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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진회

6월 주말을 이용해 오랫만에 보진회 모임이 경주에서 열렸다. 외조부님의 손자녀들 중심으로 서로의 우의를 돈독히 하고자 만들어진 모임이다. 언젠가는 이런 것아 필요할 것이라며 종자돈과 함께 외조부 아호를 딴 보진회를 두 분 외숙께서 주도해 만드신 때가 거의 20 년 전이다. 어머니가 외가의 맏딸이고 나는 우리 집안의 장남인 관계로 자연스레 내가 이 모임의 회장이 되었는데 제대로 회장 역할을 할 기회도 없이 세월이 흘렀다. 모두들 안팎으로 바쁘고 또 서울과 지방, 해외 등으로 흩어져 살아온 탓에 소식도 공유하기 어려웠는데 이제 이런 모임을 할 마음과 여유가 생긴 셈이다. 현직에서 은퇴하거나 곧 은퇴를 앞둔 사람들도 적지 않고 머리가 백발이 된 사람도 여럿이지만 다들 건강한 얼굴로 반갑게 회동할 수 있으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기억 속에 남아있는 수동의 외가댁은 대문과 안채, 사랑채 등이 마당을 중심으로 둘려져 있는 꽤 규모가 있는 집이었다. 외조부 송정헌 옹은 말년에 중풍으로 걸음이 다소 불편하셨지만 언제나 깔끔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성품은 온화하셨지만 손자녀들에게 냉정한 훈계의 말씀도 곧잘 하셨다. 얼굴 빛이 매우 맑았고 눈매가 선명했는데 어머니는 그런 모습이 절제된 생활습관, 특히 식습관과 관련된다며 ‘식담심쾌'(食澹心快)라는 말을 종종 하셨다. ‘먹는 것이 담백하면 마음이 상쾌하다’는 이런 생각은 자연과의 조응을 강조하는 산림처사의 정신과도 연관이 있을 법하다. 실제로 외조부는 말년에 생식을 즐기셨고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셨다. 상할아버지도 생존해 계셔서 4대가 함께 하는 대가족이었는데 그런 가정의 대소사를 뒷바라지 하느라 외조모님은 굽은 허리에도 한시도 몸을 쉬지 않는 부지런함이 몸에 밴 분이셨다.

개인화와 도시화가 급진전된 한국사회에서 친족의 유대는 현저히 약화되었다. 세대가 달라지고 사는 곳이 같지 않아 친척들 간에도 서로의 얼굴과 저녀들 이름 기억하기 어려운게 현실이다. 나는 한국의 급속한 대가족제 해체를 강의할 때면 늘 박경리가 쓴 대하소설 [토지]를 예로 들곤 한다. 1부에서는 끈끈한 친족간 유대와 마을 단위의 공동체성이 뚜렷하지만 2부와 3부로 넘어가면 그런 정서적 연결성은 해체되고 새로운 인간관계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 소설에서 낮은 신분의 길상이와 결혼한 최참판댁 손녀 서희가 만주에서 돌아와 진주에 터를 잡는 2부와 3부의 내용은 농촌 중심의 시대에서 도시 중심의 시대로, 양반지주 중심의 사회에서 돈과 권력의 사회로 바뀌어가던 변화와 정확하게 대응한다. 외조부의 3남 5녀가 살아온 시대는 식민지배, 해방, 전쟁, 독재, 경제발전, 도시화 등 20세기 변화가 고스란히 담겨있으니 토지 3, 4부 이후 어디 쯤에 속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박경리 소설을 워낙 좋아했는데 그 덕분에 [토지] 완간기념 세미나에 발제자로 참여해 평사리의 인간관계를 분석한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최참판댁과 인근 주민들의 근끈한 신뢰가 너무 미화된 것은 아닌가라는 조심스런 의견을 피력했는데 한 신문에서 ‘토지의 시대인식에 오류’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해 당혹했던 기억이 난다. 후일 박경리씨가 내 논문에 좋은 평을 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경주에서 사촌들과의 즐거운 모임을 하면서 새삼 박경리가 떠오른 것은 수동 외가댁의 분위기가 토지 1부의 정서를 떠올리게 한 데다 어머니와의 인연이 생각난 탓이다. 박경리는 어머니와 일제시대 일신여고 동기셨는데 아쉽게도 어머니와 함께 만나 이야기 나눌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

