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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과 계몽 – 3

”독일통일의 오늘“을 발표한 토마스 크뢰거 연방정치교육원 원장의 내용은 무겁고 진지했다. 어떤 의례적 서두도 없이 그는 독일통일로 인해 ‘뒤쳐진’ 사람들의 분노와 굴욕감을 이야기하는데서 발제를 시작했다. 그는 1989/1990년을 전후하여 깊은 단절과 무력감을 겪은 세대의 감정이 결코 약화되지 않고 ‘일종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처럼 깊고 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했다. 동독의 많은 낙오자들의 분노가 오늘날 극우정치를 부상시키는 원천이 되었고 독일 통일이 유럽통합의 징검다리가 되리라던 믿음과 달리 종족주의의 배타성을 확대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 분노감정의 바탕에는 속았다는 느낌, 식민지화 되었다는 굴욕감이 자리한다. 그래서 ‘우리는 민족이다’라고 외쳤던 통일 당시의 외침이 이제 ”우리부터 통합하라“는 포퓰리즘을 불러일으킨다.

그렇다면 통합을 위해 진력해온 정치교육이 이 문제를 다루는데 실패한 것인가? 발제자는 아직 갈 길이 멀고 특히 접근법에 새로운 성찰이 필요하다는 입장인 듯 했다. 정치교육은 세뇌와 선동이 아닌 성찰과 각성을 통해 자신의 잘못과 미성숙으로부터 벗어나게 돕는 것이고 그런 점에서 통합은 자발성에 기초할 수밖에 없다. 이 맥락에서 트라우마를 가져온 과거를 어떻게 대면하고 기억하는가가 중요하다고 크뢰거는 진단한다. 문화연구자 아스만은 사회적 상호작용과 문화적 의미를 형성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기억을 기능적 기억(functional memory)이라 했는데 동독의 경험과 통일의 충격을 어떻게 수용하느냐가 관건일 테다. 정치교육은 민주적 역량과 소통을 통해 건강한 기능적 기억, 집합적 해석 형성을 돕는 것이어야 한다. 그럴 때 연대감을 형성하고, 문화적 지속성과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며 과거의 경험과 상호작용하여 현재와 미래를 조직하고 지시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발제자는 통일 이후의 두 과제가 청산과 정치교육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두 작업의 성격은 매우 다르다. 청산은 과거의 잘못을 밝혀내고 책임자를 처벌하며 피해자를 회복시키는 것이다. 반면 정치교육은 다중관점적인 시각에서 모든이의 참여를 장려하고 회색지대를 허용하며 과거보다 현재에 더 많은 관심을 둘 것을 요구한다. 상이한 관점과 모호함을 용인하고 ‘많은’ 과거들이 있었음을 용납함으로써 기억의 단순화, 기억의 독점화를 방지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그러려면 순응과 반항 사이의 회색지대, 심지어 ‘독재에의 유혹’까지도 조망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나찌와 사통당 독재는 공포와 억압만으로 설명되지 않으며 사람들로 하여금 그 독재를 찬양하도록 만든 유혹의 기제도 꼭같이 밝혀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동독지역에서 발견되는 오스탈기 역시 이런 유혹심리의 연장인 셈인데 이 미묘한 독재의 구속력을 드러냄으로써 내면의 회복을 이루어내는 것이야말로 계몽과 정치교육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토론에서 나는 기억의 정치가 과거와의 화해가 아닌 새로운 갈등의 원천이 되는 경우가 없지 않음을 지적하고 어떤 조건이 더해져야 할 것인지 물었다. 발제자는 쉬운 처방은 없는 어려운 문제이지만 결국 민주주의의 역량강화가 중요하다고 했다. 동시에 기억이 분노나 좌절로 이어지지 않고 건강한 성찰로 이어지려면 유럽차원의 이주경험을 기억의 영역으로 불러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지적했다. 유럽통합의 과정에서 각 개인들이 겪은 다양한 경험들은 과거를 독일민족이나 백인중심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편향을 벗어나게 도와준다. 이런 다중적 경험, 혼성적 기억을 통해 ‘독일중심 역사서술’과 싸우는 것이 가능해 진다. 사회는 점점 더 혼종적으로 되어가고 그 과정에서 독일은 새롭게 재구성되고 있는 바, 이런 다양한 기억을 수용함으로써 기억의 정치가 승자중심으로 단순화하거나 집단화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럴 때에야 기억의 정치가 ‘미래를 마주’할 민주적 역량을 강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이 발제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분석적이면서도 문제의식이 분명하고 비판적이면서도 균형잡혀있다. 통일을 주요한 성취로 수용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좌절하고 실패한 사람들의 스토리에도 사회적 기억의 정당한 자리를 부여하려 한다. 혐오와 분노의 감정이 어떤 뿌리에서 연유했는지를 냉정히 분석하면서, 그러나 역시 계몽과 성찰이라는 오랜 교육철학의 신념을 부정하지 않는 입장을 견지한다. 회색지대와 애매함을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이 민주주의와 성숙함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속적인 애씀이 필요함을 역설한 것인데 이런 작업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오늘 독일의 깊은 갈등들이 여실히 보여준다. 과연 계몽이라는 칸트적 교육론이 감정과 정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라는 나의 질문에 속시원한 대답을 듣진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찰과 계몽을 향한 진지한 고민을 산출할 수 있는 독일은 타산지석이 아닐 수 없다. 남북한의 대립과 논란, 통일을 향한 민족감성의 이중성, 국내 정치의 이데올로기로 활용되는 단순화 논리, 여전히 민족주의 정서를 벗어나지 못하는 통일론의 한계 등..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사실 이 부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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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2년간 단독주택 생활을 끝내고 다시 아파트로 이사했다. 주인이 집을 매매하기로 했다는 전갈을 받은 후 새 전세집을 구했기 때문이다. 새소리로 잠을 깨고 정원의 잔디를 깎던 즐거움을 더 누리지 못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다. 다행히 이사한 아파트도 넓은 공유 정원과 각종 주민시설을 갖추고 있어 또다른 만족이 있으려니 기대를 가져본다.

