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 천도교와 기독교의 갈등과 연대 1893- 1919
이영호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이 최근 쓴 자신의 저서를 보내왔다. 제목 그대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친 시기 한국에서 동학, 천도교, 기독교의 종교적, 사상적, 조직적 갈등과 연대를 추적한 역저다. 이 세 종교는 모두 한국의 상황 속에서는 새로 시작하거나 수용되는 것이어서 전통적 질서와 세계관이 해체되고 있던 당대의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경쟁 속에 위치하였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 주제에는 관심이 컸었다. 동학의 발생, 그것의 천도교로의 전환, 기독교의 수용과 정착이 조선의 정치경제적 변화와 맞물려 진행되던 이 역동적 시기가 이론적으로나 역사적으로 흥미를 끌었다. 특히 과학주의, 세속주의 세계관이 문명의 이름으로 급속히 밀려들고 사회불평등에 대한 계급적 시각도 조악한 형태이지만 급진전되고 있던 때에 사람의 마음과 영성을 중시하는 종교적인 세계관이 강력한 힘을 발위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지 오랜 궁금함이었다.
되돌아보면 이런 개인적 관심을 충분히 끌어가지 못한 데에는 시대정신의 압력도 한 몫을 차지한다. 내적 윤리, 종교적 심성, 신앙의 본질을 정면에서 강조하기보다 늘 사회경제적 맥락과 기능의 관점에서, 외피와 문화의 수준에서만 인정하려는 역사유물론, 농민혁명론의 자장을 벗어나지 못한 이유가 적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그 한계를 넘어서려는 진지한 시도로 평가할만하다. 세계관의 기초로서의 종교, 그것이 지닌 독자적 힘, 그러면서도 동학과 천도교 사이의 분명한 단절, 다시 천도교와 기독교의 접점과 간극을 깊이 탐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1919년을 끝으로 삼고 있어서 결국 31운동에서의 천도교, 기독교의 연합으로 이어지는 맥락이 책 전체의 기본골격을 이룬다. 하지만 그 때문에 종교 자체의 본질적 긴장과 동학을 천착하는데까지 이르지 못했다는 느낌이다. 오히려 1920년대, 문화운동과 농민운동, 계급운동과 기독교 사회운동이 분출하는 과정에서 신앙과 종교, 종교와 세속의 접점과 긴장이 어떠했는지를 주목했더라면 설명의 틀도 좀더 깊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물론 그것은 또 다른 책의 주제가 되어야 할 것이긴 하지만….