경남의 작은 시골마을의 한 집안에서 나고 자란 자녀들이 성장하여 또 다른 사람들과 가정을 이루고 한 생애를 열심히 살았다. 그 세대가 낳은 손자녀들이 성장하여 사회 곳곳에서 활동하고 그 슬하에 여러 아이들이 태어나 자라고 있다. 예전에 비해 가문의 소중함이나 혈통의 무게감이 많이 약화된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가족을 통해 이어지는 생명의 연쇄는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념 대립과 전쟁의 상처가 깊었던 서부경남에서 외가댁도 그런 수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어 슬픈 사연들이 숨어 있지만,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후손의 세대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고 기적이다. 저녁을 먹은 후 안압지를 새롭게 복원 발굴한 ‘동궁과 월지’ 를 함께 둘러보면서 나는 야경을 감상하는 즐거움보다 그런 생각에 뿌듯함을 느끼는 기분이 더 컸다. 경주를 떠나기 전 잠시 올랐던 토함산에서 멀리 동해를 바라보며 각자의 삶 속에 건강과 행복이 늘 함께 하기를 마음으로 기도했다. 뜻깊은 1박 2일의 경주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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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강 소감

23년도 1학기 종강을 했다. 코로나로부터 벗어나 본격적인 대면강의가 시작된 첫 학기여서 모처럼 캠퍼스의 활기를 느낀 학기다. 개인적으로는 광주를 오가느라 이전 학기에 비해 몸이 좀 더 고되기는 했다. 그래도 젊은 후배 교수들과의 만남, 학생들의 활기찬 모습들을 접하는 것 자체가 생활의 큰 활력이다. 생각보다 고속도로에서의 2시간 운전이 크게 부담이 되지 않은 것도 다행한 일이다.

지난 2년간 코로나 경험 속에서 비대면 수업을 온라인을 통해 하면서 나는 학생들에게, 또 나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지속적으로 던졌다. face to face relation 을 보장하는 것은 물리적 모임인가 아니면 정보와 감각의 소통인가. 디지털 기기로 화면을 통해 얼굴을 맞대고 자유로이 이야기하는 것이, 마스크를 쓴 채 거리를 유지하고 대화를 최소화하는 것보다 훨씬 더 ‘대면성’ 을 보장해주고 ‘face to face’ 감각을 주는 것 아닐까 라고. 분명히 그런 점이 있고, 앞으로 강의와 교육에서 온라인이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역시 학생들을 눈앞에서 보고 강의할 때의 생동감이 온라인에서의 느낌과는 다른 것임을 이번 학기에 느끼고 있다.

