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오늘의 화두

종강 소감

23년도 1학기 종강을 했다. 코로나로부터 벗어나 본격적인 대면강의가 시작된 첫 학기여서 모처럼 캠퍼스의 활기를 느낀 학기다. 개인적으로는 광주를 오가느라 이전 학기에 비해 몸이 좀 더 고되기는 했다. 그래도 젊은 후배 교수들과의 만남, 학생들의 활기찬 모습들을 접하는 것 자체가 생활의 큰 활력이다. 생각보다 고속도로에서의 2시간 운전이 크게 부담이 되지 않은 것도 다행한 일이다.

지난 2년간 코로나 경험 속에서 비대면 수업을 온라인을 통해 하면서 나는 학생들에게, 또 나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지속적으로 던졌다. face to face relation 을 보장하는 것은 물리적 모임인가 아니면 정보와 감각의 소통인가. 디지털 기기로 화면을 통해 얼굴을 맞대고 자유로이 이야기하는 것이, 마스크를 쓴 채 거리를 유지하고 대화를 최소화하는 것보다 훨씬 더 ‘대면성’ 을 보장해주고 ‘face to face’ 감각을 주는 것 아닐까 라고. 분명히 그런 점이 있고, 앞으로 강의와 교육에서 온라인이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역시 학생들을 눈앞에서 보고 강의할 때의 생동감이 온라인에서의 느낌과는 다른 것임을 이번 학기에 느끼고 있다.

학생들은 그러한 생각에 부분적으로 공감하는 것 같다. 교수와의 소통이나 강의를 통한 배움의 차원에서는 온라인이 크게 문제되지 않고 오히려 긍정적인 장점도 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수업은 교수의 강의가 전부가 아니다. 수업은 친구들과의 만남의 장이고 수업을 오가며 나누는 일상의 대화 기회이다. 뿐만 아니라 캠퍼스 자체가 새로운 문화경험, 세대로서의 감수성을 공유하고 체검하는 실험장인데 그런 기능은 온라인이 대체하기 어렵다. 이렇게 보면 온라인 강의의 효과성을 높이 평가하는 내 자신이 너무 교수 중심적 사고, 강의 중심적 캠퍼스라는 선입견에 갇혀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코로나 팬데믹은 종료되었으나, 대학과 강의의 방식이 전적으로 이전으로 돌아가서는 안될 것이다. 팬데믹 자체가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올 수도 있고, 무엇보다도 주입식 교육과 관행화된 학교 시스템의 문제점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문제의식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여전히 혁신적 대응이나 과감한 실험보다 안전한 과거, 익숙한 제도에로 급격히 되돌아가는 듯 하다. 대안이 불분명하면 보수적이 되는 경향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지 여전한 쟁점이자 고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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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스바써 -7

한독통일자문회의의 공식 회의가 시작되기 앞서 독일측에서 준비한 현장 답사가 있었다. 폴란드 국경가까이에 있는 작센 주의 바이스바써라는 작은 마을을 방문하여 그 지역이 겪고 있는 여러 변화와 도전들을 경청할 기회를 가졌다. 통일후 많은 동독지역 농촌이 경험한 것과 유사한 변화를 겪었고 특히 기후변화와 관련한 독일의 그린에너지 정책의 여파로 이 지역경제가 재조정을 강요받고 있는 곳이라 한다. 답사를 안내한 베를린 자유대학의 김박사는 이곳이 복합적 위기상황을 독특한 내적 발상으로 대응하고 있는 사례여서 답사의 대상지로 선정했다고 했다.

약 2시간이 넘는 시간을 버스로 달려 도착한 곳은 자그만 하지만 깔끔해 보이는 지방도시였다. 시청에 도착해보니 회의장에 식사가 케이터링 된 상태로 준비되어 있고 시장이 브리핑을 준비해 두고 있었다. 소탈해 보이는 페취 시장은 휴일이어서인지 혼자 모든 방문객 응접과 시청 건물의 열고닫음을 감당했다. 상세하게 준비된 브리핑에서는 그의 열정과 수고가 전해졌다. 시장의 설명에 따르면 이 도시는 38천명의 주민이 살던 곳이지만 지금은 15천명 수준으로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동독의 빈곤한 농촌 10 분위 중 9분위에 속할 정도로 어려운 지역으로 평가되고 탄광산업의 사양화와 맞물려 더욱 미래가 밝지 않은 지역이다.

