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오늘의 화두

20대 대통령 선거와 ‘민심’

20대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비호감 선거라는 말들이 많았고 실제로 지지할 후보가 마땅찮다는 견해가 적지 않았던 것에 비해 선거에 대한 관심과 투표열은 매우 높았다. 사전선거에서의 관리소홀로 잡음이 있었고 1%도 채 되지 않는 근소한 표차로 승패가 갈라졌지만 패자는 깨끗이 승복하고 선거불복 운운 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코로나 위험 속에서도 길게 줄 선 유권자들의 모습과 결과를 수용하고 격려와 협치를 당부하는 말들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함과 공고함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곳곳에 응어리진 대립과 해소되지 않은 감정들이 넘쳐나 후유증과 상처가 만만치 않다. 내가 폐친을 맺고 있는 SNS 상에는 환호와 기대를 표하는 글도 있지만 분노와 좌절의 목소리가 훨씬 많고 그 강도도 심하다. 서로 다른 글들 속에 담겨진 감정의 색깔과 농도는 너무 다르고 날이 서 있어서 저토록 불안한 감정의 힘이 어디서 언제 충돌할지 걱정스럽다. 진보와 보수, 노년과 청년, 남성과 여성, 영남과 호남 사이에 정서적 대립과 균열이 커진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심각한 문제를 반영하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에 터한 전국적 촛불시위로 대통령을 탄핵하고 현 문재인 대통령을 선출하고 민주당을 여당으로 만들어준 거대한 민심이 어떻게 불과 4년만에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힘으로 바뀌었는가? 이 질문은 이번 대선의 분석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한국 민주주의의 역동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깊이 고찰해야 할 쟁점이다. 부동산 정책 실패를 비롯한 여러 잘잘못과 함께 권력주도세력의 내로남불, 정파적 태도가 불러온 정서적 반감이 그에 못지 않은 요인이 되었음은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바다. 민심이란 살아있고 늘 변화하지만 반드시 합리적인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 것이 분명한 이상 선거동학에 작동하는 합리적 선택과 비합리적 정동의 상호성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저야 할 듯 싶다. 우리 정치와 지성계의 담론은 너무 논리와 말에 의존하고 있어 마음과 감정의 흐름을 제대로 포착하는데 한계가 커 보인다. 이성과 감성, 논리와 정서를 아우르는 품격, 지혜, 공감이 더 요청되는 것 아닐까…

life · 오늘의 화두

1년만에 다시 핀 梅巖同人 난향

1년 전 정년기념 서예전을 열었을 때 제자들로부터 받은 난이 새 봄을 맞아 우아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꽃대가 올라온 것은 두어주 전인데 이제 멋진 꽃잎이 하나 둘 벌어지면서 은은한 난향으로 온 거실을 채운다. 온도 변화가 크지 않은 집안에서도 계절이 오고 가는 것을 정확히 알고 반응하는 식물의 예지에 새삼 놀란다.

코로나 상황으로 모든 것이 어려웠던 때, ‘以文會友’ 서예전을 열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제자들에게 줄 글씨를 준비하면서 得天下英才 하여 맺었던 학연들을 되돌아보고 함께 기리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 매화가 피던 계절이라 그 글씨를 받을 제자들이 ‘매암동인’이라는 이름으로 모여 나누었던 정담의 시간은 고맙고도 감동적인 우정의 ‘詩會’였다는 생각을 한다.

그 때 선물로 받은 난화분에 달려 있던 리본은 지금도 그대로 꽂혀 있다. 내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우리 선생님 행복하세요 제자 일동’이라고 쓰인 글귀를 유심히 보는 모습들도 종종 본다. GIST 에서 새로운 학생들을 만나고 새로운 인연을 맺어가는 것도 참 귀하지만 서울대 재직 시절 제자들과 맺었던 지적 교분이 내 인생에 미친 영향력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다시 매화 피는 계절에 새로이 난향을 맡으니 지난 일년이 주마등같이 지나간다. 모두들 건강하고 잘 지내기를 마음으로 빈다.

life · 오늘의 화두

시골 음식점의 AI 로봇

30여년 전 간간히 들리던 화산의 작은 음식점을 찾아 나섰다. 당시 거주하던 전주에서 고향 안의를 방문할 때면 으례 진안, 장계를 거쳐 육십령 고개를 넘었다. 돌아오면서 구불구불한 고갯길을 내려오면 허름하지만 정겨운 순두부집에서 식사를 하곤 했다. 서울로 직장을 옮긴 이후 한번도 가 보지 못했는데 모처럼 기회를 만든 것이다.

