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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4, 마음 속 그림

가없는 바다 한 가운데 동도와 서도가 마주하고 그 사이에 작은 바위가 점처럼 이어진 독도전경은 그 자체로 한폭의 수묵화다. 잿빛 하늘과 검푸른 파도를 배경으로 암갈색의 독도를 향해 배 위에서 마구 누른 카메라 샷 어느 것 하나 명장면이 아닌 것이 없다. 독도는 그 자체가 그림이지만 그리기 좋은 소재이기도 하다. 유명한 화가들이 독도를 그리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전국의 학교, 단체들이 독도그림 그리기, 독도그림 전시회를 주도한다.

일찌기 독도 그림그리기를 주도한 서울대 이종상 화백은 그것을 민족문화를 지키는 운동이라 했다. 초등학생들의 독도그리기는 그림 자체보다 영토주권을 상상하게 만드는 일종의 교육이다. 그래서 독도 그림은 어쩔 수 없이 정치적이다. 올해 초 아이보시 고이치 주한 일본 대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설 선물을 수취거부하고 반송했는데 선물상자에 독도로 보이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라 했다. 독도가 빠진 한반도 그림을 사용한 단체나 책자가 대중의 비난을 받는 사례도 적지 않다. 추상화된 독도 그림이 격렬한 감정정치의 진원이 되는 미묘한 현실이다.

그래서 독도 그림은 백두산, 금강산과 함께 남북간에 공통의 정서를 확인하는 상징이 되기도 한다. 남북이 함께 모이는 곳에는 으례 금강산과 백두산 그림이 걸리는데 독도도 비슷한 기능을 지닌다. 남북관계 개선의 기대가 있던 2019년에는 북한의 대표적 화가 정창모와 선우영의 독도 그림 전시회가 경북에서 개최되기도 했다. 정창모의 이름은 십수년전 평양을 방문했을 때 들었고 만수대 창작소에서 담묵과 농묵만으로 그린 백두산 설경 그림에 경탄한 적이 있다.

독도는 그 자체로 아름답다. 이종상의 “독도의 기 II” 작품은 수묵의 농담으로 상하 대칭의 삼각형 형상을 배치한 것인데 이 그림에서 굳이 정치역사적 의미를 떠올릴 필요는 없다. 먹의 농담만으로 바다위 독도를 그린 정창모의 수묵화 마찬가지다. 사실 독도 앞에 서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바다와 하늘, 섬이 빚어내는 모습에 감탄한다. 흰 화선지 위에 검은 먹으로 잿빛 하늘과 바다 가운데 짙은 색의 독도를 그려보고 싶지만 당분간 머리 속에만 담아두기로 한다. 남북이, 한일이 손잡고 독도를 다시 갈 때면 얼마나 감격스럽게 마음 속 그림이 바깥으로 표출될 것인가! 그 날이 언제나 올까 궁금함과 함께 과연 그런 날이 올까 의구심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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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2, 컨텐츠의 시간성

울릉도에는 여러 기념관과 전시관이 있다. 방문자들로 하여금 독도가 한국령임을 확신하게 만드는 교육공간의 성격이 강하다. 울릉도와 독도의 한반도 귀속을 보여주는 과거의 문서와 지도들이 전시되어 있는가 하면 이곳을 생활터전으로 삼고 살았던 사람들의 행적이 소개되어 있기도 하다. 수토사와 같이 중앙정부에서 파견된 관리의 문서와 활동도 있고 홍순칠 등 독도의용수비대와 같이 민간인의 활동이 중심이 된 전시도 있다. 시마네현 고시를 시작으로 일본이 독도를 침탈한 과정도 소개되어 있는가 하면 해방후 미군정이 독도의 한국령임을 명확히 확인해준 SCAPIN 자료 등도 전시되고 있다.

뜻밖에 방문하게 된 박정희 기념관은 또다른 공간이었다. 1962년 울릉도를 방문한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회의 의장이 묵었던 일본식 관사를 개조하여 제3공화국 시기 개발정책과 성과들을 종합적으로 전시하고 있다. 박정희 정부는 소위 국적있는 교육을 내세워 국가주의 역사관을 강조했는데 그 맥락에서 안용복 기념비를 세우고 독도의용수비대를 청와대로 초청하는 등 독도상징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었다. 이 기념관은 박정희 정부 시기에 진행된 개발과 동원, 상징정치의 여러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다른 전시관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1960년대와 70년대의 기억을 재생하고 있다.

