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이면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설립 50주년이 된다. 1975년 문리대가 해체되고 대신 인문대, 사회대, 자연대의 세 기초학문대학으로 재편되면서 한국에 ‘사회과학’이라는 이름의 단과대학이 시작된지 반세기가 되는 것이다. 1년 여 전 사회대 50년의 역사를 한국의 지성사 맥락에서 정리하는 연구가 필요하지 않겠냐는 논의가 있었다. 해방후 학문의 본산으로 자임했던 서울대 문리대가 그 30년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할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사라진 것을 아쉬워했던 나로서는 이 공동연구의 필요성에 크게 공감했고 적극적으로 지지의 뜻을 보냈다.
그 결과 사회과학 여러 영역별로 중견 교수들이 참여한 프로젝트가 결정되어 현재 진행 중이다. 나는 사회학 분야를 담당하기로 하고 합류했는데 논의 과정에서 ‘사회과학’ 전체를 아우르는 총괄 원고 작성도 부탁 받았다. 다양한 분과학 전체를 포괄하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고 내 역량도 많이 모자라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것 같았고 또 나름 보람있는 일이기도 해서 수락했다. 6월 12일 각 분과학 별로 일년여 기간 준비한 초고들을 발표하고 공유하는 자리를 가졌다. 사회과학 전 영역에 걸친 50년 역사를 한 자리에서 토론하는 기회는 흔치 않은데 특히 총괄원고를 작성해야 하는 나로서는 소중한 경험이었고 유익했다.
돌이켜보면 내가 1974년에 서울대 사회계열에 입학했던 때가 종합화 출범 1년 전이었다. 교양과정부 1년을 보낸 75년에 관악으로 옮겨왔고 그 해에 사회대로 진입한 첫 학번이니 명실상부 사회과학대학의 첫 세대인 셈이다. 그 이후 지금까지 사회학자로 살아왔고 사회대 교수로 정년을 맞았으니 사회대 50년의 역사는 곧 내 개인의 삶과 고스란히 겹친다. 사회대 50년과 사회학 50년, 그리고 내 개인의 학문사 50년을 함께 되돌아보니 감회가 새롭다. 실제로 이 연구는 내 자신의 지적 궤적을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작업과도 무관할 수가 없다. 사회과학계열이라는 범주가 너무 생소해 ‘법대와 상대와 문리대’의 총칭이라 이해하고 주변에도 그렇게 설명했노리 하시던 아버님 말씀이 떠오른다.
사회대 50년은 한국의 지성사에 어떤 의미를 가졌을까? 사회대를 통해 이어진 지구적 차원의 사회과학과 한국 사회과학 사이에는 어떤 공통의 관심사와 상이한 긴장이 오갔을까? 수용된 서구 사회과학은 얼마나 보편성을 확인했으며 한국의 특수성에 주목한 논의들은 얼마나 이론적 지평을 넓히면서 세계 학계에 기여했을까? 경험과학으로서의 사회과학은 이데올로기적 사유와 다른 과학적 타당성을 얼마나 획득했을까? 그런 과정을 통해 오랜 쟁점이었던 사회과학의 가치중립과 가치개입의 딜렘마는 어떻게 해결해 왔는가?
사회대의 출범은 전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사회과학 분야의 여러 학문을 발전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 경제학, 정치외교학, 사회학, 지리학, 심리학, 인류학, 언론정보학, 사회복지학 등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데는 지난 50년의 수고가 컸다. 이 기간에 서구의 발전된 이론과 방법론이 수용되고 다음 세대의 사회과학자들이 성장했다. 한국사회의 압축적 발전과정에 필요한 기획, 평가, 조정의 소프트파워를 제공하는데도 큰 기여를 했다. 각 학문 분야별로 또 개별 교수 차원에서 국제적 교류와 소통으로 지적 보편성과 세계성을 높여온 것도 중요한 성과다. 정부와 기업에 도움이 되는 전문성 제공은 물론이고 시민사회와 문화영역에서 필요한 비판적 시야와 종합적 상상력을 제공한 것도 사회과학의 성과라 할 만하다.
하지만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이라는 3분법의 제도화가 지성사 전반에 미친 영향은 제대로 검토된 바가 없다. 대학제도에 뿌리밖은 분과학체계가 영역간 크로스오버와 융복합이 급증하는 현실과 괴리되고 있다는 주장도 곳곳에서 들여오고 있다. 의학과 법학을 비롯한 몇몇 분과학에 인재와 자원이 편중되는 현실과 이런 지식분류체계가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지도 돌아볼 문제다. 어떤 인간형을 키워낼 것인지에 대한 책임있는 고민과 노력보다 서울대가 지닌 정치적 영향력, 문화적 위상에 편승해온 측면은 없는지도 반성할 부분이다. 학력주의의 폐해가 대학의 서열화와 분과학간 장벽의 높이와 무관치 않다는 점에 대해서도 귀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저출산과 고용불안, 양극화의 사회적 난제에다가 인공지능과 디지털화, 바이오 테크놀로지가 불러오는 심대한 충격과 불확실성을 눈앞에서 보고 있다. 탈냉전과 세계화를 넘어 새로운 지정학적 분할과 생활세계의 위험을 목도한다. 인간-기계의 통합이 급진전되고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서자는 포스트 휴머니즘이 확산되며 기후위기를 넘어 인류세라는 묵시록적 논의까지 부상하는 상황이다. 인문-사회-자연 과학 3분류는 언제까지 유효하며 그에 기반한 전문성은 얼마나 유용성을 인정받을까? 서울대는 최고대학의 위상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각자도생의 경쟁에 함몰된 젊은 청년들에게 사회과학이 제공하는 삶의 향방과 지혜는 무엇이어야 할까? 언제까지 대학은 지식생산과 고등교육의 전담기구로 존속할 수 있을까? 글을 쓰면서 내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지게 되는 질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