어렵다는 통설에 대한 반론처럼 들렸다. 김병연 교수가 북한의 경제발전모델을 설명하면서 시장화를 일종의 필수적 전제로 강조한 것과도 결이 다른 발제였다. 귄터는 어떤 체제 하에서도 혁신과 창의의 아이디어는 출현할 수 있고 그것이 실현되는 영역이 있게 마련인 바, 전환과정에서 그 경험을 해체하거나 무화시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정치적 판단과 경제적 타산 하에서는 종종 무시당했던 동독 하에서의 긍정적 자산들을 사회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되살리고자 하는 노력으로 읽혀졌다.

동서독간 소포에 담겼던 문화적 함의를 발제한 콘스탄체 조흐 역시 ‘독재사회에서 일상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이런 영역을 주목했다. 그 일상은 일방적인 억압과 감시, 수동적인 행동으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고 나름대로의 기쁨과 애환을 담고 있는 삶의 현장이며 다양한 정서들이 축적되던 영역이었다. 동서독 사이에 오고간 소포는 단순히 동서독 교류, 경제적 효과, 정치적 함의로 환원될 수 없는 다양하고도 복합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 소포상자를 대하는 태도와 감정도 세대에 따라 시기에 따라 달랐다. 아이러니하게도 통일 후 소포상자에 담겼던 우호적인 애틋한 기억이 변질되기도 했다는 설명을 들으면서 작년 베를린에서 들었던 징치교육센터장의 발제가 떠올랐다. 독재에 대한 해석은 그 독재 하에서 느꼈던 평안함과 익숙함까지도 포함해야 한다는 것, 그래야만 제대로 된 독재경험의 극복이 가능하다는 것 — 독재와 억압도 사회와 개인의 삶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라 할 만했다.

미하일 마르텐은 공식 기억에서 놓치기 쉬운 개인적인 차원을 주목할 것을 강조했다. 통일 이후에 과거를 어떻게 해석하고 기억할 것인가, 어떤 방식으로 기념할 것인가가 중요한 쟁점인데 그는 누구든 과거의 독점은 곤란하다고 했다. 다양한 경험을 가진 개인과 사회 차원에서 보면 기억의 충돌과 대립이 오히려 정상적인 것이다. 국가가 과거를 서술하는 주체가 되어서도 곤란하며 개인의 삶, 각각의 생애사 속에 담긴 다양한 경험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특정한 경험과 기억에 특권을 부여하지 않고 모든 기억과 경험을 민주적으로 대하고 상호소통의 기회를 허용하는 것, 기억을 영구적이고 살아있는 과정으로 되살리는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역설했다. 기억의 공간이 그 어느 곳보다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말에 공감이 갔다.

북한과의 교류 협력 경험보다 단절과 위험이 심화된 오늘 한국에서 북한 및 통일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방식은 훨씬 단순해지고 공식화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체제가 동독에 비할 수 없을만큼 전체주의적이어서 개인적, 사회적 차원의 다양성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안타까운 현실의 반영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탈북자와 북한인권문제가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불가피하다. 현재 추진되는 국립북한인권센터가 북한, 인권, 남북관계를 어떻게 서술하고 이미지화 할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최근 김정은 주도하의 북한동향과 악화되는 남북관계를 고려하면 사회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을 신경쓸 여지는 현저히 좁아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북한인권을 공식화, 평면화, 정치화하지 않고 그 다양한 차원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방식이 찾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먼저온 통일’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면서 정부가 관심을 갖고 지원하고 관리하는 탈북자에 대한 정책적 대응도 그들의 개인적이고 미시적인 생활사를 놓치지 않으려는 섬세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탈북자가 독특한 경험을 공유한 집단임은 분명하고 이들에게 한국의 통일이라는 큰 과제와 연결시키려는 스토리텔링을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실제로 ‘먼저온 통일’이라는 말에 자부심을 느끼는 탈북자도 있고 그런 관점에서 우리 사회의 포용성이 커질 수도 있다. 하지만 탈북자라는 범주로 자신의 삶이 규정되는 것을 불편해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개개인이 탈북과 정착 과정에서 경험하고 갖게된 독특한 삶의 이야기를 다면적으로 이해하고 포용하는 노력은 지금보다 더 섬세하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최근 독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서독의 발명으로서의 동독] 처럼 한국의 발명품으로서의 탈북자 서사가 되지 않도록 그들의 다면적 삶을 이해하고 지원하는 노력이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남북한 관계, 통일과 평화의 주제가 언제나 정치적 의제로 다루어지는 우리 사회에서는 김병연 교수가 보여주는 경제적 접근조차 신선하고 새롭게 여겨진다. 이런 한국적 현실에서 징치와 경제를 넘어서 사회와 개인을 강조하는 시각은 힘을 얻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우리의 일상현실조차 정치와 경제가 중심을 이루는 현실에서 시민들의 사회적 공간과 개인의 독특한 경험을 중시하는 것은 애매하고 불투명한 태도로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차원을 얼마나 제대로 감당할 수 있느냐가 정책의 고급성을 좌우하고 선진국으로의 이행을 보장할 것은 분명하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대북정책이 요동치는 우리의 현실도 사회와 인간에 대한 깊은 숙고가 부재한 탓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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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Property, Nation, Constitution

