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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 again, life again

싱어게인 3 프로그램의 마지막 공연이 끝났다. 실력있는 무명가수들의 노래를 듣는 즐거움이 크지만 누군가는 탈락해야 하는 모습을 보는게 힘들어 중간에 채널을 돌리곤 했던 프로다. 최종회는 선정된 일곱명이 더이상 탈락의 두려움 없이 자기 이름을 걸고 노래하는 자리여서 나도 부담없이 마지막까지 지켜보았다. 누구는 10여년을 자취방에서 위축되어가는 자존감과 싸우며 음악을 했고 누구는 지방에서 작은 까페를 하며 대중의 사랑을 받을 날을 기다렸으며 어떤이는 캠핑장의 야외무대에서 십수년 무명가수 생활을 했다. 하지만 한결같이 오랜 기다림과 좌절의 터널을 벗어나 새로운 미래와 희망을 노래하려는 열정이 충만했다. 외로움 속에서 자신을 지켜내온 자만이 드러낼 수 있는 울림이 이들의 말과 음율 속에 담겨져 있었다.

여느 음악 프로그램보다 힘든 환경에서도 뮤지션으로서의 자긍심을 지키려 한 이들의 열정이 강렬해서 노래실력 못지 않게 선곡한 노래의 가사에도 주목하게 된다. 스스로를 산골가수라 불렀던 신해솔이 ‘곡예사의 첫사랑’을 선곡한 이유가 힘들지만 웃어야 하는 곡예사의 삶이 가수를 지향하는 자신의 삶과 같아보였기 때문이라는 말에 공감이 갔다. 이젤은 DAY6의 ‘한페이지가 될 수 있게’라는 노래를 통해 오늘 하루의 삶이 인생 사진첩의 멋진 한 부분을 장식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소수빈은 ‘한번만 더’라는 노래말로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자신을 응원하고 격려하려는 간절한 마음을 표현했다. 나로선 한두곡을 제외하곤 잘 알지 못하는 곡들이지만 부르는 이의 진속한 마음을 느끼기에 어려움이 없었다.

특히 강성희가 드라마 미생의 OST 였다는 이승엽의 노래 ‘날아’를 부를 때 그 가사가 뭉클하게 다가와 눈자위마저 뜨거워졌다. “모든 것이 무너져있고 발 디딜 곳 하나 보이질 않아 … 눈을 뜰 수 조차 없게 한대도/ 거기서 멈춰있지마 그곳은 네 자리가 아냐/ 그대로 일어나 멀리 날아가기를/ 얼마나 오래 지날지 시간은 알 수 없지만 견딜 수 있어 날개를 펴고 날아/ …. 차갑게 내뱉는 한숨이 널 덮어 숨을 쉴 수 조차 없게 한대도/ 거기서 멈춰있지마 그곳은 네 자리가 아냐 그대로 일어나 멀리 날아가기를 ” 우리 시대 모든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 ‘그곳은 네 자리가 아냐, 그대로 일어나 멀리 날아가기를.’

최종우승은 홍이삭에게 돌아갔다. 아프리카에서 선교와 교육활동을 하신다는 부모와의 대화가 소개되었다. 아들의 음악활동을 충분히 뒷바라지 하지 못한 미안함을 표현하는 아버지와, 번듯한 아들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늘 죄송했다는 아들의 말이 아름답고 진솔하게 느껴졌다. 홍이삭은 이 프로그램에서 뮤지션으로서 자신의 ‘유통기한’을 확인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가 유통기한이란 말을 했을 때 나는 유발 하라리가 말한 ‘무용계급'(useless class) 을 떠올렸다. 사회에서 쓸모가 없는 사람들로 평가받는 사람들이 늘어간다는 암울한 전망이 이 신조어에 담겨있는데 유통기한이란 말이 인생의 쓸모를 확인받아야 하는 절박함을 담고 있는 듯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 경연을 거쳐오면서 유통기한이란 인생에서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있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참 다행스러운 결론인데 과연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저런 마음을 가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홍이삭이 선곡한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는 나도 간간히 불렀던 곡이다. 조용필의 노래 ‘꿈’은 화려한 도시생활 속에서 방황하는 현대인의 상실감을 너무도 잘 표현해서 수업에서 소개하기도 했다. 바람의 노래 역시 음미할 내용으로 가득하다. ” 살면서 듣게 될까 언젠가는 바람의 노래를/ 세월 가면 그때는 알게 될까 꽃이 지는 이유를/ 나를 떠난 사람들과 만나게 될 또 다른 사람들/ 스쳐가는 인연과 그리움은 어느 곳으로 가는가/ 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 수가 없네 내가 아는 건 살아가는 방법뿐이야 /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아야 해/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 꽤 긴 삶을 지나온 나는 이 바람의 노래를 들은 적 있었을까?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을 비켜갈 해답이 사랑임을 깨달았던가? 나는 살아가는 방법과 지혜를 알고 있는가? 그 노래는 곧 나의 물음처럼 다가왔다.

