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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사 문자동행전

서울대 화묵회가 주관하는 2023년 문자동행전이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서울대 문화관에서 열렸다. 매년 연례행사로 이루어지는 서예전인데 올해는 최치원의 시문을 중심으로 기획된 전시회다. 나는 지방에 있어 평일의 수업에 참석하지 못하고 있는데 예년에 비해 작품들이 더 풍성해지고 글씨도 단단해 진 느낌이다. 수업때문에 19일 하루 지킴이로 전시장을 지켰다.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는데 ‘冠嶽士 文字同行展’ 이라는 전시회 표제가 새삼 눈에 들어온다. 무엇보다 선비사 (士) 를 사용한 것이 새삼스러웠고 어떤 의미가 담겼을까 생각하게 된다. 글씨를 쓰는 사람이 모두 선비일리 없고, 또 현대사회에서 선비란 개념의 적합성을 둘러싼 여러 견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글씨를 쓰는 순간, 문장을 대하는 마음은 이전 선비의 그것과 같아야 한다는 뜻이 담겨있는 것 아닐까 싶다. 그래야 ‘문자동행’이라는 말도 살아난다. 문자와 더불어, 문자의 뜻과 함께 간다는 이 말도 곰곰 생각하니 예사로운 표현이 아니다.

나는 최치원의 ‘등윤주자화사상방’ 시와 굴원의 ‘어부사’ 두 점을 출품했다. 최치원의 시는 행서로 굴원의 글은 행초서로 써 보았다. 충분히 다듬어지지 못한 글씨이고 스스로 모자란 부분이 많이 느껴지지만 그래도 나름 애쓴 흔적이 담긴 작품이긴 하다. 세상사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시인으로서의 정신을 새롭게 하려는 최치원의 마음과 어부의 초탈한 인생관을 통해 삶의 여유를 강조한 굴원의 정신을 느껴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마치 가까이 가면 갈수록 꼭 그만큼 더 멀어지는 대상처럼 이들의 정신세계는 내가 미치지 어려운 곳에 가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일까 ‘문자동행’이라는 말이 ‘이들의 마음을 함께 느끼는가?’라고 묻는 물음인 듯하다.

수하 김길중 교수께서 오셔서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바드 엔칭연구소의 베이커 부소장을 통해 일전에 이야기를 들었고 서로 잘 알고 있다고 여겼는데 정작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는 처음이었다. 김교수님 글씨는 힘이 있고 필획이 유연하고 깔끔해서 아름다왔고 자작시를 출품하는 역량도 놀라왔다. 작년에 한글 작품을 전시했던 고희종 교수의 글씨도 필세가 좋고 ‘신독’이란 작품에서는 선비같은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장인성 교수의 ‘출몰자유진외경’이라는 작품에서는, 이전에도 그랬지만 자유롭고 도학적인 분위기의 멋스러움을 접한다. 회장인 양일모 교수의 글, 한참 선배인 권숙일 교수의 작품 역시 선비의 분위기와 학자로서의 개성을 느낄 수 있었고 김혜년, 권향숙, 김현미 님 등 오랜 연마로 다듬어진 작품을 보는 즐거움도 만만치 않았다. 운재 이승우 선생의 ‘천산 사야’는 글씨와 그림이 하나라는 것을 실감케 한다. 서법을 지키면서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작품인데 저런 경지에 이르려면 그만큼 많은 노력이 더해져야 할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터이다.

전시장엔 오랫만에 일부러 와주신 분들이 적지 않았다. 사회학과 원로교수인 한상진 교수가 이태리에서 잠시 방문한 연구자와 함께 들러주셨다. 최근 그림에 열심이신 심영희 교수께 전달하겠다 해서 녹음으로 작품 해설을 들려드리기도 했다. 김백영 교수는 화환을 들고 찾아와 축하해 주었고 아시아연구소의 민원정 교수는 커피 선물을 해 주었다. 곧 정년을 앞둔 김명환 교수도 방문해서 즐거운 이야기 나누었고 제자인 윤병훈은 세밀한 감상으로, 손명아는 맛있는 쿠키로 함께 해 주어 여러 관람자들과 나누는 기쁨을 가졌다. 김명환 교수는 도서관장 시절에 내 전시회 영상제작을 지원해주셨고 중앙도서관에 걸어 둔 ‘須讀五車書’ 작품을 내게 부탁하기도 하신 분이다. 여러모로 감사한 마음으로 선비로서 문자동행하는 생활을 계속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 좋은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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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력과 사상

월봉저작상 운영위원회 실무를 총괄하고 있는 이선민 전 조선일보 문화부장의 서울대 박사학위수여를 축하하는 모임을 10월 25일 조선호텔 중식당에서 가졌다. 심사위원인 이기동 교수, 도진순 교수, 나를 위시하여 한경구 교수, 이철우 교수, 일조각 김시연 사장도 자리를 함께 했다. 학부에서 한국사를 전공한데다 문화부기자로서 역사관련 지식과 정보가 풍부하고 필력이 좋은 것이 연구의 큰 자산이 되었겠지만, 뒤늦게 자료를 찾아 학술논문을 작성하고 학계의 까다롭고 성가신 심사절차를 밟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어려운 과정을 통과하여 영예의 학위를 수여받은 것에 모두 경의와 축하를 보냈다.

돌아와 논문을 살펴보니 제목이 “대한제국 후기 정치세력과 민족운동 연구”라 되어 있다. 1904년 이후의 수년간을 ‘대한제국 후기’라 이름한 것이 우선 눈에 띤다. 이기동 교수도 잠시 언급했지만 대한제국 자체가 10여년 짧은 시기인데 전기, 후기를 나눌만큼 충분한 근거가 있을지 논란도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애국계몽운동기 또는 국권상실기 등으로 불리우던 시기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줌으로써 시대상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게 해 준 것이 신선한 느낌도 없지 않다. 이박사는 이 시기에 한국의 새로운 정치세력이 성장, 분화되었음을 드러내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논문에서 다룬 주제와 쟁점들 중에는 나도 더러 다루어본 내용들이 적지 않다. 종교로서의 동학과 1894년의 농민전쟁, 진보회와 일진회, 안창호와 미주국민회, 천도교의 성격과 지향 등은 이런 저런 계기로 논문도 쓰고 발표도 했던 주제다. 특히 전북대 시절엔 호남지역의 지방사와 농민사를 천착하는 한편으로 한국근대사상사에도 관심을 가졌던 바여서 이 논문이 다루는 쟁점들이 낯설지 않았다. 다만 그 시절의 나는 정치사나 국가사보다 운동사나 지방사에 좀더 주목했던 탓에 이박사의 논문이 주목한 큰 흐름에 대해선 다소 관심이 덜 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박사 논문은 대한제국 후기의 ‘신흥 정치세력’의 등장과 이들의 ‘민족운동론’을 검토하는 것이다. 신분제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향반,서얼,중인층이 부상할 수 있었고 지역적으로는 평안,함경지방의 중앙진출이 가능해져 새로운 정치세력이 대두될 조건이 마련되었다고 보았다. 이런 배경에서 안창호와 국민회의 재미한인, 손병희 천도교와 동학 세력, 그리고 대종교로 이어지는 개신유학자 집단의 세 정치세력이 유의미하게 형성, 분화되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들 세력들의 지향을 각기 국민국가론, 부강발전론, 국수보전론으로 개념화해서 대비한다. 격동기의 흐름을 비교적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는 분석틀이라 할 만하다.