한국과 독일 사이에 공유된 주요 키워드 중 하나가 민주주의다. 한국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이 헌법적 가치인데다 현 정부 들어 자유와 인권의 보편적 가치확산을 대북정책의 핵심으로 내세우고 있다. 독일 역시 통일과정은 물론이고 현재의 통합과제에도 민주주의를 핵심 원칙으로 강조하고 있다. 독일은 가장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로 인식되고 한국 역시 아시아에서 역동적인 민주주의를 실현한 사회로 인식되고 있으니 이런 모습은 당연하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했다.

회의 도중 독일 통일 직후에 유명한 정치사회학자인 Claus Offe 가 쓴 글이 생각났다. “Property, Nation, Constitution”이라는 제목으로 기억되는데 독일 통일의 주된 동력이 경제력 (마르크와 풍요), 민족애 (집합정체성과 감정), 헌법 ( 민주주의와 시민권) 셋 중 어디에 있었는가를 다룬 것이었다. 통일과정에서 독일 마르크의 경제력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고 또 동족애와 민족감정이 주요한 요인임은 많이 언급된 내용이다. 이 글은 하버마스의 제자답게 민주주의라는 원리가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임을 강조했는데 시민권을 보장하고 대화를 강조하는 것이 통일과정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밝힌 글로 기억 속에 남아있다.

통일과 관련하여 내세우는 민주주의의 핵심가치가 두 나라 사이에서 차이를 보인다는 사실이 흥미로왔다. 독일은 대화를 중시했고 한국은 자유를 강조했다. 한국이 자유를 중시한 것은 그 역사가 오래다.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좌우분열과 분단을 겪고 한국전쟁과 냉전시대를 거쳐오면서 자유는 체제이념의 핵심요소로 간주되어 공식 이데올로기로의 중요성이 부과되었다. 실제로 독립운동이나 공산주의와의 대립과 전쟁, 그리고 독재정권 하에서의 민주화운동을 관통하며 모두에게 공유된 가치의 하나가 ‘자유’였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오늘날 한국이 다양한 영역에서 역동적인 창의력을 보이고 K-Pop의 개방성과 융합성이 전지구적 관심을 끄는 배후에도 한국인의 자유로운 사고와 행동이 큰 자산으로 자리하고 있다.

남북간 교류협력이 강조되던 시기에는 통일과 관련하여 자유라는 가치를 그다지 강조하지 않았다. 그런데 현정부 들어 자유는 대북정책 및 통일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강조되고 있다. 통일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기초해야 한다는 관점,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 원칙의 확산’을 통일의 핵심으로 강조한 사실등이 이런 경향을 추동한 주요한 요인이 되었다. 내용적으로 헌법에 규정된 바인만큼 특별히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북한이 한국과의 협력과 교류를 거부하고 핵무력에 입각한 적대노선을 고집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이상 민족통일을 추구하지 않으며 한국을 최대적으로 간주하겠다는 상황에서 자유라는 가치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북한에 대해서는 진보정권이 추구했던 교류와 협력 못지 않게 자유민주주의라는 체제논리의 우선성을 강조하겠다는 메시지일 수 있다. 당연히 북한으로부터 ‘체제통일’ ‘흡수통일’의 지향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 박근혜 정부 당시의 통일대박론이 북한에게 ‘흡수통일론’으로 인식되었던 것과 유사하다.