이번 이사는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 집값 하락으로 매매의사를 철회한 주인이 전세금 반환의 어려움을 알려왔기 때문이다. 은행에서 융자받아 전세금 일부를 지급하고 나머지는 전세가 구해지는대로 상환하겠다고 했다. 한국 특유의 전세제도는 통상 새 임차인의 전세금으로 앞 사람 전세금을 갚는 구조여서 어느 한 부분에 문제가 생기면 선의 여부와 상관없이 연쇄적인 파장이 생길 수밖에 없다. 전세대란 뉴스가 연일 들리는 것은 경기가 어렵기도 하지만 이런 연쇄구조에 문제가 생긴 것일테다.

주변의 지인들은 한결같이 구두 약속만 믿고 이사해서는 낭패를 당할 수 있음을 염려했다. 언론에는 전해지는 소식에는 전세사기라 할만한 고약한 사례도 있지만 상당부분은 주택 임대의 연쇄고리가 깨어지면서 파생된 불가항력적인 사태여서 어느 한 편을 비난하기도 쉽지 않다. 이런 연쇄고리에서 나도 자유로울 수는 없어 법적 자문을 받기로 했다. 변호사는 친절하면서도 단호하게 추가초지의 불가피함을 설명했다. 이미 주민등록을 옮겨 법적 대항권이 소멸되었으므로 차선책으로 임차권 등기 신청, 지급명령 신청을 하는 것이 좋으리라고 했다. 생소한 법률 절차를 충분히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그 설명이 타당하게 여겨져 제안을 수락하기로 했다.

내가 변호사의 조언에 따라 주민등록을 다시 현주소로 옮겨놓고 임차권 등기가 완료될 때까지 이사짐 일부를 남겨두겠다고 알리자 집주인은 서운함을 표했다. 자기도 최선을 다하고 있고 은행대출까지 해서 일부를 지급하는 성의를 보였는데 이런 조처를 취하느냐는 섭섭한 감정이 느껴졌다. 신뢰할 수 없어서 한 일이 아니고 불가항력적 상황에 대비한 것일 뿐이니 양해하시라 설명했지만 사실 나로서도 이런 일은 정서적으로 불편할 밖에 없다. 이사 당일 찾아온 주인의 부인은 나의 조처를 충분히 이해하며 제때 전세금을 반환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뜻을 전했다. 심성이 좋은 분들인데 이분 들도 마음 고생을 한다는 생각을 했다.