흥미롭고 중요한 연구라 생각되지만 ‘정치세력’ 형성의 실상에 대한 정밀한 분석이 좀더 이루어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다. 상이한 ‘민족운동론’의 분화는 기존 연구들에서 언급된 내용과 크게 다른 바가 아닌 듯 해서 개인적으로 정치세력의 기반에 대한 설명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나도 일본의 도막파 세력과 한국의 개화파 세력을 대비하려 시도한 바 있었는데 ‘사회세력’의 분석이라 할만한 자료확보가 일본에 비해 턱없이 부족해 뜻을 이루지 못한 경험이 있다. ‘정치세력’이라 이름할 만한 사회세력의 형성을 논하려면 그 정치적 지향이나 사상적 동향보다도 핵심 인물들의 결집도, 광범위한 사회적 네트워크, 동원가능한 물질적 자원, 외부세력과의 연결, 내부의 정세판단 등이 소상히 확인되어야 한다. 세력화의 수준, 조직화의 정도, 물적 동원 역량 등을 평가할 수 있을 종합적인 변수분석이 이루어져야만 사회적 세력분석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논문도 국민회, 천도교, 대종교라는 조직기반과 사람들의 네트워크를 밝히고 있고 안창호, 손병희, 신채호 등 주도적 인물의 영향력을 언급하고 있기에 그런 문제의식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세력화의 수준이나 정도, 역량의 입체적 분석에 이르기에는 미시적 자료나 인물간 네트워크의 강도, 자원동원의 수준과 실제 상황에 대해 객관적인 분석이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렵다. 어쩌면 정치세력과 ‘민족운동론’을 연결시키려는 틀 자체가 정치세력화의 분석보다 민족운동론의 유형화로 이어지도록 만들었을지 모르겠다. 사상적 지향과 관련해서도 ‘민족운동’이라는 틀을 넘어서는 스펙트럼을 구상할 수 없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오랜 중화적 질서에서 벗어나 새로운 국제질서로 이행하는 격동기에는 국가와 민족의 뱔견 못지 않게 세계와 개인의 발견도 결정적인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안창호와 신채호의 차이를 국민국가론과 국수보전론으로 대비하는 틀을 넘어서 자유주의와 국가주의의 긴장이 이 즈음 시작되었으리라 여겨지는 사상적 분화의 계기에 대해서도 좀더 천착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향후 이박사의 활발한 연구활동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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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나눔과의 인연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를 연구하던 동학들과 이만열 교수님과의 식사모임이 오랫만에 마련되었는데 수업때문에 참가할 수 없게 되어 이 기회에 그 분과의 인연과 그 영향을 생각해본다. 이 교수님으로부터 수업을 듣거나 직접 지도를 받은 적은 없으나 그 분으로 인해 맺어진 인연과 활동들이 나의 학술활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사회학을 전공한 내가 민족, 통일, 평화 같은 쟁점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냐고 누군가 물어보았을 때 나는 어릴적부터 듣고 자란 성경의 이스라엘 역사 이야기 때문이었다고 대답했었다. 그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고 내가 한국근대사회사를 전공하게 된 한 배경이었지만 현실의 남북관계에 대한 구체적 관심으로 이어져 내 연구주제의 중심자리를 차지하게 된 데는 1994년 경부터 참여한 연구모임이 중요했고 그 중심에 이만열 교수님이 계셨다.

숙대 앞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회의실에서 기독교 신앙의 바탕 위에서 남북관계와 통일문제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발제와 토론의 시간을 가지곤 했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작은 모임이었지만 진지함과 헌신성은 어떤 곳보다 강력했고 이교수님은 기도에서 참석자들을 ‘믿음의 동지’라고 종종 불렀다. 신앙의 열정에서 다른 연구자들에게 한참 못미치던 나는 늘 한 발만 걸치는 소극적 태도로 임했지만 그 문제의식과 분위기로부터 받은 영향은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다. 1997년 베트남 남북을 둘러보면서 통일의 현장을 답사했는데 버스 속에서 백종국 교수가 열정적으로 인도차이나 전쟁사를 이야기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 있다. 호치민에서 만났던 남부출신의 학자가 베트남 통일은 실제로는 일방적인 ‘북화'(northernization)였다고 말해 놀랐던 것도 새삼 떠오른다.

2001년 2월에는 홍콩, 마카오, 대만을 답사하면서 ‘일국양제’의 현실을 함께 살펴보았다. 홍콩반환이 이루어지고 21세기로 접어든 직후여서 일국양제 구상이 갖는 미래적 전망에 관심이 적지 않았다. 이질적 체제를 융통성있게 수용하려는 중국의 유연성이 참신하게 여겨지기도 했지만 ‘하나의 중국’을 절대적 원칙으로 고수하는 베이징의 태도에 대한 홍콩의 우려와 대만의 거부감이 매우 큰 것을 보고 놀라기도 했다. ‘일국’과 ‘양제’의 의미와 양자 관계에 대한 해석은 현실정치에서의 역학관계를 떠나서 이론적으로만 접근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닫는 소중한 답사경험이었다. 그런 복잡함을 접하면서 당시 동행한 윤영관 교수께 국제관계가 왜 미묘하고 또 중요한지 실감이 난다고 말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2006년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설립을 책임지고 초대소장을 맡게 되면서 이 분야 연구와 활동에 더 집중하게 되었는데 앞선 경험들이 적지 않은 자산이 되었다. 양안관계를 다루는 연구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양안협력의 현장들을 답사, 양측의 견해들을 경청하려 한 것도 이 답사에서 얻은 문제의식이 계기가 되었다. 한반도의 참조사례로 독일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양안관계를 깊이 탐구할 필요가 있음과 함께 교류협력의 기능적 파급력을 과신할 수 없다는 점도 주목할 것을 강조했다. 중국과 대만 사이의 교류협력이 급격히 진전되었지만 대만의 대중국 경계심과 독자정체성 요구는 더욱 강해지는 역설적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그것이 한반도에 주는 함의가 무엇인지 고민할 거리는 많아 보였다. [양안에서 보는 통일과 평화] 를 편집 출간하는 과정에서 15년 전 답사를 떠올리기도 했고 실제로 당시 보고서를 참고하기도 했다.