학생들은 그러한 생각에 부분적으로 공감하는 것 같다. 교수와의 소통이나 강의를 통한 배움의 차원에서는 온라인이 크게 문제되지 않고 오히려 긍정적인 장점도 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수업은 교수의 강의가 전부가 아니다. 수업은 친구들과의 만남의 장이고 수업을 오가며 나누는 일상의 대화 기회이다. 뿐만 아니라 캠퍼스 자체가 새로운 문화경험, 세대로서의 감수성을 공유하고 체검하는 실험장인데 그런 기능은 온라인이 대체하기 어렵다. 이렇게 보면 온라인 강의의 효과성을 높이 평가하는 내 자신이 너무 교수 중심적 사고, 강의 중심적 캠퍼스라는 선입견에 갇혀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코로나 팬데믹은 종료되었으나, 대학과 강의의 방식이 전적으로 이전으로 돌아가서는 안될 것이다. 팬데믹 자체가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올 수도 있고, 무엇보다도 주입식 교육과 관행화된 학교 시스템의 문제점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문제의식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여전히 혁신적 대응이나 과감한 실험보다 안전한 과거, 익숙한 제도에로 급격히 되돌아가는 듯 하다. 대안이 불분명하면 보수적이 되는 경향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지 여전한 쟁점이자 고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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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2년간 단독주택 생활을 끝내고 다시 아파트로 이사했다. 주인이 집을 매매하기로 했다는 전갈을 받은 후 새 전세집을 구했기 때문이다. 새소리로 잠을 깨고 정원의 잔디를 깎던 즐거움을 더 누리지 못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다. 다행히 이사한 아파트도 넓은 공유 정원과 각종 주민시설을 갖추고 있어 또다른 만족이 있으려니 기대를 가져본다.

이번 이사는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 집값 하락으로 매매의사를 철회한 주인이 전세금 반환의 어려움을 알려왔기 때문이다. 은행에서 융자받아 전세금 일부를 지급하고 나머지는 전세가 구해지는대로 상환하겠다고 했다. 한국 특유의 전세제도는 통상 새 임차인의 전세금으로 앞 사람 전세금을 갚는 구조여서 어느 한 부분에 문제가 생기면 선의 여부와 상관없이 연쇄적인 파장이 생길 수밖에 없다. 전세대란 뉴스가 연일 들리는 것은 경기가 어렵기도 하지만 이런 연쇄구조에 문제가 생긴 것일테다.

주변의 지인들은 한결같이 구두 약속만 믿고 이사해서는 낭패를 당할 수 있음을 염려했다. 언론에는 전해지는 소식에는 전세사기라 할만한 고약한 사례도 있지만 상당부분은 주택 임대의 연쇄고리가 깨어지면서 파생된 불가항력적인 사태여서 어느 한 편을 비난하기도 쉽지 않다. 이런 연쇄고리에서 나도 자유로울 수는 없어 법적 자문을 받기로 했다. 변호사는 친절하면서도 단호하게 추가초지의 불가피함을 설명했다. 이미 주민등록을 옮겨 법적 대항권이 소멸되었으므로 차선책으로 임차권 등기 신청, 지급명령 신청을 하는 것이 좋으리라고 했다. 생소한 법률 절차를 충분히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그 설명이 타당하게 여겨져 제안을 수락하기로 했다.

내가 변호사의 조언에 따라 주민등록을 다시 현주소로 옮겨놓고 임차권 등기가 완료될 때까지 이사짐 일부를 남겨두겠다고 알리자 집주인은 서운함을 표했다. 자기도 최선을 다하고 있고 은행대출까지 해서 일부를 지급하는 성의를 보였는데 이런 조처를 취하느냐는 섭섭한 감정이 느껴졌다. 신뢰할 수 없어서 한 일이 아니고 불가항력적 상황에 대비한 것일 뿐이니 양해하시라 설명했지만 사실 나로서도 이런 일은 정서적으로 불편할 밖에 없다. 이사 당일 찾아온 주인의 부인은 나의 조처를 충분히 이해하며 제때 전세금을 반환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뜻을 전했다. 심성이 좋은 분들인데 이분 들도 마음 고생을 한다는 생각을 했다.

