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시공간 여행

매화 속 사람과 자연

봄은 매화와 더불어 오는가. 한겨울 매서운 날씨를 견디고 고고하게 계절의 변화를 알라는 매화의 향기가 곳곳에서 풍겨난다. 예로부터 매화는 그 기개와 품성이 선비와 닮았다 해서 사군자의 첫 소재로 꼽혔고 고택이나 서원의 한 켠에 자리해야 할 것처럼 여겨지곤 했다. 남도 섬진강변과 하동지방은 산기슭을 온통 매화가 차지할 정도로 군락을 이룬 곳들이 적지 않다. 매실을 재배하는 농원들이 많기 때문이겠지만 남도의 야트막한 산세와 풍광이 일조를 했을 터이다. 하동에서 벌어지는 매화축제에는 100만명을 넘는 사람들이 찾아온다.

한국사회사학회 활동을 처음부터 함께 했고 이제는 학계에서 퇴임하여 정담을 나누던 사시친 멤버들이 모처럼 매화 답사길에 나섰다. 고매로 이름난 승주의 선암사, 홍매로 유명한 화엄사를 비롯하여 사람들로 들끓는 매화축제장 농원도 들렀다. 여행이 꽃구경 만일 수는 없는 법, 박경리의 토지의 무대로 알려진 악양에 묵으면서 이런 저런 사람도 만났다. 악양별서라는 멋진 이름의 집에서 시와 춤과 노래의 작은 모임도 갖고, 오래된 집을 멋진 전시관으로 만든 빈산 갤러리에서 작품도 감상했으며 조씨 고택에서 조선조 명문가의 위세와 품격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높은 산마루에 올라 사방을 에워싼 지리산 능선, 그 속에 넓게 자리잡은 땅, 굽이치는 섬진강을 한 눈에 바라보는 즐거움도 맛보았다.

선암사의 고매는 아름다운 사찰의 풍경과 어우러져 장관이었다. 태고종으로 많은 불사를 하지 않아 오히려 고풍스런 옛 아름다움이 유지되고 있다는 역설이 새삼스러웠다. 이곳에는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비롯하여 이름있는 사람들의 현판들이 여럿 있다. 화엄사는 홍매 한 그루가 대웅전에 맞먹는 높이로 장중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전에 이곳을 왔을 때 국보로 지정된 각황전 앞의 사자석등에 눈이 머물렀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는 우람한 기세의 등걸과 붉은 색의 화려함으로 사찰의 분위기를 일거에 바꾸는 홍매의 절경에 사로잡혀 다른 곳이 보이지 않는 느낌이었다. 가히 명불허전이다. 평소에 매화는 백매가 본류이고 홍매는 웬지 아류 같이 여겨졌는데 화엄사 홍매는 내 편견을 일순간 날려버렸다.

재작년 이맘때 제자들이 매암동인이란 모임을 만들었다. 내가 정년을 기념하여 제자들에게 써준 글씨들로 ‘以文會友’ 전시화를 열게 된 것을 계기로 서로의 근황과 관심사를 나누고 소중한 학연을 이어가자는 뜻에서였다. 지금도 개인적으로 또 몇명씩 간간히 만나면서 학문의 길에서 부딪친 생각과 경험들을 나누곤 하는 고마운 제자들이다. 광주과학기술원에서는 또다른 학생들과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번 여행에서도 이런 저런 꿈과 뜻을 지닌 사람들이 개성있는 삶을 살아가는 모습들을 본다. 선암사의 고매, 화엄사의 홍매만 아니라 내가 인연한 이 모든 이들이 각각의 향기와 아름다움을 지닌 매화 나무란 생각을 했다. 좋은 제자를 만난 복을 감사하고 새롭게 이어지는 인연들을 생각하며 선암사 백매의 모습을 화선지에 옮겨본다.

life · 시공간 여행

서소문 성지역사박물관

감동이었다. 숭고한 정신과 아픈 역사, 그리고 탁월한 건축양식이 함께 빚는 숙연한 아름다움 – 서소문 성지역사박물관을 돌아보면서 받은 인상이다. 떠들석한 말과 번잡한 물증 없이도 인생과 역사, 정치와 종교, 서구와 동양, 삶과 죽음의 관계를 묵상하게 만드는 종교적 학습장이다. 어두움과 빛, 직선과 곡선, 절제된 구성에서 성스러움을 실감하는 체험장이기도 하다.