하지만 시장은 주민참여형 문화재생을 통해 이 도시에 새로운 활력과 비전을 만들어가고 있음을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도시중심부의 활력 구축, 네트워크 강화, 공동협력과 참여, 그리고 디지털 인프라 구축의 네 가지 중점과제를 내걸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행정체계를 일원화하고 직업교육과 각종 훈련기회를 조성하며 주거지역을 새롭게 단장함으로써 300여 가구가 귀환하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했다. 과거 유리공장이었던 공장건물에 소규모 스타트업과 벤쳐기업을 유치하고 외부의 중소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다각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현장을 가 보기도 했다. 동독 시절의 거대한 집단건물들을 해체하고 그 자리에 조성한 녹지공간을 지나며 주택과 환경사업에도 관심을 기울인다고 했다.

이 도시의 노력은 전형적인 도시재생사업이라 할만하다. 미국 뉴욕에서도 슬럼지역을 새롭게 탈바꿈하려는 노력이 추진되었고 서울에서도 성수동을 비롯한 여러 곳에 유사한 변화가 시도되었다. 군산이나 전주 등지는 특색있는 공간의 역사성을 새로운 문화관광지로 변화시킴으로써 도시의 활력을 강화하고자 한다. 상당한 성과를 거둔 곳도 있지만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으로 비용만 증대시키고 토지소유주의 이익추구 사업으로 변질되었다는 비판도 따라 다닌다. 이 도시가 고령화, 인구이동, 탈화석연료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유지되고 발전될 수 있을지는 단지 동독지역만이 아닌 21세기 인류공동체 공통의 관심사라 해도 좋을 듯 싶다. 자전거를 싣고 여러 곳을 다니며 열심히 설명하는 시장의 모습은 오늘날 지방소멸을 우려하는 한국 지방 소도시에서 벤치마킹할 만 했다.

최근 관심을 끌고 있는 극우의 부상과 관련한 에피소드도 들었다. 도시의 한 빈 건물을 이들이 무단 점거한 적이 있는데 시는 그 건물을 매입해서 해체시켰다고 한다. 과감한 대응이 다행히 좋은 결과를 거두었고 극우의 영향력을 차단하는 적극적 사례로 내세울만 했다. 다만 모든 도시가 같은 대응과 결과를 얻는다는 보장이 없어서 누군가는 이 지역이 예외적인 곳일 수도 있겠다고 했다. 현재 독일에서 극우정치를 대표하는 Alternative for Germany (AfD) 정당은 2013년에 설립된 이래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극우적, 국가주의적 가치와 이념을 중심으로 이민정책과 유럽 통합에 대한 비판을 주된 공격논리로 내세운다. 자유 시장 경제를 강조하고 이민자들에 대한 혐오와 적대성을 숨기지 않음으로써 사회적 불만과 불안정을 정치자산화 하려 한다. 이런 변화가 통일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이 도시의 사례가 보여주듯 현상적으로는 중층적으로 겹쳐 나타나고 있는 것은 사실인 듯 하다. 결국 사람이 사는 현장, 지방과 도시, 시민사회 곳곳에서 건강한 삶을 구축하기 위한 열정, 협력, 비전, 리더십이 삶의 현장을 풍요롭게 하고 극우도 잠재우는 처방이 될 것이다. 중앙집중성이 너무 강한 한국사회에 여러모로 던지는 메시지가 적지 않은 답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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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의 발명? – 4

동독이란 범주, 동독인이란 정체성은 통일 이후에 발명된 것이다 – 이번 한독통일자문회의 토론 과정에서 나온 말인데 최근 이런 시각이 독일에서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분단 시대에는 의식하지 못했던 ‘동독인’이란 범주가 오히려 통일 30년이 지나면서 ‘서독인’에 대비되는 실체로 뚜렷해지고 있다는 말이다. 동독(인)이라는 범주의 재창조는 사회경제적 차별과 ‘뒤처점’의 감정을 근거로 하여 구성된다. 독일측의 발제에서 확인되는 동독지역의 경제적 낙후, 엘리트의 부재, 기회구조의 약화, 분노의 정서 등은 암묵적으로나마 서독(인)과의 대비를 전제한다. 독일연방공화국과 독일민주공화국의 대립상태는 종식되었는데 통일독일 내부에서 동독이란 범주가 재창조되고 있다는 말은 역설적이다. 그런데 내 개인적 인상으로도 이전에 비해 이번 회의에서 동독(인)이란 표현이 더 뚜렷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결국은 동독지역이 겪는 여러 현실적 어려움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와 관련된다. 동독지역은 서독지역에 비해 총소득수준이 15% 정도 낮고 엘리트층 배출비율도 현저히 낮으며 심리적 자존감도 낮다는 것인데 이런 현실을 통일의 귀결로 평가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견해가 크게 나누어졌다. 텔칙은 당시 동독이 적극적으로 서독의 시스템 수용을 원했다는 것을 강조했다. 슈뢰더는 더욱 분명하게 소규모 동독인들의 불만이나 움직임을 동독인 전체를 대표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안된다고 했다. 당시 적극적으로 서독의 방식을 수용하려 한 동독혁명의 시대정신을 충분히 고려해서 통일을 이해해야 하며 그런 점에서 식민지화라는 표현은 신중하게 사용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글라이케 전 차관은 최근 ‘동독인’이라는 표현을 들으면 열심히 살아온 한 인간으로서 화가 난다고 했다. 도대체 2023년에 누가 동독인이란 말인가라는 그녀의 질문은 왜 이 시점에서 동서독인이라는 범주가 계속 사용되고 소비되는가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담고 있는 것으로 읽혔다.

