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ivities

제1회 김대중평화회의(10.27.)

제1회 김대중평화회의가 11월 27-28일 목포에서 개최되었다. 한국의 민주화와 남북화해에 힘썼고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던 그의 생애와 정신을 기리기 위한 회의로 카톨릭 프란치스코 교황, 고르바쵸프 전 소련대통령 등 세계의 주요 인사들의 축하메시지와 기조강연이 있었다. 코로나 상황에서 참석자는 적었지만 전지구가 팬데믹으로 몸살을 앓는 가운데 개최된 뜻깊은 행사였다.

나는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과 브루스 커밍스 미 시카고대학 교수의 발제로 구성된 제1세션의 사회를 맡았다. 두 분 모두 고 김대중 대통령과 깊은 인연을 지닌 분들이고 정계와 학계에서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분들이고 발제 역시 그런 무게감을 담은 것이었다. 다만 새로운 과제와 씨름하는 오늘의 젊은 세대와의 사이에 정서적, 인지적 거리를 좁힐 새로운 노력이 필요하겠다는 생각도 든 자리였다.

평화라는 말, 화해라는 주제는 중요하고 매력적이지만 현재의 맥락에서 지속적으로 재해석되고 재구성되지 않으면 그 자체가 당위적인 슬로건이나 정치명분으로 변할 가능성이 큰 어휘다. 이를 어떻게 살아 움직이게 할 것인가는 여전한 숙제다.

activities

한국사회학회 이사장 취임

한국사회학회 임시총회에서 새로이 학회 이사장으로 선임되었다. 특별한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학회장을 역임한 회원 가운데서 법인이사회를 대표할 사람을 한 명 선정하여 이사장 역할을 부탁하는 절차에 불과하지만 사회학 공동체 안에서 평생 살아온 학자로서 감사하고 영광스러운 일이다.

돌이켜보면 대학을 다니면서부터 학회와 이런 저런 인연을 맺었다. 70년대만 해도 학회는 법인격을 갖춘 것도 아닌 관련 학자들의 자발적 결사체에 불과했다. 학회 행사도 비공식 세미나 같이 오손도손한 분위기였다. 학회가 조직적인 특성을 띠고 체계적으로 관리되면서 법인이 되었는데 좋은 점도 불편한 점도 공존하는 듯하다.

앞으로 학회라는 조직은 어떻게 변해갈까? 힘과 돈이 없는 순수학술단체로서의 학회가 급변하는 지식유통과 문화소비의 바람 속에서 어떻게 자기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까? 연구자들 개개인의 역량과는 별도로 결집된 정체성은 약화되고 있는 분과학문 공동체의 앞날이 그다지 밝아보이지 않아 마음 한켠이 무겁다.

activities

유네스코헌장과 한글

한글날을 하루 앞둔 8일, 유네스코헌장 전문을 전지 두 폭에 쓴 병풍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에 기증했다. 한국문화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높아지는 요즘 유네스코를 찾는 국내외 인사들의 기념촬영과 각종 회의의 배경으로 사용될 만한 한글작품이 있으면 좋겠다는 한경구 사무총장의 부탁에 따라 지난여름 나름 공들여 썼던 글이다. 의미 있는 문화상징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전쟁은 인간의 마음 속에 생기는 것이므로 평화의 방벽을 세워야 할 곳도 인간의 마음 속이다.’- 헌장 첫 머리의 이 문장은 유네스코 설립의 기본정신을 온전히 드러낸다. 모든 분쟁의 원인도 해법도 모두 인간에게 있다는 이 명제는 두 차례 세계대전의 참화를 겪으면서 뜻있는 학자, 예술가, 교사, 과학자, 문인 들이 숙고하면서 합의한 결론이자 원칙이다. 제정된 지 반세기가 훨씬 넘었지만 지금도 그 메시지의 울림은 강하고 명료하다.

이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한글의 조형원리가 문화다양성과 평화방벽을 강조하는 유네스코 정신과 묘하게 부합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글의 개별 획은 정형화된 기하학적 모양을 띠지만 글자의 조합에서는 자유로운 여백과 강약이 허용되어 글씨마다 개성이 자리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글의 조형미 속에 담긴 이 역동적인 힘이 오늘의 BTS도 K-Pop도 가능하게 해준 문화적 자산일 수 있겠다 생각해보는 한글날이다.

activities

새로운 평화담론

한반도 평화 국제회의 (KGFP) 에서 ‘새로운 평화론’을 논의하는 세션이 구성되어 그 좌장을 맡았다. 젊고 유능한 학자들이 21세기적 맥락에서 평화의 성격과 확산을 위해 필요한 새로운 생각들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자리였다. 세 명의 발제자가 각각 ‘적극적 평화’ (정혁), ‘안정적 평화'(허지영), ‘생태적 평화'(주윤정)라는 화두를 던졌다. 이들은 모두 국가의 무력강화와 안보체제로 전쟁을 방지하는 것 만으로는 평화의 본래적 가치실현이 어렵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한 듯 했다. 구조적 폭력을 해소하는 것, 평화를 지속가능하고 안정적이게 공고화하는 것, 평화의 가치를 인간을 넘어 동물과 환경에까지 확대하는 것을 주문한 이날의 발제는 신선하고 유익했다.