스페셜 무대로 임재범이 나와 부른 노래는 모든 참가자들의 마음을 대변하기에 족했다. “누구나 한번쯤은 자기만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는 순간이 있지/ 너무 많은 생각과 너무 많은 걱정에 온통 내자신을 가둬두었지/ 이젠 이런 내모습 나조차 불안해 보여 어디부터 시작할지 몰라서/ 나도 세상에 나가고 싶어 당당히 내 꿈들을 보여줘야 해 /그토록 오랫동안 움츠렸던 날개 하늘로 더 넓게 펼쳐 보이며 날고싶어/ 그렇게 많은 걸 잃었지만 후회는 없어 그래서 더 멀리 갈 수 있다면/ 상처받는 것보단 혼자를 택한거지 고독이 꼭 나쁜 것은 아니야 /외로움은 나에게 누구도 말하지 않은 소중한 것 깨닫게 했으니까 / 이젠 세상에 나갈 수 있어 당당히 내 꿈들을 보여줄거야 그토록 오랫동안 움츠렸던 날개 하늘로 더 넓게 펼쳐 보이며/ 다시 새롭게 시작할거야 더이상 아무것도 피하지 않아 이세상 견뎌낼 그 힘이 되줄거야 힘겨웠던 방황은”

‘나도 세상에 나가고 싶어 당당히 내 꿈들을 보여줄거야’ / ‘그곳은 네 자리가 아냐, 그대로 일어나 멀리 날아가기를.’ — 노래만 아니라 인생에서도 새로운 시작, 어게인의 기회가 있을 것이다. 꼭 현실적인 성공이 보장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자존감의 회복, 살아갈 이유의 확인 만으로도 어게인의 충분한 이유가 된다. 영적인 깨달음은 차원을 달리하는 거듭남의 길일 것이다. 오랜 시간 ‘무명’의 아픔을 견뎌야 했던 이들이 ‘sing again’할 기회를 만난 것처럼 인생이 뜻같지 않아 힘들어하는 사람들, 특히 미래의 불확실성에 힘들어하는 젊은이들이 ‘life again’의 꿈과 희망을 회복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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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꿈, 노인의 꿈

최근 예배시간에 설교로 듣고 찬송으로도 부른 성구가 있다. 요엘서에 나오는 내용으로 사도행전에도 언급된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청년들은 환상을 보고 노인들은 꿈을 꾸리라”는 메시지다. 예언, 환상, 꿈이란 말의 신학적 차이나 의미론적 차이가 있겠지만 모두가 현실을 넘어서는 미래에의 지향을 논한 것이란 공통점이 있다. 인생의 어느 순간에도 미래를 향한 기대가 필수적인 바, 특히 세상이 어지럽고 혼란스러울수록 더욱 그러하다는 깨우침으로 묵상할 좋은 화두다.

나는 수년 전 한국사회학회장 취임논문으로 ‘희망의 사회학’을 발표했었다. 사회학이 비판과 부정의 날카로움을 넘어 비전과 약속을 제공하는 따뜻함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 논지였다. 근대 이래의 사회학, 특히 한국의 사회학 담론이 비판적 분석에는 능한데 건설적 통합력과 희망적 역동성을 주는데는 취약하다는 내 평소의 생각이 반영된 글이었다. 후배인 김홍중 교수가 내건 ‘마음의 사회학’ 문제의식이 나와 공감되는 부분이 적지 않아 김 교수와 함께 “꿈자본과 청년층”을 주제로 한 공동연구를 추진했고 [꿈의 사회학]이란 제목의 책을 공동으로 편저하기도 했다. 젊은 세대가 미래를 향한 꿈을 키워가기 어려워지는 현실에 대한 분석, 그럼에도 꿈을 잃지 않고 형성하는 내면의 능력은 여전히 소중하다는 것을 강조하려 한 학문적 노력이었다고 자부하고 있다.

그 연장선으로 광주과학기술원에 와서 ‘꿈의 사회학’이란 과목을 개설하고 강의해온지 벌써 3년이 지났다. 근대 개방사회에서 사회이동이 확대되고 능력주의가 발휘되던 상황을 검토한 후, 21세기에 들어 이전과 달리 상승이동의 기회가 줄어들고 성공사다리가 닫혀가는 현실에서 꿈의 가능성을 따져보는 것으로 시작하는 수업이다. 개인이나 집단, 기업이 더 나은 미래를 기획하고 추구하며 창의적인 목표를 달성해온 역동적 사례들을 살펴보면서 각자 개인이 품고 있는 인생설계, 미래목표의 내용과 전망을 점검하는 기회를 가져보곤 한다. 민족과 국가 차원에서 거대한 꿈을 공유함으로써 공동체의 통합과 대규모 동원을 이루어온 사례들도 검토해 보면서 꿈의 다면성과 역설적 모습도 이해하도록 했다. 다행히 학생들의 관심은 나쁘지 않아 정원을 급방 초과할 정도로 인기과목이 되었다. 강의를 거듭할수록 꿈자본을 강조하는 것이 희망고문이 되지 않을 조건이 무엇인지, 기회구조가 축소되는 구조적 차원은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등 더 많은 숙고와 탐구과제에 부딪치지만 내 스스로에게도 좋은 지적 자극을 주는 수업이 되고 있다.

나는 꿈의 주체로 청년층을 상정하고 강의해왔다. 수강생이 대학생이라는 이유가 크지만 꿈은 특히 미래세대의 몫이라는 내 나름의 문제의식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모든 세대를 포괄하면서 특별히 노인을 꿈의 주체로 서술하고 있다. 왜 그랬을까? 성경의 메시지가 자녀, 청년, 노년의 세대적 구별에 관심을 둔 것은 물론 아닐 터이다. 또 예언, 환상, 꿈이 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기보다는 현실의 조건을 뛰어넘는 초월적인 경험이 모든 세대에게 공통으로 필요함을 강조한 것으로 여겨진다. 어쨋든 꿈의 주체를 청년으로 한정하거나 특정하는 것은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어려운 시대, 흉흉한 세상에는 모든 세대, 모든 사람들에게 절실한 것이 미래에 대한 기대, 희망, 꿈일 수 있겠다. 어떤 점에서 죽음을 앞두고 인생을 정리해야 할 노인들에게 꿈이 더 필요할지 모르며, 상황이 암울할수록 희망은 더욱 절실할 수 있으리란 생각을 하게 된다.