이곳은 원래 조선시대 죄인들을 처형하던 장소인데 특히 많은 천주교도들이 순교의 피를 뿌린 곳이다. 그 아픔을 망각하지 않고 내면의 성찰로 되새김질하게 만드는 이런 공간을 서울의 한복판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고마왔다. 베를린의 홀로코스트 뮤지엄을 들렀을 때, 또 뉴욕 그라운드 제로 기념관을 방문했을 때 받았던, 장중하면서도 슬픈 다크 투어리즘의 미학을 느끼게 한다. 특히 지하의 어두움과 지상의 밝음이 다양한 방식으로 교차되고 대비되는 절묘한 구성이 감동적이었다.

공원 입구 기념탑에는 성인과 순교자들의 명단과 ‘복되어라 의로움에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이라는 중앙 석판이 새겨져 있다.  공원의 한 구석 벤치에는 ‘노숙자 예수’란 청동상이 누워있다. 티모시 슈말츠라는 작가의 작품이란 설명문을 보지 못하면 실제로 한 사람이 공원에서 노숙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할 만하다. 청동상이든 노숙자든 오가는 사람들은 그다지 주목하지 않는다. 강도만난 사람을 두고 지나가던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태도가 오늘날 도시의 바쁜 사람들의 자세와 얼마나 다르겠는가 작가가 묻는 듯 하지만 그 어떤 명시적 메시지도 생략되어 있다.

카톨릭이 서학의 이름으로 전래된 과정을 보여주는 지하의 전시실 역시 절제되어 있다. 유학이 지배하던 조선후기 사회 곳곳에 새로운 사상이 전파되고 생겨나는 흐름을 당대의 전적과 자료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데 서학은 물론이고 실학과 동학, 개화사상이 그 흐름 속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이 눈에 띤다. 기독교의 종교적 측면에 한정하지 않고 그 정신이 지니는 세계문명사적 함의를 역사적 맥락 속에 자리매김하려는 의도가 고급스럽고 반가왔다. 그래서일까 한쪽 벽면에 걸린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던 안중근의 유묵, ‘평화’가 더욱 묵직한 메시지로 다가온다.

지하 3층의 콘솔레이션 홀은 역사 속에서 희생당한 자들을 추모하고 현실에서 지친 인생을 위로하는 곳이라 한다. 공간 전체를 채우는 짙은 어두움 속에 은은한 빛이 비치는 제단이 있어 누구든 무릎을 꿇고 싶은 경건함을 느끼게 한다. 실제로 그 제단 옆에 무릎을 꿇은 한 참배객의 굽은 어깨가 한폭의 성화 같은 실루엣을 만들고 있다. 고개를 돌리면 하늘광장이라 이름한, 위로 뚫린 광장에 사상과 신앙의 자유를 지키러다 희생당한 사람들을 기리는 조형물이 서있고 그 옆 좁은 문을 열면 순례길을 연상케 하는 어두운 회랑 끝에 별같은 빛이 손짓하고 있다. 누군가를 추념하는 장소라기보다 스스로를 위로하고 치유받는 공간이란 생각이 든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방문과 한국순교자 124위의 시복을 기념하기 위해 김경자 작가가 제작한 ‘일어나 비추어라’라는 제목의 나전칠기 작품도 눈이 갔다. 과거, 현재, 미래의 세 부분으로 좁게는 카톨릭 이백년사를 넓게는 한국 근현대사를 그리고 있는데 동양의 예술적 상징과 기독교적 성서관이 아름답게 혼융되어 있다. 십장생도의 미학과 불화의 분위기, 무릉도원에의 꿈도 있고 몽둥이와 칼을 든 사람들, 포승줄에 묶여 끌려가는 사람들, 예수를 품에 안은 피에타상도 있고 각국의 국기들도 있다. 일견 복잡해 보이는 이 모든 상징물들이 희생과 수난을 거쳐 모든이의 평화를 이루는 미래에의 도정을 드러내는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기능적 효율성이나 과욕의 메시지 전달, 다수 대중의 이목끌기에 급급한 현대사회에 이런 절제된 공간미학을 구현하고 만들어가는 카톨릭의 문화역량에 깊은 존경의 뜻을 표하고 싶다.