가는 길이 고속화되고 새로 지은 큰 식당과 엄청난 넓이의 대형 주차장으로 여기가 내가 찾던 곳인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낡은 마당이 있던 기와집, 좁은 방들로 이어지던 식당, 두부를 만들고 오가는 손길들을 바라보던 풍경은 머리 속에만 남아있는 기억이었다. 주변은 예나 크게 달라진 바 없는데 식당만 대형화한 변화가 낯설게 다가왔다.

그런데 더욱 놀란 것은 음식 배달 로봇의 등장이었다. 주문한 도토리묵을 얹은 자그만 로봇이 테이블 옆에와서 파란 표지등을 깜박였다. 옆에 있던 손님이 음식을 꺼내고 ‘가라’고 말하라 가르쳐준다. 수고했다 가라고 하니 꾸벅 뒤돌아 종종걸음으로 주방을 향한다. 시골 한적한 음식점에 찾아와 글로만 접하던 변화의 한 단면을 실감있게 확인한다. 30여년의 시간이 빚어낸 다이나믹 코리아의 한 단면이다.

life · 오늘의 화두

설날 산행과 길찾기

임인년 설날 아침이다. 새해가 시작된 지 한달이나 지났는데 카톡방엔 또 한번의 신년 덕담들이 줄을 잇는다. 어색한 감이 없지 않지만 나날이 새롭자는 말도 있으니 거듭된 새해맞이 인사가 나쁠 건 없겠다. 밤새 내린 서설로 하얗게 변한 주변의 산을 올라 우일신하자는 마음다짐을 하니 새로운 한 해를 덤으로 선물받은 느낌마저 든다.

눈덮인 산길을 걷다가 백범 김구의 글씨로 접했던 한시를 떠올렸다.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눈덮인 들판 걸어갈 때 어지러이 함부로 걷지마라 오늘 내가 걸은 발자취가 뒤에 오는 이의 이정표가 되는 것이니) . 서산대사의 글로 알고 있었는데 검색해보니 임연당 이양연도 유사한 시를 남겼다 한다. 雪朝野中行 開路自我始 不敢少逶迤 恐誤後來子 (눈내린 아침 들판 걸으니 길이 나로부터 열린다. 감히 비뚤거리며 걷지 못함은 뒤에 올 사람이 잘못됨을 염려해서이다)

현실에서는 우리 누구도 전인미답의 길을 걷는 개척자가 되지 못한다. 세상사는 수많은 이들의 발자국들로 이미 넘쳐나 폭설로도 뒤덮여지지 않는다. 결국 누군가가 앞서 걸은 길을 뒤좇는 것이 다반사이고 헷갈리는 갈림길을 만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선이 눈앞에 다가온 2022년도 내키지 않는 길들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하는 당혹스러운 상황을 자주 접할 듯 싶다. 다만 어느 길을 선택할지를 놓고 벌이는 저 소란이 사생결단식 전쟁이 되지 않기를… 인생에도 역사에도 가지 못한 길은 늘 있었다는 평범한 진리를 설날 아침 눈길에서 생각해 본다.

life · 오늘의 화두

넥스트 바이오 주식회사

횡성을 들러 맛있는 한우로 점심을 먹고 넥스트바이오 회사를 방문했다. 다양한 커피원액을 생산하는 기업인데 이 회사를 일구고 경영하는 신언무 사장이 친구인 덕택에 누린 특별한 호사였다. 자동화된 공장의 내부모습은 스쳐 보았을 뿐이지만 잘 운영되고 발전하는 회사라는 느낌을 받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공장 규모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원액 생산공정이 이루어지는 기계실, 제품개발과 평가를 하는 연구실, 직원들이 함께 거주하고 식사하는 기숙사와 식당이 두루 갖추어져 있었다. 아직 점심 시간 전이지만 신사장과 함께 식당에 들렀을 때 식사 준비를 하던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들이 사장님 함께 라면 드실래요 한다. 그 격의없는 모습에서 회사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지방에 이런 공장을 세우고 지역의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만드는 것에 보람을 느끼지만, 고급 인재를 확보하기는 많이 힘들다고 한다. 관리나 청소, 포장 등의 일에 종사하는 분들은 지역 내에서도 구하기 어렵지 않을 터이고 실제로 그런 분들은 매우 즐겁게 만족하며 근무한다고 한다. 다만 젊고 유능하며 새로운 개발에 열정이 있는 인재는 대부분 지역을 떠나는 것이 현실이다. 이 갭을 어떻게 줄여나갈 것인가 꼭 이 회사만의 숙제가 아닐 것이다.