이사 당일, 새벽부터 시작된 기민한 작업과정을 지켜본 것은 또다른 경험이었다. 7-8명이 한 팀으로 작업하는데 누구의 지시나 명시적 업무절차도 없이 고도의 정밀 기계처럼 이곳 저곳 크고 작은 짐들을 재빠르게 정리하고 포장했다. 새 집에 와서 그 짐들을 배치할 때도 손발이 척척 맞는 기민한 일처리 과정이 마치 고속으로 상영되는 한편의 모노 드라마를 보는 듯 했다. K-culture에는 한국 영화나 음악 만이 아니라 포장이사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과연 그럴 만했다. 각자의 개성이 드러나면서도 전체가 조화롭고 다이내믹한 장면을 구성하는 K-Pop 공연이, 저 포장이사의 놀라운 협업시스템과 맥이 닿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버리기보다 쌓아두는 것이 더 익숙한 탓에 짐은 언제나 불어난다. 내 삶에 요긴한 도움을 준 것들이니 계속 지닐 필요가 있는 것들이 많지만 그 중에는 사실 버려도 지장이 없는 것이 적지 않다. 저 많은 책들 가운데 앞으로 내가 다시 볼 것은 얼마나 될 것이며 이런 저런 계기로 생긴 물건들 역시 언제까지 소장해야 할지 모르겠다. 운동을 해야 몸이 가벼워지고 묵은 것을 비울 때 새로운 것이 채워지는 법이니 이제는 더 과감하게 버리고 줄이는 삶을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몸도 마음도 물건도 가볍게 하기 – 이사를 마무리 하며 다짐해 본 단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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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4월 28일, 미국에 살고 있는 친구 가족이 한국을 방문해서 오랫만에 만났다. 옛 친구를 만나는 것은 언제나 즐겁고 기쁜 일이다. 공자 역시 인생 3락의 하나로 ‘벗이 스스로 찾아오는 것’을 꼽았을 정도가 아닌가. 비록 내 집을 찾아온 것은 아니지만 먼나라에 떨어져 있다가 한국을 모처럼 오게되었으니 ‘자원방래’라 할만하다. 마침 오전에 월봉상 시상식이 있었던 터라 오후엔 편안한 마음으로 봄 빛 가득한 삼청동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더 글로리 촬영장소라는 까페로쏘 골목의 풍경도 보기 좋았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대학을 거쳐 이어진 우정이니 거의 50년이 넘었다. 반세기 넘도록 각각의 인생길에서 서로 다른 삶을 살았고 만날 기회도 거의 없었지만 간간히 소식이 전해질 계기가 생기고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해후하게 되는 날도 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싶다. 수유리 한 구석에서 맺어진 인연이 관악을 거쳐 샌디에고로 또 보스턴의 하바드 스퀘어에서 이어지는 것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얼마전 타계한 테너 박인수가 부른 ‘친구이야기’ 영상을 누군가 보내주었다. 그 노랫말과 곡조가 좋아 나도 몇 친구에게 전달한 적이 있다. 집으로 내려오는 기차 속에서 이 가사가 새삼 생각났다. <많지 않아도/ 그리고 자주 만날 수 없어도 / 내게 친구가 있음은 / 얼마나 소중한 것입니까 // 멀리 있어도 / 가만히 이름 불러볼 수 있는 / 친구가 나에게 있음은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내 좋은 친구를 만날때면/ 웃음마다 봄날 기쁨입니다 /보고픈 친구를 생각할때면 /그리움은 잔잔한 행복입니다.>

곧이어 5월 2일에는 역시 우이교회에서 함께 지냈던 오랜 친구 태영, 희용, 명곤 등과 만나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육군과 공군의 지휘관이었던 두 친구 덕분에 간간히 골프모임을 하는 호사를 누리는데 실력은 제각각 다르고 특히 나는 점수를 기록할수도 없을 정도지만 옛 우정이 이어주는 만남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느끼게 하는 모임이다. 세월이 가는만큼 사회적 활동이 줄어들수록 친구의 소중함은 더 뚜렷해지지 않을까 싶다. 오랫만에 고국을 찾은 친구 은영씨와 선배님이 내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특히 멋지게 자란 두 따님 가원 승원의 앞길에 좋은 일이 가득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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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묵으로 그린 초상