나는 이 토론을 들으면서 북한 사람들을 만났을 때 ‘북한’이란 말을 사용하지 못했던 경험을 떠올렸다. 북한이라는 용어 자체가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남한의 시각이라고 화를 냈고 그래서 늘 북측, 또는 귀측이란 애매한 표현을 사용하곤 했다. 기실 명맥하게 이질적인 국가성을 고집하면서도 두 국가상태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나타난 임시변통인 셈이다. 어쩌면 통일이 되고 나면 저런 억지 방패도 어려워지고 북한(인)과 남한(인)이라는 범주가 더욱 분명한 실체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반도에서 북한과 남한이라는 말이 남북한간에 상호소통을 돕는 어휘로 자리잡지 못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철저한 분단과 단절의 결과일 터이다. 영남사람, 호남사람, 서울사람이라는 범주가 커다란 차별의식 없이 통용될 수 있는 것이 국가적 통합을 반영하는 것이라면, 동서독 범주가 새로이 부상하는 것은 통일독일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날 현상의 하나라 볼 수도 있다.

몇년 만에 다시 가본 포츠담 플라츠 장벽들의 그림은 빛이 바랬고 베르나우의 장벽박물관 역시 퇴락한 느낌이 물씬 들었다. 독일 통일은 이미 과거사가 되어 버린 것이다. 다만 통일을 전후하여 개개인이 겪은 변화, 이동과 좌절과 성공의 이야기들은 시민들의 일상과 인생 경험 속에 고스란히 살아 있다. 동독(인)의 담론이 최근 부상하고 있다는 것은 이런 현실의 반영이고 국가통일이라는 거시적 변화가 삶의 미시적 문제로 전환되었음을 말해준다. 동서독 정치통합의 숙제가 사회적 통합과 정체성의 문제로 이어지고 있는 것도 그런 연유일테다. 이 새로운 숙제가 유럽통합과 이주자 난민의 포용까지 포함하는 다차원적 통합과제를 안고 있다는 점이 문제를 어렵게 만든다. 동독에서 부상하는 극우 포퓰리즘의 정서는 ‘보편적 통합’에 앞서서 ‘우리부터’ 통합하라는 목소리이고 그것은 결국 종족주의적인 지향, 인종차별주의의 정서를 띠기 쉽다.

개인적으로 재개장된 독일역사박물관이 이런 쟁점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기억하려 하는지 보고 싶었다. 십여년 전 이 박물관을 둘러보면서 제국 독일의 역사서술에 비해 통일과정이 너무 소략하게 설명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었다. 다시 문을 닫고 재개장을 준비 중인데 2025년에야 문을 연다고 한다. 베를린에서 통일을 상징하는 거대한 기념물이나 떠들석한 전시관을 찾기 어려운 이유를 막연하게나마 이해할 것 같았다. 통일과정을 해석하는 다양한 경험들을 역사적 기억으로 상징화하는 것은 종종 해석의 단순화, 국가화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 특히 통일 이후의 삶을 분노와 좌절로 경험한 사람들에게 통일의 기념물보다는 그 상처를 아물게 하고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하는 비전이 더욱 긴요할 것이다. 3만여명 탈북자의 수용과정에서 적지 않은 어려움을 드러내고 외국인 정주자들과의 사회통합이 아직 초보적인 단계에 놓여있는 한국으로서 통일지향성이 여전히 민족적 정체성을 중심으로 사고되는 현실을 반성적으로 되돌아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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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과 계몽 – 3

”독일통일의 오늘“을 발표한 토마스 크뢰거 연방정치교육원 원장의 내용은 무겁고 진지했다. 어떤 의례적 서두도 없이 그는 독일통일로 인해 ‘뒤쳐진’ 사람들의 분노와 굴욕감을 이야기하는데서 발제를 시작했다. 그는 1989/1990년을 전후하여 깊은 단절과 무력감을 겪은 세대의 감정이 결코 약화되지 않고 ‘일종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처럼 깊고 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했다. 동독의 많은 낙오자들의 분노가 오늘날 극우정치를 부상시키는 원천이 되었고 독일 통일이 유럽통합의 징검다리가 되리라던 믿음과 달리 종족주의의 배타성을 확대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 분노감정의 바탕에는 속았다는 느낌, 식민지화 되었다는 굴욕감이 자리한다. 그래서 ‘우리는 민족이다’라고 외쳤던 통일 당시의 외침이 이제 ”우리부터 통합하라“는 포퓰리즘을 불러일으킨다.