21세기 울릉도의 변화는 심대하다. 관광객은 늘어나지만 2만명에 달하던 주민 숫자는 8,000명 수준으로 줄었다. 어업이 주를 이루던 경제활동 양상도 관광서비스업 중심으로 변모하고 있다. 고즈넉하던 항구와 마을은 관광버스와 렌트카로 혼잡하다. 이미 생태환경의 파괴가 적지 않이 진행되었는데 장차 공항이 들어서면 더 가속화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김대중 정부 하에서 조인된 신한일어업협정이 울릉도와 오키도를 기점으로 중간공동수역을 결정한 것 때문에 적지 않은 논란이 있었는데 그 이후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이곳의 어업활동이나 이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궁금했지만 확인할 길이 없다. 최근의 생활상, 진행되는 문화사를 보여주는 전시관도 마련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독도영유권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전시가 중심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동시에 나날이 바뀌는 현실과 궁금해하는 내용의 다양성을 반영할 컨텐츠 보완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세대감각이 다르고 우리 사회의 문제가 복합적인 만큼 과거와 현재, 육지와 바다, 정치와 경제, 문화와 생태 전반을 아우르는 폭넓은 내용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그 일은 단순한 전시방식을 바꾸는 문제가 아니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일대 혁신이 필요한 어려운 과제이긴 하다. 任重道遠, 임무는 중한데 갈길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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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1, 유치환과 김민기

청마 유치환의 ‘울릉도’ 시비가 독도박물관 입구에 서 있다. 울릉도를 “금수로 굽이쳐 내리던 장백의 묏부리 방울 튀어” 이루어진 “애닯은 국토의 막내”라고 노래한 시인의 상상이 기발하다. 울릉도와 한반도의 밀접한 연결성을 이 표현 이상으로 묘사할 수 있을까. 하지만 시인의 상상력은 문화와 역사, 정치로까지 이어져 “멀리 조국의 사직의 어지러운 소식이 들려올 적마다/ 미칠 수 없음이 이렇게도 간절”한 “어린 마음”을 울릉도에서 읽어낸다. 식민지와 분단, 전쟁의 험난한 역사를 살아와야 했던 시인 자신의 정서가 먼 바다 외딴 섬의 모습 속에 투영되었을 법하다.

독도의용수비대 기념관 앞에도 또다른 시비 하나가 서 있다. 70년대 문화운동의 주역이었던 김민기의 “내 나라 내 겨레” 라는 시다. “보라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 누구의 머리위에 이글거리나”로 시작되는 이 글은 송창식이 곡을 붙인 노래로도 널리 알려졌다. “피어린 항쟁의 세월 속에 고귀한 순결함을 얻은 우리” 라거나 “눈부신 선조의 얼 속에 고요히 기다려온 우리 민족”이라는 표현 속에서 전쟁과 가난과 독재를 뚫고 의연히 성장해온 한반도 백성에 대한 강한 신뢰를 읽을 수 있다. 이 시비 건립을 위해 2000년에 김민기가 새로 글씨를 썼다는데 민주화된 21세기를 맞이하는 감격과 미래에 대한 기대를 이 글에 덧입혀 담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유치환의 시와 김민기의 시는 정서와 분위기에 뚜렷한 차이가 있다. 청마의 시에서는 애절함과 고독함이 강하게 느껴지고 김민기의 노래에선 자신감과 공동체성이 읽혀진다. 청마는 바다, 파도, 바위, 사막 등을 통해 꺾이지 않는 생명의 강인함을 확인하려 한데 반해 김민기는 항쟁의 역사와 선조의 얼, 순결함과 기다림의 공동체를 노래한다. 유치환이 울릉도를 통해 “사념의 머리 곱게 씻기”우고 “지나 새나 뭍으로만 향하는 그리운 마음”을 읽어내는 것과는 달리 김민기는 “보라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 우리가 간직함이 옳지 않겠나”라며 선언하듯 과감하게 자신감을 피력한다. 이 두 시비 건립의 사이에는 수십년 한국 현대사가 자리하고 두 시인의 감성 사이에는 그동안 변해온 시대정서의 차이가 존재할 것이다. 2022년 지금 또 다른 시인이 이곳에서 노래한다면 어떤 정서를 담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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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경이 앞에서