광주시립미술관의 김호석 수묵화전 개막전에 참석했다. 먹과 붓 만으로 오랜 동안 작업을 해 온 작가인데 정근식 교수가 축사를 한다고 알려와서 가게 되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지만 GIST에서 외곽 고속도로를 통해 많은 시간 걸리지 않고 갈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전시회 장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고 뜻밖에 시인 박남준도 반갑게 만났다. 화동 악양 마을에서 살고 있는 그도 이 전시회를 보러 일부러 광주를 찾았다 했다.

초기 작품에는 더러 채색이 있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작품이 먹의 농담만으로 표현된 수묵 담채였다. 통상의 전통 수묵화가 자연풍경을 대상으로 한 것이 많은데 비해 이 작가는 인물과 동물을 주로 대상으로 삼았다. 특히 현실 속의 인물들을 초상화의 형태로 그려왔는데 최근에 오면서 역사성이 담긴 시대화를 그리기도 하고 작은 곤충의 모습을 통해 환경주의적 메시지를 담으려 한 모습도 보인다. 사실성에 기초한 섬세한 묘사에 과감한 붓질, 생략과 추가의 독창적 구도를 통해 작가만의 독특한 작품을 만들고 있는 듯 했다.

미국 화단에서 주목을 받았다고 언론에 소개되었던 황희의 초상화는 마치 흔들려 찍은 사진처럼 눈과 코와 입술이 모두 두 겹으로 그려져 있다. 한 인물이 보여주는 상이한 면모를 이런 입체적 기법으로 드러내려 했다고 설명되는 모양이다. 실제로 위 아래로 그려진 네 개의 눈동자를 자세히 들여다 보노라면 외양의 눈과 내면의 눈을 함께 그린 것이 더욱 사실적이라는 느낌조차 갖게 된다. 도산 안창호의 얼굴을 그린 거대한 초상은 살아있는 듯한 눈매와 결연한 표정, 힘찬 붓질의 수염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좋아하는 인물을 저런 붓터치로 나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개인적으로는 ‘아들인 줄 알았는데 허공이었다’는 제목의 그림이 강렬해서 그 작품 앞에서 한동안 발을 떼지 못했다. 어머니인듯 한 여성이 누군가를 안고 있는데 정작 그 품에는 아무도 없이 텅 비어있다. 언뜻 보면 그리다 만 미완성 작품 같기도 한데 제목을 읽으면서 비로소 이 빈 공간의 의미가 와 닿는다. 허공이지만 아들인 줄 알고 감싸안은 여인의 모습을 통해 빈 여백 속에 귀한 무언가가 담겨 있을 수 있다는 희망을 말하는 듯 하다. 그런가하면 무언가 소중했던 것이 사라지고 없다는 안타까움을 그린 것 같다. 보기에 따라서는 허공조차도 아들로 알고 따뜻하게 껴안을 수 있다는 희망과 의지를 읽을 수도 있겠다. 작가의 어머니가 그 아들을 군대에 보내며 그린 것이라는 누군가의 설명을 들으면서 연민, 사랑, 회한 등의 복잡한 심사를 함께 느껴본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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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과 수성동계곡

오랫동안 가보고 싶었던 수성동계곡과 인왕산 성곽길을 다녀왔다. 한반도평화연구원 활동으로 인연을 맺은 분들과 모처럼의 저녁 모임을 갖게 된 곳이 이 주변이어서 미리 마음을 정해둔 여정이었다. 마침 날씨도 좋고 벗꽃도 만개한데다 곳곳에 진달래가 화사하게 피어 생각지 않은 즐거움도 컸다. 호젓하게 자유로이 윤동주 기념관과 한양도성 성곽길을 둘러본 것은 덤으로 누린 기쁨이었다.