life · 오늘의 화두

냉안과 허심

음력 설을 하루 앞두고 박규수의 시 한편을 계묘년 신년휘호 삼아 쓴다. ‘냉철한 눈으로 시대의 쟁점을 살피고, 욕심없는 마음으로 고서를 읽는다’ (冷眼看時務 虛心讀古書) 개항기 조선왕조에 몰아닥친 격동의 풍랑을 헤쳐가야 했던 유학지식인의 책임감과 진정성이 잘 드러나는 시다.

관심과 초연, 冷眼과 虛心의 두 측면을 모두 중시하려는 박규수의 마음에 공감이 간다. 현실의 위기와 모순에 두 눈 부릅뜨고 개입하는 참여정신은 소중하다. 동시에 어지러운 세상사로부터 눈을 돌려 내면의 평안을 구하려는 은자의 지혜도 무시해서는 안된다. 전자가 없으면 사회에 무책임해지고 후자가 없으면 실존적 삶에 여유가 없어진다.

두 마리 토끼를 좇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다. 자칫 어느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좌고우면하는 삶이 될 우려도 있다. 2023년 토끼의 해를 맞이했으니 時務에의 관심과 古書로의 침잠이란 두 마리 토끼를 좇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이 바램을 묵향에 담아 본다.

life · 시공간 여행

The Life 와 real life

보스턴 아트 뮤지엄의 특별전시를 관람했다. The Power of Photography 라는 부제를 달고 잡지 The Life 의 역사를 보여주는 자리였다. 전쟁, 폭동, 축제, 슬픔, 기술 등 삶의 현장 곳곳을 카메라에 담으려 애쓴 작가들, 그 순간의 진실을 보도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았던 기자와 편집인들의 수고와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세계대전, 한국전쟁, 아폴로 달착륙, 르완다 내전 등 현대사의 장면들이 여러 사진 속에 담겨있었다.

아마도 사진의 힘은 현실의 정확한 재현능력에 있을 것이다. 부인할 수 없는 현장성, 살아있고 움직이는 모습을 포착한 사진의 사실성을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호소력과 증언력을 지닌다. 죽음이 널려있던 전장에서 망연해하는 병사의 모습이나 1945년 8월 17일 종전 소식을 듣고 길거리에서 환호하는 시민의 모습은 평화에의 갈망을 그 어떤 매체보다 더 리얼하게 보여주는 힘을 지녔다.

하지만 사진의 힘을 대체하는 매체환경의 변화로 인해 The Life 지는 더 이상 존속할 수 없게 되었다. 그 퇴장을 안타까와하는 여러 움직임과 목소리가 있지만 텔레비젼을 필두로 하는 전자영상 기술의 확대는 사진의 힘을 현저히 약화시켰다. 아폴로 우주선의 달착륙 소식을 전하는 순간, The Life 지의 독점적 영향력을 텔레비젼 중계가 대체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전시공간에는 웬지 쓸쓸함이 자리한 듯 했다.