어제 밤 미국 항공우주국 (NASA)에서 제임스 웹 차세대 우주망원경으로 찍은 우주사진을 발표했다. 나는 실시간으로 현장자료를 보여주면서 전문가의 설명을 전하는 한 국내 유투브에 접속하여 시청했는데 심야 시간임에도 약 2만명이 접속했을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 바이든 대통령이 미리 발표했던 첫 사진을 포함한 5컷의 이미지는 서로 다른 모습으로 우주의 신비함과 경이로움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다양한 빛의 보석들을 진열한 것 같기도 하고 천지창조의 웅장한 장면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걸출한 예술가의 신비한 작품을 보는 듯 싶기도 했다. 작은 모래알 정도의 우주 공간 속에 저토록 많은 은하들과 거대한 가스 성운이 존재한다는 것, 뭇 별들의 생성과 소멸이 지금도 역동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중이라는 설명을 들으며 우주를 광대무변이라 표현한 것이 결코 문학적 표현이 아니구나 생각했다.

천문학과 물리학 관련 글을 읽고 유투브 강연을 듣는게 일종의 취미가 된지 몇 년이 되었다. 십여년 전 유럽의 학자들과 civility 의 지구적 확산을 공동연구할 때 서로 다른 문화권 사이의 개념적 ‘entanglement’에 주목하자는 논의들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했고 결과물이 책자로 간행된 이후에야 현대물리학의 주요 개념임을 알았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전혀 업데이트되지 않은 내 과학지식의 엉성함이 부끄러운 감정으로 남아 천문학과 물리학 분야의 강의와 영상들을 듣기 시작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적지 않고 듣다가 잠이 드는 경우가 다반사지만 새로운 내용을 접하는 느낌이 상쾌해서 지금도 잠자리에선 음악 대신 과학강연을 틀어놓는 날이 많다.

아마추어 귀동냥 지식이지만 가랑비에도 옷은 젖는 법이다. 가볍게 흥미로 듣기 시작했지만 점점 내 생각과 사고 전반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느낀다. 실제로 빅뱅 우주론과 양자물리학의 설명들은 시간과 공간, 존재와 무, 힘과 에너지, 물질과 생명 등 근원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만들고 근대 과학주의에 근거하여 초월적 세계관을 우습게 보려던 지난날을 겸손하게 되돌아보게 한다. 그런가 하면 휴머니즘과 민족주의, 근대주의를 바탕으로 한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시야가 얼마나 좁은가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보여주는 경이로운 우주에 놀라면서도 다소 착잡해지는 마음을 숨기기 어려운 까닭도 저 세계관에 수반될 미래가 좀처럼 상상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칸트가 자신을 감탄하게 만들었다는 “밤하늘의 별과 내 마음 속 도덕률”을 떠올리면서 저 놀랍고 아름다운 우주의 이미지 너머에서 내가 찾아야 하고 또 확인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를 자문해 본다. 첨단 우주과학의 시대에 인문학과 사회과학, 신학과 역사학, 윤리와 정치는 무엇일 수 있고 무엇이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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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너머’의 상상

중장기 남북관계를 새롭게 모색하는 한 심포지엄에 종합토론의 좌장으로 참여했다. 다양한 주제들이 논의되는 가운데 한반도 기후위기와 생태환경을 다룬 한 발제자가 ‘인간 너머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폈다. 남북간 협력이 사람 중심으로부터 벗어나 동식물과 자연환경, 생태적 차원의 교류에까지 넓혀져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사회과학의 ‘물질적 전환’, 행위자 네크워크 이론의 문제의식을 남북관계에 적용하려는 시도로 참석자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여러 분야에서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서자는 주장을 접하게 된다. 인문학, 사회과학은 물론이고 신학과 예술 분야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이다. 근대 휴머니즘의 한계가 부각되는 반면 인공지능, 로봇, 알고리즘 같은 비인간적 행위자성 (Agency)은 더욱 확대되는 기술문명시대의 반영일 터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간과 자연, 생명과 무생물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던 상식이 크게 동요한 것도 한 요인이라 할 수 있겠다. 전근대적 사유라고 홀시되던 물활론, 생기론의 시각이 새로운 지적 자산이자 윤리적 상상력의 원천으로 재조명되고 있고 SF 영화나 소설은 이미 비인간적 주체가 살아있는 행위자이자 사건의 주역으로 등장한지 오래다.