수성동계곡은 겸재 정선의 그림 [장동팔경첩] 수성동의 현장이고 서울의 난개발 과정에서 사라져버렸던 돌다리와 계곡이 아파트 철거로 다시 드러나 옛모습을 찾게 된 곳이다. 겸재가 이곳을 유명하게 만들었고 이곳 둘레길에는 진경산수탐방이라는 팻말이 붙여져 있다. 하지만 이곳은 그 이전부터 풍류를 즐기던 문사들이 즐겨 찾던 장소다.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은 이곳에 비해당이란 정자를 짓고 당대 최고의 선비들과 시를 짓고 담소를 나누었는데 이들이 이곳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48詠詩’ 일부가 전해져 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수 년 전 서울대 화묵회 전시에 대나무 수묵화를 출품했다. 그림에 어떤 글을 적을까 생각하다가 성삼문이 안평대군과 더불어 주고받은 ’48영시’의 한 부분을 썼다. “度竹風聲碧 含風竹影淸” (대 숲 지나는 바람소리 푸르고/ 바람 머금은 대 그림자 맑다). 심경호 교수의 저서 덕분에 몽유도원도를 그린 안견을 비롯한 조선조 선비들과 안평대군 간에 주고받은 시들을 접해본 덕택이다. 수성동계곡을 오르면서 나는 안평, 안견, 성삼문, 박팽년, 겸재 등 만나본 적 없는 이들의 이름을 떠올렸다.

돌다리가 있는 수성동 입구는 버스 종점 바로 앞이었다. 조용하고 멋진 계곡의 풍광을 상상했던 나로서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계곡의 규모가 작아 물이 제대로 흘러도 작은 개울 수준을 넘기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인왕산 정상을 향한 길을 오르면서 아름다움은 반드시 장대함에서 오는 것이 아님을 이내 깨달았다. 다양한 모양의 바위와 작은 골짜기, 크고 작은 나무들이 한데 어우러져 빚어내는 진경산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경복궁 옆부터 인가 없는 길을 지나 이곳으로 오르던 이들에게 수성동은 말 그대로 조선산수의 정형과도 같은 풍경으로 와 닿았을 법하다.

인왕산 정상에서 내다보는 서울의 풍경은 장쾌하고 시원했다. 남산을 바라보면 시내의 전경이 눈에 들어오고 백운대 방면으로 눈길을 돌리면 아스라히 북한산 줄기가 다가온다. 그 사이로 청와대를 품은 북악산의 아름다운 자태도 또렷하다. 이 모든 것을 아우르면서 성곽둘레길이 이어져 있어 또다른 멋스러움을 더한다. 이곳의 성곽은 그 높이가 낮고 주변과 너무 잘 어우러져 외침을 막기 위한 군사적 목적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위한 미학적인 이유로 세운 것 아닐까 여겨질 정도다. 모처럼의 멋진 기억을 오래 간직하려 겸재의 문하생이 된 기분으로 화선지를 펴고 수묵으로 인왕산과 기린교, 계곡을 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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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쾌한 삶 무거운 숙제

동네 사회학자를 자처하면서 새로운 삶의 형식을 실천하고 있는 조형근 박사가 [나는 글을 쓸 때만 정의롭다]라는 책을 출간했다. “연대사회를 갈구하는 어느 지식인의 자기성찰”이라는 부제 그대로 조박사는 진지한 사색과 성실한 생활에서 우러나오는 진솔한 생각들을 이 책에 담았다. 글의 형식은 딱딱한 논문투가 아닌 에세이 같지만 담긴 내용의 깊이와 폭은 매우 깊고 넓다. “계시가 아니라 고백이라 좋고 고뇌하되 중심을 잃지 않아 좋다”는 한 평자의 지적에 공감이 간다.

조박사는 서문에서 이 책을 쓰게된 계기의 하나로 ‘그럭저럭 살기가 불가능해’진 상황을 꼽았다. 구체적으로는 세월호 사건을 들었지만 글의 곳곳에서 그의 이런 지적 성실함은 그 이전부터 지속된 것이었음을 확인한다. 그는 세상을 비판하는 글은 동시에 자신을 성찰하는 고백록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데 실제 그의 글은 자신의 경험에서 시대를 읽고 개인적 한계에서 사회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섬세함으로 가득차있다.