독일측 발제에서 구동독 지역에서 AFD를 비롯한 극우세력이 높은 지지를 받는 현상과 관련하여 민주주의, 대화의 중요성이 언급되었다. 사통당 독재희생자 특임관실의 슈비더스키는 현재의 극우 부상을 ‘사통당 독재의 장기적 트라우마’와 연결시켜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부당한 체제의 감시와 폭력이 미친 영향은 수십년 후에 나타나기도 하는 장기적이고 지속적인데 이런 어려움이 방치되면서 포퓰리즘이 번성할 토양이 조성된다는 것이다. 사통당 희생자 특임관 제도가 그 장기 트라우마에 공적 목소리를 부여하고 참여를 통해 심리적 위기를 극복할 계기를 만들려 한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대화와 인정이야말로 소중한 가치임을 역설했다.

작센주 장관 둘리히 역시 구동독 지역주민들의 내면에 깔린 ‘미래에의 불안’을 지적하였다. 그것은 단지 동독시절의 억압의 경험만이 아니라 통일과정에서 자신의 오랜 삶이 부정당했던 아픈 기억의 결과이기도 하다. 이런 부정적 기억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을 때에 해소가능하며 그런 긍정적 미래상을 위해서는 지속적 대화와 교육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작년 회의시 방문했던 바이써바써 지역에서도 시장은 주민들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 민주적 대화가 극우의 확산을 막는 관건이라고 했던 것을 떠올렸다.

극우정당과 혐오문화는 독일의 현상이지만 그 기저에 깔린 사회심리적 차원은 오늘 한국의 현실과도 결코 무관치 않다. 한국사회 역시 정치가 팬덤화하고 싫어하는 집단을 악마화하는 혐오문화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특히 북한과 일본, 특정 소수집단은 정치적 논란이 심해질 때면 악마화의 대상이 되기 쉽다. 통일을 향한 길에 남북간 상호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할텐데 불신과 비난이 난무하는 현실이 걱정스럽다. 자유가 매우 중요한 가치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으며 오늘 한국의 발전이 자유의 추구에 힘입은 바 큼도 사실이다. 하지만 자유가 민주주의의 모든 것일 수는 없다. 자본주의와 디지털문명과 결합한 오늘의 자유주의가 많은 문제들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통일이라는 미래과제와 관련해볼 때 자유라는 가치 이외에도 우애, 책임, 신뢰, 포용의 가치들이 소중하며 어떤 측면에선 더욱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기도 함을 새삼 재확인하게 된다. 하버마스가 민주주의를 ‘의사소통’이란 말로 이해하려 했던 뜻이기도 할 터이다. 민주주의의 두 축으로서 자유와 대화를 균형있게 발전시켜야 할 필요성을 새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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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통합, 전환, 거버넌스

독일측 참가자의 발제에서 ‘전환’이란 개념이 부각되고 있는 모습이 흥미로왔다. 통일이나 통합 대신 전환이란 말을 사용하는 데서 ‘평화혁명 35주년 기본법 75주년’을 맞고 있는 오늘 독일의 지성적 흐름을 느껴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전환이란 말은 그다지 새로운 것은 아니다. 탈냉전 후 사회주의 체제의 시장경제화를 논의할 때 ‘체제전환’이란 개념이 널리 사용되었고 21세기에 들어와서는 인터넷의 일상화와 정보화를 포함하는 ‘디지털 전환’이란 말이 종종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독일측 발제에서는 이 말을 통해 통일 이후 독일사회가 겪는 다차원적 변화를 종합적으로 다루려는 새로운 의도가 읽혀지는 듯 해서 흥미로왔다.