토론도 진지했다. 일본 게이오대학의 명예교수인 소에야 요시히데 교수는 전세계적으로 이상주의적인 국제관계론, 평화론이 벽에 부딪치면서 현실주의적 반격이 거세지고 있음을 언급하면서 이런 변화된 상황에 어느 정도 적합성을 가질 것인지를 질문했다. 깊이 숙고해야 할 쟁점이자 어려운 숙제인 셈이다. 뉴질랜드 오타고 대학의 이성용 교수도 적극적 평화라는 개념보다 안정적 평화라는 개념이 좀 더 적합성이 높다고 평가하면서 그에 따르는 조건들이 좀더 명료해져야 할 필요를 제시했다. 강원대학교 강혁민 박사는 생태적 평화가 갖는 문명적 가치에 공감하면서 그것이 좀더 구체적인 정책아젠다로 자리잡아야 할 필요성을 언급했다.

activities

한독통일자문회의

독일통일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남북관계의 진전을 모색하는 한독통일자문회의가 8월 4,5일 이틀간 열렸다. 코로나로 인해 계속 연기되다가 뒤늦게 온라인으로 개최된 이번 포럼에서는 통일독일의 내적 통합이 핵심 주제로 다루어졌다.

독일 통일 30년에 대한 양국 전문가들의 평가는 두 가지 점에서 일치했다. 구동독 지역의 경제는 구서독의 80% 수준을 상회하고 여타 영역의 통합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통일의 효과는 명백히 긍정적이다. 동시에 30%를 넘는 신연방주 주민들이 여전히 이등시민이라는 자의식을 피력하고 자신들이 차별받는다는 ‘머릿속 장벽’을 호소하고 있다. 마음과 감정의 통합은 정치와 경제의 수렴과는 별개의 과제임을 말해준다.

우리 정부의 민족공동체 통일방안도 본디 통합을 앞세우는 정책이다. 통합은 통일과 평화의 두 프로세스를 연결시키는 매개조건이자 필수요소다. 통합 없는 평화가 통일로 이어질리 없기 때문이다. 대선을 앞두고 통합-통일-평화의 정책조합을 혁신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이 어디에선가는 진지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려니 믿고 싶다. 그렇지 않다면 겨우 군통신선 복원이란 뉴스 하나에 온 정치권이 들썩이는 오늘의 모습이 너무 처량하지 않은가….

activities

계절학기 수업 개강

6월 28일부터 계절학기가 시작되었다. 나도 ‘현대사회사상의 흐름’이란 과목을 설강했고 15명의 학생이 수강신청을 해서 강의가 진행되고 있다. 영어로는 Lives and Thoughts of the Great Thinkers 라 했는데 사회학이라는 분과학에 한정하지 않은 삶의 궤적과 사상적 특징을 살펴보려는 뜻을 담은 것이다.

자연히 ‘사회학사’ 수업과는 구성도 내용도 다소 달라질 수밖에 없다. 같은 사람의 삶과 사상도 그것이 사회학에 미친 영향과 일반 사회에 미친 영향이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학계에 남긴 이론적 영향보다도 일반인의 삶과 행동에 남긴 기여에 좀더 초점을 맞추어 수업을 재구성해볼 생각이다.

새로운 강의안을 준비하면서 새삼스레 분과학의 틀이 내 개인의 사고와 행동을 크게 규정했다는 생각이 든다. 학계에 남긴 족적은 잘 알지만 사회적으로 어떤 활동과 영향을 미쳤는지를 잘 모르는 학자를 강의하기가 생각보다 어렵다. 이번 계절학기 수업은 그런 점에서 내게도 새로운 도전이다. 일반인에게 사회학, 또는 사회과학이란 어떤 의미를 가졌고 또 가질 수 있을 것인가.

activities

제주포럼 발제


6월 24-6일 제주포럼에 다녀왔다.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이영호) 에서 주관하는 “화해와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역사” 세션에서 발제를 했다. 한국과 일본에서 총 4명이 발제하고 2명이 토론을 하는 자리였고 동북아의 여러 쟁점들이 언급되었지만 시간이 부족하여 밀도있는 대화로 이어지기는 어려웠다.

나는 민족주의 문제를 다루었다. 근대 이래 한,중,일의 역동성을 담보했던 민족주의가 탈냉전 이후 한단계 업그레이드 되는 기회가 있었던 점, 최근 10여년간 그 흐름으로부터 퇴행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중국의 대국지향적 민족주의, 일본에서 나타나는 ‘불안형’ 네셔널리즘, 그리고 한국의 분열형 민족주의의 현상 – 그 차이도 분명하지만 모두 지그문트 바우만이 말했던 레트로토피아의 특징을 수반할 수 있다는 염려를 피력했다.