대북인도적지원사업을 오랫동안 주도하신 홍정길 목사님과 함께 평양을 방문하고 북한의 유아원, 병원, 빵공장, 묘목장 등을 모니터링했던 것도 이 모임이 남북나눔운동 연구위원회로 활동한 덕분이었다. 휴전선을 넘어 북으로 향하는 직항비행기를 타고 평양일대와 묘향산 주변을 둘러보면서 같은 언어, 역사에 기반한 민족감정의 실체를 경험하기도 했고 그런 종족적 동질성, 전통적 역사공유가 통합과 호혜의 밑바탕을 이룰 충분조건이 될 수 있을까 자문하가도 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에서 국민의 통일인식, 대북인식, 민족정서 등을 매년 객관적으로 조사하고 확인하는 작업을 기획한 것도, 북한주민의 의식을 간접적으로나마 확인하려 애쓴 이유도 이 때의 경험과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었다.

2023년 한반도는 너무 달라졌다. 남북간 어떤 대화도 교류도 없고 불신과 경계의 언사들만 오가고 있다. 핵무력과 군사주의 노선에 더욱 집착하는 북한은 한국과의 관계에 기대가 없으며 오히려 적대적 대상이라고 공언한다. 김정은-푸틴 북러정상회담을 통해 위성기술과 무기체계의 협력을 약속하는 새로운 환경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한반도 남쪽에서는 한미동맹의 강화에 더해 한미일 3국의 군사협력이 강화되고 대북경계와 압박만이 강조되고 있다. 한중관계나 한러관계도 어려워질 것임은 분명해 그 후과가 어느정도일지 예측하기 어렵다. 국민들의 정서는 북한에 대해서도 중국에 대해서도 매우 부정적으로 변했고 젊은 세대들은 더이상 북한과의 통일에 기대를 걸지 않는 형편이다. 신냉전이 도래했다는 견해가 확산되고 교류협력을 통한 평화보다는 힘을 통한 평화를 추구하는 견해가 힘을 얻고 있다.

이런 변화가 바람직한 것도 아니고 우리가 원한 것은 더더욱 아니지만 당분간 이런 방향으로의 흐름은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 거대한 변화가 우리 내부만이 아니라 북쪽과 주변, 대륙과 해양 등 외부로부터 총체적으로 추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전환의 시대에 아무런 성찰과 변화 없이 이전 논리를 고수하는 것은 지혜롭지도 못하고 현실적이지도 않다. 그렇다고 원칙과 비전 없이 시류에 편승하여 과거의 경험과 노력을 전부 폐기하려는 태도도 문제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일관성과 신실함은 무엇이며 바꾸고 혁신해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 새로운 고민의 시작점에 서 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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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사와 취중용기

세상 사는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참 비슷한 모양이다. 중국 옛글 어부사를 보면 “세상이 모두 오염되었는데 나만 깨끗한 탓에 쫒겨났다”는 굴원과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물이 탁하면 발을 씻으면 될 뿐”인데 스스로 화를 자초했다고 핀잔하는 어부의 대화가 나온다. 자기 원칙을 지키려 세상과의 불화를 피하지 않는 태도와 세상 흐름에 맞춰 살아가는 처세의 선연한 대조다. 작금 우리 사회에서도 낯설지 않을 내용이어서 간간히 음미해보게 되는 글이다.

어제 아침 안팎의 소식이 우울해 어부사를 써보며 심란함을 달래려 했다. 하루 종일 애는 썼는데 붓끝은 자꾸 흔들리고 자획도 고르지 못해 오히려 지치기만 했다. 실력이 따르지 못하는데 과욕을 부리는구나 생각하고 벼루를 정리한 후 와인을 두어잔 마셨다. 그런데 약간의 취기가 동하니 갑자기 잘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시 먹을 갈고 붓을 잡았는데 과연 필획에 힘이 느껴지고 붓놀림도 자유로와 신이 났다. 취중에 멋진 서화를 남기셨던 삼불 김원룡 교수의 일화를 떠올리며 나도 그럴 수 있겠구나 생각도 했다. 포도주 한두잔에 간이 이처럼 커지다니….ㅎㅎ

아침에 일어나 다시 보니 모든 글자가 다 제 잘난 맛으로 도드라진 형국이어서 보기 민망했다. 약하고 세밀한 부분이 없이 모든 글자가 강한 필획으로 이어져 단조롭고 답답하다. 영화 취권을 보면 고수에게 술은 허술한 듯 여백을 키우는 도구일 뿐인데 오히려 술기운데 취해 강약의 조화를 깨트린 하수의 어리석음이 글자 곳곳에 녹아있는 듯했다. 붓을 쥔 손이 떨리지 않고 언제나 기계처럼 강한 획을 쓸 수 있는 것이 좋은 글씨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떨림과 빈구석은 약함의 표지가 아니고 오히려 개성적 미학의 기반인 셈이다.