저자는 자신이 동네 사회학자임을 자처한다. 실제로 신문지상의 저자 소개에 다른 수식어 없는 사회학자라는 타이틀을 붙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소수의 사람 중 하나다. 대학교수직을 버리고 동네책방과 크고작은 문화활동에 참여하면서 그의 마음은 편안해지고 시선은 더욱 예리해졌다.

더구나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에 살면서 동네라는 작은 현장, 사람들이 사는 공간에 발딛고 있는 생동감이 뚜렷하다. 1988년 사당동 철거촌에서의 기억을 잊지 않는 조박사의 글은 그의 말대로 ‘찾아온 길이면서 돌아온 길’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진솔함이야말로 변함없는 글과 생각의 힘이 아닐까. 조형근 박사의 책이 던진 화두 앞에 반가움과 무거움을 함께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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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서는 땅’

2월 17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중인 임옥상 화백의 일어서는 땅을 관람했다. 친구인 이승재 교수와 함께 갔는데 프랑스에서 왔다는 외국인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열정적인 임화백의 설명들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들은 열심히 작품을 보고 또 통역을 통해서 작가의 해설을 경청했다. 임화백과 사진을 찍으려하고 함께 포즈를 취하면서 기뻐하는 모습들 속에서 예술이 갖는 힘과 함께 국제적인 셀럽이 된 임화백의 존재감이 크게 와 닿았다.

흙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이전에도 보아왔지만 그림과 글씨를 함께 묶고 흙과 철과 땅을 연결하는 놀라운 발상과 스케일에 가히 압도당했다. 특히 봄이 되어서인지 매화 작품들이 인상적이었다. 겸재의 매화 병풍을 연상케 하는 오랜 고매화의 힘찬 등걸, 뒤틀리면서도 용솟음치는 역동성, 바람에 휘날리는 잔가지들, 꽃비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흐드러진 매화꽃잎들… 백매의 아름다움과 홍매의 화려함이 모두 격조와 스케일로 감동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임화백과 점심을 함께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얼마전 미국방문에서의 경험담에 더하여 최근 인터넷, 디지털 기술문명이 화단에도 영향을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흥미있는 말도 들었다. 보관과 전시, 제작에 여러 한계를 지니는 실제의 작품보다 이미지와 영상으로 만들어지고 거래되는 변화가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벤야민이 말했던 복제기술 시대의 예술론이 일상화되는 느낌이었다.

chat GPT 로 인한 교육과 글쓰기에서의 새로운 상황이 초래하는 내 경험도 함께 화제가 되었다. 과학기술문명의 영향이 그 어느때보다 심대하고 조밀해지는 시대에 학문과 예술, 진리와 품격을 유지하고 가꾸어갈 지혜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큰 숙제라는데 공감했다. 그럴수록 창조력을 지닌 지식인과 임화백 같은 예술가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 질 것이다. 제아무리 인터넷과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시대가 오더라도 창조와 혁신, 품위와 기개는 역시 사람의 몫일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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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속 사람과 자연

봄은 매화와 더불어 오는가. 한겨울 매서운 날씨를 견디고 고고하게 계절의 변화를 알라는 매화의 향기가 곳곳에서 풍겨난다. 예로부터 매화는 그 기개와 품성이 선비와 닮았다 해서 사군자의 첫 소재로 꼽혔고 고택이나 서원의 한 켠에 자리해야 할 것처럼 여겨지곤 했다. 남도 섬진강변과 하동지방은 산기슭을 온통 매화가 차지할 정도로 군락을 이룬 곳들이 적지 않다. 매실을 재배하는 농원들이 많기 때문이겠지만 남도의 야트막한 산세와 풍광이 일조를 했을 터이다. 하동에서 벌어지는 매화축제에는 100만명을 넘는 사람들이 찾아온다.

한국사회사학회 활동을 처음부터 함께 했고 이제는 학계에서 퇴임하여 정담을 나누던 사시친 멤버들이 모처럼 매화 답사길에 나섰다. 고매로 이름난 승주의 선암사, 홍매로 유명한 화엄사를 비롯하여 사람들로 들끓는 매화축제장 농원도 들렀다. 여행이 꽃구경 만일 수는 없는 법, 박경리의 토지의 무대로 알려진 악양에 묵으면서 이런 저런 사람도 만났다. 악양별서라는 멋진 이름의 집에서 시와 춤과 노래의 작은 모임도 갖고, 오래된 집을 멋진 전시관으로 만든 빈산 갤러리에서 작품도 감상했으며 조씨 고택에서 조선조 명문가의 위세와 품격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높은 산마루에 올라 사방을 에워싼 지리산 능선, 그 속에 넓게 자리잡은 땅, 굽이치는 섬진강을 한 눈에 바라보는 즐거움도 맛보았다.