함께 만나기로 한 박문상 사장과 송태회 이사는 내가 기차로 도착하기 전 먼저 와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벗’이란 모임을 함께 했던 친구들 중 몇은 해외에 있고 국내에 있는 우리끼리도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그간의 생활경험이 다른만큼이나 나눌 화제는 많았고 대화는 즐거웠다. 술과 친구는 오래될수록 좋다고 했던 옛말이 옳다는 걸 실감한 셈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열정적으로 활동할 일거리가 있고 건강이 유지된다는 것은 참 복된 일이다. 학계에 속한 사람들만 주로 접하던 나로서는 스스로 창업해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가는 기업가 친구를 만나는 감회가 더욱 신선하고 기뻤다. 한우와 더덕, 커피 등 여러 선물도 고마왔지만 도전하고 혁신하면서 새 일을 만들어가는 긍정적인 모습을 보고 온 것이 내겐 가장 큰 선물이 된 여행이었다. 넥스트 바이오라는 회사명 그대로 다음 세대의 바이오 혁신의 주역이 되기를 기원한다.

life · 오늘의 화두

전주 한옥마을과 콩나물국밥

학술회의 기조강연차 간 전주에서 반가운 사람들을 여럿 만났다. 제자이면서 원광대 교수로 이번 학술회의를 주관한 원도연 교수, 역시 제자이면서 이번 행사에 토론과 발제로 열심히 참여한 박해남 박사, 동학관련 연구로 존경하던 신순철 교수, 극작가인 곽병창 교수 등 …

저녁엔 전주 한옥마을의 기거하고 있는 김사인 시인의 집을 방문했다. 함께 간 이종민 교수가 대문 앞에서 ‘이리 오너라’하고 부르는 소리가 한옥의 대문풍경과 어우러져 마치 드라마 속으로 걸어들어온 듯한 기분이었다. 웃으며 대문을 열고 나오는 김시인의 모습 역시 정겨운 소품같았다.

오랫만에 이런 저런 수다로 즐거웠다. 문학과 정치, 인생과 역사를 가로질러 이야기거리는 다양했지만 어차피 결론을 내릴 필요도 없고 합의를 봐야 할 것도 아니어서 자유롭게 건너 뛰었다. 아침 삼백집에서 오랫만에 콩나물국밥을 맛보고 오다.

life · 오늘의 화두

기능주의자? 가능주의자!

시인이자 교수인 나희덕 님이 근작 시집을 보내주셨다. 표지 디자인도 색감도 깔끔한 책으로 새해를 신선하게 시작하게 되었다. 초기시집부터 아름다운 문체와 단정한 글씨가 산뜻한 이미지로 남아있고 최근 그림솜씨도 참으로 인상적임을 알게 되어 더욱 친근감을 느끼는 분이다.

처음 시집 제목을 기능주의자로 읽었다. 사회학자에게 친숙한 기능주의란 단어가 무의식적으로 떠올랐던 까닭이었을 것이다. 일단 제목을 오독하고 나니 모두가 기계 같은 기능주의자가 되어가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기는 시인의 마음이 담겼으리란 선입견도 잠시 들었다. 표제작인 ‘가능주의자’를 읽고서야 비로소 내 잘못을 깨달았다. 기능주의자와 가능주의자 사이의 거리란 얼마나 먼가!