그렇다면 통합을 위해 진력해온 정치교육이 이 문제를 다루는데 실패한 것인가? 발제자는 아직 갈 길이 멀고 특히 접근법에 새로운 성찰이 필요하다는 입장인 듯 했다. 정치교육은 세뇌와 선동이 아닌 성찰과 각성을 통해 자신의 잘못과 미성숙으로부터 벗어나게 돕는 것이고 그런 점에서 통합은 자발성에 기초할 수밖에 없다. 이 맥락에서 트라우마를 가져온 과거를 어떻게 대면하고 기억하는가가 중요하다고 크뢰거는 진단한다. 문화연구자 아스만은 사회적 상호작용과 문화적 의미를 형성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기억을 기능적 기억(functional memory)이라 했는데 동독의 경험과 통일의 충격을 어떻게 수용하느냐가 관건일 테다. 정치교육은 민주적 역량과 소통을 통해 건강한 기능적 기억, 집합적 해석 형성을 돕는 것이어야 한다. 그럴 때 연대감을 형성하고, 문화적 지속성과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며 과거의 경험과 상호작용하여 현재와 미래를 조직하고 지시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발제자는 통일 이후의 두 과제가 청산과 정치교육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두 작업의 성격은 매우 다르다. 청산은 과거의 잘못을 밝혀내고 책임자를 처벌하며 피해자를 회복시키는 것이다. 반면 정치교육은 다중관점적인 시각에서 모든이의 참여를 장려하고 회색지대를 허용하며 과거보다 현재에 더 많은 관심을 둘 것을 요구한다. 상이한 관점과 모호함을 용인하고 ‘많은’ 과거들이 있었음을 용납함으로써 기억의 단순화, 기억의 독점화를 방지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그러려면 순응과 반항 사이의 회색지대, 심지어 ‘독재에의 유혹’까지도 조망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나찌와 사통당 독재는 공포와 억압만으로 설명되지 않으며 사람들로 하여금 그 독재를 찬양하도록 만든 유혹의 기제도 꼭같이 밝혀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동독지역에서 발견되는 오스탈기 역시 이런 유혹심리의 연장인 셈인데 이 미묘한 독재의 구속력을 드러냄으로써 내면의 회복을 이루어내는 것이야말로 계몽과 정치교육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토론에서 나는 기억의 정치가 과거와의 화해가 아닌 새로운 갈등의 원천이 되는 경우가 없지 않음을 지적하고 어떤 조건이 더해져야 할 것인지 물었다. 발제자는 쉬운 처방은 없는 어려운 문제이지만 결국 민주주의의 역량강화가 중요하다고 했다. 동시에 기억이 분노나 좌절로 이어지지 않고 건강한 성찰로 이어지려면 유럽차원의 이주경험을 기억의 영역으로 불러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지적했다. 유럽통합의 과정에서 각 개인들이 겪은 다양한 경험들은 과거를 독일민족이나 백인중심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편향을 벗어나게 도와준다. 이런 다중적 경험, 혼성적 기억을 통해 ‘독일중심 역사서술’과 싸우는 것이 가능해 진다. 사회는 점점 더 혼종적으로 되어가고 그 과정에서 독일은 새롭게 재구성되고 있는 바, 이런 다양한 기억을 수용함으로써 기억의 정치가 승자중심으로 단순화하거나 집단화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럴 때에야 기억의 정치가 ‘미래를 마주’할 민주적 역량을 강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이 발제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분석적이면서도 문제의식이 분명하고 비판적이면서도 균형잡혀있다. 통일을 주요한 성취로 수용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좌절하고 실패한 사람들의 스토리에도 사회적 기억의 정당한 자리를 부여하려 한다. 혐오와 분노의 감정이 어떤 뿌리에서 연유했는지를 냉정히 분석하면서, 그러나 역시 계몽과 성찰이라는 오랜 교육철학의 신념을 부정하지 않는 입장을 견지한다. 회색지대와 애매함을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이 민주주의와 성숙함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속적인 애씀이 필요함을 역설한 것인데 이런 작업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오늘 독일의 깊은 갈등들이 여실히 보여준다. 과연 계몽이라는 칸트적 교육론이 감정과 정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라는 나의 질문에 속시원한 대답을 듣진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찰과 계몽을 향한 진지한 고민을 산출할 수 있는 독일은 타산지석이 아닐 수 없다. 남북한의 대립과 논란, 통일을 향한 민족감성의 이중성, 국내 정치의 이데올로기로 활용되는 단순화 논리, 여전히 민족주의 정서를 벗어나지 못하는 통일론의 한계 등..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사실 이 부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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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2년간 단독주택 생활을 끝내고 다시 아파트로 이사했다. 주인이 집을 매매하기로 했다는 전갈을 받은 후 새 전세집을 구했기 때문이다. 새소리로 잠을 깨고 정원의 잔디를 깎던 즐거움을 더 누리지 못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다. 다행히 이사한 아파트도 넓은 공유 정원과 각종 주민시설을 갖추고 있어 또다른 만족이 있으려니 기대를 가져본다.