낯뜨거운 주장과 상스런 공격을 주저없이 내뱉는 일이 다반사가 된 요즈음은 모두 취중용기를 강조하는 시대 같다. 국내정치든 국제정치든, 개인이든 집단이든 약육강식이 당연한 듯 뻔뻔함과 즉물성이 취중 호언장담처럼 퍼지고 있다. 상호이해와 협력을 강조하고 포용력과 유연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좌우 어디서도 힘을 얻지 못하는 느낌이다. 스스로 단호하고 힘이 있다고 느끼지만 결과적으로 공존과 조화의 역량을 약화시키는 흐름이 아닐 수 없다. 세상사가 마음같지 않은 요즈음 자칫 취중용기에 내 자신을 내맡기려는 경향은 없는가 되돌아본다. 와인 두어잔에 자고했던 해프닝을 돌아보면서 강함만이 능사가 아니며 약함과의 공존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중요한 자산임을 아는 사람들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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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의 시세계

2023년도 서울대 화목회 정기전시회가 10월에 열리는데 최치원의 글을 그 대상으로 정했다 한다. 나름 이 전시를 위해 방학 중 틈틈히 굴원의 어부사를 써보곤 했는데 뒤늦게 내용을 바꾸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덕분에 내가 쓸 글을 정하는 과정에서 최치원의 글들을 훑어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된다. 그가 남긴 글이 꽤 많은데 과연 한국 명문장가의 우두머리로 삼을 만하다.

처음 내가 쓰기로 마음 먹은 것은 최치원의 ‘난랑비서문’이었다. 전문은 전하지 않으나 그 일부분이 남아있는데 한국의 고유한 사상적 특성을 밝힌 뜻깊은 내용이다. “國有玄妙之道曰風流 設敎之源 備詳仙史 實乃包含三敎 接化群生 且如入即孝於家 出即忠於國 魯司寇之旨也 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周柱史之宗也 諸惡莫作 諸善奉行 竺乾太子之化也”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풍류라 한다. 그 가르침의 근원은 선사에 자세한 바, 세 종교를 포함하여 뭇 생명을 접하여 교화하는 것이다. 집에 들어와선 효도하고 나가서는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노나라 사구 (공자)의 뜻과 같고, 무위로 일을 처리하고 말없는 가르침을 행하는 것은 주나라 주하자(노자)의 종지와 같으며, 악한 일을 금하고 선한 일을 받들어 행하는 것은 축건태자 (석가모니)의 교화와 같은 것이다) – 3교통합의 사상적 특징을 이처럼 명료하게 밝힌 글이 신라시대에 쓰여졌다는 것이 새삼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을 먼저 택한 분이 있어 나는 ‘등윤주자화사상방’이란 시를 쓰기로 마음을 달리 정했다. 최치원이 당나라 관직에 있을 때 방문한 윤주 자화사에서 쓴 시로 대표적인 명시로 종종 언급되던 글이다. “登臨暫隔路岐塵 吟想興亡恨益新 / 畫角聲中朝暮浪 靑山影裏古今人 / 霜摧玉樹花無主 風暖金陵草自春/ 賴有謝家餘境在 長敎詩客爽精神 (『孤雲先生文集』 卷之一) 대략 뜻을 옮기면 “산에 올라 잠시 속세를 떠나서 흥망을 생각하니 한이 더욱 새롭다/ 뿔피리 소리에 아침저녁 일렁이던 물결과 푸른 산 그림자 속에 담긴 고금의 사람들 생각한다/ 서리내린 나무와 꽃 주인은 간데없고 따뜻한 바람 금릉의 풀만 봄을 알리는데/ 사조가 남은 집터 둘러보니 그 오랜 가르침 시인의 정신을 맑게 하네)

하동군 화개면의 신흥마을에서 의신마을까지 화개천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약 4.2km의 계곡길은 임진왜란 때 고승 서산대사가 지리산에 머물며 걸었던 길이자 신라시대 최치원이 지리산에 입산하여 거닌 길로 알려져 있다.  서산대사는 최치원의 글과 사상을 새롭게 부각시킨 인물인데 쌍계사 중창기에 이렇게 쓰고 있다. “옛날에 유불(儒佛)에 정통하고 내외를 통달한 자는 공명을 헌 신짝처럼 벗어 던지고 하나의 표주박으로 가난을 잊었다. 천지와 더불어 나란히 서고, 신명과 더불어 동행하면서 무위진인(無位眞人)과 함께 노닐고, 시종(始終)이 없는 자와 벗을 삼았다. 그는 자신이 걱정할 것을 걱정하고, 자신이 즐길 것을 즐겼으니, 어느 겨를에 유교의 입장에서 불교를 비난하고 불교의 입장에서 유교를 비난하면서 서로 원수처럼 배척하였겠는가. 우리나라의 최고운(崔孤雲)과 진감(眞鑑)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고운은 유자(儒者)이고, 진감은 불자(佛者)이다.” 저런 고수들은 벽을 허물고 화통하는데 역사는 늘 편당을 짓기 좋아하는 사람들로 시끄러워지곤 한다. 서산대사가 평한 저런 마음을 담아 작품을 써 보려 하는데 붓을 잡은 손이 자꾸 흔들린다. 무위로 쓰는 정성을 더 배워야 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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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권

갓 부임한 초등학교 교사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것도 학교 교실에서… 이 충격적인 뉴스 앞에 온 국민이 놀라고 당혹해 하고 있다. 아직 그 정확한 내용이 확인되지 않았지만 사회적 관심은 급속히 높아지고 있다. 죽은 교사에 대한 애도 분위기가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교사들의 공감과 분노가 곳곳에서 표출되고 있다. 교사를 좌절하게 만드는 학교 현장의 문제가 새삼 주목되고 그 해결책과 예방책이 봇물을 이룬다. 교육문제는 늘 휘발성이 강한 사안인데다 그동안 주목받지 않던 교사의 애환이 터져나온 것이라 그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같다.

교육자치단체장과 교원노조, 교사단체 들은 물론이고 정치권과 언론계도 제각각의 대책들을 쏟아낸다. 현재 학교에서 교사가 경험하는 좌절감이 매우 크다는 것, 그것을 예방하여 교사의 자부심과 교권을 회복하는 일이 매우 시급하다는 것에는 대체적으로 공감대가 이루어지는 듯 하다. 그동안 학생의 권리와 자율성이 강화되면서 책임과 의무는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루어졌고 교사의 적극적 지도 역할 역시 축소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극성스런 학부모의 반복된 간섭과 좀처럼 통제하기 어려운 문제아들의 부정적 영향도 우려할 수준이라 한다. 공교육을 우습게 여길 정도의 사교육 발달, 각종 미디어의 발달로 인한 학생 행태의 변화도 어려움을 더해 교사되기를 기피하는 경향이 커진다는 조사결과도 접한다.