노인의 꿈은 무엇으로 구성될까? 나 자신이 70을 바라보는 상황이 되고보니 이 질문은 더욱 절실한 바 있다. 사회적 역할과 가장으로서의 책무가 어느 정도 끝난 시기인만큼 새로운 할 일을 찾아 발버둥칠 이유는 없다. 인생의 노년기에도 여전히 세속적인 성공이나 욕망충족의 꿈을 견지한다면 자칫 노추나 노욕의 부끄러움을 뒤집어 쓸 수도 있으니 조심할 일이다. 그렇다고 아무런 목표나 지향도 없이 하루 하루 소일하는 것이 좋은 태도라 하기도 어렵다. 노욕이나 노추가 아닌, 신선하면서도 아름다운 노인의 꿈은 어떻게 구성될 수 있을까? 강의실이 아닌 내 삶에서 풀어야 할 질문이자 숙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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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타와 강촌

오랫만에 계획한 가족의 일본여행 출발일이 오늘이었다.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설국’의 고장이기도 한 니가타 지방을 둘러볼 작정이었다. 문헌으로 종종 접한 지역인데 한번도 가볼 기회가 없었던 곳이었기에 기대가 컸다. 그런데 연초에 발발한 일본의 강진 여파로 결국 여행을 취소했다. 지진 피해가 심한 노도반도와는 약간 거리가 있지만 같은 서해안 권역에 속해 여진의 부담도 있고 인적 물적 피해로 고통받는 지역을 여행하는게 도리도 아닌 듯 싶어 위약금을 무릅쓰고 결정한 것이다.

예정대로라면 일본행 비행기에 있겠다 생각하던 차에 한반도 평화연구원의 장혜경 박사가 ‘강촌’ 여행기를 공유 카톡에 보냈다. 이어 여러분이 강촌에 얽힌 추억들을 올려놓았다. 나도 대학 시절 몇차례 들렀던 곳인데 뚜렷하게 남아있는 기억이 딱히 떠오르지 않고 ‘강촌에 살고 싶네’라는 유행가 가사가 먼저 떠오른다. 사실 강촌은 특정 지역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이기 이전에 ‘강가의 마을’이라는 보통명사로 더 널리 쓰였다. 전국 곳곳에 강촌은 산재해 있고 중국과 일본에도 소박한 농촌마을을 뜻하는 대명사로 종종 사용되었다. 두보의 시 ‘강촌’은 자연속에서 유유자적하게 생활하는 삶을 그린 작품으로 일찍부터 애송되어 왔다.

두보의 시에 정통했던 조선 시대 선비 매계(梅溪) 조위(曺偉)도 ‘강촌’이란 시를 지었다. 김천 지방에 세거한 15세기의 대표적 문인인데 점필재 김종직의 처남이었고 중종의 총애를 받았다. 일개 서생으로 중앙조정에 비판적 상소를 올리다 유배를 떠난 허암 정희량에게 시를 지어 보내며 처세의 방도를 조언한 것이 그의 ‘강촌’ 시다. 원제는 詠江村雜興呈虛庵이고 두 수로 구성되어 있다. 두보의 시가 대자연 속에서 유유자적 살아가는 삶을 그린데 비해 조위의 시는 세상사와 상호작용하면서 주의해야 할 처세론을 담고 있어 흥미로운 대조를 보여준다.

游魚鼓髥綠波深/ 林鳥和鳴助我吟/ 物自得時機自得/ 人應觀物見天心 ( 물고기는 지느러미를 치며 푸른 물결 깊은 데서 놀고/ 숲속 새는 화답하며 울어 나의 시 읊음을 돕네/ 만물이 스스로 때를 얻을 때 기회도 스스로 찾아오나니/ 사람도 응당 사물을 살펴 하늘 마음을 보아야 하리) — 만물이 때가 와야 이루는 법이니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조언과 ‘천심’을 읽는 눈이 필요하다고 조언한 시다. 하지만 조위 자신도 말년에 무오사화에 연루되는 화를 피하지 못하고 그 원통함을 담은 한글가사 ‘만분가’를 짓기도 했으니 때를 아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를 얻는 것, 천심을 읽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소중한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物自得時機自得/ 人應觀物見天心’ – 무산된 니가타 여행의 아쉬움을 조위의 시 강촌 첫 연을 쓰면서 달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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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로와 한시

정신없이 변하는 시대에 일부나마 레트로 경향이 나타나는 것은 반갑다. 오래된 것을 낡고 쓸모없는 것으로 간주하지 않는 흐름이니 경박한 시대의 무게잡기 같은 느낌도 있다. 사실 레트로 현상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근대를 열었던 르네상스도 고대로의 회귀를 지향한 것이었고 중국의 제자백가도 성인이 다스렸던 시대를 준거로 삼아 출현했다. 현대문명에 반기를 든 낭만주의 예술사조나 공동체 운동들도 농경시대의 자연상태를 이상화했다는 점에서 일종의 미학적 레트로라 할만하다.