독일은 통일보다 통합이란 말을 선호했었다. 통일이란 특정 시기의 정치적 이벤트로 보지 않고 긴 역사적 변화, 진행중인 프로세스로 파악하려는 의도에서였을 것이다. 이제 전환이란 말을 내세운 데는 과거 30년의 역사경험에 한정하지 않고 미래지향적 변화를 포함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둘리히 작센주 장관은 구동독의 시장경제화, 제도통합 등의 과제에 더하여 디지털화, 기후변화, 탈탄소화 등 21세기적 과제도 함께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다. 최근 정체성을 둘러싼 혐오정치와 종족주의가 대두하는 위험도 단지 통일의 후유증, 통합의 미흡함으로 간주되기보다 새로운 사회관계 형성에서 경험하는 미래에의 불안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문제의식이 드러난다. 과거의 경험과 유산에 한정되지 않고 미래를 향한 새로운 노력과 숙제를 고민하려는 의도가 ‘전환’이라는 개념 뒤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종합토론에서 독일측 위원 세 분이 한반도 통일에 대해 조언을 했는데 나는 ‘전환’이란 말과 ‘복합 거버넌스’라는 두 측면에서 이들의 공통된 관점을 읽을 수 있었다. 통일은 결코 분단국가가 이전상태로 되돌아가는 회복정치가 아니며 다양한 안팎의 변수가 뒤엉키는 역동적 과정인만큼 다면적 전환 프로세스를 감당할 역량구축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장기적 시야가 필요하고 모순적이고 예기치 않은 요소들을 다룰 총체적 거버넌스가 중요하다는 말일텐데 사실 그것이 선진국가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고급한 문화지식적 소프트 파워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먼저 슈납파우프 박사가 말한 것은 “현실은 준비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통일의 역동적 과정을 지켜보며 실무를 담당해 본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메시지였으리라 생각되는데 그는 우연성, 의외성, 불확실성을 감당하기 위한 조직과 거버넌스를 특히 강조했다. 역사가 격동의 물결에 휩쓸릴 때 그 흐름을 읽으면서도 방향을 조정할 유연한 조율역량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것이 아니다. 통일이라는 매우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는 사회에서는 더더욱 다원적이고 모순적인 상황을 관리하고 통제하며 향도하는 복합적 거버넌스가 필수적이리라.

브레멘 대학 총장이자 경제학자로서 귄터 박사는 체제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날 것을 제안했다. 체제가 잘못되어도 그 속에서 활동하는 사람과 특정 영역의 경험은 소중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으며 인간적 상호존중과 신뢰구축이 효율일변도 정책보다 더 중요하다고 했다. 그녀는 발제에서도 동독의 과학기술수준이 결코 형편없는 것이 아니었음을 강조하고 통일과정에서 그 역량과 경험이 무시당한 것의 후유증이 매우 컸음을 언급했다. 북한의 체제비판이나 남북한 경제격차를 다룸에 있어서도 냉정한 현실인식에 더하여 체제론이나 이념적 차원으로 환원되기 어려운 인간과 사회를 중시하는 연구자적 시각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작센주 장관이기도 한 둘리히 위원은 통일이 목표가 아닌 과정, 심지어 중간단계일 수 있음을 인식할 것을 주문했다. 지나보면 통일은 긴 전환과 변화의 한 지점이었고 통일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만병통치약도 아닌 것이 금방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는 통일과정이 자칫 정치적 승자와 패자로 나뉘어지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성을 언급했는데 그런 감정은 일단 형성되면 매우 오래 부정적인 변수가 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그는 독일의 사례도 단지 참고사항일 뿐임을 강조하고 너무 독일정책을 모델화할 필요가 없음을 언급했다. 결과론적 해석이나 체제 중심적 접근보다 인간적 사회적 측면이 강조되어야 하며 특히 청년세대의 미래와 긍정적 전망이 통일과정과 연계될 수 있어야 함을 지적했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이미 통일을 달성한 독일사회에서나 가능한 여유있는 시각이라 볼 수도 있다. 실제로 이런 독일의 논의에 대해 부럽다는 인상을 언급한 한국측 위원들도 여럿이다. 하지만 우리의 사고 전반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타산지석으로서의 의미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도 단일목표지향형 사고를 넘어설 필요가 있다. 통일은 남북한과 동북아, 세계체제의 변화와 상호연동되는 복합적 과정이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심리, 정체성 등 삶의 전 영역에 걸친 재조정을 요구하는 대전환이다. 이런 과제들의 선후와 완급을 조율하고 관리하는 복합적 거버넌스가 통일역량의 요체인 바, 그것은 우리 사회의 총체적 소프트파워와 지정학적 환경이 함께 작용하는 사안이다. 통일이란 쟁점이 국내정치용으로 이용되거나 국제정치의 명분으로 활용되기 쉬운 우리로서는 진지하게 유념할 교훈이 아닐 수 없다. 독일의 경험을 박제화, 정형화하지 않으먄서 현재진행형 교훈으로 삼는 것이 중요하리라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