이번 이사는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 집값 하락으로 매매의사를 철회한 주인이 전세금 반환의 어려움을 알려왔기 때문이다. 은행에서 융자받아 전세금 일부를 지급하고 나머지는 전세가 구해지는대로 상환하겠다고 했다. 한국 특유의 전세제도는 통상 새 임차인의 전세금으로 앞 사람 전세금을 갚는 구조여서 어느 한 부분에 문제가 생기면 선의 여부와 상관없이 연쇄적인 파장이 생길 수밖에 없다. 전세대란 뉴스가 연일 들리는 것은 경기가 어렵기도 하지만 이런 연쇄구조에 문제가 생긴 것일테다.

주변의 지인들은 한결같이 구두 약속만 믿고 이사해서는 낭패를 당할 수 있음을 염려했다. 언론에는 전해지는 소식에는 전세사기라 할만한 고약한 사례도 있지만 상당부분은 주택 임대의 연쇄고리가 깨어지면서 파생된 불가항력적인 사태여서 어느 한 편을 비난하기도 쉽지 않다. 이런 연쇄고리에서 나도 자유로울 수는 없어 법적 자문을 받기로 했다. 변호사는 친절하면서도 단호하게 추가초지의 불가피함을 설명했다. 이미 주민등록을 옮겨 법적 대항권이 소멸되었으므로 차선책으로 임차권 등기 신청, 지급명령 신청을 하는 것이 좋으리라고 했다. 생소한 법률 절차를 충분히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그 설명이 타당하게 여겨져 제안을 수락하기로 했다.

내가 변호사의 조언에 따라 주민등록을 다시 현주소로 옮겨놓고 임차권 등기가 완료될 때까지 이사짐 일부를 남겨두겠다고 알리자 집주인은 서운함을 표했다. 자기도 최선을 다하고 있고 은행대출까지 해서 일부를 지급하는 성의를 보였는데 이런 조처를 취하느냐는 섭섭한 감정이 느껴졌다. 신뢰할 수 없어서 한 일이 아니고 불가항력적 상황에 대비한 것일 뿐이니 양해하시라 설명했지만 사실 나로서도 이런 일은 정서적으로 불편할 밖에 없다. 이사 당일 찾아온 주인의 부인은 나의 조처를 충분히 이해하며 제때 전세금을 반환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뜻을 전했다. 심성이 좋은 분들인데 이분 들도 마음 고생을 한다는 생각을 했다.