인공지능과 디지털의 시대에 레트로를 제대로 실현하기는 어렵다. 전원생활을 희망하고 목가적인 여유를 좋아한다고 도시적 활력과 편리함을 마다하기는 불가능하다. 과거의 안정이 그립다고 현대의 자유로움을 포기할 수도 없다. 더구나 옛 방식을 수용하려면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있고 심지어 꽤 비싼 비용지불이 불가피하다. 고미술품이나 클래식 음악, 진공관 오디오를 즐기려면 상당한 경제적 자산과 문화적 지식 그리고 시간적 여유가 필요한 법이다. 그래서 레트로는 역설적으로 고급한 취향, 상층계급에게만 가능한 문화자본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짐멜이 설파한대로 모방이 대세가 된 유행의 시대에 굳이 원본성과 고급함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이 온갖 형태의 변형과 복제, 공유를 가능케 한 탓에 골동품을 흉내낸 값싼 품목들을 시장에서 구입하기 어렵지 않고 디지털로 복제한 아날로그 음원을 누구나 즐길 수 있다. 대형 건물의 화면으로 아마존 밀림과 초가집 풍경이 비치는 것처럼 이미지만 과거의 것일 뿐 실제로는 첨단의 기술과 현대적 욕망이 담겨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레트로는 더 이상 상층의 값비싼 문화가 아니고 각자의 조건과 처지에 따라 필요한 형태의 취향을 향유하는 소비상품이자 대중문화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작년 세모에 수하 김길중 교수께서 화묵회 전시회에서 만나 이야기 나눈 소회를 담아 7언절구 한시로 안부를 전해오셨다. 한시를 지으며 교분을 나누는 취미는 조선시대 선비들의 시회 (詩會) 에서 보던 고급한 옛 문화양식인데 한자를 사용하는 사람조차 거의 없어진 21세기에 한시를 매개로 한 안부라니 – 대단한 레트로가 아닐 수 없다. 한시를 쓴다는 것은 웬만한 사람은 생각을 하기조차 어려운 역량이 필요한 고상한 취향이다. 이런 레트로가 완성되려면 같은 한시로 화답하는 동료 시객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어슬픈 한시 한수를 지어 회신을 했다. 주고 받은 한시는 다음과 같다.

靜軒書風多年熟 / 今日始遇論筆墨 / 聊聊半天忘時間 / 和樂和詣人與書 (정헌선생 글씨 품격은 여러해 째 익숙한데 / 오늘에야 비로소 만나 필묵의 담론을 나누네 / 이런저런 얘기 반나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 즐겁게 편안하게 사람과 글씨가 함께 했네)

樹下名聲多年聞 / 今日又識高人品 / 節近歲暮路多音 / 何不樂與墨紙香
(수하선생 명성 들은지 오래인데 / 오늘에야 다시 그 인품 높음을 알았네 / 계절이 세모에 가까와 길에 시끄러운 소리 많으니 / 어찌 종이와 먹의 향기와 더불어 즐기지 않으랴)

내가 쓴 한시는 제대로된 운율이나 격식을 갖추지 못한 짝퉁 작품이다. 한시작법을 중시하는 분에게는 비난받을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런 흉내내기가 레트로의 한 형식이고 모방이 주요한 활력소가 될 수 있음도 인정할 필요가 있으리라. 한시를 반드시 화선지에 붓으로 쓰지 않고 카톡으로 간단히 주고 받는 것 자체가 21세기적인 변형이고 새로운 양식이다. 날로 발전하는 기술환경을 활용하여 SNS 첨단 메신저 + ‘시회’라는 형식 + 진솔한 정서의 교감 = 또 하나의 레트로 문화로 이어질 수 있으면 싶은데, 한시의 장벽이 너무 높다. 우리말로 된 시로서도 시회는 가능할터이나 그것이 레트로가 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어쨋든 예상치 못한 레트로의 경험이 주는 감각은 상쾌하고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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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를 추모하며

뛰어난 인류학자이자 한국을 사랑한 연구자로 안타깝게 수년전 타계한 낸시 교수의 추모 모임이 1월 6일 오전에 있었다. 일리노이 대학 어바나 샴페인을 중심으로 그녀가 키워낸 국내외 연구자들은 숫자도 상당하거니와 학문적 능력과 품성에서도 주목할만 분들이 적지 않다. 낸시의 한국 필드 과정에서부터 오랜 인연을 맺었던 박소진 교수와 이규호 교수 등이 주선하고 정병호 교수가 대부도 집을 제공하여 이 귀한 자리가 성사되었다.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십여명 학자가 모였는데 나는 온라인으로 추모의 시간에 참여했다. 낸시의 오랜 동학 조한혜정 교수도 줌으로 함께 했다.

낸시 사진을 앞에두고 국화꽃을 헌화하며 각자 추모의 말을 건넸다. 짧은 시간이지만 모두들 고마움과 안타까움, 그리움을 교감한 자리였다. 내게도 말할 기회가 주어졌는데 갑자기 울컥 눈시울이 붉어지고 낸시와 만난 40년 세월이 주마등 같이 지나가면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낸시가 여전히 건강하게 활동하고 있다면 미국의 한국학 연구 수준이나 학문후속세대의 성장에 얼마나 큰 힘이 되었을까 생각하면 안타깝기 짝이 없다. 낸시를 기억하며, 그녀를 추모하는 자리를 잊지 않고 마련해준 후학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크다. 낸시도 하늘에서 저들의 건강과 활약을 지켜보고 성원할 것이라 생각된다.

1984년으로 기억되는 어느날 전북대 연구실에서 만난 파란 눈의 외국인, 다소 어색한 한국어지만 분명하게 자신의 관심사를 말하고 필요한 도움을 구하는 당차고 키 큰 여성 – 내가 낸시를 만난 첫 기억이니 어언 40년 전이다. 하바드 대학을 졸업한 후 버클리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한국의 농민을 대상으로 박사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인류학자라 했다. 그녀는 한국의 현 농민운동 배경에 조선시대와 식민지기의 토지문제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해방 이후 농지개혁이 어떤 영향을 남겼는지 총체적인 역사적 맥락을 알고싶어 했다. 내가 구한말 토지문제를 분석한 논문을 건네주고 당시의 관행과 쟁점들을 설명하면 너무나 반가와하며 열심히 기록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낸시가 전북의 한 농촌마을에서 생활하며 필드를 할 때 나는 현지의 학생들을 소개해 주거나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간간히 방문하는 약간의 도움을 주었는데 낸시는 오랫동안 그것을 고마와했다. 어느날 낸시는 자신이 공부했던 하바드의 연구환경을 접해 볼 것을 권유하면서 내게 하바드 엔칭 프로그램을 적극 추천했다. 당시 대학과 지역사회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한 소위 ‘서명교수’ 로 낙인이 찍혔던 나로서는 총장의 추천을 받는 것 자체가 어려웠는데 낸시는 엔칭연구소로 내 사정을 알리는 편지를 보냈고 나는 총장의 추천 없이도 방한한 베이커 부소장의 면담자 리스트에 포함될 수 있었다.