온갖 영상물이 범람하고 사진이 일상의 취미가 되어버린 요즈음 ‘사진의 힘’은 더 이상 사실성과 재현성에 있지 않다. 사진은 과시와 자랑과 취향의 도구가 되거나 상상의 이미지로 변형되기 일쑤여서 이제 사진 그 자체의 사실성에 감동하는 경우는 현저히 사라졌다. 팩트와 허구가 결합된 팩션 (faction)이 강조되는 것도 이런 영상 기술의 발전과 깊이 결부된 현상이다. 이미지의 시대, 상상력의 시대라고 불리는 21세기에 사진의 힘은 어떻게 변형되고 존속할 것인가 궁금해진다.

life · 시공간 여행

보스턴 도원기

날씨는 차가왔지만 꿈같은 기간이었다. 보스턴에서의 가족여행은 기대 이상의 만족감으로 마치 ‘도원’에 와 있는 듯 했다. 새롭고 멋진 장소나 유적을 여행해서가 아니라 가족과의 대화와 여유로운 휴식, 그 가운데서 잔잔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여건에서 얻어진 것이었다. 나는 안견의 ‘몽유도원기’를 떠올리면서 이번 여정에 ‘보스턴 도원기’라는 이름을 붙여본다.

늘 바빴고 일에 부대꼈던 지난 시기, 부담없이 평안하게 가족들과 감정과 시간을 공유한 기회가 너무 적었다. 사랑을 표하는데도 인색했고 아이들과 대화하는 역량도 부족했다. 잘 자라준 아이들이 고마우면서 마음 속 깊이 미안한 감정이 적지 않다. 그래서인가 더욱 이번의 시간이 너무 뜻깊고 소중했다. 그냥 같이 있는 것, 함께 먹고 마시며 쉬는 것, 그러면서 잔잔한 사랑을 확인하는 것 – 최고의 여행이라 할 만 했다.

손녀 이든과 올리브의 재롱과 웃음은, 그것만으로 하루 종일을 보내도 모자랄 신비로운 모습이었다. 영롱한 눈망울을 반짝이면서 ‘이게 뭐에요?’ 라고 묻다가 맘에 들지 않으면 토라지고 또 금방 기쁘게 안겨오는 아이는 소중하고 역동적인 생명 그 자체다. 이런 아이로부터 할아버지라고 불릴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인생의 축복이다.

특히 장성한 아들 종인이와 오랜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 아들이 운전하는 차에 앉아 이곳 저곳을 다니며 식사를 함께 하고, 저녁엔 술 한잔을 나누며 시간을 공유한 기억은 오랫동안 남을 것 같다. 내가 대학을 입학했을 때 아버지가 다방에서 아들과 커피를 마시는 순간을 무척 기뻐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 때 그 분도 지금 나와 같은 심정이셨으리라. 여행 내내 아들이 살아갈 미래에 건강과 행복, 자신감과 활력이 늘 함께 하기를 마음으로 기도했다.

귀한 휴가시간을 모두 내어 화이트마운틴 좋은 곳에 집을 얻고 긴 시간 가족과 함께 할 여건을 만든 딸과 사위가 고마왔다. 어린 어이들을 키우면서 하루도 단잠을 자기가 어려운 형편인데도 기쁘게 그 모든 것을 감당하고 직장에서도 능력을 발휘해가는 것이 대견하고 든든했다. 이렇게 있다가 떠나면 당분간 허전함이 있을텐데 몸과 마음이 늘 건강하고 삶의 보람이 계속되기를 내내 기도했다. ‘도원’이라고 이름할 정도로 좋았던 시간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 마음 깊은 곳에서 아이들을 위해 기도한 시간이기도 했다.

life · 오늘의 화두

감동 감사 감내

2022년이 가고 있다. 변화가 컸던 한 해다. 코로나의 여진 속에서 일상은 그런대로 회복 중이지만 환경도 관계도 마음도 적지 않게 변했다. 정권의 교체와 이념갈등, 집값 폭등과 폭락, 청년층의 좌절과 세대격차, 디지털 기술의 명암, 재난을 내장한 역동성 등 전례없이 많은 문제들이 터져나온 한 해다. 2023년에도 역대급 경제불황이 닥칠 것이고 한반도 긴장도 심해질 것이란 암울한 전망이 뒤를 잇는다. 탈냉전 평화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우크라이나 전쟁도 해를 넘길 것이 분명하다.