이사 당일, 새벽부터 시작된 기민한 작업과정을 지켜본 것은 또다른 경험이었다. 7-8명이 한 팀으로 작업하는데 누구의 지시나 명시적 업무절차도 없이 고도의 정밀 기계처럼 이곳 저곳 크고 작은 짐들을 재빠르게 정리하고 포장했다. 새 집에 와서 그 짐들을 배치할 때도 손발이 척척 맞는 기민한 일처리 과정이 마치 고속으로 상영되는 한편의 모노 드라마를 보는 듯 했다. K-culture에는 한국 영화나 음악 만이 아니라 포장이사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과연 그럴 만했다. 각자의 개성이 드러나면서도 전체가 조화롭고 다이내믹한 장면을 구성하는 K-Pop 공연이, 저 포장이사의 놀라운 협업시스템과 맥이 닿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버리기보다 쌓아두는 것이 더 익숙한 탓에 짐은 언제나 불어난다. 내 삶에 요긴한 도움을 준 것들이니 계속 지닐 필요가 있는 것들이 많지만 그 중에는 사실 버려도 지장이 없는 것이 적지 않다. 저 많은 책들 가운데 앞으로 내가 다시 볼 것은 얼마나 될 것이며 이런 저런 계기로 생긴 물건들 역시 언제까지 소장해야 할지 모르겠다. 운동을 해야 몸이 가벼워지고 묵은 것을 비울 때 새로운 것이 채워지는 법이니 이제는 더 과감하게 버리고 줄이는 삶을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몸도 마음도 물건도 가볍게 하기 – 이사를 마무리 하며 다짐해 본 단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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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4월 28일, 미국에 살고 있는 친구 가족이 한국을 방문해서 오랫만에 만났다. 옛 친구를 만나는 것은 언제나 즐겁고 기쁜 일이다. 공자 역시 인생 3락의 하나로 ‘벗이 스스로 찾아오는 것’을 꼽았을 정도가 아닌가. 비록 내 집을 찾아온 것은 아니지만 먼나라에 떨어져 있다가 한국을 모처럼 오게되었으니 ‘자원방래’라 할만하다. 마침 오전에 월봉상 시상식이 있었던 터라 오후엔 편안한 마음으로 봄 빛 가득한 삼청동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더 글로리 촬영장소라는 까페로쏘 골목의 풍경도 보기 좋았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대학을 거쳐 이어진 우정이니 거의 50년이 넘었다. 반세기 넘도록 각각의 인생길에서 서로 다른 삶을 살았고 만날 기회도 거의 없었지만 간간히 소식이 전해질 계기가 생기고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해후하게 되는 날도 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싶다. 수유리 한 구석에서 맺어진 인연이 관악을 거쳐 샌디에고로 또 보스턴의 하바드 스퀘어에서 이어지는 것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얼마전 타계한 테너 박인수가 부른 ‘친구이야기’ 영상을 누군가 보내주었다. 그 노랫말과 곡조가 좋아 나도 몇 친구에게 전달한 적이 있다. 집으로 내려오는 기차 속에서 이 가사가 새삼 생각났다. <많지 않아도/ 그리고 자주 만날 수 없어도 / 내게 친구가 있음은 / 얼마나 소중한 것입니까 // 멀리 있어도 / 가만히 이름 불러볼 수 있는 / 친구가 나에게 있음은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내 좋은 친구를 만날때면/ 웃음마다 봄날 기쁨입니다 /보고픈 친구를 생각할때면 /그리움은 잔잔한 행복입니다.>

곧이어 5월 2일에는 역시 우이교회에서 함께 지냈던 오랜 친구 태영, 희용, 명곤 등과 만나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육군과 공군의 지휘관이었던 두 친구 덕분에 간간히 골프모임을 하는 호사를 누리는데 실력은 제각각 다르고 특히 나는 점수를 기록할수도 없을 정도지만 옛 우정이 이어주는 만남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느끼게 하는 모임이다. 세월이 가는만큼 사회적 활동이 줄어들수록 친구의 소중함은 더 뚜렷해지지 않을까 싶다. 오랫만에 고국을 찾은 친구 은영씨와 선배님이 내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특히 멋지게 자란 두 따님 가원 승원의 앞길에 좋은 일이 가득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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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묵으로 그린 초상

광주시립미술관의 김호석 수묵화전 개막전에 참석했다. 먹과 붓 만으로 오랜 동안 작업을 해 온 작가인데 정근식 교수가 축사를 한다고 알려와서 가게 되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지만 GIST에서 외곽 고속도로를 통해 많은 시간 걸리지 않고 갈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전시회 장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고 뜻밖에 시인 박남준도 반갑게 만났다. 화동 악양 마을에서 살고 있는 그도 이 전시회를 보러 일부러 광주를 찾았다 했다.

초기 작품에는 더러 채색이 있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작품이 먹의 농담만으로 표현된 수묵 담채였다. 통상의 전통 수묵화가 자연풍경을 대상으로 한 것이 많은데 비해 이 작가는 인물과 동물을 주로 대상으로 삼았다. 특히 현실 속의 인물들을 초상화의 형태로 그려왔는데 최근에 오면서 역사성이 담긴 시대화를 그리기도 하고 작은 곤충의 모습을 통해 환경주의적 메시지를 담으려 한 모습도 보인다. 사실성에 기초한 섬세한 묘사에 과감한 붓질, 생략과 추가의 독창적 구도를 통해 작가만의 독특한 작품을 만들고 있는 듯 했다.