낸시는 자기 박사논문 초고의 한 챕터가 작성될 때마다 내게 검토를 부탁했다. 지금 되돌아보면 내가 지적하거나 코멘트한 것들은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이나 어휘들, 지역별 사례들에 대한 것이었고 인류학자로서 그녀가 품고 있던 이론적 지향이나 개념들에 대해선 별 도움을 주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낸시는 언제나 내 코멘트를 존중해 주었다. 내가 서울대학교로 옮기게 되자 함께 기뻐했고 관악 캠퍼스로 세 자녀를 데리고 와 학교 이곳 저곳을 둘러보기도 했다. 내 둘째 딸 윤영이가 하바드 대학 박사과정에 합격했을 때도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격려해 주었다. 낸시가 하바드 대학에서 초청을 받아 케임브리지로 옮길 것을 심각하게 고민할 때는 내게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남편과 자녀를 위해 하바드 교수 기회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고 알려주었을 때 그 얼굴 한편에서 엿본 아쉬운 표정도 잊기 어렵다.

3년전 보스톤을 방문했을 때 낸시가 잠들어 있는 마운트 어번 세미트리를 찾았다. 그 날은 비가 부슬 부슬 내려 그렇지 않아도 무거웠던 내 마음을 더욱 힘들게 했다. 화려한 석조물들이 서 있는 묘역이 아닌 납골당 형태의 방을 한참 돌아 그 아버지 이름 옆 낸시의 이름을 발견했다. 그토록 존경하고 좋아하던 아버지 곁에서 안식하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작은 꽃 한송이를 그 앞에 놓았다. 내가 1989년 엔칭 펠로우로 케임브리지에 도착했을 때 낸시 부모님 댁에서 우리 가족을 초대해 주셔서 함께 식사를 했었던 일이 선연히 떠오른다. 이곳 세미트리를 공원삼아 즐거운 생활을 하라고 성원해준 분들인데 이렇게 먼저 떠나다니… 누구보다도 한국을 사랑했고 한국인을 이해했던 사람…누구에게나 성심을 다해 조언과 배려를 아까지 않았던 참으로 좋은 친구였는데, 하늘은 종종 너무 좋은 사람을 일찍 데려가시나 보다.

온라인 추모를 끝낸 후 아쉬운 마음을 금하기 어려워 먹을 갈고 붓을 들어 중국의 유명한 시인 두보가 아끼는 벗을 먼 곳으로 보내며 쓴 ‘송원’ (送遠) 이란 시를 써 내 마음을 담아본다. —- “갑옷입은 병사 천지에 가득한데 / 어찌 그대 먼 길을 떠나려는가 / 벗들이 모두 통곡을 하는데 /말타고 홀로 이 성을 떠나는구나 / 나무와 풀은 세월따라 시들어가고 / 변방의 강에는 눈서리 내려 날씨는 차가우리 / 이별한 게 어제 같은데 / 옛 친구의 우정은 더욱 그립구나 (杜甫, 送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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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감각

아들로부터 아이폰과 애플 워치를 선물받았다. 서울에 있는 아들, 미국과 대전에 있는 딸네가 모두 아이폰을 쓰는 관계로 이전부터 같이 연계되면 편리할 것이란 말을 들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갤럭시폰에 익숙해 있는데다가 굳이 교체해야 할 필요도 느끼지 못해 몇 년간 그냥 지내왔다. 내가 쓰고 있는 폰이 5년 가까이 되어 새 것을 구해야 할 즈음임을 알고, 아이들이 새해 선물을 이것으로 하자고 논의를 했다고 한다. 이번엔 기쁜 마음으로 그러자고 했고 아들과 애플 매장을 들러 원하는 모델을 골랐다.

처음에 손에 잘 잡히는 다소 작은 사양을 선택했다가 아무래도 화면이 작은 듯 해서 교환 가능 기간이 지나기 전에 좀더 큰 모델로 바꿨다. 그 덕분에 하얀색 포장박스를 뜯는 소위 언박싱을 두어 차례 해보는 경험도 했다. 이전에 쓰던 폰의 앱과 데이터를 옮기면서 매장에 와 있는 젊은 세대들과 같은 테크놀로지, 같은 문화를 교감한다는 근거없는 즐거운 감정도 잠시 느꼈다. 한동안 손목시계를 사용하지 않았는데 애플워치는 가볍고 각종 메시지 확인과 전화 수신도 가능해 의외로 편리하다. 수면상황을 체크하기도 하고 내 운동상태를 실시간 알려주기도 해서 인공지능이 보다 본격적으로 연결되면 글자 그대로 유능한 개인 비서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다.

핸드폰이 모든 사람들의 필수품이 되었고 나도 오랫동안 사용해온 터라 폰을 바꾸는 것이 그다지 새로울 일이 아닌데 의외로 기분이 좋다. 아이들로부터 받는 선물이라는 것이 그 첫 이유가 아닐까 싶다. 사랑을 주던 입장에서 장성한 자녀들의 정성을 받는 위치에 놓인 부모의 뿌듯한 감각이라 할 수도 있겠다. 데이터나 사진의 공유가 보다 손쉬워지고 가족간 함께 할 엡들도 있다고 하니 기계의 도움으로 가족의 친밀감이 더 높아질 것을 기대해본다.