인간 너머의 접근이라는 시각은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그런 주장을 떳떳하게 내놓을만큼 우리는 그동안 인간중심적이었던가도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효율과 발전, 성장과 성공의 추구 속에, 민주화와 개인주의의 확산 속에 인간의 위치는 어디였을까? 전쟁과 대결, 불신의 시대를 살아온 한반도의 이념대립과 안보계산 속에 인간이 차지할 자리가 얼마나 확보되었던 것일까? 문화적 동질성이 외쳐지고 이산가족상봉의 감격을 공유하며 탈북자를 수용하고 교류 협력의 상생을 추구하자는 민족 담론 속에는 과연 진정한 인간적 시선이 자리하고 있었던가?

향후 우리의 접근은 인간을 뛰어넘는 것을 지향해야 할까? 오히려 인간을 주목하는 관점을 회복하자고 주장해야 할까? 아니면 인간-비인간을 함께 고려하는 제3의 길을 모색해야할까? 인간 너머를 강조하기에 앞서 던져보아야 할 질문이라 생각된다. 제3의 길이 종종 애매한 종합이 될 우려가 없지 않지만, 근대 휴머니즘에 내장된 인간중심성의 한계를 직시하면서도 그것에 담긴 인류적 자산과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애써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한반도의 엄중한 현실 앞에서 인간의 자리를 제대로 확인하는 것은 중요하고도 절실하다. “인간과 함께 인간을 넘어”- 이런 모토는 비현실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반드시 추구해야 할 과제가 아닐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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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로 쓰는 글씨

우연히 해보기 시작한 물로 쓰는 글씨연습이 퍽 재미있다. 화선지에 물만 적신 붓으로 안진경의 ‘쟁좌위고’ 행서를 임서해 보는데 의외로 먹을 사용할 때와 크게 다르지 않게 획의 강약과 섬세함이 잘 드러난다. 글을 쓴지 십여분 만에 글씨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지만 어차피 남기려는 뜻이 없는 연습일 바에야 큰 상관이 없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 깨끗한 화선지를 다시 사용할 수 있고 연습이 끝난 후 붓을 빨아둘 필요도 없으니 금상첨화다. 짧은 짜투리 시간을 이용하기도 좋아 붓을 잡는 시간이 오히려 늘어나는 효과도 있다.

화선지에 공들여 쓴 글자가 서서히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삶의 한 단면을 보는 느낌이다. 정확한 필획의 모습을 구현하려고 최선을 다해 써 보지만 그 디테일은 서서히 사라지고 마침내 흰 화선지만 남는다. 어제의 행적과 성과가 어떠하든 늘 새로운 내일이 주어지는 인생의 이치와 같다고 할까. 어쩌면 우리 삶이 먹으로 쓰여지지 않고 물로 쓰여지기에 희망이 있는지도 모른다. 부끄럽고 안타까운 어제도 잊혀질 수 있고 늘 새롭게 시작할 내일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잘못도 얼마든지 용서받을 수 있다는 기독교의 구원사상이 과거에 억메인 인생에게 큰 해방의 복음이 될 수 있음을 몇 번이고 재생되는 화선지 속에서 떠올리게도 된다.

하지만 우리 삶이 전부 물로만 쓰여지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끝끝내 없이지지 않고 인생 전반에 긴 영향을 남기는 과거도 적지 않은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물로 쓴다고 생각했는데 사라지지 않는 과거도 있고 먹으로 썼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들도 적지 않다. 사라질 기억과 남길 과거를 내 마음대로 선택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먹과 물을 선택할 자유가 애초부터 인간에게 주어지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붓으로 쓸 뿐이고 그것이 물로 쓰여질지 먹으로 쓰여질지를 결정하는 것은 절대자의 권한일른지 모른다.