미국 화단에서 주목을 받았다고 언론에 소개되었던 황희의 초상화는 마치 흔들려 찍은 사진처럼 눈과 코와 입술이 모두 두 겹으로 그려져 있다. 한 인물이 보여주는 상이한 면모를 이런 입체적 기법으로 드러내려 했다고 설명되는 모양이다. 실제로 위 아래로 그려진 네 개의 눈동자를 자세히 들여다 보노라면 외양의 눈과 내면의 눈을 함께 그린 것이 더욱 사실적이라는 느낌조차 갖게 된다. 도산 안창호의 얼굴을 그린 거대한 초상은 살아있는 듯한 눈매와 결연한 표정, 힘찬 붓질의 수염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좋아하는 인물을 저런 붓터치로 나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개인적으로는 ‘아들인 줄 알았는데 허공이었다’는 제목의 그림이 강렬해서 그 작품 앞에서 한동안 발을 떼지 못했다. 어머니인듯 한 여성이 누군가를 안고 있는데 정작 그 품에는 아무도 없이 텅 비어있다. 언뜻 보면 그리다 만 미완성 작품 같기도 한데 제목을 읽으면서 비로소 이 빈 공간의 의미가 와 닿는다. 허공이지만 아들인 줄 알고 감싸안은 여인의 모습을 통해 빈 여백 속에 귀한 무언가가 담겨 있을 수 있다는 희망을 말하는 듯 하다. 그런가하면 무언가 소중했던 것이 사라지고 없다는 안타까움을 그린 것 같다. 보기에 따라서는 허공조차도 아들로 알고 따뜻하게 껴안을 수 있다는 희망과 의지를 읽을 수도 있겠다. 작가의 어머니가 그 아들을 군대에 보내며 그린 것이라는 누군가의 설명을 들으면서 연민, 사랑, 회한 등의 복잡한 심사를 함께 느껴본 자리다.

life · 시공간 여행

인왕산과 수성동계곡

오랫동안 가보고 싶었던 수성동계곡과 인왕산 성곽길을 다녀왔다. 한반도평화연구원 활동으로 인연을 맺은 분들과 모처럼의 저녁 모임을 갖게 된 곳이 이 주변이어서 미리 마음을 정해둔 여정이었다. 마침 날씨도 좋고 벗꽃도 만개한데다 곳곳에 진달래가 화사하게 피어 생각지 않은 즐거움도 컸다. 호젓하게 자유로이 윤동주 기념관과 한양도성 성곽길을 둘러본 것은 덤으로 누린 기쁨이었다.

수성동계곡은 겸재 정선의 그림 [장동팔경첩] 수성동의 현장이고 서울의 난개발 과정에서 사라져버렸던 돌다리와 계곡이 아파트 철거로 다시 드러나 옛모습을 찾게 된 곳이다. 겸재가 이곳을 유명하게 만들었고 이곳 둘레길에는 진경산수탐방이라는 팻말이 붙여져 있다. 하지만 이곳은 그 이전부터 풍류를 즐기던 문사들이 즐겨 찾던 장소다.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은 이곳에 비해당이란 정자를 짓고 당대 최고의 선비들과 시를 짓고 담소를 나누었는데 이들이 이곳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48詠詩’ 일부가 전해져 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수 년 전 서울대 화묵회 전시에 대나무 수묵화를 출품했다. 그림에 어떤 글을 적을까 생각하다가 성삼문이 안평대군과 더불어 주고받은 ’48영시’의 한 부분을 썼다. “度竹風聲碧 含風竹影淸” (대 숲 지나는 바람소리 푸르고/ 바람 머금은 대 그림자 맑다). 심경호 교수의 저서 덕분에 몽유도원도를 그린 안견을 비롯한 조선조 선비들과 안평대군 간에 주고받은 시들을 접해본 덕택이다. 수성동계곡을 오르면서 나는 안평, 안견, 성삼문, 박팽년, 겸재 등 만나본 적 없는 이들의 이름을 떠올렸다.

돌다리가 있는 수성동 입구는 버스 종점 바로 앞이었다. 조용하고 멋진 계곡의 풍광을 상상했던 나로서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계곡의 규모가 작아 물이 제대로 흘러도 작은 개울 수준을 넘기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인왕산 정상을 향한 길을 오르면서 아름다움은 반드시 장대함에서 오는 것이 아님을 이내 깨달았다. 다양한 모양의 바위와 작은 골짜기, 크고 작은 나무들이 한데 어우러져 빚어내는 진경산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경복궁 옆부터 인가 없는 길을 지나 이곳으로 오르던 이들에게 수성동은 말 그대로 조선산수의 정형과도 같은 풍경으로 와 닿았을 법하다.