이사 당일, 새벽부터 시작된 기민한 작업과정을 지켜본 것은 또다른 경험이었다. 7-8명이 한 팀으로 작업하는데 누구의 지시나 명시적 업무절차도 없이 고도의 정밀 기계처럼 이곳 저곳 크고 작은 짐들을 재빠르게 정리하고 포장했다. 새 집에 와서 그 짐들을 배치할 때도 손발이 척척 맞는 기민한 일처리 과정이 마치 고속으로 상영되는 한편의 모노 드라마를 보는 듯 했다. K-culture에는 한국 영화나 음악 만이 아니라 포장이사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과연 그럴 만했다. 각자의 개성이 드러나면서도 전체가 조화롭고 다이내믹한 장면을 구성하는 K-Pop 공연이, 저 포장이사의 놀라운 협업시스템과 맥이 닿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버리기보다 쌓아두는 것이 더 익숙한 탓에 짐은 언제나 불어난다. 내 삶에 요긴한 도움을 준 것들이니 계속 지닐 필요가 있는 것들이 많지만 그 중에는 사실 버려도 지장이 없는 것이 적지 않다. 저 많은 책들 가운데 앞으로 내가 다시 볼 것은 얼마나 될 것이며 이런 저런 계기로 생긴 물건들 역시 언제까지 소장해야 할지 모르겠다. 운동을 해야 몸이 가벼워지고 묵은 것을 비울 때 새로운 것이 채워지는 법이니 이제는 더 과감하게 버리고 줄이는 삶을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몸도 마음도 물건도 가볍게 하기 – 이사를 마무리 하며 다짐해 본 단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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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쾌한 삶 무거운 숙제

동네 사회학자를 자처하면서 새로운 삶의 형식을 실천하고 있는 조형근 박사가 [나는 글을 쓸 때만 정의롭다]라는 책을 출간했다. “연대사회를 갈구하는 어느 지식인의 자기성찰”이라는 부제 그대로 조박사는 진지한 사색과 성실한 생활에서 우러나오는 진솔한 생각들을 이 책에 담았다. 글의 형식은 딱딱한 논문투가 아닌 에세이 같지만 담긴 내용의 깊이와 폭은 매우 깊고 넓다. “계시가 아니라 고백이라 좋고 고뇌하되 중심을 잃지 않아 좋다”는 한 평자의 지적에 공감이 간다.

조박사는 서문에서 이 책을 쓰게된 계기의 하나로 ‘그럭저럭 살기가 불가능해’진 상황을 꼽았다. 구체적으로는 세월호 사건을 들었지만 글의 곳곳에서 그의 이런 지적 성실함은 그 이전부터 지속된 것이었음을 확인한다. 그는 세상을 비판하는 글은 동시에 자신을 성찰하는 고백록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데 실제 그의 글은 자신의 경험에서 시대를 읽고 개인적 한계에서 사회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섬세함으로 가득차있다.

저자는 자신이 동네 사회학자임을 자처한다. 실제로 신문지상의 저자 소개에 다른 수식어 없는 사회학자라는 타이틀을 붙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소수의 사람 중 하나다. 대학교수직을 버리고 동네책방과 크고작은 문화활동에 참여하면서 그의 마음은 편안해지고 시선은 더욱 예리해졌다.

더구나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에 살면서 동네라는 작은 현장, 사람들이 사는 공간에 발딛고 있는 생동감이 뚜렷하다. 1988년 사당동 철거촌에서의 기억을 잊지 않는 조박사의 글은 그의 말대로 ‘찾아온 길이면서 돌아온 길’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진솔함이야말로 변함없는 글과 생각의 힘이 아닐까. 조형근 박사의 책이 던진 화두 앞에 반가움과 무거움을 함께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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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서는 땅’

2월 17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중인 임옥상 화백의 일어서는 땅을 관람했다. 친구인 이승재 교수와 함께 갔는데 프랑스에서 왔다는 외국인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열정적인 임화백의 설명들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들은 열심히 작품을 보고 또 통역을 통해서 작가의 해설을 경청했다. 임화백과 사진을 찍으려하고 함께 포즈를 취하면서 기뻐하는 모습들 속에서 예술이 갖는 힘과 함께 국제적인 셀럽이 된 임화백의 존재감이 크게 와 닿았다.