그래서 쓰는 순간에는 먹인지 물인지 의식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리라 생각을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물로 쓸 때는 마음가짐부터 먹으로 쓸 때와 같지 않아 마음은 편한데 집중도가 떨어진다. 인생에서도 그렇지 않을까. 내일이란 새로운 기회가 한없이 주어진다는 생각을 하면 오늘 최선을 다하려는 마음이 약해지기 쉽다. 그렇다고 매일을 공든 작품 쓰듯 모든 힘을 쏟아붇는 것은 감당하기도 어렵고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물로 쓰는 여유와 먹으로 쓰는 집중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삶의 균형감이 중요할텐데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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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가 된 유네스코

장성의 필암서원을 다녀왔다. 입구에 ‘유네스코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 이란 간판이 우뚝하다. 서원 내 마루에는 오드레 아즐레 유네스코 사무총장의 서명이 담긴 “서원, 한국의 성리학 교육기관을 세계유산목록에 등재한다”는 확인서가 걸려있다. 2019년 이곳을 비롯하여 안동의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함양의 남계서원 등 9곳이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일년 전에는 통도사, 부석사 등 한국의 전통사찰 7곳이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란 이름으로 세계유산에 등재되었고 이들 산사 에도 유네스코 세계유산 표지는 자랑스레 세워져있다. 한국 유교와 불교의 유산이 모두 유네스코로 인해 세계적 유산임을 공인 받은 셈이라 할 수 있겠다.

유네스코 표지판은 그 자체 문화 브랜드다. 조선왕조실록이나 KBS 이산가족찾기 자료의 가치는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는 사실로 설명되곤 한다. 아리랑이나 판소리, 종묘제례약의 품격 역시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이란 해설로 뒷받침된다. 지방정부들이 앞을 다투어 자기 지역의 유무형 문화유산의 가치를 확인받고자 유네스코 문을 두드린다. 집 가까이 있는 고등학교 교문에는 ‘유네스코 협력학교’란 간판이 걸려있다. 대학입시 부담이 강한 한국에서 유네스코가 표방하는 지속가능교육의 가치들이 실제로 학교현장에 얼마나 비중있게 반영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지만 학교의 자긍심을 구성하는 한 부분이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유네스코가 이런 브랜드 파워를 갖게 된 것은 매우 다행한 일이다. 다른 어떤 국제기구도 갖지 못한 유네스코만이 지닌 문화적 영향력이다. 그런만큼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는 국가적 관심사가 되고 문화다양성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든든한 기반이 된다. 하지만 일본의 군함도 유적 소개와 사도광산 등재추천에서 식민지 역사경험을 배제하려는 시도, 중화민족의 문화력을 확인하려는 자국주의 기획이 고조되는 중국의 문화공정에서 보듯 아직은 인류보편의 역사이해보다 국가주의적 역사해석에 더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문화가 상품이 되고 팩트보다 상상력이 힘을 얻는 시대가 될수록 관광자원을 위해 과거유산을 침소봉대하려는 유혹에 빠지기도 쉽다.

조용한 산사나 서원 앞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란 표지판을 보는 사람들이 떠올리는 생각은 무엇일까? 민족적 자부심? 관광자원의 우수함? 지역적 정체성? 유네스코의 정신은 이런 것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문화권의 자긍심과 무형예술의 가치를 인정함으로써 인류보편의 지적 도덕적 연대를 강화하는 것이다. 과연 21세기에 저 브랜드가 그런 효과를 가져오게 될 것인가? 관건은 유네스코가 확보한 이 독특한 브랜드 파워를 새로운 지구적 문화실천과 어떻게 결합하는가에 달려있을 것이다. 디지털 기술혁명으로 삶의 전 영역이 크게 변하는 시대에 과거보다는 미래, 자랑보다는 책임, 지역보다 인류를 표상하는 형태로 유네스코 브랜드 파워가 새롭게 조명될 필요가 있을 듯 싶다. 필암서원 앞에서 일본의 군함도, 중국의 문화공정이 떠올라 유네스코라는 멋진 브랜드 파워와 인류평화란 미래과제에 대해 갖게된 생각의 한 조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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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페셔널리즘과 아마추어리즘

토트넘의 손흥민 선수가 유럽 프리미어 리그에서 23골로 득점왕에 오르는 대기록을 세운 후 그를 키운 아버지 손웅정의 교육론이 덩달아 주목을 받고 있다. 수년간 패스와 드리볼이 두 발에 익숙해질 때까지 기본동작만 반복훈련 했다고 한다. 기본기를 강조하는 원칙을 아들에까지 철저하게 지킨 일관성이 놀랍고 그 아버지의 지도에 성실하게 부응한 손흥민의 자세는 더욱 놀랍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 원칙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굳이 청문회에서 쏟아져나오는 유명인사 가족의 변명을 듣지 않아도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바다.