선암사의 고매는 아름다운 사찰의 풍경과 어우러져 장관이었다. 태고종으로 많은 불사를 하지 않아 오히려 고풍스런 옛 아름다움이 유지되고 있다는 역설이 새삼스러웠다. 이곳에는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비롯하여 이름있는 사람들의 현판들이 여럿 있다. 화엄사는 홍매 한 그루가 대웅전에 맞먹는 높이로 장중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전에 이곳을 왔을 때 국보로 지정된 각황전 앞의 사자석등에 눈이 머물렀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는 우람한 기세의 등걸과 붉은 색의 화려함으로 사찰의 분위기를 일거에 바꾸는 홍매의 절경에 사로잡혀 다른 곳이 보이지 않는 느낌이었다. 가히 명불허전이다. 평소에 매화는 백매가 본류이고 홍매는 웬지 아류 같이 여겨졌는데 화엄사 홍매는 내 편견을 일순간 날려버렸다.

재작년 이맘때 제자들이 매암동인이란 모임을 만들었다. 내가 정년을 기념하여 제자들에게 써준 글씨들로 ‘以文會友’ 전시화를 열게 된 것을 계기로 서로의 근황과 관심사를 나누고 소중한 학연을 이어가자는 뜻에서였다. 지금도 개인적으로 또 몇명씩 간간히 만나면서 학문의 길에서 부딪친 생각과 경험들을 나누곤 하는 고마운 제자들이다. 광주과학기술원에서는 또다른 학생들과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번 여행에서도 이런 저런 꿈과 뜻을 지닌 사람들이 개성있는 삶을 살아가는 모습들을 본다. 선암사의 고매, 화엄사의 홍매만 아니라 내가 인연한 이 모든 이들이 각각의 향기와 아름다움을 지닌 매화 나무란 생각을 했다. 좋은 제자를 만난 복을 감사하고 새롭게 이어지는 인연들을 생각하며 선암사 백매의 모습을 화선지에 옮겨본다.

life · 시공간 여행

서소문 성지역사박물관

감동이었다. 숭고한 정신과 아픈 역사, 그리고 탁월한 건축양식이 함께 빚는 숙연한 아름다움 – 서소문 성지역사박물관을 돌아보면서 받은 인상이다. 떠들석한 말과 번잡한 물증 없이도 인생과 역사, 정치와 종교, 서구와 동양, 삶과 죽음의 관계를 묵상하게 만드는 종교적 학습장이다. 어두움과 빛, 직선과 곡선, 절제된 구성에서 성스러움을 실감하는 체험장이기도 하다.

이곳은 원래 조선시대 죄인들을 처형하던 장소인데 특히 많은 천주교도들이 순교의 피를 뿌린 곳이다. 그 아픔을 망각하지 않고 내면의 성찰로 되새김질하게 만드는 이런 공간을 서울의 한복판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고마왔다.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뮤지엄을 들렀을 때, 또 뉴욕 그라운드 제로 기념관을 방문했을 때 받았던, 장중하면서도 슬픈 다크 투어리즘의 미학을 느끼게 한다. 특히 지하의 어두움과 지상의 밝음이 다양한 방식으로 교차되고 대비되는 절묘한 구성이 감동적이었다.

공원 입구 기념탑에는 성인과 순교자들의 명단과 ‘복되어라 의로움에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이라는 중앙 석판이 새겨져 있다.  공원의 한 구석 벤치에는 ‘노숙자 예수’란 청동상이 누워있다. 티모시 슈말츠라는 작가의 작품이란 설명문을 보지 못하면 실제로 한 사람이 공원에서 노숙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할 만하다. 청동상이든 노숙자든 오가는 사람들은 그다지 주목하지 않는다. 강도만난 사람을 두고 지나가던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태도가 오늘날 도시의 바쁜 사람들의 자세와 얼마나 다르겠는가 작가가 묻는 듯 하지만 그 어떤 명시적 메시지도 생략되어 있다.