흙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이전에도 보아왔지만 그림과 글씨를 함께 묶고 흙과 철과 땅을 연결하는 놀라운 발상과 스케일에 가히 압도당했다. 특히 봄이 되어서인지 매화 작품들이 인상적이었다. 겸재의 매화 병풍을 연상케 하는 오랜 고매화의 힘찬 등걸, 뒤틀리면서도 용솟음치는 역동성, 바람에 휘날리는 잔가지들, 꽃비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흐드러진 매화꽃잎들… 백매의 아름다움과 홍매의 화려함이 모두 격조와 스케일로 감동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임화백과 점심을 함께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얼마전 미국방문에서의 경험담에 더하여 최근 인터넷, 디지털 기술문명이 화단에도 영향을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흥미있는 말도 들었다. 보관과 전시, 제작에 여러 한계를 지니는 실제의 작품보다 이미지와 영상으로 만들어지고 거래되는 변화가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벤야민이 말했던 복제기술 시대의 예술론이 일상화되는 느낌이었다.

chat GPT 로 인한 교육과 글쓰기에서의 새로운 상황이 초래하는 내 경험도 함께 화제가 되었다. 과학기술문명의 영향이 그 어느때보다 심대하고 조밀해지는 시대에 학문과 예술, 진리와 품격을 유지하고 가꾸어갈 지혜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큰 숙제라는데 공감했다. 그럴수록 창조력을 지닌 지식인과 임화백 같은 예술가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 질 것이다. 제아무리 인터넷과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시대가 오더라도 창조와 혁신, 품위와 기개는 역시 사람의 몫일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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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안과 허심

음력 설을 하루 앞두고 박규수의 시 한편을 계묘년 신년휘호 삼아 쓴다. ‘냉철한 눈으로 시대의 쟁점을 살피고, 욕심없는 마음으로 고서를 읽는다’ (冷眼看時務 虛心讀古書) 개항기 조선왕조에 몰아닥친 격동의 풍랑을 헤쳐가야 했던 유학지식인의 책임감과 진정성이 잘 드러나는 시다.

관심과 초연, 冷眼과 虛心의 두 측면을 모두 중시하려는 박규수의 마음에 공감이 간다. 현실의 위기와 모순에 두 눈 부릅뜨고 개입하는 참여정신은 소중하다. 동시에 어지러운 세상사로부터 눈을 돌려 내면의 평안을 구하려는 은자의 지혜도 무시해서는 안된다. 전자가 없으면 사회에 무책임해지고 후자가 없으면 실존적 삶에 여유가 없어진다.

두 마리 토끼를 좇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다. 자칫 어느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좌고우면하는 삶이 될 우려도 있다. 2023년 토끼의 해를 맞이했으니 時務에의 관심과 古書로의 침잠이란 두 마리 토끼를 좇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이 바램을 묵향에 담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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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 감사 감내

2022년이 가고 있다. 변화가 컸던 한 해다. 코로나의 여진 속에서 일상은 그런대로 회복 중이지만 환경도 관계도 마음도 적지 않게 변했다. 정권의 교체와 이념갈등, 집값 폭등과 폭락, 청년층의 좌절과 세대격차, 디지털 기술의 명암, 재난을 내장한 역동성 등 전례없이 많은 문제들이 터져나온 한 해다. 2023년에도 역대급 경제불황이 닥칠 것이고 한반도 긴장도 심해질 것이란 암울한 전망이 뒤를 잇는다. 탈냉전 평화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우크라이나 전쟁도 해를 넘길 것이 분명하다.

박노해의 “여명에 물을 긷다”란 시를 떠올린다. 해뜨는 순간, 여명의 시간이 ‘생의 신비’라고 노래하는 시인은 에티오피아의 척박한 땅에서 먼 길을 걸어 물을 길어오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을 상상한다. 그 무의미해 보이는 일상의 반복 속에 놀랍게도 사랑과 희망이 자라고 그 힘이 삶의 무게를 감당케 한다는 것이다. ‘감동하고 감사하고 감내하며’ 라는 마지막 연은 이런 생의 역동성, 신비로운 힘을 확인하는 사람들에게서 찾아지는 독특한 품성이다.