탁월함을 강조하고 최고의 기량을 얻기까지 스스로를 절차탁마하는 프로정신은 개인에게나 사회에게나 발전의 원동력이다. 앞으로 손웅정의 교육론을 빌어서 월드클래스, 최고를 향한 끝없는 노력을 강조하는 주장들이 더욱 힘을 얻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집념이 반도체 강국과 BTS 신화를 가져온 한 힘임은 부인할 수 없는데 저런 방식을 모든 사람, 모든 영역에 보편화해도 좋을지는 의문이다. 모두가 일류 축구선수가 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시합이 프로게임일 수 없다. 어디에선가는 기본기가 모자란 사람도 축구를 즐길 기회가 주어져야 하고 개인의 기량보다 함께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가르쳐야 할 때도 있다.

아마추어리즘과 프로페셔널리즘은 우리 삶을 이끌어가는 두 바퀴다. 전문적 능력이 평가받고 뛰어난 프로들만 주목받는 세상인 듯 하지만 사실 우리의 삶은 대부분 아마추어적이다. 부모 노릇이나 시민 역할을 프로처럼 하고 있다고 장담할 사람이 누가 있을 것인가. 사회적으로도 프로들의 세계와 아마추어 활동무대의 경계가 생각처럼 분명한 것은 아니다. 아마추어 경연을 통해 발굴된 프로 연예인들이 적지 않고 곳곳의 인플루언서 인기가 제도언론의 영향력을 잠식하고 있다. 인터넷과 정보화는 아마추어형 프로, 프로형 아마추어 같은 융합형태를 더욱 조장할 것이다.

점점 더 프로페셔널리즘과 아마추어리즘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해 질 것이다. 프로 의식이 없으면 전문성과 경쟁력이 약해지지만 지나친 프로의식은 전문가주의나 실력주의의 덫에 빠지기 쉽다. 아마추어적 태도는 참신성과 유연성을 가져오지만 지나치면 무책임한 적당주의를 심화시킨다. 이 균형이 깨어지면 엘리트주의로 변질된 프로의식이나 팬덤정서를 부추기는 아마추어리즘의 위험이 커질 것이다. 존경받는 프로페셔널리즘과 책임있는 아마추어리즘을 어떻게 균형있게 재구축할 것인가 – 손흥민의 쾌거에 박수를 보내면서 자문해보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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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친

5월 16일 스승의 날을 맞아 사회사학회 활동으로 오래동안 학연을 이어온 몇분들이 학회의 창립과 발전에 초석을 놓으신 서울대 신용하 명예교수님을 모시고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모두들 정년을 해서 학교에선 명예교수가 되고 지하철을 무임승차할 자격을 얻어 소위 ‘지공도사’ 반열에 들어섰지만 스승과 함께 하는 자리에서는 늘 학생 시절이나 초보 교수 시절의 느낌이 되살아나는 모양이다. 다들 이전 일들 회상하면서 즐거운 담소를 나누었다. 신용하 교수님은 최근 출간한 또 한권의 묵직한 저서를 가져오셔서 모두를 놀라게 했다.

사회사연구회가 태동하던 1980년으로부터 따져보면 벌써 40년이 넘었다. 한국사회가 엄청난 변화를 겪었던 시기였던만큼 개개인의 생애도 몇 권의 책으로도 모자랄 스토리들로 가득할 터이다. 노치준 목사는 종교사회학자로서의 활동을 뛰어넘어 직접 목회의 현장에서 새로운 길을 걸었고 황경숙 교수는 학장으로 학교와 학계 이곳저곳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성실한 연구자의 모범이라 해도 좋을 김필동 교수는 사회사학회와 충남세종 사회학계의 중추역할을 해왔고 국내외 시민운동에 열심으로 참여해온 이정옥 교수는 여가부 장관으로 국정에 참여했다. 일본연구자인 한영혜 교수는 전통춤을 배우고 즐기는 춤꾼이 되었고 정근식 교수는 새로운 연구영역을 개척하는 열정에 더하여 2기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 자리를 함께 하지 못했지만 조성윤 교수는 제주를 중심으로 민속종교와 기층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지속하고 있고 김경일 교수는 정년기념저작만으로도 두 권의 묵직한 책을 내놓을 정도로 여전한 건필을 자랑한다.