박노해의 “여명에 물을 긷다”란 시를 떠올린다. 해뜨는 순간, 여명의 시간이 ‘생의 신비’라고 노래하는 시인은 에티오피아의 척박한 땅에서 먼 길을 걸어 물을 길어오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을 상상한다. 그 무의미해 보이는 일상의 반복 속에 놀랍게도 사랑과 희망이 자라고 그 힘이 삶의 무게를 감당케 한다는 것이다. ‘감동하고 감사하고 감내하며’ 라는 마지막 연은 이런 생의 역동성, 신비로운 힘을 확인하는 사람들에게서 찾아지는 독특한 품성이다.

감동의 정서가 점점 사라지는 것 – 현대인의 병폐이자 늙어가는 징조다. 감사하는 마음이 줄어드는 것 – 인간성의 고갈과 자기중심성의 표지다. 감내할 여력이 없어지는 것 – 믿음과 희망이 사라지는 시대의 징표다. 역설적으로 감동, 감사, 감내는 이런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낼 핵심적인 자산이 된다. 얻기 여려운 것 같지만 누구든 마음공부로 얻을 수 있는 자산이기도 하다. 이 자세로 2022년을 마무리하고 2023년을 맞이할 것을 다짐해 본다.

life · 오늘의 화두

양림동 근대문화유적

12월 6일 광주시 양림문화마을을 탐방했다. 호남지방의 근대화 과정, 특히 기독교를 중심으로 진행된 초기의 다양한 변화가 역사적인 건물과 함께 농축되어 있는 곳이다. 이전부터 남도답사 대상 리스트에 올려 놓았었는데 이제야 현장을 오게 되었다. 오웬, 유진벨 등 이름이 익숙한 초기 선교사들의 삶이 배어있는 공간과 기념물을 둘러보았고 최흥종, 조아라, 김필례, 김현승 등 이곳에서 배출된 초기 한국 지도자들의 행적도 그들이 활동했던 병원,교회, 학교, 기념관 속에서 만날 수 있었다.

도로변의 한 건물이 눈에 띠었다. 붉은 3층 건물의 외벽에 이국적인 선교사 얼굴이 장식처럼 붙어있고 흰색의 부조로 제작된 ‘최후의 만찬’ 작품이 걸려있다. 가만히 보니 예수를 한 가운데 두고 좌우로 이 지역에서 헌신했던 선교사와 초기 기독교 리더들 11명을 배치한 것이다. 베드로, 요한 등을 대신하여 오웬, 유진벨, 쉐핑, 정율성, 최흥봉, 조아라 등을 식탁 주위에 배치한 창조적 구성이 놀랍다. 저런 작품을 상상하고 저런 컨텐츠를 거리에 조성할 수 있는 이 지역의 문화적 안목이 대단하다.

호남신학교에 연한 작은 동산에는 이곳에서 활동하고 생을 마친 벽안의 선교사들이 잠들어 있는 묘역이 있다. 그 뒤에는 일제시대와 6.25를 거치면서 순교한 호남지방의 850여 순교자들을 기리는 돌비가 세워져 있다. 동산을 돌아나가는 곳에 이들 순교자들의 이름을 새긴 돌계단이 있는데 ‘고난의 길’이란 이름처럼 한발 한발 걸으며 인생을 생각하게 한다. 종교사회학자로 대학에서 가르치다가 양림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셨던 노치준 목사께서 이곳저곳을 설명해 주어 더욱 깊은 이해를 할 수 있었다.