교권추락을 가속화시킨 요인으로 학생인권조례가 지적되고 있다. 교육부 장관이 그런 시각을 표명했고 대통령까지 힘을 실었다. 학생이 원하지 않으면 어떤 조치도 자칫 ‘아동학대’나 ‘학생인권침해’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 교사가 할 수 있는 교육적 행위는 별로 없으면서도 온갖 부담과 요구는 떠안아야 한다는 평교사의 인터뷰가 가슴을 무겁게 한다. 한 초임 교사의 비극에 그토록 많은 교사들이 공감하는 이유는 이런 좌절감과 무력감을 너나없이 겪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명감이 강한 교사일수록, 무언가를 가르치고 변화시키려는 열정이 있는 교사일수록 교실현장에서 더 깊은 딜렘마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에서 지나친 편향이 있었고 그 시행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부작용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니 당연히 이런 부분은 개선되고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문제해결의 충분조건일 수는 없다. 인권조례를 폐지해도 적지 않은 문제는 남고 어떤 부분은 더욱 심해질 수도 있다. 학교체벌을 강화하는 것이 정당한 교육효과로 이어질 가능성도 불확실하다. 부모의 권위, 상사의 권위, 노인의 권위도 교사의 권위못지 않게 약화되었다. 같은 아파트에서도 남의 자녀에게 조언이나 훈계를 하는 것은 금기시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부모가 자기 자녀에게도 이전 같은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조언을 간섭으로 받아들일 정도로 세대간 감각이 크게 달라진 상황에서 과거의 권위주의적 방식이 바람직한 결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 두세살 부터 인터넷을 접하고 온갖 정보가 범람하는 초연결의 시대, 세대, 젠더, 국적, 종교 그 어떤 속성으로도 차별받지 않는다는 헌법적 권리의식이 자리잡은 시대에 정당한 권위를 확립하는 일은 모두가 힘을 합쳐 추구할 새로운 미래 기획이 되어야 한다.

단번에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주장은 경계할 일이다. 그런 대응은 불가피하게 교육문제를 정치문제나 감정문제로 변질시킬 우려가 크다. 우리 공교육 문제는 어느 누구도 책임이 없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집단적이고 장기적으로 누적되어온 것임을 자인해야 한다. 인성교육이 사라진 입시교육, 공교육을 헛돌게 만드는 사교육, 교육현장의 관료주의, 통제가 어려운 문제학생 등 해결을 기다리는 문제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지능계발을 위한 수월성 교육과 인간성 함양의 인성교육이 아노미적으로 괴리되어 있는 상황에서 교사와 학교에 대한 우리 사회 전반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관건이다. 학생과 교사, 학부모와 학교는 칼로 물베듯 나누어 지는 것이 아니다. 교사와 학부모, 학교와 가정이 상시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고 학부모의 관심이 이기적인 욕망이 아닌, 공공의 신뢰 자산이 될 수 있도록 할 혁신방안이 절실하다.

안타까운 젊은 교사의 죽음으로 촉발된 사회적 논란이, 진정으로 정당한 권위를 수립하는 뜻깊은 변화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필요한 조치는 과감하게 추진하고 잘못된 관행은 빨리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동시에 감정적 해소나 정치적 효과를 노린 대증조치로 흐르지 않도록 높은 전문성과 균형감을 견지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한국 교육을 이 상태로 만든 것은 성공과 출세, 돈과 지위를 위해 올인해온 우리 사회구성원 모두의 공동책임이라는 자성과 성찰이 그 바탕에 자리잡아야 한다. 학생인권을 존중하고 민주적인 학교를 만들려한 그간의 성과도 인정하면서, 교사의 정당한 꾸중과 훈육이 불가능해진 부작용을 막는 조처가 지혜롭게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진지하면서도 지속적인 대응, 격의없는 소통과 상호이해가 긴요할 터인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기대해 보지만 그만큼이나 우려도 커지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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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 인플루엔서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개인이 다수를 향해 메시지를 발신할 기회가 많아졌다. 개인의 블로그도 그렇지만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람, 트위터 같은 SNS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기능을 제공한다. 개인들의 메시지가 불특정 다수의 공감을 얻어 급속히 확산됨으로써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집단동학을 가져온 경우도 적지 않다. 기획되지 않았으나 거대한 힘으로 분출했던 미투운동이 그랬고 단시간에 권력을 무너뜨릴 정도로 결집된 촛불시위가 그랬다. 영상매체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최근에는 유투브의 힘이 하늘을 찌를 정도다. 코로나 19 팬데믹 이래 이 디지털 기술환경이 제공해준 소통과 연결의 힘은 놀랍고도 강력하다.

이제 개인은 단순한 정보수용자가 아니라 메시지의 발신자로서의 영향력을 지니게 되었다. 지상파 방송국과 활자 신문들의 사회적 영향력은 현저히 감소했고 백화점의 브랜드 파워도 상품정보를 제공하는 유명 블로거의 파워 앞에 흔들린다. 학생들의 장래희망에 크리에이터, 인플루엔서가 상위로 거론되고 그런 제목을 단 책자들이 베스트셀러가 되곤 한다. 많은 수익을 얻고 인기를 구가하는 유명 인플루엔서는 21세기 신데렐라의 꿈을 실현한 사례로 여겨진다. 컨텐츠의 내용은 천차만별이어서 먹방일 수도 있고 노래일 수도 있고 여행일 수도 있으며 심지어 남의 약점을 들추는 저급한 호기심일 수도 있다. 어쨋든 거대한 조직과 자본, 권력 앞에서 홀홀 단신 개인으로 맞서 자신의 생각을 내놓을 수 있고 그것으로 영향력도 키울 수 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변화다.

거대한 조직이나 타인의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사람들에게 발신하는 1인 활동이라는 점에서 인플루엔서 활동은 지식인이나 작가의 글쓰기와 닮았다. 하지만 컨텐츠의 질이나 전문가의 평가보다 대중의 반응과 즉각적 피드백을 중시한다는 점에서는 많이 다르다. 구독자 숫자에 따라 소득이 주어지는 비즈니스 방식 탓에 재미나 흥미 위주로 치우칠 개연성이 높고 실제로 가짜뉴스나 저급한 내용을 퍼트리는 1인 매체의 폐해가 만만치 않다. 하지만 고급한 내용, 정확한 팩트,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인플루엔서들도 최근 등장하고 있다. 유발 하라리나 제프리 힌튼 같은 지식인들의 메시지를 디지털 매체를 통해 전파하는, 기획된 인플루엔서 같은 현상도 주목할 일이다.