비슷한 시기에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학문활동을 했고 일이년을 사이에 두고 정년을 한 동세대여서인지 오랜 동학으로서의 우애를 깊이 공감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서로의 일상을 나누며 간간히 만나는 모임을 만들자는 제안에 너나없이 찬성했다. 한영혜 교수가 발빠르게 ‘사회사 노친네’라는 이름으로 카톡방을 개설했는데, 정겨운 이름이지만 아직은 ‘ 나 젊어’를 외치고 싶은 마음을 반영하여 새 이름을 정하기로 했다. 황경숙 교수가 서로의 의견을 모으는 프로그램을 공람한 덕분에 ‘사사친’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사회사학회 친구들’의 줄임말이면서 편하고 사사로운 모임이란 의미도 담을 수 있는데다 부르기도 편해 참 좋다. 한국사회사학회가 내 학문여정에 큰 도움을 준 곳인데 이제는 이런 좋은 모임까지 선사하는 인연이 되니 너무 감사한 일이다. 사사친 화이팅!

life · 시공간 여행

지.덕.체와 친구들

지난 주 오랜 친구인 태영, 희용, 명곤과 귀한 모임을 가졌다. 중학교 시절 학교와 교회를 함께 다니면서 우정이 시작된 사이이니 무려 50년이 넘었다. 그동안 각기 목회, 군인, 학자의 길을 걷는라 잘 만나지 못했다. 더구나 남을 가르치는 역할을 해야 하고 일요일엔 교회 일에 바쁘다 보니 현직에 있을 때는 좀처럼 편한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 이제 대부분 퇴직을 해서 몸도 마음도 여유를 누릴 수 있게 되어 다시 만나니 반백년의 세월도 어제인 듯 반갑고 기쁘다. 잘 치지 못하는 골프를 핑게삼아 푸른 잔디를 밟으며 하루를 즐겁게 이야기하며 보냈다.

경남의 한 작은 마을에서 혼자 올라와 자취를 하며 학교를 다니던 내게 당시 수유리는 내 주말과 정서를 책임지던 곳이었다. 백운대와 4.19 탑은 답답할 때 가곤 했던 산책로였고 우이감리교회는 주말마다 들리던 집과 같았다. 하교길에 교회당을 들리면 반가운 친구를 만날 수도 있고 간간히 목사님이 나를 불러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해 주셨다. 태영, 명곤, 희용, 은영, 후용, 승기 등은 내 정서의 빈구석을 채워주던 고마운 동기들인데 특히 태영, 명곤은 학교도 같아서 등하교를 함께 하곤 했다. 언젠가 태영, 희용과 어느 자리에서 지, 덕, 체라는 가치를 한 사람이 모두 갖기는 어려우니 한가지씩 나눠 가지자고 했다. 당시는 재미삼아 했던 말이었을텐데 약속을 지켰다고 할까 아니면 말이 씨가 되었다고 할까 실제로 그 다짐은 실현되었다. ‘덕’을 맡기로 한 희용은 신학교를 거쳐 목회자가 되었고 ‘용’을 맡은 태영은 공군사관학교를 거쳐 유능한 조종사이자 비행 교관이 되었다. ‘지’를 맡기로 한 나는 학자의 길을 밟아 모교인 서울대 교수를 하고 다시 광주과학기술원 석좌교수가 되어 있으니 돌이켜보면 재미있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이제 정년 이후의 삶은 다시 지, 덕, 체의 통합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똑똑한 것도, 후덕한 것도, 건강한 것도 그 어느 하나만으로는 점점 노령화 시대를 헤쳐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오랜 생활에서 몸에 밴 생각과 행동 탓에 각자의 개성은 쉽게 변하지 않아 운동하는 과정에서도 각자의 기질이 드러나곤 한다. 육군의 장군으로 제대한 명곤과 공군의 고급장교였던 태영 덕에 간간히 함께 운동을 하게 된 것은 참으로 소중한데 옛날 수유리 학창 시절을 떠올릴 정도의 장난기와 농담이 스스럼없이 오가는 것을 보면 오랜 우정이 갖는 강한 힘이 놀랍다. 친구들의 만남에서는 운동을 잘 하거나 못하는 것이 자랑도 흠도 아니며 신앙의 깊이와 지식의 많고 적음도 큰 변수가 되지 않음을 실감한다. 지금은 연락이 없어 만지지 못하는 다른 친구들도 비슷할 것이다. 젊은 시절 각기 나누어 갖기로 했던 지, 덕, 체를 이제 다시 개성적인 삶 속에 녹아내야 하는 단계에 접어 들었음을 느끼면서 우정의 소중함에 감사하게 된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