묘역에서 내려오면서 유진밸 기념관을 들러 4대에 걸친 이 가문의 헌신적 활동을 살펴보았다. 100년 이전 가난하고 낙후한 한국, 식민지로 전락한 조선인들과 살기로 작정한 저들의 헌신과 수고는 참으로 고귀한 것인데 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생각만큼 살갑지 않다. 한 때 북한돕기활동으로 만나곤 했던 인세반, 인요한 형제의 사진도 반갑게 확인했다.

이 지역에 큰 발자취를 남긴 오방 최흥종 목사의 일생을 자세히 알게 된 것도 큰 보람이었다. 3년전 완공되었다는 오방기념관에서 손자인 최협 교수를 반갑게 만났고 그로부터 직접 여러 설명을 들었다. 낯선 선교사와의 만남이 계기가 되어 회심한 이후 평생 한센인을 위한 헌신자로 생활했고 평양신학교를 거쳐 시베리아 선교사로 활동한 신앙인이었으면서 3.1운동, 신간회, YMCA, 노동공제회 등 한국의 근현대사 곳곳에 깊은 족적을 남긴 최 목사의 활동 폭은 참으로 놀랍다.

기념관의 전시 내용을 통해 초기 한국기독교에는 참으로 폭이 넓고 뜻이 깊은 어른들이 계셨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옥고도 치루었고 해방 직후 사회정치적 영향력이 컸을 법한데 스스로 권력과 명성을 멀리했다 하니 왜 백범 김구가 그에게 ‘和光同塵’이란 휘호를 남겼는지 이해될 듯 했다. 공식역사에서조차 힘있는 유명인들만 기억되는 오늘날 뒤늦게라도 이런 기념관이 세워진 것이 얼마나 다행한가.

최근 젊은 여행객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는 펭귄마을도 양림동의 중요한 한 모습이다. 정겨운 골목길, 오랜 담장들 곳곳에 재미있는 사진과 글귀를 붙이고 옛날 형식의 사진관과 점방 등을 만든 도시재생의 한 사례다. 선교와 교육과 계몽과 의료라는 중요하면서도 다소 무거운 분위기가 깉은 공간과 달리 이곳은 일반인들의 일상적 삶에 기반한 만큼 유쾌하고 소박한 느낌이 강했다.

골목길에 선교사와 기독교 지도자들의 이름이 붙여져 있고 담장에 이들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걸로 미루어 당시의 근대문물이 주민들에게 이질적이거나 거부감을 주진 않았음이 분명하다. 종교적 가치와 계몽적 과학이 잘 어우러진 현장이었다 하겠다. 선교사들의 집과 기념관은 대체로 우아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지니고 있다. 영화를 찍을 때 배경으로 선호되기도 하고 문화공원으로 조성되어 시민교육의 현장이 되고 있는 것도 좋아보인다.

다만 유산으로 남는 것과 현실의 영향력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닐 터이다. 종교와 역사가 지닌 무게감과 여행과 소비의 즐거움 사이의 차이도 점점 커진다. 한국의 기독교가 세계적 규모를 자랑하며 성장해오는 동안 가난하고 병든 민중과 함께 했던 모습은 점점 기념관 속으로 박제화되고 있는게 안타까운 현실이다. 저 유서깊은 공간과 건물에 담겨있는 숭고한 헌신과 교훈이 과거의 유적이나 기념물로만 남지 않으려면 어떤 노력이 더해져야 할까 내내 머리에 맴돈 생각이다.

activities · life · 시공간 여행

書藝無疆

서울대 문화관에서 10월 24일부터 28일까지 열린 한중합동의 [가없는 서예술: 書藝無疆] 서예전에 참가했다. 한국측은 소동파를 비롯한 중국의 시문을, 중국측은 이규보와 퇴계 등 한국의 문장을 쓰는 방식으로 기획된 일종의 문화교류 행사다. 서울대 교직원 서예모임인 화묵회가 홍콩 학자들의 서예단체 集古學社와 함께 개최한 이 전시에 나는 전적벽부 전문을 쓴 작품을 출품했다.