감동의 정서가 점점 사라지는 것 – 현대인의 병폐이자 늙어가는 징조다. 감사하는 마음이 줄어드는 것 – 인간성의 고갈과 자기중심성의 표지다. 감내할 여력이 없어지는 것 – 믿음과 희망이 사라지는 시대의 징표다. 역설적으로 감동, 감사, 감내는 이런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낼 핵심적인 자산이 된다. 얻기 여려운 것 같지만 누구든 마음공부로 얻을 수 있는 자산이기도 하다. 이 자세로 2022년을 마무리하고 2023년을 맞이할 것을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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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림동 근대문화유적

12월 6일 광주시 양림문화마을을 탐방했다. 호남지방의 근대화 과정, 특히 기독교를 중심으로 진행된 초기의 다양한 변화가 역사적인 건물과 함께 농축되어 있는 곳이다. 이전부터 남도답사 대상 리스트에 올려 놓았었는데 이제야 현장을 오게 되었다. 오웬, 유진벨 등 이름이 익숙한 초기 선교사들의 삶이 배어있는 공간과 기념물을 둘러보았고 최흥종, 조아라, 김필례, 김현승 등 이곳에서 배출된 초기 한국 지도자들의 행적도 그들이 활동했던 병원,교회, 학교, 기념관 속에서 만날 수 있었다.

도로변의 한 건물이 눈에 띠었다. 붉은 3층 건물의 외벽에 이국적인 선교사 얼굴이 장식처럼 붙어있고 흰색의 부조로 제작된 ‘최후의 만찬’ 작품이 걸려있다. 가만히 보니 예수를 한 가운데 두고 좌우로 이 지역에서 헌신했던 선교사와 초기 기독교 리더들 11명을 배치한 것이다. 베드로, 요한 등을 대신하여 오웬, 유진벨, 쉐핑, 정율성, 최흥봉, 조아라 등을 식탁 주위에 배치한 창조적 구성이 놀랍다. 저런 작품을 상상하고 저런 컨텐츠를 거리에 조성할 수 있는 이 지역의 문화적 안목이 대단하다.

호남신학교에 연한 작은 동산에는 이곳에서 활동하고 생을 마친 벽안의 선교사들이 잠들어 있는 묘역이 있다. 그 뒤에는 일제시대와 6.25를 거치면서 순교한 호남지방의 850여 순교자들을 기리는 돌비가 세워져 있다. 동산을 돌아나가는 곳에 이들 순교자들의 이름을 새긴 돌계단이 있는데 ‘고난의 길’이란 이름처럼 한발 한발 걸으며 인생을 생각하게 한다. 종교사회학자로 대학에서 가르치다가 양림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셨던 노치준 목사께서 이곳저곳을 설명해 주어 더욱 깊은 이해를 할 수 있었다.

묘역에서 내려오면서 유진밸 기념관을 들러 4대에 걸친 이 가문의 헌신적 활동을 살펴보았다. 100년 이전 가난하고 낙후한 한국, 식민지로 전락한 조선인들과 살기로 작정한 저들의 헌신과 수고는 참으로 고귀한 것인데 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생각만큼 살갑지 않다. 한 때 북한돕기활동으로 만나곤 했던 인세반, 인요한 형제의 사진도 반갑게 확인했다.

이 지역에 큰 발자취를 남긴 오방 최흥종 목사의 일생을 자세히 알게 된 것도 큰 보람이었다. 3년전 완공되었다는 오방기념관에서 손자인 최협 교수를 반갑게 만났고 그로부터 직접 여러 설명을 들었다. 낯선 선교사와의 만남이 계기가 되어 회심한 이후 평생 한센인을 위한 헌신자로 생활했고 평양신학교를 거쳐 시베리아 선교사로 활동한 신앙인이었으면서 3.1운동, 신간회, YMCA, 노동공제회 등 한국의 근현대사 곳곳에 깊은 족적을 남긴 최 목사의 활동 폭은 참으로 놀랍다.