가능주의자가 되리라 마음 먹는다고 그리 되는 것은 아니다. 그걸 잘 아는 시인이 굳이 이런 선언을 하는 것은 실상 불가능의 영역이 너무 압도적이라는 답답함 때문일 것이다. 시인은 “그래서 고슴도치에도/ 여우에도 속할 수 없었지만/ 작가란 성자도 역사가도 될 수 없다는 걸 몸소 보여주”는 것으로 톨스토이도 변호하고 스스로도 변호하려 한다. 역설과 모순을 직면하고 견뎌내는 애씀에서 불가능의 가능성이 시작되는 것일지 모르겠다.

life · 오늘의 화두

세모에 태어난 또 한명의 손녀

2021년 마지막날이다. 한 해가 저무는 때이지만 새 해를 목전에 둔 날이기도 하다. 낡음이 차면 새것이 오는 것 – 그 교대와 연쇄가 인생과 역사의 섭리일테니 아쉬움보다 희망으로 오늘을 보내자고 다짐해본다. 사실 돌이켜 보면 내가 뿌린 것보다 거둔 것이 많지 않았던 해는 없었다.

이번 세모에는 전례없는 축복을 받았다. 새해를 맞기 하루 전날 새벽 미국에 있는 딸이 둘째 아기를 순산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 주었기 때문이다. 또 한 명의 귀한 생명이 우리 집안에 맡겨진 것인데 이제 4명의 손자녀를 둔 할아버지가 되었다. 이것만으로도 감사함이 넘칠 일이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정년을 맞이하고 거처를 옮기는 등 변화가 컸던 한 해다. 그래서인지 세모의 소회가 그리 간단치는 않다. 그래도 되돌아보니 소프트랜딩은 한 듯 싶어 다행이다. 모처럼 서울서 내려온 아들 종인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독립해서 생활하는 경험이 주는 또다른 의미가 있는 듯싶다. 새해에도 몸관리, 마음공부 게을리하지 않으면서 긍정적인 내면을 지켜가도록 애쓸 일이다.

life · 오늘의 화두

초연결사회의 홀로 또 같이

코로나 상황을 겪으면서 우리는 너나 없이 홀로임을 절감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하고픈 느낌도 절실하다. 디지털 환경이 제공한 기술인프라는 그런 이중성, 즉 집안에 혼자 있으면서 온라인으로 바깥의 사람들과 접촉하고 활동하는 것을 가능케 했다. 학자들은 이것을 초연결성이라 부른다. 온라인상의 연결과 소통이 일상과 사회 전반에 깊이 스며든 현상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제 아침저녁으로 경험하는 현실이 되었다.

초연결성이란 주제는 이번 학기 수업에서도 종종 언급했었다. 이런 현상이 학교나 교회에 미친 충격과 소규모 자영업자들에게 미친 파장이 같지 않을 것이고 업종과 규모에 따른 편차도 심할 것이 분명하지만 그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공간은 찾기 어려워졌다. 그런가 하면 세대별로 이 충격을 수용하고 흡수하는 역량도 크게 달라서 어쩌면 이중으로 힘들어하는 층이 적지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떨어져 있는 가족, 특히 미국이나 타지에 있는 자녀와 자주 소통할 수 있는 것이 너무도 다행스럽다. 실제로 코로나 상황에서 가족간 유대는 더욱 강해진다는 조사도 나오는 모양이다. 온라인 덕택에 물리적 거리를 초월하여 자유로이 연락하고 얼굴을 맞댈 수 있게 된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초연결성이 어쩌면 점차 약화되던 일차적 관계를 새롭게 강화시킬지도 모르겠다.

life · 오늘의 화두

부스트 샷

부스트 샷이라 불리는 3차 백신접종을 완료했다. 매일 같이 접종을 권유하는 질병관리본부의 문자에 더해 아무래도 맞는게 안전하리라는 판단이 더해져 접종은 했지만 그다지 유쾌하거나 마음이 가볍진 않다. 이것이 마지막도 아닐 뿐더러 3차접종에서 의외로 고생했다는 소식들을 이곳 저곳에서 들은 탓이기도 하다.

사실 부스트샷이라는 이 생소한 말을 너나없이 일상어처럼 사용하게 된 것 자체가 기이한 일이다. 하긴 팬데믹 상황이라는 것 자체가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이니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이 비일상적인 것이 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백신접종과 검사와 감시가 이처럼 조밀하게 사람들의 일상을 옥죌 줄을 예상하지는 못했다. 어차피 이것으로도 그 효과가 몇 달 못간다니 같은 방식의 접종을 얼마나 더 반복해야 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