새로운 책을 출간할 때마다 그 사실이 언론매체의 뉴스가 되는 것을 보면 강준만 교수는 일종의 셀럽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그는 인터넷 환경에 기대지 않고 전통적인 활자문화에 기반한 1인 비즈니스를 고집스럽게 이끌어오고 있다. 그의 많은 저서들은 자신만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흘린 땀의 결과이며 인물과사상사는 그것을 뒷받침 하는 개인적 출판사다. 대중들의 흥미, 취향, 비방에 기대지 않고, 또 학계나 정가의 평판이나 도움에 의존하지 않은 채 정치한 분석, 냉정한 비판, 새로운 담론으로 자신만의 고유한 메시지를 생산하고 전달하는 그의 활동은 지식인과 작가와 인플루엔서의 모습을 두루 겸했다. 김대중, 호남차별, 조선일보사태, 노무현 현상, 학력차별, 서울대 중심주의, 이준석 현상, 좀비정치, MBC 에 이르기까지 그의 글쓰기는 광범위하고 성역을 불허하며 무엇보다도 개성적이다.

강준만 정도의 개인적 능력없이 이런 활동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식인의 정체성을 지키고 작가적 글쓰기를 소명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는 한, 이런 형태의 인플루엔서가 확산될 가능성은 있다. 인터넷 인프라에 힘입지 않고, 대중들에 영합하는 가십거리에 연연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견해를 명쾌하게 전파할 수 있다는 것, 활자매체를 통해서도 강력한 소통력과 공감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강준만의 사례가 보여주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알지 못하지만 지금도 잠재적 영향력을 지닌 개성있는 작가, 지식인들이 새로운 인플루언서가 될 준비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실과 진리가 그 어떤 선동이나 가십보다 강력한 전파력을 갖고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때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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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의 강과 방주

하늘에 구멍이 난듯 무섭게 퍼붓는 비가 그칠 줄 모른다. 며칠 동안 전국을 물바다로 만들고 있는 이 장마전선은 어떤 예방책도 무색할 정도로 한반도 전역을 휘젓고 있다. 이미 수십명이 목숨을 잃었고 곳곳의 제방이 무너졌으며 이재민도 상당수 발생했다. 장기간 같은 지역에 호우가 계속되는 이유는 한반도의 동서로 ‘대기의 강’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라 한다. 지상의 어떤 강보다도 훨씬 많은 수증기를 포함한 이 하늘의 강은 최근 지구온난화로 인해 그 강도와 지역이 변화하고 있다 한다. 하늘에 거대한 강줄기가 생겨난다는, 문학적 비유처럼 들리는 이 현상이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라니 놀랍다. 대륙과 해양의 두 거대 기단의 팽팽한 충돌이 빨리 깨지기를 기대하는 수 밖에 없는 속수무책의 상황이 안타깝다.

일주일 전인 7월 11일, 인류세 실무그룹(AWG)과 막스플랑크 과학사연구소가 베를린에서 중대한 발표를 했다. 인간이 지구 기후와 환경에 심대한 영향을 미쳐 새로운 지질시대로 이행했음을 과학적으로 확인했고 이를 증명할 국제표준층서구역(GSSP)으로 캐나다의 크로퍼드 호수를 선정했다는 것이 발표의 요지다. 마지막 빙하기 이후 12000년 간 안정적 기후 상태를 제공하여 인류문명의 출현을 가능케 했던 홀로세가 끝나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는 환경과학자 폴 크뤼첸의 주장이 학계에서 공인된 셈이다. 후속 논의를 거쳐 내년 8월 부산에서 열리는 국제지질학총회 (IGS)에서 인류세가 홀로세를 이은 새 지질시대로 공식화될 것으로 예상된다는데, 이 뉴스를 물난리 뉴스와 함께 접하는 마음이 무겁다.

인류세가 시작된다는 말은 단순히 지질학계 내부의 학문적 논의에 그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문명을 가능케 했던 우주적 환경조건의 대전환을 뜻하며 오랫동안 친숙했던 기온, 기후, 강우, 대기 등 지구생태의 안정성이 더 이상 지속되지 못하리라는 무서운 진단이다. 일시적인 이상현상도 일정 시간을 지나면 회복되는 자연의 치유력, 항상성 메카니즘도 기대하기 어려우리란 경고이기도 하다. 대기과학자들의 논의에 따르면 지구평균기온 상승 2도는 마지노선이고 1.5도 이내로 통제해야 힘들게나마 개선의 여지를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 그 임계점까지의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아서 다음 세대에게 부탁하거나 미룰 여유가 전혀 없는 절박한 상황이다. 탄소배출의 감소를 약속한 빠리협약의 결정은 이런 문명적 위기의식에 바탕한 것이었는데 트럼프를 비롯한 지구 정치인 상당수가 이것을 희화하하고 있고 우리 개인들도 일상에서 그 심각성을 제대로 수용하려 하지 않는다. 경고를 듣고도 바벨탑을 쌓던 고대인을 떠올리게 하는 형국이다.

지난 달 개최되었던 한국사회학회에서 서울대 김홍중 교수는 ‘파국주의’를 논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파국’이라는 화두 속에는 ‘위험’ 이라는 말조차 한가하게 들릴 정도의 긴박함과 절박함이 담겨있다. 그에 의하면 울리히 벡, 존 어리 등 유럽의 사회학자들이 21세기 미래를 파국이란 개념을 통해 포착할 필요성을 역설했는데 지구와 대기, 생명과 물질, 인간과 자연을 유기적으로 연결지어온 기존의 생태학적 조건들, 자연의 생명력과 회복력이 크게 훼손되어 전례없는 위험과 재난에 봉착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라 한다. 인류문명이 끝날 수도 있다는 종말론적 파국론을 냉정하게 수용할 때에만 그로부터 벗어날 희미한 가능성이 찾아질 수 있다는 역설적 메시지인데 솔직히 낯설고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대기과학자들의 경고를 들으면 이런 주장을 지나친 호들갑이라고 마냥 내치기는 어려워 보인다.