기념관의 전시 내용을 통해 초기 한국기독교에는 참으로 폭이 넓고 뜻이 깊은 어른들이 계셨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옥고도 치루었고 해방 직후 사회정치적 영향력이 컸을 법한데 스스로 권력과 명성을 멀리했다 하니 왜 백범 김구가 그에게 ‘和光同塵’이란 휘호를 남겼는지 이해될 듯 했다. 공식역사에서조차 힘있는 유명인들만 기억되는 오늘날 뒤늦게라도 이런 기념관이 세워진 것이 얼마나 다행한가.

최근 젊은 여행객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는 펭귄마을도 양림동의 중요한 한 모습이다. 정겨운 골목길, 오랜 담장들 곳곳에 재미있는 사진과 글귀를 붙이고 옛날 형식의 사진관과 점방 등을 만든 도시재생의 한 사례다. 선교와 교육과 계몽과 의료라는 중요하면서도 다소 무거운 분위기가 깉은 공간과 달리 이곳은 일반인들의 일상적 삶에 기반한 만큼 유쾌하고 소박한 느낌이 강했다.

골목길에 선교사와 기독교 지도자들의 이름이 붙여져 있고 담장에 이들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걸로 미루어 당시의 근대문물이 주민들에게 이질적이거나 거부감을 주진 않았음이 분명하다. 종교적 가치와 계몽적 과학이 잘 어우러진 현장이었다 하겠다. 선교사들의 집과 기념관은 대체로 우아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지니고 있다. 영화를 찍을 때 배경으로 선호되기도 하고 문화공원으로 조성되어 시민교육의 현장이 되고 있는 것도 좋아보인다.

다만 유산으로 남는 것과 현실의 영향력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닐 터이다. 종교와 역사가 지닌 무게감과 여행과 소비의 즐거움 사이의 차이도 점점 커진다. 한국의 기독교가 세계적 규모를 자랑하며 성장해오는 동안 가난하고 병든 민중과 함께 했던 모습은 점점 기념관 속으로 박제화되고 있는게 안타까운 현실이다. 저 유서깊은 공간과 건물에 담겨있는 숭고한 헌신과 교훈이 과거의 유적이나 기념물로만 남지 않으려면 어떤 노력이 더해져야 할까 내내 머리에 맴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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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聲

가을비가 온 종일 내리면서 채 물들지 못한 낙엽들로 마당이 어지럽다. 비 내리는 소리를 듣다가 중국 송대 문장가 구양수의 글 추성부(秋聲賦)가 생각났다. 한 폐친이 이에 관한 이야기를 올려놓은 글을 읽었던 기억 때문일터이다. 인터넷에서 전문을 다운 받아 다시 읽어보았다. 지금 읽어도 명문이니 명불허전이다.

동자와의 문답으로 시작해서 동자 이야기로 마무리되는 글이다. 때론 조용한 듯 때론 요란한 듯 들리는 것이 무엇인가 물으니 동자는 나무들 사이에서 들려오는 소리라 한다. 시인은 이것이 바로 秋聲 곧 ‘가을소리’라 했다. 차갑고 냉정한 기운으로 무성함을 자랑하던 초목의 잎을 떨어뜨리는 가을은 만물변화의 섭리를 드러내는 기운이 드러나는 계절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인가 말년의 김홍도가 추성부를 화제로 한 그림을 남기기도 했다.

불현듯 나도 그 기분을 표현해 보고 싶었다. 먹을 갈고 붓을 잡아 잎이 떨어진 나목 두 그루를 그리고 추성부 문장 가운데 마음에 와닿는 부분들을 적었다. ‘성정이 없는 초목도 때가 오면 내려놓을 줄 안다’고 노래한 시인은 “사람이 금석의 몸을 지닌 것도 아닌데 어찌 초목과 더불어 영욕을 다툴 것인가”라고 자문한다. 그래서 가을소리를 안타까와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덧붙인다.