적벽부는 첫 문장을 비롯해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구절이 더러 있다. 하지만 올 여름 文徵明 서첩을 구해 그의 행서를 임서해보면서 비로소 내용 전체를 제대로 음미할 수 있었다. 배 위에서 동파와 객이 주고받는 대화는 지금 읽어도 우아한 품격이 느껴지는 고품질의 토크다. 한 때 일세영웅이었던 조조를 생각하다가 그도 세월이 흐르니 흔적조차 없어졌음을 깨달은 객은 “장강의 끝없음을 부러워하고 인생의 유한함을 슬퍼” 하는 마음을 담아 애절한 통소를 불었다.

그 소리에 화답하여 소동파는 “만물을 그 변하는 것에서 보면 어느 것 하나 순간이 아닌 것 없지만, 변하지 않는 면에서 보면 모든 것이 끝없이 존속하는 것” 임을 강조한다. 인생도 산하도 변화하는 것과 지속되는 것이 동전의 양면이니 어느 한 면에 매달려 자만하거나 애석해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럴 때에야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이 ‘조물자’가 우리에게 준 무진장의 선물임을 깨닫게 된다는 말도 덧붙인다. 造物者라는 표현에서 느껴지는 종교적 깨달음이라 할까, 인간과 자연을 함께 생각하는 달관이라 할까 독특한 여유와 정조가 마음에 와 닿는다.

중국측 출품작 가운데서는 홍콩 중문대학 심천학장 徐揚生이 퇴계 이황이 기대승에게 보낸 글을 쓴 작품이 글씨도 멋스럽고 내용과 구도도 마음에 들었다. “선비가 태어나 혹 출세하기도 하고 혹 은거하기도 하며 혹 뜻을 이루기도 하고 혹 불우하기도 하지만 오로지 자기 몸을 정결하게 하고 옳음을 행할 뿐 禍福을 논할 것은 아니다.” 조선 유자의 반듯함이 드러나는 글인데 소동파의 도학적인 분위기와 이퇴계의 유학적인 정신이 같은 듯 다른 듯, 화이부동의 싫지않은 긴장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 현실을 돌아보면 삽시간에 저련 정신의 여유가 사라지고 만다. 도무지 품격이란 찾아볼 수 없고 개인과 자파의 ‘화복’만 따지는 국내의 정치현실, 자국의 이익 앞에 인류의 공존이 위협받는 국제정세, 핵무장론이 등장할만큼 어려워진 남북관계 등 답답한 상황을 앞에 두고 소동파와 이퇴계는 무어라 조언할까? 또 통소를 불던 저 객은 어떤 노래를 부를까? 한중 민간의 문화교류가 정치갈등의 파고를 넘어 서로를 존중하며 순항할 것인가? 전시회를 지키면서 자문해본 물음들이다.

life · 시공간 여행

금성산성

11일 오후 담양 금성산성을 올랐다. 원래 광주시 양림역사문화마을을 둘러볼 계획으로 출발했는데 노치준 목사께서 당신이 안내할 수 있는 날 오기를 원하는 문자를 보고 행선지를 도중에 바꾼 것이다. 금성산성은 의병운동과 동학농민운동 관련 자료에서 본 적이 있고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이 멋있어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가로수가 멋지게 도열한 옛 신작로 길을 꽤 달려 도착한 금성산성 주변은 갓 시작한 듯 보이는 고급 팬션이 주인공처럼 자리잡고 있었다. 멀리 산자락을 내다보는 좋은 자리에 멋진 카페와 숙소가 있고 잔디마당에는 젊은 사람들이 모여 사진 찍느라 여념이 없다. 그 아래에는 캠핑장도 있다고 하니 이 일대가 이런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 듯하다. 그러고보니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굳이 금성산성이란 역사적 유적을 의식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주차장에서 산성까지는 2키로의 산길을 올라야 한다. 비교적 길은 잘 닦여져 있지만 군데 군데 돌언덕을 넘어야 해서 손쉽게 오르기엔 다소 벅찬 거리다. 올라가는 동안 꼭 한 명이 호젓이 그 길을 오르고 있었고 산성 주변도 인적을 찾을 수 없었다. 길을 오르면서 계속 떠오른 생각은 이 높은 곳에 성을 쌓고 무엇을 지키려 했던 것일까 하는 것이다.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이런 수고와 정성을 쏟았던 것일까?