요즘 반려동물이 가족들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애플 같은 기기가 그런 매개고리가 되는 것도 주목할만하다. 그만큼 인간사회를 구성하고 이어주는 매개역할로 동물과 기계의 비중이 커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실제로 핸드폰을 통해 연결되는 정보와 사람의 네트워크는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데 독특한 디자인과 문화적 감수성이 동반되는 아이폰 세계가 주는 감각의 힘을 가만히 지켜보며 음미해 볼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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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갑진년 새해를 맞이했다. 31일 자정 가까운 시간, 시편 23편을 가족이 함께 읽으며 한 해의 감사를 나누었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 많은 사람이 건강 문제로 힘들어하고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통받는 시대에 무탈하게 2023년을 보내게 된 것 자체가 큰 은혜가 아닐 수 없다. 정년 이후의 불확실한 여정에도 이만큼 안정된 상태로 소프트랜딩한 것도 참으로 다행이다. 돌이켜보면 긴 인생길에서 만난 어려운 순간들이 없지 않았지만 그것이 내 발목을 잡을만큼 결정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예기치 않게 다가온 행운과 도움의 손길들이 적지 않았다. ‘내가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둔다’는 표현대로 긴 인생길에서 값없이 받은 것이 많으니 감사할 일이다.

그런데 자녀 세대에도 같은 축복이 임할까 염려가 없지 않다. 세상이 점점 더 혼돈스러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과 역병이 온 인류를 위협하고 곳곳에 비난과 혐오의 언설이 차고 넘친다. 유럽과 중동의 전쟁은 끝나지 않고 새로운 대립과 충돌의 우려를 키운다. 동북아의 지정학도 불확실성이 커지고 양안이나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도 높아간다.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근간을 이루던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국들의 정치적 퇴행은 너무 심각하여 21세기 인류문명이 아노미 상태에 봉착한 것 아닌가 싶을 정도다. 문명위기론, ‘말세론’이 득세할 좋은 환경이다.

오랫동안 안정과 성장을 구가했던 한국은 이제 확실한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었고 경제적인 어려움도 커질 조짐이다. 젊은 세대는 구직난, 양극화로 고통을 받는 가운데 세계 최고의 저출산으로 사회전반의 활력상실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일찍부터 무한경쟁에 내몰린 젊은이들은 협력과 우애보다 이익과 경쟁을, 사랑과 신뢰보다 싸움과 불신을 몸에 익히는 가치관의 혼란을 경험한다. 챗 GPT 로 촉발된 인공지능의 일상화가 새로운 갈등해소와 참신한 생활방식을 가져다 주기 기대하는 마음이 간절하지만 비인간화, 기계화, 감시와 통제의 그림자가 얼마나 짙어질지, 우리 사회가 또다른 야만상태로 향하는 레트로토피아가 되지 않을지 우려도 적지 않다.

내 자녀를 위시해서 젊은 세대가 살아갈 21세기 미래는 얼마나 약육강식의 논리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N포세대임을 강조하며 무한경쟁과 개인주의의 세례를 듬뿍받은 저들에게 시편 23편은 어떻게 들릴까? 권력과 돈의 위세가 날 것 그대로 작동하는 한국사회에서 선한 목자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순한 양의 모습을 권유할 수 있을까? 험난한 시대를 뚫고 나가야 하는 자녀들을 생각하면 미래를 염려할 필요 없다는 말이 좀처럼 나오지 않는게 솔직한 심경이다. 신앙이란 모름지기 시대상황에 구애받지 않는 견고한 믿음에 근거하는 것이겠지만 어슬프게나마 미래를 내다보는 사회과학자의 입장에서 그런 확신이 쉬운 일은 아닌 것이다.

2024년도 여전히 여호와는 내 목자시고 우리를 외부의 위해로부터 지켜주실 것이니 염려하지 말고 새해를 맞이하자고 가족들에게 권면의 말을 했다. 하지만 내 말에 강한 확신이 실리지 않음을 스스로 느낀다. 먹을 풀과 마실 물이 철따라 주어질 것이고 일상의 평안도 허락하실 것이라고 애써 강조하면서도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불안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나 자산을 본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라 했는데 ‘믿음이 없는 자야’ 라는 힐난이 들려오는 것 같다. 새해를 맞이하며 시편 23편을 다시 읽으며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라는 말씀을 새삼 다시 묵상한다. 올 한 해 깊이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리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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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생, 소확행, N포

학생들 리포트를 읽다가 자신의 미래를 내다보는 어휘가 달라지고 있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몇 년 전 N포세대라는 말이 많이 쓰였는데 언젠가부터 소확행이나 욜로라는 말이 강조되었고 올해엔 유난히 갓생이란 말이 곳곳에 등장한다. 취업, 연애, 결혼, 주택 등을 포기해야 한다는 N포론은 미래에의 희망이 사라진 세대의 좌절감을 표상한다. 소확행이란 말은 대단한 목표의 추구 대신 소소한 즐거움, 일상의 작은 만족을 추구하려는 지향을 가리킨다. N포에서 소확행으로의 변화가 유의미한 새로운 움직임인지 아니면 현실도피적 자기위안에 그치는 것일지 불분명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2023년에 처음 접한 갓생이란 말은 확실히 다른 분위기를 지닌다. 신이라는 뜻의 ‘갓(God)’과 인생의 ‘생(生)’을 합친 갓생은 신과 같은 삶, 모범이 되는 부지런한 생활을 뜻하는 말이라 한다. ‘갓생 살기’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매일 30분씩 걷기, 하루에 영어 단어 10개 외우기 등과 같은 소소한 목표를 세우고 이를 열심히 이루어 가는 삶을 가리킨다. 거창한 목표를 향한 경쟁은 아니지만 자기성장과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적극적 계획, 예컨대 다이어트, 영어회화, 음악활동, 춤배우기 같은 것이 갓생의 내용을 채운다. “갓생 가자!”, “겨울방학 때 정말 갓생 살 거예요.” 같은 표현에서 이런 경쾌한 부지런함을 느낄 수 있다. 양극화 현상에 분노하고 상대적 박탈감에 힘들어하던 이전의 N포론이나 현실도피적 소확행론에 비해 건강한 적극성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 갓생이 젊은 세대의 정서가 새로운 형태로 변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지표일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갓생이란 말을 쓰고 ‘갓생 가자’고 외치는 그 태도 속에 이전의 모습, 익숙한 태도의 잔상이 강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세대론에 더이상 갇히고 싶지 않은 건강한 자신감이 갓생이란 말 속에 담겨있지만, N포세대의 불안과 좌절을 어쩔 수 없는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수동적 체념의 그림자도 없지 않다. 비트코인 광풍처럼 일확천금을 노리는 로또 심리가 스며있다는 평가도 있다. 한마디로 갓생은 적극적인 주체성을 반영하는 말이면서도 체념적 현실수용의 또다른 표현일 수 있다.