시인은 가을 소리를 들으면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동자 이야기로 글을 마무리한다. 계절을 즐기지 못하고 인생사의 교훈만 찾으려는 식자들의 버릇에 대한 따끔한 일침을 이런 천진스런 행동 속에 담으려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고보니 가을비를 그냥 즐기지 못하고 이런 저런 일거리를 만들려는 나한테도 던지는 가르침일지 모르겠다. 어쨋든 가을의 정서만은 담뿍 담으려 노력한 소품 한 점이 만들어졌다. 올 가을 거실에 걸어두고 추성을 들어보리라 생각한다.

life · 오늘의 화두

묘한 9월

9월 개학으로 4학기 만에 대면강의가 시작된다. 여전히 감염자 숫자는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경각심이나 조심스러움은 많이 사라졌다. 식당이나 커피숍은 이미 이전 상황으로 돌아간 모습이고 학교 캠퍼스도 예전같은 활기를 기대하는 모양새다. 개인적으로도 코로나로부터 벗어나는 날이어서 반갑다. 국민비서 구삐의 이름으로 귀하는 격리대상자이며… 위반하면 처벌될 수 있으며… 어려움이 있으면 아래 번호로 연락하십시요라는 영혼없는 메시지를 받았을 때 기분이 떠오른다. 마침 날씨도 선선하고 마당의 대추나무와 감나무 잎새들에는 옅은 주황색이 비치기도 해서 신선한 가을, 해방감을 느껴도 되리란 기대감이 차오른다.

한 주일 전 좌담을 위해 몇 시간 대화와 식사를 함께 했던 사람 중 한 분이 감염되었는데 며칠 내로 참석자 3명 전원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지금까지 잘 피해왔는데 결국… 하는 안타까움도 없지 않지만,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일인 담에야 언젠가는 올 일이 이제 왔다는 담담함이 더 컸다. 둘러보면 드러내지 않으면서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이 주변에 적지 않다. 자발적 격리라 하지만 좁은 자기공간에 갇혀있어야 하는 생활이 쉬울 리는 없다. 혼자 있을 공간의 경계선을 치면서 ‘위리안치’라는 옛 유배형을 떠올렸다. 사람의 이동을 제한하고 만남을 통제하는 것이 태형이나 장형보다 훨씬 가혹한 형벌임을 오래전부터 알았던 것이다.

21세기 유배형이 있다면 집주위의 가시울타리를 치는 대신 스마트폰을 압수하거나 전원을 차단하는 것이 되었을 듯 싶다. 격리기간 중 유투브가 친절한 방문객 노릇을 톡톡히 했으니 말이다. 마음에 드는 동영상은 마치 나를 찾아 먼길을 온 벗과 같이 반가왔다. 온라인 상에서 이런 저런 강연과 정보들을 접하면서 나는 위리안치 상황에서도 빈객을 맞아 담소할 수 있었던 조선조의 선비를 떠올렸다. 간혹 내 상태를 꿰뚫어보고 있는 듯한 추천동영상을 접할 때면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빅브라더를 만나는 놀라움에 흠칫 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온라인을 통해 공간의 격리감을 뛰어넘고 정서적 고립감을 해소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나도 전형적인 포노사피엔스로 변모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격리 해제를 목전에 둔 상태에서 돌이켜보니 잠시나마 강제적으로라도 휴식하게 된 의미있는 기간이었다. 약간의 열과 기침이 동반되긴 했으나 크게 어려움 없이 회복된 것 매우 감사한 일이다. GIST 부임 후 네 학기만에 처음으로 대면수업이 시작되었는데 그 첫 주 수업부터 휴강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은 못내 아쉽다. 하지만 학생들은 언제나 그러하듯 휴강을 환영했으리라. 아! 묘한 느낌으로 맞이하는 9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