높은 산 정상 가까이 바위 위에 세워진 성문과 누각을 보면서 나는 견고한 성문이라기 보다는 중세의 수도원 입구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임진왜란에서 또 동학농민전쟁 과정에서 이곳이 쓰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피란처 역할에 더 가까왔을 법하다. 성문에 ‘보국문’이라는 현편이 걸려있는 걸로 보아 분명 ‘나라’를 지키는 것임은 틀림없는데 그 나라를 이런 산꼭데기에서 지킬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일까? 신앙을 지키려 수도원에 은거하던 마음을 빗대어 본다면 이들에게 국가는 그런 신앙의 대상, 신성한 무엇으로 표상되었을지 모르겠다. ,

정작 이곳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 것은 성문 누각에 서서 멀리 첩첩의 산자락을 바라볼 때였다. 여러 산줄기들이 앞뒤로 겹쳐 이어지는 산맥과 그 사이의 들판을 바라보면서 ‘국토산하’라는 말이 실감있게 와 닿았다. 이들이 지키려던 것은 결국 이 땅이었고 산과 강을 내다보는 이 자리가 그런 산하의식을 자각케 하는 곳이 아니었을까 싶다.

life · 오늘의 화두

秋聲

가을비가 온 종일 내리면서 채 물들지 못한 낙엽들로 마당이 어지럽다. 비 내리는 소리를 듣다가 중국 송대 문장가 구양수의 글 추성부(秋聲賦)가 생각났다. 한 폐친이 이에 관한 이야기를 올려놓은 글을 읽었던 기억 때문일터이다. 인터넷에서 전문을 다운 받아 다시 읽어보았다. 지금 읽어도 명문이니 명불허전이다.

동자와의 문답으로 시작해서 동자 이야기로 마무리되는 글이다. 때론 조용한 듯 때론 요란한 듯 들리는 것이 무엇인가 물으니 동자는 나무들 사이에서 들려오는 소리라 한다. 시인은 이것이 바로 秋聲 곧 ‘가을소리’라 했다. 차갑고 냉정한 기운으로 무성함을 자랑하던 초목의 잎을 떨어뜨리는 가을은 만물변화의 섭리를 드러내는 기운이 드러나는 계절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인가 말년의 김홍도가 추성부를 화제로 한 그림을 남기기도 했다.

불현듯 나도 그 기분을 표현해 보고 싶었다. 먹을 갈고 붓을 잡아 잎이 떨어진 나목 두 그루를 그리고 추성부 문장 가운데 마음에 와닿는 부분들을 적었다. ‘성정이 없는 초목도 때가 오면 내려놓을 줄 안다’고 노래한 시인은 “사람이 금석의 몸을 지닌 것도 아닌데 어찌 초목과 더불어 영욕을 다툴 것인가”라고 자문한다. 그래서 가을소리를 안타까와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덧붙인다.

시인은 가을 소리를 들으면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동자 이야기로 글을 마무리한다. 계절을 즐기지 못하고 인생사의 교훈만 찾으려는 식자들의 버릇에 대한 따끔한 일침을 이런 천진스런 행동 속에 담으려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고보니 가을비를 그냥 즐기지 못하고 이런 저런 일거리를 만들려는 나한테도 던지는 가르침일지 모르겠다. 어쨋든 가을의 정서만은 담뿍 담으려 노력한 소품 한 점이 만들어졌다. 올 가을 거실에 걸어두고 추성을 들어보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