연일 계속되는 폭우 앞에 무력감을 느끼면서도 좌절하지 않을 심리적 대응기제가 있다는 것은 다행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믿음에 기대어 이 난국도 지나가고 일상도 회복되리라는 희망을 갖는 것 자체가 소중한 회복력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기대의 배후엔 장기간 작동해온 자연의 치유력이 있다. 인류세가 시작된다는 것은 이 지구생태적 회복력에 심대한 문제가 나타난다는 뜻이다. 이 위기의 시대에 새로운 대응력을 찾기 위해 인문사회적 지혜와 과학기술의 역량을 함께 모아야 할 때다. 개발과 효율, 편리함을 지고의 가치로 삼는 성장주의를 넘어, 지속가능성과 공생의 생활양식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큰 숙제다. 신의 자리를 넘보는 오만한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 공기, 대기, 우주, 물질, 기계 등과 더불어 피조물로서의 겸손함을 되찾는 인간개혁도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신은 인류의 타락을 징벌하면서도 ‘노아의 방주’를 통한 뭇생명의 지속을 허락한 바 있다. 과연 오늘 우리는 문명 위기를 경고하는 여러 징조 앞에서 노아처럼 방주짓기의 성스런 과업에 나설 수 있을 것인가 – 그칠 줄 모르는 폭우 앞에서 자문해 보는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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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기억

지인 한분이 카톡방에 이육사의 청포도 시를 올려놓았다. “내 고향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이라는 첫 문장은 매우 익숙하지만 실제 7월이라는 날짜와 연관지어 이 시를 떠올려 본 적은 없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 글을 접하는 순간 아 7월이구나 하는 생각이 확 다가왔다. 이육사라는 시인이나 청포도라는 이미지보다 특정한 날짜가 더 눈에 뜨인 것은 정년 이후 너무도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을 실감하기 때문일 듯 싶다. 새해를 맞이한지 어제 같은데 벌써 전반이 지났고 휴식시간을 갖지도 못한 채 후반전이 시작되었구나 하는 놀람이라고나 할까.

언론과 페북에도 7월과 관련된 이런 저런 글들이 올라온다. 대체로 이 달에 있었던 과거의 역사적 사건이나 그 때의 일들을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 7.4 공동성명, 7.7. 선언, 7.17 제헌절, 7.27 정전협정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인데 그 날짜에는 더욱 관심들이 높아질 것이다. 사실 과거 7월에 일어난 일들이라고 굳이 7월에 상기해야 할 이유는 없다. 다만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현재를 평가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한 방식이기 때문에 달력의 절기에 따라 특정일을 기념하는 것이 관행이 된 것이다. 이 기념행위에는 현재의 문제의식과 세계관이 고스란히 드러날 수 밖에 없어 7.4 나 7.7에 대한 평가는 박정희 시대와 노태우 시대를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진다. 또 시대적으로도 달라지는데 남북관계가 진전되던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평가는 크게 다르다. 2023년에 7.4 와 7.7 의 의미는 어떻게 읽혀질지, 정파적 차이는 어느 정도일지 궁금한데 북한이 핵무력을 강조하고 대남공세에 주력하며 신냉전이라 불릴 정도로 미중간 패권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을 고려하면 전과 같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반면에 7.17과 7.27에 대한 기억의 정치는 오히려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 7월 17일은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된 제헌절이다. 건국에 대한 충분한 준비없이 해방을 맞이했던 신생 국이 그 혼돈의 와중에서 잘 정비된 헌법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은 지금 생각해도 놀랍다. 세계사적으로도 그 수준이 떨어지지 않는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대원칙을 표방한 헌정체계 덕택에 분단과 전쟁, 각종 대립과 격동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이 민주화와 산업화를 이루고 오늘과 같은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국가로 도약할 수 있었다. 역사적 의미로만 따지면 ‘나씨옹’이라는 헌법적 범주 위에 근대국가를 탄생시켰던 프랑스 혁명에 비견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만 이 헌법적 가치가 한반도 이남에만 한정됨으로써 남북한 전체를 아우르는 힘을 갖지 못하는 것은 아쉽다. 북한은 전혀 이질적인 이념에 따라 수령체제를 뒷받침하는 독특한 헌법을 만들었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제헌절과는 조금의 공통분모도 갖지 못하는 상태다. 제헌절의 중요성과 남북관계의 개선의지를 함께 고려할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데 올해는 제헌절의 의미가 좀더 적극적으로 부각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7월 27일은 70주년이 되는 정전협정 체결일이다. 전쟁의 비극을 끝낸 날이지만 군사적인 정전, 잠정조치를 넘어선 항구적 평화체제를 보장하지 못한 탓에 그 역사적 의의에 대한 평가가 늘 제한적이었다. ‘정전상태’가 70년을 넘긴 것은 비정상이지만 남북은 물론이고 주변국들에 의해서도 장기간 이 체제가 수용되어온 이유도 경시할 수 없는 무게감을 갖는다. 정전체제는 한반도에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추구할 군사적 안정, 소극적 평화를 제공해 주었다. 북한은 이 날을 미국을 물리쳤다는 전승절로 기념함으로써 정전협정의 함의보다 반미항쟁의 정당성을 선전하는데 주력해 왔다. 올해도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준비중인데 기왕의 도발적인 수사와 핵무력노선을 더욱 강조할 개연성이 크다. 최근 중국의 한국전쟁 해석도 항미원조라는 이념적 해석을 공식화하고 있어 전쟁, 정전, 종전, 평화협정 등을 둘러싼 공통의 합의를 이끌어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지난 정부가 힘을 쏟았던 평화체제 구축노력이 과연 적절한 정책구상이었는지, 앞으로도 내세울 정책적 비전이 될 것인지를 둘러싼 논란이 이 날을 계기로 심화될 수도 있다.

7월을 맞이했으니 7,4, 7.7, 7.17, 7.27을 기념하는 각종 행사들이 이곳 저곳에서 개최될 것이다. 주관하는 주체들마다 제각각 이 날을 통해 강조하고 확산시키고자 하는 가치도 다를 것이다. 역사를 공유하는 것이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소중한 자원이지만 상이한 해석은 분열과 대립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한다. 해방 직후 좌우 정치세력 누구도 기미년 31 독립만세운동을 함께 기념해야 한다는 대의에 반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31절은 소중한 역사적 자산이었다. 하지만 단 한번도 공동 기념 행사를 치루지 못하고 오히려 좌우의 정치적 대립과 이념적 논쟁에 이용당하고 말았던 것도 뼈아픈 사실이다. 2023년 7월도 곳곳에 그와 유사한 역사전쟁의 암초들이 깔려있다. 서로 다른 미래전망을 인정하면서도 이념적 대립이나 정파적 논쟁을 넘어 공동체의 포괄적 미래 비전을 드러내는 기념행위는 불가능한 것일까. 헌법, 정전체제, 남북교류와 평화구축의 노력들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수용하면서도 긴장과 대립의 악순환을 넘어설 지혜를 찾아내려는 시도는 무용한 것일까.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오늘의 현실에 안타까운 마음 크지만, 그래도 역사는 더 나은 내일을 향해 가리라는 믿음을 포기하고 싶진 않다. 7월을 맞이하면서 나름의 기대와 희망을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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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사와 사회사