카톨릭이 서학의 이름으로 전래된 과정을 보여주는 지하의 전시실 역시 절제되어 있다. 유학이 지배하던 조선후기 사회 곳곳에 새로운 사상이 전파되고 생겨나는 흐름을 당대의 전적과 자료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데 서학은 물론이고 실학과 동학, 개화사상이 그 흐름 속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이 눈에 띤다. 기독교의 종교적 측면에 한정하지 않고 그 정신이 지니는 세계문명사적 함의를 역사적 맥락 속에 자리매김하려는 의도가 고급스럽고 반가왔다. 그래서일까 한쪽 벽면에 걸린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던 안중근의 유묵, ‘평화’가 더욱 묵직한 메시지로 다가온다.

지하 3층의 콘솔레이션 홀은 역사 속에서 희생당한 자들을 추모하고 현실에서 지친 인생을 위로하는 곳이라 한다. 공간 전체를 채우는 짙은 어두움 속에 은은한 빛이 비치는 제단이 있어 누구든 무릎을 꿇고 싶은 경건함을 느끼게 한다. 실제로 그 제단 옆에 무릎을 꿇은 한 참배객의 굽은 어깨가 한폭의 성화 같은 실루엣을 만들고 있다. 고개를 돌리면 하늘광장이라 이름한, 위로 뚫린 광장에 사상과 신앙의 자유를 지키러다 희생당한 사람들을 기리는 조형물이 서있고 그 옆 좁은 문을 열면 순례길을 연상케 하는 어두운 회랑 끝에 별같은 빛이 손짓하고 있다. 누군가를 추념하는 장소라기보다 스스로를 위로하고 치유받는 공간이란 생각이 든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방문과 한국순교자 124위의 시복을 기념하기 위해 김경자 작가가 제작한 ‘일어나 비추어라’라는 제목의 나전칠기 작품도 눈이 갔다. 과거, 현재, 미래의 세 부분으로 좁게는 카톨릭 이백년사를 넓게는 한국 근현대사를 그리고 있는데 동양의 예술적 상징과 기독교적 성서관이 아름답게 혼융되어 있다. 십장생도의 미학과 불화의 분위기, 무릉도원에의 꿈도 있고 몽둥이와 칼을 든 사람들, 포승줄에 묶여 끌려가는 사람들, 예수를 품에 안은 피에타상도 있고 각국의 국기들도 있다. 일견 복잡해 보이는 이 모든 상징물들이 희생과 수난을 거쳐 모든이의 평화를 이루는 미래에의 도정을 드러내는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기능적 효율성이나 과욕의 메시지 전달, 다수 대중의 이목끌기에 급급한 현대사회에 이런 절제된 공간미학을 구현하고 만들어가는 카톨릭의 문화역량에 깊은 존경의 뜻을 표하고 싶다.

life · 오늘의 화두

냉안과 허심

음력 설을 하루 앞두고 박규수의 시 한편을 계묘년 신년휘호 삼아 쓴다. ‘냉철한 눈으로 시대의 쟁점을 살피고, 욕심없는 마음으로 고서를 읽는다’ (冷眼看時務 虛心讀古書) 개항기 조선왕조에 몰아닥친 격동의 풍랑을 헤쳐가야 했던 유학지식인의 책임감과 진정성이 잘 드러나는 시다.

관심과 초연, 冷眼과 虛心의 두 측면을 모두 중시하려는 박규수의 마음에 공감이 간다. 현실의 위기와 모순에 두 눈 부릅뜨고 개입하는 참여정신은 소중하다. 동시에 어지러운 세상사로부터 눈을 돌려 내면의 평안을 구하려는 은자의 지혜도 무시해서는 안된다. 전자가 없으면 사회에 무책임해지고 후자가 없으면 실존적 삶에 여유가 없어진다.

두 마리 토끼를 좇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다. 자칫 어느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좌고우면하는 삶이 될 우려도 있다. 2023년 토끼의 해를 맞이했으니 時務에의 관심과 古書로의 침잠이란 두 마리 토끼를 좇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이 바램을 묵향에 담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