해묵은 주제인데 여전히 현안으로 다루어져야 한다는 점이 새롭고도 답답했다. 민족이란 화두, 민족주의란 동력으로부터 벗어나기엔 인간의 존재양식이 너무 근대적인 것일지 모르겠다. 남북관계의 교착으로 인해 현실과 상상력 사이의 간극이 큰 한국의 민족주의가 자기분열적인 성격을 노정하는 것은 당분간 불가피할 것인가.

activities

검여와 동파

검여 유희강은 평생 소동파와 김정희를 존경하여 글씨를 연마한 예인이다. 병으로 오른 팔이 부자유하게 된 이후에도 왼손을 연마하여 좌수서로 새 장을 열기까지 한 의지의 인물이기도 하다. 검여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는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에서 소동파의 진적, “백수산 불적사 유기” 거 전시되고 있다는 것을 친구 이주현 교수가 알려주었다. 검색해보니 한 일간지에서 대서특필한 바 있고 초기 5일 이후로는 진적이 아닌 복제본이 전시된다고 했다. 이 작품이 명말청초 어느 시기에 모사된 위작일 가능성이 있다는 논란도 있음을 알있다.

그래도 한번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전화로 예약을 했다. 찾아간 박물관은 코로나 때문인지 접근이 어려웠고 담당자가 직접 문을 열어주어야 들어갈 수 있었다. 덕택에 아무도 없이 혼자 여유롭게 관람할 수 있었다. 동파의 작품은 한 점에 불과한 데다 그 가치에 대한 논란이 의식되어서인지 새로움을 크게 느끼지는 못하였다. 다만 검여 유희강의 글들, 특히 관서악부의 대작을 비롯하여 좌수서 이전의 작품들은 이전에 도록으로 볼 때와는 다른 감동을 주었다. 박물관 입구에 걸린 “恨古人不見我” 란 글 속에 담긴 검여의 대단한 자부심이 참으로 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activities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위원 활동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의 위원으로 위촉되어 어제 (5.20) 8차 총회에 참석했다. 1945년 유앤 창설과 더불어 출범한 유엔 산하 전문기구인 유네스코는 교육 문화 분야의 국제협력을 주요 활동으로 삼고 있다. 유엔의 역할이 매우 컸던 한국에서 유네스코의 활동은 초창기부터 괄목할만 했다. 한국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문화의 교류와 소통에 큰 몫을 담당했다.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관련해서만 이해되는 오늘의 관심이 아쉬운 이유이기도 하다.

2021년 국가간, 종족간, 인종간, 계층간, 종교간 갈등이 더욱 거세지는 추세다. 문화와 양식의 충돌도 적지 않고 코로나 19가 보여주듯 환경위험도 긴장을 더한다. 그럼에도 유네스코와 위상이 전만 못한 것은 다양한 국제기구들, NGO 들의 활동이 유네스코의 독자적 지위를 상대화시킨 탓도 있겠지만 평화라는 상위 목표, 본질적 가치에 대한 민감성이 약해진 탓도 없지 않을 듯하다.

이번에 살펴본 유네스코 헌장 전문에는 유엔 창설의 목적이었던 평화가 가장 앞에 언급되어 있다. 교육도 문화도 평화라는 가치의 실현으로 수렴되어야 할 20세기 숙제를 천명한 것이리라. 온라인으로 열린 어제 총회에서도 다양한 분야의 국제협력과 다양성 교육이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여러 전문가들과 함께 이런 일에 함께 할 수 있어서 기쁘다. 한경구 사무총장의 식견과 리더십이 큰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activities

균형과 전략-前派포럼

국가전략연구원이 주최한 ‘전파포럼’에 참석했다. 급변하는 국내외 환경을 고려하면서 국가전략의 향방을 탐색하자는 전문가 좌담회였다. 미중의 갈등이 격화하고 한일관계는 바닥이며 남북관계는 교착되어 있는 상황에서 어떤 ‘균형’이 얼마나 절실한지가 논점이었다. 참석자들은 균형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잘못된 이분법이 전제되거나 기회주의적 절충을 포장하는 말로 쓰이지 않아야 함을 지적했다. 가치와 이익, 주권과 동맹은 양자택일의 대상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 추구해야 할 복합적인 목표임을 인식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되었다.

세션 좌장 역할을 요청받았을 때 구한말의 ‘조선책략’ 이 떠올랐다. 19세기 말 조선이 처한 상황과 오늘의 한국을 같이 볼 수는 없지만 격동하는 안팎의 변화, 특히 힘들어지는 국제관계를 직시하면서 큰 전략의 틀을 구축하는 일은 여전히 절실하기 때문이다. 진보와 보수를 넘어 미래를 염려한다 의미로 ‘前派’라 명명했다는 설명처럼 참석자들은 다양한 시각을 피력했고 토론은 흥미로웠다. 답답함이 쉽게 해소되지는 않았지만 이런 노력들이 진지하고도 꾸준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