인왕산 정상에서 내다보는 서울의 풍경은 장쾌하고 시원했다. 남산을 바라보면 시내의 전경이 눈에 들어오고 백운대 방면으로 눈길을 돌리면 아스라히 북한산 줄기가 다가온다. 그 사이로 청와대를 품은 북악산의 아름다운 자태도 또렷하다. 이 모든 것을 아우르면서 성곽둘레길이 이어져 있어 또다른 멋스러움을 더한다. 이곳의 성곽은 그 높이가 낮고 주변과 너무 잘 어우러져 외침을 막기 위한 군사적 목적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위한 미학적인 이유로 세운 것 아닐까 여겨질 정도다. 모처럼의 멋진 기억을 오래 간직하려 겸재의 문하생이 된 기분으로 화선지를 펴고 수묵으로 인왕산과 기린교, 계곡을 그려보았다.

life · 오늘의 화두

상쾌한 삶 무거운 숙제

동네 사회학자를 자처하면서 새로운 삶의 형식을 실천하고 있는 조형근 박사가 [나는 글을 쓸 때만 정의롭다]라는 책을 출간했다. “연대사회를 갈구하는 어느 지식인의 자기성찰”이라는 부제 그대로 조박사는 진지한 사색과 성실한 생활에서 우러나오는 진솔한 생각들을 이 책에 담았다. 글의 형식은 딱딱한 논문투가 아닌 에세이 같지만 담긴 내용의 깊이와 폭은 매우 깊고 넓다. “계시가 아니라 고백이라 좋고 고뇌하되 중심을 잃지 않아 좋다”는 한 평자의 지적에 공감이 간다.

조박사는 서문에서 이 책을 쓰게된 계기의 하나로 ‘그럭저럭 살기가 불가능해’진 상황을 꼽았다. 구체적으로는 세월호 사건을 들었지만 글의 곳곳에서 그의 이런 지적 성실함은 그 이전부터 지속된 것이었음을 확인한다. 그는 세상을 비판하는 글은 동시에 자신을 성찰하는 고백록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데 실제 그의 글은 자신의 경험에서 시대를 읽고 개인적 한계에서 사회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섬세함으로 가득차있다.

저자는 자신이 동네 사회학자임을 자처한다. 실제로 신문지상의 저자 소개에 다른 수식어 없는 사회학자라는 타이틀을 붙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소수의 사람 중 하나다. 대학교수직을 버리고 동네책방과 크고작은 문화활동에 참여하면서 그의 마음은 편안해지고 시선은 더욱 예리해졌다.

더구나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에 살면서 동네라는 작은 현장, 사람들이 사는 공간에 발딛고 있는 생동감이 뚜렷하다. 1988년 사당동 철거촌에서의 기억을 잊지 않는 조박사의 글은 그의 말대로 ‘찾아온 길이면서 돌아온 길’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진솔함이야말로 변함없는 글과 생각의 힘이 아닐까. 조형근 박사의 책이 던진 화두 앞에 반가움과 무거움을 함께 느낀다.

life · 오늘의 화두

‘일어서는 땅’

2월 17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중인 임옥상 화백의 일어서는 땅을 관람했다. 친구인 이승재 교수와 함께 갔는데 프랑스에서 왔다는 외국인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열정적인 임화백의 설명들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들은 열심히 작품을 보고 또 통역을 통해서 작가의 해설을 경청했다. 임화백과 사진을 찍으려하고 함께 포즈를 취하면서 기뻐하는 모습들 속에서 예술이 갖는 힘과 함께 국제적인 셀럽이 된 임화백의 존재감이 크게 와 닿았다.

흙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이전에도 보아왔지만 그림과 글씨를 함께 묶고 흙과 철과 땅을 연결하는 놀라운 발상과 스케일에 가히 압도당했다. 특히 봄이 되어서인지 매화 작품들이 인상적이었다. 겸재의 매화 병풍을 연상케 하는 오랜 고매화의 힘찬 등걸, 뒤틀리면서도 용솟음치는 역동성, 바람에 휘날리는 잔가지들, 꽃비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흐드러진 매화꽃잎들… 백매의 아름다움과 홍매의 화려함이 모두 격조와 스케일로 감동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임화백과 점심을 함께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얼마전 미국방문에서의 경험담에 더하여 최근 인터넷, 디지털 기술문명이 화단에도 영향을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흥미있는 말도 들었다. 보관과 전시, 제작에 여러 한계를 지니는 실제의 작품보다 이미지와 영상으로 만들어지고 거래되는 변화가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벤야민이 말했던 복제기술 시대의 예술론이 일상화되는 느낌이었다.

chat GPT 로 인한 교육과 글쓰기에서의 새로운 상황이 초래하는 내 경험도 함께 화제가 되었다. 과학기술문명의 영향이 그 어느때보다 심대하고 조밀해지는 시대에 학문과 예술, 진리와 품격을 유지하고 가꾸어갈 지혜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큰 숙제라는데 공감했다. 그럴수록 창조력을 지닌 지식인과 임화백 같은 예술가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 질 것이다. 제아무리 인터넷과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시대가 오더라도 창조와 혁신, 품위와 기개는 역시 사람의 몫일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