한국사회사학회 초기 멤버들이 신용하 교수님을 모시고 점심 식사를 함께 했다. 매년 스승의 날에 해오던 비공식 모임이 코로나를 거치면서 중단되었다가 금년에는 다행히 6월의 마지막 날 하게 된 것이다. 제주에서 조성윤, 광주에서 노치준, 충주에서 김경일, 세종에서 박명규가 올라왔고 서울에 거주하는 김필동, 이정옥, 정근식, 한영혜 교수가 함께 했다. 미리 예정되어 있던 일본 여행 탓에 황경숙 교수만 참석하지 못했다. 경향 각지에 흩어져 있던 동학들이 오랫만에 한자리에 모여 즐거운 담소로 시간가는 줄 모르는 하루를 보냈다.

점심을 하면서 신교수님의 생애사라 할만한 지난 이야기를 들었다. 여러 세대를 거쳐 유교의 가치와 덕목을 가르쳐온 제주의 훈장가문이었고, 유배온 육지의 지식인들이 으례 인사를 하러 올 정도로 명망이 있던 집안이었으며, 집터에 훗날 사찰이 지어질 정도로 집의 규모도 크고 경제적으로도 유복했으나 근대화의 흐름과는 달리 위정척사적 사상과 전통적 가치를 고수하려 한 집안이었다는 이야기는 흥미롭고 새로웠다. 부친이 유교적 가치관과 정감록의 영향을 받아 피난지로 이사를 다닌 일, 그로 인해 학교를 제때 가지 못하고 집안일을 도우며 독학을 해야 했던 어린 시절, 그 가운데서도 배우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과 노력으로 대학입시를 준비한 것은 불굴의 의지로 성공한 위인의 스토리와 닮았다. 이미 중고등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한 상황에서 집안 친척과 지인들의 도움으로 상업고등학교 야간에 편입 후 졸업한 일, 제주를 위해 일하는 인재가 되도록 그곳 대학에 진학하라는 권유를 끝내 마다하고 서울대학교 응시를 준비한 것, 탁월한 기억력과 집념어린 공부 덕택에 넉넉한 성적으로 합격한 일 등 한 편의 드라마라 해도 족할 정도로 드라마틱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서울대학교를 목표로 불굴의 향학열을 유지한 그 힘이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모두들 궁금해 했다. 개인적인 능력과 의지가 일차적으로 중요한 요인이었을 테지만 그 뜻을 존중해 여러 도움을 아끼지 않고 ‘국가를 생각하면 정치학으로, 민족을 중시하면 사회학으로’ 갈 것을 조언할 정도의 식견을 지닌 친척들이 계셨던 가문 전체의 분위기가 중요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여겨졌다. 고학 하다시피 하던 학부 초기에 ‘민족주의’ 강의에 매료되고 열정적인 답안지를 작성한 것, 학자가 되려면 절대로 정치운동에 참여하지 말고 막스 베버가 말한 ‘직업으로의 학문’에 충실하라던 최문환 교수의 가르침에 부응한 것, 상대로 자리를 옮긴 지도교수를 따라 다시 경제학 대학원으로 재입학한 것, 자신을 이끈 선생님과의 약속을 평생 지키며 살아온 일관성과 신실함 등은 위인전에서 읽을만한 장면들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내용들이었다.

흥미롭게 듣던 그 가족사의 시간대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를 거치는 한국근대사와 정확히 겹친다. 그래서 익숙한 여러 사건과 인물들, 예컨대 간재 전우와 면암 최익현, 일제 말기의 공습과 소개령, 해방 후의 4.3 사건, 한국전쟁과 빨치산 활동 등이 시대적 배경으로 소환되었다. 개인의 생애사는 가족사와 이어지고 그것은 다시 사회사와 직결된다는 것을 역동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함직 했다.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커피를 마시면서 노치준 목사가 저런 개인사, 생애사를 세밀하게 기록하거나 영상으로 남겨두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김교신의 예에서 보듯 한 개인의 생애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지속되려면 기록 자료가 필수적이라는 지적은 타당하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 뜻있는 삶을 살았으면서도 제대로된 기록을 남기지 않아 후학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사례들이 적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전기, 평전이 더 많이 쓰여질 필요가 있음은 분명하다. 다만 모든 개인사에는 사적 영역과 내밀한 상처의 흔적이 있게 마련이고 사회적 사건들과 결부하여 겪은 경험들이 각기 달라 객관적 평가와 서술이 어려워 손쉬운 작업은 아니다. 오랜 기간 일기를 써왔다는 한영혜 교수의 일기장을 보존하고 해설하는 (?) 작업부터 시작하자는 농담섞인 제안과 각자 자기 삶의 중요한 부분들을 기록하자는 다짐을 공유하는 것으로 일단 마무리했다.

개인사와 가족사, 그리고 사회사와 국가사는 서로 다른 영역을 구성하면서 또 긴밀하게 연결된다. 특히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국가와 사회의 격동이 가족과 개인의 삶을 뿌리채 뒤흔든 사례들은 부지기수다. 식민지화, 건국과 이념대립, 분단과 전쟁, 민주화, 산업화, 세계화, 정보화의 격랑에서 자유로왔던 개인이나 가족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개인으로선 이해할 수도 없고 예상할 수도 없었던 외부의 충격과 시대의 파도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감당하고 견뎌낸 모든 개인사와 가족사는 그 자체로 소중하고 존엄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다만 긴 역사적 맥락에서 각기 다른 평가와 의미부여를 받게 되는 것인만큼 미시사와 거시사의 특이한 연관과 불일치를 다루는 것이 사회사의 또다른 연구 영역이 될 터이다. 일생 학자로서의 외길을 걸으면서도 연구의 밀도나 주제의 깊이, 성과의 양, 판단의 정확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거장의 삶을 옆에서 지켜보고, 그 제자가 되어 오늘까지 온 것 자체가 참으로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함께 모인 동학들도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 모두의 생애사는 우리 당대의 시대사와 어떤 모습으로 연결되며 어떤 자취로 남을까 곰곰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