어쨋든 N포와 소확행과 다른 새로운 말이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N포라는 말에 부수되는 세대적 우울감을 부정하고, 소확행이라는 수입어에 담긴 수동적 자기위안도 벗어나 개성적인 주체성과 적극적 생활태도를 추구하려는 경향이 부분적이나마 확인되기 때문이다. 어느 대학 교수가 소확행 대신 대불행 (크고 불확실한 행복)을 추구하자고 주장한 적이 있지만 젊은층에게 불확실함을 직면하라는 권유가 얼마나 호소력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나름대로 고민하면서 개인별로 적절한 새 화두를 찾아가는 저 흐름 속에 담겨있는 절박함, 상상력, 수용과 혁신의 발상을 포괄적으로 파악하고 격려하는 것이 앞으로 중요한 과제가 아닐까 싶다. 갓생이 2024년에는 어떤 의미를 지니며 젊은세대의 공감을 불러올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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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칭과 탕탕평평

하바드 옌칭 한국학회 모임이 12월 13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있었다. 내가 회장을 끝낸 후인데다 정근식 회장과 한승미 교수가 열심히 준비해 주어서 편한 마음으로 참석했다. 이번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특별전시되는 영정조대의 시문과 회화전인 ‘탕탕평평’을 관람하고 ‘정조와 궁중회화’에 대한 강연을 듣기로 되어 있었다. 참석자는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최종고, 임지현, 김준환 교수 등 오랫만에 뵙는 분들이 여럿 계셔서 반가왔다.

발제자인 유재빈 교수는 영정조대 궁중화원제도의 변화 배후엔 시화를 통해 정치변화를 꾀하려 한 국왕의 의지가 있었다고 보았다. 도화서의 개혁, 특히 차비대령화원의 설치가 그런 의도의 산물인데 사적도, 궁중 계병, 화성원행도병 등의 제작과 유포를 통해 왕조 권력을 강화하려 했다는 것이다. 시문과 회화를 통해 국정운영의 변화를 꾀하고 왕권을 강화하려 했다는 설명이 흥미로왔다. 유교수로부터 저서인 [정조와 궁중회화]를 받았는데 부제로 달린 ‘문예군주 정조, 그림으로 나라를 다스리다’라는 말이 그런 시각을 잘 요약해주는 듯 했다. 문예군주라는 말, 그림으로 다스린다는 말에서 신선하면서도 과연?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느낌도 든다.

‘탕탕평평전’은 그런 시각을 반영한 기획인 듯 했다. 2024년이 영조 즉위 300년이 되는 해여서 영조와 정조가 글과 그림을 어떻게 국정운영에 활용하려 했는지를 부각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붕당정치의 폐해가 심했던 이 때 영조와 정조의 탕평책은 인재를 고루 기용한다는 기조로 이해되어왔다. 그런데 탕탕평평이란 말은 “무편무당 왕도탕탕 무당무편 왕도평평”이라는 [상서]의 황극조에서 나온 표현으로, 국왕의 위상을 북극성에 비유하여 임금의 중심성을 강조한 표현이다. 탕평이란 말은 인재를 고루 등용하거나 정파를 두루 포용한다는 뜻을 직접 담거나 신료들의 역할을 중시하는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임금의 역할, 국왕의 중심성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전시실 입구에서 영조가 쓴 글씨를 만났다. “周而不比 乃君子之公心 比而不周是小人之私意” 라는 글인데 1742년 사도세자가 성균관에 입학할 때 영조가 세운 비석의 탁본이다. “군자는 친밀하지만 편파적이지 않고 소인은 파당을 지으면서 친밀하지 않다” (君子 周而不比 小人 比而不周)라는 논어의 글을 토대로 군자의 공심과 소인의 사의를 대비시킨 것이다. 단정한 글씨체가 아름다왔고 영조의 각오나 사도세자에 대한 기대를 느낄 듯 했다. 그런데 그 아들을 죽이고 만 영조의 심경 변화와 궁중 내 정치 동학이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다. 1762년 영조가 죽은 세자에게 ‘사도’라는 이름을 붙이고 지었다는 ‘사도세자묘지’나 정조의 사도세자 추존과 어보를 둘러보면서 어지러움마저 느끼는 듯 했다.

영조와 정조는 화원들로 하여금 공신들의 초상을 제작하고 그 옆에 시를 지어 병기하곤 했다. 영조는 박문수의 초상을 제작하게 했고 대동법을 주도한 김육의 그림에 시를 지어 붙이기도 했다. 정조는 강세황의 초상을 그리게 했고 그가 죽은 후 역시 ‘인재를 얻기 어렵다’는 글을 보냈다. 정조가 심환지와 주고 받은 편지인 ‘어찰첩’도 전시되었는데 은밀한 편지 속에 마음속의 불안을 위무받고 싶은 국왕의 심정이 담겨 있다. 글씨는 활달하고 명필이라 할 만한데 내용은 쓸쓸하고 안타깝다. ‘화성원행도’를 비롯한 그림에서 국왕 주도의 국정운영을 시도하려는 노력을 찾아볼 수 있다는 설명을 들으면서 18세기 세계사는 얼마나 격동의 시기였는지를 잠시 생각했다. 시와 그림, 화원을 통한 국정개혁이나 탕평정치의 시도는 고상하고 멋있어 보이지만 그런 접근이 현실정치의 한계를 넘어서기 어려웠음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文治를 강조한 유교국가의 독특함이기도 하고 강제력에 의존하지 않는 세상을 지향하는 것이 문명사적 발전일 수는 있겠는데 그것이 ‘文弱’의 폐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무슨 조건이 더해져야 할까 생각하게 된다. 무기의 힘과 돈의 위세가 나날이 커져가는 21세기여서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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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럽의 추락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김구림 작품을 둘러보다가 문득 같은 공간에서 몇 달전 임옥상의 ‘지금 흔들리는 땅’ 전을 관람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80년대 민중미술의 대표적인 작가였지만 그 틀에 갇히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소재와 주제로 혁신적인 작품활동을 열정적으로 해 온 분이다. 특히 흙과 쇠를 주요 소재로 활용한 대형 작품들은 캔버스와 전시관을 넘어서 넓은 도시와 현장, 광장과 건물 들에 설치되어 왔고 그 혁신적인 방식과 선명한 주제를 좋아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지난 전시에서도 흙으로 만든 캔버스에 그린 홍매, 백매 등의 매화 연작과 대한민국헌법 전문을 쇠판 위에 큰 산 형상으로 써내린 대작은 관람객의 눈길을 끌기 족했다. 지난 정부에서는 촛불시위 현장을 형상화한 그의 작품이 청와대에 걸리기도 해서 언론의 관심대상이 되기도 했었다.

자신의 주장과 논지를 분명히 하면서도 사람들과의 소통을 중시하고 다양한 계층의 전문가들과 교유관계를 넓히려 노력한 탓에 유명 셀럽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기에 이르렀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개방적인 태도와 SNS를 통한 적극적인 소통노력이 더해져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누렸다. 그의 전시가 있는 화랑에서는 언제나 작가와 사진을 함께 찍으려는 수많은 관람객들, 사인을 받으려 줄을 선 젊은이들을 볼 수 있었다. 특히 국내외의 많은 관객들로부터 환호를 받은 지난 전시회를 옆에서 보면서 ‘셀럽’이란 존재가 저런 것이구나를 실감하기도 했다. 학자나 작가들 가운데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꺼려하고 자기 작업공간에 홀로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임 화백은 누구보다도 소통과 만남을 강조하고 또 즐기는 분이었다.

그런데 불과 몇 달만에 너무도 상황이 달라졌다. 과거 그가 데리고 있던 연구원에게 잘못된 행동을 했고 결국 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 충격파가 문자 그대로 일파만파다. 작가 개인의 이미지와 평판이 추락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미 설치되어 있던 곳곳의 작품들이 철거되었고 여러 활동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줄을 잇는다. 성추행이라는 사안 자체가 개인적으로 감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어서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되기도 쉽지 않다. 작가로서 너무 많은 대중적 사랑과 인기를 누려온데다 어느새 정치적 도덕적 영향력까지 지니게 된 그간의 셀렵화가 이런 위험을 배태한 주요한 요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고보니 작년 수많은 관람객들의 환호와 존경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모습을 보면서 저 과도한 인기가 가져올 위험은 없을까 일말의 불안감이 잠시 스쳤던 것 같기도 하다.

셀럽의 추락은 낯설거나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고 21세기에 더욱 보편화되는 일이기도 하다. 셀럽이 실체가 불확실한 평판에 의존하는 까닭에 인기가 높아질수록 잠재적 위험도 따라 커지게 마련이다. 오늘날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확대 공유되는 정보때문에 인기가 요동치는 속도와 폭도 상당하기 어려울 정도다. [뉴파워]라는 책을 쓴 하이먼즈는 오늘날 새로운 권력이 대두하는 증거로 오랜 기간 권위를 행사해온 인물들이 인터넷의 해시테그 비판과 대중의 인기 철회로 하루 아침에 몰락하는 사례들을 들고 있다. 그 중에서도 성추행과 관련한 사안의 휘발성이 특히 커서 권위의 추락에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한국에서도 하루 아침에 평생 쌓아온 권위와 영향력을 일순간 잃고 개인과 가족 모두의 힘든 시기를 보내게 된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셀럽의 몰락은 다시 일어서기가 쉽지 않은 충격임이 분명하다. 개인적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비극이자 인생 전체가 부정당하는 사건일 터이다. 하지만 셀럽으로서의 인기에서 비롯된 거품을 제거하고 단독자로서 다시 치열한 자신을 대면하는 실존적 전환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알 수 없는 불행과 불운으로 좌절하면서도 그 질곡으로부터 벗어나는 갱생과 회생의 역량을 보여준 사례도 적지 않다. 창조적인 작업에 종사하는 예술인의 경우는 고통과 단절, 비난과 자학, 성찰과 재생을 통해 예술혼이 새롭게 강화되는 전환도 가능할터이다. 셀럽의 부상과 몰락을 바라보며 내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는 인기에의 충동을 다시 한번 되돌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